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케 & 카 :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지식인마을 7
조지형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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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랑케 & 카 :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는 지식인 마을 시리즈 중 근대역사학의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책에서는 실증사학의 선구자로 알려진 '랑케'와 우리에게 <역사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E.H 카'의 역사관을 개략적으로 제시하며, 추가적으로 최근 '포스트모던 역사학'에 대한 내용도 소개한다.


랑케(Leopold von Ranke, 1795~1886)는 실증사학의 주창자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실증사관은 과거의 사실이 진실로 어떠했는가를 밝히는 것이 역사학이라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책에서는 실증 사관의 이해를 위해 고대 역사학자인 헤로도토스, 타키투스의 저사인 <역사>,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통해 고대와 근대 역사관의 차이를 살펴보고, 랑케의 저서 <라틴 및 게르만 제(諸) 민족의 역사 1494 ~ 1514> 서문을 중심으로 객관성을 강조한 실증사학을 비교조명하고 있다. 


객관적인 사실을 강조한 랑케의 사상은 불완전한 사료, 남겨진 사료의 객관성, 역사가의 해석 등의 제약으로 인해 역사가에 의해 재해석될 수 밖에 없음을 강조하는 '반(反)실증사학'의 비판을 받게 된다. 이러한 '실증 사학 - 반실증 사학'의 조화를 강조한 것이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작품이다.


카(E.H. Carr, 1892~1982)는 이 저서를 통해 역사는 '과거 사실'과 이러한 사실에 의미를 부여하는 '역사가' 의 역할에 대해 주목한다. '단순한 과거'가 아닌 역사가에게 '의미가 부여된 과거 사건'이 바로 '역사'가 된다는 사실을 통해 '역사는 과거(사실)와 현재(역사학자)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주장을 한다.


 <랑케 & 카 :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에서는 E.H 카 이후의 최근 연구방향흐름인 포스트모던(Post-modern) 역사학에 대해서도 소개를 한다. 포스트모던 역사학에서는 최근 학문의 흐름인 '융합(融合)'의 영향으로 기호학, 언어학 등의 인접 학문과 연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 책에서는 그 중에서도 '언어학-역사학'의 관계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언어학자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1857 ~ 1913)의 시니피앙(le signifiant 지시어)와 시니피에(le signifie 지시 대상)를 통한 언어학과 역사학의 접목에 대해 설명한다.


<랑케 & 카 :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는 역사(歷史)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사학(史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책 전반을 통해서 '역사'라는 학문이 단순한 과거 사실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재해석되는 과정을 거치는 현재의 학문임을 강조하기 때문에, 서양 근대이후 역사학 입문서로서 좋은 책이라 생각이 든다. 

 

주로 서양역사학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우리와 관련이 없는 이야기로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만, 랑케의 실증 사관은 우리나라 역사와도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일본 개화기에 랑케의 제자인 루트비히 리스(Ludwig Riess)의 지도하에 근대 역사학의 방법론이 도입되었고, (출처 : <우리 안의 식민 사관> 이덕일) 이러한 방법론에 기초하여 조선의 식민사관이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랑케의 실증 사관이라는 방법론을 이해하는 것은 '식민사관 극복'이라는 과제를 가지고 있는 국내 역사학 연구에 있어 기본이 되는 일이라 생각된다. 


누군가의 말처럼 의도적으로 자랑스러운 역사를 후대에 남겨주기 위해 사실을 왜곡해서도 안되겠지만, 올바른 상식과 양심의 눈을 가지고 우리의 역사를 바라보기 위해서도 개인의 역사관의 수립은 필요한 일이다. 이 책은 개인의 역사관 수립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형성하는데 필요한 단편적인 지식을 제공해준다고 생각된다.


PS. 책의 안내를 위해 소개된 영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羅生門)>(1950)은 역사에 관심이 없는 이들도 한 번은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된다.(영화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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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16-10-17 1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사 분야 관심도서로 놓겠습니다. 추천 감사합니다 ^^

겨울호랑이 2016-10-17 11:4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사마천님 관심깊게 읽어 주셔서 저야말로 깊이 감사드립니다. 좋은 오후 되세요^^:

yureka01 2016-10-17 12: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번 역사교과서는 집필자도,삼사자도 비공개 ㄷㄷㄷㄷ
저자가 누군지도 모르는 역사교과서랍니다...

겨울호랑이 2016-10-17 14:32   좋아요 2 | URL
이제 곧 새로운 국정 교과서 발표한다지요? 길어야 2년 쓸 교과서라서 크게 신경을 안씁니다만, 그 교과서로 공부해서 대입을 준비하는 학생들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마치 애들을 볼모로 1970년대의 `국민교육헌장`을 부활시키는 것 같습니다..
 
장미의 이름 세트 - 전2권 열린책들 세계문학
움베르토 에코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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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은 움베르토 에코가 쓴 중세 수도원을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이다.


1980년에 출간된 작품으로 이미 1986년 숀 코너리가 주연한 영화로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작품을 이번에 처음 읽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장미의 이름>을 통해서 추리소설의 흥미진진한 전개보다 중세 수도원의 생생한 분위기 재현이 더 마음 깊이 다가왔다. '중세=암흑기'라는 공식속에서 정체된 시기를 연상하기 쉬운 우리에게 작품의 배경이 된 시대의 대립 구조는 사실은 중세가 흥미진진한 역동적인 시기임을 알려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1. 교리의 대립 :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아리스토텔레스)


작품의 배경이 되는 1327년은 중세 가톨릭 교회에 있어 많은 변화가 있었던 시기였다. <신학대전>을 저술한 토마스 아퀴나스가 1286년 이단으로 몰려 부관참시 당했다가,  극적으로  1323년 가톨릭 성인(聖人)으로 인정받은 시기와 맞물린다. 


이처럼 14세기 초 인정받게 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神學)은 아우구스티누스 이래의 기독교 사상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종합한 '스콜라 철학'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으며, (출처 : 위키피디아) 이후 교리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된다. 작품 속 수도원장은 바로 토마스 아퀴나스가 죽었을 때 그의 시신을 들쳐 메고 탑루 계단을 내려온 것으로 명성을 이룬 인물로 소개된다.(p754)


이러한 신학적 변화 이외에도 새로운 철학(哲學)적 변화도 이 시기에 이루어진다. 


'중세 자연학 분야에서의 독창적인 발전은 대륙이 아니라 영국의 대학들에서 중점적으로 발전했다. 특히 옥스퍼드 대학의 초대총장인 로베르투스 그로쎄테스테(Robertus Groesseteste, 1175 ~1253)는 과학적 방법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개별 사건들을 관찰함으로써 일반법칙을 발견한 후, 이것을 실험 작업을 통해 검증하거나 반증하는 방법론을 발전시켰다. 그의 제자 로저 베이컨(Roger Bacon, 1210 ~ 1292)은 당시에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귄위에 대한 맹종을 비판하고 자연의 직접적인 관찰과 실험에 바탕을 둔 학문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토마스 아퀴나스>, 박승찬, 새길, 2012, p20)


작품의 주인공인 윌리엄 수도사는 바로 로저 베이컨의 제자로 등장한다. 직접적인 관찰과 실험을 추구한 스승의 뜻에 따라 윌리엄 수도사는 날카롭게 현실을 관찰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와함께 당대에 미친 아리스토텔레스의 간접적 영향은 수도자 윌리엄과 화자(話者)인 아드소 간 이루어지는 추리과정에서 드러난다. 주로 '삼단논법'을 통해 논리적으로 사건을 구성하는 과정속에서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만날 수 있다. 그렇지만, 새로운 학문적 변화에 모든 이들이 동조했던 것은 아니었다. 작품 속에서도 이러한 팽팽한 대립의 관계가 잘 나타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서책은 하나같이 기독교가 수세기에 걸쳐 축적했던 지식의 일부를 먹어 들어갔소. 우리의 초대 교부들은 일찍이, 말씀의 권능을 깨치는 데 필요한 가르침을 모자람없이 베푸셨소. 한데 보에티우스라는 자가 이 철학자의 서책을 극찬함으로써 하느님 말씀의 신성은 인간의 희문(戱文)으로 변질되면서 삼단 논법의 희롱을 받아왔소.... 우리 수도원 원장이 장사까지 지내 준 한 도미니크 회 수도사(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꾐에 빠져 하느님을 자연의 이치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불렀소.(p841)'


<장미의 이름>에서는 플라톤 사상(특히, 플로티누스)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아우구스티누스 교리와 십자군 원정 이후 유입된 아리스토텔레스 영향으로 성립된 토마스 아퀴나스 교리의 충돌을 작품 전반을 통해 느낄 수 있다.


2. 수도회간 대립 :  베네딕토 수도회와 프란체스코회


작품의 배경이 되는 수도원은 베네딕트 수도회 소속 수도원이며, 수도원 방문객이자 사건을 풀어가는 윌리엄 수도사는 프란체스코회 소속이다. 초기 기독교 시기(6세기)로부터 형성된 베네딕토 수도회에 비해 프란체스코회는 13세기에 성립된 신생 교단이었다. 베네딕토 수도회는 당대 주류 수도원으로 중세의 지식과 부를 독점한 기득권이었다. 이에 반해, '청빈'을 추구하는 프란체스코회 수도회는 기존 교회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 교단과 대립되고 있었다. 여기에 '교황권'과 '황제권'의 대립과 수도회간 대립이 엮이면서, 14세기 초는 급변하는 흐름 속에 있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윌리엄 수도사가 이 수도원을 방문하게 된다.

 (최근 교황이 된 프란체스코 교황은 프란체스코회 소속 사제이며, 바티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개혁은 이러한 프란체스코 수도회 정신과 연관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안 부분의 내용 중 프란체스코 교황이 프란체스코회소속이라는 부분은 오류이며, 예수회 출신 교황으로 정정합니다. 오류를 알려주신 clavis님께 감사드립니다.^^; 예수회에 관련해서는 다음에 기독교의 신/구교 분리와 관련해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니, 일단 pass 합니다.


<장미의 이름>은 시대적으로 이러한 갈등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이야기 전개는 수도사들의 연쇄살인을 통해 진행된다. 그래서, 작품 전반에 깔린 <요한 묵시록>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요한 묵시록>은 기독교 신약성경에 포함된 유일한 계시록이자 마지막 문헌이다. 계시록이나 묵시록으로 줄여 부르기도 한다. 요한 묵시록은 기독교에서 성경 가운데 해석이 어려운 책이다. 같은 본문의 해석이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으로 가능하기도 하다. (출처 : 위키피디아)


'그 물건, 다리가 두 개 달려 있어서, 기수(騎手)가 말 잔등에 올라타듯이, 새가 홰에 앉듯이 그렇게 사람의 코 위에 올라앉을 수 있게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두 갈래로 나뉜 다리가 만나는 곳, 그러니까 눈과 맞닿는 곳에는 둥근 쇠테가 있고, 쇠테 안에는 술잔 바닥 두께의 편도꼴 유리가 박혀 있었다.  윌리엄 수도사는 글을 읽을 때마다 이 물건을 눈 앞에다 대기를 좋아했는데, 까닭인 즉, 햇빛이 기가 꺾일 때는 특히 이 물건을 이용해야 자연이 그 연세에 허락한 이상으로 밝게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p146)




본문 중에서 제자인 아드소가 스승인 윌리엄 수도자가 쓴 안경을 묘사한 부분이다. '안경'이 어떻게 생긴 물건이며, 용도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우리는 안경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고, 작품의 묘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안경'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다면 위의 글을 통해 '안경'의 정확한 모습을 연상하기가 쉽지 않을것 같다.


<요한 묵시록>은 저자가 본 것을 기술한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 묵시록>은 논란이 많은 문헌이며, 아마도 신약 성경 문헌 중 가장 신비적인 성격이 강한 문헌일 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이비 예언가들이 이를 바탕으로 해서 대중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는지.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 곧 자기가 본 모든 것을 증언하였습니다.(묵시1:2)'


작품 속에서 '묵시록의 예언의 실현'과 '종말 사상' 에서 오는 공포에 무기력하게 휩쓸려가는 수도사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이들을 어리석다고 말할 수도 없었던 것은 어지러운 현실과 쏟아지는 정보속에서 사실을 알지 못하고 휩쓸려가는 내 자신의 모습 역시 보였기 때문이다.


<장미의 이름>은 말 그대로 잘 쓴 추리 소설이다. 그렇지만, 내게는 이 책이 중세 수도원과 당대의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사실의 재현과 과거를 통한 현실의 재발견이라는 면에서 더 뜻깊게 다가왔다. 역사적 사실의 뼈대에 살을 입힌 움베르토 에코의 뛰어난 사실 재구성으로 추상적이었던 중세가 안개속에서 피어나는 장미처럼 느껴졌다. 중세(中世)가 궁금하다면 읽을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이 작품에서는 수도원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진 중세의 재현이 움베르토 에코의 대작(大作) <중세> 컬렉션으로 더 확장되어 나타났으리라는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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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vis 2016-09-21 13: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예수회원이십니다.프란치스코회 소속이 아니고요^^우리나라에서는 예수회에서 서강대학교를 지어서 알려져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6-09-21 14:04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clavis님 오류를 지적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마립간 2016-09-21 15: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방문객이 10분인데, 추천 10개네요.^^

겨울호랑이 2016-09-21 17:0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마립간님 연휴 잘 보내셨지요?^^: 방문하신 분의 수도 셀 수 있는 방법이 있나봐요..아마도 제가 오랫만에 들어와서 `좋아요`해 주신것 같아요^^: 마립간님 좋은 오후 보내세요

cyrus 2016-09-21 17:40   좋아요 1 | URL
To. 겨울호랑이님 / 컴퓨터로 호랑이님의 알라딘 서재에 들어가면 화면 오른쪽 상단에 있는 방문자 수가 보입니다.

cyrus 2016-09-21 17:41   좋아요 1 | URL
To. 마립간님 / 알라딘 서재와 북플 시스템 전체를 잘 모르지만, 제 생각에는 ‘좋아요 수’가 북플로 접속한 회원들의 흔적인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북플에 접속하는 일이 편하죠.

cyrus 2016-09-21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코의 <미의 역사>를 읽은 뒤에 <장미의 이름>을 다시 읽어보니까 아퀴나스의 미학 이론이 보였어요. 처음에 소설을 읽었을 땐 어려웠던 내용이었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6-09-21 17:41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도 「미의 역사」와 「중세2」를 읽어본 후 다시 읽어야겠네요^^: 좋은 독서방법 추천에 감사드립니다

북다이제스터 2016-09-21 19: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영화는 엄청 잼 있게 보았는데,
책은 작년 읽다 읽다 상권에서 포기한 책입니다. ㅠ
감축드리고 부럽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6-09-21 19:5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북다이제스터님 저도 일단은 읽긴했지만 뭔가 줄줄 흘리고 지나간 느낌이 드네요.ㅜㅜ 중세에 대한 공부 후 다시 읽어볼까합니다. 감사합니다^^:
 
수량화혁명 - 유럽의 패권을 가져온 세계관의 탄생
앨프리드 W. 크로스비 지음, 김병화 옮김 / 심산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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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량화 혁명>은 유럽 제국주의의 성공 요인을 분석한 책이다.


이 책에서는 유럽 제국주의가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을 '수량화'와 '시각화'의 관점을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책의 내용을 개략적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수학은 중요한 학문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렇지만, 현실보다는 이상세계의 추구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현실을 보다 정밀하게 그려내는 측량술의 발전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음악은 기억에 의존해서 전승되고 있었고, 회화는 신학(神學)적 현실의 반영일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16세기에 일어난 인쇄, 계산, 원근법의 변화는 서양인들에게 '시간'과 '공간'에 일대 혁명(革命)을 가져다 주게 되었다. 

시간적인 변화는 달력체계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어 최종적으로 17세기에 도메니쿠스 페타비우스(Domenicus Petavivus)에 의해 AD/BC 체계를 최종적으로 손질하고 이를 확립하게 된다. 공간적인 변화는 측량술의 발전을 통해 보다 정밀한 지도 제작이 가능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원거리 항해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또한, 학문적으로도 다양한 변화가 일어난다. 

수학의 발전은 아라비아 숫자 도입과 각종 부호의 사용으로 인해 촉발된다. 이러한 배경을 통해 계산이 편리해졌고, 편리한 계산은 화폐경제를 뒷받침하여 복식부기를 탄생시켰으며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게 된다.) 시각화는 음악에 있어서 악보를 만들어낸데 공헌하게 되고, 변화된 시간의 관념을 통해 비정량적인 음악(그레고리안 성가)에서 다성음악으로의 발전된다. 회화 부문에 있어서는 중세의 추상적인 기법 대신 원근법을 통한 현실의 반영한 기법이 새롭게 등장하게 되었다. 이처럼 수량화, 시각화를 통해 일어난 일련의 혁명이 유럽 제국주의는 다른 제국주의에 비해 유례없는 성공을 가져다 주게 된다.


저자는 유럽제국주의를 편향된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 서구 문명에 대한 저자의 편향된 시각은 '비유럽권 문명'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대항해시대 초기에도 유럽의 문명은 타문명에 비해 거의 앞서지 못했으며, 이러한 경향은 제국주의 침탈이 한창이던 19세기 중엽까지도 이어지게 된다.  이는 병인양요(1866) 당시 프랑스군이 강화도에 있는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한 이유를 분석한 기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도널드 라크와 에드윈 클레이가 1965년에 쓴 <유럽을 만든 아시아>에 따르면, 16~17세기에는 수백 권의 아시아 서적이 유럽인 선교사·상인·선장·선원·의사·군인·여행가 등에 의해 유럽의 주요 언어로 번역되었다. 또 시어도어 포스가 1986년에 쓴 논문에 따르면, 18세기까지만 해도 서양인들은 중국의 기술서·실용서 등을 번역하는 데 아주 적극적이었다.


1866년에 프랑스 병사들이 건물은 불태우면서도 책만큼은 소중히 챙겨간 이유는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동아시아 서적을 열심히 번역해내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성장한 프랑스 병사들의 눈에는 외규장각 도서들이 아주 값나가는 물건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 서양 중심주의에 빠진 지식인들은 서유럽이 아주 오래 전부터 세계 일류였던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서유럽은 19세기 중반에야 비로소 동아시아를 능가하고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출처 : 오마이뉴스 '프랑스군이 외규장각 도서 탐낸 진짜 이유' 中]


실제로, 유럽은 인도로부터 아라비아 숫자 등 수학을, 아랍으로부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비롯한 자연철학을, 중국으로 부터는 종이, 화약, 나침반 등을 받아들이는 주변 문명이었다. 유럽문명은 다른 문명에 비해 군사력 이외 부문에 있어서는 후진(後進)문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16세기 이후 다른 문명을 선도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스페인인들이 16세기에 유카탄 반도와 중앙아메리카 연안에 도착했을 즈음 마야인들은 이미 지적인 침체에 빠져 들었고 더 이상 수학이나 달력을 발전시키고 있지 않았다. 스페인인과 포르투갈인이 동아시아에 도착했을 무렵 중국인들은 이미 송 왕조의 거대한 시계에 대해 부관심한 상태였고, 결함투성이던 그들의 달력 체계는 예수회 신부들의 도움으로 고쳐질 때까지 내내 그런 상태였다.'(p34)


'우리가 대개 아라비아 숫자라고 부르는 것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랍인들이 그것을 발명하지 않았다는 사실 이외에 거의 아무것도 밝혀진 바가 없다. 아랍인들은 이 숫자를 인도인들에게서 배웠으니, 인도인들이 발명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도인들은 그것을 중국인에게서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p146)


이러한 저자의 주장을 접하다보면,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정신>이 생각난다.  막스 베버가 자본주의의 성공요인을 유럽 문명의 특징에서 찾으려 했던 것처럼, 저자 앨프리드 W. 크로스비는 유럽 제국주의의 성공요인을 그들의 문명에서 찾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 


'키루스 대왕, 알렉산드로스 대왕, 칭기즈 칸, 후아이나 카팍은 위대한 정복자였지만 이들이 차지한 땅은 한 대륙 이상을 넘지 못했고, 기껏해야 두 번째 대륙의 가장자기를 건드리다 만 정도이다. 이들은 빅토리아 여왕에 비하면 골몰대장 수준이었던 셈이다. 여왕의 제국에서는 문자 그대로 해가 지는 일이 없었다. 또 전성기 때의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네델란드, 독일의 영토에서도 태양은 지지 않았다.'(머리말 p8)


저자가 말하는 제국(帝國)은 '땅'인 것 같다. 제국의 크기를 제국의 역사적 의의, 세계사에 미치는 영향으로만 생각하는 그의 관점은 지극히 편협하다. (마치, 부동산 투기업자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이 책에서 논리를 관철시키기 위해 음악, 미술 등 여러 분야의 변화를 제시했다. 그렇지만, 변화의 원인 중 유럽 고유의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으며, 대부분이 외래 문명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굳이 유럽 문명의 고유성을 찾는다면 그들의 '폭력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문명들의 발전과는 달리 유럽문명은 측량술의 발전을 통해 침략할 세계를 살펴보고, 수학을 활용한 포병 화력으로 다른 문명권의 사람들을 몰살시켰다. 이러한 유럽 문명의 '폭력성'에  대해 저자는 기술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 책은 유럽 내부에서 일어난 16세기의 각 분야별 변화요인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는 반면, 유럽 제국주의의 특징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 반쪽짜리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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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16-09-12 12: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주 충실하고 유용한 리뷰입니다.대단히 감사합니다 ^^

겨울호랑이 2016-09-12 12:51   좋아요 1 | URL
항상 좋은 말씀과 격려 감사합니다^^;사마천님 행복한 추석 연휴 되세요

2016-09-12 18: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12 1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딩 2016-09-14 1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 호랑이님 추석 잘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6-09-14 13:18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초딩님도 행복한 추석 연휴 보내세요. 항상 좋은 글과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2016-09-14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14 1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14 16: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음의소리 2016-09-17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굉장히 유용하고 흥미롭습니다. 리뷰 자주 써주세요. 글 잘 쓰시네요. 읽는 재미가 있어요 ㅎㅎ 또 다른 리뷰도 기대합니다.

겨울호랑이 2016-09-17 18:0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마음의소리님 추석연휴 잘 보내고 계신지요? 격려 말씀과 함께 즐겁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독공 2016-09-17 1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사피엔스>와 <총,균,쇠>을 읽으면서 역사적 사실이나 현상의 맥락적 이해와 탁월한 관점의 확보가 얼마나 힘들고 중요한가 새삼 느끼는 중 위 서평을 보게 되었습니다. 탁월한 식견을 바탕으로 깊이 있는 이해와 통찰력이 빛나는 서평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비평적 책읽기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16-09-17 19:2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시몬님 추석 연휴 잘 보내고 계신지요? 과분한 칭찬에 많이 부끄럽습니다. 또한, 좋게 읽어 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좋게 읽어주셔서 같이 성장하는 기쁨을 느끼는 요즘 입니다. 다시 한 번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아직 「사피엔스」와 「총, 균, 쇠」를 읽지 못했습니다만, 저도 조만간 기회가 되는대로 읽어보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

2016-09-18 1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18 2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20 15: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20 15: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도널드 케이건 지음, 허승일.박재욱 옮김 / 까치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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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키티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바탕으로, 예일대 교수인 저자가 현대인들의 시각에서 전쟁을 재조명한 작품이다. 투키티데스의 작품과 비교할 때 다음과 같은 면에서 장점이 있다.

1. 책에 있는 상세한 지도.
펠레폰네소스 전쟁 전반에 걸쳐 29개의 상세한 지도가 전쟁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주요 지명과 연계 사건이 지도에 기재되어 있고, 몇 번 지도(예. 4번 지도)를 참조할 것인지 알려 주기에 보다 생생하게 전쟁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두 작품을 비교할 때, 아테네 패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시칠리아 전쟁의 해당지도는 도널드 케이건의 작품에는 진영, 배치, 세부지역 등에 대해서 보다 현대적으로 표시된 반면, 천병희 역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경우에는 진영과 전략 등에 대한 설명이 개괄적으로 이루어져 설명이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2. 현대 독자를 배려한 BC5세기에 대한 친절한 설명.
- 투키티데스는 전쟁 자체 서술에 중점을 두었기에, 동시대인들은 별도의 설명이 필요없는 부분에 대한 설명을 생략하였다. 이에 반해 당대 경제, 사회, 정치적 설명이 케이건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는 친절하게 되어 있어 이해도를 높여준다.

˝그래서 대개 무역균형을 유지해 주던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가 감소했고, 그 결과 식량 수입은 아테네 공동체의 자원과 아테네의 저항력을 감소시켰다. 포티다이아의 계속된 포위는 예비자금에서 매년 2,000 탈란트를 고갈시켰고, 이는 사용 가능한 전비의 4분의 1 이상이었다.(p103)˝

케이건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투키티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주된 뼈대로 하여 구성되었기 때문에, 전쟁 종료 6년 6개월 시점까지 투키티데스가 인용된다. (이때 이후에는 더이상 기록이 없다.) 투키티데스가 기록하지 않은 부분에 대한 전쟁 기록이 남아 있기에 때문에 전쟁 전반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후대인이 서술했기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아테네 인 입장이 아닌 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케이건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장점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케이건 작품속의 투키티데스 작품에 대한 번역이 매끄럽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을 천병희 교수의 작품과 비교해보자.

˝이 끔찍한 상황에서, 데모스는 늘 그러하듯이 모든 일을 규율이 확실히 잡힌 상태에서 수행했다.(8,1,4)˝

같은 구절에 대한 천병희 교수의 번역은 다음과 같으며, 나는 아래의 번역이 더 편안하게 느껴진다.

˝민주정체에서 흔히 그러하듯, 민중은 이제 공포감에 휩싸인 나머지 어떤 종류의 규율도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었다.(8,1,4)˝

그래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대해 보다 전반적인 조망을 위해서는 다소 시간이 걸릴지라도 두 작품을 펼쳐 놓고 서로 비교해가면서 읽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것 같다. 케이건의 작품에는 투키티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해당 번호가 있기에 해당되는 구절을 찾아가면서, 또는 투키티데스 작품을 보면서 케이건의 지도 등을 참고하여 책을 읽는 것도 이해를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보다 생생하게 전쟁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광주에서 대구로 나갔다.`에서 `광주`와 `대구`에 대한 지식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다르지 않겠는가. ` 광주는 평야지대에 위치해있고, 대구는 분지에 위치해 있다` 라는 지형을 그릴 수 있는 사람과 이에 대한 배경지식없는 사람의 전쟁사에 대한 시각은 큰 차이가 생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여러가지 면에서 비교가 많이 되고, 그런 면에서 계속적으로 우리에게 생각할 점을 준다.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민주주의 국가와 전체주의 국가 등 모든 면에서 상이한 세력간의 다툼은 지금도 나라를 달리해서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같다.
최근 읽은 천병희 교수가 번역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는 작품을 따라가느라 현재의 나와 연계된 의미를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같은 주제에 대해 다시 글을 읽으니 보다 세부적인 면까지 눈에 들어온다. 특히, 강대국간의 전쟁 발단 원인이 된 `플라타이아 전쟁`에 대한 다음의 서술이 인상 깊었다.

˝그러나 중립이란 이미 불가능한 일이었다. 테베인이 덤벼들 준비를 하고 있었고, 플라타이아의 여성과 아이들이 아테네에 있는 상황에서 플라타이아인들은 `양편 모두를 친구로`받아들일 수 없었다.... 플라타이아인의 곤경은 열강들 사이에 낀 소국의 의지할 데 없는 상황을 잘 보여준다. 모든 사람들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독립성은 그러한 동맹의 세계에서는 환상에 불과했고, 단역을 맡은 국가들은 기껏해야 헤게모니 국가들 중 하나의 보호와 호의에 기댈 수 있을 뿐이었다.˝ p118

케이건이 작품에 `플라타이아 전쟁`에 대해 적은 자신의 글은 요즘 사드(THAAD)배치로 어수선한 우리의 환경에 비추어 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다. 별도의 주석은 사족이 될 것이에 더이상 언급을 하지 않지만,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명확하다고 생각된다.

한편으로 다음과 같은 구절도 눈에 들어온다.

˝아테네인들은 자신들의 힘이 충분하든지 충분하지 않든지 상관없이 쉬운 일과 어려운 일을 똑같이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그들이 대부분의 시도들에서 믿기 어려운 성공을 거둔 탓에, 자신들이 가진 힘과 자신들의 소망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4.65.4) p201

과연 우리에게 `능력 이상의 성공` 또는 `로또`로 대표되는 `노력 이상의 극적이 성공`이 우리에게 정말 이로운가에 대해 투키티데스는 위와 같이 조언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승패가 서양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아는 것은 지식으로서 중요하겠지만, 역사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지혜이라 생각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통해 그리스 시대가 몰락했다는 사실은 이미 지나간 사실이지만, 그 시대를 살아간 인간들의 고민과 행동은 살아있는 현재로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는 것을 케이건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통해 다시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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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의 흥망
폴 케네디 지음 / 한국경제신문 / 199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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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을 불가피하게 한 것은 아테나이의 세력팽창과 그로 인해 스파르테인이 가지게 된 두려움이었다. - 투퀴티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中 -


위의 말에서 아테나이와 스파르테 두 나라의 이름만 바꾸고, 다른 전쟁 당사자 또는 국명을 넣어도 대부분의 전쟁원인이 설명될 것 같다. <강대국의 흥망>은 16세기부터 1980년대 비교적 현대까지의 강대국들의 흥망을 전쟁과 무력충돌을 중심으로 군사학과 경제학적 관점에서 조명한 책이다.


16세기 당시 통일되었던 중국의 명(明)제국, 인도의 무굴(Mogul)제국, 터키의 오토만(Ottoman)제국은 거대권력으로 통일되어 큰 자극을 받지 못하고 쇠퇴하게 된다. 이에 반해 유럽은 여러 도시국가들과 왕국으로 분열되어 있어서 끊임없는 분쟁을 겪는다. 이러한 분쟁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유럽에서의 지속적인 군사력 증강을 자극했다. 그리고, 경쟁적, 기업적 환경에서 새로운 기술적, 상업적 진보가 맞물려 유럽은 중앙집권적 국가들보다 군사적으로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다만, 16세기에서 17세기에 이르는 기간동안 유럽 내에서의 패권은 상대적인 우위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이 시기에는 다른 나라의 '실수'와 '착오'가 다른 나라의 이익으로 연결되었다. 

 

 국민국가의 힘은 결코 군사력으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기술적 자원과 기민한 외교정책 수행과 선견지명, 결단력 그리고 능률적인 사회적, 정치적 조직으로 구성된다. (p244) 


 주로 '실수'와 '착오'는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군사력만을 고려하고, 국력을 뒷받침하는 다른 요소를 미처 고려하지 않았을 때 발생한다. 이처럼 실수한 강대국이 어떻게 쇠망하는가를 책에서는 스페인-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를 통해 보여준다. 반면, 이 시기에 영국은 비록 인구면에서는 다른 유럽국가보다 열위에 있었지만, 유럽으로부터 떨어져 있다는 지정학적 위치와 효율적인 금융자본을 활용하여 상대적으로 해군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되었다. 


 17세기에서 19세기는 유럽의 강대국으로 부상한 프랑스와 영국을 중심으로 한 비(非)프랑스 동맹간의 대결로 압축될 수 있다. 다만, 이 시기는 국가간 절대적인 능력 차이보다 상대적인 운영능력이 중요했던 전 시기와는 달리 '산업혁명'이 발생한 시기로 '절대적 우위'가 나타나는 시기다. 비록, 산업혁명의 성과가 극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이 시기 동안 영국은 전(前)시기에 다져진 금융자본과 해군력을 바탕으로 한 무역, 산업혁명을 통해 생산능력이 향상된 제조업 등을 무기로 식민지 전쟁에서 앞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19세기 후반부터는 산업혁명의 성과가 미국, 러시아, 신생통일국가인 독일로 전파되어, 영국의 절대적 우위는 무너지게 된다. 특히, 산업혁명의 성과는 무기의 발달로 이어지게 되었다. 무기발달은 전술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으며, 이의 중요성을 상대적으로 일찍 깨달은 1850년대와 1860년대 사이에 프로이센은 독일통일을 이루게 된다.. 한편, 1870년대 이후 미국은 남북전쟁, 일본은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을 통해, 국론을 통일하고, 새로운 변화를 수용함으로써 세계무대에 본격 등장하게 되었다.  이에 반해, 기존의 유럽의 제국들은 3세기 이상 지속적인 전쟁으로 힘이 점차 쇠퇴되어 영국과 독일을 제외하고는 강대국의 대열에서 탈락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미 19세기가 끝나갈 무렵에는 미국과 러시아가 그 영토의 크기와 인구로 인해 차세대 강대국이 될 것이라는데 세계 정치가들의 견해가 일치된다. 반면,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의 주된 관심은  이들 양 강대국과 어떠한 방식으로 자신의 위치를 유지할 것인가가 였다. 이미 쇠퇴하는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은 단독으로는 다른 나라를 견제할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그래서, 동맹체제가 등장하게 되었다.  유럽대륙에서는 새로운 강대국인 독일에 대항하여, 프랑스-러시아-영국 등이 동맹을 형성하였고, 이에 대항한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 동맹이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 부딪히게 되었다. 이후, 세계는 1930년대 대공황을 겪게 되고, 이러한 대공황을 타개하고자 독일, 이탈리아, 일본을 중심으로 한 추축국과 연합국 사이에 제2차 세계대전이 발생하게 되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세계 강대국은 미국과 소련의 양강체제로 지속된다. 다만, 미-소간 대립구도는 이데올로기간 대립으로 과도한 군비경쟁과 지역적인 충돌을 야기하였으며, 그 결과 양강체제에서 미국, 중국, 일본, 유럽경제공동체, 소련이 5대 강국으로 경쟁하는 여러 강대국의 시대가 되고 있다.(내가 가진 서적은 1989년 본이기 때문에, 이후 역사는 서술하지 않고 있다. 표지에서도 일본의 부상이 나타나 있다.)


<강대국의 흥망>은 우리 모두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서양중심의 세계사'의 이면에 숨겨진 이면을 보여준다. 여러 강대국들의 군사적-경제적 통계 비교를 통해 '지속적인 전쟁상태' 또는 '능력밖의 과다한 팽창'이 어떠한 재앙을 불러오는가를 잘 보여주는 책이다.


그렇지만, 이 책의 내용이 반드시 국가에 한정되지는 않는 것 같다.


성공을 위해 자신의 다른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포기하고 직장생활에만 매진하는 모습과 국가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종교적/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빠져 지나친 군비지출로 붕괴한 합스부르크제국과 제국주의 일본의 모습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회적으로는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들 -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대기업 하청 중소기업 문제 등 -이 '21세기의 지속적인 전쟁상황'의 피해라 생각되었다. 추상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삶의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모습과 그로 인한 결과가 역사라는 이름으로 서술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거시적인 국가관련 문제를 다룬 책이지만, 실증 역사를 통해 우리 삶을 여러면에서 조명하게 해주는 좋은 책이라 생각된다. 다만, 저자의 서구중심적 세계관은 동감하기 어렵고, 서양을 제외한 세계사는 오류 - 지도에서 조선을 명나라 지배하 영토로 표시(p21),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수군의 활약으로 일본군을 격퇴했다는 내용(p23) 등 - 등은 아쉽게 생각된다.







그렇지만 인생의 다른 여러가지 일과 마찬가지로 전략적 약점이란 상대적인 것이다.(p197)

군사적 잠재력(military potential)은 군사력(military power)와 동일한 것이 아니다. 경제대국이 정치문화적 이유나 지리적 안전보장의 이유로 군사소국이기를 원하는가하면 경제적 자원을 갖지 않은 나라가 그 사회를 동원하여 강력한 군사대국이 되는 수도 있다.(p240)

전선의 파괴행위와 동떨어진 경제가 그같은 진보의 혜택을 받아 약진한다는 것은 지극히 자명하다.(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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