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
비를 좋아해서 한밤중에라도 비가 내리면 그 냄새를 맡고 일어났고, 눈 내리는 걸 좋아해서 눈 내리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바람을 좋아해서 바람을 타고 걷는 걸 좋아했고,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바람이 불면 길 위를 무작정 걸었다. 이 비와 바람과 눈을 따라 언젠가 세상의 끝에 가보리라 마음먹고 7살에 첫 가출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볕 좋은 가을, 코스모스가 피어있는 길을 따라 계속해서 걸었는데, 그 무렵 살았던 곳은 구파발.
구파발 길 위에 ‘통일로’라고 커다란 돌비석이 있던 2차선 신작로를 따라 무작정 걸어갔다. 아름다운 길이었다. 아무도 같이 놀아주는 사람이 없던 나는 외롭고 고독했고, 가을해는 하루가 짧다. 세상의 끝에 가기 위해 서둘러 출발한 길이었지만 아무 준비가 없던 내게 그 길은 곧 핸젤과 그레텔이 걸었던 숲길처럼 무서운 길이 되었다. 어둠 속에서 길 위를 내달리는 군용 트럭의 헤드라이트 불빛과 먼지는 나를 집어 삼키기 위해 달려드는, 불 뿜는 괴물처럼 느껴졌다.
그때, 오토바이 한 대가 나를 스칠 듯 지나갔고, 잠시 후 그 오토바이는 방향을 틀어 다시 내 앞으로 왔다. 내가 좋아하는 큰 삼촌, 작은 아버지였다.
집 나간 일곱 살짜리 조카, 분명히 나는 모험을 떠난 것이었는데, 어른들은 분명 내가 길을 잃어버린 것이라 생각했다. 그 덕분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야단을 맞는 대신 늦었지만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할머니는 슬하에 7남매를 두었다. 그 장남이 내 아버지였지만, 결혼 생활에 실패한 장남 때문에 할머니는 집나간 어미를 대신해 어린 손녀와 손자 둘까지 맡아서 키워야 했다. 그 어린 손자가 나다.
지금은 빽빽한 수풀처럼 높다란 아파트가 줄지어 섰지만, 1970년대 무렵만 해도 그곳엔 아이들이 놀고자 하면 신나게 뛰놀 수 있는 공터가 많았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잘 놀 줄 모르는 수줍은 아이다. 놀 줄 모르는 아이도 놀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다행히 나는 조금 일찍 글을 떼었기 때문에 할아버지의 신문을 비롯해, 집안에 있는, 읽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섭렵했다. 심지어 가정의학백과 같은 것들까지. 불행히도 집에는 읽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먹을거리를 찾아 배회하는 하이에나처럼 할머니를 따라 동네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당시만 해도 내 곁에 친구라 불릴 만한 이는 없었지만, 이웃한 이들의 집은 즐거운 사냥터였다. 그 시절 『바벨2세』, 『철인 캉타우』 같은 만화들을 읽었던 것 같다. 걸어서 세상 끝까지 갈 수는 없었지만, 책상 위에서 나는 세상의 끝을 맘껏 상상할 수 있었다. 성냥팔이 소녀에게 한 개비의 성냥이 그러했듯 나에게 책은 ‘개밥의 도토리’ 같이 보잘 것 없는 나를 잠시 잊을 수 있는 환상과 위안의 세계였다.
나는 돈을 많이 벌거나, 좋은 음식을 먹거나, 이름 얻는 일에 별로 욕심, 아니 관심이 없는 사람이지만, 내 주변에 항상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멋지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았으면,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많았으면 하는 욕심이 있다. 누군가 내게 허벅지를, 어깨를 허락해주고 그 곁에 뉘어주고 가끔 머리카락을 간질여주며 영원히 끝나지 않을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다. 엄청난 욕심쟁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없었기에 스스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책을 내게 되었다. 글을 쓰면 새로운 사람이 다가오고, 책을 내면 새로운 세상이 다가온다.
사실, 이번 책을 내고 리뷰가 없다고 투덜대긴 하지만, 실은 엄청난 일들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사람들이 내 책(이야기)을 읽고 들려주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보여주는 반응 하나하나를 통해 나는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세계를 거울 저 편에서 새롭게 읽고 알아가게 된다.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는 것은 그런 경험이다. 낯선 세계를 만날 기회일 뿐만 아니라 이미 알았던 사람도 새롭게 알게 해주는 환기(換氣)의 힘, 그냥 막 살아버리기엔 너무나 긴 시절을 잠시 잊게 해주는 위로.
추운 겨울을 맞이한 원시인들이 기나긴 어둠 속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 나눈 이야기도 그런 것이었으리라 생각한다. 1년 365일의 이야기를 썼더니 1년 365일의 이야기를 새롭게 들려주는 친구들이 생겼다. 그 덕분에 나는 요즘 매일 아침이 즐겁고 행복하다. 리뷰가 없는 게 아니라 매일 올라오고 있는 중이니까. 매일매일 셰헤라자데의 이야기에 취해 사람 죽이는 일조차 잊은 샤흐리야르 왕처럼 나는 이야기의 힘으로 살았다.
어쩌면 그 날, 소년은 신탁(神託)을 받았는지 모른다. 홀로 길 위의 모험을 떠나기로 결심했던 어린 소년은 본래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사람의 운명을 타고난 것인지도. 늦은 밤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소년을 찾아다니다 마침내 나를 발견해준 사람이 이번에 펴낸 『하루교양공부』의 서문 마지막에 등장하는 돌아가신 나의 작은 아버지다.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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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zee투지 2022-12-17 1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눈물이 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바람구두 2022-12-17 23:4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감은빛 2022-12-17 1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 구파발에 살았군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전 그곳을 저도 어렴풋이 기억합니다. 저는 어린시절을 부산에서 보냈는데, 이젠 아파트 단지 때문에 사라져버린 산동네의 모습을 여전히 상세하게 기억해요. 그 시절 뛰어놀았던 그 동네가 그립네요.

바람구두 2022-12-17 23:46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 시절엔 돈을 들이지 않고도 놀 수 있었는데요. 사람과 함께... 친구와 함께...

yamoo 2022-12-17 1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근래 본 글 중에 최고입니다!! 바벨2세..저도 초등학교때 엄청 재미있게 읽었던 만화책이에요~ 그시절이 그립네요..ㅜㅜ

바람구두 2022-12-17 23:46   좋아요 0 | URL
저는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바벨2세... ^^

stella.K 2022-12-18 1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우라는 을지문덕인데 갬성은 이토록이나...
참 바람님은 알다가도 모를 분이어요.ㅋㅋ
그래도 이렇게 밤새 몰래 글을 써 놓고 가신 걸 보면 참...
암튼 행복하시다니 저도 좋네요.^^

바람구두 2022-12-18 21:39   좋아요 0 | URL
별 소리를.... ㅋㅋㅋ
 














제가 알라딘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것은 2000년대 중반 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 2008~2009년 무렵인가엔 리뷰의 달인이던가요, 서재의 달인 같은 것도 연속으로 하고 그랬습니다. 그 무렵 친하게 지냈던 분들 중에는 아직 이곳에 남아 계신 분들도 몇 분 계신 것으로 압니다. 서재는 떠났지만, 이후로도 줄곧 알라딘의 소비자로 책 구입을 해왔으니 아예 떠난 것은 아니었다고 해야겠네요. 책을 자주 펴내고 싶지만, 다른 일로 늘 바빠서 책 내는 일도 드문드문 했습니다.


완전히 복귀한 것은 아니지만, 신간을 펴내게 되어 오랜만에 알라디너 여러분들에게 인사드리기 위해 오랜만에 닫힌 서재를 열었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출판사에서도 처음부터 알라딘 북펀딩을 하려고 했었지만, 기왕에 이미 좋은 책들이 많이 줄을 서고 있어서 저까지 기회가 오진 못했던 모양입니다. 다행히 예스24에서 북펀딩을 해주었고, 나름대로 성황리에 북펀딩 결과가 나와서 1,112쪽짜리 책을 무사히 펴낼 수 있었습니다.


책을 낸 저자야 누구나 자기 책을 많은 분들이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드는 것이 인정이겠지요. 물론 저역시 그렇습니다. 지금껏 제가 펴낸 책 중에서 가장 큰 의미를 가진 역작이라고 말하기엔 대중교양서라는 한계가 있지만, 지금껏 펴낸 책 중에서 가장 대중독자를 의식하며 쓴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권의 책이 누군가에게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의 노력과 품이 들기 마련이지만, 결국 한 권의 책을 완성해주는 것은 독자에게 달려있는 것이지요.


알라디너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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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12-12 1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입니다, 바람구두 님! 닉네임을 뵈니 반갑네요.
:)

바람구두 2022-12-12 16:07   좋아요 1 | URL
아, 다락방님 오랜만에 뵙네요. ^^ 잘 지내고 계시죠. 어느 분이 제 책을 다락방의 미친 여자보다는 두껍지 않다고 다행이라고 하던데, 다락방님 서재에서도 그 책을 보게 되는군요.

하이드 2022-12-12 17: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 준비하시는 중에 올렸던 어마어마한 분량의 A4 용지 사진 트위터에서 봤습니다. 드디어 나왔군요. 알라딘에도 소식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년 독서 계획으로 좋을 것 같습니다.

바람구두 2022-12-12 17:38   좋아요 1 | URL
아, 하이드님~ 오랜만입니다. 트위터도 하고 계셨군요. 예 조금 오래 걸리긴 했지만, 책이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저에겐 알라딘이 친정 같은 곳이라(예스24에서 펀딩했지만 저도 예스24 아이디와 비번이 기억나지 않아서 로긴을 못하네요) 이렇게 인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은빛 2022-12-12 1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바람구두님.
잠시만이라도 이렇게 서재를 열어주셔서 무척 반갑네요.
아까 페이스북에 들어가보니 익숙한 글이 바람구두님 담벼락에 보이더라구요. ^^
이미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책이던데, 리뷰를 못 받을까 걱정이 많으시네요.
아마도 곧 여기 알라딘에도 여러 리뷰가 올라오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바람구두 2022-12-12 23:36   좋아요 0 | URL
^^ 저는 낯선 이들이 제 책에 대해 써준 리뷰를 읽는 재미가 책을 쓰는 가장 큰 동력이 되더라고요. 고마워요, 감은빛님! 감은빛님 글이 아니었으면 알라딘 서재를 잠시라도 다시 열 용기를 발휘하진 못했을 듯합니다.

stella.K 2022-12-12 1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여기서 뵈니까 반갑네요.
여기서 북펀딩하셨으면 바람구두님을 아는 분들이 많아서 기쁘게 참여했을텐데
좀 아쉽네요. 하지만 예스24에서 달성하셨다니 잘 됐네요.
지난 번 <길위의 독서> 인상 깊게 읽어서 이번 책도 좋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저.. 그래서 말씀인데 여기가 원래 개인 이벤트 성지였는데
이번에 복귀 기념 이벤트 한 번 하시죠.
옛날에 바람구두님 이벤트 당선되고 선물 받고 감동 먹어 버렸는데...ㅎㅎ
아님 저의 책이랑 교환해 보시는 건 어떠실지.
그럼 저 리뷰는 확실히 쓸 수 있는데...ㅋㅋㅋ 농담입니다.ㅠ
암튼 기회있는대로 챙겨 보도록 해 보겠습니다.
다음 책은 조금 슬림하게 살살 내주시길 바라면서 물러갑니다.ㅋㅋ

바람구두 2022-12-12 23:44   좋아요 1 | URL
아이고, 아주 옛날에 제가 이곳에서 그나마 활동을 열심히 할 때 이야기죠. 지금 갑자기 그런 이벤트 열면 갑툭튀에 책장사하려고 왔다고 할 거예요. ㅋㅋㅋ 다음번 책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말씀은 감사합니다.

yamoo 2022-12-14 1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의 저자분이 바람구두님이라는 걸 오늘 첨 알았습니다!
너무 인상깊게 읽었고, 예전에 바람구두님이 쓰신 리뷰를 읽으면서 이 분의 책이 나오면 꼭 구매하리라...다짐했었는데, 전 이미 구매했었던 겁니다...ㅎㅎ

신간..벽돌책이지만 구매하려고 담아놨습니다. 지난 시절..바람구두님의 리뷰를 읽었던 애독자로서...귀환과 책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10여젼 전 알라딘을 떠난 분들이 그립습니다~~

바람구두 2022-12-14 10:51   좋아요 0 | URL
저 같은 자(者)야 알라딘에 있든 없든 큰 의미야 있겠습니까. 과거에 알라딘에 잠시 깃들어 서재 활동을 했던 것도 다른 곳에서 받은 상처를 숨기고 쉬고자 했던 것이었는데, 알라딘에서 활동하면서도 역시 상처가 생기더라고요. 언제나 그렇듯 좋은 책을 읽고,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해서 좋은 사람이거나 지혜로운 사람이기만 한 것은 아니듯, 어딜 가나 마음 쓰이는 일은 생기나 봅니다. yamoo님과는 이곳에서 처음 뵙게 되었는데, yamoo님의 서재에 가보니 저보다 더 깊은 독서를 하시는 분이고, 글도 잘 쓰시는 분이라 아마 함께 서재에 머물렀더라면 좋은 만남과 우정을 나눌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 개인적으로 이번 책은 벽돌처럼 두껍지만, 가장 가벼운 마음으로 쓴 책이고, 깊이를 포기한 대신 넓이를 얻고자 한 가장 대중적인 책입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가 깊은 책은 『길 위의 독서』란 책이었습니다. 현재까지 그런데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 같기는 합니다. 이 서재 활동은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올 연말까지만 할 생각입니다. 나중에라도 뵐 기회가 있으면 좋겠군요.

바람돌이 2023-01-03 15: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 인사가 늦었네요. 오랫만에 이렇게 잘 지내셨나요?라고 인사하는데 왜 제 마음이 두근거리죠? ㅎㅎ
여기 글 올리시기 전에 책이 나온거 보고 아 오랫만에 책 내셨구나 하면서 냉큼 사두었습니다. 벽돌책이라 살짝 미뤄뒀다가 2023년이 되면서 매일 몇장씩 보고있는데 쉽게 읽을 수 있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읽고 있어요. 좋네요. ^^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가끔 여기서 소식도 전해주시고요. ^^

바람구두 2023-04-04 10:46   좋아요 1 | URL
와우.... 저야말로 인사가 너무 늦었네요. 1월 3일의 인사를 4월 4일에야 보게 되다니요. 반가워요. 알라딘에서 기억할 수 있는 분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이렇게 반가운 닉네임이라니요.
 

알라딘 내의 비정규직 고용 관행에 항의하여 일을 벌인지도 어느새 1년여가 훌쩍 지나버렸습니다. 

그런 일을 벌이고 참여한 것에 대해서는 일말의 후회도, 아쉬움도 없으나 가끔 이곳에서 우정을 나눴던 이들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치던 순간들은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때 이곳에서 평소 제가 알던 이들에 대한 기대와 신뢰에 대해 제가 다른 모습을 보였다고 느끼신 분들 혹은 그와 반대로 제가 그렇게 느꼈거나 스스로 그런 마음을 품었던 이들도 쇼핑몰로서의 알라딘 서점이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로서 구성원들 간의 신뢰와 우정에 대한 애착 때문이었으리라 저 혼자 그리 맘편하게 생각해봅니다. 

홈페이지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도 예전처럼 그대로 운영하고 있으나 블로그는 딸기님을 비롯해 몇몇 분들과 함께 경향신문에서 운영하고 있는 티스토리의 팀블로그로 옮겨 갔습니다. 앞으로도 알라딘 서점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리뷰를 담는 일은 없겠으나 이곳에서 정을 나눴던 여러분들과의 인연은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 블로그는 http://windshoes.khan.kr 입니다. 몇몇 분들은 이미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바쁜 일들이 많아 아직 활발하게 글을 올리지는 못하지만 이곳 분들이 글 남겨주시면 저 역시 답방를 비롯해 성의를 다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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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4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1-05-04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게 얼마만이십니까?
그렇지않아도 늘 궁금했는데...
잘 지내시죠? 아들내미도 건강하게 쑥쑥 잘 자라고 있죠?
다시 오신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로군요.
예전이 그립긴 하죠.ㅠㅠ

비연 2011-05-04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브리핑에 '바람구두'라고 뜬 글을 정말 일년 만에 보는 거였군요...
예전이 그립습니다..언제나 사람은 과거를 지향하게 되는 것 같기는 하지만.
바람구두님이, 마태님이, 물만두님의 글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올려지던 그 날들이 너무 오래 전 일 같아요. 트위터에서는 계속 뵙고 있지만..이제 티스토리의 블로그에 자주 가겠습니다. 님의 책에 대한 글들...늘 그리웠거든요.

반딧불,, 2011-05-04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입니다. 그나마 리뷰는 열려있었던 듯 한데 말이죠. 바람이 어느새 후텁지근 합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2011-05-05 0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oren 2011-05-05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의 무게감이 넘치면서도 속이 꽉 찬 리뷰글들을 읽던 때가 그립군요.
이렇게나마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늘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무해한모리군 2011-05-06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 바로 얼마전에도 아가는 얼마나 컸을까하는 생각을 했답니다.
자주 나들이 가야겠네요.

2011-05-13 2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13 1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14 1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14 1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14 1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1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1 16: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1 1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turk182s 2012-12-24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님,,근간 소식없으시길래..궁금하던차..
신작책보고 구입했네요.
신작책 잘보고 있습니다.
꾼준히 글 써주세요..
제발 멘붕이 오지않게..

2012-12-31 1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에 지지 않고

- 미야자와 겐지(宮澤賢治)
- 번역 :  권정생

비에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보라와 여름의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을 가지고 욕심도 없고
절대 화내지 않고 언제나 조용히 미소지으며
하루 현미 네 홉과 된장과 나물을 조금 먹으며
모든 일에 제 이익을 생각지 말고
잘 보고 들어 깨달아 그래서 잊지 않고
들판 소나무 숲속 그늘에 조그만 초가지붕 오두막에 살며
동에 병든 어린이가 있으면 찾아가서 간호해 주고
서에 고달픈 어머니가 있으면 가서 그의 볏단을 대신 져 주고
남에 죽어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무서워 말라고 위로하고
북에 싸움과 소송이 있으면 쓸데없는 짓이니 그만두라 하고
가뭄이 들면 눈물을 흘리고
추운 여름엔 허둥대며 걷고
누구한테나 바보라 불려지고
칭찬도 듣지 말고 괴로움도 끼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

간만에 마음이 차분해지는 아침입니다. 지난 연말부터 사무실 이전이 시작되어 현재까지도 새로운 책장이 들어오고, 책들을 이리저리 옮기고 차곡차곡 챙겨두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수평으로 비껴가는 눈바람을 보며 인생이란 참 별 것도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창 밖으로 내리는 눈들을 바라보면서 저 눈들이 곧바로 지상으로 낙하하는 것이 아니라 제 몸의 생김새와 바람을 타고 중력을 거부하며 다시 날아오르는 광경을 바라봅니다. 김 서린 창 밖 세상으로 사람이 걸었던 길과 그렇지 않은 길이 훤히 보입니다. 삶도 이와 같다면 참 좋으련만...

그러자 곧장 길은 인간에겐 문명을 의미하지만 자연에겐 죽음을 의미한다던 누군가의 말이 떠오릅니다. 마음은 차분하고, 정신은 명징하여 코끝에선 금방 코피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힘겨운 아침입니다. 안데스 산맥을 넘어 이곳까지 왔을 공장 커피 한 잔을 마십니다.

*

어렸을 때 스스로 삶의 방법론이라고 설정했던 세 가지 원칙이 있었어요.

"철저하고, 진지하게, 그리고 치열하게 살자!"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지금 누군가 저에게 삶의 방법론에 대해 묻는다면 아마 저는 이렇게 말할 것 같습니다.

"가드 올리고, 어금니 꽉 깨물고, 어깨에 힘 빼고 살자!"

제가 청소년기에 보았던 일본 애니메이션 가운데 <건담>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건담>의 주인공 "아무로 레이"는 인구폭발과 환경오염 등을 피해 개척한 우주 식민지 출신의 스페이스노이드로 15살짜리 평범한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쩌다 휘말린 전투에서 그는 우연치 않게 신형 로봇 '건담'의 파일럿이 되죠. 어른들이 모두 전사해버려서 비슷한 또래의 형과 선배들이 조종하는 '화이트 베이스'라는 우주전함에 친구들, 민간인들을 태우고 지구로 귀환해야만 하는 목적을 수행한다는 내용입니다. 

마치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의 소년들처럼 자기들만의 힘으로 폐허가 된 우주 식민지 고향을 떠나 주인공은 끊임없이 전투를 하면서 지구 아마존에 있는 '쟈브로'라는 우주연방군 기지로 향해 가야만 합니다. 애니메이션상으로 그는 '뉴타입'이라는, 인류가 진화해 도달하는 새로운 인간형으로 그려지지만 불과 15세의 소년은 눈 앞에서 자신의 잘못으로 혹은 그저 전쟁이란 이유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고통스러워 합니다. 또 그 자신도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여야만 하는 상황에서 그는 스스로를 다그칩니다.

"내가 조금만 더 잘 싸웠다면... 내가 조금만 더 잘 싸웠더라면 저 사람이 죽지 않아도 됐을 텐데..."

어느날 이 소년의 눈 앞에서 짝사랑했던 "마틸다"란 여성 장교가 자신을 구하고, 전사하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지구 귀환길에 나섰던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그의 가슴엔 무수한 상처들이 쌓입니다. 어른들은 너무나 멀리 있기에 아무도 그들을 도울 수 없습니다. 소년과 일행은 갈 길을 방해하는 적들을 물리치고, 때로는 이해하면서 목적지인 지구 연방군 기지에 도착합니다.  

소년은 기지에서 죽은 "마틸다"의 약혼자였던 정비장교 "우디"를 만납니다. 그는 "우디씨... 죄송해요. 제가 좀더 좀더 건담을 잘 조종했다면... 마틸다 씨는 죽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라며 스스로를 자책합니다. 그러자 약혼자였던 장교는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고 일어나 그를 바라보며 냉정한 어조로 말합니다.

우디 : 잘난 척 말게! 아무로 군!
잘 들어. 아무로군! 난 자네 실력이 미숙해서 마틸다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
건담 1기의 활약으로 마틸다를 구해내고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 만큼 전쟁은 만만한 것이 아니야.

아무로 : 하지만...

우디 : 온힘을 다했다면 된 거야. 그때 그때 최선을 다하고 시시한 후회따위는 하지마. 나는 지금 마틸다가 목숨을 걸고 지킨 이 화이트베이스에 애착을 가지고 있어. 그래서 수리와 개장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지. 사람은 어차피 그 정도 일밖에 할 수 없어.


*

가끔 저는 그리 대단한 것을 꿈꾼 적이 없음에도 왜이리 세상살이가 번다하고 힘든 것일까? '난 그저 누군가의 삶으로 위로받고, 누군가의 삶에 위로가 되고 싶었을 뿐인데'라고 반문하곤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삶이 되지 않고, 누군가의 삶에 개입하지도 않으면서 다시 말해 나는 상처받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으면서도 누군가의 삶으로 위로가 되고, 누군가의 삶에 위로가 되고 싶다는 욕망은 얼마나 이기적인가? 생각해보면 제 삶이 힘겨운 것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서울과 중부 지방 최대 폭설이 내렸다고 합니다. '바람구두' 신고서 길 위로 나서기 참 좋은 날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알라딘 불매 카페 만들고, 그간 활동하면서 제 심정이나 태도는 충분히 보여드렸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언제나 제 삶을 '길 위의 인생'이라 평하기 좋아합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제 삶의 도반(道伴)이 있다면 이 길 어디에선가 또 만나겠죠. 그동안 즐거웠습니다. 이렇게 떠났다가도 언젠가 바람이 불면 다시 돌아와 예전처럼 즐거울 날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무쪼록 좋은 책 많이 읽으시고, 모두들 건강하시길... 

去去去中知 行行行裏覺
가고 가다 보면 가는 중에 알게 되고, 행하고 또 행하면 행하는 중에 깨닫게 된다.
- 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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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4 14: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0-01-04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두님의 올해 첫 페이퍼라고 좋아했는데
이제 보니 좀 유감이네요.
저는 구두님과 같은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구두님과 계속 좋은 교분을 갖고 싶었는데...ㅜ
언제고 다시 돌아오시길 고대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 일만 가득가득 있으시길 바랄게요.^^

조선인 2010-01-04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아, 왜 이런 결론을 내리신 건지 안타깝지만... 님 말씀대로 길 위의 인생이니... 오다가다 꼭 만날 것으로 믿습니다.

2010-01-04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쉽싸리 2010-01-04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서글프네요.

Kir 2010-01-04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 언젠가 좋은 바람이 불면... 다시 돌아와주시길 기다리겠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했었기 때문에 더 서글프네요.

다락방 2010-01-04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 .......................................

2010-01-04 1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01-04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요나라......

Arch 2010-01-04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 만우절도 아닌데, 자꾸 만우절 농담이었음 좋겠단 생각만 들어요.

능소화 2010-01-04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참 나는 알라디너도 아니고 하여 서재도 없고 책은 우연히 24에서 사다보니 계속 그럴뿐이고 그래도 문망에서부터 남긔로 부지런히 바람구두 따라다니는 독자인데, 아니다 팬인데,
가시는 곳이나 알려줘야 또 따라갈게 아니겄소. 나이든 아줌마는 디지탈 세계에서 아차, 하면 길을 잃기도 하야, 걱정이 만만이외다.

마냐 2010-01-04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능소화님을 비롯해...문망부터의 지인들은 어디로 가면 되나요. 우리들은 어디서 구두님을 뵈면 될까요. 어디에 있든 상관있겠나..또 닿겠지요.........라고 하면 요건 사실 거짓부렁 섞인 거구요....우리 세월이 그리 간단치 않죠.ㅜㅠ 예상했지만, 막고싶었습니다. 진심으로.

좀...쉬다 오심 좋겠네요.

2010-01-06 0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10-01-06 0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것도 없이 간판만 있는 집보다는 좀 낫군요. 마냐님 얘기듣고 달려와봤습니다. 그냥 이렇게 도장찍고 갑니다.

2010-01-06 09: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06 0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밤바 2010-01-06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지마세요. ㅠㅠ 인물과 사상에서만 뵐 수 있는 거에요?^^;;

2010-01-07 2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10 16: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01-12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은 안달았어도, 알라딘을 이용하는 큰 이유중의 하나가 님들의 서재를 드나드는 재미였는데요. 이사가시면 주소 알려주셔요. 작은 마음이지만 보태고도 싶네요.

yamoo 2010-03-18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건담 얘기를 여기서 들을줄이야...미야자와 겐지도!! 최근에 건담08소대를 보았는데 명불허전~~ 가슴을 울리는 사랑이야기~ 역시 건담 최고의 명작 중 하나인거 같습니다~ㅎ

메시지 2010-08-11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4년 3개월만에 돌아왔는데.... 안 계시네요. ㅜㅜ
 
제안 - 알라딘 조유식 사장에게 편지보내기 카페를 엽니다.

불매선언, 그 이후 - 무엇을 할 것인가

2009년 연말 즈음, 알라딘에서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어떤 이들에게 이것은 ‘용산참사’와 마찬가지로 난데없는 소동이었을 것이다. 알라딘 물류센터에서 파견직 노동자로 일하던 김종호 씨는 어느 날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았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것이 알라딘 측의 ‘해고’는 아닐지 모른다. 그는 명목상 '알라딘' 소속 노동자가 아니라 파견업체 '인트잡' 소속이었으니까. 그러나 그것이 진실의 모든 부분은 아니다.

파견과 도급
비정규직 노동자는 크게 '파견', '도급', '용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중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분야는 '파견'과 '도급'이다. 파견은 '파견근로자보호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지만, 도급은 '민법'의 영역에 속한다. 법이 복잡하고, 외견상 파견과 도급은 쉽게 구분되기 어렵지만 실제로 파견과 도급을 구분하는 근거는 명확하다.

업무 지시를 누가 내리는가 하는 것이다. '파견'은 파견된 회사의 사업주에게 지휘, 명령을 받지만 도급은 지휘, 명령을 받지 않는다.

김종호와 알라딘의 엇갈리는 주장 혹은 관행
'인트잡(파견업체)'에서 '알라딘(사업주, 사업장)'으로 '김종호'라는 노동자를 파견했는데, '김종호'가 '인트잡'이라는 파견업체의 지휘, 명령을 받지 않고, '알라딘'이라는 사업주에게 지휘, 명령을 받았다면 이러한 형태의 노동은 '파견'이다. 그리고 이것이 김종호 씨의 현재 주장이다.

알라딘은 김종호 씨는 성수기를 업무처리를 위한 단기계약의 도급노동자이며, 김종호는 알라딘 사업장에서 일은 했지만 '파견'이 아니라 '도급(알라딘은 지휘, 명령을 내리지 않았고)'이며 알라딘 측에 잘못이 있다면 김종호 씨에게 아니 '인트잡'에게 업무기간에 대한 내용을 제대로 통보하지 않은 과실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파견’과 ‘도급’을 구분하는 중요한 근거가 업무에 대한 지휘, 명령과 인사에 대한 관여인데도, 알라딘은 지난 2009년 8월말 알라딘 직원에 의한 면접을 통해 김종호 씨를 고용했다. 또 한 가지는 김종호 씨를 비롯한 알라딘 물류센터 내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알라딘의 직접 업무 지시를 받았다는 것이다. 좋은 말로 하자면 업무효율을 높이기 위한 지금까지의 ‘관행’이었다고 이해해주고 싶은 이도 있겠지만 이는 명백한 불법이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알라딘이 했던 세 차례의 답변 중 한 번도 이 부분을 부정한 적이 없었다.

초점을 흐리지 말자, 내가 시위에 나선 문제의 핵심은 이것이다
알라딘 고객센터 표 팀장과 조유식 사장의 글을 모두 읽었다. 중도에 많은 분들이 ‘불매’의 목적이나 시위 방식으로 불매를 선택한 것에 대해 각자 쓴 글들도 힘닿는 한에서 거의 빼놓지 않고 읽었다. 나는 알라디너들의 참여에 대해 그것이 비록 냉소, 냉담, 비아냥이라 할지라도 일단 감사히 생각했다. 무관심보단 분란이 훨씬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라딘의 답변에는 그간 사람들이 요구한 핵심이 없었다.

따라서 ‘불매선언’ 이후 수차례 반복하고 있지만 이번에도 또 다시 반복할 수밖에 없다.

문제의 핵심은 이렇다.

알라딘의 소비자인 나 ‘바람구두’는 그동안 알라딘을 즐겨 이용해왔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중 하나는 명백하게 그간 알라딘이 보인 진보적이고 양심적인 이미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으로서 마케팅 전략에 따른 것이다. 알라딘 서재라는 무임금 글쓰기를 즐긴 까닭은 분명 나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었으나 때때로 인터넷 쇼핑몰이 제공하는 마케팅에 이용된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면서도 서재의 글쓰기를 즐기는가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 때마다 앞서의 이유들로 스스로를 합리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나의 기대감은 지난 2009년 11월 2일 알라딘 해고자 김종호 씨는 인터넷 매체 '참세상'에 "인터넷서점 알라딘을 고발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접하면서 순전히 허위의 인식이었음을 새삼스레 자각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후 알라딘의 서재인 중 한 명인 rosa님이 알라딘 측에 문의한 결과 돌아온 응답(http://blog.aladin.co.kr/petite/3188417 )이 성의 없다는 판단이 들었고, 소비자로서 알라딘에 무시당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알라딘에서 소비를 지속해야 할 중요한 이유를 잃었다고 판단했다.

알라딘에게 무엇을 요구했는가?
rosa님의 문제 제기 이후 불매에 참여한 사람들의 요구는 모두 두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첫째는 김종호 씨의 해고 과정에서 벌어진 알라딘 측의 과실을 인정하고, 그를 본인의 요구와 희망대로 원직 복직하라는 것이다.

둘째는 알라딘이 그간 소비자들에게 제공해온 이미지와 김종호 씨의 사례를 통해 접한 현실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있으므로 이에 대한 성의 있는 해명과 이후의 대안을 제시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첫째 요구가 알라딘의 과실로 벌어진 일에 대해 합당한 사과와 해명, 이후 대안을 마련하란 것이었다면, 둘째 요구는 알라딘 측이 소비자, 특히 불매 선언자들을 비롯한 서재 이용자들에게 그간 여러 경로를 통해 과시해온 사회적 책임의 모습들을 소상히 밝히고, 소비자의 동의를 구할 수만 있다면 알라딘이란 기업에 매우 유리한 조건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둘째 요구에서 우리는 알라딘의 일방적인 홍보에 휘둘리고 싶지는 않았기에 이 지점에서 알라딘에게 몇 가지의 구체적인 지표를 통해 근거를 제시해달라고 요구했다(설마 아래의 사항들이 기업의 영업에 손실을 끼칠 만한 큰 비밀에 속한다고 말하진 않으리라 생각한다).

1) 알라딘 노동조합의 존재 유무 및 조합원 가입률
2) 알라딘 내 정규직과 비정규직(파견, 도급, 단기알바)의 비율과 근무 분야
3) 알라딘 내 비정규직으로 파견근로자보호법에 따른 2년 근무 이후 정규직 전환 사례
4) 알라딘 내 장기근속자 비율과 평균 근무 연한
5) 기타 - 알라딘이 비정규직에 대한 임금 지급 기준 및 처우 조건 등


그간 있었던 세 차례의 답변(조유식 사장의 답변도 포함하여)을 살펴보면, 알라딘 측은 처음부터 김종호 씨를 단기 도급 노동자로 채용하였으나 자신들의 과실로 이런 사실을 처음부터 혹은 그 이후 상황이 벌어질 때까지도 ‘인트잡’에 제대로 통보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이런 문제가 발생하자 그제서야 김종호 씨와 이의를 제기한 알라디너들에게 사과했다.  

알라딘은 김종호 씨를 직접 면접이란 절차를 거쳐 고용했고, 알라딘 직원이 업무지시를 직접 내렸다. 그렇기 때문에 김종호 씨는 위장도급, 다시 말해 불법 파견의 의혹을 제기했다. 이것은 알라딘의 관행일지 모르나 불법 유무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핵심이다(물론 지방노동위원회에서 이것을 어떻게 판단할지는 미지수이다).  

조유식 사장의 답변에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으나 알라딘 내부의 일상화된 관행이었음은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 알라딘은 과실(불법적 관행)을 인정하고 향후 이런 사태의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 조유식 사장은 “저희가 정말 그만큼 나쁜 일을 저지르며 살고 있는 것인지 되돌아보고 반성하게 됩니다”라고 말꼬리를 흐리는데, 솔직히 사과한다면서 이런 표현은 쓰지 말자고 이야기하는 것조차 손이 오그라드는 기분이 들만큼 옹색해 보인다. 앞에서는 ‘노심초사(勞心焦思)’했다고 말하면서 바로 뒷 문장에서 이렇게 말하는 건 앞의 말을 스스로 부정하는 표현이지 않은가.

불법파견이냐, 도급이냐의 문제는 김종호 씨가 끝까지 싸울지 아닐지 알 수 없다. 알라딘 최고경영자의 답변과 사과도 있었으나 김종호 씨는 원직복직 없는 사과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였으므로 이 문제는 결국 앞으로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다룰 문제가 되었다. 알라딘이 불법 파견 관행(알라딘은 도급이라 하지만 김종호 씨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알라딘이 단 한 차례도 부정한 바도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을 인정한 것은 아니라고 하자. 또 인터넷 서점 대부분(알라딘은 조유식 사장과 인척관계인 YES24와 같은 물류센터를 이용하는 것으로 안다)에 그런 관행이 일반화되어 있느니, 다른 업체도 다 그렇게 하고 있다는 말은 하지 말자. 그리고 김종호 씨의 원직복직 문제도 알라딘의 일이 아니라 인트잡의 문제라고 해두자. 어차피 알라딘은 성수기가 되면 제2, 제3의 김종호를 불러들여 일을 시킬 것이고, 앞으로는 김종호 씨와 같은 사례를 만들지 않기 위해 좀더 분명하게 업무 처리를 할 것이다. ‘인트잡’일지 아니면 다른 파견업체와 일을 할지는 몰라도 말이다. 그래야 합법이니까.

그럼에도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알라딘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알라딘의 파견노동자들인가? 이들은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채용되는가? 아니면 역시 합법적으로 2년 이내에 해고될 것인가? 이런 상황들을 밝혀 달라는 것이 알라딘 소비자들 가운데 불매를 선언한 이들의 요구사항이다. 알라딘은 이 부분에 대해 단 한 번도 구체적인 답변을 한 바 없다.

알라디너 vs. 알라디너
김종호 씨 사건을 계기로 나는 알라딘의 성의 있는 답변을 촉구하기 위해 ‘불매’를 선언했고, 테마카페를 개설했다. 이후 각기 약간씩 다르긴 하지만 비슷한 공감대를 형성한 이들이 모여 불매에 동참했다. 이후 상황이 전개되는 동안 알라딘은 다시 한 차례 표 팀장의 답변이 있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표 팀장의 답변은 이전의 답변을 원고 매수만 좀더 길게 늘인 답변이었을 뿐이다.  

어떤 이들은 '불매'가 성급했다거나 과격한 시위 방식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불매' 혹은 '윤리적 소비'란 거대하게 조직되지 않는 한 기업이나 참가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거의 불편을 끼치지 않는다. 그러나 불매 당사자들에게는 얼핏 사소해보이지만 매우 큰 불편을 끼치는 방식이다. 간디는 영국의 소금 전매에 대항해서 해안까지 걸어가 그곳에서 소금을 만들었다. 몇 푼이면 살 수 있는 소금을 굳이 그 먼 곳까지 걸어가서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여 직접 만든 것이다. 그런 점만 놓고 보더라도 '불매'는 지켜보는 이들보다 선언 당사자들에게 더 크게 불편한 일이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과정만 지켜보더라도 알 수 있다. 이것이 효과적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알라딘의 무성의한 대응을 지켜보면 이나마의 실천도 없이 궁시렁거리는 몇 마디 말에 알라딘과 조유식 사장이 눈이라도 꿈쩍했을까? 그것은 의문 부호로 남길 필요도 없다.  

간혹 알라딘은 기업으로서 이윤을 추구하는 목표를 가졌으므로 불법만 아니라면 이 업체의 도덕성을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거나 비정규직문제는 사회일반의 문제인데 어째서 알라딘만 문제 삼는가? 혹은 알라딘이 진보적이라니 어떻게 그런 잘못된 인식을 가질 수 있는가 등등의 교훈을 새삼스레 일깨워주고 싶어 하던 이들도 있었다. 일단 몇 가지는 새삼스레 거론하지 않았으면 한다. 알라딘을 문제 삼는 이유는 우리가 알라딘에서 제공한 블로그를 이용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을 반복하는 것은 소모적인 동어반복이며 감정적 소모전일 뿐이다.

불매의 기본 전제이고, 이미 불매에 참여한 이들이 심사숙고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알라딘이 이윤추구를 주요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라 할지라도 우리 사회의 일부분인 이상 당연히 사회적 책임이 주어지며, 최소한 비정규직 채용 문제에 있어 불법과 관행의 격차는 종이 한 장 차이도 나지 않는다는 사실, 또 알라딘 자신은 이것을 과실이라 주장하지만 불법적 관행이 일상화되어 있었음을 살필 수 있는 충분한 정황이 드러난 상황에서 그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당연하게도 알라딘이 이런 의심을 해소해줄 성의 있는 답변만 뒤따른다면 불매의 근본원인도 함께 해소된다.  

만약 불매선언의 주장 중 이런 것을 문제 삼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그 원인의 해소를 알라딘 측에 요구해야지, 같은 소비자에게 요구한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진 않는다. 그러나 어쩌랴. 알라딘 불매 선언 못지않게 여러 입장들 - 불매에 대하여 굳이 불참 선언을 하거나 의견 한 줄 낼 법도 한데 굳이 외곽을 때리거나, 어디 멀리서 온 사람처럼 혹은 저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는 사람처럼 말하는 것 - 역시 각자 자신의 입장을 보여주는 선택이 아니겠는가.

알라딘의 선량한 이미지 메이킹에 그간 속았다고 발버둥치고 아우성치는 순진한 사람들이 불매에 나선 것은 아니다. 알라딘의 진보 마케팅이 상술의 일부라는 정도는 다들 파악할 만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남들은 하지 않는 지점에서 마케팅을 하는 것이 알라딘인 것도 사실이다. 알라딘이 마케팅 타깃으로 삼은 책 읽는 독자들이란 당연히 책을 읽지 않는 독자들에 비해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이 많은 이들이며, 그간 알라딘 측은 이런 부분들을 충분히 적극적으로 활용해온 기업이다. 이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하여 그 책임을 회피한다는 것은 알라딘의 긍정적인 이미지까지 함께 소비해온 서재 사람들로서는 충분히 문제 삼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알라딘에게 실망한 고객들이 ‘소비 중단’ 혹은 ‘불매’를 외친 것이 손가락질 받을 만한 일인가? 어떤 이들은 자신의 닉네임 앞에 ‘FTA반대’ 등과 같은 정치적 구호를 달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를 문제 삼는 것을 발견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라딘 불매는 매우 많은 이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려야 했다. 아마도 그것은 FTA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병보다 비정규직 문제가 아니 좀더 냉정하게 말해서는 왜 하필이면 이런 문제가 내 근방에서 벌어진 거냐는, 왜 내가(마치 비양심인냥) 불편해야 하느냔 짜증섞인 항변일 것이다. 그것이 좀더 적극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불매에는 논리가 없다거나 알라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식의 앞서 말한 내용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반응들에 대해서까지 일일이 미안해 해가면서 불매 시위를 벌일 이유도, 여유도 없다.  

일부 개인의 선택이 다른 개인들에 의해 집단적으로 논의되는 현상은 그 자체로는 흥미롭지만 당사자 중 하나가 된다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다시 말해 이 일로 알라딘을 제외한 그간의 이웃들 중 누구의 마음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고, 그와 반대로 그 사람들로 인해 내가 다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같은 당사자의 입장에서 알라딘과 대면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면 구태여 누구 한 사람도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알라딘과의 사이에 자청해 끼어들면서까지 스스로 상처받는 것이야 말릴 수 없다.

어떤 이들에게는 불매 참가자들의 요구가 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 편으로 생각해보면 매우 재미있는 현상이기도 했다. 같은 소비자가 같은 소비자에게 친기업적인(비즈니스 프렌들리?) 입장에서 정작 당사자인 알라딘은 나서지 않는 문제까지 친절하게 넘겨 짚어가며 말하고 나선다는 것은  많은 사회학자들이 그간 지적해온 IMF외환위기 이후 ‘기업 논리의 내면화’가 구체적인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알라딘이 제공한 블로그(서재)를 이용한다는 것은 때때로 매우 구체적인 이해관계가 접목되어 있는(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알라딘에서 쌓은 명성이 도움이 되는) 이들을 제외하고도 평범한 소비자들 역시 기업 알라딘과 서재 커뮤니티, 개인(블로그)을 동일시하는 결과로 보인다. 음, 나 역시 이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오늘날 진보는 매우 다양한 층위로 구성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비정규직 문제를 외면하는 진보적 패러다임이란 존재할 수 없다.

조유식 사장의 사과 혹은 해명
알라딘과 조유식 사장이 분명히 알아주길 바라는 부분이 있다. 지금 불매에 나선 이들의 문제 제기가 단순히 김종호 씨 한 개인의 원직 복직 문제만을 지적하는 것으로 국한하지 말라는 것이다. 도리어 문제의 핵심은 이번 일을 계기로 그간 알라딘이 보여왔던 이미지 마케팅이 단순한 마케팅 차원이 아니라 좀더 구체적인 실체를 가지고 진행되어 온 진심어린 사업이었다는 것을 어필하여 알라딘 소비자들이 품었던 의구심을 적극적으로 해소해달라는 것이다.

조유식 사장이 생각하는 기업의 사회적 공헌이 무엇인지 그가 기자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살펴봐도 역시 모호하다. 스스로는 지금까지 해온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알라딘을 비롯한 인터넷 서점들은 출범 초기에 자신들이 비판했던 대형서점들처럼 이미 충분히 ‘교보문고’스럽다. 지역에 대형서점들이 지점을 낼 때마다 지역의 영세 서점상인들은 생계를 위해 머리띠를 두른다. 이런 풍경은 사실 대형할인점들이 지역 상권을 붕괴시키는 과정과 다를 바가 없다.  

알라딘은 월마트와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장기적으로 법적인 통제마저 없어진다면 알라딘을 비롯한 인터넷 대형 서점들은 조만간 아마존과 월마트처럼 서적의 저가매출이라는 출혈경쟁을 벌일 가능성마저 농후하다. 그것은 결국 출판계로 돌아올 부메랑이다.

인터넷 서점의 연간 매출은 지난해 총 8225억 원으로,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처음으로 30%를 넘겼다(31.9%). 지역의 기존 서점들은 해마다 줄어들어 이제 동네에서 서점 찾아보기는 더욱더 어려워졌고, 대형서점 지점 진출을 저지하는 것 자체는 이미 포기하고 그나마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참고서만큼은 취급품목에서 제외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반 서점들은 2005년 2,103개, 2006년 2,065개, 2007년 2,042개, 지난해 2,000개 안팎으로 해마다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다. 특히 10평 미만의 동네서점은 2003년 914곳에서 2004년 302곳, 2005년 316곳, 2006년 192곳, 2007년 138곳으로 조만간 레코드가게가 그랬던 것처럼 동네서점 역시 우리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알라딘 같은 인터넷 서점들이 할 수 있는 사회적 공헌이란 무엇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이 사회에 할 수 있는 가장 큰 공헌은 보다 많은 이들에게 보다 안정적인 직장을 제공하고, 합법적으로 사업하여 보다 많은 수익을 거두고, 이를 통해 국가에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것이다. 만약 그 국가가 합리적으로 운영되는 정부에 의해 통치된다면  그 세수는 당연히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보다 많은 국민들이 안정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데 사용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정부에게 그런 기대를 하긴 어려워 보인다.  

비록 한때나마 뜨거운 삶을 살았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조유식 사장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자체가 어느 부분에선 지나친 기대라는 사실을 나 역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맥락을 젖혀두고 이야기할 수도 없다. 애초에 내가 알라딘에서 불매를 선언한 이유 역시 이런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의식조차도 뒤로 젖혀두고 이곳에서의 생활을 즐겁게 영위하기 위해선 나에게 알라딘이 그만큼 괜찮은 곳이어야 한다는 어느 정도의 신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일본의 군국주의에 반대했던 시인 이시카와 타쿠보쿠(石川啄木)는 <코코아 한 잔>이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나는 안다. 테러리스트의 / 슬픈 마음을 - / 말과 행동으로 나누기 어려운 / 단 하나의 그 마음을 / 빼앗긴 말 대신에 / 행동으로 말하려는 심정을 /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적에게 내던지는 심정을 - / 그것은 성실하고 열심한 사람이 늘 갖는 슬픔인 것을. // 끝없는 논쟁 후의 / 차갑게 식어버린 코코아 한 모금을 홀짝이며 / 혀 끝에 닿는 그 씁쓸한 맛깔로, / 나는 안다. 테러리스트의 / 슬프고도 슬픈 마음을.

‘끝없는 논쟁 후의 차갑게 식어버린 코코아 한 모금’은 예전에도 자주 느꼈던 감정이었다. 그동안 알라딘 서재에서는 상당히 많은 논쟁이 있었으나 지금껏 나는 알라딘 논쟁들에 대해 거의 대부분 국외자로 머물렀다. 그 이유는 논쟁의 대부분이 개인의 감정적 앙금이 쌓여 벌어지는, 혹은 굳이 개입하지 않아도 무방한 정도의 사적 수준이었고, 다른 한 가지는 논쟁 끝에 남는 '코코아 한 모금' 같은 기분을 굳이 느끼고 싶지 않아서였다.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없었다. 근본적으로는 인터넷 쇼핑몰에 불과한 알라딘과 한 줌도 안 되는 파워블로거, 몇몇 인기 블로거들 중심으로 꾸려지는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분위기에 돌을 던지고 싶지도 않았고, 불편하지도 않았으며, 또 한 편으론 이 분위기를 편하다고 즐기기도 했다.  알라딘 내의 서재 커뮤니티가 주는 즐거움이 컸고, 이곳을 단순히 책 읽는 쉼터로 이용하겠노라는 생각도 컸다.

그러나 한 자연인으로서 나는 잡지 출판을 통해 먹고 사는 사람이고, 부끄러운 글이나마 용처가 있다면 때때로 원고를 집필하기도 했다. 물론 어떤 인간도 자신이 하는 말을 모두 책임지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최소한 말한 바와 크게 다르지 않게 살려고 애쓰고 싶다. 부끄럽지만 이번 불매선언을 계기로 나 역시 거의 최초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현장을 가지고 고민해 본 셈이다. 새삼스럽게 깨우친 것은 책을 통한 지식이란 결국 현장에서 구체적인 현실과 대면하지 못한다면 창백하고 냉정한 논리에 불과하며 이런 지식은 결국 우리가 지탄해 마지않던 지식오퍼상의 앵무새 노릇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어떤 바보는 제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자신이 바보라는 사실조차 모른 채 세상과 함께 자신도 속인다.

개인적인 입장 표명이었지만 애초에 스스로 계획하길 100일을 생각했었다. 물론 이렇게 느슨하게 긴 시간을 잡았던 것은 참여하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고,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댓글을 달거나 불매에 대한 나름의 논리를 다듬어야 할 페이퍼들을 쓸 일이 있겠나 싶은 생각 때문이었다. 다른 의미에서는 나도 이 움직임에 적당히 수저 하나 얹은 채 분위기나 맞춰가잔 생각도 있었다. 요 정도 진보적인 척 하는 건 참 쉽다. 그러나 중도에 많은 분들을 만났고, 그 분들의 참신한 아이디어와 참여로 예상보다 길다고 해야 하나, 짧다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불매 선언이 외롭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이제 내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내가 가진 지식이나 경험이 많이 부족하였으므로 이 과정에서 함께 해준 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런 상황까지도 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좀더 많은 관심과 참여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려 함께 해준 이들에게 감사하단 말씀을 전한다. 그와 반대로 여러 의견을 덧대어 준 이들에게도 감사하다. 그 과정에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새로운 본색을 보여준 이들에게도 역시 감사한다. 이런 경험이 없었더라면 나는 당신의 글만으로 당신을 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지켜 본 분들은 잘 알겠지만 불매를 내세운 시위는 몇 번의 고비가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알라딘 측에서 답변을 할 때마다 한 차례씩 그 고비가 왔다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후 그를 추모하기 위해 준비되었던 콘서트를 기획하고 만들었던 문화기획자는 나의 대학원 선배다. 그가 애초부터 추모콘서트를 기획했던 것은 아니고 내가 알기로 XX대학 총학생회가 그에게 노무현 추모콘서트를 준비해달라고 요청해서 그가 나서게 된 것이었다.  본래 이 콘서트는 연세대 노천광장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학교당국이 시험을 이유로 거절하자(사실 강하게 거절한 것도 아니었다고 한다. 학교 입장에서도 정부 눈치가 보이는 일이었으므로 적당히 알아서 했다면 굳이 멀고 먼 그곳, 좁은 성공회대 운동장까지 와서 열릴 필요는 없었다) 이 행사를 추진했던 학생들이 딱하게도 추모콘서트를 강행하지 못하고 돌아서 버렸다. 그 바람에 노무현 추모콘서트는 자칫 허공에 뜰 뻔 했다. 지금은 운동권 학생들조차도 이처럼 유순하여 체제와 권위의 벽을 넘어설 생각을 감히 하지 못한다. 참으로 선량하지 아니한가.

마찬가지로 알라딘 소비자들의 불매시위 역시 새로울 것도 없는 알라딘 측의 불성실한 답변 한 마디에 이제 그만 두어야 하는가의 문제로 시선이 쏠리는 상황이다. 다들 아시는 바와 같이 현재 상황은 조유식 사장의 사과(?) 페이퍼로 상황이 종료된 듯 보인다(아닐 수도 있지만). 나는 그간의 성과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나 그렇다고 해서 달라진 것 역시 아무 것도 없다고 본다. 조유식 사장의 페이퍼 역시 공식적인 사과라기보다는 형식적으로는 한 자연인의 답변이다. 이것을 80년대 운동권이 만들어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유포시킨 용어 ‘진정성’의 기준에 비추어 보더라도 미흡하기 그지없다. 나는 알라딘의 최고책임자 조유식 사장의 답변으로 알라딘이 김종호 씨를 원직 복직시킬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접었다. 알라딘에서 해고된 노동자 김종호 씨 문제는 결국 지방노동위원회의 판결로 결론이 나겠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소비자인 내가 알라딘에 던진 질의에 대해서 아직까지 그리고 끝까지 어떤 대답도 듣지 못할 수 있다. 나는 그 대답을 듣고 싶은 것이다.

조유식 사장은 인터뷰 때마다 자신을 선비에 빗대어 선비의 도리를 이야기하던데, 나는 그에 견주어 건달의 도리로 말하고 싶다. “건달은 깨질 때 깨지더라도 쪽 팔리면 안 된다. 그리고 나는 쪽 팔리고 싶지 않다.”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소모적인 논쟁을 거듭하고 싶은 마음도 내겐 없다. 이건 어떤 의미에선 알라딘의 소비자이자, 알라딘 서재 이용자 중 한 사람으로서 내가 알라딘에 던지는 최후통첩이다. 알라딘! 어떤 기업인가? 그걸 보여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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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3 22: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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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12-23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매, 여전히 유효하지요.
김종호씨에게 적절한 사과나 원직복귀도 없었고
이런 일이 제발하지 않겠다는 대안의 구체적인 실행도 없으니까요.

바람구두님 페이퍼에선 항상 많은 걸 얻어갑니다.
서재를 너무 늦게 열었나 싶은 생각에 좀 아쉬운 생각도 듭니다.
요즘 돌아가는 걸 보면 서재 생활이 시한부(?)같아서요.

사실 저도 이번 김종호씨 일을 통해 무지했던 것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합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하곤 하죠.
무식한 게 자랑은 아냐. -_-;

곧 연말이고 날씨는 풀린다고는 하지만 추운 날씨입니다.
김종호씨와 같이 맘이 추우신 분들께 이번 겨울이 춥기만 한 계절이 아니란 걸
알게 해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스모커 2009-12-24 0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정규직 문제를 외면한 진보적 패러다임이란 없다는 말씀, 알라딘 사태를 보면서 절실하게 느끼는 일입니다. 이곳 사람들이 많이들 알고있는 흔히들 파워 블로거라고 하는 이도 이번 알라딘 사태에 대해 언급하기를, 비정규직의 불법 고용문제가 어디 오늘 내일 일이냐며 새삼 이를 들추는 일은 소위 급진적 좌파라고 포지셔닝하는 이들의 이기적인 자기확인일뿐 순수를 가장한 무책임한 행동이라 비웃는 통에 정말 충격 받았더랬습니다. 내가 와 있는곳이 이곳 알라딘이 맞나해서... 정말 그런건가하기도 하고...
그래도 님이 이렇게 제게 명확한 답을 주시니 고맙다고 해야할런지^^...
제가 원래 까칠한 사람이라 로그인도 잘 안하고 드나들고 댓글도 잘 달지않습니다만
그냥 지나갈수가 없어서리...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아주 차근차근..
추천 꾸욱 눌렀습니다. 두번은 안눌러지네..아쉽네그려...

2009-12-24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24 1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12-24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근차근 하시는 말씀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불매과정에서 대해 쓴 어떤 글보다 이 글이 제 마음에는 와 닿고, 머리나쁜 저도 무엇에 대한 불매인지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와서 바람구두님이 쓰신 불매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노코멘트 했어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솔한 글질은 경솔한 입질보다 백배는 나쁘니까요.

저는 평범한 직장인이고,
매번 적당히 현실에 타협하면서 그렇게 살고 있고,
제가 하는 수백가지 적당히 타협한 소비 중엔 알라딘도 들어가 있기에..
내가 일터에서 삶터에서 그리 살지 못하면서 남한테 그리 삽시다 말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소비자이기도 합니다.

사실 불매에 관련된 글을 열심히 읽고
나도 뭔가 해야지 생각한 것은,
바람구두님이 서재를 정리할까 하는 조바심에서 였는데,
경솔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알라딘이 문제인가에 대한 답이 아니라
김종호님에겐 알라딘이 문제다는 답으로 돌아왔어야 하는구나 생각해봅니다.

바람구두님 가족 모두 즐거운 연말연시 되시기를 바래봅니다.

책읽는사람 2009-12-24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바람구두님의 글을 읽어면서 가슴 한켠이 갑갑함을 느낍니다. 참세상을 통해 내용은 익히 들었지만 실질적인 행동을 하지 못한 내 자신이 미워지려고 합니다. 저는 불매운동은 커녕 이번달에도 꾸준히 책을 알라딘을 통해 샀습니다. 또한 하루에 1시간 이상은 알라딘홈페이지에서 놀고 있던 사람으로써 할말이 없습니다.
저도 불매운동에 동참하겠습니다.

별족 2009-12-24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불매운동을 하지 않습니다. 저는 '나는 약자니, 내 손을 잡아줘'라고 하는 모든 개인의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내가 약자니까, 너는 내 요구를 들어줘야 하고, 내 손을 잡지 않은 너는 양심도 없어'라는 것은 의아합니다. 지금 악법으로 왜곡된 상황을 바꾸는 투쟁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상황 때문에 불가능한 요구-저는 조선인님의 정리가 나름 이해되데요-라면, 그런 요구를 걸고 어쩌면 함께 투쟁할 수도 있을 사람들을-사장님도, 다른 알라디너도- 적으로 돌리는 게 필요할까,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해고당하신 분이 수십명 쯤 된다면, 해고자분이 요구한 것이 인트잡 소속으로 알라딘에서 일하는 '원직복직'이 아니라면, 그 방식이 '알라딘 불매운동'이 아니라면 달랐을까요. 모르겠습니다.

2009-12-26 2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unnyside 2009-12-28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숨만 나네요.

제가 아는 한 가지 사실만 말씀 드리면, 알라딘은 '진보'를 마케팅에 '전략'으로 활용했던 적이 없습니다.

그런 이미지가 있다면, 그건 알라딘에 다니는 사람들 전체의 가치관의 바운더리가 실제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알라딘의 그런 이미지 (진보) 때문에 불매 운동을 벌이고 있는 어떤 카페를 발견한 적도 있습니다.

시장 경제 하에서, 알라딘은 고용을 창출하고 도서 유통에 관한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 때문에 알라딘에 등을 돌린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알라딘이 다른 서점보다 단돈 100원 1000원이 더 비싸서 등을 돌리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알라딘이 다른 차원의 룰을 지키기 위해 시장 경제 하에서 도태되는 것이 그 어떤 비정규직에게 축복이 될 수 있을까요. 알라딘의 또 다른 직원들에게는 어떤 축복이 될 수 있을까요.

퇴근 시간은 가까워지는데 가슴은 계속 무겁기만 하네요.

새해엔 좋은 일들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2009-12-29 0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29 14: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9-12-29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게나마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바람구두님. 그럼 저도 불매운동에 동참해야겠네요.

2009-12-29 16: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29 2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10-03-18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요~ 이 사건의 전말을 모르는 한 사람이지만..글을 읽어보니 어쩔 수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맥도널드 커피전문점 백화점 옷가게 점원 등 수많은 직종에서 파견근로자를 고용해서 씁니다. 알라딘도 마찬가지일거구요~ 같은 선상에서 해고 된 거 같은데...아닌가요??

2010-05-14 2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5-11-27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립운동가 자손이 세웠다고 하는 교보문고로 옮기고 기념으로 한 열권 주문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