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간이 살아온 기간을 가리키며 ‘지나간 시간’을 의미하는 ‘아이온’은 ‘크로노스chronos’, 즉 ‘측량된’ 시간, 예를 들어 날이나 계절과는 정반대되는 개념이었다. ‘아이온’은 생명력으로서의 시간이고 ‘크로노스’는 계산된 시간이다. 시간에는 ‘아이온’과 ‘크로노스’ 외에도 ‘카이로스kairos’, 즉 순간이 있다. ‘카이로스’는 예기치 않은 순간, 놓치지 말아야 할 절호의 기회("카이로스는 모든 것의 으뜸이다." 헤시오도스, 『일과 날』, 694),

이러한 시계들의 사용을 뒷받침하는 고대인들의 ‘주기적인’ 시간 개념 옆에는 동시에 ‘직선적인’ 시간 개념이 존재했다. 이는 훨씬 방대한 시간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을 파악하고 관리하기 위해, 이른바 ‘기준시’를 정립하기 위해 필수적인 시간 개념이다.

소리가 자연적 원리를 내포한다는 사실이 피타고라스 사상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이유는 이를 토대로 산술학적, 기하학적, 화성학적 비율에 대한 수학적 탐구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인류는 그렇게 디오니소스 살해라는 오점을 등에 지고 세상에 태어났다. 바로 이러한 차원에서 디오니소스 의례는 여신 페르세포네에게 인류가 속죄를 구하고 이 오점으로부터 정화를 기원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오르페우스 의례에서 정화 외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주제는 ‘환생metempsicosi’, 즉 사망 후에 영혼이 새로운 육신을 통해 다시 태어난다는 생각이었다

파르메니데스와 엠페도클레스는 헤시오도스와 같은 선상에 위치시켜야 한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영감의 원천인 신들에게 일정한 역할을 맡긴다는 점, 다름 아닌 지혜가 신들에게서 온다고 믿는다는 점, 그리고 ‘장르’의 차원에서 6행시를 선호한다는 점 등의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파르메니데스가 변화와 탄생과 죽음이라는 특징에서 벗어나 있는 단일한 실재(동시에 물리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는 실재)에 대한 탐구뿐만 아니라 더 많은 실재에 대한 탐구, 마찬가지로 감각적인 것에서 벗어나 있는 실재들, 예를 들어 수학적인 실재들에 대한 탐구를 제안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헤라클레이토스는 자신이 전하려는 내용을 하나의 로고스, 즉 사람이 손쉽게 ‘이해할 수 없는’ 변화의 ‘규칙’이나 ‘이성’으로 상정한다. 의미심장한 것은 ‘이해력이 부족한’ 인간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 ‘axynetoi’가 신비주의 문헌에서 유래한다는 사실이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하는 ‘이해력이 부족한’ 독자는 바로 신비주의에 ‘입문하지 못한’ 이들이었다.

헤라클레이토스에게는 유동성이 안정성만큼이나 중요했고 상반된 것들의 대립이 이들의 통일성 못지않게 중요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헤라클레이토스는 극단적인 유동성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완벽한 영속성의 상징이기도 한 ‘불’에 사물의 원리가 있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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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계보는 단순히 복잡한 구조를 지닌 서사 혹은 다신주의의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기 위한 원시적인 사상의 표현이라고 볼 수 없다. 이 계보는 오히려 신들의 역사를 추적하고 이들이 세계에 행사하는 권력의 지도를 그리면서 신들의 혈연관계나 탄생 경로를 토대로 이들의 본질을 묘사하는 아주 복잡한 인식 도구에 가깝다.

헤시오도스의 서사시는 신들이 탄생과 결합과 동맹과 분쟁을 통해 어떻게 세상을 나누어 가졌고 어떤 식으로 그들에게 할당된 운명을 받아들였는지 이야기한다. 제우스는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얻었고 티탄들은 반대로 타르타로스의 심연에서 망명 생활을 시작했다.

바빌론의 「에누마 엘리쉬」에서 태초의 쌍은 물을 다스리는 신들로 구성되지만 그리스신화에서는 흔히 하늘과 땅으로 구성된다. 바빌론의 서사시에서는 승리를 거둔 마르두크가 태초의 신 티아마트의 몸을 해체하면서 우주를 창조하지만 그리스신화의 제우스는 우주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생식 욕구와 생성의 역동성(예를 들어 태초의 에로스)을 통해 점진적으로 형성되는 우주의 주권자로 등극한다. 또한 히타이트의 계승 신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지만 헤시오도스의 계승 신화에서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가이아의 존재가 있다.

로마인들이 ‘운명’을 무언가 ‘말해진fatum’ 것, 즉 신들이 천명한 것으로 이해했다면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운명’은 ‘연결되어’ 있거나 ‘고정되어’(이것이 바로 영어의 destiny, 이탈리아어 destino의 어원인 라틴어 동사 destinare의 뜻이다) 있는 것과 연관된다. 반면에 그리스인들의 ‘운명’은 무엇보다도 ‘분배’라는 독특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의 삶과 운명을 하나의 ‘분량’으로 보는 관점은 그리스신화의 여러 이야기에 생명의 교환이라는 주제가 등장하게 만든 요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다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날 때 그의 삶을 다른 누군가에게 양도하거나 물려준다는 이야기가 가능했다. 인간의 삶이 그에게 할당된 ‘분량’이라면, 적어도 신화 속에서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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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삶과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신의 존재를 가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은 마찬가지로 신이 존재한다는 것 또한 증명하지 못한다.

철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의견대로 인간의 삶을 둘러싼 사물들의 신비와 이에 대한 경이에서 탄생한 것이라면, 이 놀라운 경험을 토대로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 아낙시메네스Anaximenes의 학설이 탄생했고 이를 토대로 밀레토스에서 자연의 질서라는 개념이 이론적인 체계를 갖추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가 물을 만물의 원리이자 기원으로 봄으로써 변화의 물질적인 원인을 탐색하는 연구의 ‘선도자’ 역할을 했고 이와 함께 자연에 대한 탐구 및 철학 자체가 시작되었다고 보았다. 그리스어 아르케arche가 가리키는 것이 바로 이러한 ‘원리와 기원’이다.

바로 이러한 차원에서 아낙시만드로스는 신들의 전형적인 특징 중 하나인 불멸성을 비인격적이고 추상적이며 동시에 물리적인 존재에 부여하면서 이 존재를 변화하는 우주의 원리, 즉 아페이론*과 일치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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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철학 케니의 서양철학사 1
앤서니 케니 지음, 김성호 옮김 / 서광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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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철학자는 그가 제시한 대답이 얼마나 옳은가보다는 그가 던진 질문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는 말을 하곤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플라톤은 철학자 중에 더 이상 비교할 대상이 없는 최고의 탁월한 인물이다. 그는 진정으로 깊이 있고 위대한 철학의 수많은 문제들을 처음 제기하였으며, 이들 대다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철학적 논의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세계의 지적인 유산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르네상스 이후 계속 받아들여져 온 학문의 개념을 처음으로 만들어 낸 인물이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_ 앤서니 케니, <케니의 서양철학사 1권 : 고대철학> , p164


 앤서니 케니(Anthony Kenny, 1931~ )의  <케니의 서양철학사 1권 : 고대철학 Ancient Philosophy: A New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volume 1>은 피타고라스( Pythagoras, BCE 570 ~ 495)부터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Hipponensis, 354~430) 까지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당연하게도 이 시대를 대표하는 두 철학자 플라톤(Platon, BCE 427/424 ~ BCE 348/347)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E 384 ~ BCE 322)의 사상이 큰 기둥이 되어 본문의 내용을 떠받친다.


 <케니의 서양철학사>가 다른 철학사 책들과 구별되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주제별 구성'이라 여겨진다. 대부분의 철학사 책이 철학자 별로 그들의 삶을 비롯한 사상적 배경, 사상의 주요 내용과 후대의 영향 순으로 서술된다면, <케니의 서양사>는 논리학, 인식론, 자연학, 형이상학 등 철학의 여러 주제를 각 장(章)으로 설정하고 여기에 맞춰 철학자의 사상을 대비시킨다. 이러한 구성은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철학자들의 공통점과 차이점 등을 보다 선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독자들의 내용 이해에 도움을 준다.


 본문 내용 중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살펴보자. 플라톤의 사상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이데아론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부정된다. 플라톤에게 이데아는 "I am who I am"처럼 사물 그 자체의 본질을 의미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보여지는 개체를 방해하는 상상적 요소에 불과할 뿐이다. 영원불멸의 이데아의 긍정과 부정은 이후 정치학과 논리학 등에서 보여지는 플라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차이를 잘 나타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나도 플라톤에 따라 처음 네 요소를, 즉 '원'이라는 단어, 원에 대한 정의, 원이라는 도형,  내가 지닌 원의 개념을 구별함으로써 논의를 시작하려 한다. 이들 네 요소를 명확히 파악하는 일이 중요한 까닭은 그래야만 이들을 가장 중요한 까닭은 그래야만 이들을 가장 중요한 다섯 번째 요소, 플라톤이 '원 자체'라고 부른 것과 분명히 구별하고 대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플라톤의 유명한 이론이 다루려는 바도 바로 이 다섯 번째 요소, 즉 이데아이다. _ 앤서니 케니, <케니의 서양철학사 1권 : 고대철학> , p104


 <형이상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더욱 강력하게 이데아론은 스스로 제기했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이데아론을 통해서는 개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영원불변하는 형상은 어떻게 개체들이 현존하게 되고 변화를 겪는지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형상은 인식, 즉 다른 것들의 존재를 밝히는 데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다(A 9. 991a8 이하). 이데아론은 기껏해야 설명되어야 할 실재와 같은 수의 실재를 새로 도입할 뿐이다. _ 앤서니 케니, <케니의 서양철학사 1권 : 고대철학> , p131


 <국가>에서 플라톤은 철인(哲人)에게 의해 통치되는 도시국가를 최상의 정체(政體)로 설명한다. 이들 철인은 국가의 덕, 정의를 잘 구현할 수 있는 인물들로 <국가>는 정체의 이데아가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이데아는 훗날 <법률>에 이르면 사람 대신 '법률(Nomoi)'로 대체되지만, 개체들에게 공통된 소수의 본질에 의한 통치라는 점에서 '귀족정'이 최선의 정체로 규정된다. 파르메니데스처럼 유일한 일자(the one)의 세계관에서는 '군주정'이 그 자리를 대신했겠지만.  이런 면에서 플라톤의 정치론은 이데아의 현실적 적용이었다.


 플라톤은 현실 세계에서는 우리가 <국가>에서 묘사된 이상적인 정치 체제보다 열등한 다양한 형태의 국가에서 살게 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이런 이상적인 도시국가에 살지 않는 한 행복한 삶을, 공적이든 사적이든 간에, 살 수 없으며 또한 이런 국가는 철학자가 통치지가 되거나 통치자가 철학자가 되지 않는 한 실현될 수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5,473 c~d) _ 앤서니 케니, <케니의 서양철학사 1권 : 고대철학> , p118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개체, 데모스(demos)로부터 출발한다. 그 결과 그가 이른 곳은 민주정이다. 플라톤과 거의 같은 정체 모형을 사용하고도 그들이 생각하는 최선의 정체는 서로 달랐는데, 이것은 이데아에 대한 인식의 차이와도 관련있지 않을까.


 국가의 목적은 시민들에게 선하고 행복한 삶을 제공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공동체 안에 진정으로 탁월한 개인이나 가문이 있다면 군주정이 최선의 정치체제이다. 하지만 이는 매우 드문 경우이며 따라서 실패할 위험성이 상당히 크다. 또한 군주정이 전제정으로 타락하면 모든 정치체제 중 최악의 것이 되고 만다. 이론상 귀족정이 군주정 다음으로 바람직한 정치체제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종의 입헌 민주정을 선호하였다. 왜냐하면 그가 '이상적 민주정'이라고 부른 국가는 부자와 가난한 자가 각각의 권리를 서로 존중하며 최고 수준의 자질을 갖춘 시민들이 모든 시민의 만족을 목표 삼아 통치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4.8.1293b30 이하).  _ 앤서니 케니, <케니의 서양철학사 1권 : 고대철학> , p155


 이러한 차이는 논리학에서도 보여진다. 논증을 통해 참, 거짓을 판별하는 논증의 문제는 개체로부터 본질에 이르는 과정이기에 실체, 분량, 성질, 관계, 장소, 시간, 자세, 의상, 능동, 수동 등의 범주와 명제 등이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그 하나하나가 매우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이에 반해, 이데아로부터 출발하는 플라톤의 논증에서는 '있음'과 '없음'만이 중요할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적 저술들에서 우리는 명제의 구조와 그것을 구성하는 부분들의 본성에 관한 서로 다른 두 개념을 발견하게 된다. 이들 중 하나는 <소피스테스>에서 플라톤이 제시하였던 명사와 동사 사이의 구별에 기원을 두고 있다. 여기서 플라톤은 모든 문장은 최소한 하나의 동사와 하나의 명사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262a~263b). 바로 이런 문장의 개념, 즉 서로 전혀 이질적인 두 요소가 결합한 것이 문장이라는 생각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과 <명제론>에서도 전면에 등장한다. 명제의 구조에 대한 이런 식의 개념은 프레게 이래로 현대 논리학에서도 여전히 중요하게 통용되었다. _ 앤서니 케니, <케니의 서양철학사 1권 : 고대철학> , p219


  아리스토텔레스는 연결사에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으며 한량 언어와 명제들 사이의 상호 관계에 주의를 집중한다. 술어로부터 주어를 구별해 주는 특성 등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런 명사 중심의 이론이 지닌 문제점 중의 하나는 기호와 그것이 의미하는 바 사이에 혼동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명사와 동사를 언급하면서 플라톤은 자신이 일종의 기호에 관하여 논의하고 있다는 점을 매우 명확히 드러낸다. _ 앤서니 케니, <케니의 서양철학사 1권 : 고대철학> , p220


 윤리학에 있어서도 두 철학자의 상반된 면모가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행복의 이데아가 존재한다면, '행복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큰 의미가 없다. 행복이 쾌락과 지혜와 관련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이데아가 없는 상태에서 답을 찾는 것은 보다 복잡한 과정과 결론을 요구한다. 행복은 지혜와 덕이라는 상태가 쾌락에 의해 결합된 것이라는.


 <필레보스>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쾌락도 지혜도 행복한 삶의 본질이 아니며 오직 이 두 요소가 적절하게 혼합된 삶만이 진정으로 선택할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대목이다. 매 순간 모든 종류의 쾌락을 맛보지만 이성이 부족한 사람은 지금 이 순간의 쾌락이 아닌 다른 어떤 쾌락도 기억하거나 예상하지 못하기 때문에 행복할 수 없을 듯하다. _ 앤서니 케니, <케니의 서양철학사 1권 : 고대철학> , p424


 사실, 다른 철학책에서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대해 같은 설명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만, 각자에게 할당된 목차 내에서 설명이 한정되다보니, 철학자들 사상들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는 것이 일반 독자들에게는 다소 수고로운 작업이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주제별로 철학사를 정리한 구성은 새롭게 철학사상을 연결시켜 이해하게 해주는 저자의 작은 선물이라 생각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가능한 대답을 세 가지로, 지혜와 덕, 쾌락으로 압축하여 제시한다. 그는 이들은 각각 세 형태의 삶, 즉 철학적, 정치적, 향락적 삶으로 드러나는데 이들이 행복과 밀접하게 연결된다고 말한다(1.4.1215a27). 이 세 요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적 탐구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한다.(p426)... 덕과 지혜는 모두 상태인 반면 행복은 일종의 활동이므로 덕이나 지혜를 바로 행복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EE 2.1.1219a 39 : NE 1.7.5 1098a16). 하지만 행복을 구성하는 활동은 덕의 활용 또는 발휘이다. 지혜와 도덕적인 덕은 비록 서로 다른 상태이기는 하지만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발휘되므로 이들은 서로 경쟁하지 않고 오히려 협동하여 행복에 기여한다(NE 10.8.1178a~18). _ 앤서니 케니, <케니의 서양철학사 1권 : 고대철학> , p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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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3-08-18 2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모르던 서양 철학사 책이네요.
언제나 좋은 책을 추천해 주시는 겨울호랑이 님께 감사드립니다. ^^
평점도 좋아서 찜해 놓았습니다. ㅎ

겨울호랑이 2023-08-18 21:0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대부분의 철학사가 연대와 인물 중심으로 정리된 것에 비해 주제 별로 명료하게 비교해주니 더 명료하게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현대철학사까지 완간되어 있어 틈나는 대로 올려보겠습니다. 북다이제스터님 행복한 주말 되세요! ^^:)
 
열린사회와 그 적들 2 - 이데아총서 14
칼 R.포퍼 지음 / 민음사 / 198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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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크스의 분석이 성공을 거둔 곳은 역사주의적 예언을 한 곳이 아니라, 역사주의적 분석을 한 곳이다. 마르크스주의에는 분명히 종교적 요소가 있다. 마르크스의 예언은 깊은 모멸감과 비참에 빠져 있던 당시의 노동자들에게 인류를 위한 새로운 미래의 건설에 대한 사명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의 예언적 종교는, 우리의 비판적 이성의 지원을 받아 세계를 변화하려는 평등주의에 대한 하나의 신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추종자들은 이성에 의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을 온통 내동댕이쳐 버리기가 일쑤였다. _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 , p265


 칼 포퍼(Karl Riamund Popper, 1902~1994)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 The Open Society And Iti's Enemies 2>에서 열린 사회에 대항하는 역사주의자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 사상을 비판한다. 그렇지만, 1권에서 플라톤(Platon, BCE 428/427 ~ BCE 348/347)에 대한 포퍼의 비판이 매우 날이 서있다면, 2권 마르크스에 대한 포퍼의 비판은 사뭇 결이 다르다. 비록 역사주의에 빠져 비과학적인 교조주의적인 논증을 폈다는 점에서는 플라톤과 같지만, 최소한 마르크스에게는 시대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있으며, 이 점에 대해 포퍼는 분명히 인정한다.  


 마르크스의 역사주의는 보수주의자였던 헤겔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다. 세계의 변화를 지향하는 그의 태도 속에 나타난 그의 행동주의는 오히려 역사주의(역사결정론)에 의해서 밀려나는 형편에 있음을 본다... 마르크스는 지식사회학적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에, 자기의 도덕론의 의의를 과소평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엄청난 영향력의 비결은 그의 도덕적 호소력에 있다. 그의 자유에 대한 사라오가 사회적 책임감은 계속 살아 남아야 한다. 그러나 그의 '과학적 마르크스주의'는 죽었다. _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 , p277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에서 포퍼의 비판 초점은 주로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에 있다. 플라톤이 고대의 부족주의를 부활시켜 소규모의 전체주의를 구현했다면, 헤겔은 이를 계승하여 정신의 흐름을 통해 민족과 국가 수준으로 고양시켰다. 이후 등장한 파시즘은 이러한 헤겔의 바탕 위에 더 넓게 자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포퍼는 헤겔의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헤겔은 현대 역사주의의 원천을 형성하고 있는데, 그는 헤라클레이토스와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직계 후손이다. 그의 철학의 위력과 매력은 그것이 무엇이나 다 척척 해답을 주는 만능의 철학이라는 것과, 그가 당시 프러시아 제국의 비호 아래 프러시아의 전체주의를 옹호하는 어용철학으로써 당시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는 사실과 부분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다. 그의 전체주의적 사상은 플라톤의 전체주의 사상과 현대의 전체주의 사상 사이에 교량 역할을 한다. _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 , p56


 비록 지적 원천에서는 헤겔의 좌파인 마르크스주의와 파시즘이 거의 동일하다 하더라도 마르크스주의에는 말할 것도 없이 인도주의적 충동이 밑에 깔려 있다. 더구나 헤겔우파와는 대조적으로 마르크스는 인간의 사회적 문제 가운데 가장 절박한 문제에 합리적 방법을 적용하려는 정직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노력의 가치는 그 노력이 대부분 실패에 그쳤다는 사실에 의해 감소되지 않는다. 과학은 시행착오에 의해서 진보한다. _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 , p123


 물론,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에서 사상의 주된 비판은 마르크스로 향한다. 그가 주장한 잉여가치론, 계급갈등, 자본주의 사회의 붕괴와 공산주의 사회의 도래 등 그가 사회과학적 방법을 통해 제시한 예언은 본문을 통해 철저하게 비판된다. 대신, 그가 인정받는 것은 <자본론 1>을 통해 통계적으로 제시된, 실증적으로 제시된 처참한 노동현실과 그에 대한 정당한 분노다. 이런 점에서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의 강도는 플라톤에 비해 덜 하다 할 수 있다.  


 마르크스의 분석이 성공을 거둔 곳은 역사주의적 예언을 한 곳이 아니라, 역사주의적 분석을 한 곳이다. 마르크스주의에는 분명히 종교적 요소가 있다. 마르크스의 예언은 깊은 모멸감과 비참에 빠져 있던 당시의 노동자들에게 인류를 위한 새로운 미래의 건설에 대한 사명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의 예언적 종교는, 우리의 비판적 이성의 지원을 받아 세계를 변화하려는 평등주의에 대한 하나의 신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추종자들은 이성에 의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을 온통 내동댕이쳐 버리기가 일쑤였다. _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 , p265


  무엇보다도 포퍼의 마르크스 경제론에 대한 최대의 비판은 '국가권력에 대한 경시'다. 앞서 헤겔의 사상이 국가의 의미를 한껏 고양시켜 자유를 억압시켰다면, 마르크스는 이와는 반대로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라는 계급 간 대립에만 지나치게 몰두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사회적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력의 부재. 물론, 여기에 대한 마르크스의 인식이 당대의 현실에 기반한 것임은 분명하지만, 변화하는 시간 속에서 움직인 국가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지 못한다. 이렇게 당대의 현실에 갇힌 마르크스 이론은 '민주주의 체제'라는 훌륭한 대안의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하고 혁명의 당위성만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교조주의라 하겠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들이 권력을 쥐었을 때는 정치력으로 경제력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국가 권력의 증대가 지닌 잠재적 위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국가 권력은 심각한 문제를 제기해 주지 않으며 오직 부르주아의 손에 든 힘만이 고약한 것이라고 그들은 보았다. 우리가 너무 많이 계획하면, 즉 우리가 너무 많이 국가에 힘을 부여하면 자유가 상실된다. 이것은 모든 계획의 종말을 뜻한다. _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 , p171


 중요한 것은 '권력이 어떻게 행사되느냐'이다. 이것은 정치적 문제에 중요한 것은 사람의 문제라기보다는 제도의 문제임을 뜻한다. 평등에로의 역사의 진보는 권력을 제도적으로 통제함으로써 성취할 수 있다. _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 , p211


 이처럼 칼 포퍼의 <열린 사회의 그 적들>은 직접적으로는 역사주의에 함몰된 전체주의 이론을 비판하고 있으나, 반증과 검증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사회공학, 사회과학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가정과 이에 기반한 논증은 결국 합리성을 가장한 비합리성이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사회과학은 진정한 과학이 될 수 없다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 본문에 실린 칼 포퍼의 비판은 분명 예리하며, 무비판적으로 <국가>, <법률> ,<정신현상학>, <자본>을 읽었던 이들에게 생각할 지점을 보여준다. 


 마르크스의 이론은 쉘러와 만하임에 의해서 과학적 지식의 사회결정론으로서 개발되었다. 지식사회학에 의하면, 과학사상, 특히 사회/정치문제에 관한 사상은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것은 대부분 무의식적 수준에서 영향을 받는다. 이와 같은 무의식적 요소가 그가 몸을 담고 있는 바로 그 장소, 즉 그의 사회적 서식처를 구성한다. 한 인간의 사회적 서식처가 거의 사상체계를 결정한다. 그런데 이렇게 형성된 그의 사상은 적어도 그에게는 아주 자명한 틀림없는 진리로 보인다. 이렇게 일련의 사상체계를 지식사회학자는 이데올로기 총체라 부른다. _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 , p296


 그렇지만, 추상과학이라 할 수 있는 수학 역시 공리(axiom))와 공준(postulate)을 자명(self-evidence)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증명을 펼쳐나가고, 실험에 의해 경험적으로 증명되는 현상 역시 특수한 조건 하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본다면 과연 객관적인 과학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관찰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결과값이 달라진다는 양자역학의 이야기까지 나오지 않더라도 포퍼가 주장한 진정한 객관성은 영원히 도달하기 어려운 이데아(Idea)가 아닐까. 이런 점에서 본다면 과학적으로 이데아를 추구하는 칼 포퍼야말로 본문에서 그렇게 플라톤주의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은 아닐런지 생각하게 된다... 


 과학적 객관성은 학문에 종사하는 한 개인의 심성에 그 토대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과학적 방법이 지닌 상호주관적인 공적 성격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 첫째로 자유로운 비판이 그것이며 둘째로 과학적 서술이 논리와 경험에 의해 시험될 수 있도록 분명하게 짜여져 있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과학적 방법의 공적 절차가 객관성을 점진적으로 높여 준다. _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 , p297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뼈대를 이루는 목적론은 플라톤의 변화에 대한 비관적인 생각을 낙관적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플라톤은 모든 변화는 원형인 완전한 형상 즉 이데아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는 퇴화의 과정 즉 파멸에로의 과정이라고 보았다. 이와는 반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변화는 궁극 목적을 향해 움직여 가는 과정으로 보았다. 그런데 이 궁극 목적은 다름아닌 사물이 지닌 본질인데 그것을 형상이라고 그는 불렀다. 그러므로 모든 사물의 변화는 결국 사물이 잠재적으로 지니고 있는 본질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파악된다. - P24

플라톤과 더불어 ‘파멸하는 사물은 본질에 그 토대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으로부터 연유한다‘고 헤겔이 말하긴 햇지만 헤겔은 플라톤과는 반대로 본질도 변화한다고 주장한다. 헤겔의 세계 속에서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세계에서처럼 모든 것이 변화 속에 있다. 그리하여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을 획득하기 위해 플라톤에 의해 애초에 도입된 본질도 여기서 면죄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변화는 파멸이 아니다. 헤겔의 역사주의는 낙관적이다. - P69

인간의 삶의 물질적 측면인 생산과 소비는 인간의 신진대사의 하나의 연장이라고 마르크스는 보고, 인간의 자유는 바로 이러한 신진대사의 필수품들에 의해 재한을 받는다고 보았다. 그는 헤겔과 같이, 자유가 역사발전의 목적이라고 보았다. 또 헤겔과 마찬가지로 자유의 영역과 인간의 정신적 삶의 영역은 동일하다고 보았다. 인간은 순수한 정신적 존재가 아니므로, 우리는 신진대사의 필수품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은 완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품위에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노동 조건을 개선하며, 노동조건을 평등화하며, 또한 단조롭고 기계적인 힘든 일들을 가능한 한 줄임으로써, 인간 모두가 어느 정도는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의 삶에 대한 중심 사상이다 - P147

한 때의 소수파 정당이 다른 정당을 폭력이나 다수표에 의해서 억압하기를 계획한다면, 그것은 현재 다수파 정당이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그것은 현재 다수파 정당이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그것은 압박에 대해 불평할 도덕적 권리마저 상실한다. 그리고 그것은 반대자를 힘에 의해서 억압하려고 하는 현재 지배정당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는 일이다. - P224

나는 도덕적 실증주의(특히 헤겔의 도덕적 실증주의)에 관해 언급했는데, 그것은 이런 이론이다. 지금 있는 도덕적 표준 이외에는 아무런 도덕적 표준이 없다. 지금 있는 것이 합리적이며 선한 것이다. 그러므로 힘이 정의다. 이 이른의 실제적 의미는 현존하는 사태에 대한 도덕적 비판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고찰하고 있는 역사주의적 도덕론(마르크스의 도덕론)은 도덕적 실증주의의 또 다른 한 형태에 불과하다. ‘도래하는 힘이 정의다‘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미래가 현재 대신에 들어섰을 뿐이다. - P286

역사 자체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 역사에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부여한 의미이다. 역사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이 수동적으로 끌려가야 할 역사의 의미나 법칙은 없다. 역사에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는 것은 인간이다. 우리는 역사 자체가 지닌 법칙과 의미가 무엇인가를 발견하여 예언하려고 하는 대신에, 우리가 역사의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 - P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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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8-18 0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저도 2권 찾아놨습니다.

겨울호랑이 2023-08-18 08:18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좋은 시간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