노동의 종말 - 개정판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영호 옮김 / 민음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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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인 세계적 경기 침체 없이 제3차 산업혁명은 계속 진행될 것이고 생산성을 증진시키며 수많은 노동자들을 대체할 것이다. 그리고 신기술로 인한 과잉 노동력의 일부에게 약간의 일자리를 제공할 것이다. 세계 시장 역시 계속 팽창할 것이다. 그러나 과잉 생산을 충분하게 흡수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팽창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술적 실업의 증가와 구매력의 감소는 계속 세계 경제를 괴롭힐 것이고 정부가 자국 문제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침해할 것이다. _ 제러미 리프킨, <노동의 종말> , p367/440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 1945 ~ )이 1995년에 전망한 미래를 2021년 현실에 비추어 보면 장기적인 세계적 경기 침체가 없을 것이라는 내용을 제외하고는 그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10년 주기로 닥치는 경제공황이 오히려 그의 전망을 가속화시켰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의 예언대로 미래가 진행되고 있다고 느껴지기에 새삼스레 리프킨의 혜안이 놀랍게 느껴진다. 인간의 노동력이 필요없는 시대, 노동가치설이 무력화된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할 것인가.

우리는 이미 제3차 산업혁명과 거의 노동력이 필요 없는 세계로의 역사적 전환을 경험하고 있다. 실리콘에 기초한 새로운 문명화로의 길을 열어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이미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해결되지 않은 과제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이로부터 소외될 것이고, 이들 앞에는 과연 어떤 세계가 펼쳐질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_ 제러미 리프킨, <노동의 종말> , p365/440

제러미 리프킨은 ‘노동이 필요 없어진 사회‘에서 경제 체제의 재구축을 말한다. ‘제조‘를 기반으로 하는 ‘사(私)적 경제‘ 대신 ‘서비스‘를 바탕으로 하는 ‘공(公)적 경제‘로의 노동력의 재배치. 리프킨은 새로운 사회에서 정부의 역할을 ‘제3부문의 변혁‘으로 분명히 한다. 우리의 현실에서 리프킨의 주장은 비정규직 철폐, 공공일자리 확대 등과도 연계시켜 볼 수 있다. 다만, 문제는 재원(財原)이다. 공공부문 강화를 위해 들어갈 막대한 비용을 사회적 합의없이 조달하기는 불가능한 상황에서 리프킨의 ‘제3부문의 변혁‘이 이루어지기 쉽지 않아 보인다.

비효율적인 공공부문의 강화 대신 효율적 시장에 맡기자는 주장, 사회주의 논란 등으로 정책 실현이 늦춰지는 사이에도 자동화는 꾸준히 이루어진다. 이로 인해 경제적으로 불평등은 심화되고, 정치적으로 극우화되는 성향은 더 강해지는 것은 아닌지. 노동의 종말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정부를 만들기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다가오는 하이테크 시대에 정부는 상업적 경제의 이해보다는 사회적 경제의 이해에 부합되는 새로운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사회적 경제를 재구축하기 위한 정부와 제3부문과의 새로운 파트너십의 강화는 모든 국가에 있어서 시민적 생활을 회복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향후 가장 긴급한 과제들은 빈민 구호, 기초 의료 서비스 제공, 청소년 교육, 임대 주택의 건설, 환경 보호이다. _ 제러미 리프킨, <노동의 종말> , p327/440

공장이 노동자들을 흡수하고 방출하는 동안, 거대한 제3부문은 새로운 고용의 가능성을 제공해 왔다. 이것은 교사와 변호사, 간호사와 의사, 가정부와 보모, 정부 공무원과 교통 경찰, 사무원, 타이피스트, 수위, 판매원 등 서비스 고용 영역의 확대를 의미한다. _ 제러미 리프킨, <노동의 종말> , p6/440

<노동의 종말>에서 우리는 탈(脫)노동 사회를 바라본다면, <소유의 종말>에서 우리는 탈(脫)소비 사회를 확인하게 된다. 기존 사회에서 우리가 소비를 통해 갑(甲)의 입장에 서고, 노동을 통해 을(乙)의 위치에 놓인 관계를 유지해왔다면, ‘소비-노동‘의 종말은 개인이 사회와 맺고 있던 관계의 재설정을 요구받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 위에 ‘종말적 사태‘를 바라봤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위기 안에서 기회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노동의 종말은 문면화에 사형 선고를 내릴 수도 있다. 동시에 노동의 종말은 새로운 사회 변혁과 인간 정신의 재탄생의 신호일 수도 있다. 미래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 제러미 리프킨, <노동의 종말> , p37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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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째서 시장은 전통 사회의 제도와 장치들을 전복하는 위험한 것이라고 여겨진 것일까? 상업에는 경계선이 없게 마련이며(시장은 어떤 의미에서 모두 세계시장이다), 이는 지역적 · 국지적 통제 시스템을 위협하게 된다. 시장은 농노와 노예, 소수민족, 젊은이, 여성 등 온갖 피지배자들에게 여차하면 도망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원거리 무역 상인들의 권력이 지방 권력을 가진 지배자들의 자율성을 제한하는 경우도 많았다.
- P50

‘형식론 대 실체론‘이란 곧 다음 두 가지 이론적 입장 가운데 어떤 쪽을 선택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보편적으로 유효한 것이며 따라서 여러 원 시사회에도 대략 적용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정통 경제학 특히 미시경제학의 기존 모델들을 그냥 취할 것이냐, 아니면 연구의 대상으로 삼은역사적 사회들과 인류학의 지성사에 좀 더 적절한 새 분석을 발전시켜야 할 것인가 말하자면, 비즈니스 관점을 취할 것인가 아니면 모종의 무화 연구의 관점을 취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형식론의 방법은 원시 경제들을 아직 발달이 덜 되어 있을 뿐 우리의 경제와 동일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반면 실체론은 원칙적으로 여러 다른 사회의 이런저런 차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태도이다 (Sahlins 1974 xixii).
- P106

자본주의 사회에서 화폐란 소외, 거리감, 비인격적 사회, 바깥 같은 개념을 표상하며,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장소(시장이라는 것)에 뿌리를 두는 존재이다. 뚜렷하게 화폐가 없는 온갖 관계야말로 인격적 통합과 자유로운 결합 그리고 우리가 친숙한 것으로 여기는 안쪽(가정)의 모델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 두 가지 영역의 분리가 결코 완결되지 않았으며, 가정경제의 소비 또한 화폐 지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탓에 상황은 끝없이 더 복잡해지고 만다.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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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된 상품 그 자체의 가치는 새로 부가된 노동(임금과 이윤과 과거노동(불변자본의 가치)으로 분해된다. 즉 그것은 판매가치(사실상의 상품가치)이다. 반면 구매자가 판매자에게 지불하는 구매가치는 단지 새로 부가된 노동, 즉 임금과 이윤으로만 분해된다. 그런데 판매되기 전의 모든 상품은 앞으로 판매되어야 할 상품이고 단순한 형태변화만으로 화폐로 전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판매되는 상품으로서의 모든 상품은 구매되는 상품(즉 화폐)과는 다른 가치구성 부분들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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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적 생산의 의미에서 볼 때 생산적 노동은 자본의 가변적 부분(자본 가운데 임금에 지출되는 부분)과 교환되어 이 자본 부분(혹은 자신의 노동력가치)을 재생산하는 것은 물론 자본가를 위한 잉여가치까지도 함께 생산하는 임노동이다. 오로지 이것에 의해서만 상품(혹은 화폐)은 자본으로 전화하고 자본으로 생산된다. 자본을 생산하는 임노동만이 생산적이다.  - P162

스미스는 본질적 측면에서 중금주의자들과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중금주의자들에게는 오로지 화폐, 즉 금과 은을 만들어내는 노동만이 생산적이다. 스미스에게 생산적 노동은 오로지 그것을 구매한 사람에게 화폐를 만들어주는 노동뿐이다. 단지 둘 사이의 차이점은 스미스가 모든 상품에서 베일에 싸여 있는 화폐의 성격을 꿰뚫어 본 반면 중금주의자들은 교환가치의 자립적 현존재인 상품 속에서만 그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생산적 노동에 대한 이들의 이런 구별은 부르주아적 생산의 본질에 기초한 것인데 즉 부는 사용가치와 같은 것이 아니라 오로지 상품(교환가치를 지닌 사용가치, 즉 화폐로서의 사용가치) 이 부이기 때문이다.  - P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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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중요합니다. 인간이 하나의 부품이 되어 다른 부품, 다른 사물들과 어떻게 하나의 기계를 이루는지 말입니다. 인간은 기계의 부품이 될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인간이 다른 부품들과소통할 수 있다면 인간은 "기계를 이룬다" (fait imachine)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19세기의 또 다른 중요한 현상을 해명하고 있습니다. ‘식민주의‘ 말입니다. 왜 그렇게 자본주의 국가들은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를 침략했는가. 유럽인들의 심성 때문인가. 종교와 문명의 전파에 대한 사명을 자각했기 때문인가. 천만에요.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생산, 특히 기계제 대공장에 기초한 생산형태 안에 식민주의에 대한 요구가 들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식민주의는 인간본성에 기인한 것도 아니고 신대륙 발견이라는 우연한 사건의 결과물도 아닙니다. 자본주의가 식민주의를 품고 있습니다.

내용을 눈여겨보면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호황과 불황이 단순하게 반복되는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호황은 점차 드물어지고 시기도 짧아지는 반면 불황과 침체는 더욱 빈번하며 기간 또한 길어집니다. 마르크스가 영국 면직업의 "첫 번째 시기"라고 부른 45년(1770~1815) 간은 공황과 침제 상태가 5년에 불과했는데요. "두 번째 시기"라고 부르는 다음 48년(1815~1863) 동안에는 불황과 침체가 28년으로 늘어난 반면 회복과 호황의 시기는 20년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김, 618; 강, 614] 짧게 보면 산업의 반복적 순환이 생명의 순환처럼 보입니다만 길게 보면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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