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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 1 (1부 1권) - 왕도(王道), 하늘에 이르는 길
최인호 지음 / 열림원 / 2005년 6월
평점 :
“ 임금 사랑하기를 아버지 사랑하듯 하였고
나라 걱정하기를 내 집 걱정하듯 하였노라. “
작가 최인호가 15년 전부터 구상하였다는 소설 ‘유림’은 이렇게 조광조가 유배지 능주에서 사사당하기전 썼다는 절명시와 함께 그가 사약을 받고 죽은 곳에 세워진 ‘적려유허비’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시작이 좀 뜻밖이다. 작가 자신이 직접 ‘적려유허비’를 찾아가는 과정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이자 화자가 작가 자신인 것이다.
작가는 15년 전 경허스님을 주인공으로 불교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장편소설 ‘길 없는 길’을 신문에 연재하던 중 인도에서 석가모니에 의해 출발한 불교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서 위대한 사상가 원효를 탄생시키며 찬란한 꽃을 피웠듯 우리 민족의 혈맥 속에 또 하나의 원형질이 깃들어 있음을 깨닫는다. 그것은 2천5백년 전 중국에서 공자로부터 비롯된 유교. 그는 유교에 대한 소설을 쓰지 않고는 우리의 민족성을 파헤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총 2부 6권으로 완성될 소설 ‘유림’의 첫 번째 주인공으로 작가는 ‘조광조’를 선택했다.
조광조...
우리나라 역사에서 이처럼 극단적인 평가를 받았던 인물이 또 있을까...
17세에 당대 제일의 성리학자 정굉필에게 사사하고 관직에 나가서는 임금에게 직언을 서슴치 않으며 끊임없이 개혁정치를 펴다 반대파인 훈구파에 탄핵되어 결국 기묘사화로 인해 37세의 나이에 생을 마친 인물 조광조...
이율곡은 그를 ‘학문이 채 이루어지기 전에 성급하게 정치에 뛰어든’ 아마추어 정치가로, 퇴계는 ‘천품이 뛰어나고 옳은 정치를 하였으나 주위 사람들을 다스리지 못한’ 실패한 정치가로 평가하였으며, 역모를 꾀했다 하여 탄핵되었으나 수많은 선비들은 그 부당함을 호소했고, 제대로 장사조차 치를 수 없는 죄인으로 죽음을 맞이했으나 사후 영의정으로 추증되고 문정공이라는 시호를 받기에 이르지 않았던가...
또한 그가 ‘내가 이리 죽게 되었으니 흉가가 되지 않겠느냐’고 했던 유배지는 ‘적려유허비’가 세워지고 유적지가 되었으며, 조광조가 그의 부친이 죽은 후 3년 동안 시묘를 하면서 학문에 정진했던 곳은 서원이 세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시호를 받은 지 30년 후에 서원이 세워졌고, 그 후에도 사액을 받지 못하다가 사후 130년이 흐른 효종에 이르러서야 임금에게 편액을 받았다. 이렇듯 조선시대 내내 엇갈리고 있는 그에 대한 평가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작가 또한 조광조를 가장 나중에 선정했음을 밝히기도 했다. 작가가 조광조를 선정했을 당시의 고뇌와 그의 평가를 알 수 있는 내용이 소설 속에 등장한다. 조광조가 능주로 유배를 갈 당시 갖바치가 바쳤다는 짝짝이 신발의 일화를 통해서이다.
사실 이 책은 소설임에도 허구와 사실의 경계가 모호하다. 작가가 소설 속에 직접 등장함은 물론 등장인물들이 모두 역사에 기록된 실제 인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작가는 서술한 모든 이야기가 기록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밝히고 있어 소설 속 이야기가 모두 사실인 것처럼 여겨지기 쉬우나 갖바치가 조광조에게 바친 한쪽은 희고 한쪽은 검은 짝짝이 신발의 이야기는 허구이다.
이는 어느 날 한쪽은 희고 한쪽은 검은 신발을 신고 관아에 출근했던 정도전이 “왼쪽에서 보면 흰 신발만 보일 것이요 검은 신발은 보이지 않을 것이며, 오른쪽에는 검은 것만 보일 것이고 흰 것은 보이지 않을 것이니,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고 했던 예에서 따온 것으로, 소설 속에서 갖바치가 조광조에게 바친 신발은 비록 한쪽은 희고 한쪽은 검은 짝짝이 신발이었으나 발에 꼭 맞는 신으로, 조광조의 정치 철학은 한쪽에서 보면 개혁적이다 한쪽에서 보면 과격하다 할 것이나 정작 중요한 것은 그 빛깔에 있지 않고 꼭 맞는 신발에 있음을 이르고 있는 것이다. 조광조에 대한 잘못된 평가를 지적함과 함께 오늘날의 정치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은 일화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 하늘과 사람은 그 근본됨이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이 사람에 대하여 도리에 맞지 않은 일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임금과 백성은 그 근본됨이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예전에 이상적인 임금들이 백성들에게 도리에 맞지 않은 일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
그렇다면 조광조가 결국 이루고자 함은 무엇이었을까? 작가는 그것은 공자의 유교 이념에 입각한 성리학적 지치주의를 이상적으로 실현하려 함에 있다고 보고 있다. 하늘과 사람은 근본됨이 하나이니 사람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세상은 하늘의 뜻이 실현되려는 이상사회가 되어야 하며 이와 같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이 도덕적으로 완성 되어야 하는 것이다. 조광조는 공자의 마음으로 정치를 개혁하려 했으며 자신뿐만 아니라 중종 또한 공자가 되어주기를 소망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조광조는 비록 실패했지만 공자의 사상으로 낡은 정치를 개혁하려한 우리나라가 낳은 가장 위대한 정치가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조광조의 발에 꼭 맞게 신겨졌던 신발인 공자에게로 이어진다. 2천5백년전 중국에서 시작된 유교...인, 의, 예, 충, 효를 이야기하는, 이제는 낡아빠진 듯한 유교를 이제 와서 소설을 통해서나마 다시 불러들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작가는 공자에게, 조광조에게 혼란한 현 시대의 어려움을 극복할 방법을 묻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