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러나 이 순간 그녀는 깨지고 상하고 뒤틀린 자신의 손톱 위에 얹어놓은 이 작품이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그것은 진짜가 아니며 짧은 시간 빛나다 사라질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사라진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 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 구병모 장편소설, 파과 p.342



/



이 작품의 존재는 익히 알고 있었으나 읽을 엄두를 못냈다. 그러다 시간이 흘렀고 뮤지컬화 된다는 기사를 접했는데, 주인공이 차언니라네?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읽는 내내 이걸 어떻게 뮤지컬로 만들지 싶었는데 이 소설의 마지막 구절에 납득이 됐다. 공연예술이라는 게 사라지는 것 아닌가. 그 시간, 그 장소에서 그 온도 속에 흘러가는 시간예술. 시작과 동시에 사라지기 시작하는 예술이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갖는 것일지도 모른다. 기억할 수는 있으나 잡아둘 수는 없어서, 짧다면 짧은 시간 빛나다 사라질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상실을 이렇게 표현하는 주인공이라니. 시간예술을 애정하는 사람으로서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구절이었다.

p.s. 그나저나 투우 역할은 김재욱 배우가 출연할 전망이라는데, 그는 전직 모태구였다고요... 하지만 우리 언니도 전직 백성미...는 농담이고 (드라마 보이스X모범택시1에서 각 배우가 연기한 캐릭터 이야기) 초연 아마데우스와 재삼연 살리에리의 조합인 점이 재밌다. 둘이 붙었으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영화는 아직 변요한 배우 캐스팅 기사만 보이는데 영화는 영화대로 재밌을듯. 조각도 조각이지만 강박사 캐스팅이 아주 궁금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 가성비의 시대가 불러온 콘텐츠 트렌드의 거대한 변화
이나다 도요시 지음, 황미숙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궁금했다. 사람들은 왜 영상을 빨리 감기로 보는 것일까?

궁금해한 이유는 내가 그렇게 보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은 속 터질 정도로 정독하고, 속도감 빠른 상업 영화와는 거리가 먼 독립 영화를 좋아하며 결코 빨리 감기 할 수 없는 연극과 뮤지컬을 몇 번이고 보는 사람이 나다. 나라고 시간이 많아서 영상을 빨리 감기로 보지 않는 것은 아니고, 영화의 상영 시간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낭비는 악이고, 가성비는 정의라던데 그렇다면 나는 악 중의 악인 것인가.

이나다 도요시의 책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에 따르면 뉴스나 보도처럼 정보성 콘텐츠도 아니고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과 같은 영상을 빨리 감기로 보는 데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첫째, 영상 공급 미디어의 다양화 및 증가로 영상 작품의 공급 과다.

둘째, SNS로 공감을 강요당하고 '개성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실패를 두려워하는 바쁜 현대인의 시간 가성비 지향.

셋째, 얕은 감상이 많아지면서 알기 쉬운 것이 추구되어 대사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영상 작품의 증가.

라인에서는 언제 어디서든 친구와 연결되어 있다. 말 그대로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들 때까지 언제든 연락할 수 있고, 늘 어떤 반응을 요구받는다. 그렇다고는 하나 세상에 그렇게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손쉽게 분위기가 살아나는 데는 “그거 봤어? (혹은 그거 들었어?) 재미있더라. 꼭 봐!”가 유용하다.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 혹은 음악 등의 콘텐츠를 화제로 삼는 것이다. 이런 화제를 무시하면 대화에 끼지 못할 뿐 아니라 후폭풍이 따른다. 소위 말하는 ‘읽고 씹기’는 ‘그 화제에 관심이 없다’라는 적극적인 태도로 받아들여진다. 화제가 된 작품은 가급적 보고 감상을 말해야 그룹의 평화가 유지된다.

(p.104)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요인 중 첫째와 둘째를 아우르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어떤 반응을 요구받고, 새로운 콘텐츠는 이야깃거리가 된다. 우리에게는 너도나도 구독 중인 글로벌 OTT가 있으니까. 편 수마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대여와 반납도 필요 없이 그 즉시 감상할 수 있는 VOD 서비스가 말이다. 친구나 직장 동료들이 이야기할 때 나도 한 마디 얹을 수 있으려면 시간을 내서 콘텐츠는 챙겨봐야겠는데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면? 영상을 빨리 감아 보고 초반부 회차는 건너뛰고 때때로 마지막 회차를 보거나, 그 모든 게 한데 어우러진 요약본을 챙겨 보며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흥미로워했던 지점은 세 번째 요인이다. 얕은 감상이 많아지면서 알기 쉬운 것이 추구되어 대사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친절한 영상 작품이 늘었다는 것. 나는 이 부분을 웹소설 플랫폼에서 느꼈다. 연재 작품의 특성상 회차마다 댓글이 달리는데, 댓글을 다는 독자들은 한결같이 ‘고구마 구간(갈등)’을 못 견뎠다. 당장 ‘사이다(해소)’를 내놓으라는 여론이 우세했다. 아니 갈등이 있어야 해소도 있을 거 아니냐고 이 사람들아... 싶었지만 댓글을 달지는 않았다. 사이다를 요구하는 주장이 나의 독서 방식과 다를 뿐이지 틀린 건 아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정보나 콘텐츠만 보고 싶다.”, “관심이 없는 건 아예 눈에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 “편향되어 있다고 해도 괜찮으니 좋아하는 정보에만 둘러싸이고 싶다”. 영상 오락 콘텐츠뿐만 아니라 뉴스 같은 정보도 마찬가지다.

같은 리포트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보내던’ 시간을 바로 잡고 자신의 기분에 맞는 미디어 콘텐츠를 고르는 사람을 “피키 오디언스Picky Audience”라고 칭한다. 픽pick이란 ‘고른다’는 뜻이다. 뷔페에서 좋아하는 음식을 원하는 만큼 접시에 담는 이미지를 생각하면 된다.

(p.158)

댓글에서 사이다를 내놓으라고 외쳤던 사람들은 다른 콘텐츠 앞에서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까. 이런 사람들을 피키 오디언스라고 부른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좋게 말해서 피키 오디언스지 그냥 편식쟁이다. 나도 이와 같은 편식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나는 트위터에서 뮤트 기능을 곧잘 활용하는 편인데, 그 기능을 넷플릭스에서도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내가 어떤 이유로 좋아하지 않는 배우나 감독·작가의 작품은 포스터도 보고 싶지 않아서 트위터처럼 뮤트 기능이 있었으면 했다. 다른 의미의 편식인 셈이다.

세상에는 자신과 완전히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하는 ‘타자’가 존재한다. 그 가치관에 동의할 필요는 없지만 존재만큼은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존중은 ‘마주하고 이해하는 의무까지 포함한다. 하지만 이야기의 가치를 공감에서만 찾으려는 사람은 ‘공감하기 어려운 가치관을 마주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다. 그러려면 큰 에너지가 필요한 데다 가성비가 좋지 않으니 말이다.

결과적으로 자기 생각을 보강해줄 이야기나 말을 찾고 그것만 강화하게 된다. 타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관점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타자에 대한 상상력이 없는 그들은 “세상에 자신과 다르게 느끼는 사람이 있다”라는 당연한 사실을 잊는다. 혹은 그런 사람을 쉽게 적으로 치부한다.

(p.161)

이 책의 재밌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영화’를 주어 삼았지만, 영화를 포함하여 영상 작품을 빨리 감기로 보는 흐름이 생겨난 데는 비단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이유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줄로 말하자면 아래와 같다.

소비'와 '감상'의 시점을 오가며 엮은 미디어론이자, 커뮤니케이션론이고, 세대론이자, 문화론이다.

(p.277)

평소 해왔던 생각들과 책에서 언급된 이야기들이 만나는 지점이 여럿(이를테면 라이트 노벨의 길고 긴 제목 같은 것들) 있었다. 조목조목 뜯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영화를 ‘소비’하는 사람과 ‘감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앞으로도 후자일 테지만, 전자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 책을 읽은 보람이 있었다.

추신. 재밌는 사실은 이 책 역시 ‘감상’이 아니라 ‘소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책을 빨리 감기 할 수는 없을 테니 요약본을 읽고 싶어 하는 독자가 있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구매해두고 읽어야지, 읽어야지 했던 <모순>을 완독한 이후로 독서에 다시 재미를 붙였다. 이슬아 산문집 <심신 단련>까지 완독하고나니 평소에 추호도 없던 완독 욕심이 생기더라. 그래서 당장 완독할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의 빛>을 꺼내들었다. 읽덮을 반복해서 그렇지 반 정도는 읽어둔 책이었기 때문이다.

다 읽고 깨달았는데 어지간히 안 맞는 책(안 읽히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은 미련없이 내려놓는 게 속 편하다.^^ 소설집이라 4편 중에 1편은 마음에 들지 않을까 싶어서 오기로 완독하였으나 마지막까지 내 취향과 거리가 먼 책이었다. 끝까지 안 읽으면 이 책에 대한 환상의 빛을 거둘 수 없을 것 같아 애썼던 것도 있다.

그리고 다음 책을 고르려는데 읽고 싶은 책과 읽고 있는 책과 읽었으면 하는 책이 충돌했다.

먼저, 읽고 싶은 책은 <제시의 일기>다.
본진이 이 책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뮤지컬을 하는데 그 전에 읽어두고 싶어서 무더위를 뚫고 대출해왔다. 집에 가는 길에 책을 펼쳐 보았는데 심상치 않았다. 육아 일기인데...그 일기를 쓴 부부가 임시 정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부부인 거지. 일기라기보다 역사책 같은 느낌이 있어서 설렁설렁 볼 수 없는 책이었다. 그래서 잠시 보류.

읽고 있는 책은 <여름의 빌라>인데 단편집은 탄력 받아서 쭉 읽지 않으면 단편과 단편 사이에어 자꾸만 멈추게 된다.

읽었으면 하는 책은 이디스 워튼의 <여름>

이다. 원래는 <이선 프롬>을 먼저 알았는데 <여름>이 땡겨서 먼저 샀다. 시작이 반인데 시작이 선뜻 안 되더라. 그래서 곁에 두면 좀 읽을까 싶어 며칠 전부터 책장에서 꺼내두었다. 이번 주 안에는 시작해보겠어...

방금까지 읽다 덮은 책은 아이러니하게도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이다. <환상의 빛>을 읽고 나니까 어떤 책도 다 읽을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 마음으로 펼쳐 들었는데 웬걸, 너무 재밌다. 진도 못 뺐던 책을 열다섯 쪽이나 호로록 읽었다. 역시 사람은 맞는 책을 읽어야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을 잃어버린 슬픔은 저 자신조차 몸이 떨릴 정도로 이상한 것으로, 그것은 언제까지고 언제까지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습니다. 타인의 억측이 미치지 못하는, 아무런 이유도 발견되지 않는 자살이라는 형태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발을 동동 구를 만한 분함과 슬픔이 가슴속에 서리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분함과 슬픔 덕분에 오늘까지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p.80 환상의 빛 중에서)

/
미야모토 테루와는 잘 맞지 않았다.
불호평을 길게 썼다가 다 지우고 이 한 줄만을 남겨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고 책들, 책들... 내 집을 내 집이게 하는 책들이 활활 타는 것은 상상만으로 괴로웠다. 접고 표시하고 밑줄 치고 메모해둔 수백 개의 흔적은 다시 같은 책을 산대도 되돌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모든 건 몸뚱이 없이는 아무 소용없기 때문에 우리는 부리나케 집을 떠났다.

(p.51)


"유의미한 일들은 대체로 번거롭지. 그 게임엔 '용기'라는 개념도 있어. 어떤 순간에 깃발을 꽂으면 용기를 발휘할 수 있게 되거든. 이때 인간은 주변 존재들에게 용기를 마구 뿜어서 영향을 미쳐. 신체 능력은 엘프나 드워프보다 딸리지만, 희망이랑 용기가 가득 찼을 때에는 막강해지는 거야."

(p.62)


곽 선생님이 낮은 목소리로 읽어준 임의 글은 문장도 단어도 엉망진창으로 틀린 글이었는데 너무 외로운 이야기여서 나는 난데없이 터지려는 눈물을 참느라 혼났다. 불쌍하다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었다. 그 애의 슬픔이 뿜어내는 광채에 놀란 것이었다. 혹시 글쓰기의 세계에서는 가진 것보다 잃은 것이 더 중요한가. 어른이 되어 읽은 신형철 평론가의 문장처럼 "나의 없음을 당신에게 주는" 것이 글쓰기일지도 몰랐다.

(p.135)


인간은 불행의 디테일을 설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정확히 불행해지는 존재 같았다.

(p.151)


사실 꽤 많은 편견이 우리를 돕는다. 판단의 시간을 단축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일들은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판단을 좀 미루고 볼 필요가 있다. 세상이 간단하지 않으므로 편견도 뭉툭해서는 안 된다. 차라리 이제 막 태어난 사람처럼 무구하게 세계를 감각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함께 본 영화에서는 이런 내레이션이 흘러나왔다.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깜깜한 영화관에 나란히 앉아 그 말을 들었다. 하마도 울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사랑을 하는 동안에는 나쁜 일이 자신을 온통 뒤덮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나쁜 일이 나쁜 일로 끝나지 않도록 애썼다. 우리가 모든 것으로부터 배우고 어떤 일에서든 고마운 점을 찾아내는 이들임을 기억했다. 사랑은 불행을 막지 못하지만 회복의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사랑은 마음에 탄력을 준다. 심신을 고무줄처럼 늘어나게도 하고 돌아오게도 한다.

(p.308-30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