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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과 열정의 시대 - 일제강점기 장르 단편선
곽재식 외 지음 / 구픽 / 2024년 8월
평점 :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이 통치했던 시대를 오래 살았다.
어둠만이 가득했던 시대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이번에 일제강점기에 일어났을 법 한 이야기들로 가득한 장르 단편선이 나왔다.
★ 곽재식-정직한 첩보원
세상에는 인생을 살면서 가능하면 가지 않는 것이 좋은 장소들이 있다.
책의 첫 문장.
조선총독부 정보실과 지하광복단 양쪽에서 첩보원으로 활동하는 정영재의 이야기.
"첩보원이 잘해야 하는 것은 거짓말이다."라고 보통 생각한다.
그러나 정영재는 정직하게 말하면서 월급을 양쪽에서 받을 수 있었다.
결국 정영재는 가장 좋은 방법이 정직하게 말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어렵지 않게 도달했다.
14쪽
정영재는 지하광복단에서 홍춘화에게 의심을 받았을 때 자신의 호텔방 한켠에 있는 수납장을 열어 그동안 받은 술을 보여주며 <정직하게 사는 관점>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작가의 한마디로 '실제로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실화를 조사한 내용을 활용하여 쓴 이야기'라고 하는데, 거짓이 가득했을 시기에 생존하기 위해 정직하게 살았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최희라-푸른 달빛은 혈관을 휘돌아 나가고
다만 조국엔 언제나 감옥이 있었다.
68쪽.
독립운동가 이관술이 해방 후 현대일보에 기고한 회상록 제목처럼 일제시대 독립운동가의 삶은 어려웠다.
구두닦이의 이름을 짓고 기억해야 하는 그.
그의 본명은 이 땅에서 감옥행을 맡아놓은지 이미 오래였기 때문이었다.
66쪽
'사회주의자 잡는 일경의 호랑이'인 마쓰우라 경부의 첩의 소생인 마쓰우라 후미히토는 태어나보니 일본 제국이 조국이었다며 사회주의자인 구두닦이를 잡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지금도 아직 다 없어지지 않은 일제시대의 그림자 같았다.
★배명은-호열자 손님
진실에 거짓을 섞어 사람들을 속이는 일은 생각보다 쉬웠다.
107쪽
이 문장이 기억에 남는 건 월매가 호열자에 걸린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말을 하면서 도와주기 때문이다.
일제의 토지개혁으로 본래 가지고 있던 땅을 빼앗기고 부모님도 역병으로 잃어 살고자 경성으로 온 월매.
역신 오뉴월이 만주에서 온 코로리(콜레라)역신을 이기기 위해 월매에게 도움을 받는다.
"그래도 한 명 이상은 구했겠지."
135쪽
일제시대라는 엄혹한 시대에 더해 콜레라라는 병까지.
절망만이 가득해보이지만 뉴월이 말한 대로 희망은 남아있다는 이야기.
★ 이작-피와 로맨스
독립운동가 현정건과 현계옥을 상상하다가 나온 결과물이라고 한다.
무려 의열단이었다.
내가 태어나서 살아온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일제에 피로 맞서 온 사람들이다.
155쪽
독립을 위해 피를 흘리며 싸워온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들어갔다 온 느낌이었다.
★ 홍지운-백호서낭반혼전
조선의 백호를 잡으려는 일본 사냥꾼들에 맞서 포수들을 조직하는 산리의원의 윤원장. 백호를 잡기 위해 굿과 호랑이에게 바칠 아이가 필요하다는 말에 소매치기 소녀가 자원한다.
소녀의 아비는 105인 사건으로 죽고, 어미는 만세운동으로 죽었다.
178쪽
첫 페이지에 나오는 이 문장이 총독부의 앞잡이 노릇을 하다 덴노에게 백호의 가죽을 바쳐 내지에서 장사를 하겠다는 윤원장의 속내가 드러난 순간 극명하게 대비된다.
자신의 잘못은 하나도 없다고 말하는 것과 더불어 말이다.
🎵 함께 들으면 좋을 노래는 나희경-B의 밤(feat. Jaques Morelenbaum)
평안도 사람도 찾을 수 없는 어두운 밤에도 어딘가에는 사랑이 숨어 있다고, 보이는 절망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나희경의 노래가 잘 어울린다.
사랑이 숨어있는 밤
보이는 절망만이
전부는 아니에요
겹겹이 쌓인 이야기들로
가려진 하늘에도
별이 떠 있어요
그래서 절망이 가득했을 일제강점기에도 희망과 열정이 분명히 살아있었으니까.
* 이 책의 수익금 일부는 한국해비타트의 독립유공자 후손 주거환경개선사업에 선기부되었다.
* <절망과 열정의 시대>를 함께 읽으며 어둠의 시대에서 생존하기 위한 불굴의 의지,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을 읽으면 좋겠다.
* 책과 서점, 귀신날 호러, 고전 SF오마주, 판소리 SF, 하드SF, 프롤레타리아 장르 단편선을 낸 구픽에서 일제강점기 장르 단편선을 만들었다. 다섯 명의 작가가 그리는 절망과 열정의 일제강점기 속에 피어나는 희망을 만나보자.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