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기, 칼, 책 - 인류 역사의 구조
어니스트 겔너 지음, 이수영 옮김 / 삼천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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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 사회는 식량의, 그리고 식량보다는 덜 중요하지만 다른 재화의 체계적인 생산과 저장에 의해 정의된다. 저장된 잉여가 실재하므로 사회는 그 잉여의 분배의 실행, 그리고 그 대외 방위에 불가피하게 힘을 쏟게 된다. 따라서 수렵인들 사이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났던 폭력은 농업 생산자들 사이에서 필연적인 것이 된다... 잉여의 규모와 실재는 일반적으로 사회를 복잡한 내적 분화로 이끌어 간다. 저장물의 실재가 낳을 수밖에 없는 내적 갈드의 결과, 사회는 몹시 불평등해지고 첨예하게 계급화된다. _ 어니스트 겔너, <쟁기, 칼, 책> , p351

어니스트 겔너(Ernest Gellner, 1925 ~ 1995)가 바라보는 농경 사회는 불평등한 계급사회이면서 매우 안정적인 사회다. 책 제목인 생산의 도구인 '쟁기 plough', 억압의 도구인 '칼 sword', 그리고 인식의 도구인 '책 book'은 이 시기를 상징하는 도구이자 계급의 상징이다. 겔너에 의하면 농경 사회는 시대의 이름과는 다르게 노동을 천시하고, 생산이 인정받지 못한 사회다. 생산의 잉여가치는 힘을 가진 자에게 돌아갔으며, 생산자들이 수탈을 막기 위해 의지한 종교는 피지배층으로부터는 존경과 부를 헌납받으며, 지배층의 권력을 공고히 하며 시대의 질서를 안정적으로 유지시켰다. 일찍이 플라톤(Platon, BC428 ~ BC348)이 <국가/정체 Politeia>에서 말한 분업(分業)으로 유지된 불평등한 계급사회가 바로 농경사회였다.

사람들은 노동하며 살아가지만, 특권을 소유하는 건 억압자들이거나 신호를 조작하여 억압자들을 결집시킬 수 있는 자이다. 농경 사회는 인류의 상당수를 굶주림과 억압에 종속시킨다. _ 어니스트 겔너, <쟁기, 칼, 책> , p351

칼은 쟁기보다 강하다. 칼을 쓸 때 전문성을 늘 갈고 닦는 이들은, 간헐적으로 그리고 '절박할 때'에만 칼을 잡는 농부들보다 칼을 훨씬 잘 다룰 것이다... 권력의 평형상태는 지속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칼을 쥔 이들이 우세할 때, 무방비의 생산자들에게 생존과 생산에 필요한 것 이상을 허용할 이유는 거의 없다. _ 어니스트 겔너, <쟁기, 칼, 책> , p199

억압 전문가들에게 약탈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또 다른 간접적인 방식으로도 작동한다. 무시무시한 약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부를 종교와 연결하여 신성의 보호를 받는 것이었다.(p130)... 이런 유형의 사회에서, 생산자가 축적한 잉여는 폭력의 독점자들에게 강제로 탈취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무인 계층으로 진입하는 입장권을 구매하거나 사회의 제의적 장치를 강화하는 데로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간다. _ 어니스트 겔너, <쟁기, 칼, 책> , p131

농경사회의 불평등한 안정적 관계는 인식에서 일어난 작은 변화에 의해 깨지게 된다. 인식에서 일어난 이러한 변화는 종교개혁, 계몽주의를 통해 과학의 시대를 불러왔고, 과학을 통해 갑작스럽게 늘어난 생산은 경제 체제의 변화와 함께 분업의 종말을 가져오게 되었다.

인간활동의 세 영역인 인식, 억압, 생산 모두가 동시에 그 기적이 일어난 특별하고도 이로운 조건 속에 놓였을 것이다. 인식에서는, 제의에서 교리로 강조점이 이동하고, 그 교리에 단일한 정점을 부여함으로써 관점을 통합시켜, 통합되고 질서 정연한 세계라는 관점을 낳았다... 통합되고 질서 정연한 자연과 평등주의적인 보편적인 이성이라는 관념은,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기적에 의해서 자연에 대한 효과적인 탐구와 이용으로 나아갔다. _ 어니스트 겔너, <쟁기, 칼, 책> , p353

이성(理性)에 대한 각성으로 가져온 자연관(自然觀)의 변화, 이와 함께 발달한 과학(科學)을 통한 대량 생산 체제는 기존의 농경 사회의 농민의 쟁기, 기사의 칼, 성직자의 책을 함께 지닌 전문인을 요구하는 사회로 변화시켰다. 이처럼 변화된 시대 속에서 새로운 인류 역사의 구조를 어떻게 조직해야 할 것인가. 이것이 겔너가 <쟁기, 칼, 책>을 통해 던진 큰 물음이다.

우리는 인간 활동의 3대 영역인 인식과 생산, 억압이 분업의 중요한 단계를 거치며 변화해 온 과정을 개괄적으로 살펴보았다. 우리는 미래에 관하여 무엇을 예상할 수 있을까? _ 어니스트 겔너, <쟁기, 칼, 책> , p274

싸우고 기도하고 일하는 세 집단 사이에서 이루어지던 과거의 질적인 분업은 마침내 무너졌다. 그것을 대체한 것은, 자유롭고 유능하며 자신의 전문 분야를 기꺼이 변화시키는, 동질적 '기능적' 전문인들이었다. 그들은 지적이지만 세속화된 동일한 관용구 안에서 소통했고, 그 관용구는 기록에 의해서 전파되지만 배타적인지는 않은 고급문화에서 비롯된다. _ 어니스트 겔너, <쟁기, 칼, 책> , p354

이상에서 보듯 겔너는 <쟁기, 칼, 책>을 통해 농경사회의 불평등성이 근대사회의 평등성으로 변화되는 것을 인식에서 일어난 작은 변화가 종교개혁, 산업혁명 등으로 이어져 기존 질서를 붕괴시켰음을 말한다. 그렇지만, 겔너가 설명한 이론으로 비서구권 사회에 대한 설명을 적절하게 할 수 있을까. 마치 세 다리를 가지고 있는 정(鼎)과 같이 농경 사회를 유지시켜온 서구의 계급관계는 성부(聖父), 성자(聖子), 성령(聖靈)을 기반으로 인식세계를 지배한 교회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때문에, 겔너의 인식은 농경 시대 중에서도 유학(儒學)을 기반으로 한 동아시아 세계를 분석하기에는, 그리고 앞으로의 인류의 미래를 전망하기에는 부족함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논의의 범위를 서구사회로 한정짓는다면, <쟁기, 칼, 책>은 근대 서양사를 움직이는 동력(動力)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라 여겨진다.

(플라톤은) 신화를 보유하고 고대 그리스의 관습과 제의를 영속화함으로써 이성이 강화되리라 잘못 판단했다. 어떤 면에서 인도는 플라톤의 계획을 서구 이상으로 증명해 보였다. 강력한 윤리를 지니고 있었지만 신학에 갇히지 않았던 중국은 하나의 변형 사례였으며, 유교에서는 비개인적인 도덕을 존중하기에 이르렀다. _ 어니스트 겔너, <쟁기, 칼, 책>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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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묘주의 제국을 일군 미국의 중요한 특성이었다. ‘점’들은 툴레나 비키니 환초, 스완 제도와 같은 섬이나 외딴 장소에 찍혀 있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인구가 극도로 밀집된 지역에 점이 찍히기도 했다. 기지에서 군인들이 쏟아져나와 술을 마시고 클럽을 드나들고 암시장에서 거래를 하고 밀회를 즐겼다. 그리고 근방에 사는 사람들은 기지에서 일자리를 구하거나 군인들을 상대로 물건을 팔았다. 기지와 주변 지역은 다시 말해 미국인들이 외국인과 빈번하게 접촉하는 부산한 국경지대인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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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민중사 - 백년전쟁에서 현재까지
제라르 누아리엘 지음, 권희선 옮김 / 인문결출판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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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에 이기기 위해서는 양측 진영은 민중을 동원할 수 밖에 없었지만, 지도부 엘리트들은 그들의 무절제한 폭발력을 두려워했다. 또한 아무리 신앙심이 깊다 하더라도, 장점이라고는 학살에 동원할 수 있는 머릿수가 많다는 것뿐인 가난한 이들에게 자신의 재산과 부를 나누어줄 생각은 없었다. 결국 위그노와 가톨릭 양측의 과격함과 폭력은 왕권강화에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국왕만이 진영과 상관없이 모든 백성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_ 제라르 누아리엘, <프랑스 민중사>, p107/906

제라르 누아리엘의 <프랑스 민중사>의 배경은 잔다르크가 활약한 백년전쟁 시기로부터 현재 마크롱 대통령까지 시기다. 독자들은 백년전쟁 이후 본격적으로 중앙집권화가 시작된 프랑스의 역사 속에서 민중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지배층이 권력을 얻기 위한 전제 조건이었음을 확인한다. 이후 귀족과의 대립 속에서 프랑스 민중의 마음을 얻는데 성공한 왕권은 중앙집권화에 성공했지만, 희생과 착취로 만들어진 절대군주제가 민중의 바람과는 다른 방향으로 역사를 진행시켰음도 함께 보게 된다.

1715년, 루이 14세가 세상을 떴을 때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임에 틀림없었으나 나라는 이미 활력을 잃었고, 국민들은 가난에 지쳐 있었다.여기에 역사가 주는 교훈이 있다. 국가의 강성이 바로 국민의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바로 그 교훈이다. _ 제라르 누아리엘, <프랑스 민중사>, p105/906

근대 이후의 시기에 <프랑스 민중사>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무너진 절대왕정 체제가 로베스피에르의 죽음으로 ‘평등‘보다 ‘자유‘의 가치가 강조되고, 이러한 기조가 자본주의와 결합되면서 어떻게 민족주의 국가에서 부활하게 되었는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변화된 사회와 사회가치 속에서 프랑스 민중의 현실을 톺아본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자유, 평등, 박애(또는 형제애)의 나라 프랑스가 아닌 극우주의자 르펜이 강력한 세력을 얻고 있는 현재 프랑스의 모습을 우리는 알게된다.

대혁명의 이상으로부터 너무도 멀리 와 버린 현실. 이를 통해 저자가 내린 결론 - 민중의 가야할 길은 무엇인가 - 에 대해서는 리뷰를 통해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극우주의의 대두는 사회전반에서 확인된다. 선거에서 가장 많은 민중 유권자가 선택한 것은 기권이었다. 이는 정치를 위한 정치에 대한 깊은 불신을 의미한다. 민중의 선거 외면은 현대 정치가 안고 있는 위기를 보여주는 중대한 현상 중 하나다. 사회 문제가 시사 이슈의 중심이었을 때에는 소외계층이 ‘부자‘, ‘부르주아‘, ‘기업가‘를 공격했다. 지금은, 여전히 투표장에 갈 의지가 남아 있는 사람들이 ‘외국인‘, ‘ 이주민‘, ‘무슬림‘을 공격하는 주장에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현혹되어 있다. _ 제라르 누아리엘, <프랑스 민중사>, p845/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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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맬서스의 분석으로부터 결혼과 가족구조의 다양한 특징들을 구축해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맬서스가 당연시했던 특성들로, 그가 언급하지도 않았고 무시해버렸던 것들이다. 그것들 가운데 하나는 결론의 상태와 목적에 관한 일련의 가정들인데, 그 가정들은 18세기 초엽의 잉글랜드 성직자들에게는 자명하고 당연한 것이었지만, 다른 나라들과 비교할 때엔 독특한 것이었다. 맬서스는 단본제(monogamy)를 가정했지만, 당시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복제 (polygamy)가 실행되고 있었다. 그는 남편과 아내의 비교적 평등한 관계를 가정했지만, 대부분의 사회는 남성 지배적이었다. 그는 결혼 해체를 가정하지 않았지만, 많은 나라에서 이론은 쉽게 허락되었다. 잉글랜드는 재혼이 허용되었지만, 다른 나라에서 재혼은 금지되거나 강제적이었다. 대부분 나라에서 혼인 후 가구 형태는 부모로부터 독립된 가구가 아니라 ‘부거제 (virilocal)‘ 나 ‘모거제(uxorilocal)‘ 였다. 대부분 사회에서 결혼 자금은 신랑과 신부가 엇비슷하게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신랑 혹은 신부 한쪽에서 거의 일방적으로 지출하였다. 맬서스 이론의 기본 가정인 이러한 특징들은 맬서스와 동시대인 중국, 인도, 동유럽, 남미 사람들에게는 매우 극단적인 것이었다.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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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5년, 루이 14세가 세상을 떴을 때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임에 틀림없었으나 나라는 이미 활력을 잃었고, 국민들은 가난에 지쳐 있었다. 여기에 역사가 주는 교훈이 있다. 국가의 강성이 반드시 국민의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바로 그 교훈이다. (p84/718) - P84

콜베르는 자신의 이름을 딴 일종의 중상주의 경제 개념, 콜베르주의(colbertisme)를 성공적으로 수립했다. 콜베르주의는 성장보다는 오로지 통상에 무게를 둔 경제이론이었다. 한 국가의 힘은 국고에 비축된 금와 은의 양으로 결정된다는 원칙에서 출발한 이 이론의 결론은 국가가 소비량보다 생산량을 늘려야 하며 수입보다 수출을 늘려야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콜베르 경제 이론을 바탕으로 통상위원회가 창설되어 식민 정책이 추진되기 시작했다.(p108/718)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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