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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156
장석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4월
평점 :
춥다. 추워서 이불 속에서 비어져 나오기 싫었지만 결국 나와 적는다. 진형준의 평까지 다 읽고 나와 몇 자 적다 뒷표지에 적힌 말까지 다 눈으로 삼켰다. -장석남 시를 보면 어휘력이 함빡 는다. 물론 봤을 때만 이다. 눈에서 멀어지고 맘에서 멀어지면 또 다시 내 부박한 어휘로 돌아온다. 한때는 어휘와 사람이 같은 것인 줄 알았는데 정말 그럴까? 어느 정도는 그렇기도 하겠지. (그렇담 저렴한 어휘만 쓰는 사람은 저렴한 사람인가요? 글쎄.)- 문지 시집은 어쨌든 뒷말이 제일 좋다. 이성복 시집도 그렇고 어느 시집이건, 대부분 뒷표지에 적힌 말이 가히 절창이다. 그래서인지 이번도 그렇다.
서른 살에 써낸 시집이다. 첫장은 옛노트에서. 이제는 좀 더 가깝다. 예전에 봤을 땐 멀기만 하더니. 가까워졌나보다. 부럽기도 하다. 서른에 이런 시편을 써내다니. '공터'나 '버스 정류장 옆 송월전파사' 같은 시는 부럽다. 또 부러운 시가 '송학동 1'이랑 '한겨울 목련나무', '꽃밭을 바라보는 일'. 차라리 이런 시선 자체가 부럽다 해야 겠다 .깊고 멀어서 부럽다. 지금 나는 얼마나 부박하고 범박한가. 薄은 얇을 박字다. 나는 얇아 세상 둥실 떠다니느라 정신 잃은 평범한 안목밖에 없는 것 같아 속상하다. 좀 더 넓고 깊어지려면 어찌해야 하나. 허허허.
그러다가 뒷편 시들 생각하면 여러 시인들 흉내도 내고 이리 뒤채고 저리 뒤채고 했던 게야 하면서 위안도 얻는다. 그러면서 이런 것도 시집에 엮이고 하며 불평불만도 늘어놓고. 마음이 왔다갔다 하는구나.
요새 장석남 시집이 좋아 다 보고 있는데. 그는 참 꽃밭의 장관 같다. 이 꽃 저 꽃 돌보느라 여념이 없다.
장석남 시집을 읽다 꽃 이름이 궁금해졌다. 꽃을 볼 때마다 갸륵해진다. 저 작은 것이 피어난 내력의 무궁무진함.
담쟁이덩쿨에 온 가을의 붉은 빛 같은 게 보인다. 홍제천에 쑥부쟁이들은 누가 심었을까. 그 손길을 내 속에서 본다. 상상이라 아름답지만 때로 이렇게 아름다워도 되지 않을까. 때로 그런 간격이라도 필요하지 않을까. 매일 나의 속된 마음이 다 그 속에서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된다.
때로 꽃은 음악보다 아름답다. 한때 정원사나 식물원을 꿈꾸기도 했지만 그것은 도서관 사서를 꿈꾼 것과 다르지 않다. 사람 없는 세상에 대한 꿈, 비속함 없는, 아니 비속하다는 의식조차 없었으면 좋겠다는 꿈. 거짓과 진실 사이를 거닐다 길을 잃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대한 꿈. 그래, 이루어질 수 없는 이유다.
그래, 식물에 관련한 책을 한 권 샀다. 꽃의 내력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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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을 바라보는 일
저, 꽃밭에 스미는 바람으로
서걱이는 그늘로
편지글을 적었으면, 함부로 멀리 가는
사랑을 했으면, 그 바람으로
나는 레이스 달린 꿈도 꿀 수 있었으면,
꽃 속에 머무는 햇빛들로
가슴을 빚었으면 사랑의
밭은 처마를 이었으면
꽃의 향기랑은 몸을 섞으면서 그래 아직은
몸보단 영혼이 승한 나비였으면
내가 내 숨을 가만히 느껴 들으며
꽃밭을 바라보고 있는 일은
몸에, 도망온 별 몇을
꼭 나처럼 가여워해 이내
숨겨주는 일 같네.
2010년
9월 30일 목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