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계책을 세운다면 궁핍한 것을 진휼하고, 부조(賦)를 엷게 하고 소의 종자를 공급하여 끝내 농사를 지어 수확하게 하는 것 만한 것이 없습니다. 유격병(遊擊兵)을 두어 도둑질하고 노략질하는 것을 막고부획(俊獲, 포로와 노획품)한 것을 나누어서 복랍(犬說)을 돕고 목축을 흩어서 편리한 땅으로 가게 하여 몇 년을 기다려 보면 부유해지고 강하게 되는 것을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정예의 병사를훈련하여 뽑아 행오(行伍, 군대)를 갖추게 되면 어찌 이를 지키는 것이 굳건하지 않을 것이며, 어찌 움직여서 이기지 못하겠습니까?

"고상한 사람은 명예나 지위를 가지고 영광과 총애로 생각하지 않으며, 충성스럽고 곧은 인사 역시 궁박(第迫)한 처지에 다다라도 뜻을 바꾸지 않습니다. 만약에 작위와 녹봉과 영광스러운 대우를 받는다고 하여서 황상에게 충성을 바친다면 중급(中) 이하의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이달에 고려 국왕인 왕치(治, 재위; 981~997)가 죽었는데, 조카인 왕송(誦, 재위: 997~1009)이 섰다.
왕송은 병교(兵校)인 서원(遠)을 파견하여 보내와서 명령을 내려 달라고 요청하였는데, 도달할 수가 없어서 돌아가니 뒤에 드디어 두절되었다. 고려는 역시 사신을 요(遼)에 파견하여 알려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치와 교화(敎化)를 세우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서 이들을 시끄럽게 하지 않는데 있으며,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에는 정성과 믿음을 이들에게 보이는 것 만한 것이 없고 이들을 시끄럽게 하지 않는 데는 청정함을 가지고 이들을 진무(鎭撫)하는 것 만한 것이 없다.

"예(禮)의 규정에 준거(準)하면 오악은 삼공(三公)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는데, 지금 비록 왕작(王)을덧붙여 준다고 하여도 오히려 신하일 뿐입니다. 천자가 이름을 호칭하는 것은 아마도 옛 제도가 아닐까 걱정됩니다. 청컨대 지금부터는 다시는 어서(御署, 황제의 서명)하지 마십시오."

12월 초하루 무인일에 사천(司天)에서 일식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에 이르러 음습한 구름이 하늘을가리기를 아침부터 시작해서 오시(時)에 이르러 흩어지자 여러 신하들이 축하였다. 일식이 없게 된 것을 축하하는 것은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촌음(陰)이라도 애석한 것이다. 만약에 종일토록 선을 행한다하여도 일생 동안에 역시〔할 수 있는 일이 얼마 없을 것인데 부지런히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전 시대에 요(遼)를 정벌하면서 사람들이 명령을 감당하지 못하였으니, 수 양제(隋煬帝, 楊廣, 569-618)의모든 군사들이 함락되어 죽었고, 당 태종(太宗, 李世民, 598~649)은 자신이 사졸들보다 앞장섰지만 끝내해결한 바가 없었습니다. 대개 나라를 다스리는 도(道)란 안으로 정사를 잘 닦는데 있으니 그러면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이 와서 귀부합니다.

"진(晉, 후진)-한(漢, 후한) 시절의 병란으로 산 영혼들이 시들고 죽어서 거의 다 없어졌는데, 당시에 다시는 태평스러운 날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짐이 몸소 여러 정사를 살펴보고 만 가지 일들이 면밀하게 정리하며 매번 상천(上天 하늘)이 하사하시어서 이처럼 번성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마침내 잘 다스려지고 혼란스러운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고려에서는 처음으로 요(遼)의 연호를 사용하였는데, 정사일(5일)에 사자를 파견하여 정삭(朔)을 시행한다고 알리고 포로를 돌려보내 줄 것을 빌었다. 요(遼)가 그들이 대속(代)하고 송환하는 것을 허락하고 숭록경(崇祿卿)인 소술관(蕭述管)·어사대부인 이완(李流)을 파견하여 조서를 싸가지고 이들을 위무하게 하였다.

경술일(29일)에 고려 국왕인 왕치(治, 성종, 960-997, 재위: 981~997)가 요(遼)의 군사가 그들의 경계를침략하였다고 하며 사자를 파견하여 군사를 출병하기를 빌었다. 황제는 북쪽 변경이 비로소 편안해 졌는데 가볍게 군사를 동원할 수 없다고 하여서 그 사자(使者)에게 두터이 사례하고 그를 돌려보내면서 이어 우대하는 조서로 왕치에게 답장하였다. 이로부터 고려의 조공은 드디어 끊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죄를 지은 사람은 대부분이 훌륭하거나 착하지 않은데,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백성들과 가까이하는 관직을 제수하니 마음대로 스스로 일을 맡게 되어 멀리 있다는 것을 믿고 멋대로 잔학하게 굴어서 힘없는 백성이 재앙(災典)을 만나도 끝내 위로 호소하지 못합니다. 바라건대지금부터 무릇 죄를 짊어진 사람에게는 사천(四川)과 광남(廣南)을 맡겨서 상리로 삼는 것을 허락하지 마십시오.

제왕 된 사람은 천하를 위하여 재부를 주관하는 것이다. 경(卿) 등이 회계를 관장하면서 마땅히 공정(公正)함을 마음에 두어야 하고, 잘라내어 깎는 일을 하여 백성을 해치고 화합의기운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서희가 말하였다.
"우리나라는 바로 고구려의 옛 것에 가까이 한 것이니 그러므로 고려라고 호칭하였으며, 평양에 도읍하였다. 만약에 땅의 경계를 가지고 말한다면 상국(國, 요)의 농경(東京, 遼寧)은 모두 우리 경계 안에 있는 것인데, 어찌 이를 침식이라고 하는가? 또 압록강(鴨綠江)의 안팎은 역시 우리 경내에 있지만 지금 여진이 그 사이를 점거하여 도로가 경삽()하여바다를 건너는 것보다 심하니 조빙(朝聘)이 불퉁하게 된 것은 여진 때문이다. 만약에 지금여진을 축출하고 우리의 옛 땅을 돌려받아서 성보를 쌓고 도로를 개통하게 된다면 감히 조공을 수행하지 않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옛날에 이회가 말하기를 ‘곡식을 사들이는 것이 아주 비싸면 백성들을 다치게 하고, 아주 값이 싸면 농업을 해치게 된다. 백성들이 다치게 되면 흩어져 버리고 농업이 다치게 되면 나라가 가난해진다. 그러므로 아주 비싸거나 아주 싸면 그것은 다른 하나를 다치게 하니 나라를 잘 다스리는 사람은 백성들로 하여금 다치지 않게 하고 농업을 더욱 권고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황제가 일찍이 불러서 편전(便殿)에 오게 하여 변방의 일을 물었는데 왕화기가 말하였다.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마치 나무를 심는 것과 같으니 걱정할 것은 뿌리가 아직 굳지 않은 것이며, 뿌리가 굳다면 줄기와 가지는 걱정거리가 되기에는 부족합니다. 지금 조정이 잘 다스려지는데 변방의 경계 지역이야 무슨 걱정으로 불안합니까?"

천하는 아주 넓고, 만기(萬機, 정치를 하면서 처리해야 할 업무)는 아주 많은데, 폐하께서 총명하심으로 보필하는 신하들에게 기탁하셨는데, 만약에 여러 관료를 접견하지 않으면 어떻게 밖의 일을 알겠습니까! 옛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의심하거든 쓰지 말고, 썼거든 의심하지 말라.‘ 만약에 국운(國運)이 쇠퇴하는 말기에 강한 신하가 멋대로 권력을 전횡하게 된다면 이러한 시기에는 고려할 수 있습니다.

황제가 이 때문에 가까이 있는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국가에 만약에 밖의 걱정거리가 없다면 반드시 안의 근심거리가 있다. 밖의 근심거리는 변방 일에 불과하여 모두 미리 막을 수 있지만 오직 간사하기가 형편없는 사람들이 만약에 안에서 걱정거리를 만든다면 깊이 두려워할 만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