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리고 가끔 고양이 - 이용한 시인의 센티멘털 고양이 여행
이용한 지음 / 북폴리오 / 2013년 8월
품절


당시 우도에서 만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돌담이었다. 홍조단괴 해벽의 기막힌 물빛과 검멀레 해안의 검푸른 절벽도 좋지만, 돌담에 더 눈이 갔다. 돌과 돌 사이의 틈이 주먹 하나쯤은 거뜬히 들어갈 정도로 바람구멍이 숭숭한 돌담. 저 허술한 돌담이 무너지지 않는 까닭은 바로 저 허술한 바람구멍 때문이다. 태풍과 폭풍이 수시로 닥치는 우도에서 빈틈 하나 없이 빼곡히 돌담을 쌓으면 십중팔구는 무너지고 만다. 사람도 그와 같다. 약간 허술한 사람보다 빈틈 하나 없이 완벽해 보이는 사람이 더 쉽게 무너지는 법이다.-243쪽

거문도에 고양이를 허하라

섬고양이는 눈앞이 바로 바다여서 방파제를 거닐다 잠깐 바다를 본다.
선착장에 버려진 잡고기를 오물거리다 잠깐 바다를 본다.
응아를 하고 돌아서다가도 잠깐 바다를 본다.
매일 보는 것이 바다여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처음인 듯 고양이는 바다를 본다.
비가 오면 어구 창고에 들어가 걱정스러운 듯 바다를 본다.
가랑비에 젖은 꼬리를 쓰다듬다 생각난 듯 바다를 본다.
생의 첫눈을 뜨면서도 바다, 생의 마지막 눈을 감으면서도 바다.
복지회관에서 구멍가게로 내려오다가 흘끔 바다를 본다.
태양민박집 손수레 그늘에 들어가 넌지시 바다를 본다.
꾸벅꾸벅 졸다가도 한 번 더 바다를 본다.
바다를 보는 고양이의 눈 속에도 바다가 그렁그렁하다.-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장바구니담기


삶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본성이었다. 생명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본성. 그가 쉬차를 버리지 않았다면 쉬차가 그를 버렸을 터였다. 그것이 삶이 가진 폭력성이자 슬픔이었다. 자신을, 타인을, 다른 생명체를 사랑하고 연민하는 건 그 서글픈 본성 때문일지도 몰랐다. 서로 보듬으면 덜 쓸쓸할 것 같아서. 보듬고 있는 동안만큼은 너를 버리지도 해치지도 않으리란 자기기만이 가능하니까.-34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든 게 노래
김중혁 지음 / 마음산책 / 2013년 9월
장바구니담기


십대의 나는 아무도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고 단정지었지만, 사십대의 나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위로'라는 단어를 새롭게 알게 됐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위로는 할 수 있다.-13쪽

독학의 절정은 실패하는 과정에 있다. (요즘 같은 취업 대란의 시대에 이런 말 하기 겁나지만) 실패하지 않으면 성공의 기쁨을 알 수 없다. 취향에 맞지 않는 노래들을 많이 들어봐야 내가 어떤 노래를 진심으로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판단이 아니라 내 판단으로 취향을 결정할 수 있게 된다. 취향에 맞지 않은 음악들을 무수히 걸러내고 남은 '내 노래'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32쪽

사랑을 한다는 것은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기 시작한다는 뜻이고,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나의 크기가 작아진다는 뜻이다. 혼자 차지하던 세계에 타인을 들어오게 하는 것이고, 타인이 잘 살 수 있게 내 영토를 줄이는 것이다. 내가 자꾸만 작아지니까 슬픈 거고, 그래서 자꾸만 물어보고 싶은 것이다. '날 사랑하느냐고, 날 좋아하느냐고' 묻게 된다.-150쪽

이야기의 본질은, 어쩌면 사람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드라마를 보고 소설을 읽고 연극을 보고 영화를 보고 수많은 이야기들을 찾아 헤매는 이유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다. 자신을 이해해야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은 다 거울인 셈이다.-18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구판절판


인생은 결국, 결코 잘하리라는 보장도 없이―거듭 버틸 수 있는데까지 버티다가 몇 가지의 간단한 항목으로 요약되고 정리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지금도 버티고 있는, 그래서 아무 일 없이 흘러가고 있는 우리의 삶은―실은 그래서 기적이다.-19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눈물을 그치는 타이밍 - 삶이 때로 쓸쓸하더라도
이애경 글.사진 / 허밍버드 / 2013년 10월
절판


사랑의 습관

주는 것에 익숙한 사람은
받는 것에 익숙한 사람에게 관심이 가고
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끌리게 된다.

하지만 사랑의 완성은
주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 주는 것에 익숙한 사람을 만나
익숙하지 않은 방법으로 받는 법을 알아 가는 때에 시작되며,
받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 받는 것에 익숙한 사람을 만나
주는 법을 배우고 난 뒤에야 이루어진다.

불편하고 서걱거리더라도
나에게 익숙하던 방법과
내가 좋아하던 방법을 버릴 때,
그때 진짜 사랑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41쪽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라면 먹고 가라며 에둘러 사랑을 속삭인 은수에게 빠져 버린,
그러다 결국 상처 받은 상우의 날선 푸념.

사랑은 변한다.
그리고 우정도 변한다.
좋은 감정도, 싫은 감정도
모두 변한다.
슬픔도, 괴로움도 변하고
결국
외로움도 변한다.

그러니
지금 외롭다고
평생 외로운 것은 아니다.-18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