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책장을 찾는다고 들었습니다(。ì_í。)




두번째 사진은 문학동네 피드처럼 출간 순대로 줄 세워봤는데 중간중간 함정이 있다. 나는 어떤 책의 구판을 소장하고 있다면 굳이 개정판을 구매하지는 않는 편이라 중간에 문학과지성사 책과 자음과모음 책이 자연스럽게 들어감.ㅎㅎ 문동 책들로 줄 세우기 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어차피 전체 다 모으면 출판사 알록달록하니까 무리해서 맞추지 않았다.

지난 책장 업데이트 때는 『꾿빠이, 이상』과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가 없었는데 그 사이에 채웠고, 가장 최근에 책장에 합류한 신간 『이토록 평범한 미래』까지 김연수로 가득한 책장을 보고 있으니 겨울 같았던 마음에 볕이 드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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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바름 씨는 1년 동안 동남아시아 일주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다. 적은 나이도 아닌데 아직 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상태에서 떠나는 긴 여행이라 주변 사람들이 걱정하는 눈으로 지켜봤다. 다른 일에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무엇을 결정하고 행동할 때마다 자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볼지 걱정할 때가 많다. 김바름 씨는 단호한 성격이라 다른 사람 눈치 보는 걸 싫어한다. 그래도 마음이 흔들릴 때는 《자본》 1판 서문 마지막에 마르크스가 옮겨 적은 《신곡》의 한 구절을 떠올리며 중심을 잡는다. “너의 길을 걸어라, 누가 뭐라 하든지! Segui il tuo corso, e lascia dir le gent!”

(p.59-60)

지금껏 내가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갖고 있는 책 양과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책을 아주 많이 갖고 있더라도 마음 깊이 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서재라고 할 것도 없이 사는 사람인데 책을 향한 애정이 누구 못지않게 큰 사람을 많이 봐왔다. 책이 많다고 해서 모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우리는 때로 무엇을 소유하는 것과 그 대상을 좋아하는 것이 같다고 말한다. 전혀 다른 얘기다. 어려운 철학책을 파고들 필요도 없이 사람을 만나고 그이들이 어떻게 사는지 조곤조곤 들여다보면 금세 안다. 무엇을 마음 깊이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을 가지려 하기보다, 자기 곁에 쌓아두려 하기보다 자유롭게 놓아주는 일을 즐긴다.

(p.67-68)

우리는 때로 아무 이유 없이 책을 읽는다. 목적이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책을 대하기도 한다. 책은 말없이 사람들 앞에 놓여있다. 책을 어떻게 읽을지는 모두 사람들이 생각할 일이다.

(p.112)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으니 어릴 때 본 책 얘기를 꺼낸다. 50권짜리 ‘계몽사 소년소녀 위인 전집’은 아직도 내용을 잊지 않았다. 심지어 한 권 한 권 내용이 눈에 선하다고 한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책을 많이 보게 하는 문화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자기 신체 리듬에 책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들여놓으면 나중에 무슨 일을 하든지, 인문학 연구자가 아니라 몸을 쓰는 운동 선수가 되더라도 거기서 직관의 능력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집 가까운 곳에 도서관이 많은 게 참 중요합니다. 연구자들이 고민해야 할 게 자기 집에 얼마나 많은 책을 쌓아두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좋은 도서관을 지을 수 있게 하느냐라고 생각해요.”

(p.124-125)

책을 한 번 읽고 그냥 덮어두면 안 되는 이유가 이것이다. 책은 바뀌지 않지만 사람이 바뀌기 때문이다. 사람이 만드는 책이지만, 그 책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만들어간다는 말이 맞다.

(p.152)


정리한다고 7년 만에 다시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저렇게 접는 일이 드문데 정리할 책이라 생각하니 접는 데 거리낌이 없어졌다. 사두고 아직 읽지 않은 책들도 정리할 책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덜 귀하게 여기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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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은 단단한 것이다.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타인의 아침이 막연하고 낯설 만큼, 각자의 일상이란 견고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어느 날 불쑥 나타난 작은 균열 하나에 쉽게 무너지는 것이기도 하다. 별 다른 일 없이 반복되는 오늘이 내일로 이어지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너무나 단단해서 연약할 수밖에 없는 일상을 흔들림 없이 지키는 일은 그래서 필사적이고 절박한 일이다. 일단 쳇바퀴에 올라 탄 이상 쉬지 않고 달려야만 하고 그것이 쳇바퀴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일 뿐이다.

“절망은 허망이다. 희망이 그런 것처럼.” 루쉰은 말했다. 절망이든 희망이든 모두 허망한 것이라고. 이건 어딘가 조금 잔인한 농담처럼 들리기도 한다. 희망이 없는 대신 절망도 없다면 그러한 세계의 허망한 정도는 어떻게든 견딜 수 있을 거라고 나를 달래듯이 말해본다. 어떻게든 시간은 또 흘러갈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과 그럼에도 별로 나아질 건 없으리라는 비판 사이에서 그럭저럭 대충 살고 싶다고 말하는 한편으로 무언가에 전력을 다하는 삶.

일상에서 벗어나 크고 위대한 것을 추구하는 데서 오는 아름다움. 현실 세계를 초월해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경지에서 느끼는 아름다움. 숭고한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이라고 한다. 내가 가진 미의식이 남다를 리 없겠지만 나는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그것의 허망함을 알면서도 지키고자 애쓰는 사람들에게서 숭고함을 느낀다. 나 혹은 누군가의 일상을 지켜낸다는 것은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일처럼 보이고, 약하고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는 것은 아무래도 크고 위대한 일이다. 언제나 각자의 숭고함이 안녕하기를.

밤이 늦었다. 내일은 월요일이다.

-김민영, 농담과 그림자 p.6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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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는지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단지 물을 주고 볕을 준 데에 보상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글쓰기를 배울 때에도 그렇게 배웠다. 해피 엔딩 새드 엔딩이 중요한 게 아니고, 다만 항상 진전시켜야 한다고. 전통적인 내러티브를 파괴하는 작품을 다루는 수업을 들을 때에도 내러티브가 아닌 무언가, 그게 형식이건 감정이건 간에, 무언가는 반드시 진전되어야 한다고 했다. 심지어 전 페이지가 이 페이지와 정확히 똑같은 내용일지라도 그 반복은 읽는 이의 마음속에서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는 데에서 기인한 전진을 일으킨다. 어디로든 가기는 가야 한다.

(p.108)

미소는 위스키 한 잔을 주문하고 담배를 문다. 스카치 위스키가 튤립 모양에 스템이 있는 유리잔(꼬냑 잔이 보통 이렇게 생겼다) 벽에 금빛 물방울 자국을 남기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장면에선 시간이 아주 느리게 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영화 내내 미소와 함께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치이느라 고단했던 나도 그 순간만큼은 안도했다. 주인공의 인생이 피곤하기는 해도 살아지기는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남들도 나처럼 포기할 수 없는 작고 비싼 것을 하나씩 간직하고 살고 있다는 점에서.

(p.149-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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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은 일을 쓰는 것은 싫은 일이다. 싫은 일을 읽는 것도 싫을 것이다. 하지만 사는 일은 싫은 일 없이 살아지지 않는다. 싫은 일은 흔하고 좋은 일은 드물다. 하지만 사는 일은 좋은 일 없이 살아진다.
(p.60)

사랑이라는 감정은 좋은 것이다. 마사 누스바움은 정치에 관해 말하든 법에 관해 말하든 분노나 용서에 관해 말하든 사랑을 빠뜨린 적이 없다. 사랑이 결여된 인간은 정치도 법도 분노도 용서도 올바르게 행할 수 없다. 사랑으로 그것을 다룰 때 인간은 이 세계에 인간의 존엄을 해치지 않는 정치와 법을 세우고 분노와 용서가 인간을 장악하지 않을 수 있도록 계도한다. 이것이 내가 이해한 마사 누스바움의 주장이다(사실상 호소에 가깝다). 나는 그 사랑 때문에 마사 누스바움의 모든 저작을 사랑한다. 그러나 인간은 사랑이 결여된 채로 이 세계를 건설하고 통치한다. 사랑 말고 다른 많은 것이 이 세계를 장악하는 데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p.63)

내가 살아온 날들에 하루도 같은 것이 없다면 나와 날씨일 것이다. 나와 날씨가 하루 아니 한 순간도 같은 적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저 멀리서 하얗게 엎어진 파도가 넓은 품으로 밀려와 내 발끝을 적시는 것 같다. 기억하자. 일생을 다해. 나와 날씨는 한순간도 같은 적이 없다는 것을.
(p.1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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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보영-장수양 시인의 글이 그랬던 것처럼 유진목 시인의 글도 시보다 산문을 먼저 읽었다. 시와 산책 이후로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이어서 작가님의 또 다른 산문을 읽고 싶기도 하고, 시는 어떻게 쓰실지 궁금해서 시를 읽고 싶기도 했다.

연초에 부산에 갔을 때 손목서가에서 둘러 본 서가의 인상이 생각나기도 했다. 단단하고 우직한 느낌의 서가였다. 나는 그날 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을 구매했는데, 서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책걸이 옆에 놓인 환상의 빛의 구절이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힘들면 언제든지 돌아와야 한다. 그때는 엄마와 같이 살자."

힘들 때 찾아간 것은 아니었으나, 시간이 흘러 힘든 순간이 오면 다시금 찾아가 서가에서 주는 기운을 받고 바다를 보며 커피 한 잔 하고 와야지 라는 생각을 하게 해준 서점이었다.

드문 좋은 일이었던 그날의 부산이 그리우면 이제는 유진목 작가님의 책을 펼쳐야지 싶게 만들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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