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샤샤 세이건의 에세이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를 읽었다.

 

이 책의 저자 샤샤 세이건은 창백한 푸른 점코스모스를 쓴 천문학자이자 교육자인 칼 세이건과 작가이자 영화 제작자인 앤 드루얀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두 사람의 슬하에서 샤샤는 방대한 우주와 자연현상에는 심오한 아름다움이 숨어있으며, 현상을 비판적으로 보되 삶을 냉소적으로 바라보지 말라고 배웠다. 부모의 삶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인간 존재를 다층적으로 탐색하는 글쓰기를 해왔다는 그녀의 우주를 이 한 권으로 엿 본 느낌이었다.

 

2. 16장의 챕터로 구성된 이 책은 태어남과 성장(성년), 명절(독립기념일)과 결혼을 거쳐 가을과 겨울을 지나 죽음에 이른다. 인간의 생애주기에 따른 샤샤 본인의 실화를 소개하며, 그 안에서 펼쳐지는 희로애락을 인문학적 통찰로 담아낸 에세이다.

 

나는 이 책의 시작인 들어가는 말부터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앙이 없다고 해서 이 지구상의 삶의 리듬을 따라 살고 싶은 욕망도 없는 것은 아니(p.16)라는 구절 때문이었다. 신앙이 없는 사람의 입장에서 쓴 글이지만, 신앙이 있는 사람이 읽기에도 전혀 무리가 없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신앙이 있고 없고의 문제는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니까. 이 부분에 있어 저자의 단호함을 느낄 수 있는 구절이 있어 소개해본다.

 

아이가 웃음을 터뜨리고 경이감을 느끼고 지구에서의 삶이 신비롭고도 의미로 가득차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다. 그렇지만 믿지도 않으면서 시늉만 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사실이라고 믿지 않는 것을 아이에게 말해줄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아이 양쪽 부모 조상들의 관습과 신념 일부를 따르면서도 거기에 구애받지 않고 한 해의 삶을 그려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느낀다. 아이가 사람들을 갈라놓는 교리 따위에 얽매이지 않고 이 지구의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게 만들고 싶다. (p.28)

 

저자는 종교가 가지는 힘과 자신이 부모님께 배운 과학을 결합하여 자신의 딸과 가족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이 우주에서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신비한 아름다움과 공포를 함께 헤쳐 나가고 기릴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다고 썼는데, 책을 읽는 내내 그 의지가 느껴져서 즐거웠다. 이와 같은 주제로 대화를 하면 이런 느낌일까?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좋은 대화를 하는 것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3.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4매일의 의식에 나온다.

 

결국은 우리의 취약함이 우리가 무언가 더 깊은 것에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사랑도 그렇고. 오류를 기꺼이 인정한다면, 예측이나 선입견을 과감히 놓아버릴 수 있다면,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에 다가갈 수 있다.

(p109-110)

 

요즘 내가 생각하는 삶의 태도와 맞닿아있어 눈에 들었다. 결국은 우리의 취약함이 우리가 무언가 더 깊은 것에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는 전자도 좋지만 내 마음에 든 건 후자 쪽이었다. 오류를 기꺼이 인정하는 자세, 예측이나 선입견을 과감히 놓아버릴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 많은 것에 다가갈 수 있다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오류를 인정하고 선입견을 내려놓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2015년에 개봉한 모 영화의 제목을 비틀어 이야기 하자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고 이야기 하는 건 정말 어렵다. 그땐 그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틀리다는 걸 알아차리는 것조차 쉽지 않을 때도 있다. 가깝게는 책부터 멀게는 사람까지 나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취하고 싶은 것만 취하고 싶어지는데, 이 태도를 경계하게끔 만들어주었다.

 

4. 나라마다 탄생을 기념하는 방법도 다르고 본인의 죄를 고백하고 속죄하는 방법도 다르지만 별자리를 믿는다는 점이 재밌었다. 이 점에 대해서 저자의 어머니가 한 말이 인상 깊었다.

 

편견으로 예단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지. 어떤 사람에 대해 무엇 한 가지를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안다고 생각하는 거잖아.” 엄마가 말했다. 엄마 말대로 이것도 일종의 고정관념이다.

별자리 때문에 피부색, 젠더, 인종, 성정체성, 종교 등에 따라 차별받듯 차별을 받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유사한 면이 있다. “나는 당신에 대해 한 가지를 알므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안다고 말하는 것에서 여러 차별주의에 내재한 게으르고 섣부른 가정을 볼 수 있다.

(p.195)

 

나도 만화 잡지를 달마다 사서 챙겨보던 시절에 비닐 포장을 벗기면 매번 별자리 운세부터 챙겨 읽었고, 혈액형으로 사람을 판단하던 때도 있었다. 요새는 그 자리를 MBTI가 차지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역시도 관심이 있었으나 흥미를 잃었다. 왜냐하면 내가 MBTI를 처음 접했을 때와 시간이 흘러 다시 검사를 해봤을 때 결과가 달랐기 때문이다. 몇 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도 이렇게 다른데 이걸로 사람을 어떻게 판단하지? 싶었다. 물론 기본적인 성향 같은 건 무시할 수 없어서 그런 공통점을 재밌어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MBTI를 비롯하여 어떤 사람에 대해 무엇 한 가지를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안다고 생각하는 일 역시 앞으로도 경계해야겠다.

 

5. 이 책을 읽으면서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을 읽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친절하게도 저자 본인이 그간 읽고 좋아했거나 깨달음을 얻었거나 이 책의 주제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논픽션들을 소개한 장이 있다. 저자에게 한없는 영감의 원천인 아버지 칼 세이건의 책 4권을 포함해 스무 권이 넘는데, 나는 그 중 5권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타네하시 코츠 세상과 나 사이, 오숙은 옮김, 열린책들, 2016

-카렌 암스트롱 축의 시대, 정영목 옮김, 교양인, 2010

-데이비드 우튼 과학이라는 발명, 정태훈 옮김, 김영사, 2020

-그레그 제너 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 서정아 옮김, 와이즈베리, 2017

-알랭 드 보통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박중서 옮김, 청미래, 2011

 

6. 내가 이 책을 읽고 이야기 한 것은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 종교와 각종 의식 등 전반적인 사례가 외국의 이야기들이긴 하지만 외국은 이렇구나, 외국이라고 다를 것 없구나 하며 읽었고 내가 경험하지 못해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들은 작품에서 보았던 장면들을 오버랩하여 읽었다. 이를테면 이 구절이다.

 

나는 아버지 묘지 앞 잔디에 앉아서 울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말을 걸었다. 아버지 묘지에 가면 늘 그렇게 한다. 아버지나 근처에 묻힌 조부모님이 내 말을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분들 들으라고 한 말이 아니라 나를 위해 한 말이었다. 그분들은 이제 이곳에 없지만 한때는 있었고, 내가 그분들을 아직 사랑한다는 것을 되새기기 위해서였다.

(p.219-220)

 

드라마 하백의 신부 2017’에서 주인공 윤소아가 엄마의 묘지 앞에 앉아서 엄마에게 말을 거는 장면을 생각하며 읽는 것이다. 좋아하는 드라마를 떠올리며 읽으니 책이 더욱 친근해졌다. 앞서 소개했던 4장의 구절 중 사랑도 그렇고.’라는 문장 역시 이 드라마의 내레이션을 생각나게 했다. 이 책의 제목과 드라마 속 내레이션을 조합하여 이 글을 마무리한다.

 

크나큰 우주 앞에서 우리는 이토록 작은 존재들이지만, 사람들은 어떤 힘으로든 살아요.

그게 사람이면, 사랑이면 더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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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뒤에도 우리는 몇 번이고 태어나는 마음으로 산다. 제 몸집만 한 가방을 메고 커다란 운동장에 처음 들어설 때, 낯선 동네로 이사갈 때,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때, 사랑이 올 때, 사랑이 떠날 때, 크고 작은 도전과 모험 앞에서 우리는 선택을 한다. 그때마다 누군가는 '시를 쓰지 않는 어리석음보다 시를 쓰는 어리석음을 더 좋아'(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선택의 가능성>)하는 시인의 마음으로 용기를 낸다. '연습 없이 태어나서 /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 인생이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 낙제란 없는 법'이니(쉼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 기꺼이 매 순간 태어나는 쪽을 선택한다.

- 무루,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p.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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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

"어느 시간에서든, 어느 공간에서든 반짝이는 것이 있다면 잘 간직해야지. 다듬지 않아도 그건 내겐 보석이니까."

고교 시절에 오가던 소란한 감정이 휘발되고 흐릿한 색채로 남는 과정을 장장 18권에 걸쳐 그린 만화 『다정다감』(박은아) 마지막 페이지에 새겨진 문장이다.

p.27

마침 1990년대 초중반은 초등학생 여자애들이 만화를 맘껏 사랑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시절이었다. 열 살 즈음 된 소녀들을 위한 두툼한 만화잡지들이 창간을 알렸고, TV를 켜면 <꽃의 천사 루루>, <요술소녀>, <베르사이유의 장미>, <뾰로롱 꼬마마녀>, <웨딩 피치>등이 나오는 호시절이었다.

p.41

말할 때마다 슬퍼지지만 한국 순정만화 시장의 몰락은 급격하게 이뤄졌다. 그리고 제대로 평가 받을 기회를 놓치면서 그 중요한 시기를 함께 견인한 대다수 독자들에게조차 만화는 현재진행형의 취미가 아니라 추억으로 남게 됐다. 좋아하는 마음은 어떤 면에서 잔인하다. 대가 없는 애정을 쏟는가 싶다가도 어느 순간 특별한 이유나 계기도 없이 느닷없이 그 마음을 철회해버리니까. 세상이 순정만화를 이야기하지 않는 동안 독자들의 기억 속에서도 순정만화라는 장르가 가진 근사한 부분과 장점들은 축소되고 폄하되고 사라졌다. 왜 설정이 과하거나 필요한 서사를 생략해 유치해진 작품을 가리킬 때 '순정만화 같다'는 비유가 쓰여야 할까? 순정만화가 정말 그런가? 뻔하고 조악한 드라마나 영화는 또 얼마나 많은데.

p.53

최근 많은 여성 소비자가 여자들의 이야기에 환호하는 심리는 '남자가 나오는 이야기가 꼴보기 싫다'는 것보다는 '여자 캐릭터의 고유성을 존중하지 않는 남자들 이야기를 더 보고 싶지 않다'에 가까울 것이다.

p.100

"첫사랑의 사람과 처음으로 사귀고, 교내에서도 이름 난 커플. 그 사람하고만 섹스도 하고 평생을 살아간다. 사실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그게 가장 행복하겠지. 하지만 이젠 이런 생각이 들어. 여러 사람들과 사랑에 빠지고 많은 상처를 받았기에 지금 이렇게 이 사람과 사랑할 수 있는 것이라고."

지금 누군가 사랑과 연애의 '효용'에 대해 내게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해피 마니아』(안노 모요코)의 주인공 시게타의 이 대사를 고를 것 같다.

p.103

믿음직한 동행을 찾았다면 운이 좋은 것. 하지만 나를 완전하게 채워줄 누군가가 등장하길 바라며 평생을 결핍감 속에 사는 것보다는 혼자, 성큼성큼 나아가는 편이 좋지 않을까. 때로는 푹푹 발목까지 빠지는 모래밭 속에서 방향 감각을 잃을 때도 있겠지만 나는 혼자가 되더라도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 알려준 감정들이 나를 자라게 했으니.

p.149

한자를 잘 모른다. 유치원 때부터 한자 카드와 시험지까지 직접 만들어주며 한문 조기교육을 시키려고 애쓴 엄마에게 미안할 정도다. 뻔한 간판이나 기사 제목조차 제대로 읽지 못할 때는 좀 무식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러나 다행히도 십이지 동물들의 한자는 대강 안다. 1995년 방영된 애니메이션 <꾸러기 수비대>의 마법 같은 주제가 덕분이다.

"똘기 떵이 호치 새초미 자축인묘, 드라고 요롱이 마초 미미 진사오미, 몽치 키키 강다리 찡찡이 신유술해."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이 경쾌한 리듬! 한국의 20대 30대 중 상당수가 십이지 순서를 완벽하게 외운다면 거기엔 이 주제가가 백 퍼센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p.160

그나저나 최근에 만화책들을 다시 보며 새삼 깨달은 것이 있다. 바로 순정만화가들은 일찌감치 고양이의 매력을 깨달은 종족이라는 사실이다. 그 시절에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이 있었다면 제일 처음 자기 집 고양이 사진을 올려 RT를 타는 사람들은 분명 이 사람들이었겠다는 확신이 든다.

p.164

창작욕, 책임감, 성실함이란 말로 포장된 험난한 여정을 반복하는 일이 얼마나 커다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지, '너는 네가 좋아하는 일 하잖아'라는 말이 얼마나 무용한지, 지금은 감히 안다. 끝없는 불평과 수시로 솟구치는 퇴사 욕구로 가득한 직장인의 세계에 발을 들인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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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

홀로 카페에서 커피나 차를 마시거나, 홀로 책방에서 시집을 고를 때, 혹은 홀로 술집에서 생맥주 혹은 싱글몰트 따위를 홀짝일 때,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분위기' 하나를 같이 먹는다. 그 '분위기'를 먹으면서 간단하게 정의 내릴 수 없는 이런저런 생각이라는 것을 하거나 혹은 그 어떤 생각도 필사적으로 하지 않으며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고, 그러고 나면 우리는 어찌 됐든 결국 더욱 자신다움으로 단단해진 채 거리로 나오게 된다.

p.15

나는 '그립다'는 말을 되도록 참으려고 한다. 내 그리움을 지킨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p.53

꽃나무가 주는 향기를 맡는 일은 나에게 간단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꽃나무는 가까이 다가온다고 해서 향을 더 나눠주는 존재들이 아니다. 어떤 때에는 바로 곁을 지나도 아무 냄새도 나지 않을 때도 있고, 어떤 때에는 제법 멀리 떨어져 있어도 향기를 맡을 수 있다. 모든 것은 그 나무의 컨디션과, 그날의 바람과 온도, 그리고 하필 그 순간의 내 호흡이 맞아떨어지는 아주 찰나에 좌우된다. 길을 걷다가 꽃나무 향기를 맡는 것도 나에게는 큰 횡재인 것이다.

p.62

맛없는 떡볶이집이라도 존재하는 것이 나는 좋다. 대체로 모든 게 그렇다. 뭐가 되었든 그닥 훌륭하지 않더라도 어쩌다 존재하게 되었으면 가능한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이 세상에 사십 년 가까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안심이다. 그것은 내가 나를 너무 사랑해서라거나 내가 이 세상에 쓸모 있는 존재라고 여겨져서가 아니라 어쨌거나 백기녀와 신중택의 젊은 날 뜨거운 밤을 통해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내가 존재하게 되어버렸으니 기왕 이렇게 된 거 오래오래 살아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p.121

나는 어느 건물 지하의 오래된 가게에서 떡볶이를 먹으며 어른이 된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들 중 어떤 어른들은 자신들이 먹고 자랐던 음식을 다시 찾아 먹으며 자신을 닮은 자식을 품고 조용히 엄마와 아빠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어른들은 이미 그 과정을 지나 가족이라는 모습으로 다시 이곳을 찾고 있다. 이 작은 가게에서 얼마나 커다랗고 아름다운 것이 쑥쑥 뻗어나가고 있는지 김경숙 씨는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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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단정 지어버리는 순간 세계는 멈춘다.


-쇼노 유지, 『아무도 없는 곳을 찾고 있어』(안은미 역, 정은문고, 2018) 23p 중에서




지금의 세상은 헤매지 않도록, 틀리지 않도록 만들어져 있다. 지도 앱이 있으면 처음 가는 곳이라도 길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쇼핑을 하기 전에 인터넷으로 가격과 기능을 비교해 싸면서도 인기 높은 상품을 산다. 영화를 보기에 앞서 또는 책을 사기에 앞서 인터넷 댓글이나 별점을 확인해 평판 좋은 작품을 고른다. 음악은 인터넷으로 미리 듣고 나서 앨범 속 마음에 드는 곡만 내려받는다. 다들 영리해진 탓에 궤도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학창시절, 들어보지도 않고 재킷만으로 선택한 레코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 된다거나(대실패도 있었지만) 처음에는 딱히 취향이 아니었던 곡이 자꾸 듣다 보니 그 앨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이 된 적이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고르고 고르다 보면 '미리 정해진 어울림'밖에 만나지 못한다. 우리는 모르는 것을 알게 되기에 감동한다.

-쇼노 유지, 『아무도 없는 곳을 찾고 있어』(안은미 역, 정은문고, 2018) 100~101p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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