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판 책이랑 함께 주문했더니 말일에야 받아 본 더뮤지컬.
김지현 배우님을 처음 보았던 연극 '오만과 편견' 초연 프로그램북과 함께 찍어보았다. 

가장 최근에 본 건 스위니토드 러빗부인이었는데, 그게 벌써 2020년 1월이라니.

렛미플라이로 대학로 와주셔서 4월에 보러 갈 예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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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무대 -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질 그 시간을 축제처럼 만끽하는 수밖에 없다. 아무튼 시리즈 46
황정원 지음 / 코난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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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바로 이거지. 영상 공연이 라이브 공연을 대체할 수 없는 이유. 코로나로 인해 납작한 온라인 공연만이 가능한 동안 나는 이 생명력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생면부지의 관객들과 감정을 공유하는 그 기묘한 느낌, 그래서 객석 안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가 된 듯한 초현실적인 시간 또한 말이다. 무대 밖 일상이 사라지고, 마침내 공연을 관람하는 나마저 사라지면 그 진공으로 무대라는 우주가 빨려 들어온다. 그 속에서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을 유영하다 현실로 돌아오면, 그리 오래 있지 않은 것 같은데 그렇게 긴 시간이었나 놀랐다가 아니, 순식간에 끝난 것도 같아 재차 시간을 확인하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 저 깊은 어딘가에서 생명력이 움터온다. 나의 일상과 전혀 무관한 무대 위 이야기가 지친 일상을 추스르고 버틸 힘을 준다. 그 힘을 한 번이라도 느껴보면 '공연뽕' 맞은 사람이 되어 무대를 찾고 또 찾는다. 찾을 수밖에 없다. 살아가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p.101)

내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아이돌 덕후에게 비밀번호의 일부분이 최애의 생일이거나 데뷔일이라면 연극-뮤지컬 덕후에겐 레전드 관극날이 되곤 하는데 내겐 190420이 그렇다. 2019년 4월 20일,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처음 본 날이었다. 흐린 구름을 잔뜩 머금은 날씨, 공연을 보고 나와서 본 롯데월드의 신데렐라성에 켜진 조명까지 모든 것들이 기억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비가 제법 쏟아졌는데, 그 비를 맞으면서도 공연 이야기에 웃음꽃을 피우며 택시를 잡던 순간까지 말이다. 그렇다. 나와 공연을 함께 본 언니는 '공연뽕'을 맞은 것이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생명력을 나란히 느낀 우리는 다시 무대를 찾았다. 서울에서의 공연은 종료되었지만 지방 공연이 시작된 덕분에 인천으로, 성남으로, 천안까지 찾아갔다. 4월부터 8월까지 이어진 관극 덕분에 잊지 못할 여름이었다.

무대에 대한 나의 경험은 연극과 뮤지컬에 한정되지만 이 책 <아무튼, 무대>를 쓴 황정원 작가님의 경험은 굉장히 폭 넓은데, 그 지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과학도의 삶을 살다 음악에 매료되어 진로를 수정하셨다니. 이런 분을 두고 다재다능하다고 하는 걸까. 과학도로서의 모습은 여기서 드러난다.

"네가 수도관 속을 흐르는 수돗물이야. 더 빨리 흐르려면 어떻게 해야겠어?"

물리학과 선배가 나에게 유체역학을 설명하며 물었다. 관을 통과하는 유체가 표면과 마찰하며 받는 저항, 또 저항을 최소로 받는 모양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마찰을 최소화해야 추진력을 최대로 얻을 거 아냐."

대화가 오간 장소는 KAIST 교내 수영장이다. 그는 내 접영 자세를 바로잡아주려고 먼저 유체역학을 이해시키고 있었다. 수영복 차림으로 말이다.

(p.25)

빗밧울이 떨어지는 각도와 단면적을 계산하기 보다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을... 이어질 동사를 그때는 미처 찾지 못했다며 과거를 회상하는 부분에서 나는 사람을 이과-문과로 나누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단지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인생의 경로를 이렇게까지 수정해도 되는 걸까? 고민하는 사람 앞에서 그건 무례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한예종에 입학하여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겪은 갈등이 거꾸로 자신을 미는 추진력이 되어 원하는 세계로 데려다주었다는 작가님. 이곳이 원하는 세계임을 깨달았던 순간은, 추측컨대 이 구절이 아닐까 싶다.

그리하여 그날, 내 세계가 뒤집혔다. 하나의 텍스트가 서로 다른 시선으로 읽힐 수 있었다. 다 다르게 읽혀도 되는 것을 넘어 그렇게 읽혀야만 했다. 이 충돌과 혼잡함이 모두가 공유하는 하나의 목적, 훌륭한 공연을 창조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었다. 그러므로 예측 가능한 정답이 아니라 자신만의 해석과 개성이 필요했다.

어항 속에 있다가 갑자기 바다 한가운데로 풀려난 물고기가 된 기분이었다. 어리둥절한 가운데 엄청난 희열이 느껴졌다. 눈앞이 아찔할 정도의 자유였다. 벽이 없다! 어느 방향으로 헤엄쳐도 틀렸다며 가로막히지 않는다. 다른 견해가 오답으로 밀쳐지지도 않았다. 도리어 각자의 시선과 다양한 생각이 두텁게 쌓일수록 새롭고 독창적인 길이 나타났다.

(p.22-23)

내가 무대를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늘 아래 같은 무대가 없다는 것. 같은 배우가 낮밤으로 종일 공연해도 낮의 공연과 밤의 공연이 다르다. 배우의 컨디션이, 객석의 분위기가, 그날의 날씨가, 실수로 꽂고 나온 머리핀 하나가 그날의 공연을 만든다. 같은 공연이지만 공연장이 다르기도 하고, 공연을 올리는 계절이 다르기도 하다. 공연이 완성되기까지의 모든 여정이 공연이 된다. 만든 사람, 만든 것을 접한 사람 모두에게 정답이 없는 세계.

이 멋진 세계를 외국에서는 장애를 가진 사람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는 이야기는 정말이지 부러웠다. 오페라 무대에 수어 통역사가 올라서 청각장애인들이 음악극을 즐길 수 있다니. 이 글을 읽는데 지난달 막을 내린 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이 떠올랐다. 청각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비장애인 가족 사이에서 겪는 소외를 그린 작품인데, 공연기간 중반까지 자막 시스템을 갖추지 않아 관객의 항의를 받았다. 이에 제작사가 급히 극장과 협의하여 한글자막을 제공했다고. 일반 공연장이 아닌 국립 공연장인데다, 청각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비장애인 가족 사이에서 겪는 소외를 그린 작품이 자막 시스템을 갖추지 않고 공연을 올린 것은 결국 장애를 가진 관람객을 소외시킨 것 같아 씁쓸했다.

장애를 가진 관객을 가장 진취적으로 포용하는 곳은 영국 국립극장이다.

(p.85)

이곳에선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운영하는 음성해설 지원 공연도 있다. 공연에 앞서 참가자들은 ‘터치 투어’라는 것을 제공 받는다. 스태프들의 리드에 손을 세트에 올려놓기도 하고 소품을 건네받아 극을 파악하기도 한다.

한 참가자는 의상팀이 건넨 집주인 키티의 카디건을 만져보고 “꽤 낡은 느낌이네요. 키티가 오래 입은 옷인가 봐요.”라고 물었다.

(p.87)

이후엔 무대디자이너가 나서서 세트디자인의 의도를 설명하고, 본 공연을 앞둔 배우들이 직접 등장해서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소개한다. 투어 참가자들이 그들의 목소리와 극중 캐릭터를 미리 연결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라고. 시각 정보가 있다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지만, 시각 정보를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에겐 청각/촉각 정보로 전환이 필요한데 이 부분을 ‘터치 투어’를 통해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 투어를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었을까. 이 공연의 가장 멋있는 점은 이 부분이다. 예산은 생각보다 적었고, 정부보조금은 전혀 없다는 것.

전혀 없다고요? 전혀? 여러 번 되묻고 같은 답을 몇 번이나 들었는데도 “그런데 용케 극장이 자비를 들여 이런 일을 하는군요”라고 믿겨 하지 않자 단순한 대답이 돌아왔다.

“왜냐면 그게 옳은 일이니까요.”

(p.90)

이날 이후 모든 것이 비관적으로 느껴질 때, 세상이 너무 각박하다고 느껴질 때, 작가님은 영국 국립극장 홈페이지 Access 페이지를 찬찬히 들여다보곤 하신단다. 한계를 핑계 삼지 않고, 앞장서서 세상을 바꾸는 선한 사람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서라고. 한국에도 배리어프리 공연이 더 늘어나서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소외되지 않고 무대를 즐길 수 있는 날이 오길 희망한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진들 박제할 수 없기에 더욱 간절한 시간,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질 시간이라 축제처럼 만끽할 수밖에 없는 이 시간 예술을 애틋하게 여겨본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하며 글을 갈무리한다.

p.s. 무대에 대한 이야기 외에도 무대를 올리는 사람으로 배우며 생각한 이야기, 영화 '마션'과 오페라를 날개 삼아 버틴 난임에 대한 이야기 등 작가님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인상 깊었는데 글이 길어질까 담지 못했다. 책에 언급된 뮤지컬과 오페라는 하나도 알지 못했지만, 내가 경험한 무대들을 떠올린 덕분에 읽는데 전혀 무리가 없었다.

앞서 언급한 것으로 인해 국립극장에 오해가 있을까봐 첨언하자면, 지난해 동물의 생명권을 주제로 한 연극 ‘로드킬 인 더 씨어터’에서는 모든 회차에 걸쳐 수어 통역과 음성해설, 한글자막을 넣었고, 장애인 극단 다빈나오의 ‘소리극 옥이’ 공연에 수화통역가를 배치한데 이어 올해 공연 녹화영상에도 수화통역 화면을 넣어 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공공극장을 중심으로 장애 관객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오해하지 마시길!

(해당 내용 참고 기사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304/1121473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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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를 하면 너무 정치적이라는 말을 듣곤 한다.

그런데 나는 누가 어떤 이야기를 굳이 '너무 정치적'이라고 말하면 그저 그 일에 관심을 두지 않겠다는 말로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그건 너무 정치적, 이라고 말할 때 나는 그 말을 대개 이런 고백으로 듣는다.

나는 그 일을 고민할 필요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렇습니까.


-황정은, 일기 日記 p.13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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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결산, 올해의 인물.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다 보면 내가 이걸 보려고 입덕한 게 아닐까? 하는 작품을 만난다. 올해는 음악극 '태일'이 그랬다.

태일을 어떻게 보게 되었더라. 도합 20번 본 뮤지컬 '미드나잇'을 나보다 더 좋아하는 트친 분의 후기가 타임라인에 차곡차곡 쌓이는 걸 보고 궁금해졌다. 대체 어떤 극이기에 후기가 이렇게 좋은 걸까. 이분이 이렇게 좋아하는 작품이라면 필시 내 마음에 들 거고, 그렇지 않아도 본전이니까 한 번 봐보자.
그렇게 태일을 처음 보던 날. 공연이 끝나고 일어나야 하는데 눈물이 다시 쏟아지는 바람에 다시 주저 앉아 추스르고 일어선 기억이 난다. 처음 계획했던 페어와 전혀 다른 페어로 보게 되었는데, 그 페어가 너무 잘 맞았던 나머지 두 번을 더 보고 보냈다.

때마침 명필름이 제작한 애니메이션 '태일이'도 개봉했다. 이번엔 막내와 함께 챙겨보았다. 음악극 '태일'에서 보지 못했던 태일이의 모습과 평화시장 여공들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만났다.

또 이번주에는 애정하는 프로 '꼬꼬무'에서 전태일 열사를 다뤄준 덕분에 본방사수했다. 태일이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님과 여동생 순덕씨 그리고 친구 3명(김영문, 이승철, 최종인님)의 인터뷰가 담겨서 울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꼬꼬무에서 인상 깊었던 건 1970년 11월 13일 이후의 이야기를 다뤄준 부분이었다. 친구들은 청계피복 노조가 해산할 때까지 10년간 노동자를 위해 싸웠다. 사망한 노동자의 빈소에는 늘 어머니가 계셨다. 노동자들의 시위 현장에도 어머니는 항상 맨 앞에 있었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죽지 말고 싸워라."는 말을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으셨단다.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아들의 곁으로 가는 그날까지 노동자의 어머니로 살다 가신 태일의 어머니와 여전히 태일이의 친구로 살고 계신 친구분들이 있기에 태일이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고, 그 바람은 이어질 것이다.

6월의 어느 날 연극을 보러 갔을 때 광화문 교보문고에 이런 현판이 걸려있었다. 올 여름 할 일은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일. 김경인 시인의 <여름의 할 일>이라는 시의 구절이었다. 이 구절을 빌려 이 글을 갈무리한다.

올해 내가 한 일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불꽃을 지켜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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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1일 수요일, 마음폴짝홀.


1. 마음산책북클럽 올해 마지막 모임으로, 김초엽 작가님 낭독회에 다녀왔다. 참석 여부 신청할 때 낭독 여부를 신청도 함께 받았는데 나는 신청하지 않았다. GV 참석 시에도 나는 100% 듣는 쪽이고, 평생 나설 만한 일은 해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 뭘 시킬 것 같으면 존재감을 최대한 지우고 그 시간이 기다리기만을 바라는 그런 애였고, 성인이 되어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작가님의 근황 이야기가 끝나고, 낭독회 시작 전에 편집자님께서 낭독 신청 인원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꺼내셨다. 혹시 현장에서 낭독해주실 분이 계시면 손을 들어 달라고.

무슨 바람이었을까, 나는 고민 끝에 마지막으로 낭독을 앞두고 손을 들었다. 으아아아 떨린다 떨려.

나는 <우리 집 코코>의 일부분을 낭독했다.

과학자들은 어쩌면 앞으로 지구상에 두 종류의
생태계가 공존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추정하지.
우리는 이미 외계세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이제는 어느 토양에서든 외계 생물들이 남긴 독특한 부산물들을,
혹은 외계 미생물 그 자체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이전과는 구분되는 새로운 지질시대가 도래했다는 거야.
그래서 어떤 이들은 아직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지구의 영역을
늦기 전에 지켜야 한다고, 지구 보존 구역을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해.
코코를 사랑하는 이들조차 때로는 코코의 목적을 의심하지.
그것들의 최종 목적은 무엇일까? 이미 늦은 걸까?
지구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오염된 걸까?
아니면, 그게 정말로 '오염'이긴 한 걸까?
그래, 나는 상관없어.
그것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지 않으니까.
그 오염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니까.

-김초엽 짧은 소설 <행성어 서점> 중 p.150-151
(낭독회에서 낭독한 느낌대로 구절을 나누어 보았다)

낭독을 끝내고 낭독 후기를 이야기 할 시간이 되었다. 마지막을 장식하게 되어 영광이라고 해야하는데 황송하다고 했다. 으아아아 황송이라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너무 과한데! 내가 말해놓고도 당황해서 그 뒤에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책을 읽고, 기억하는 방식 중에 하나가 이렇게 북클럽으로 낭독회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나아가 낭독회에서 낭독을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용기내어 봤다고.




2. '낭독'하면 나는 고1때 국어 시간에 읽은 구운몽이 생각난다. 그냥은 잘 읽히지 않는 작품이라, 선생님은 한 분단을 지목해서 소리내어 읽으라고 주문했다. 1명이 읽는데, 틀리면 다음 사람이 이어 읽는 식이었다. 순서는 내 차례까지 왔고, 나는 쉬는 시간 종이 울릴 때까지 책을 읽었다. 중간에 한 번 틀렸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고, 어쩐지 계속 읽어야 할 분위기여서 끝까지 읽었더랬다.

아이들에겐 그냥 수업 시간의 일부였겠지만, 나한텐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구운몽이 기억나지 않으면서 기억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아, 책이 이렇게 기억되기도 하는구나.

내가 언제 김초엽 작가님의 낭독회에 올 수 있을까? 이건 용기내서 낭독해보라는 낭독요정(...)의 큰 그림이 아닐까? 돌아가는 길에 후회하더라도 일단 질러볼까? 온갖 생각 끝에 번쩍 손을 들었다. 내 생각을 추려서 질문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낭독하는 거다. 세상 안 무너진다! 할 수 있다!

혼자 애써 고민한 것이 무색하게 잘 읽었다.
확신의 INFP, 파워 내향인이 용기내어 낭독해보았습니다 여러분...

놀 땐 잘 놀았지만, 돌아가는 길에 같이 가자고 하면 부담스럽고
약속이 취소되면 아쉬움보다 안도감을 더 크게 느끼고
하루 중 한 시간 정도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며
뉴스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라고 하면 반갑고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적절한 대응을 신속하게 못 하는

내향형 체크리스트 5개 전부 해당하는 내향인도 할 수 있습니다!
다음에 이런 자리가 있다면 여러분도 용기 내봅시다!




낭독회에서 작가님이 해주신 인상 깊고 재미난 이야기를 기록해두고 싶었는데, 너무 내 이야기만 한 것 같다. 낭독회 이야기는 다른 북클럽 회원분들이 잘 해주셨을테니 나는 그냥 내 이야기를 남겨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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