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것에는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를 끌어들여 추정하는 경향이 있다. 유럽의 계몽주의와 최근의 상대적 발전이 일반화하고 전파한 가치들은 지난 수천 년간 서구가 경험한 오래된 서구적 유산의 일부라고 보기는 어렵다.

사실 공자는 아시아적 가치라는 상상의 건축물에서 두 개의 기둥, 즉 가족에 대한 헌신과 국가에 대한 충성이 서로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지적하였다. ‘아시아적 가치’의 힘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은 국가의 역할을 가정의 역할이 확장된 것으로 간주하지만, 공자가 말했듯이 이 둘 사이에는 긴장이 있을 수 있다.

여기에서 파악해야 할 요점은 현대의 ‘아시아적 가치’의 지지자들이 그것의 권위주의적 관점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그들의 생각이 작가들과 전통을 극단적으로 좁게 선택한 것에 기반했다는 것이다. 자유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한 문화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서구의 전통만이 유일하게 자유를 기반으로 사회적 이해의 접근법을 제공한 것도 아니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자본주의 국가 중 하나가 여러 중요 영역에서 자본주의의 기반인 단순한 자기 이익의 추구에서 벗어난 동기 구조를 갖고도 경제적으로 성공했다는 특이한 사실을 이해하고 평가해야만 한다.

현재의 세계에서 자본주의가 직면한 큰 도전에는 불평등의 문제(유례없는 번영의 세계에서 고통스러운 빈곤의 문제), ‘공공자산’의 문제(환경과 같이 모든 이들이 공유하는 자산)가 포함된다. 이러한 문제들의 해법은 확실히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넘어서는 제도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 자체의 범위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더 민감한 윤리를 적절히 발전시킴으로써 확장할 수 있다.

하지만 주된 교훈은 사회적 선택에 대한 합리적 평가의 무용성이 아니라 의도하지 않았지만 예측 가능한 결과들을 예상해야 할 필요성이다. 이것은 의도의 힘에 압도당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부수적 효과를 무시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루이스가 지적했듯이) 둘이 서로 연관성이 있는데도 발전에 대한 이 두 가지 접근법이 왜 실질적으로 일치하지 않는가? 자유에 초점을 둔 것이 어떤 차이를 불러오는가? 그 차이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이유에서 생겨나는데, 각각 자유의 ‘과정의 측면’과 ‘기회의 측면’에서 온다. 먼저 자유가 의사결정 과정과 동시에 가치 있는 산출을 성취할 기회와도 관련되어 있으므로 우리의 관심영역은 산출이나 소득의 진작 혹은 더 높은 소비의 달성(혹은 경제성장과 관련된 다른 지표들)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성과에만 한정될 수 없다.

현재의 경제분석은 기본적으로 자본축적을 물리적 관점에서 보는 것에서 인간의 생산적 자질이 통합적으로 관여된 과정으로 보는 것으로 강조점이 상당히 옮겨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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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근을 이해하는 가장 유용한 방법은 획득권한의 상실이라는 관점이다. 이것은 음식을 살 수 있는 실질적인 자유를 잃는 것이다. 이것은 한 단위로서의 가족이 소비할 수 있는 식량의 양이 급격히 줄어드는 것으로 이어진다. 가족 내에서 분배의 문제는 기근 상황에서 매우 심각해질 수도 있지만, 빈곤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가족 내의 구성원의 영양실조와 굶주림을 결정하는 데 특히 중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많은 공동체에서 ‘정상적’ 상황이다.

여성은 가정에서 매일 오랜 시간을 일하지만 이 작업에는 보수가 따르지 않기 때문에, 가족들이 함께 증진시킨 부에 대해서 여성과 남성의 상대적 기여를 평가할 때 가사노동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성이 취업하여 밖에서 임금을 벌어온다면 그녀가 가정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더욱 두드러진다. 여성의 향상된 지위는 심지어 여성 아동의 ‘몫’에 대한 생각에도 영향을 준다. 따라서 외부에서 일을 구하고 유지할 수 있는 자유는 여성의 상대적인 그리고 절대적인 박탈을 감소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사실 여성의 권리 강화는 오늘날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발전 과정에서 마주치는 중요한 논점 중 하나다. 여기에 포함된 요인들은 여성의 교육, 그들의 소유 형태, 취업 기회, 그리고 노동시장의 작동 등이다. 하지만 이러한 ‘고전적’ 변수 외에도 고용제도의 특성, 여성의 경제활동에 대한 가족과 사회 일반의 태도, 그리고 이러한 태도의 변화를 독려하거나 그것에 저항하는 사회적 환경 등도 요인에 포함된다.

출산율 감소는 경제적 번영으로 인한 효과 때문만이 아니라 높은 출산율이 사람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유형의 삶을 영위할 자유 특히 젊은 여성의 자유를 감소시키기 때문에 중요하다. 사실 잦은 임신과 양육 때문에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은 나라에서 번식하는 도구로 전락당한 젊은 여성들이다.

콩도르세는 출산율의 자발적 감소를 예측하고 ‘이성의 진보’에 기초한 작은 가족이란 새로운 규범이 출현할 것이라 예언했다. 그는 사람들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의무를 갖고 있다면, 그 의무가 그들을 태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가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교육의 확대, 특히 여성 교육의 확대(이에 대해 콩도르세는 가장 앞선, 그리고 가장 목소리를 드높인 지지자였다)로 인해 이러한 유형의 추론이 사람들을 낮은 출산율과 작은 가족으로 이끌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그는 사람들이 사회 문제를 이성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인구 성장의 결과에 관한 한 맬서스는 인구가 식량 공급을 초과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확신했고, 이 맥락에서 식량 생산이 상대적으로 고정된 것이라고 간주했다. 그리고 이 장의 주제와 관련해서, 맬서스는 특히 자발적인 가족계획에 의구심을 가졌다. 그가 인구의 압박을 감소시키기 위해 ‘도덕적 자제’를 대안으로 언급했지만(다시 말해 고통과 증가된 사망률의 대안으로), 그는 그러한 자제가 자발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상하지는 않았다.

나는 기아, 영양실조, 기근 문제의 본질과 혹독함을 오직 식량 생산량에 근거해 판단하는 것에 반대하는 주장을 제기했다. 그러나 식량 생산량은 기아가 발생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 중 하나다. 소비자가 식량을 살 수 있는 가격은 식량 생산량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우리가 식량 문제를 전 지구적 수준에서 고려한다면(국가나 지역 차원이 아니라), 경제 ‘바깥’에서 식량을 구할 방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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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보수주의는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고 강력한 요구사항을 제기하지만 그 요구는 공공정책의 전반적인 목표와 관련해서 해석되어야 한다. 공공지출은 많은 기본 역량을 만들어내고 보장하는 역할을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주의가 필요하다. 공공지출은 거시경제적 안정성에 대한 도구적 필요성과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사실 후자는 사회적 목표의 광범위한 틀 안에서 평가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기회의 창출은 인간 역량과 삶의 질의 확장에 직접적으로 기여한다. 보건의료, 교육, 사회적 안전 등의 확장은 삶의 질과 그 개화 flourishing에 직접적으로 기여한다. 상대적으로 낮은 소득에도 보건의료와 교육을 모두에게 보장한 나라가 전체 인구의 수명과 삶의 질에서 실제로 놀라운 성과를 이룰 수 있다는 증거가 있다. 보건의료와 기초교육?더 나아가 인간개발 전반?은 높은 노동 집약성으로 인해 임금이 상대적으로 낮은 경제발전 초기에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이 들어간다.

민주적 체제를 발전시키고 강화하는 것은 발전 과정에서 본질적인 요소다. 민주주의의 중요성은 세 가지 서로 구별되는 덕목에 있다. ① 내재적 중요성, ② 도구적 기여, 그리고 ③ 가치와 규범의 창조 과정에서 갖는 구성적 역할. 통치의 민주적 형태를 평가할 때 이 각각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완전한 평가를 내릴 수 없다.

현대 세계에서 굶주림을 박멸하려면 기근의 인과관계를 적절하고 폭넓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며, 식량과 인구의 균형을 기계적으로 맞추려는 관점에서만 보면 안 된다. 기아를 분석할 때 핵심적인 것은 개인과 가정이 적절한 양의 식량을 소유할 수 있는 실질적 자유다. 이것은 농부들처럼 스스로 식량을 경작하거나 비경작자처럼 시장에서 식량을 구입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불평등은 기근과 기타 가혹한 위기의 전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실 민주주의의 결여는 정치적 권리와 권력의 분배라는 측면에서 그 자체로 불평등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기근과 기타 위기가 심각한 그리고 종종 급속도로 증대되는 불평등 위에서 판을 친다는 것이다. 이는 총 식량 공급량이 크게 (혹은 전혀) 감소하지 않아도 기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입증된다.

평등의 문제는 물론 만성적인 고질적 빈곤에서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속적인 박탈과 갑작스런 궁핍은 불평등의 성질과 인과적 영향이 서로 다르다. 예를 들어 한국이 상대적으로 평등한 소득 분배와 함께 경제성장을 이루었다는 사실은 널리 그리고 정당하게 인정받는다. 그러나 이 나라는 민주정치가 부재한 가운데, 위기 상황에서 모두가 공정한 정치적 관심을 보장받지 못했다. 특히 이 나라는 어떤 사회적 안전망도, 보충적인 보호를 위한 빠른 반응 체계도 마련하지 않았다. ‘평등과 함께한 성장’이라는 예전 경험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불평등과 거침없는 궁핍의 사태는 나타날 수 있다.

식량 생산의 증대가 식량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은 매우 강력하고 그럴듯하며 종종 합리적일 때도 있다. 하지만 상황은 그보다 더 복잡하며 다양한 경제적 기회와 국제 교역의 가능성과 연관되어 있다. 식량 생산의 감소라는 면에서 보면 사하라 남부 아프리카의 문제가 갖는 중요한 특징은 특별히 식량이 부족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문제는 경제성장 자체가 전반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식량 생산은 그 일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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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극단적 빈곤은 남아시아와 사하라 남부 아프리카 두 지역에 심하게 집중되어 있다. 이들 지역은 모든 지역 중에서도 1인당 소득이 가장 낮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이들 지역이 겪는 박탈의 본질과 내용이나 그들 각각의 빈곤에 대한 비교를 적절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하지만 빈곤을 기본적 역량의 박탈로 본다면, 이들 지역의 삶의 양상에 대한 정보를 통해 더욱 통찰력 있는 전체 상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만일 불만을 가질 이유가 있다면, 대부분의 경제학에서 불평등을 매우 좁은 영역, 즉 소득 불평등만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여겼다는 사실에 있다. 이러한 협소한 시각은 불평등과 평등을 바라보는 다른 관점들을 간과하는 효과를 가져왔으며, 경제정책의 형성에 더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정책 논쟁은 소득 빈곤과 소득 불평등을 강조함으로써 왜곡되었고, 실업이나 건강, 교육의 부족, 사회적 배제 같은 다른 변수와 관련된 박탈을 무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현대적인 삶에서 어디에나 존재하는 거래의 기능은 그것을 지나치게 당연시함으로써 종종 간과된다. 이는 (일탈이 발생하면 그에 대해서만 관심의 초점을 두면서) 발전된 자본주의 경제에서 어떤 행동 규칙(예를 들어 기본적인 기업윤리)의 역할이 과소평가되거나 종종 무시되는 것과 유사하다. 하지만 이러한 가치들이 충분히 발전하지 않았을 때, 그들의 일반적인 존재 혹은 부재는 중대한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따라서 발전에 관한 연구에서 기초적인 기업윤리의 역할은 모호하게 놔두는 대신 명확하게 인식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거래의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 것도 그 자체가 여러 상황에서 중요한 문제다.

사실상 불평등의 문제는 관심사를 소득 불평등에서 실질적 자유와 역량의 분배의 불평등으로 옮길 때 더 확대된다. 왜냐하면 주로 소득 불평등이 소득을 역량으로 전환시키는 기회의 불평등함과 ‘결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시장 메커니즘의 자유-효율성과 자유-불평등 문제의 심각성은 동시에 고려할 만한 가치가 있다. 불평등 문제는 특히 심각한 박탈과 빈곤을 다룰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데, 이런 맥락에서 정부의 보조와 같은 사회적 개입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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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5 - 습속, 윤리, 도덕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5
카를-하인츠 일팅 지음, 오토 브루너 외 엮음, 한상희 옮김,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기획 / 푸른역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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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동의 근원은 신념이며 신념만이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가치판단의 대상일 수 있다는 가르침은 헬레니즘의 일반적인 도덕관 속에서도 계속된다. 구약의 율법에 따르면 완료된 행위여야 비로소 심판의 대상이 되지만, 신약의 율법에 따르면 행동에 이르지 않은 마음의 동요만으로도 이미 유죄판결을 받기에 충분하다. 이것은 사람들이 타인의 인정이나 감탄을 구하기 때문에 바로 이유에서만 선을 행한다는 헬레니즘 사상의 자명한 경고와도 일치한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5 : 습속, 윤리, 도덕> , P33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 ~ 2006)의 개념사 사전 25번째 주제는 습속, 윤리, 도덕(Sitte, Sittlichkeit, Moral)이다. 제목에는 3개의 단어가 소개되지만, 본문 내용은 주로 윤리, 도덕에 중점을 둔다. '윤리/도덕'의 의미가 근대 이전과 이후가 극명하게 달라지는 것은 다른 개념어와 마찬가지이나, 언어의 의미가 자유, 평등과 같은 사상이나 국가, 조합 등과 같은 구체적 형태를 의미를 포괄하기에 여기에서는 보다 시대상의 변화가 잘 드러난다. 


 구체적으로 윤리/도덕의 의미는 서양의 역사에서 2개의 변곡점을 갖는다. 하나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만남을 통해서, 다른 하나는 종교개혁을 통해서. 서양의 역사 속에서 긍정/부정의 평가를 떠나 기독교의 영향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것이 윤리/도덕이기에 종교사상의 변화가 언어의 사용에 그대로 남겨있다. 본문에서 저자는 구약 시대의 윤리가 '결과'에 집중하는 반면, 헬레니즘(Hellenism)을 통해 신약 시대의 윤리는 '동기'로 이전되었음을 말한다. 결과의 '좋음/나쁨'이 아닌 동기의 '선/악'으로 옮기는 관점의 변화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Hebraism)의 만남을 통해서, 선/악과 유용성의 결합은 스토아(Stoic) 철학을 통해 성공적으로 안착된다. 


 기독교에서 직접 자신의 신과 대면하고 난 후 개인은 더 이상 자신을 우선적으로 공동체적 존재로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자연적 존재 질서를 넘어 절대적 명령권으로서 신의 의지가 도덕 규범의 타당성에 대한 근거로 인식되었고, 신의 명령의 절대적 구속력은 윤리성 Sittlichkeit의 토대로서 유용성에 대한 단순한 고려와 마찬가지로 행복 추구에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이로써 키케로가 지키려고 했던 '도덕적 선 honostum'과 '예의범절 docorum', '유용함 utile'의 통일성을 깨졌고, 절대주의 시대에 합리적 법체계의 발전과 더불어 법과 도덕의 차이 또한 점점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었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5 : 습속, 윤리, 도덕> , P50


 이러한 개념어의 안정 상태는 종교개혁이라는 변수를 만나면서 변화하게 된다. 이전까지 가톨릭 교회(敎會)라는 공동체를 통한 신(神)과의 만남은 종교개혁 이후 '개인-신'과의 관계로 바뀌었으며, 이로 인해 개인윤리와 공동체 윤리의 분리가 초래되었다. 이에 대한 문제는 민족국가의 출현과 궤를 같이 한다. 개인과 공동체 윤리간의 조화. 독일 철학사에서 이 문제는 칸트와 헤겔에 의해 단계적으로 풀려간다.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는 <실천이성비판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을 통해 개인 윤리에 있어 보편 법칙의 정립을 이루었고,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 ~ 1831)은 <정신현상학 Phanomenologie des Geistes>에서 정(靜)적인 법칙을 동(動)적인 단계적 고양을 통해 가족으로부터 국가를 아우르는 운동을 밝혀낸다. 


 칸트가 얻은 최초의 중요한 성과는 '윤리성 Sittlichkeit' 개념이 사실들 또는 실제로 그러한 것과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구속력 있는 규범들 또는 실제로 그러해야 하는 것과 관계되며, 이 규범들을 준수하거나 위반할 때 우리를 이끄는 의도와 관련이 있다는 통찰이었다(p66)... 그러므로 어떤 행위의 도덕적 가치나 성격은 행위자의 의도와 행위자를 그 행동으로 이끄는 규칙(원칙)이 도덕적으로 권할 만한 것인가, 즉 "도덕법칙 Sittengesetz"에 맞는가의 여부에 달려있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5 : 습속, 윤리, 도덕> , P67


  헤겔이 "인륜성 Sittlichkeit" 이라는 제목 하에 서술한 기관들("가족, 시민사회, 국가")은 무엇보다도 특히 기독교를 통해 형성된 본질적으로 개인주의적인 자의식의 조건 아래 인륜 Sittlichkeit이라는 고대적 이념의 부흥으로서, 즉 '인륜적 국가 Sittlicher Staat'로서 파악되고 해석되었다. 합리적 자연법과 이에 역사적으로 상응하는 합리적 윤리의 "추상적" 규범들이 칸트가 제시한 것처럼 혁명 후 국가의 "윤리 Sittlichketi" 안에서 지양되었다는 사실은 이제 헤겔은 분명하게 강조한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5 : 습속, 윤리, 도덕> , P89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5 : 습속, 윤리, 도덕>은 이처럼 윤리/도덕의 개념어 역사를 기독교의 역사와 긴밀하게 연결시키면서, 19세기 칸트/헤겔에 의해 관념론적인 완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기독교 사상의 종말을 외친 한 사상가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 ~ 1900)를 소개하며, 칸트/헤겔에 의해 완성된 기독교적 윤리와 이에 대한 도전으로 본문을 마무리한다. 그 사이 토마스 아퀴나스, 펠라기우스, 둔스 스코투스에 대한 설명은 서양 윤리사상사의 큰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다만, 얇은 페이지에 많은 내용이 함축적으로 담겨있다보니 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책이라 여겨진다...


 니체는 그의 말년의 저작들에서 인간적이고 기독교적인 미덕들인 '유럽적인 도덕 die europaiische Moral'을 "도덕에서의 노예 반란"의 결과로 파악했다. 이 노예 반란을 통해서 유대인은 "가치의 전도라는 저 기적과 같은 작품을 완성했고, 그 덕분에 지상에서의 삶은 몇 천 년동안 새롭고 위험한 자극이었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5 : 습속, 윤리, 도덕> , P119


도의적인 sittlich(도덕적으로 훌륭한, 의로운 honestum) 것은 사회로부터 칭찬받지 않을 때조차도 명예로운 것이다. 누구로부터 칭찬받지 못할지라도, 그것은 "당연히 칭찬할 가치가 있다." "유명하지는 않을지라도 명예로울 수 있으며, 아무도 칭찬하지 않더라도 칭찬할 말한 것일 수 있다. "도의 Sittelichkeit"와 "유용성" 간의 갈등은 일찍이 키케로가 유용성에 대한 고려보다 도덕적인 의무가 앞선다는 규범을 인정하면서 해결되었고, 다른 한편 규범적인 기본질서는 자기보존과 안녕을 위한 자연스러운 노력에 모순되지 안혹 오히려 부합하며, 그런 까닭에 "자연스러운" 것임을 확인하는 가운데 해결되었다. - P30

칸트가 개인의 도덕성으로 표현했던 의지의 입장 Willenshaltung은 헤겔이 ‘인륜성 Sittlichkeit‘으로 이해하려 한 "삶의 공동체 eine Gemeinsmakeit des Lebens"를 원칙적으로 부인한다. 여기서 그는 우선 "도덕성"을 "인륜성 Sittlichkeit"의 변질된 형태로 이해해야만 한다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한다. 예나 Jena 시대 말기에 헤겔은 그리스 민족의 삶이 갖는 원래의 "도덕적 sittlich" 통일성을 파괴시킨 개인 자의식의 역사적 발전을 더 이상 변질이 아닌 인간적 자기 이해의 보다 높은 단계로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이 같은 전제조건에 의문을 제기했다. - P87

헤겔의 ‘인륜성 Sittlichkeit‘ 개념은 한 공동체가 지탱되고 그 공동체의 기관들에서 표명되는 신념으로서 중요한 기여를 했다. 그 결과 공동체 안에서의 공존을 가능하게 하고 후원하는 모든 것을 ‘인륜적 Sittlich‘인 것으로 칭하고, 그런 공동체의 삶을 파괴하는 모든 것을 ‘비인륜적 unsittlich‘인 것으로 부르게 되었다. - P100

근본적으로 모든 교육의 최고 목표는 더 고급한 문명과 정신문화라는 전제하에서 그는 이 목표로 이끄는 모든 것을 "인륜적인 Sittlich 무엇"으로 간주한다.... 사회적 진보라는 이상적 개념은 인륜성 Sittlichkeit 이념과 결합하여 슈타인에게서 보듯 보편적이고 문화적인 진보의 개념으로 확대되었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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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04-13 17: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코젤렉의 개념사가 25권까지 나왔군요! 전 9권까지 모았는데요..ㅎㅎ

겨울호랑이 2023-04-13 17:45   좋아요 1 | URL
네, 한동안 번역이 정체되었다가 몇 년 전부터 밀린 번역본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덕분에 진도를 따라가느라 행복한 바쁨을 느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