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약 - 프랑수아즈 사강의 환각 일기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권지현 옮김, 베르나르 뷔페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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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길모퉁이 카페』로 처음 만난 프랑수아즈 사강. 나에게 있어서는 그녀의 두 번째 책이었던 『독약』. 1957년 여름, 교통사고를 당한 사강은 석 달 동안 불쾌한 통증으로 인해 ‘875(팔피움)’라는 모르핀 대용약제를 매일 처방받게 되었는데, 석 달 뒤에는 약물중독 증세가 심해져 결국 전문 의료 시설에 입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입원 기간은 짧았으나 그때, 사강은 일기를 썼고 그 일기를 바탕으로 묶인 책이 바로 『독약』이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환각 일기’라는 부제답게, 그녀의 일기는 확실히 ‘환각’의 그 어디쯤에서 쓰인 일기임은 확실하다.

 

결국 간호사는 수간호사를 불렀고(아주 좋음), 나에게 그걸 줬다(앰풀). 하지만 더 이상 이렇게 학대받고 싶지 않다. 다른 방법이 있으니. 통증은 나를 작아지게 한다. 그리고 두려움을 갖게 만든다. (p.3)

 

일기에서 환각 속을 헤매는 그녀가 느껴졌다기 보다는, 환각 속에서 벗어나려는 그녀의 몸부림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 ‘나는 나를 감시한다’거나 ‘나는 다른 짐승을 감시하는 짐승’이며 그 짐승은 ‘내 안에 있는 짐승’이라 표현하지만, 그녀는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말마따나 ‘나 자신과 함께 살지 않은 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자에 팔베개를 하고 비스듬히 누워, 골똘히 생각에 잠긴 채 담배를 입에 문 건강한 작가의 건방진 자세로 마지막 문장들을 고민하는 나를 발견하게 놀란 참이다. (p.18)

 

약물의 포로가 되었음에도 여느 날의 사강이 그러했던 것처럼 글을 쓸 때 나오는 그녀만의 자세로 마지막 문장들을 고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까지, 그녀는 얼마나 노력했을까. 독약뿐만 아니라 독약과도 같은 고독, 독약과도 같은 욕망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사강의 의지. 어쩌면 그 의지는 사강에게 있어 ‘본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상황에서 글을 쓰고―일기일지라도―, 보들레르와 샤토브리앙과 아폴리네르와 랭보를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그 아무리 글 쓰는 것이 천직인 작가라 할지라도 말이다.

 

이 작은 해독일기는 여기에서 끝난다. 중독치료는 가벼웠고 일기는 유익했다. (p.70)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고 쓰려고 했던 그녀의 의지가 약물중독의 늪에서 그녀를 벗어나게 하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훗날, 마약혐의로 법정에 서게 되는 그녀이지만― 또, 그녀의 말마따나 교훈적인 혹은 교훈적이지 않은 마지막 문장을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그녀는 ‘삶을 살아가고 글을 잘 쓸 것’이라 다짐 할 수 있었다. 고통을 잊기 위해 약물을 투여하고, 그 약물로 인한 고통 때문에 또다시 다른 약물에 의존해야만 했던 그 지독히도 불행한 아이러니 속에서 말이다.

 

p.s. 사강의 일기가 더 와 닿을 수 있었던 건, 그녀의 글과 묘하게 닮은 베르나르 뷔페의 그림 덕분이었고, 거칠고 날카롭기 짝이 없으며, 창백하고 여윈 뷔페의 그림은 사강의 글로 인해 더 쓸쓸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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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랍고 따뜻하고 나른한 행복한 길고양이 2
종이우산 글.사진 / 북폴리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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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고양이 간식을 샀다. 살 것이 있어 잡화점에 들어갔다가 애완동물 코너에 눈길이 갔더랬다. 친구가 키우는 강아지를 위한 강아지 간식과 나란히 놓인 고양이 간식 중에, 나도 모르게 고양이 간식을 먼저 집어 들었다. 이 책, 종이우산의 『보드랍고 따뜻하고 나른한』을 읽고 난 후의 변화였다.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길냥이를 위해 사게 됐는데, 나는 이렇게 캣맘이 되고 내가 주는 고양이 간식을 받아먹을 길냥이는 나의 작은 식객이 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 인연이 ‘오늘도 날 기다릴 거야.’라는 믿음과 ‘오늘도 내게 밥 한 그릇을 내어 줄 거야.’라는 믿음이 만나 생겨난 작은 기적이라는 것도.

 

 

사진을 잘 모르는 나도 잘 찍은 사진이라는게 느껴지는 길냥이 사진과, '이 보다 더 적절할 순 없다' 싶은 글과, 때로는 귀엽고 때로는 예쁘고 때로는 쓸쓸한 길냥이의 모습이 담긴 이 책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사랑스러운 마음이 샘솟는다. 그건 사랑스러운 길냥이의 모습을 기막히게 포착해내고, 잘 담아낸 작가 종이우산의 역량이기도 하지만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고양이의 존재가 본래 사랑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제목처럼, '보드랍고 따뜻하고 나른한' 고양이를, 나는 언제부터 좋아했던 걸까. 좋아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는지 알 수 없지만, 좋아하고 있구나하고 깨닫게 된 건 정화히 기억난다. 『듀이 :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라는 책을 구매했을 때였다.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을 좋아해서 눈이 갔지만, 책장을 뒤로하고 카메라를 응시하는 고양이 듀이의 모습을 보는데 책을 구매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88년 1월의 아침, 경제적 위기를 겪으며 희망이 사라져가는 마을에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난다. 동상에 걸린 채 도서 반납함에 버려진 고양이를 발견한 사람은 이 마을 도서관의 사서 비키 마이런. 알코올중독자였던 남편과 이별하고 외롭게 지내던 그녀는 고양이에게 '듀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같이 생활하기 시작한다. 이후 듀이는 조용하기만 했던 도서관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둘씩 변화시킨다. 버려진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시골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고, 온 동네를 하나로 묶어준다. (『듀이 :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줄거리)

 

그것이 인생이다. 우리 모두가 살다보면 간혹 그렇게 트랙터의 날 사이에 말려들게 된다. 우리 모두 멍이 들고 베이기도 한다. 때로는 날이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운이 좋은 사람들은 몇 군데 긁히고 약간의 피만 흘리고 빠져나온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럴 때 당신을 바닥에서 일으켜 꼭 껴안아주며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라고 이야기해주는 누군가가 있느냐는 것이다. 수년간 듀이를 위해 내가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내가 남길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했다. 듀이가 아프고 춥고 울고 있을 때, 내가 곁에 있었다. 나는 듀이를 안아주었고, 모든 것이 다 잘 되도록 보살폈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의 일부일 뿐이다. 진정한 진실은 우리가 함께한 긴 세월 중 힘든 날이나, 좋은 날이나, 그리고 사실 우리 인생의 책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기억나지 않는 더 많은 나날 동안 듀이가 나를 안아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듀이는 아직도 나를 껴안고 있다. 고맙다 듀이야. 고맙다. 네가 어디에 있건, 정말로 고맙다. (『듀이 :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본문 중에서)

 

듀이의 이야기처럼 버려지고, 길 위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들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고양이들로 인해 힘을 얻는다. 나를 기다려주는 존재인 줄 알았으나 사실은, 그 존재를 내가 더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부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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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머즈 하이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박정임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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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기 위해 출근한다.”

 

직장에서 출퇴근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 나왔던 말이다. 우스갯소리였기에 대화를 하던 그 순간에는 다 같이 웃고 넘어갔지만,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씁쓸해지는 말이었다. ‘퇴근’이라는 단어 속에 담긴 삶의 무게 때문이었을까. 이를테면 피로, 책임감, 월급 같은 단어들. 우스갯소리로 그치지 않고 내게 남은 이 말은 의외로 자극이 되고 힘이 되었다. 나 또한 퇴근하기 위해 출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자문(自問)하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인정하게 될 때면 ‘오늘은 인정하되 내일은 인정하지 않는 하루를 보내자’하고 다짐하게 하는 말이 되었다.

 

위 이야기는『그늘의 계절』과『64』의 거장, 요코야마 히데오 최고의 출세작이며 문예춘추 걸작 미스터리 1위, 일본 서점대상 2위 수상작인 이 책, 『클라이머즈 하이』를 읽고 가장 먼저 떠올렸던 말이다.

 

과거 후배 기자의 사고사로 죄책감에 시달리며 데스크 승진을 거부하던 지방신문 기자 유키 가즈마사는 어느 날, 산악회 동료와 함께 악마의 산이라 불리는 쓰이타테이와에 오르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출발하려는 날 밤, 지역에 있는 산인 오스타카에 524명의 사상자를 낳은 최악의 여객기 추락 사고가 발생한다. 이 사건 보도의 총괄 데스크로 지명된 이는 다름 아닌 유키. 그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회사로 소환되어 일분일초 피를 말리는 보도 전쟁에 뛰어든다. 한편, 함께 산을 오르기로 약속했던 동료는 의문의 사고로 식물인간으로 발견되고 유키는 “내려가기 위해 오르는 거지”라는 그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돈다. 특종에 대한 통제할 수 없는 욕망과 저널리스트로서의 치열한 고뇌, 신문사라는 조직 내에서 벌어지는 비열한 암투, 유키는 두 개의 거대한 ‘악마의 산’ 사이에서 점점 궁지로 내몰린다.

 

식물인간이 되어 끝내 그의 입으로 듣지 못했던, “내려가기 위해 오르는 거지.”라는 안자이의 말은, 유키를 움직이는 동력이었다. 그렇게 느꼈던 것은, 안자이의 아들 린타로의 말마따나 눈을 뜬 채 침대에서 자고 있는 안자이의 상황과, 저널리스트로서의 유키가 직면한 신문사 내에서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취재경쟁과 권력다툼으로 인한 마찰로 인해 진정 실으려고 했던 기사를 싣지 못하는, 신문이 아니라 신문지를 만드는 신문사의 상황과 미스터리에 싸인 사건으로 인해 눈을 뜬 채 자고 있는 안자이의 상황이 다를 게 뭐란 말인가.

 

안자이의 말을 동력삼아 살아가던 유키는 과거 사고사로 세상을 떠난 후배 기자의 사촌 여동생 아야코를 만나면서 ‘생명’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이건 제 나름대로 생각한 작은 생명에 관한 것입니다. ‘마음’에 실어 주셨으면 합니다. 전에도 한 번 투고한 적이 있었지만 버려진 듯합니다.”

(중략)

스무 살. 유키의 절반 밖에 살지 않은 여자아이가 미디어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생명의 무게.

어떤 생명도 모두 소중하다고 입으로는 말하면서도 미디어는 인간을 선별하고 차별하고 생명의 경중을 판단해서 그 가치관을 세상 속에 밀어붙인다.

위대한 사람의 죽음. 그렇지 않은 사람의 죽음.

불쌍한 죽음. 그렇지 않은 죽음. (p.381-382)

 

아야코가 투고한 글의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서 유키는 생각했을 것이다.

 

“난 신문을 만들고 싶다. 신문지를 만드는 것은 이제 참을 수가 없어. 바빠서 보이지 않을 뿐이야. 긴타칸토는 죽어가고 있어. 위에 있는 인간들의 장난감이 되어 썩어가고 있어. 이 투고를 구겨버린다면 너희들은 평생 신문지를 만들게 될 거야.”

 

생명의 무게와 그에 관한 미디어의 본질이자 역할, 그리고 자신이 다 할 수 있는 최선에 대해.

 

생명의 무게. 크기. 아야코의 투고를 실은 것은 긴타칸토에게, 신문이라는 미디어에게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것이었을까. (p.416)

 

편집국은 어제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모두가 아무 일 없는 척 하고 있었다. 때로는 차갑다고 느끼기도 했고 또 따뜻하다고도 생각했다. 행복한 시간. 그랬는지도 모른다.

마음은 잠잠했다.

역시 그만두고 싶었던가. 그 기회를 얻어 조직의 속박에서 해방되는 것인가.

가슴에 안자이의 말이 떠올랐다.

내려가기 위해 오르는 거지-.

안자이도 같은 기분이었을까. 스스로를 얽매고 있는 곳에서 내려오기 위한 의식. 쓰이타테이와의 등반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클라이머즈 하이…….

안자이의 예견이 맞는지도 모른다. 입사 17년, 사람들의 혼잡함 속을 헤치고 나가듯 기자의 길을 돌진해 왔다. ‘내려간다’는 것 따위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안자이는 꿰뚫어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려가고 싶어 하는 유키의 내면을. 아니 내려가지도 머물러 있지도 못하고 어중간한 삶을 살아가는 것에 화를 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려갈 것을 결심한 안자이는 유키에게 쓰이타테이와를 권했다.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다. ‘도대체 넌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 건가’ 하고. (p.420)

 

신문사를 떠나고 안자이를 다시 찾은 유키는 고백한다. 비웃어 달라고. 자신은 내려가지 못했다고. 앞으로도 꼴불견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내려가기 위해 오르는 거지-.

안자이의 말은 지금도 귓가를 맴돌고 있다. 하지만 내려가지 않고 보내는 인생도 잘못된 인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있는 힘껏 달린다. 넘어져도 상처를 입어도 패배를 맛보더라도 다시 일어서서 계속 달린다.

인간의 행복이라는 것은 의외로 그런 길 위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클라이머즈 하이. 오로지 위를 바라보며 곁눈질 하지 않고 끝없이 계속 오른다. 그런 인생을 보낼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p.429-430)

 

안자이는 내려가고 싶어 하는 유키의 내면을 읽었고, 유키는 그런 안자이의 말에 담긴 뜻을 이해했지만 내려가지 못했다 대답했다. 아니, 내려가지 못한 것이 아니라 내려가지 않는 것이다. 내려가고 싶어 보였다는 말의 다른 말은 위에 머무르고있다는 말이다.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건, 유키는 현재의 삶을 위해 쉼없이 달려왔다. 불우했던 과거와 먼저 떠나보낸 후배 기자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40대 가장의 막중한 책임감을 짊어지고, 저널리스트로서의 소신을 지켜내며 말이다. 안자이의 말을 이해하게 되면서 유키는 뒤늦게 위에서의 행복을 찾은 것 같았다. 유키의 말처럼, 인간의 행복이라는 것은 의외로 그런 길 위에서 만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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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인데 어두운 방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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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말이 없어져요. 한 사람과 오래 대할수록 더 그렇죠. 서로를 다 안다고 생각하니까 굳이 할 말이 없어지는 거예요. 근데 거기서부터 오해가 생겨요. 사람 속은 모르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계속 말을 시키세요. 말하기 힘들 땐 믹서기를 돌리는 거예요. 청소기도 괜찮고, 세탁기도 괜찮아요. 그냥 내 주변 공간을 침묵이 집어먹게 내버려두지 마세요. 살아있는 집에선 어떻게든 소리가 나요. 에너지라고들 하죠. 침묵에 길들여지는 건 정말 무서운 일이에요. 자신의 공간을 침묵이 삼키게 두지 마세요.”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임수정이 연기한 ‘연정인’이라는 캐릭터의 대사 중에, 내게 가장 남았던 대사다.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 『한낮인데 어두운 방』을 읽고서 가장 먼저 생각났던 대사이기도 하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정인과, 『한낮인데 어두운 방』의 미야코에게는 세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 첫째, 아내 역할에 충실하고 집안일에 착실한 주부라는 것. 둘째, 상황은 달랐지만 남편 아닌 다른 사람에게 사랑에 빠졌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조금 특별하다.

 

『한낮인데 어두운 방』의 미야코의 남편 히로시는, 이해받고 싶어 하는 여자의 마음, 대화를 통해 감정을 나누고 싶어 하는 여자의 심리를 알아채기는커녕, 오로지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듣고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며 아내를 그저 공기와도 같은 존재로만 여기고 어리석게도 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정인의 남편, 이두현은 입만 열면 불평과 독설을 쏟아내는 정인으로 인해 결혼생활 하루하루가 죽을 맛이라고 생각하며 매일 수백 번씩 이혼을 결심하지만 아내가 무서워 이혼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던 차에, 어떤 여자든 사랑의 노예로 만들어 버리는 비범한 능력을 지녔다는 전설의 카사노바에게 아내를 유혹해달라고 부탁한다.

 

이런 남편들을 둔 탓이었을까, 미야코가 어느 날 미국인 존스에게 빠지게 되고 정인이 카사노바 성기에게 빠지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두 여자가 바랐던 것은, 이해받고 싶어 하는 여자의 마음과 대화를 통해 감정을 나누고 싶어 하는 여자의 심리였고 존스와 성기는 그녀들의 바람을 충만하게 충족시켜줬던 남자들이었다. 존스는 미야코와 필드 워크(산책), 대중목욕탕가기, 초밥 먹기, 차 마시기를 하며 끊임없이 대화했고 성기는 정인과 그릇에 대해 이야기하고 놀이공원, 목장 등 여러 곳을 방문하면서 끊임없이 대화했다. 존스와 성기가 그녀들의 남편과 달랐던 점은, 그녀들과 끊임없는 대화를 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그녀들과의 대화에서 그녀가 하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고, 맞장구 쳐 주면서 대화를 통해 감정을 나누었고, 그녀의 말을 이해함으로써 그녀를 이해해주었을 뿐이다. 쉬운 일 같지만, 제일 어려운 일이기도 한 일. 불륜을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녀들의 외도는 납득이 갔다. 내가 미야코였다면, 내가 정인이었다면 내 남편이 그런 남편이었다면 나 역시도 그랬을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공통점은 그녀들의 ‘자아 찾기’라는 공통점으로 귀결된다. 재밌는 건, 미야코와 정인에게 있어서 존스와 성기는 새로운 자아를 찾는데 통로가 되긴 했지만, 함께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세상 밖으로 나와버렸다’는 미야코의 말처럼 그녀들에게 있어서 그들과의 불온했던 관계는, ‘한낮인데 어두운 방’에 있는 것 같았던 마음에서 벗어나게 만든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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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 인 Lean In - 200만이 열광한 TED강연! 페이스북 성공 아이콘의 특별한 조언
셰릴 샌드버그 지음, 안기순 옮김 / 와이즈베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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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릴 샌드버그의 『LEAN IN(린인)』을 처음 봤을 때, 단순한 성공학 책일 거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게, 표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었던 건 셰릴 샌드버그라는 이름 옆에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였으니까. 성공학 분야를 그다지 즐겨하지 않는 내가 『LEAN IN(린인)』을 집중해서 완독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셰릴 샌드버그의 책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그가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여성의 일과 리더십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 사람이기에.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내 자신이 ‘여성의 일, 리더십, 성공’이라는 주제를 진지하게 자문해보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깨달았다는 점이다. 그녀의 2010년 TED 강연의 제목처럼 왜 여성리더는 소수인지, 직장 여성들이 불리한 조건에 놓이기 쉬운 상황, 예컨대 임금 협상, 회의 자리, 멘토링, 이직과 승진 등 그 무엇 하나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모든 여성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뿐더러 당장의 내게 직면하지 않은 문제들인지라 생각해보지 않았던 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헌데, 당연한 일이라 넘어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내겐 깨달음을 넘어 꽤나 충격으로 작용한 모양이다. 여성의 일과 리더십과 성공에 관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가는 여성들이 있구나, 그러한 여성들이 직면하는 사회 속 일하는 여성의 입지가 이러하구나, 이런 저런 문제들을 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해결해나가는구나 등의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또한 이 책의 매력은 구글과 페이스북 매출 신화의 주역이자 현재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 셰릴 샌드버그의 책이어서가 아니다. 자신 역시 여성이기에 여성 직장인이 가지는 한계를 알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격려하고 그러면서도 성 편견이라는 복잡하고 감정적인 문제를 올바르게 다루는 방법을 찾기 위해 지인과 노력한 셰릴 샌드버그. 그 노력 끝에 그녀가 여성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꾸밈없이 진솔하게 써낸 셰릴 샌드버그의 책이기 때문이다.
 
여성은 업무 성과가 좋으면 당연히 보상을 받으리라고 믿으면서도 충분히 자격이 있을 때조차도 승진하겠다고 지원하는 것을 남성보다 꺼리는 경향이 있다. 니고시에이팅 위민 주식회사를 공동 설립한 캐럴 프롤링어와 데버러 콜브는 이러한 현상을 ‘왕관 증후군(Tiara Syndrome)’이라고 불렀다. “여성은 자신이 직무를 충실히, 제대로 수행하고 있으면 누군가가 알아보고 자기 머리에 왕관을 씌워줄 것이라고 기대한다”는 뜻이다. 물론 완벽한 능력 위주의 사회라면 적임자에게 왕관을 씌워주겠지만 그런 사회는 아직까지 실현되지 않고 있다. 자신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과 결과를 다른 사람이 인정해주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자신을 위해 스스로 발 벗고 뛰어야 한다. (p.102)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위 구절처럼 셰릴 샌드버그의 말에 따라 바꿔보자면 이렇다.
‘왕관을 쓰려는 여자, 자신이 쓸 왕관을 발 벗고 뛰어 스스로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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