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쿠로스는 세계와 세계 안에 거하는 인간의 자리에 대한 철학적 해석을 통해 행복하고 안정된 삶의 영위를 목표로 하는 인간의 노력에 길을 제시하고자 노력했다. 그의 철학적 방법론은 기본적으로 경험주의적이다. 에피쿠로스는 인간의 감각이 현실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회의주의자들의 의혹을 부인하고 감각이야말로 세상이 사실상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한 정확한 표상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보았다.

결과적으로, 에피쿠로스주의자는 신을 믿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신에 대한 그의 믿음은 본질적으로 신이 인간사에 전적으로 무관심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있었다.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의 전략은 위험을 거부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고통의 제거가 쾌락 추구와 일치하는 만큼, 고통의 요인들을 제거하는 데 성공하는 사람은 결과적으로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스토아학파의 소크라테스주의가 보여 주는 가장 흥미로운 특징 중에 하나는 이른바 ‘윤리적 지성주의’의 정립이다. 이는 선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이 필연적으로 뛰어난 기량을 동반한다는 소크라테스의 생각 속에 함축되어 있다. 소크라테스는 스토아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기량arete과 앎episteme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스토아 철학자들은 뛰어난 정신적 기량의 옷을 입고 있어서 평범한phaulos 인간과 전적으로 구별되는 현자sophos만이 기량과 앎을 지배할 수 있다고 보았다.

현자는 자신의 기량을 의무적인 차원에서 받아들이지 않는다. 반대로 그는 개별적인 운명의 완성이, 따라서 그의 운명 역시, 필연적으로 선을 추구하며 우주 전체를 움직이는 어떤 계획의 실현에 기여한다는 것을 이해할 뿐이다. 여기서 현자의 자유란 신의 섭리에 의해 마련된 계획에 의식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여를 통해 신의 섭리가 실현되도록 자신이 적극적으로 기여한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이다.

우주의 종말을 결정짓는 것은 파멸과 동시에 또 다른 우주의 생성을 가져오는 분열이다. 우주의 만물은 주기적으로 영원히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 불에서 탄생하고 불 속에서 분해된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스토아 철학자들은 우주가 유한한 동시에 영원하다고 보았다.

그런 차원에서 스토아 현자의 영혼은 신들의 영혼과 조화를 이룬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신성한 영혼은 인간의 영혼처럼 이성적일 뿐 인간의 그것과는 달리 부패하거나 소멸하지 않는다. 신들은 종말의 분열에서 살아남을 유일한 존재들이다. 이들이 인간에게 미래를 보여 줄 수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감성을 기본적으로 네 종류로 구분한다. 고통은 현재의 실질적인 고통에 대한 견해이며 두려움은 미래에 다가올 고통에 대한 견해다. 쾌락은 현재의 실질적인 즐거움에 대한 견해이며 욕망은 미래에 다가올 즐거움에 대한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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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9-30 2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비싸서 살만한 가치가 있나 고민했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23-10-01 08:29   좋아요 1 | URL
서양철학과 관련한 여러 안내서가 이미 시중에 충분히 나와있어 그레이스님의 말씀에 공감됩니다. 개인적으로 책의 장점은 철학자의 사상을 알기 쉽게 입문자 수준에서 잘 요약해서 설명해 준다는 점과 함께 현대철학까지 폭넓게 소개하는 부분이라 여겨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책가격은 구입을 고민하게 만듭니다 ^^:)
 
소크라테스 회상록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크세노폰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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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 소크라테스를 고발한 자들이 도대체 어떤 논거를 제시했기에 소크라테스가 나라에 죽을죄를 지었다고 아테나이인들을 설득했는지 나는 가끔 이상하게 여기곤 했다. 소크라테스를 고발한 고발장의 취지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소크라테스는 첫째, 나라에서 믿는 신들을 믿지 않고 그와는 다른 새로운 신적 존재들을 들여옴으로써 둘째,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는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_ 크세노폰, <소크라테스 회상록> 제1권 제1장, p14


  <소크라테스의 변론 Apologia Sokratous>이 소크라테스(Scrates, BCE 470~399)이 자신에 대한 변론이라면, 크세노폰 (Xenophon, BCE 428~354?)의 <소크라테스 회상록 Apomnemoneumata>은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한 제자의 변론이라 하겠다. 크세노폰은 신들에 대한 불경(不敬)과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고발장의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은 사실로 반증한다. 평소 신들에 대한 공경에 대한 본인의 말과 평소 자신에게 엄격한 소크라테스의 생활태도로 볼 때 고발장의 내용은 터무니없는 것이라는.


 (17) 신들을 공경하되 자기 능력 이하로 해서는 안 되네. 그렇게 하는 사람은 신들을 공경하지 않음이 확실하니까. 능력껏 신들을 공경하는 사람은 신들이 가장 큰 복을 내려주실 것이라고 자신하고 기대해도 좋네. 가장 큰 복을 줄 수 있는 분들 말고 다른 데서 더 큰복을 기대하는 것도, 그분들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 말고 다른 방법으로 더 큰 복을 기대하는 것도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니까. 또한 신들에게 고분고분 복종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분들을 기쁘게 해드리겠는가?"_ 크세노폰, <소크라테스 회상록> 제4권 제3장, p218 


 (1)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말에 설득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또한 놀랍다. 앞서 말한 것에 덧붙여 소크라테스는 우선 성욕과 식욕에 관한 한 가장 자제력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다음 그는 추위와 더위와 온갖 노고를 가장 잘 참고 견뎠다. 그 밖에도 그는 절제가 몸에 배어 아주 조금만 가지고서도 아주 쉽게 만족했다. (2) 그런 그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불경한 자나 범법자나 욕심쟁이나 호색가나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으로 만들었겠는가? _ 크세노폰, <소크라테스 회상록> 제1권 제2장, p21


 <소크라테스 회상록>은 철학자이자 역사가, 군인이었던 크세노폰의 강직함과 간결함이 잘 드러나는 작품으로 여러 면에서 또다른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Platon, BCE 427~348)의 대화편들과 비교하게 된다. 플라톤의 작품들이 주제를 향해 치밀하게 계획된 구조로 짜여져 있다면, 크세노폰의 작품은 다소 느슨한 구조로 (플라톤에 비해) 소크라테스의 행적을 살핀다. 만약, 스승 공자(孔子, BCE 551~479)의 제자 중 말 잘하는 자공(子貢, BCE 520~456?)이 플라톤이라면, 강직한 자로(子路, BCE 542~480)에 크세노폰을 비할 수 있을까.


 (1) 나는 앞서 소크라테스가 솔선수범하고 대화를 나눔으러써 실제로 제자들을 이롭게 했다고 말했는데, 나의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기억나는 대로 그런 일을 기록하려 한다. 우선 소크라테스가 종교를 대하는 태도는 분명 제물을 바치거나 조사의 제사를 지내는 등의 일과 관련해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델포이의 퓌티아가 주는 조언과 정확히 일치한다. _ 크세노폰, <소크라테스 회상록> 제1권 제3장, p41


 그렇지만,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자로'가 남긴 작품을 통해서 플라톤의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소크라테스의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한다.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는 용기, 절제, 정의, 국가 등 주로 형이상학적 논의를 펼치며, 불멸의 영혼과 이데아에 대해 말한다. 독자들이 대화의 주요 내용에 담긴 플라톤의 목소리에 주목하면서, 소크라테스는 구석으로 밀려난 것이 플라톤 대화편에서의 소크라테스 위상이라면, 크세노폰은 소크라테스를 중심에 세운다. 그리고, 여기에서 그는 보이지 않는 관념과 추상에 대한 논의 대신 일상 생활에서의 도덕에 대해 말하면서 세계 4대 성인(聖人)의 모습을 보여준다.


 (10) 그러자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그래서 네 어머니가 네게 호의를 베풀고, 네가 몸이 아프면 정성껏 돌보고, 네게 필요한 것이 부족하지 않도록 보살필뿐더러,  너에게 복을 많이 내려달라고 늘 신들에게 기도하고, 너를 위해 서약한 것을 이행해도 너는 어머니가 드세다고 말하는 게냐? 내 생각에, 그런 어머니를 참고 견딜 수 없다면 너는 네게 좋은 것들을 참고 견딜 수 없을 것 같구나(p82).... (14) 그러니 아들아, 네가 분별력이 있다면 어머니를 홀대한 것을 용서해달라고 신들에게 기도할 것이다. 신들이 너를 배은망덕한 자로 여기고 네게 잘해주기를 거절하지 않도록 말이다. _ 크세노폰, <소크라테스 회상록> 제2권 제2장, p83


 (4) 하지만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나 함께 자란 이들은 강한 연대감을 갖게 되네. 야수도 함께 자란 경우 서로에게 어떤 그리움 같은 것을 느끼니 말일세. 게다가 다른 사람들도 형제가 없는 사람보다는 형제가 있는 사람을 더 존중하고 덜 공격한다네. _ 크세노폰, <소크라테스 회상록> 제2권 제3장, p86


 이렇게 우리에게 보여지는 인간 소크라테스의 주제는 플라톤의 작품에서의 주제와는 조금 다르다. <소크라테스 회상록>에서 그는 수학 대신 도덕철학을 말한다. <메논>에서 소크라테스가 기하학 증명을 통해 상기설을 주장하며, 탁월함을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을 말했다면, <소크라테스 회상록>에서는 육체의 단련과 배움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주제 뿐 아니라 내용까지 충돌하는 면이 한 인물 소크라테스에게서 발견된다면, 우리는 어디까지를 소크라테스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39) 크리토불로스, 자네가 어떤 일에 훌륭해 보이기를 원한다면 실제로 유능해지도록 노력해야 하네. 그게 가장 빠르고 가장 안전하고 가장 훌륭한 길일세.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간들 사이에서 미덕이라고 불리는 것은 모두 학습과 연습으로 증대됨을 알게 될 걸세. 크리토불로스, 나는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자네에게 다른 의견이 있다면 말해주게. _ 크세노폰, <소크라테스 회상록> 제2권 제6장, p107


 (4) 하지만 체력단련을 한 결과와 하지 않은 결과는 정반대일세. 체력단련을 한 사람은 건강하고 강하기 때문일세. 그리하여 그들 중 대다수가 싸움터에서 무사히 귀환하고 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난다네. 또한 대다수가 친구들을 도와주고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을 하고, 그래서 고맙다는 말을 듣고 명성을 크게 드날리고 명예가 크게 드높아지며, 그래서 여생을 더 즐겁고 더 훌륭하게 살고 자식들에게는 더 훌륭한 살림 밑천을 남겨놓는다네. _ 크세노폰, <소크라테스 회상록> 제3권 제12장, p180


 <소크라테스 회상록>에 드러난 인간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우리에게 플라톤의 작품에서는 찾기 어려웠던 그가 고발당한 이유를 알게 된다. 산파술 과정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논박과 결과적으로 상대가 느낀 모멸감. 우리는 이러한 감정이 쌓여서 결국 인간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고갔음을 추측할 수 있다.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회상록>은 이처럼 소크라테스의 모습에서 나오는 플라톤의 주장 대신 인간 소크라테스를 중심에 놓으면서 그의 삶에 대해 함께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40) 소크라테스에게 이런 일을 당한 사람들은 대부분 다시는 그를 찾지 않았고, 소크라테스는 그들을 멍청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에우튀데모스는 소크라테스와 함께 되도록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고는 자기가 이렇다 할 인물이 될 수 없다고 믿었다. 그 뒤로 그는 어쩔 수 없는 경우 말고는 소크라테스의 곁을 떠나지 않았고, 소크라테스의 습관 가운데 일부를 모방하기도 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에우튀데모스의 마음가짐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는 더는 그를 놀리지 않았고, 그가 알 필요가 있다고 여겨지는 지식이나 지키는 것이 아주 좋다고 생각하는 습관을 최대한 간단명료하게 설명해주었다. _ 크세노폰, <소크라테스 회상록> 제4권 제2장, p211


 천병희의 <소크라테스 회상록>에는 그외에도 <향연 Symposion>과 <소크라테스의 변론  Apologia Sokratous>도 함께 실려있다. 뒤의 두 작품은 플라톤의 대화편에도 동일한 제목으로 실려있는데, 이들 작품에도 각자의 개성이 잘 드러난다. 소크라테스의 자공과 자로를 서로 비교해 읽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 되리라 생각하며 글을 갈무리한다...

(7)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그러니까 자네는 그들이 자유민이고 자네 친척이기 때문에 먹고 자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겐가? 자네는 다른 자유민 가운데 그런 식으로 사는 자들이 자신의 생계유지를 위해 할 줄 아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보다 더 잘살고 더 행복하다고 보는가? 아니면 자네는 게으름과 무관심은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 것을 배우고 배운 것을 기억하며 신체를 건강하고 강하게 하고 살아가는 데 유용한 것을 획득하고 지키는 데 도움이 되지만, 근면과 세심함은 아무 쓸모없다고 느끼는가? - P111

(1) 한번은 용기는 가르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타고난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어떤 사람의 몸이 다른 사람의 몸보다 노동에 선천적으로 더 강하듯이, 어떤 사람의 혼은 다른 사람의 혼보다 위험에 선천적으로 더 용감하다고 생각하네. 같은 법률과 관습 민테서 자란 사람들도 용기에서 큰 차이가 나는 것을 보기 때문일세. (2) 하지만 나는 모든 사람의 본성은 학습과 훈련에 따라 더 용감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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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3-09-13 15: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같은 스승을 두고도 제자들이 이렇게나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 흥미로워요^^

겨울호랑이 2023-09-13 15:49   좋아요 1 | URL
사람들이 각자의 관점에서 대상을 바라보고 해석하기에 조금씩 다른 형태와 색깔로 남은 것 같아요. 말씀처럼 재밌는 지점입니다 ^^:)
 

이러한 상황을 도입하기 위해 시인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수’ 있는 일들, 아울러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보이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 관한 담론을 ‘가능한 세계’의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았고, 바로 그런 의미에서 시가 역사 서술보다 고차원적이라고 생각했다.

연민은 불행에 빠진 주인공을 향한 연민이며 공포는 재난의 잔인함이 불러일으키는 공포다. 이 두 가지 종류의 감정에 참여하면서 관객 혹은 독자는 카타르시스 혹은 정화를 경험한다. 즉 주인공의 고통에 참여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그 무시무시한 감정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이 가지고 있는 가장 흥미로운 특징은 그가 메타포에 ‘인식의 기능’을 부여했다는 사실이다. 『시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메타포를 이해하는 것이 "유사한 개념" 혹은 "비슷한 것들을 포착할 줄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기록했다.

하지만 이러한 모방 이론에만 집착한다면, 예를 들어 새들이 화가 제우시스Zeusis가 그린 포도 알들을 쪼아 먹으러 모여 들었다는 전설만 중요시한다면(이것이 바로 예술을 모방의 모방으로 보고 비판하던 플라톤이 예술을 이해하던 방식이다) 『시학』의 핵심적인 내용, 즉 ‘행동하는 사람들’의 모방과 관련된 부분은 놓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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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철학 케니의 서양철학사 2
앤서니 케니 지음, 김성호 옮김 / 서광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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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어떤 시대의 철학보다 중세철학에 접근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장애물이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가 중세철학자들의 사상을 제대로 파악하려 한다면 반드시 극복하여야 할 장애물로 다음의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즉 언어상의 장애물, 전문성과 관련된 장애물, 종교적 장애물 그리고 소속 교단과 관련된 장애물이 존재한다. _ 앤서니 케니, <중세철학> 머리말, p15


  앤서니 케니(Anthony Kenny, 1931 ~ )는 <중세철학 Ancient Philosophy: A New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volume 2>에서 중세철학의 어려움에 대해 말하면서 시작한다. 학자들에게는 어려움이겠지만, 일반독자들에게도 가까이하기 어려운 심리적 장벽으로 작동한다. 중세철학이 라틴어와 로마 가톨릭이라는 공통 분모 위에서 주로 성직자들에 의해 수행되었기에, 이 시기 철학을 일반적으로 '철학은 신학의 시녀'라는 말로 요약되며, 이는 가톨릭 신자가 아닌 이들의 접근을 어렵게 하고 관심을 가지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그렇지만, 중세철학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큰 흐름 아래 무수히 많은 여러 갈래의 흐름이 있으며, 이러한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라는 바람이고 이 바람은 이슬람으로부터 불어왔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독자들은 어느 시기보다 중세철학이 서양철학에서 보다 세계적이었다는 의미임을 이해하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종교적 세계관을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적 전통 안에 놓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는 가능한 한 성서를 플라톤, 키케로와 조화시키려 애쓰며 이런 일이 불가능할 경우에만 반기독교적인 철학적 주장들을 상세히 언급하고 이를 반박하지 않을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여러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화자로서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이후 라틴어권에서, 심지어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시대를 넘어서까지도 철학적 논의의 기본 체계를 제공한 성서적이고 고전적인 요소들을 처음 생각해 내었다. _ 앤서니 케니, <중세철학> 머리말, p44


 

 중세철학의 큰 흐름을 결정 지은 이는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Hipponensis, 354~430)였다. 그가 <신국론 De Civitate Dei>을 통해 '하느님의 나라'와 '지상의 나라'를 대조하면서 로마의 역사를 히브리의 역사와 결부시키면서 자연스럽게 플라톤(Platon, BCE 427~348)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E 384~322)의 철학 또한 성경 해석의 틀로 들어오게 된다. 다만, 이 시기 그리스 문화 유산은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로 나뉘어 전승되었고, 서구 세계가 아리스토텔레스를 보다 자세히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십자군 원정 시기 이후였다. 


 이븐 루슈드는 플라톤의 저술들도 알고 있었지만 플라톤을 아리스토텔레스만큼 높이 평가하지 않았으며 오직 아리스토텔레스만을 최고 수준의 인간 지성을 드러낸 천재로 여겼다. 사실 그는 플라톤의 <국가>를 의역하기도 했는데 - 이는 어쩌면 당시 스페인에서 구할 수 없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대용으로 어쩔 수 없이 한 일이 아닌가 싶다. 그는 <국가> 중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등장하는 중요한 대목들을 생략하기도 했으며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더욱 가깝게 만들기 위하여 여러 곳을 변형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그는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에서 벗어난 아리스토텔레스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주석가로서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사실상 그는 자신이 깨달았던 것 이상으로 플라톤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_ 앤서니 케니, <중세철학>, p95


 그렇지만, 서구 세계에 전해진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및 비롯한 자연과학은 온전히 그리스 문화의 유산만은 아니었다. 이븐 시나(Ibn sina, 980~1037),  이븐 루슈드 Ibn rushd, 1126~1198), 알 가잘리(Al ghazali, 1058~1111) 등에 의해 해석된 사상이 서구 세계에 전해지면서 로마 가톨릭 교리 또한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는 점은 이 시기의 철학이 개별적이면서도 보편적이라는 중세철학의 논제를 성격으로 갖는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공의회가 열리는 동안 플레톤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업적을 비교하는 강의를 하였다. 여기서 그는 라틴 철학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한다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보다는 오히려 플라톤을 더욱 선호하여야 한다. 플라톤은 단지 최초의 운동을 일으킨 존재가 아니라 창조주로서의 신의 존재를 믿었으며 또한 영혼의 불멸을 진정으로 믿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를 잘못 파악하였으며, 덕을 중용으로 잘못 생각하였으며, 행복을 관조와 잘못 동일시하였다.  _ 앤서니 케니, <중세철학>, p174


 <중세철학>을 통해 우리는 화이트 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의 유명한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는 말의 의미를 깊이 음미할 수 있다. 처음에는 이교도의 철학으로 배척되었지만, 플로티누스(Plotinus, 205~270)의 신플라톤주의가 기독교 철학과 갖는 공통분모를 통해 받아들여지고, 뒤이어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1224~1274)로 대표되는 스콜라 철학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용되며, 이와는 별도로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 1266~1308)와 윌리엄 오컴(Gulielmus Occamus: 1287~1347) 등의 일단의 프란치스코회 수도사들에 의해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는 등 기독교 신학이라는 흐름 아래 무수히 많은 소용돌이가 일었음을 확인한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택한 스콜라철학자들 대부분이 인간의 궁극적 목적을 지복을 누리면서 신을 바라보는 일정의 지적인 과정으로 생각한 반면 스코투스는 천상에서 축복받은 자들이 신과 하나 되는 것은 본질적으로 의지의 자유로운 행위로 구성된다고 생각한다. 스코투스는 인간과 신의 의지 모두를 이전의 그 어떤 철학자가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더 폭넓은 능력으로 생각한다. _ 앤서니 케니, <중세철학>, p148


 또한,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 ?~1384)의 사상에서 엿보이는 사회주의 사상은 중세철학이 고립된 '신학을 위한 수단'이 아닌 근대혁명의 씨앗을 내부적으로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중세철학이 갖는 보편성과 후대 철학과의 연결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세철학에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것은 이러한 모든 논의의 끝에 신(神)이 있다는 것과 이를 위해 삼단논법과 같은 쓸데없이 어려운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때문이 아닌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만, 중세철학의 '바늘 끝에 천사가 몇이나 매달릴 수 있는가'와 같은 내용을 오늘날까지 고민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를 위해 사용한 방법론까지 무시한다면 뒤이어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과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를 이해하기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그 점에서 중세철학은 '신학의 시녀'인 동시에 '근대철학의 씨앗'이 아닐까 하는 요약으로 리뷰를 갈무리한다... 


 위클리프의 혁신적 생각들 중 가장 놀라운 것은 자신의 소유권(dominium) 이론에 기초하여 사회주의를 제안한 점이다... 신의 모든 재화는 모두가 공유하여야만 한다.이는 다음과 같이 증명된다. 모든 사람이 은총 받은 상태라고 생각해 보자. 만일 누군가가 은총 받은 상태라면 그는 세계와 세계에 포함된 모든 것의 주인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우주 전체의 주인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모든 것을 다른 모든 사람과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의 수가 많다면 이는 일종의 모순이다. 따라서 모든 것은 반드시 공유되어야만 한다. _ 앤서니 케니, <중세철학>, p167


 유명론과 실재론 모두 어떤 단어가 지시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 결과로 등장한다. 단어들이 지시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단어들은 사물을 의미하기도 하며, 사고를 표현하기도 한다. 단어들은 적절한 사고를 일깨움으로써 사물을 정확하게 의미하는데 이때 적절한 사고는 우리의 정신으로 하여금 세계 안에 있는 사물을 떠올리게 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우리는 바로 이런 개념들을 통하여 사물에 관하여 말할 수 있게 되며, 우리 목에서 나는 소리 또한 의미를 지닌 단어가 된다. _ 앤서니 케니, <중세철학>,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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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09-12 1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케니의 중세철학은 정말 좋죠!

겨울호랑이 2023-09-12 21:05   좋아요 0 | URL
네 특히 전반부에서 철학사상의 전체적인 흐름을 조망한 후 뒤에서 주제별로 보다 깊이 있게 들어간 구성이 내용 이해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

2023-09-12 2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12 22: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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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2 23: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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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2 23: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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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철학적 사유를 인도해 온 질문은 ‘어떻게 하면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의 ‘주변을 맴돌’기만 하는 후세대들이 이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철학자에게서 벗어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상을 떠난 후에 오간 수많은 이야기들, 때로는 그를 비판하기도 하는 이야기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형이상학자로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르네상스 시대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반면에 새롭게 조명을 받으며 많은 이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그의 시학과 수사학이었다. 이러한 전통은 계속해서 바로크 수사학으로까지 이어졌고 20세기 중반에 들어와 영국 철학자들의 본격적 연구 대상으로 떠올랐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름은 논리학 분야에서 끊임없이 거론되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세계로 되돌아가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많은 현대 철학자들 사이에서, 특히 현상학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자연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전반적인 생각은 목적론적이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은 외부적인 지성의 활동에 의해 주어지지 않으며 단 하나의 외부적인 목표를 전제로 하지도 않는 독특한 형태의 목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은 자연적인 물체 안에 내재하는 무의식적인 원리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이 원리가 다름 아닌 물리physis, 즉 자연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설명 방식은 역시 목적론적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세포조직은 기관을 구성하기 위해 존재하고 기관은 기능을 목적으로 존재하며 기능은 삶의 영위를 위해 필요하다. 주로 비교를 통해 동물의 해부학과 생리학의 이해를 도모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서로 상이한 기관들이 상이한 종의 동물들에게서 동일한 기능을 발휘하는 경우에 주목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포유동물의 폐와 물고기들의 아가미가 지니는 유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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