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냐 : 바냐 아저씨, 우린 살아야 해요. 길고도 긴 낮과 밤들을 끝까지 살아 가요. 운명이 우리에게 보내 주는 시련을 꾹 참아 나가는 거예요. 우리, 남들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하기로 해요. 앞으로도, 늙어서도. 그러다가 우리의 마지막 순간이 오면 우리의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여요. 그리고 무덤 너머 저 세상으로 가서 말하기로 해요. 우리의 삶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우리가 얼마나 울었고 슬퍼했는지 말이에요. 그러면 하느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실 테죠. 아, 그날이 오면, 사랑하는 아저씨, 우리는 밝고 아름다운 세상을 보게 될 거예요. 기쁜 마음으로, 이 세상에서 겪었던 우리의 슬픔을 돌아보며 따스한 미소를 짓게 될 거예요. 그리고 마침내 우린 쉴 수 있을 거예요. 나는 믿어요, 간절하게 정말 간절하게.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그의 두 손에 얹고는 지친 목소리로) 그곳에서 우린 쉴 수 있어요.

텔레긴이 나직하게 기타를 연주한다.

소냐 : 평화롭게 쉴 수 있을 거예요. 천사들의 날갯짓 소리를 들으며, 보석처럼 반짝이는 천상의 세계를 바라보면서요. 모든 악과 고통은 온 세상을 감싸는 위대한 자비의 빛 속으로 가라앉게 될 거예요. 그날은 평화롭고 순수하고 따스할 거예요. 난 믿어요. 굳게 믿어요. (눈물을 닦는다) 불쌍한 바냐 아저씨, 울고 계시군요. (흐느낀다) 아저씨는 평생 행복이 뭔지 모르고 살아오셨죠. 하지만 기다려요, 바냐 아저씨, 기다려야 해요. 우리는 쉴 수 있을 거예요. (그를 껴안는다) 쉴 수 있어요.

야경꾼의 딱따기 소리가 들린다.

텔레긴이 나직하게 기타를 연주한다. 마리야는 소책자 여백에 무언가를 적고 있다. 마리나는 양말을 뜨고 있다.

소냐 : 쉴 수 있어요.

ㅡ막ㅡ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바냐 아저씨 4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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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런데 왜 더 자주 만나지 않고 일주일에 한 번만 보느냐고 누군가는 물을지도 모르겠다. 왜 세상의 더 많은 부분을 함께 받아들이고 매일 서로 시시콜콜 잡담하며 안락함을 찾지 않느냐고 말이다. 문제는 우리 둘 다 부정적인 쪽으로 기울어 있는 사람들이라는 데 있다. 어떤 상황에서든 우린 영원히 컵에 물이 반밖에 없다고 느끼는 인간들인 것이다. 상실, 실패, 패배를 그가 드러내든 내가 드러내든 꼭 한 명은 그러고 있다. 어쩔 수가 없다. 우리도 좀 달라지고 싶지만 어찌됐건 우리가 느끼는 삶이라는 게 그러니까. 그리고 삶을 느끼는 방식은 결국 삶을 살아낸 방식일 수밖에 없다.


-비비언 고닉, 짝 없는 여자와 도시 p.8


엄마는 아빠와 결혼했을 때 영혼에서 모호함이라는 먹구름이 걷혔다고 했다. 엄마는 그렇게 표현했다. 모호함이라는 먹구름. 너희 아버진 마술 같은 사람이었지. 눈길, 손길, 그리고 날 이해해주는 게 그랬어. 엄마는 이 문장을 끝맺을 때쯤 몸을 앞으로 숙였다. 이해는 부적 같은 단어였다. 엄마 말로는, 이해를 받지 못하면 당신이 살아 있는 건지 알 길이 없었고 이해를 받으면 마음이 정돈되며 세상에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비비언 고닉, 짝 없는 여자와 도시 p.63



에마와의 우정에 금이 가기 시작하자 영원한 친구 따윈 없으며 오직 영원한 이익만이 있을 뿐이라던 윈스턴 처칠의 말이 떠올랐다. 물론 처칠은 세계를 향한 야심이 개인 간의 충실한 마음을 짓밟는다는 뜻으로 한 말이란 걸 알지만, 그래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처칠은 틀렸고, 영원한 이익 같은 것도 없다고. 나와 에마의 관계를 무너뜨린 건 수시로 모습을 바꾸는 우리 자신의 ‘이익’에 대한 배반이었다.

우리 내면세계는 유동적이고 불안정하며 변덕스럽고 언제나 전환 중인 상태라고, 윌리엄 제임스가 말했다. 그는 그런 전환들 자체가 바로 실제라고 생각했으며 경험이란 “그 수많은 전환 속에서 사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납득은 고사하고 이해하기도 쉽지 않은 깨달음이지만 분명 설득력이 있다. 정서적 공감에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런 변화가 일어나 평범한 날 아무 때고 결혼이나 우정, 혹은 업무 관계가 ‘돌연’ 정말로 끝장나버리는 일을 어떻게 달리 설명할 수 있을까?

-비비언 고닉, 짝 없는 여자와 도시 p.85-86



작년에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책을 읽었다면, 올해는 비비언 고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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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대가들과 조금 깊이 이야기를 나눠본 경험이 있는데, 대가인데 이런 것도 모르나 싶을 만큼 그분들에게도 구멍이 있어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의 양이 있다고 봅니다. 대가는 능력이 출중해서 하나씩 모두 쌓아가며 지금의 자리로 올라갔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분들도 꼭 완벽하지는 않다는 제 나름의 확신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공부의 구성 요소를 이렇게 생각합니다. ‘젊은 친구들,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 어차피 조금은 엉성한 구조로 가는 게 낫다. 이런 것에 덤벼들고 저런 것에 덤벼들면, 이쪽은 엉성해도 저쪽에서 깊게 공부하다 보면, 나중에는 이쪽과 저쪽이 얼추 만나더라.’ 깊숙이 파고든 저쪽이 버팀목이 되어 제법 힘이 생깁니다.

(p.83)

깨어 있는 동안 쓸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애써 잠을 청하거나, 게임이나 스포츠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것이며 멍 때리고 있는 시간은 낭비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너무 열심히 살고 있다. 행복하기 위해 게으름을 피워야 하는 게 아니라 게으름을 피우기 위해 행복해야 한다.

(p.96.5)

책 읽기에 대해 강연할 때 저는 코끼리가 똥 누는 사진을 화면에 띄웁니다. 코끼리 똥 실제로 보신 적 있으세요? 어마어마합니다. 들어간 게 있어야 나오지 않겠습니까? 어떤 분은 독서를 안 하는데도 글을 제법 쓴다고 말해요. 저는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많이 읽은 사람들이 글을 잘 써요. 읽은 내용을 기억해서 베끼는 게 아니라, 읽으면서 생각하는 과정에서 자기만의 문장이 탄생합니다. 글을 읽지 않은 사람이 글을 잘 쓰는 사례를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p.134)

사두고 이걸 언제 읽나 싶었는데 목표로 삼고 밑져야 본전이라고 펼쳤다.

너무 재밌어서 3일만에 호로록 읽었다 :)

최재천의 아마존을 즐겨보는 재미로서 최재천 교수님 부분은 음성지원 되는 느낌이 들어

읽는 내내 잘 읽혔다꒰◍ˊ◡ˋ꒱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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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힘들 때는 가만히 누워서 눈을 감고 본인에게 물어보세요. “그래서 뭘 하고 싶니? 난 뭘 원하지?” 하고요. 피하지 말고요.

어떻게 됐으면 좋겠는지, 그것을 정확히 인지해야(인정해야)

그 다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사람들이 왜 슬픈지, 왜 아픈지 대체로 알고 있다고 믿는 편이에요.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는 데 용기가 필요하니까. 자기의 나쁜 상황을 인정해야 하니까.

“모르겠어”라고 말하며 회피하는 거지요. 회피하는 게 우선 편하니까요.

그런데 채빈 씨, 버지니아 울프는 이렇게 말했어요.

“무엇이든 말로 바꾸어놓았을 때 그것은 온전한 것이 되었다. 여기서 온전함이란 그것이 나를 다치게 할 힘을 잃었음을 의미한다. 갈라진 조각을 하나로 묶어내는 일이 커다란 즐거움을 주는 이유는, 아마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고통에서 벗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박연준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p.75-76





박연준 작가님 이번 산문도 좋았다 :) 다음엔 모월모일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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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채우는 감각들 - 세계시인선 필사책
에밀리 디킨슨 외 지음, 강은교 외 옮김 / 민음사 / 2022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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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 출간된 세계시인선 필사책 밤을 채우는 감각들을 읽고 써보았다.

 

이 책에는 4명의 시인의 시가 실렸다. 청교도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 독신으로 살며 성경과 신화, 셰익스피어를 즐겨 읽었던 19세기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 평생 70개가 넘는 이명(異名)으로 문학적 인물들을 창조하여 작품을 쓴 포르투갈의 모더니즘을 이끈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 제임스 조이스, 프란츠 카프카와 함께 20세기 현대문학을 연 마르셀 프루스트. 괴테, 스탕달, 도스토예프스키 등 많은 예술가에게 영향을 준 19세기 영국의 대표 낭만주의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


각각의 시들은 이전에 출간된 에밀리 디킨슨의 <고독은 잴 수 없는 것>, 페르난두 페소아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마르셀 프루스트 <시간의 빛깔을 한 몽상>, 조지 고든 바이런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에서 한 번 더 깊이 감상하면 좋을 시들을 엄선하였다고 한다.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로 더 익숙한 마르셀 프루스트를 포함하여 네 시인의 시를 이번 필사책으로 처음 접했다. 시를 읽다보니 시인이 많은 시에 걸쳐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들리는 것 같아 재밌었다. 부족하지만 직접 필사한 시들로 시를 살펴보자.

 

에밀리 디킨슨의 시 중에 <희망이란 날개 달린 것>이라는 시를 골랐다.

 


디킨슨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생애의 대부분을 고향 매사추세츠 주 애머스트에서 보냈고, 외출을 극도로 자제하는 은둔 생활을 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할 때마다 느낀 정서적인 위기를 들 수 있다는 글을 읽었다. 외출을 줄여 관계를 차단하면 교류를 덜 하게 될 테고, 그렇다보면 이별하게 되더라도 정서적으로 안정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을까. 그래서 이 시 <희망이란 날개 달린 것>에 마음이 갔다.

희망이란 결코 멈추는 법 없이, 말없이 노래 부르며 영혼의 횃대 위를 날아다니는 날개 달린 것이라고 표현한다. 폭풍은 쓰라리게 마련이지만 바람 달콤하디 달콤하게 바람 속에서 들려오는 것이라고. 그 희망에 어쩔 줄 모르게 되는 건 그렇게도 따뜻한 것들이라 부르는 작은 새들이다. 날개가 달려 날아다니는 희망의 소리를 차디찬 땅에서, 낯선 바다에서도 듣는다. 소리를 들은 내가 궁지에 빠져도 희망은 나를 조금도 보채는 법이 없다.

중간에 그렇게도 따뜻한 것들이라며 작은 새들을 이야기 하는데, 나는 이 작은 새들에 시인 자신이 투영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희망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디킨슨의 어느 날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날개 달린 희망을 좇아갔다가 그는 다시 폭풍을 맞고 문을 걸어 잠갔을까. 그래서 고독은 잴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페르난두 페소아는 그의 저서 불안의 책말고는 아는 바가 없어 이번 기회에 찾아보았다. 페소아의 시그니처는 역시 이명(異名)이 아닐까 생각한다. 작가가 제 이름 대신 다른 이름을 사용하는 예는 흔히 있으나, 페소아의 예는 이런 일반적인 경우와 확연히 구별된다고 한다. 이름들 각각에 서로 구별되는 고유한 전기와 인격과 문체를 부여했기 때문이라고. 필사책에는 그의 이명들, 페소아가 "유일한 자연 시인'이라고 칭한 알베르투 카에이루와 그리스 철학을 애호하는 리카르두 레이스의 시가 실렸다.

 

그 중 나는 시인이 죽은 날 남긴 말이라는 시 <어쩌면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을 골랐다.



앞서 <만약 내가 일찍 죽는다면>이라는 시가 실렸는데 사랑받지 못한 자신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랑을) 꼭 받아야만 하는 법은 없다는 유일한 큰 이유 때문에 사랑받지 못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 썼다. 셀 수 없는 것들이 우리 안에 살고, 그들이 입 다물게 해 놓고 말은 내가 한다면서. 그렇게 그는 확인된 것만 해도 75개의 이명을 사용했다. 다른 삶에 대해 많이 쓴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죽음에 관해서도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오지 않았을까 싶다. 어디까지나 만약에, 어쩌면 말이지만.

 

그는 죽음에 대해서 거창하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오른손을 들어, 태양에게 인사한다고 썼다. 하지만 잘 가라고 말하려고 인사한 건 아니었다고. 태양을 아직 볼 수 있어서 좋다는 손짓이었고, 그게 다였다고. 페르난두 페소아가 아니라 그의 이명이 쓴 시가 실렸다고 했으니 페소아는 다른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다. 그인 동시에 그가 아니었으니까. 그를 두고 왜 모더니즘을 이끈 시인이라고 했는지 이제야 알겠다.

 

프루스트는 스물다섯의 나이에 습작을 엮어 첫 작품집 <즐거운 나날들>을 출간했으며, 이중 산문시를 엮은 것이 <시간의 빛깔을 한 몽상>이다. 음악적이며, 물결치는 몽상처럼 유연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과 심정을 나타내는 시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설명을 읽었다. 설명대로 그의 시들은 하나같이 눈을 감고 들으면 그 풍경을 상상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튈르리 공원은 모르지만 저녁 6시쯤, 어두운 하늘 아래 온통 잿빛으로 헐벗은 공원의 모습은 그릴 수 있을 것 같고 어스름한 나뭇가지들에 강렬하게 스며 있는 절망이 느껴지며, 갑작스레 눈에 띈 가을꽃 덤불이 어둠 속에서 풍요로운 빛을 발하는 광경이 펼쳐지는 것만 같다.

이처럼 그의 장기가 느껴지는 시는 <산책>이라고 생각했다.



화자가 품고 있는 감정이 세밀하게 묘사한 풍경에 깃든다. 시월의 아름다운 밤, 화자는 산책을 한다. 실연과 우울로 죽을 것만 같은 창백하고 지친 하늘이 아니라,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랗게 빛나는 발랄한 하늘이다. 이곳을 스쳐 지나는 것은 상념으로 무거운 구름 그림자가 아니고, 회색, 파랑, 분홍빛으로 반짝이는 농어와 장어 또는 빙어의 미끄러지는 지느러미들이다. 이토록 기쁨에 취한 물고기들은 시월의 하늘과 풀밭 사이를 달린다. 봄의 정령이 마치 인간의 숲인 듯 마술을 걸어 놓은 초원 안에서, 나무 숲 밑에서 말이다. 물고기들의 머리 위로, 아가미 사이로, 배 아래로 시원하게 미끄러지는 강물은 하나의 물길도 즐거이 달려가도록 노래하며 길을 내주었다고 이야기한다.

 

세상 평화로워 보이는 시어에 반해, 프루스트는 고통을 위대한 예술 작품의 뿌리라고 생각했다. 1908년부터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쓰는데 할애한 프루스트는 코르크를 두른 밀실 같은 침실에서 시간을 보내며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는 작업에 열중했다. 소설을 집필하는 데 필요한 인상과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서만 간헐적으로 외출했다고. 집중하기 힘들 정도로 피곤해지면 프루스트는 카페인 정제를 복용했고, 잠자리에 들 때는 카페인의 효력을 떨어뜨리기 위해 수면제 베로날을 복용했다. 그 때문에 한 친구가 프루스트에게 "자네는 브레이크와 엑셀러레이터를 동시에 밟고 있는 거네!"라고 따끔하게 충고하기도 했지만 프루스트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소설 집필 과정이 고통스럽기를 바라는 듯했다고. 어떤 고통이든 가치가 있으며, 고통이 위대한 예술 작품의 뿌리라고 생각하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지막 권에서는 "한 작가의 작품 수준은 고통이 심장에 파고들었던 깊이에 비례해서, 자분정의 물처럼 높이 치솟는 듯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메이슨 커리, 리추얼 참고)

 

고통을 위대한 예술 작품의 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렇게 평화로운 풍경을 그려내는 작가라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어떤 소설일까 궁금해지는 시였다.

 

마지막으로, 조지 고든 바이런. 바이런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여 검색을 해보았는데 TMI가 어마어마했다. 그의 화려한 여성편력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언급하지 않기로 하고, 내가 고른 시를 보자.

 

<앞날의 희망이 곧 행복이라고>라는 시를 골랐다.



제목만 보면 앞날의 희망이 곧 행복인 것을 말하는 시 같지만 시를 읽어보면 전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진정한 사랑은 과거를 아껴야 한다고 말하는 시다. 추억은 찬양하는 생각들을 일깨운다. 처음에 떠올라서 맨 나중에 지는 생각들.

희망이 우러러 사모하고 잃은 모든 것은 추억 속에 녹아든다고 할 정도로 그는 과거에 대한 생각을 애정 하는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미래는 멀리서부터 우리를 속였다며, 과거에 원한 것으로 우리는 될 수 없고 현재의 우리를 감히 생각할 수조차 없다고 말한다.

 

다음 장엔 아예 <추억>이라는 시가 실려 있는데, 여기서도 미래는 희망에 빛나기를 그치고 행복의 나날은 다하였으며 자신 인생의 새벽은 구름에 가려졌다고 말한다. 사랑과 희망과 기쁨에게 잘 있으라며 인사하는데 '추억이여, 너에게도 잘 있거라 인사할 수 있다면'이라는 문장을 덧붙인다. 추억에게 인사하고 싶어서 이 시를 쓴 것이 아닐까 싶은 시였다.

 

이후 실린 시들 역시 과거를 노래하고 과거를 추억하는 느낌이었다. 그는 왜 그토록 과거에 집중했을까. 미래의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과거의 영광이나 명예를 이야기하는 쪽이 더 낭만적으로 들렸기 때문일까. 바이런의 낭만적 면모를 부각시켜 이르는 표현인 '바이런적 영웅'은 브론테 자매와 프리드리히 니체, 버트란드 러셀 등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역사가이자 비평가 매컬레이 경은 이 인간상을 "자존심 있는, 침울한, 냉소적인, 표정에는 반항심이 마음에는 고통이 가득 차있는 인간, 자신 같은 종속들을 멸시하며 복수에 불탔으나 깊고 강한 연정이 있는 이"로 설명한다는데, 이와 같은 인간상이라면 내가 그의 시 일부에서 느낀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앞서 고른 그의 시 제목에 물결과 물음표를 붙여주고 싶다. 앞날의 희망이 곧 행복이라고~?



이 외에도 많은 시를 필사하고 읽었지만, 진득하게 이야기해보고 싶어서 네 편을 골라보았는데 이 책을 읽은 다른 독자분들은 어떤 시를 인상 깊게 읽었는지 궁금하다. 시를 읽고 쓰는 동안 작가의 또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져서 언젠가 읽고 싶은 책 목록에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과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올려두었다. 후자는 202212월 기준으로 13권까지 나왔는데... 욕심 부리지 않고 1권만 올려두겠다.

 

세계시인선이 다소 낯설어서 읽기를 주저하시는 분께 한 장씩 야금야금 필사하며 '밤을 채우는 감각들'을 느낄 수 있는 이 필사책을 추천한다. 내게 그런 시간이 되었듯이 말이다.



p.s. 종이 재질은 두께가 120g 정도로 조금 두껍고, 비침이 덜 하도록 보통 다이어리에 사용하는 종이를 사용했다고 한다. 만년필은 잉크 정도에 따라 뒷면에 묻어날 수는 있지만 일반 볼펜을 사용할 경우 크게 불편이 없다고 들었는데- 내 경우엔 캘리그라피 만년필, 일반 만년필을 썼을 때 뒷면에 묻어나는 정도는 아니었고, 살짝 비침이 있었다. ZIG 펜으로 쓴 경우는 비침이 큰 편이었지만 뒷면에 원문을 읽기에 무리가 없었다.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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