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시(建始, 성제의 연도) 이래로 왕씨들이 처음으로 나라의 운명을 장악하고 애제(哀帝)와 평제(平帝)도 단명하니 드디어 왕망이 제위(位)를 찬탈하였는데, 대개 그의 위엄과 복록으로 내려온 것은 차츰 차츰 이루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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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매뉴얼 - 인물, 사상, 유산
피에르-프랑수아 모로 지음, 김은주.김문수 옮김 / 에디토리얼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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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매뉴얼 - 인물, 사상, 유산>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을 것이며, 저자의 친절한 요약에 다른 부연은 필요 없을 듯하다. 다만, 책을 통해서 스피노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데카르트의 방법론과 특히 <정념론>과의 연계가 필요함을, <에티카>에서 제시한 철학의 구조가 영원의 상 아래서 정치철학 전반의 기본 골격으로 확장되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정신주의, 신비주의, 범신론이라는 형용어 - 분명 스피노자는 이 중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결국 스피노자주의를 특징짓는 데 가장 적당한 형용어는 아마도 ‘합리주의‘라는 용어일 것이다. 그런데 이 용어는 다른 철학자들에게도 적용되므로 이 말 자체를 더 분명히 해야 한다. 절대적 합리주의 - 게루와 마트롱에게서 빌려 온 이 표현에 대해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이 표현은 이성이 도처에, 단번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실재적인 것은 모조리 지성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핵심은 스피노자 체계가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말해진 모든 것은 이 목표를 향해 있음을 환기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평화, 안전, 정치적 자유를 공유하게 하는 것, 또한 그들 중 최대수가 영혼의 해방을 누리게 하는 것 말이다._ 피에르-프랑수아 모로, <스피노자 매뉴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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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튜어트 밀의 윤리학 논고 대우고전총서 53
존 스튜어트 밀 지음, 박상혁 옮김 / 아카넷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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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튜어트 밀의 윤리학 논고>에 실린 세 편의 에세이 중 <벤담>, <콜리지>는 두 편의 글이면서 하나의 구조를 만든다. <벤담>을 정(正)으로, <콜리지>를 반(反)으로 위치시킨 변증법(변 스튜어트 밀의 윤리학 논고>에 실린 세 편의 에세이 중 <벤담>, <콜리지>는 두 편의 글이면서 하나의 구조를 만든다. <벤담>을 정(正)으로, <콜리지>를 반(反)으로 위치시킨 변증법(辨證法)의 구조 안에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밀의 사상을 합(合)의 자리로 인식하게 된다. 원래 <존 스튜어트 밀 선집>을 정리할 계획이었으나, 그보다 서문 격으로 <존 스튜어트 밀의 윤리학 논고>를 간략하게 언급하는 편이 좋을 듯하다. 일단 먼저 읽은 책을 정리한 한 후가 되겠지만...

밀은 진보주의자로서 벤담이 기존에 존재하는 것들에 의문을 제시하는 방법을, 보수주의자로서 콜리지가 기존에 존재하는 것들의 의미와 그것이 원래 실현하고자 했던 이념이 무엇이었는가를 묻고 그 이념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를 질문하게 했다고 밝히고 있다.(p265)... 밀은 벤담과 같이 진보주의 진영에 속한다고 밝히면서, 밀은 이 두 학파를 설득시키기 위해 벤담이 주장하는 진리가 단지 절반의 진리라는 것을, 그리고 콜리지가 중요한 나머지 절반의 진리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려 한다._ 존 스튜어트 밀, <존 스튜어트 밀의 윤리학 논고> 해제, p266

밀에 의하면 자연의 틀은 그 전체로 보았을 때 인간이나 다른 유정적 존재들의 선을 주된 목적으로 해서 디자인된 것으로 볼 수 없다._ 존 스튜어트 밀, <존 스튜어트 밀의 윤리학 논고> 해제,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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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보편백과전서 Encyclopaedia universalis>의 1973년도 네 번째판의 광범위한 ‘근대성Modernite‘ 항목은 ‘근대적‘ 개념의 세 번째 의미가 언어규범 속으로 진입했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확인해준다.
이 항목은 마지막 현재로 우리의 근대성을 과거와 질적인  단절을 통해  규정하는  작업을  시도하지  않는다. 근대성은 오히려 운동 범주로, "변화에 대한 표준적인 도덕 morale canonique du changement"으로 정의된다. 변화의 필연성은 미래를 향한 과도기로 일시적인 현재에 대한 의식의 결과이다. 이러한 의식은 문명 타입의 토대로 전통에 대한 순응과 정반대로 대치된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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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9 1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09 1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간 삶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정말 중요한 것을 고르라고 한다면, 그것은 각자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류의  태반이 이 중요한 행복의 요소를 매우 불완전하게 향유하고 있거나 아니면 그것에 대한 접근이 아예 봉쇄되고 있다. 그런 것이 없다 보니 많은 여성들의 삶은 실패로 끝날 수 밖에 없다. 성공하는 모든 남성들의 삶 뒤편에는 실패에 신음하는 여성들의 삶이 있다. 사회가 아직 어떻게 할 수 없는 환경 때문에 그와 같은 실패가 불가피하다면, 적어도 사회가 그런 실패를 더 키워서는 안 된다. 부모는 무지하고 젊은이들 자신은 경험이 부족해서 또는 마음에 맞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외부 기회가 없어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해야 할 때, 수많은 남성도 마지못해 그런 일을 하면서, 결국 무능한 존재로서 한 인생을 보낼 수밖에 없다. _ 존 스튜어트 밀, <여성의 종속> 中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 ~ 1873)은 <여성의 종속 The Subjection of Women>에서 여성에 대한 불평등이 여성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도, 남성에게도 좋지 않다는 점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밀은 <여성의 종속>에서 어떤 근거로 위와 같은 주장을 하는가?


 먼저 사회 전체적인 불이익 문제는 <여성의 종속>에서 인류의 절반이 자신이 불행하다는 감정을 갖고 산다는 것이 사회 전체 이익에 맞지 않는다는 공리주의(功利主義, Utilitarianism)관점에서 설명된다. 또한 남성에 대한 불이익의 경우 여성의 불평등은 자신의 덕성(德性)에 해롭기 때문에 좋지 않다는 점을 말한다. 간략하게, 능력이 뛰어난 여성이 능력이 부족한 남성의 지배를 받는 부조리한 상황은 결국 그의 삶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처럼 공리주의에 기반한 밀의 주장의 근거는 대체적으로 추상적인 윤리 위에 놓인다.


 이에 반해,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 ~ 1883)은 <자본론 Das Kapital>을 통해 남여간의 불평등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산업자본재의 발달로 노동의 난이도가 낮아지면서, 남성이 여성으로, 여성이 어린이로 대체되는 과정은 '동일임금 동일노동'이라는 원칙이 깨졌을 때 생겨나는 중산계급의 붕괴를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 만연한 남여 간 임금격차의 불평등 문제가 어떤 결과를 갖게 되는가는 <자본론>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능력을 가진 저렴한 노동력(여성)이 있다면 왜 굳이 남성을 써야 하는가? 결국 끊임없이 실질임금 하락의 상황에 몰린다는 것이 <자본론>이 주는 교훈일 것이다.


 밀과 마르크스가 사회를 바라보는 접근방식은 서로 달랐지만, 이들은 각기 다른 방법을 통해 불평등 문제의 현실 인식과 개선방향을 조명이라는 큰 틀에서는 대체로 일치된 견해를 보인다. 불평등은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시기적으로 하루 늦었지만, 어제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불평등의 문제가 직접 당사자 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좋지 않은 우리의 문제임을 생각한다. 당장 남성들의 어머니, 아내, 자매, 딸로서 관계를 맺는 이들이 불행하게 느낀다면 가족으로서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월평균 가구 소득이 줄어든다는 현실적인 문제까지 들지 않더라도 불평등은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여성 뿐 아니라, 연령, 인종, 종교, 성 정체성 등 여러 문제로 차별받는 이들이 사회에 없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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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9 1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09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21-03-09 1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첫문장에서 밀이 말한 ‘행복=자신이 하고 싶은 일의 추구’는 ‘공리주의=자유주의(자본주의)’의 전형처럼 보입니다.
그만큼 결론이 마르크스와 같을지라도 본질은 크게 다를 수 있다고 생각듭니다. ^^

겨울호랑이 2021-03-09 19:36   좋아요 1 | URL
동감입니다. 밀의 주장을 들여다보면 생존에 대한 처절함보다는 더 나은 삶을 추구한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에 반해 마르크스 기록은 처절함으로 가득차 있다는 점에서 다소 이론적이고 당위적인 느낌을 받게 됩니다. 지향해야할 평등과 불평등이 가져온 비극이 밀과 마르크스의 차이 중 하나는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바람돌이 2021-03-09 1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밀의 얘기는 너무 추상적이어서 공감을 받기는 좀 어려워보여요. 그럼에도 머나먼 19세기에 평등에 대한 논의를 저만큼 제기할수 있었던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마르크스의 생각이 훨씬 더 와닿지만요.

겨울호랑이 2021-03-09 19:39   좋아요 0 | URL
저 역시 밀의 주장을 들으면서 조금은 진부한 논리 전개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보다는 자신이 비참한 마르크스의 기록이 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들의 차이는 이론과 현실의 차이는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