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된다는 것
니콜 크라우스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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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 크라우스의 단편집 『남자가 된다는 것』을 읽었다. 올해 북클럽문학동네 웰컴키트 선택도서로 니콜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를 선택해서 받아 보았는데, 티저북으로 단편집을 먼저 읽게 되었다.

티저북에는 <스위스>, <에르샤디를 보다>, <아무르> 세 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이 세 편의 단편에서 책의 제목인 '남자가 된다는 것' 혹은 '남자라는 존재', '남자답게 행동하기'를 느끼지는 못했지만 세 편의 단편만으로 충분히 니콜 크라우스 소설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소라야가 슬픈 미소를 띠고 내 머리카락을 만졌던 순간을 떠올리며 그때 내가 본 건 어떤 품위였다고 믿었다. 자신을 벼랑 끝까지 밀어붙이며 어둠 혹은 두려움과 맞붙어 이긴 사람의 품위.
-<스위스> 중에서

로미에게 자꾸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그녀가 마음을 열고 그런 일들을 찾기 때문이며 항상 뭔가를 시도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로 결과에는 크게 개의치 않았고 그런 시도가 어떤 감정을 일으키는지, 그걸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지만 생각했다.
-<에르샤디를 보다> 중에서

그들에겐 아직 휴대전화가 없었고 전화선으로 접속하던 인터넷 공간도 당시에는 텅 비어 있다시피 해서 한동안 그들 사이에는 침묵만이, 눈물과 의문만이 있었다.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알 수도 없는 상태. 다시 말해 인내와 기다림만이 있었다.
-<아무르> 중에서

세 편의 단편 중 내 마음을 사로잡은 단편은 <에르샤디를 보다>였다. 주인공 나는 이란 감독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체리 향기>를 보는데, 영화의 줄거리와 영화를 챙겨 본 나와 친구 로미의 시선이 흥미로웠다.

한 남자가 자동차를 몰고 황량한 벌판을 달려간다. 그는 지나치는 사람들을 눈여겨 보며 자신의 차에 동승할 사람을 찾는다. 그가 찾고 있는 사람은 수면제를 먹고 누운 자신의 위로 흙을 덮어 줄 사람. 돈은 얼마든지 주겠다는 그의 간절한 부탁에도 사람들은 고개를 젓는다. 애띤 얼굴의 군인도, 온화한 미소의 신학도도 죽음이란 단어 앞에선 단호하게 외면할 뿐. 드디어 한 노인이 그의 제안을 수락한다.
(후략)

지난달에 본 영화 <헤어질 결심>이 떠올랐다. 그는 왜 그런 결심을 한 것일까 생각하니 이 작품으로 처음 접한 <체리 향기>도,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나와 로미도 낯설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더니 이미 다른 얘기로 옮겨갔다는 사실을 잊은 듯, 그리고 우리가 예전처럼 서로 마주앉아 시작도 중간도 끝도 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기라도 한 듯, 영화에서 마지막으로 놀라웠던 점이 무엇인지 썼다. 에르샤디가 무덤 안에 누운 후 그의 눈이 마침내 스스로 감기고 화면이 검게 변했을 때, 사실은 그게 완전히 검지는 않아. 자세히 보면 비가 내리는 게 보여.
-<에르샤디를 보다> 중에서

비가 내린다는 건 영화의 사실이나 그것을 로미가 말해준다(정확히는 썼다)는 것이 중요했다.

로미에게 자꾸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그녀가 마음을 열고 그런 일들을 찾기 때문이었듯, 나 역시도 이런 단편집을 읽을 수 있었던 건 책을 만날 기회를 곳곳에 열어두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가에 꽂아둔 『사랑의 역사』를 머리맡에 옮겨두겠다 마음먹으며 티저북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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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세트] 안갯길에 사는 사람들 (총2권/완결)
디키탈리스 / 오렌지디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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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절감에 잘 어울리는 이야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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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나 자신이 너무 가식적으로 느껴져서 견디기 힘든 날이 있는가? 누군가 나에게 가식적이라고 비난해서 모멸감을 느낀 날이 있는가? 괜찮다. 정말 괜찮다. 아직은 내가 부족해서 눈 밝은 내 자아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내 '가식의 상태'를 들키고 말았지만, 나는 지금 가식의 상태를 통과하며 선한 곳을 향해 잘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노력하지 않는 사람보다 최선을 다해 가식을 부리는 사람이 그곳에 닿을 확률이 훨씬 높을 것이다. '척'한다는 것에는 어쩔 수 없이 떳떳하지 못하고 다소 찜찜한 구석도 있지만, 그런 척들이 척척 모여 결국 원하는대로의 내가 되는 게 아닐까. 그런 점에서 가식은 가장 속된 방식으로 품어보는 선한 꿈인 것 같다.

(p.64)


남에게 충고를 안 함으로써 자신이 꼰대가 아니라고 믿지만, 남의 충고를 듣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꼰대가 되어가는 걸 모르고 사는 것. 나는 이게 반복해서 말해도 부족할 만큼 두렵다. 내가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 입맛에 맞는 것들로만 만들어낸, 투명해서 갇힌 줄도 모르는 유리 상자 안에 갇혀 있을 때, 누군가 이제 거기서 잠깐 나와 보라고, 여기가 바로 출구라고 문을 두드려주길 바란다. 때로는 거센 두드림이 유리 벽에 균열을 내길 바란다. 내가 무조건적인 지지와 격려와 위로로 만들어진 평온하고 따듯한 방 안에서 지나치게 오래 쉬고 있을 때, 누군가 '환기 타임!'을 외치며 창문을 열고 매섭고 차가운 바깥 공기를 흘려 보내주기를 바란다.
(p.75)


가부장제가 흩뿌리는 유해한 메시지들은 이렇게 명절을 통해 강화된다. 교육의 장으로서도 최악이다. 어린이들에게 절할 자격은 남자에게만 있고 일할 의무는 여자에게만 있는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지? 남자들은 편히 놀고 여자들은 뒤치다꺼리하는 모습은? 나에게 만약 아이가 있다면 지금과 똑같은 방식의 제사를 지내는 집에는 절대 발 들이지 못하게 하고 싶을 지경이다. (그들이 그런 일에 나설 리도 없지만) 정부가 '제사효율화오개년계획'이나 '제사혁신TF팀'을 만들어 앞으로 5년간 제사의 모든 것을 남자들만 준비해야 한다는 법을 만들면 어떻게 될까. 여자네 집안 제사 음식까지 남자가 다 준비해야 하는 강력한 규정으로. 그러면 3년도 못 가 어지간한 제사는 다 사라질 것이다.
(p.82)


말을 할 때도 글을 쓸 때도 조심한다. 상대방에게 애인이 있다는 걸 알지만 애인의 성별을 모른 채로 그 애인을 지칭해야 할 경우, 상대방이 여자라고 해서 "남자친구"라고 지레 말하지 않는다('애인'이라고 한다). 어떤 남성을 묘사하면서 "마치 사랑하는 여자에게 건넬 꽃이라도 고르듯이" 같은 표현도 서사적으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쓰지 않는다('사랑하는 사람에게'라고 쓴다). 그것들은 그들이 어떤 성적 지향인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그러니까 당연히 이성애자일 거라고 은연중에 전제하는 말들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말. 전제가 지워버리는 존재.
(p.118)


그밖에도 더는 쓰지 않는 말이 많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부르듯 읊을 수 있을 것 같다. '결정 장애'처럼, 무언가를 잘 못 정하는 상황, 어떤 능력이 결여된 상태에 '장애'라는 단어를 빗댐으로써 장애를 비하하는 말을 쓰지 않는다. 질병을 희화화하는 표현인 '발암 축구' '암 걸리겠다' 같은 말도 쓰지 않는다. 같은 맥락에서 '확찐자'라는 신조어가 정말 싫었다. 실제 코로나 감염 확진자들이 겪고 있는 커다란 고통과 공포를 생각하면, 그중 누군가는 목숨을 잃기까지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결코 쉽게 쓸 수 없는 말이다. '급식충' '설명충'처럼 사람을 곤충에 비교하며 사람과 곤충 모두에게 실례를 범하고 있는 '-충'이라는 말도 쓰지 않는다. '고아가 된 기분이다'와 비슷한 이유에서 '거지 같다'는 말도 쓰지 않는다. '유모차' 대신에 '유아차'를, '낙태' 대신에 임신 주체인 여성의 결정권을 우선한 표현인 '임신 중단' 혹은 '임신 중지'를 쓴다. 그 누구도 단어에 갇히고 말에 상처받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p.123)


믿고 보는 김혼비 작가님의 『다정소감』을 읽었다. 토요일에 외출하는 길에 챙겨서 가는 길에 읽기 시작했는데, 어제 잠들기 전에 완독했다. 간만에 죽이 잘 맞는 친구와 밤새 대화하는 기분이었다. 다음 대화도 기다려지는 작가님의 책.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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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과 죽음을 자기 삶의 지표로 삼는 일에 나는 반대하고 있지만, 어떤 삶과 죽음은 분명 신호이자 메시지이고 그것을 신호이며 메시지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삶은 늘 있다. 이때 발신자는 살거나 죽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속한 사회다. 오늘 발견된 죽음 근처에서 고립되어 취약한 상태에 있을 사람들이 이 밤과 낮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지 모르겠다.
(p.74)


사람들은 온갖 것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기억은 망각과 연결되어 있지만 누군가가 잊은 기억은 차마 그것을 잊지 못한 누군가의 기억으로 다시 돌아온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 화석이다. 뼈들은 역사라는 지층에 사로잡혀 드러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퇴적되는 것들의 무게에 눌려 삭아 버릴 테지만 기억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기억은 그 자리에 돌아온다.
기록으로, 질문으로.
(p.76)


이런 이야기를 하면 너무 정치적이라는 말을 듣곤 한다.
그런데 나는 누가 어떤 이야기를 굳이 '너무 정치적'이라고 말하면 그저 그 일에 관심을 두지 않겠다는 말로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그건 너무 정치적, 이라고 말할 때 나는 그 말을 대개 이런 고백으로 듣는다.

나는 그 일을 고민할 필요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렇습니까.

(p.133-134)




'민요상 책꽂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포스트잇 플래그를 쓰지 않고, 화면으로 책을 보지 않는다는 글에는 공감할 수 없었지만 (왜냐하면 이 책을 인덱스를 붙여가며 읽었고 최근엔 종이책만큼 전자책을 읽고 있으므로)


일기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분 공감하며 읽었다. 일기 읽기를 끝냈으니 사두고 읽지 않은 연년세세를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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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문학동네 5기에 가입했다.



작년에 온라인 강연 참여도 못하고 1-4기 중에 가장 활동을 못했어서

5기 가입에 좀 시큰둥 했었는데... 결국 책 욕심을 못 버리고... 그렇게 됐다...

베스트셀러 중에서는



니콜 크라우스 『사랑의 역사』를 골랐고


신간에서는



한은형 『레이디 맥도날드』를 골랐다.





북클럽문학동네 4기 재가입시 포인트 혜택을 드립니다.

아래 재가입 설문을 작성하여 제출해주신 4기 회원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5,000P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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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4기, 5기 중복 회원만 참여 가능합니다. ※

설문지를 작성하지 않으시면, 이벤트 참여 및 포인트 지급이 불가합니다.

● 포인트는 모집 기간 종료 후, 아래 설문을 작성해주신 분들에게 일괄 지급될 예정입니다.

https://forms.gle/j3Pfh6oK2p2eh8da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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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링크의 재가입 설문지를 작성해야하는데, 까먹을까봐 미리 해두었다.







ㅇㄴ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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