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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석강의
다석학회 엮음 / 현암사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다석강의>는 다석 유영모 선생의 1956 ~ 1957년 종로 YMCA 강의를 정리한 내용이다. 여기에서 다루는 주제는 크게 <성경>, <법화경>, <대학>, <주역>등 동서양 고전과 선생의 자작시 풀이다.

<다석강의>는 읽기가 쉽지 않은데,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라 생각된다.
먼저, 강의 내에 다양한 분야가 망라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치 `1950년대 도올 김용옥선생`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러 분야가 한 강의에 녹아 있으니, 이해하는데 많은 내공을 필요로 한다.

[법화경 강의 중]
정불국토(淨佛國土) : 이 세상에 부처나라가 있게 됩니다. 부처나라의 세계는 깨끗하게 됩니다. 유혹의 세계를 깨끗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식으로 말하면 복음의 세계를 이룩하자는 말이 됩니다. 단지 복음으로써 이 세상을 깨끗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p144)

[성경 강의 중]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뜻이라면,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이 악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보다 낫습니다.( <베드로전서> 3:17)˝의 말씀으로, ˝정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여러분은 복이 있습니다. 그들의 위협을 무서워하지 말며, 흔들리지 마십시오.(p200)˝

[대학 강의 중]
˝아주 이상적인 명덕(明德)은 하느님으로부터 덕(德)을 받아 세상에 그 덕을 밝히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람마다 반드시 이룩하여야 합니다. 그것을 이루는 그이(君子)가 되고자 해야 합니다. `고지욕명명덕(古之慾明明德)`은 참으로 로고스(Logos)라 하겠습니다.(p437)˝

두번째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선생 특유의 한글 사용이다. 나도 한국사람인데, 한국말을 설명없이는 이해하지 못하는 기이한(?) 체험을 하게 된다.

`남우슴과 들어오름` -> 남에 대해 웃기 좋아하는 못된 버릇이 인간에게 있습니다.
`사픔아 네에민 시쁨 시름 손자 보더냐` -> 시쁨이 시픔(욕망)만큼 실컷 하고 시름 손자를 봅니다.

이러한 두 가지 이유로 책을 읽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으나, 특히 여러 말씀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몇 구절을 골라본다.

이제는 제사라는 것을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p94)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생전에 계신 것같이 정성으로 정(情)을 표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정의가 있다` 할 때의 `정의`는 과연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내가 정의다` 합니다. 이것이 무슨 정의입니까? `정의가 최후에 승리한다` 합니다만, 국가나 단체가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곧 자기만이 정의니까 최후의 승리를 한다고 할 때 누가 승리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됩니다. (p107)

˝바다를 항해하던 중 배가 부서져 가라앉게 되더라도 업무 책임자는 끝까지 기록을 합니다. 죽기 몇 분 전까지라도, 죽기 10분 전이나 20분 점까지도 기록을 해놓고 죽습니다. 이렇게 죽는 사람이야말로 아는 사람입니다.(p194)˝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법화경>이었다. 선생은 <법화경>의 한 이야기와 <누가복음>의 탕자의 비유(15:11~13)에서 공통점을 발견한다. 이야기의 내용은 조금 다르지만, 아버지의 큰 사랑을 말한다는 점에서 <법화경>의 이야기 역시 큰 감동을 주었다.

˝아버지시여, 저는 이것을 바라고 구하는 마음은 없었으나, 이제 보배로운 것이 자연히 왔습니다. 마음이 본래의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목부와 같은 정신밖에 없었습니다. 마음을 비워 갖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궁하여도 찾을 줄 모르고 높은 뜻을 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차차 이렇게 된 것은, 모두가 부처님의 인도로 이 보배가 자연히 나에게 왔기 때문입니다.(p155)˝

예전에 읽었던 <금강경>에서도 `아뇩다라삼막삼보리`가 나올 때,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법화경>에서도 이 구절이 반복되어 나오고, 세존(부처님)께서 설법하셨다는 내용으로 보아 매우 핵심적인 구절로 생각되었다. 기회가 되는대로 그 부분에 대한 공부가 필요할 것 같다.

또한, `철학`과 `과학`과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선생의 글 속에서 얼마전에 읽은 Russel의 모습과 비교하게 된다.

˝철학은 과학과 특별히 다른게 아닙니다.... 철학은 깨쳐 배우는 것을 말하고 과학은 조목조목 되 배우는 것을 말하는데, 철학은 되넘기는 것이 있으면 안 됩니다..... 제각기 철학을 한다고들 말합니다. 직업적으로 철학을 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별 게 다 많습니다. 철학사 같은 것이나 외우고 레코드나 틀고 그러다가는 잘못하여 과학도 모르는 철학자가 많이 생길지도 모릅니다.(p506)˝

이렇게 폭넓은 분야를 다룬 선생의 강의 중에서, 나에게 가장 와 닿았던 것은 `원(元), 하나`다. 하나를 통해 전체를 발견하는 선생의 모습. 자신의 길 속에서 보편의 진리를 추구하는 선생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그리스도교나 불교나 유교가 길은 죄다 다를지 모르나 (진리는)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니 이보다 더한 즐거움이 어디 있겠습니까? (p51)

석가나 예수나 남이나 나나 다 원(元) `하나` 입니다. 그저 `하나`입니다.....
본래 하나(전체)입니다. 본래 `하나`, 이것이 `성명자성`입니다. 하느님의 존재는 스스로 거룩합니다. `하나`라야 거룩하고, 거룩해야 그리운 것입니다. (p389)

우리말로 동서양 철학을 아우르는 다석선생의 강의를 통해 한층 더 깊은 지혜를 만나게 된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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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3 0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6-06-23 07:1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나와같다면님^^ 정말 그렇네요 행복한 독서하시면서 좋은 의견 부탁드려요^^ 좋은 하루 되세요
 
너 자신을 혁명하라
함석헌, 김진 / 오늘의책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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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씨알 함석헌 명상집.

책 제목만 보면 흔히 유행하는 자기계발서 같지만, 내용적으로 깊이가 일반 자기계발서와는 다르다. (책 내용 중 `몸은 언제나 꼿꼿이 가지자`, `늘 하늘을 우러러보자`, `닭 울기에 일어나 하루 살림 준비를 하자`, `날마다 글 읽기를 잊지 말자`, `먹고 입음을 간단히 하자`, `내 몸 거둠을 내가 하자`, `때때로 산과 바다에 가자`, `술, 담배를 마시지 말자`, `산 물건을 죽이지 말자`, `하루 한번 땀을 흘리자`, `시골을 지키자`, `빚을 지지 말자`라는 삶에 대한 조언도 있기에, 자기계발서의 측면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혁명(革命)은 개인의 혁명이 아니라, 민중(民衆) 전체의 혁명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개인의 변화를 말하는 자기계발서와 큰 차이가 있다. 마치, 대학(大學)에서 말하는 `修身-齊家- 治國-平天下` 중에서 일반 서적은 `修身` 측면을 강조하는데 반해, 이 책은 `平天下`까지 말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또한, 책의 두께는 그리 두껍지 않지만, 동양 고전, 성경, 불경에 대한 어느 정도의 배경 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책 곳곳에 고전에 대한 인용과 설명이 예고도 없이 튀어나와, 나 같은 초보자들은 초반에 질려 버릴 수가 있다. 실제로 초반부에 나오는 한 단락이다.

˝생각은 스스로 하는 것이요, 영원 무한하다. 그러나 사람은 지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올바르게 하자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공자가 가운데(中)를 말했고, 고르게 함(和)를 말했다. 가운데란 여기나 저기가 아니다. 여기면서 저기요 저기면서 여기인 곳이다. 고르게 함이란 함이나 아니 함이 아니라, 하면서 아니 하고 아니 하면서 하는 지경이다.
그래서, 노자가 비임(虛)을 말했고 됨(化)을 말했다. 비임이란 있음이나 없음이 아니다. 있으면서 없고 없으면서 있음이다. 됨이란 달라짐이나 그대로 있음이 아니다. 달라지면서 그대로 있고 그대로 있으면서 달라짐이다.
그래서, 예수가 십자가를 졌고 새로남을 보여 주었다. 십자가란 죽음이나 삶이 아니다. 죽음으로 살고 삶으로 죽음이다. 새로남이란 육이나 영이 아니다. 육이면서 영이요 영이면서 육이다.
그래서, 석가가 반야(知慧)를 말했고 해탈(解脫)을 말했다. 지혜란 안다 모른다가 아니다. 앎으로 모르고 모름으로 아는 자리다. 해탈이란 이 세상이나 저 세상에 가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이면서 저 세상이요 저 세상이면서 이 세상인 삶이다. (p39)˝

˝사람에게 있어서 자아라, 영혼이라, 아트만이라, 인격이라 하는 것이요, 전체에 있어서는 하늘이라, 하나님이라, 브라만이라, 생명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것은 둘이면서 하나요, 아버지면서 아들이요, 절대면서 상대다. 거기 생명의 정신의 한 큰 운동이 있다. (P43)˝

이 책의 장점은 내용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동안 새로움 깨달음을 접한다는 감동을 주기에, 흥미진진한 소설처럼 끝까지 읽게 만드는 흡입력이라 생각된다.
또한, 많은 인용이 있음에도, 그러한 인용이 저자의 `지식 자랑`이 아닌, 우리에게 `一以貫之(하나로써 꿰뚫음)`하는 친절함으로 다가오는 책이다.

단편적인 명상집이지만, 큰 주제별로 묶인 내용을 정리해 본다.

사람은 생각을 통해 자신을 깨닫게 된다. 자신을 비추어 보면서 `하나님의 뜻(天命)`을 알게 된다. 자신을 비추어 보는 거울, 스승이 바로 `씨알`이다.
우리는 `씨알(생각함)`을 통해 하늘의 얼을 우리 속에서 발견한다. 우리는 이러한 `씨알`을 각자의 혼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씨알이 있다.
씨알을 찾는 것은 각자의 믿음을 가지고 스스로 체험하는 것이다. 삶 속에서 끊임없이 찾기 위해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구체적인 실천 사항은 서두에 정리한 내용임)

하늘의 전체는 `하나님`이지만, 역사의 전체는 `씨알`이다. 생각을 통해 깨닫게 되면, `나`와 `너`가 다름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역사는 `씨알`이 `하나`되었을 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天心은 民心으로 나타나며, 민심의 표현은 `악에 대한 반항`, `폭력을 쓰지 않는 싸움`, `조직적인 운동`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민심의 표현을 통해 새로운 역사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끊임없이 불의와 싸워 나가야 한다.

책에 있는 대강의 내용을 정리했는데, 함석헌 선생의 사상에 대한 이해도 많이 부족했기에, 놓치는 부분이 많았던 것이 많이 아쉽다. 이러한 부분은 시간을 두고 더 깊은 공부를 통해서만이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시간은 자신의 선택한 하나의 길을 통해 전체를 보려는 함석헌 선생의 사상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었던 기쁜 시간이었다.

˝<中庸>에서는 중(中)은 천하지정리(天下之定理)라 했지만 이(理)가 이(理)대로만 있다면 죽은 이(理)다. 중(中)은 필연적으로 발(發)하지 않을 수 없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지만 하나님은 말씀을 하고야 만다. 그러면 벌써 만물이다. 말씀 안에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이 곧 사람에게 있어서 빛이지만, 빛이라 할 때 벌써 거기 어두움이 있었다. 싸움은 거기서부터 벌어진다. 힘씀이 필요하다.(P47)˝

˝나는 물론 불교도가 아니기 때문에 감히 불교에 대해 무엇을 아는 것처럼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부처님은 안다. 알아서 아는 것이 아니라, 모르면서도 안다. 그것은, 부처님은 영원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나는 예수를 통해서 안다. 영원하신 이는 마치 소금과 같은 것이다. (P81)˝

ps. `인(仁)`에는 한자로 `씨(核)`의 의미도 있는데, 이러한 공자의 `인(仁)`사상과 `씨알사상`도 아마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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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그리는 무늬 - 욕망하는 인문적 통찰의 힘
최진석 지음 / 소나무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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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그리는 무늬>는 인문학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자세, 삶의 자세에 대한 책이다.

전체적으로 "우리가 왜 공부해야 하는가?"(인문적 통찰을 통한 독립적 주체되기) 에서 부터 시작해서, "틀에 박히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하기" (인간이 그리는 무늬와 마주서기, 명사에서 벗어나 동사로 존재하라)로 다시, 우리 내면으로 들어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 지를 찾아보기"(욕망이여, 입을 열어라)의 구조로, 종합적인 삶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 책은 객관식으로 주어진 것에 익숙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강의 형식으로 구성된 책을 읽다보면, 중간 중간 저자로부터 던져진 질문들이 있다. 제기된 질문이 우리가 평소 접하는 질문이 아니기에, 다소 당혹스러운 질문이기도 하다. 이런 새로운 질문을 통해 평소 의식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잠시 생각을 멈추게 된다. 대화 형식과 질문 형식을 통한 자연스러운 문제제기는 독자로 하여금 책을 편하게 대하게 한다.

다만,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다소 강하다. 맞는 말이지만, 정형화된 자기계발서 같은 느낌이 들어, 저자의 주장에 모두 동의하기 힘들다.

이 책 뒷 면을 보면 "오직 자신의 욕망에 집중하라!"고 씌여 있다.
저자는 자유로운 생각으로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욕망에 충실하라고 하지만,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다수의 사람이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정답'에 익숙하게 길들여진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자신의 내면을 바라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마치 자기개발서처럼 '자유롭게 생각하기' 마저 강요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점이 다소 아쉽다.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여러가지 각자의 이유로 공부를 할 것이다.
요즘 인문학이 대세여서 하는 사람, 문학책이 좋아서 하는 사람, 학위를 따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등 여러가지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을 공부할 것이다. 이 사람들이 모두 '인문학적 통찰력'을 얻기 위해 인문학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는 '인문학적 통찰력'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하여, 마치 자신의 욕망을 모르는 사람은 인문학을 하지 말라는 것처럼 강하게 다가오는 점이 부담스럽다.

내 생각은 '자신의 욕망을 아는 것'도, '인문학적 통찰력'도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인 것 같다. 우리가 얻고 싶다고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노력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닌. 다만,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하다보면 그냥 새로운 '내'가 되버리는 선물과도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면서 들었던 것은 "정말 '인문학의 정도(正道)'가 있다면, 굳이 의지를 가지고 가지 않아도 하다보면 저절도 문리(文理)가 터지지 않을까?"라는 의문이다.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인문학에 대한 시각을 가졌다면 그것으로 이 책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저자가 말한 것처럼 지금은 욕망에 충실하지 못하다고 해서, 그것을 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마음을 고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지금처럼 하다보면, 때가 되면 우리는 달라진 자신을 보게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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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4 1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6-05-24 19:24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양철나무꾼님
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최진석 교수님 좋아해요. EBS에서 교수님 강의 시청하고 많이 배웠습니다. 다른 도덕경 관련 책은 `물`과 같은 자연스러움이 있는데, 이 책은 주제 때문인지, 물은 물인데 다소 강해서 `얼음`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제 생각이 그런 것이고, 양철나무꾼님께서 보시면 또 다른 더 좋은 것이 보일실 거라 생각합니다 퇴근 잘 하시고 행복한 저녁되세요^^

cyrus 2016-05-24 1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라’는 메시지가 이제는 진부하게 느껴집니다. 당연한 말이라서 그런 걸까요? ^^

겨울호랑이 2016-05-24 19:29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cyrus님
그만큼 `너도나도` 인문학이 보편화되어서 이제는 다소 낡은 슬로건이 된 거 같아요^^

:Dora 2016-05-24 2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강대 그 최진석 교수님이시죠?

겨울호랑이 2016-05-24 20:1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Theodora님 네 맞습니다^^

:Dora 2016-05-24 20:15   좋아요 1 | URL
안녕하셔요 ˝겨울˝호랑이님 여름이라 좀 힘드시겠지만 힘!!

겨울호랑이 2016-05-24 20:2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실례가 안된다면, 혹시 Theodora는 유스티아누스 황제 부인인가요? 세례명이신지요?^^

:Dora 2016-05-24 20:39   좋아요 1 | URL
네 본명입니다 테오도라 성인이 여러분인데요 저는 그분은 아니고요 제 생일날 축일이신분으로 했어요^^

겨울호랑이 2016-05-24 20:42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저도 본명이 `바실리오`라고 합니다 행복한 저녁 되세요

:Dora 2016-05-24 20:44   좋아요 1 | URL
바실리오 형제님 두번 반갑습니다ㅋㅋ댓글로 자주 뵐게용

겨울호랑이 2016-05-24 20:54   좋아요 0 | URL
네 반갑습니다^^
 
효경한글역주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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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孝經>은 나에게 다소 생소한 문헌이었다.
부끄럽게도 13경(經) 중 하나라는 사실도 잘 몰랐다. 이처럼 내게 인지도가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논의하는 효(孝)는 나에게,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개념이기에 선뜻 손이 가지 않은 책이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조선시대을 지배했던 "孝"라는 개념이 어떻게 지배의 이데올로기가 되었는지, 치밀하게 밝히고 있다.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국가를 지배하는 통치 이데올로기로 막연한 충(忠)보다, 더 개인에게 와닿는 효(孝)를 강조하였다.
단순히 강조하기만 하면, 외면당할 수 있어서, 일종의 캠페인(campaign)을 벌리게 되는데 그것이 '열녀문'이 전국에 세워지게 된 배경이며, '삼강행실도'가 조선 전국에 보급된 배경이라고 한다. 이렇듯 국가에 대한 "忠"의 축소된 사상으로, 가문에서의 "孝"라는 이념이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우리가 알고 있는 '효'가 어떻게 성립되었는지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효경>에서 말하는 효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효'는 단순히 '자식의 부모에 대한 사랑의 표현'을 넘어선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과 '자식의 부모에 대한 공경과 사랑'의 쌍방적 관계에서 형성된다는 것을 <효경>에서는 말한다.

그리고, 더 나가서 자신의 부모만이 아니라, 천자, 제후, 공경, 대부, 서민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위치에서 다른 이들을 넓게 사랑하는 이념이 <효경>에서 말하는 효의 개념이다.
이러한 효는 결코 위에서 아래로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지도자들이 자신의 내면을 효성스럽게 하여 주변을 감화시켜 나갈 때, 사회 전반으로 효가 퍼져 나가게 되고, 효의 진정한으로 실현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효경>의 주요 내용이다.

자식의 부모에 대한 일방적인 효도를 강제하는 것이 아닌 부모-자녀간의 따뜻한 관계그리고, 따뜻한 관계의 자연스러운 사회적 확대를 '효(孝)'라고 할 때, 가정의 달인 5월에 우리의 부모와 우리, 그리고 우리의 자녀와우리와의 관계를 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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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학기한글역주 - 동방고전한글역주대전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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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 선생의 대학 역주.

유교의 8조목에 대해 주자의 「대학장구」뿐 아니라, 한유, 이고, 사마광 등 중국 학자, 이토 진사이 등 일본 학자들의 견해를 비교 제시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라는 유명한 대학의 구절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것들과 더불어 수신을 위해 우리가 힘써야할 정심, 성의, 치지, 격물 등에 대해 자세하게 풀이하여 「대학」이 조선시대 경전이 아니라 우리가 끊임없이 돌아보고 마음에 새겨야 하는 우리시대의 문헌임을 깨닫게 한다.

이 책을 통해 순자, 맹자, 법가의 사상적 영향을 받은 구절과 `성의`를 통해「중용」과 연계되는 사상적 흐름도 알 수 있어, 마치 시리즈물(?)과 같은 재미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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