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츠마 이야기 - 살인사건 편
타케모토 노바라 지음, 김소영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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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지지리 복도 없는 인간입니다.

짝퉁 베르사체 만들다 시골로 쫓겨 온 못난 아버지에, 외박을 하고 온 하나밖에 없는 손녀딸에게 “드디어..”를 외치는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고, 유일한 친구라고는 표절과 짝퉁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양키소녀 뿐입니다. 그리고 믿을 수 없게도 유급을 당하는 바람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유일한 친구, 양키소녀 이치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나는 행복합니다. 나만의 로리타 스타일을 완성해주는 'BABY, THE STARS SHINE BRIGHT'에서 특별히 할인된 가격에 얼마든지 옷을 살 수 있고, 존경해 마지않는 이소베님은 'BABY, THE STARS SHINE BRIGHT'에서 디자이너로 일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BABY, THE STARS SHINE BRIGHT’의 팬으로서 좋아하는 입장으로서만 남고 싶기에 거절하고 있는 중입니다.


[나 뿐만이 아니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도 부탁하지 않았는데 혼자 생각한 자기 합리화를 자신에게 강요해서 5퍼센트의 가능성을 0퍼센트로 만들어 버리지. 그게 어른이 되는 방법이라고 자신에게 말하는 거야.]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도쿄에서 시모츠마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밀실살인사건이나 다름없는 이 사건에서 불쌍한 이치고가 범인으로 몰리는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저는 'BABY, THE STARS SHINE BRIGHT'에서 이소베님의 제안으로 새 디자인을 고민하느라 이치고가 범인이든 말든 상관이 없습니다만, 이 시골.. 논 밖에 없는 동네.. 시모츠마에서만 최고의 쇼핑몰 쟈스코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세이지씨로 인해 얼떨결에 경찰서에 못이 박힌 몽둥이를 들고 쳐들어가야 할 처지에 놓이고 말았으니.. 으휴.. 한숨만 나옵니다. 더군다나 이치고는 세이지씨를 좋아하고 있으면서도 고백도 못하는 있는 주제에, 감히 이 로코코의 여왕.. 로리타 공주인 내가 세이지씨를 좋아한다고 오해까지 하니.. 이건 정말이지..


[경험을 쌓게 되면 바보가 아닌 이상 바뀌어 갈 거야. 그게 성장이라는 거니까, 멈출 필요는 없어. 하지만 성장해도 바뀌지 않고 계속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작은 보석이 있지. 그 보석이 자기 자신이란다. ]


한마디로 진짜 웃기고 엄청 골 때리는 이야기.

전편이 있다는 건 몰랐으니.. 후편을 먼저 읽어버린 셈이지만, 전편을 몰라도 푸하하 웃어야 할 때와.. 키득키득거려야 할 때, 어이상실해야 할 때, 감동으로 뭉클뭉클거려야 할 때를 알아채는 데는 전혀 불편이 없다.

그만큼 쉽게쉽게.. 로리타 문화라던가.. 양키라던가 이런 문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 할 나 같은 독자조차도 주인공 모모코에 충분히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아주 재미있는 책.

이거 뭐야.. 하고 황당해하다가.. 배꼽을 잡고 뒹굴뒹굴 웃다가.. 마지막엔 눈물 찔끔.. 울어버리고 마는 소설.

아주 특별한 소녀들의 독특한 성장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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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아의 동굴
호세 카를로스 소모사 지음, 김상유 옮김 / 민음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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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들이 동굴에 갇혀있습니다. 온 몸이 꽁꽁 묶인 채 말이죠. 그들은 동굴 밖을 나갈 수 없습니다. 단지 동굴을 지나가는 그림자만을 볼 뿐. 오직 그것밖에 볼 수 없는 그들은 그 그림자가 실체라고 여깁니다. 사실은 그림자일 뿐이지만.

이것은 그 유명한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동굴의 비유’입니다. 동굴 밖의 진정한 이데아를 보지 못한 채 그림자를 참 모습이라고 여기는 현실 속의 우리들.

 

‘이데아의 동굴’은 독특한 구조를 가진 액자소설입니다. ‘플라톤’이 ‘아카데메이아’를 경영하던 시기의 고대 그리스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다룬 ‘동굴’이라는 소설과, 그 소설을 번역하는 번역자의 이야기가 주석으로 이어집니다. 처음에는 거리감을 두고 소설은 소설대로, 번역자는 번역자대로 각자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어느새 소설과 번역자는 한 데 뒤엉키고 맙니다.

고대 그리스에 써진 소설 속에 현재를 사는 번역자가 들어가 있기도 하고, 분실된 원본 대신 소설 속 첫 번째 희생자처럼 늑대에게 찢겨 죽은 채 발견된 ‘몬탈로’의 판본을 번역하던 번역자는 누군가에 의해 납치되고 계속 번역해서 최종적인 진짜 열쇠를 발견하라는 압력을 받게 됩니다.

 

이 소설이 놀라운 건 이런 이중적인 구조가 아닙니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이중적입니다. 살인 혹은 자살, 이성적인 것 혹은 눈에 보이는 것, 이상 혹은 현실, 번역자 혹은 등장인들, 이데아의 입증 혹은 반증 등등의 것들과 반전, 반전, 반전!!

그리고 그 이중성은 모순이며, 교묘하게 감춰져 있다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진실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거짓이 되고, 우리는 동굴에 갇혀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처음부터 잘 짜여진 거짓이었고, 우리는 그림자만을 본 것입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멈추고 이 책을 읽으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훌륭한 책이지만, 고대 그리스에 대한 약간의 배경지식을 요합니다. 진짜 주석은 책의 제일 마지막에 있으며 그마저도 그다지 친절하게 많은 걸 설명하고 있지 않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알아듣지 못할 어려운 말들은 대충 넘겨도 최종적인 열쇠가 무엇인지를 아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으니까요. 다만, 에이데시스를 발견하기 전에, 해독자와 철학자가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하기 전에, 이 책이 단순한 추리소설이 아니라는 걸 깨닫기 전에.. 손에서 책을 놓는 이유가 난해한 듯 보이는 단어들과 고대 그리스에 대한 몰이해(沒理解)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기를.

 

[숨겨진 이데아나 최종적인 열쇠나 궁극적인 의미 찾기를 중단하시오! 읽기를 멈추고 삶을 사시오! 텍스트에서 빠져 나오시오! 당신들은 무엇을 보고 있소?]


킬링타임용 대중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로 일반인들은 가까이 하기도 어려워하는 철학을 멋지게 한데 버무려, 등장인물과 독자가 같이 사유하고, 참여하고.. 종국엔 놀랍고도 충격적인 지적 반전을 만들어낸 작가의 솜씨는 가히 경이롭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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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심판한다 - 마이크 해머 시리즈 1 밀리언셀러 클럽 30
미키 스필레인 지음, 박선주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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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물을 읽을 때면 기대하게 되는 것이 있다.

미스테리한 사건, 범인은 주변인물 중에 있으며 예상치 못한 인물일 거라는 것,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사건 전개, 등등... 그래서 마지막장까지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은 ‘멋지다’라는 것. 


“내가 심판한다.”

이 책은 이 모든 것을 나름대로 고루 갖춘 추리물의 고전 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경찰이 아닌 사립탐정이 직업인 주인공, 꼬이고 꼬이다가 가장 마지막에 모습을 드러내는, 역시나 가까운 곳에 있었던 범인, 눈치 빠른 독자라면 충분히 알아 챌 법 하지만 어쨌든 중간중간 나름 교묘하게 제시되었던 증거들. (물론 의도적으로 연출된 흔적이 보여 나중에 그것이 증거라는 걸 알았을 때 아! 하는 탄성 대신 그럴 줄 알았지.. 정도의 반응이라는 게 아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당혹스럽다.


물론 그 유명한 ‘셜록홈즈’ 시리즈와 ‘아가사 크리스티’ 등만을 접한 얄팍한 독서량이 문제겠지만 처음 접한 하드보일드 물이라서인지 문득문득 당황스러운 부분이 많다.

하드보일드 물이니 소재나 내용이 거칠고 폭력적일 수도 있다. 아니 그래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통쾌한 액션과 이를테면 진한 남성미랄까 이런 게 배어 나와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 책이 1940년대에 등장했으니 꽤나 노골적으로 보이는 인종차별주의적인 부분이나 성차별,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 같은 건 그렇다 치더라도, 그래도 이건 뭐.. 이건 아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주인공은 거친 게 아니라 무차별적으로 난폭하고, 모든 여성들은 그에게 첫눈에 반해버리는데다 그것도 모자라 저돌적으로 유혹하기까지 한다. 무조건.

그리고 주인공의 폭력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된다. 살인마저도.

잔인하게 살해된 친구의 복수를 위해 편안하게 재판받는 법 같은 건 필요 없고 자신이 직접 똑같이 범인에게 돌려주겠다는 주인공은 그러나... 정작 자신이 행하는 폭력과 살인은 당연시되어버리는 것이다. 추리물에서 이렇게 매력 없고 막나가는 주인공은 처음이다.

아! 이건 하드보일드물이지.. 라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개연성은 부여해줘야 하는 것 아니냔 말이다.   


주인공의 캐릭터는 후에 액션물이나 형사물 같은 드라마나 영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틀림없이 그건 사실인 것 같다. 분명 터프한 매력과 화려한 여성편력을 자랑하는 남성 캐릭터는 질리도록 많으니까.


어떤 것이든 처음 선보일 때는 여러 가지로 문제점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

‘내가 심판한다.’는 하드보일드물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으니 그런 점을 가만하고 본다면 그럭저럭 흥미 있게 볼 만하다. 빠르게 읽히기도 하고.. 나름 의미도 있지 않은가. ‘원조’라는데.

하지만 멋진 주인공과 뒤통수를 치는 반전을 기대한다면 조금은 실망스러울지도. 특히나 이런 마초적인 캐릭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주인공을 싫어하게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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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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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생김새, 잔뜩 움츠린 자태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움직임.. 하지만 후각에 관한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향수 제조인. 이렇게 사람들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하는.. 아니, 오히려 혐오감을 주는 외모를 지닌 채 세상에 섞이지 못하면서도 적의를 드러내는 대신 안으로, 안으로 침작하기만 하는 주인공 그루누이는 작가와 닮았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쥐스킨트를 처음 만난 건 약 10여 년 전쯤 ‘좀머씨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그 뒤로 단편모음집 ‘깊이에의 강요’를 읽고 난 후, 참으로 오랜만에 몇 년 전부터 마음만 먹고 있던 ‘향수’를 집어 들면서 쥐스킨트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 특이한 작가는 독특한 상상력과 소재의 독창성, 그리고 결코 동의할 수 없을 것 같은 이야기를 간결하면서도 빠른 전개와 놀라운 필치로 어느새 작품에 빠져들면서 심적으로 동요하게 만든다. 이 사람은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라는 의문을 품게 되면서도 거부감 대신 오히려 책 속에 빨려 들어가듯 눈을 뗄 수가 없게 되고, 책을 덮는 순간에는 작가의 능력에 찬탄을 하게 되고야 마는 것이다. 마치, 그루누이가 지상 최고의 향수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어 버린 그 순간처럼.


자신을 방치한 채 죽이려던 어머니를 참수시키고 있는 힘껏 자신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알려 생명을 유지한 그루누이는 태어나던 순간처럼, 자신에게 벌어지는 모든 학대와 무시, 절망을 이겨내고 심사숙고한 결정과 인내로 때를 기다려 결국 자신만이 가진 천재적인 능력으로 세계 최고의 향수를 만들어낸다.

물론 그루누이는 자신에게 행해지는 모진 학대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듯 자신이 행하는 살인과 악마적인 행위 역시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자신의 판단대로 행동한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루누이를 동정하지도 미워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의 능력을 찬탄하고, 은밀히 그의 살인행위에 동조하게 된다. 왜? 그는 그만한 대가를 치렀으며, 그에게는 그만한 자격이 있고, 또 최고의 향수를 만들어내야 하니까.


이 작품이 위대한 건, 독특한 소재로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의 심장을 자극하는 탁월한 심리분석과 밀도 있는 스토리, 그리고 하나의 소설일 뿐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철학과 은근한 비판, 풍자가 가득 흐르기 때문이다.

그루누이가 아무런 채취가 없는 자신에게 사용하기 위해 온갖 역겨운 재료들로 인간의 냄새를 만드는 과정과 자신이 만든 향수로 사람들에게 신의 위치에까지 떠받들어지는 순간 등 읽는 내내 놀라움과 끔찍함, 두려움, 경의와 조소를 보내다 실소를 금할 수 없게 되기까지.. 냄새라는 하나의 감각을 소재로 하고 있음에도 오만가지 느낌을 체험하게 만든다.

그리고 아마도... 인간에 대해 어떤 경멸을 느낄지도.


눈에 보이는 게 다 일까?

냄새에 관한 한 천재이면서도 정작 자신의 냄새를 가지지 못한 모순덩어리 그루누이를 통해서 인간의 추악한 이면과 세상의 모순, 어쩌면 자신에 대해서까지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그는 천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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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 살해사건 1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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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 독살사건>의 전편 격.

<조선왕 독살사건>이 자신들의 기반과 권력을 위해 신하가 왕을 선택했던 조선 중,후반기 이야기라면, <조선선비 살해사건>은 조선이 건립된 후 새 왕조를 탄탄하게 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왕이 신하를 버렸던 조선 초,중반기 이야기이다. 

1권은 고려 말 부패했던 사회상과 조선의 건립, 새 왕조와 함께 등장한 새로운 세력 그리고 처음 왕조를 건립했던 이상과 점점 멀어진 채 점차 권력을 향해가는 피비린내 나는 궁중암투를, 2권은 새 왕조의 건립과 함께 등장한 훈구파와 성리학으로 무장한 사림파의 다툼 속에서 왕들이 상황에 따라 신하를 취하고 버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4대 사화를 다루고 있다.

그러니까 <조선왕 독살사건>과 <조선선비 살해사건>을 두고 보자면 저자는 조선 전기는 주도권을 쥐기 위한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 속에서 왕들이 왕권 강화를 꾀했던 시기로, 조선 후기는 사림파가 완벽하게 지배하였으나 그들 스스로 내부 분열을 일으켜 논쟁을 벌인 당쟁의 시기로 본 것이다. 


성리학적 세계관으로 해결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전혀 새로운 세계가 집권사림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사림파의 집권은 그래서 당쟁으로 이어졌다. 신진 사림에 대한 훈구 공신들의 공격이 사화라면, 사림 내부의 분열이 당쟁이었다. 사화의 시기가 가고 당쟁의 시기가 온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었다. 한 시대는 가고 새로운 시대가 온 것이다. 그 시대는 어쩌면 사화의 시대보다 사림에게 더 엄중한 시기였다. 과거 그들이 맞닥뜨려야 했던 대상이 훈구 공신이라면 이제는 역사였기 때문이다.


제목부터 ‘조선선비 살해사건’이고 4대 사화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 이 책은 사화에 관한 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보다는 고려 말부터 조선 중기까지의 전반적인 흐름과 몇 가지 사건 그리고 관련 인물들에 대한 저자의 주관적인 해설서에 가깝다. 특히나 몇몇 인물에 대한 해석은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비꼰다는 생각이 들만큼 비판적이어서 당혹스럽기도 하고 또 어떤 인물에 대해서는 꽤나 관대하다.

어차피 책이라는 건 저자의 머릿속 판단에 따른 결과물이니 그걸 가지고 왈가왈부할 것은 못 되지만, 야사마저도 마치 정사인 것처럼 해석한 부분이나 새로운 시각을 제시 한다 기 보다는 본인의 생각이 너무 많이 들어간 나머지 나름의 객관적인 평가가 되고 있지 못한 것은 많이 아쉽다. <조선왕독살사건>에서 봤던 신선한 시각과 논리 그리고 사화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를 기대 했었는데 말이다.


사화의 시대, 선비는 개인적으로는 금욕의 길을 걸어야 했고, 정치적으로는 형극의 길을 걸어야 했다. 선비들은 혼자 있을 때도 삼가는 신독의 길을 걸어야 했으며, 부패한 현실에는 온몸으로 맞서 싸우는 구도자의 길을 걸어야 했다. 참 선비들에게는 개인적 삶과 사회적 삶이 둘이 아니라 하나였다. 이 책은 바로 이런 길을 걷다가 죽어간 이 땅의 모든 참 선비들에게 던지는 작은 헌사이다.


조선이 사화와 당쟁 그리고 전쟁을 겪으면서도 500년의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건 분명 이러한 선비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선비정신을 되살리려 한 흔적이 곳곳에 보이지만 읽고난 후에 남는 건 선비정신에 대한 되새김보다는 왜 조선의 역사는 그토록 피로 얼룩졌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그 의문을 선비정신으로 가득 채워 줄 2%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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