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풍경 2 파리의 풍경 2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지음, 송기형 외 옮김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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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취미는 최상위 계층에서 최하위 계층까지 널리 퍼져 있다. 때로는 그것이 교육을 완성시키거나 잘못된 교육을 바로잡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억양과 몸가짐 그리고 교육을 동시에 교정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여흥은 대도시에만 적합하다. 어느 정도의 사치와 그다지 엄격하지 않은 풍습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자상하고 사려 깊은 사람들이여, 연극 공연에 주의하라. 연극을 두려워하라. 당신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바로 극작가이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2> , p25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Louis-Sebastien Mercier, 1740 ~ 1814)의 <파리의 풍경 2 Tableau de Paris> 역시 전편에 이어 파리의 여러 풍경 모습이 담겨있다. 절대왕정의 정체(政體)가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더이상 담아내지 못하는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의 한계 상황은 2권에서도 계속 이어지는 것은 1권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러한 문제가 2권 전반에 걸쳐 서술되는 극장, 작품, 작가 등의 주제를 통해 보다 생생하게 독자에게 다가온다.


 입법자로서의 진정한 천재성을 갖고 있는 토스카나 대공은 사려 깊게 고안된 많은 규범들 가운데 작품 선택의 절대적 자유권을 모든 극장에 주었다. 경합과 경쟁심이 연극이라는 아름다운 예술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편협한 분류 풍조가 연극의 비약적 발전과 위대함을 손상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모든 규칙보다도 경합과 경쟁심이 이 아름다운 예술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했던 것이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2> , p31


 높이 평가되는 모든 미덕도 우스꽝스러운 신흥귀족도 공격할 수 없는 희극은 필연적으로 말재주로 전락하게 되어 있었다. 이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p401)... 희극작가는 최근의 본보기를 그려내야 하므로, 풍속에 대한 관심을 자신의 예술에 대한 관심과 양립시키는 것이 금지되어 있고, 거의 미덕을 묘사함으로써만 악덕을 공격할 수 있을 뿐이고, 악덕의 머리털을 잡고 악덕을 무대 위로 질질 끌고나와 악덕의 추한 얼굴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대신, 따분한 훈계의 장광성을 늘어놓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정치체제 아래에서는 결코 실감나는 희극이 진작될 수 없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2> , p402


 계급사회 전반에 걸쳐 널리 인기가 있었던 희극(喜劇, comedy)의 활성화는 정치가들의 입장에서 민중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하나의 통치수단으로 작동했다. 때문에, 연극상연과 관련해서 '자유 自由'라는 명목으로 극장에게 많은 권한을 제공하였지만, 정작 연극 내용과 관련해서는 엄격한 검열을 실시했음을 독자들은 <파리의 풍경 2>에서 확인하게 된다. 모두가 연극을 선호하지만, 누구나 연극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여유있는 선택된 이들만이 연극을 관람할 수 있는 현실에서 메르시에는 극장 안의 열기와 함께 극장 밖의 어두운 현실을 함께 보여준다.


 대(大)시인과 대배우를 우쭐하게 만드는 박수갈채란 어떤 것인가? 침울하고 알 수 없는 정적이 극장 안에 흐를 때, 가슴이 찢어지고 눈물에 젖은 관객이 갈채를 보낼 생각도 못하고 그럴 힘도 없을 때, 그때 터져 나오는 박수이다. 바로 이때 관객은 결정적인 환상에 빠져 배우를 잊고 기교를 망각하는 것이다. 그의 주위에서는 모든 것이 성취된다.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관객의 영혼 속에 새겨지고, 불가사의한 기운이 오랫동안 관객 주위를 감돈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2> , p23


 그 시대의 거의 모든 이들이 연극을 좋아한 것은 사실이지만, 연극을 보지 않는다고 죽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극장들의 치열한 경쟁이 민중들의 직접적인 삶에 영향을 주지는 못했고, 크지 않은 시장에서 얻어지는 제한된 이윤은 경쟁의 긍정적인 측면을 끌어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생필품 시장에서 문제는 이와 달랐다. 


 전주(錢主)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돈놀이를 한다. 그런데 가난이 극심해질수록 손에 돈을 쥐지 않고는 움직일 수가 없는 법이다. 극빈자에게는 대출도 없다. 같은 이유로 극빈자는 방계 왕족보다 포도주와 고깃값을 더 비싸게 내고 사며, 엄청난 값을 치르고 6리브르짜리 에퀴 한 개를 얻는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극빈자는 자신이 빠져 있는 깊은 구렁에서 헤어나기가 힘들며, 밖으로 빠져나오려 할 때면 손과 발이 미끄러진다. 1만 리브르로 100만 리브르를 벌어들이는 것보다 5수로 6프랑을 버는 것이 훨씬 더 어렵기 때문이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2> , p42


 한 사람이 상품 전체를 완전히 독차지한다. 그리고는 전제적(專制的)으로 행동한다. 이럴 때 거래는 위험하고 억압적이 된다. 본래 거래란 공정한 교환이었다. 균형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거래는 무산된다. 계약당사자 중 어느 한 편이 압도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거래가 아니라 독점이며 강요당하는 것이다. 이 억압적인 사람은 제 값보다 더 비싼 값으로 물건을 판다. 그런데 이러한 상품이 생필품이라면, 즉 그것이 빵이나 포도주, 채소, 기름 따위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정말이지 상대방을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2> , p164


 우리는 <파리의 풍경2>를 통해 자본가들의 돈이 돈을 부르고, 생필품 시장의 독점(獨占)은 민중의 삶을 점점 더 벼랑끝으로 내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극장 밖에서 돈이 없이 고달픈 노동 현장으로 내몰린 민중들이 지친 걸음을 걷고 있을 때, 극장 안에서는 벅찬 감정을 이기지 못한 관객들의 박수소리가 울려퍼지는 곳. 메르시에의 <파리의 풍경 2>는 이러한 18세기 파리의 모습을 그렸다. 이것이 당대 프랑스인의 비극이라면, 이러한 파리의 풍경이 그렇게 낯설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의 비극일 것이다...


 민중에게는 더 이상 돈이 없다. 그것은 커다란 재앙이다.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복권이라는 악랄한 도박에 의해, 그리고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치명적 유혹의 부채에 의해 그들에게서 남아 있는 돈을 우려낸다. 자본가와 그 측근의 주머니에는 최소한 6억이라는 금액이 숨겨져 있다. 바로 이러한 자산으로 그들은 왕국의 시민들과 끊임없이 겨루고 있다. 그들의 지갑은 동맹을 결성했고, 그 금액은 결코 다시 유통되지 않는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2> , p157

당신들에게 남아 있는 시간을 선을 행하는 데 사용하라. 모든 것이 당신들 손에서 곧 새어나가게 될 것이다. 당신들의 마음이 아무리 메말라 있을지라도, 어쩔 수 없이 당신들에게 닥쳐올 회한을 느끼지 않으려면 연민을 가져라. 가난한 사람들의 외침이 들리는가? 그들은 당신들이 그들의 생계에서 빼앗아가는 몫을 다시 요구하고 있는데, 당신들은 폭음/폭식으로 건강을 해치고 있다. - P151

소수의 수중에 있는, 화폐로 주조되는 거대한 금속 덩어리를 모두가 조각내고 분할하고 해체하도록 하라. 그렇게도 기다리는 이 금속이 법, 지위, 기괴한 규정, 끝없는 금지사항들을 만드는 대신에 널리 퍼지게 할 경로를 뚫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도와주어라. - P157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플라톤적인 법칙이 아니다. 오늘날에는 자연 사회의 와해, 사치의 끔찍한 결과, 그리고 사치에 의해 초래된 전반적인 타락을 고려해야 한다. 국가는 부패한 병든 몸이다. 국가에 건강하고 활력에 넘치는 신체의 의무를 부과할 것이 아니라, 거의 치유 불가능해진 상처에 맞추어 국가를 치료해야 한다. 사치만이 사치로 인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그것은 전체에 필요해진 독소이다. - P193

사유하고 말하게 내버려두라. 대중이 판단할 것이며, 그들은 저자들의 잘못을 고쳐줄 수도 있을 것이다. 출판을 정화시키기 위한 가장 확실한 수단은 그것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장애물은 자극만 줄 뿐이다. 금지, 반대는 불평의 대상이 되는 소책자들을 낳는다. - P263

선행을 안 해도 되는 사람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불우한 사람에게 도덕적 의무를 치러야 한다.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불우한 사람을 살려낸다. 언제나 돈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필요한 것은 관심, 조언, 방문, 단순한 교섭, 적시에 제출된 진정서이다. 그러므로 작가들이여, 가장 고결한 직무에 충실히 복무함으로써 선행에 유익한 이 성향을 부단히 키우고 간직하라! - P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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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동의 시대 - 공포정의 끝인가, 출구인가 Liberte :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10
주명철 지음 / 여문책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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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은 아시냐 지폐의 가치가 폭락하고 빵값이 치솟고 돈을 주고도 사기 어려운 현실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지 못한 채 계속 참기만 했던 빈곤층이었다. 최고가격제를 법으로 정했지만, 농민들이 법을 준수하지 않았고 생산량에 비해 공급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늘 허덕이게 마련이었다. 참다못한 노동자들이 행동에 나섰다. 그들은 청원서를 작성해서 참석자들에게 서명을 받은 뒤 대표단을 뽑아 시정부에 제출했다. _ 주명철, <반동의 시대> , p20

모든 수단이 국내외의 적을 물리치는 투쟁을 정당화시켜주었다. 연합국과 대적하는 일도 벅찬 바람에 남부에서는 방데의 반란자에 비할 만큼 극렬하게 저항하는 세력이 남아 있었다. 반혁명 세력이 힘없는 농부와 일꾼들을 납치해서 죽이기도 했다. 정부의 경제정책은 최고가격제를 전국적으로 강화하고 있었기 때문에 불만세력이 더욱 늘었다. _ 주명철, <반동의 시대> , p306

주명철 교수의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중 제10권 <반동의 시대 - 공포정의 끝인가, 출구인가 Liberte>는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Francois Marie Isidore de Robespierre, 1758 ~ 1794)의 죽음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된다. 1789년 어려워진 경제상황으로 폭발된 혁명은 혁명사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숙제로 남는다. 결국 테르미도르 반동(Convention thermidorienne)으로 인해 혁명은 더이상 진행되지 못하고 혁명정부는 지지부진하게 유지되다가 결국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 1769 ~ 1821)의 쿠데타로 프랑스는 제정으로 넘어가게 되었음은 이미 역사를 통해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다면, 혁명은 왜 실패했는가.

전통적 달력으로 7월 27일(일요일), 공화력 2년 테르미도르 9일, 프랑스 혁명에서 또 한 고비를 넘기는 날이 왔다. 의원들은 이 모든 죄목을 열거한 뒤, 막시밀리엥 로베스피에르가 국민공회를 모욕했으므로 체포하라고 사방에서 성화였다. 과연 로베스피에르와 그 측근은 하룻밤 사이에 적들이 이렇게까지 단합할 줄 상상이나 했을까? 의원들은 당장 로베스피에르를 체포하기로 의결했다(p338)... 이제 몽타뉴파가 갈가리 찢어졌고, 그 속에서 로베스피에르의 적들이 생겼다. 로베스피에르가 적을 만들었다. 임지에서 무자비하게 권력을 휘두르고 남용한 의원들을 소환한 뒤, 이들은 위험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썼으니, 결국은 로베스피에르가 만들어낸 적이었다. _ 주명철, <반동의 시대> , p339

직접적인 원인은 어려운 경제상황에 대한 불만이 컸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자본주의 독점체제가 자리하고 있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제1차 대불동맹 이후 고립된 프랑스의 상황을 악용하여 개인의 부(富)를 축적하는 지도층과 부르주아 계급의 행태에 대한 불만이 본질이었다. 또한, 이들 거상(巨商)들은 항구도시와 생산지를 장악하여 파리의 지배권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연방주의와 결탁하여 혁명의 중심지 파리를 고립시키려 했다. 대외적으로는 영국,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등 대불동맹세력, 대내적으로는 부르주아-연방주의자를 중심으로 한 일단의 세력이 반(反)혁명세력으로 심각한 위협이 되었다.

거물급 도매상들은 국가의 번영을 막는 핵심세력이었다. 그들은 매점매석으로 막대한 이익을 거두었다. 무역에 대한 감시가 소홀한 기회를 이용해서 식료품을 외국으로 빼돌렸다. 지주들은 토지를 팔아서 돈이 될 만한 상품을 산 뒤 그것을 가지고 외국으로 망명했다. 프랑스에 남기고 간 것은 쓸모없는 문서조각일 뿐... 이에 더해 연방주의도 문제였다. 프랑스를 갈기갈기 찢고 마지막에는 한 사람 밑으로 권력을 모으려는 연방주의는 교환, 상업, 신뢰, 인간관계를 무너뜨린 범죄다. 프랑스의 각 부분이 자기 이익에 빠져 공공의 관계를 끊고 공화국을 와해시킬 지경이 되었다. _ 주명철, <반동의 시대> , p266

연방주의자들은 지롱드파 지도자들이 많이 도피한 북쪽의 캉, 동쪽의 프랑슈콩테, 서남쪽의 보르도, 남쪽의 리옹, 그리고 지중해 연안의 마르세유와 툴롱의 다섯 곳을 중심지로 국민공회에 저항했다. 프랑스가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에스파냐, 영국을 상대로 전쟁을 하는 상황에서 다섯 곳의 반란군과 어떻게든 연계해서 파리를 고립시킨다면 혁명은 끝나고, 유럽 열강의 이익에 부합하는 왕정으로 돌아갈 판이었다. _ 주명철, <반동의 시대> , p59

로베스피에르, 당통(Georges Jacques Danton, 1759 ~ 1794)을 중심으로 한 급진적인 몽타뉴파들은 반(反)혁명 세력의 본질을 '자유주의 세력'으로 해석한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련의 행위들이 존재하는 한 인민들의 고통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이들은 '자유' 대신 '평등'을 우선 순위에 두고 혁명을 진행시켜나갔다. 그런 면에서 국민공회시기는 '자유 VS 평등'의 대결이라 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이들은 인민들의 인내심이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과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공포정'을 통해 혁명을 빠르게 진행시키려고 무리하게 정적을 숙청하면서 스스로 자멸의 길을 가고 만다. 결국 '평등'의 몰락과 함께 프랑스 대혁명도 사실상 종말을 고하고, '자유주의' 시대가 산업화와 결합되면서 자유지선주의 시대로 나아가게 된다. 그리고, 지금도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로베스피에르도 바를레의 말을 반박했다. 따지고 보면 구국위원회와 국민공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로베스피에르의 생각도 과격파와 비슷했다. 그는 혁명의 적을 악인과 부자들이라고 보았다. 적들은 중상비방과 위선으로 무지한 상퀼로트를 쉽게 속인다. 인민에게 이러한 진실을 깨우쳐주어야 하겠지만, 적들은 돈으로 작가들을 매수해서 거짓과 파렴치한 글로 인민을 오도한다. 자유를 확립하는 일을 방해하는 대외전쟁과 내란도 빨리 끝내야 한다. 로베스피에르는 국내의 위험이 부르주아 계층에서 오며, 그들을 이기려면 인민을 규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_ 주명철, <반동의 시대> , p42

"인민은 공포정을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것은 올바른 의견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공포정이 진정한 목표를 지향하기를 원합니다. 귀족주의자/이기주의자/음모자/반역자를 겨냥해야 합니다. 비록 자연으로부터 큰 힘을 받지 못했지만 미약하나마 조국에 여러모로 헌신하는 인민을 두려워서 떨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당통의 의도는 이처럼 분명했다. 국민공회가 혁명정부를 조직해서 인민을 불안한 상태에서 벗어나게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것. _ 주명철, <반동의 시대> , p113

뒤푸르니가 연단에 올라 제안했다. "우리는 모든 공식 문서의 첫머리에서 자유, 평등을 읽습니다. 이 말 때문에 대개 자유로워야 평등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상 평등해야 자유롭습니다. 따라서 나는 자코뱅 회원들이 모든 프랑스인에게 한목소리로 이렇게 외치자고 제안합니다. "평등 만세! 하나이며 나눌 수 없는 공화국!" 또한 모든 공문서의 첫머리에 '자유, 평등' 대신 '평등, 자유'라고 씁시다. 이제는 평등이 자유의 앞으로 나왔다. 자유를 억압받는 공포정 시기에 '평등 아니면 죽음'이라는 구호가 생길 판이었다. _ 주명철, <반동의 시대> , p212

이와 함께 프랑스 혁명사 10부작의 마지막 <반동의 시대>는 프랑스 혁명정신과 국민공회가 지키고자 했던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자유, 평등, 우애'를 혁명 정신으로 삼았지만, 프랑스 혁명을 통해 살아남은 가치는 '자유'다. 로베스피에르의 죽음으로 '평등'의 반격이 좌절될 때까지, 혁명기간 프랑스를 지배했던 것은 부르주아들의 '자유'였다. 이런 면에서 결국 1789년 프랑스대혁명은 '성공한 부르주아 혁명'이라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반면, '실패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 해석하기에는 다소 무리한 부분이 있다고 여겨지는데 이는 아직 프랑스에 충분한 노동자계층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업화된 자본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혁명의 의의는 이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1848년 혁명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이 기간동안 확대된 자유와 평등의 불균형은, 결국 양 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체제의 붕괴 후에야 균형점으로 수렴하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카리에의 사례는 역사가들이 공포정의 본질에 대해 계속 토론할 거리를 제공한다. 혁명은 폭력 그 자체라는 주장, 아니 특별한 상황 때문에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선다. 이 끊임없는 논쟁에서 잠시 벗어나 다른 식으로 질문을 던지는 것도 생산적이다. 죽이는 방법밖에는 대안이 없었는가? 단지 부역자의 가족이라는 이유가 죽어 마땅한 죄인가? 더 나아가 인간이 원래 악마인가, 아니면 '인간관계' 속에 악마가 숨었다가 위기의 순간에 불쑥 나타나는가? _ 주명철, <반동의 시대> , p90

다른 한편으로 로베르스피에르의 공포정의 결과는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 1469 ~ 1527)는 <군주론 The Prince>를 통해 주장한 미덕(美德)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사랑의 대상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안전하고, 현명한 잔인함이 진정한 자비라는 마키아벨리의 주장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아니면 지속된 공포가 대중들을 공포에 대해 무감각하게 만든 것이었을까...

프랑스 혁명사 10부작은 로베스피에르의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저자의 의도가 담겨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5년의 프랑스 혁명시기를 보면서 촛불항쟁 이후 문재인 정부 5년을 계속 비교하게 된다. 저자는 프랑스 대혁명과 다르게 성공한 혁명이 되길 원했지만, 역사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우리는 그것을 가슴아프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미 꺼져버린 프랑스 혁명과는 다르게 우리가 촛불의 불씨를 간직할 수 있다면, 아직 끝나지 않은 혁명으로 끌고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다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미처 챙기지 못한 무엇인가를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이다. 실패한 혁명의 아쉬움을 다시 생각하며 시리즈 리뷰를 갈무리한다...

국민공회는 중대한 음모를 계속 차단하고 범죄자들을 단죄했지만 아직도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 여태까지 모든 범죄는 덕을 공격하는 행위였다. 모든 범죄를 추적하고 단죄하는 동시에 윤리를 타락시키고 공공의 번영으로 나아가는 모든 통로를 막은 원인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정부를 중심으로 모든 헌법기관이 협력하는 평화적 수단을 강구하고 적용해야 한다. 적들이 고갈시키려고 노력하는 번영의 원천을 풍부하게 개발하고 지켜야 한다 _ 주명철, <반동의 시대>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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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소년 2022-09-08 17: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윤짜장이 생각나네요.

겨울호랑이 2022-09-08 22:56   좋아요 1 | URL
인류의 역사는 반복되고, 역사의 등장인물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합니다...

커피소년 2022-09-09 20:01   좋아요 1 | URL
왜이리 기운이 없으신가요.. ㅎㅎ겨호님 힘내세요.. ㅎㅎ 추석 연휴 잘 보내세요.. ㅎㅎ

겨울호랑이 2022-09-09 20:21   좋아요 1 | URL
아, 저는 괜찮습니다.^^:) 연휴 즈음이라 조금 바쁘긴 했습니다만...논리야놀자님께서도 즐거운 추석 연휴 되세요! 감사합니다
 
공포정으로 가는 길 - 구국위원회와 헌정의 유보 Liberte :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9
주명철 지음 / 여문책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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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 되어서 프랑스가 더욱 불안해진 이유는 벨기에 지방의 전황이 나빠졌다는 소식 때문만은 아니었다. 영국에 이어 에스파냐에도 선전포고를 한 뒤, 덴마크와 스위스를 제외하고 유럽 전체를 상대로 전쟁을 수행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2월 24일 '30만 징집법'을 통과시켜 전방으로 병력을 보내는 가운데 만만치 않은 반발을 부딪쳤다. "하나이며 나눌 수 없는 공화국"을 굳건히 세워야 하는 시기에 국내외에서 분열을 조장하는 적들과 싸워야 했다. _ 주명철, <공포정으로 가는 길> , p113/414

사실상 파리에 밀가루가 부족하지 않으며, 국민공회가 수도의 생필품을 확보하려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음을 누구나 안다. 국민공회는 이 문제에만 800만~900만 리브르를 쏟아부었다. 이 돈을 원래 목적대로 썼다면 생필품이 부족할 리 없다. 그런데도 파리의 모든 구역에서 새벽 3시부터 시민들이 빵집 문으로 몰려드는가? 대부분의 시민이 동요하지 않고 질서를 지키려고 노력하는데도 악의에 찬 사람들이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소요사태를 조장하기 때문에 품귀현상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_ 주명철, <공포정으로 가는 길> , p240/414

주명철 교수의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중 제9권 <공포정으로 가는 길 - 구국위원회와 헌정의 유보 Liberte>는 만만치 않은 과제로 험난한 출발을 하는 국민공회의 모습이 그려진다. 국외적으로는 루이 카페의 처형 뒤 제1차 대프랑스 동맹(First Coalition - Seventh Coalition)이 결성되면서 전쟁 상태로 치닫게 되고, 국내적으로 왕정이 무너지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 식량난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아 민중의 불만이 임계점을 향해 치달으면서 신생 공화국 프랑스는 험난한 출발을 해야 했다.

국민공회는 첫 회의를 시작한 뒤부터 루이 16세를 처형하는 날까지 왕정을 청산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과제인 것처럼 매진했다. 1793년 1월 말부터 국민공회는 국내외의 긴급현안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공화국을 설립하는 일이 시급했다. 정부를 조직하고 행정관리와 군대도 정비하며, 국가안보가 걸린 전쟁을 치르는 동안 생필품과 개인의 안전을 책임져야 했다. _ 주명철, <공포정으로 가는 길> , p25/414

보급 물자, 무기, 병력 등 모든 여건이 부족한 상황에서 훈련과 무장이 잘된 다수의 적들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국민공회는 시민들의 애국심에 호소하면서 자발적인 참전을 독려하는 한편, 투기세력이 상품과 화폐를 독점하면서 생겨난 경제위기에 대해서는 가격통제정책을 통해 대처하는 노력을 기울였으나 역부족이었다. 점차 가중되는 문제의 심각성으로 공화정의 위기는 심각해져갔다.

도르도뉴의 라마르크 Francois Lamarque가 다른 의원 두 명과 함께 아르덴의 중부군을 시찰한 결과를 보고했다. 1만 5,000명이 9만 명 이상의 적을 막아야 하는데, 탄약은 말할 것도 없고 거의 헐벗은 상태로 궤멸 직전이었다. 그래서 파견의원들은 그 사실을 국민공회에 즉시 알렸지만, 국방위원회는 그런 중대한 사실을 경솔하게 공표했다고 파견의원들을 질책했다. 파견의원들은 국민 2.700만 명 가운데 시민 300만 명을 무장상태에 둔 현실에서 위험을 숨겨서는 안 된다고 국방위원회에 회답했고, 그 뒤에 파견의원들이 바라던 대로 10만 명이 적을 무찌르겠다고 전방으로 달려갔다. _ 주명철, <공포정으로 가는 길> , p77/414

모든 생필품의 품귀현상은 아시냐의 가치가 형편없이 떨어졌기 때문에 나타났다. 투기와 매점매석이 횡행했다. 국민공회/파리 코뮌/정치클럽에서 '악당 malveillants'이라 부르기 시작한 국내의 반혁명분자들, 그중에서 투기꾼들이 온갖 나쁜 소식을 이용해서 혁명의 성과를 부인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정화 正貨를 빼돌리고, 혁명의 산물인 지폐의 가치를 하락시켰다. 정부의 신용을 떨어뜨릴수록 이익을 얻는 세력은 언제나 존재한다. 혁명기에도 그들은 증권거래소와 시장을 오가면서 사재기를 한 뒤 막대한 시세차익을 보고 되팔았다. 늘 '개미들'만 피해자가 되게 마련이었다. _ 주명철, <공포정으로 가는 길> , p357/414

이러한 프랑스의 위기는 국외 전제군주정과 국내 왕당파의 범(凡)반혁명세력 때문이었을까? 그렇게만 보기는 어렵다. <공포정으로 가는 길>에서는 이러한 위기상황에서도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위한 지롱드파와 몽타뉴파의 치열한 주도권 다툼이 그려진다. 공화국이 직면했던 어려운 상황은 외부로부터의 위협과 이전 시대의 부채로 인한 것이었지만, 위기에 대한 대처보다는 치열한 주도권 다툼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국민공회 의원들 역시 위기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단결이냐, 분열이냐? 국민공회의 지롱드파와 몽타뉴파는 모두 통일성/일체성/동질성을 뜻하는 '위니테 unite'라는 말을 썼다. 여러 요소가 하나로 뭉치는 것을 전제로 한 말이다. 국민공회 밖에서도 지롱드파와 자코뱅파는 모두 이 말을 쓰면서 상대방이 분열을 부추긴다고 공격했다. 그러므로 통일성이라는 말에 상반된 뜻이 생겼다. 말에는 고유한 의미가 있지만, 맥락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기 때문이다. _ 주명철, <공포정으로 가는 길> , p261/414

자코뱅협회에서는 지도자들이 날마다 지롱드파를 규탄하면서 혁명을 이끌어갈 집단을 급진적으로 정화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혁명이 폐지한 특권계급 출신에게는 민간이건 군인이건 공직을 맡기지 말자는 제안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이론상 절대적 평등에 한걸음 더 다가섰다(p82)... 2월과 3월 초의 위기를 겪으면서 국민공회는 기존의 모든 법원이 너그럽기 때문에 위험에 처한 공화국을 구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특별형사법원'을 빨리 조직해서 혁명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노력했고, 결국 혁명의 산물인 배심원단을 두는 법을 통과시켰다. _ 주명철, <공포정으로 가는 길> , p97/414

결국 1793년 7월 마라(Jean-Paul Marat, 1743~1793)의 사망과 8월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Francois Marie Isidore de Robespierre, 1758~ 1794)가 국민공회 의장직에 오른 후에야 정쟁(政爭)은 마무리되었고, 그동안 쌓인 자신들에 대한 민중들의 분노를 돌리기 위한 수단으로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d'Autriche, 1755 ~ 1793)를 처형하면서 공포정으로 선회하게 된다.

당초 주명철 교수는 우리나라의 2016년 촛불혁명을 염두에 두고 프랑스 혁명사를 집필했음을 밝히고 있다. 혁명을 통해 겪는 여러 어려움과 시행착오를 역사속의 프랑스 대혁명 과정에서 발견하고 이를 교훈삼아 실패한 프랑스 혁명 대신 성공하는 촛불 혁명이 되길 기원하는 저자의 절절한 마음이 10부작 전반에 묻어나온다.

저자는 9권의 머리말에서 성공하는 촛불혁명의 결과가 이어지는 마음으로 우리가 걸어야 할 새로운 길을 말하지만, 이 책을 읽는 2022년 시점에서 독자들은 이어지는 혁명의 어려움을 지켜보게 된다. 이전 정부를 부정하고, 외교 정책은 방향을 못잡고, 가속화되는 경제위기 속에서도 시행하는 정책은 반대파를 제거하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의 심정은 18세기 말 프랑스 민중들의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 혁명사 9권 <공포정으로 가는 길>의 마지막은 오늘날의 공안정국(公安政局)과 같은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를 느낀 급진 상퀼로트 계층에 의한 공포정 요구로 마무리된다. 이로부터 몽타뉴파는 반대편인 지롱드파를 제거와 함께 마리 앙트와네트까지 처형하면서 혁명은 '혁명체제'를 지키기 위해 보수적인 '반혁명'정책을 펼쳐나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혁명세력이 개혁을 하지 않고 스스로 보수화되었을 때 어떤 결과가 빚어지는가를 깊이 체감하는 현실에서 마지막 10권 <반동의 시대>로 향해가면서 기시감(旣視感)이 드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혁명기에 서민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말이 삶의 질을 높여주리라고 기대하면서 전보다 더 많은 희생을 강요하는 현실을 견뎠다. 그러나 정치적 평등을 실현함에 따라 상대적인 박탈감을 더욱 절실히 느꼈다. 급기야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리라 믿었던 국미공회와 시 정부에 불만을 표출했다. 그들은 자기 힘으로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들고일어났다. 그것이 처음이 아니었듯이 마지막도 아니었다. 그들도 경험으로 배우고 행동방침을 세울 줄 알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은 더욱 효과적인 방식으로 권력이건 재물이건 가진 자들을 압박하고 자기 의지를 관철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_ 주명철, <공포정으로 가는 길> , p69/414

수감자 수가 늘어나면서 국민공회가 하는 일이 신속하게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시민들이 한마음으로 도왔다. 그렇지 않으면 반혁명혐의자가 될 뿐이었으니 달리 외면할 길도 없었다. 예전에는 공무원을 자주 바꾸면 혼란이 발생하고 행정이 마비될 지경이었지만, 이제는 사람만 바뀔 뿐 모든 일이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다. 공포의 힘이다. 혁명/반혁명 모두 자신의 자유와 목숨을 걸고 싸웠다. _ 주명철, <공포정으로 가는 길> , p40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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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세운 공화국 - 9월 학살에서 왕의 처형까지 Liberte :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8
주명철 지음 / 여문책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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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는 재판을 받았다. 왕권은 죽었다. 공화국이 태어났다 자유는 이 세계에 은혜를 베푸는 요소가 되었다. 인류의 원대한 희망은 완성의 길로 나아갔다. 모든 나라가 프랑스를 관찰하려고 본받으려고 경쟁했다. 모든 것이 이 세계를 해방시키려고 바삐 움직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인류의 친구에게는 고통이요, 절망이다. 도덕은 오랫동안 후퇴했고, 인민의 해방은 반세기나 늦어지고, 인간의 행복은 가엾은 왕을 재판한 사실 때문에 유럽에 몰아닥친 끔찍한 폭풍우를 모두 몰아낼 때까지 뒷전으로 물러났기 때문이다. _ 주명철, <피로 세운 공화국> , p329/342

주명철 교수의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중 제8권 <피로 세운 공화국 - 9월 학살에서 왕의 처형까지 Liberte>는 공화정의 수립 후 루이 16세의 처형까지를 다룬다. 전제군주정을 무너뜨리고 입헌군주정을 정착시키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루이 16세는 도주 사건 후 불과 1여년 만에 기요틴의 제물로 사라지게 되었다. 루이 16세에 대한 여론이 급격하게 나빠진 것은 물론 도주사건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죄가 있음'을 인정한 항목 - 프랑스 국민을 반도로 규정한 일, 외국 군대를 불러들인 일 등 - 등에 대한 죄로 인해 그는 왕에서 일개 시민의 자리로 내려와야 했다. 이제 시민의 자리에 서게 된 그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사형을 시킬 수 있었다면, 어떤 근거에 기대서일까.

어느 나라나 조국을 배반하면 중형을 내린다. 루이가 가족을 데리고 국경 쪽으로 도망치다 잡혔다는 사실만 가지고도 당시로서는 죽을죄였다. 그때는 제헌의회가 어떻게든 도주가 아니라 납치라고 사건을 무마해주었고, 헌법을 지키겠다고 멩세한 뒤 자격을 되찾을 수 있었지만, 1년 뒤에는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공화국이 섰으니 이제 왕좌를 되찾을 희망은 프랑스가 대외전쟁에서 패할 때까지 어떻게든 살아남는 데 있었다. _ 주명철, <피로 세운 공화국> , p161/342

<피로 세운 공화국>에서는 루이의 사형을 둘러싼 치열한 논의가 일어난다. 자신이 지은 죄로 폐위당한 왕을 재판할 권리가 없다는 의견과 프랑스 국민으로서 국민들에게 피를 강요한 잔혹한 죄는 피로써 갚아야 한다는 반대 의견. 지롱드파와 몽타뉴파의 치열한 대립은 '파리 코뮌'의 주도권 다툼이었다. 그렇지만, 이것은 단순한 권력욕이 아니라 민중의 분노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이기도 했다.

오늘날 국민만큼 권한을 가진 존재는 없다. 그러나 국민이 모든 권한을 가질 수 있다 해도, 정당하지 않은 권한만은 가질 수 없다. 루이에게 적용할 법이 없음에도 국민이 루이를 처벌하기 바란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루소의 말로써 대답한다. " 우리가 따를 만한 법이 없을 때, 또 판결을 내릴 재판관이 없을 때, 일반의지를 따를 수 없다. 일반의지는 보편적인 의지이기 때문에 어느 한 사람, 또는 어떤 사실에 대해 판결을 할 수 없다. _ 주명철, <피로 세운 공화국> , p221/342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파리 코뮌은 8월 11일에는 과거의 상급기관인 파리 도 지도부의 권한을 정지시켰다. 구의 위원회, 치안판사, 치안관들과 법원 서기들의 권한도 정지시키고, 구 의회에 그 권한을 맡겼다. 이제부터 모든 구는 상시활동 체제로 들어갔다(p55)... 이처럼 '혁명코뮌'은 8월 10일 이후의 실세임을 국회가 인정했다. 국회는 파리 코뮌의 활동비로 10만 리브르를 책정해주었다. 파리 코뮌은 위원들이 3일에 하루씩 숙직을 하면서 중요 현안을 신속히 처리할 수 있는 체제를 갖췄다. 그들은 파리에 남아 있는 봉건적 잔재를 모두 없애기로 결정했다. _ 주명철, <피로 세운 공화국> , p56/342

파리 코뮌이 처한 어려움은 민중들의 실망감에 근거한다. 파리 코뮌이 들어선 직후 실시된 인민재판과 '9월 학살'은 민중들의 삶을 조금도 개선시키지 못했고, '빵'을 요구하며 혁명에 참여했던 이들의 기대는 실망감으로, 실망감은 분노로 바뀌었고, 이를 달래기 위한 '희생양'이 필요했던 참이었다. 희생양으로서 앙시앵 레짐의 상징, 폐위된 왕 루이 카페(루이 16세)는 매우 상징적이었고, 적절했다. 국민을 향해 발포를 명령하고, 조국을 등진 최고책임자는 마땅히 사형을 받아야 할 것이었다. 그렇지만, 내용적으로는 '반혁명의 수괴'지만, 그를 사형시키는 과정에서 형식적 하자는 없었는가?

종합해서 보면, 9월 2일부터 6일까지 '인민재판'을 실시한 감옥에는 모두 2,500여 명이 갇혀 있었다. 그들 가운데 모두 1,090~1.395명이 학살당했다. 파리에서는 학살이 끝났지만, 인근의 베르사유/오를레앙/모/랭스에서도 학살사건이 일어나 모두 150명 정도가 희생되었다. 그 후 9월의 학살자를 뜻하는 명사 '세탕브리죄르 septembriseur', 동사형 '세탕브리제 septembriser'라는 새로운 낱말이 등장했다. _ 주명철, <피로 세운 공화국> , p112/342

의원들이 위기의식을 부추기면서 민중을 속이려 해도, 민중은 바보가 아니다. 농산물을 풍부하게 수확했음에도, 아직까지 외국에서 밀을 수입해야 한다고 거짓말을 할 것인가? 언제까지 외국에서 돈을 빌려와야 한다고 말할 것인가? 민중을 우습게 보지 말라! 생필품이 부족한 것은 투기꾼 때문이다. 그들은 노르망디에 가까운 영국의 저지 Jersey 섬이나 다른 곳에 창고를 두고 공급을 조절한다. 국내의 창고에도 곡식을 쌓아놓고 풀지 않는 재산가, 대농장주들에게 밀을 시장에 내놓으라고 명령해야 한다. 감시를 강화하고 최고 가격제를 실기하고. 물론 그것은 자유주의에 역행하는 정책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자유와 평등을 고양시키지 못한 사람들에게 무슨 할 말이 남아 있는가? _ 주명철, <피로 세운 공화국> , p173/342

상퀼로트는 국민공회가 모인 지 두 달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을 했느냐고 따졌다. 물론 그동안 왕의 자격을 정지시켰고, 군주정을 공화정으로 바꾸면서 민중의 염원에 보답했다. 그래서 민중은 평화와 질서를 기대했고, 올바른 선택을 했음을 확신하고 감사했지만, 행복한 시간을 더는 누리지 못했다. 모든 프랑스인이 루이를 벌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심판하지 않았다. _ 주명철, <피로 세운 공화국> , p173/342

불과 다섯 표의 차이로 갈린 생(生)과 사(死)의 결정. 적은 표 차이도 문제지만, 국민공회 의원들의 대표성에 대해서도 의문들이 제기된다. 프랑스의 일부인 파리 시민들의 의견이, 그 중에서도 상당수의 결원이 발생한 상황에서 내려진 결정이 프랑스 공화국의 향후 방향을 결정짓는다면, 이에 대한 정당성에 물음이 내려질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절차적 하자를 보완하기에 국민공회 의원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넉넉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국민공회 의원을 뽑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자유와 평등에 충실하겠다고 맹세한 사람만 투표할 수 있었으며, 파리는 그 어느 곳보다 이 기준을 엄격하게 지켰다. 왕당파를 억압하는 도 departement가 많았고, 이렇게 해서 투표율은 아주 낮았다. 전국에서 유권자 700만 명 가운데 60만 명만 투표에 참여했고, 파리에서는 자코뱅파 5,000여 명이 파리 주민 60만 명의 의견을 지배했다. 아직 민주주의를 정착시키지 못한 시대였음을 감안하더라도, 이렇게 뽑힌 의원 가운데 상당수가 아직 파리에 도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회의가 열렸다. _ 주명철, <피로 세운 공화국> , p129/342

비록 투표 결과가 내 생각과 다르게 나왔습니다만, 나는 그 결과를 존중합니다. 그리고 어떤 벌을 내려야할 지 결정하는 투표를 할 때, 나는 그가 사형을 받아 마땅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집행유예를 해야 한다는 조건을 분명히 설명했습니다. 마침내 집행유예 문제를 투표하기에 앞서, 내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만일 내 이익만 생각한다면, 나는 반대에 투표하겠습니다. 그러나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우선이기 때문에, 나는 살해당할지 모르지만 집행유예를 찬성하기로 했습니다. 내가 집행유예에 찬성하는 이유는 이처럼 중대한 재판에서 형식적인 결점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재판은 단지 다섯 표 차이로 갈렸습니다. 이처럼 큰 차이도 없이 난 결정을 24시간 안에 집행한다니, 말도 안 됩니다. _ 주명철, <피로 세운 공화국> , p285/342

<피로 세운 공화국>에서는 국민공회의 왕정(王政) 지우기와 경제적 어려움에 따른 민심 이반과 외부와의 전쟁으로 어려움에 빠진 공화정의 모습을 그려낸다. 그 결과 국민공회는 루이 카페를 사형시킴으로써 9월 학살은 정점에 이르게 되었고, 프랑스 혁명이 자신들의 나라에 미칠 영향을 두려워한 외국과의 대립은 더 치열하게 전개되기 시작한다...

1791년 10월 1일 입법의회가 활동하기 시작한 뒤, 의회를 지배하는 세력이 바뀌었으며, 외국 군대의 침략과 파리 코뮌의 정치적 간섭이 심해지고, 여전히 경제생활에서 중요한 빵과 생활필수품의 값이 치솟는 현실은 왕에게 느끼던 친밀감이나 존경심을 실망, 좌절, 배신감, 증오로 바꾸어놓았다. 이처럼 앞날을 제대로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한 가지만은 더욱 분명해졌다. 왕은 날이 갈수록 점점 불리한 상황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_ 주명철, <피로 세운 공화국> , p227/342

그는 만일 루이를 처형하면, 곧바로 영국, 네덜란드/에스파냐, 그리고 유럽의 모든 폭군과 전쟁을 벌일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의 폭군들은 루이의 죽음을 개인의 죽음으로 보기 때문에 거기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자기 나라에 자유의 바람이 불까봐 두려워서 프랑스 공화국의 자유를 짓밟으려 할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_ 주명철, <피로 세운 공화국> , p297/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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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8-26 12: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
벌써 8권
며칠 못본사이에 이렇게나 진도를 나가셨군요.

겨울호랑이 2022-08-26 12:21   좋아요 3 | URL
네 <프랑스 혁명사> 10부작이 우리의 현실과 생각하도록 만든 책이라 외국 역사임에도 참 가깝게 느끼고 읽게 되네요... 그레이스님 좋은 하루 되세요! ^^:)

북다이제스터 2022-08-26 13:3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본 책에선 혹시 ‘프랑스 혁명은 가난한 시민들의 혁명이 아닌 부자들인 부르주아 혁명이었다’란 취지의 설명이 있는지요?

겨울호랑이 2022-08-26 14:05   좋아요 3 | URL
사실, 직접적으로 저자가 직접 언급했는가는 잘 기억이... ㅜㅜ 다만, 북다이제스터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 <프랑스 혁명사>는 수치로 보여준다는 말씀을 드릴 수 있겠습니다. 1권에서 삼부회의 구성에서 대표가 되는 이들이 제3신분 중에서도 일부 계층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이들의 거주지가 파리에 국한되었다는 사실 등이 구체적 수치로 제시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구성과 특징이 제헌의회, 국민공회 등에서도 이어졌다는 점에서 말씀하신 내용이 본문 전체에 걸쳐 담겨있다고 여겨집니다. 이와 함께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특정계층의 남성에 대해 주어졌다는 점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기에 저자의 논조를 생각해본다면, 간단하게나마 (본문 어딘가에서는, 그렇지만 제가 기억못하는 지점...) 해당내용을 언급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

노란가방 2022-08-27 14: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책이 있었군요.. 역시 책 잘 읽으시는 주변분들이 있어야 시야가 넓어지나 봅니다. 꽤 흥미로운 책일 듯하니 챙겨놔야겠습니다. 우선 지금 읽고 있는 마스터즈 오브 로마 시리즈를 끝내고....ㅠㅠ

겨울호랑이 2022-08-27 14:35   좋아요 0 | URL
앙시앵 레짐의 대가인 저자가 일반인들을 위해 프랑스 혁명사를 알기 쉽게 잘 정리한 시리즈라 생각합니다. 노란가방님 좋은 독서 시간 되세요! 감사합니다. ^^:)
 

프랑스 혁명이라는 연극을 지켜보던 관객이 교육을 받고, 주역이나 도우미가 되려는 꿈을 키우게 되었다. 베르사유에서 전국신분회가 국민의회로 바뀌는 과정부터 관객이 지켜보았다. 이제 정치는 관객 앞에서 주인공들이 자기 역할을 다하고 관객을 감동시키는 연극이 되었다. 루이의 편에서 볼 때 그는 주역이었지만, 점점 비중이 커지는 조여들에게 밀려나다가 마지막으로 비장하게 죽는 역할을 수행했고, 그렇게해서 천년 이상 발달한 왕정의 연극은 막을 내렸다. "왕은 죽었다. 왕 만세!"의 시대가 끝났다.

프랑스에서 왕조의 연극을 끝낸 혁명은 새로운 세상을 여는 중요한 연극이었다. 그것은 왕이 주인공이던연극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들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서로 주인공 역할을 맡으려고 노력하는 연극이었다. 그 무대는 파리나 주요 도시의 거리, 정치 클럽이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곳은 국회의사당이었다. 처음에는 베르사유 궁에서 시작해 파리의 튈르리 궁으로 왕이 옮겨갈 때 의원들도 따라가고, 국회가 따라가자 정치 클럽도 함께 따라갔다. 파리의 정치 클럽도 그 나름의 무대였으며, 거기서 주역으로 떠오른 사람이 국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그만큼 파리가 모든 연극의 중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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