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
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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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하지 못하는 책이 있다.

500쪽이 넘는 쪽수를 자랑하는 두꺼운 책? 얼마든지 추천할 수 있다. 시작이 어려워서 그렇지, 책에 몰입하게 되는 그 선을 넘으면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낼 수 있는 책이라고 추천하곤 한다. 7년의 밤과 미비포유가 그랬다. 감동도 감동이지만 그 흡입력을 잊지 못해서 추천했는데, 잘 읽었다는 답이 돌아와 기분이 좋았다.

지난 일이지만, 인생의 책 중 한 권으로 꼽는 <꿈꾸는 책들의 도시> 역시 추천한 적이 있다.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도 이 책 앞에선 양반이다. 적어도 사람이 나오지 않나.

'모두가 시인인 공룡족의 도시 린트부름에서 태어난 젊은 공룡 미텐메츠는 대부로부터 신비한 원고 한 뭉치를 유산으로 받는다. 그는 원고의 강렬함과 풍부한 감성에 매혹되어 실종된 저자를 찾아 부흐하임으로 떠난다.'가 핵심 줄거리인 이 책을,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추천했나 싶다. 열렬한 추천 끝에 두 친구가 읽어주었다. 미안하고 고맙다.

추천하지 못하는 책은 다시 말해 비(非) 추천, 추천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는 읽었으나, 결코 너도 읽어보라 하지 못하겠어서, 추천하지 않는 책이다. 지독하디 지독한 삶. 읽고 있으면 갑갑해서 숨이 턱 막히는 삶. 한 사람의 삶이 어쩜 이렇게 끔찍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는 삶. 그런 삶을 끝까지 써내려간 책. 그런데 나는 왜 이 작가의 책을 세 권이나 읽고 있는 것일까.

지난 해 영화 '마돈나'의 수상을 축하하며 쓴 글에서 이야기한 적 있지만, 오늘은 이 책 속 한 구절을 앞세워 이야기해본다. 


뜨거운 죽 한 그릇을 앞에 두니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로지 뜨거운 이걸 잘 먹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크게 한 술 떴다가 입천장을 데었다. 아이를 먹일 때는 호, 호, 호, 세 번씩 불어 식혀 먹었다. 아이 한 번, 나 한 번, 아이 한 번, 나 한 번. 아이는 죽 그릇이 다 빌 때까지 입을 쩍쩍 벌려, 주는 족족 다 받아먹었다. 손톱보다 작은 이가 박힌 아이의 붉은 입안을 볼 때마다 가슴이 저릿했다. 분명 내 가슴을 열어 젖을 먹여 키운 아이였는데, 내 손으로 먹을 걸 떠먹여주는 건 처음인 것 같았다. 아, 잘 먹었다. 빈 그릇을 보여주자 아이가 맑게 웃었다. 자알 머거따! 저도 나를 따라 혀 짧은 소리를 냈다. 먹을 걸 주니 이제야 엄마로 인정하는 모양이었다. 나에게 웃는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덥혀졌다. "걱정 마. 엄마가 평생 몸을 팔아서라도 네 다리 고쳐줄게." 배가 부른 아이는 하품을 하며 눈을 비볐다. 나는 당장 병원부터 다시 예약을 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이설 <환영> 중에서

 


기구한 삶을 살아가는 그녀들의 삶에도, 평범한 일상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 분명 있을 것이다. 소설 속 윤영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제 좀 제대로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사람처럼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녀의 희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날아드는 최악의 상황들.
그 상황 속에서 윤영과 아이가 어느 죽집에 들어가 앉았다.


젖먹이인 아이를 집에 있는 아빠의 품에 안겨놓고 일하러 가야했던 여자. 그런 엄마가 낯설어 매번 아빠만 찾던 아이.

'애착'이란 단어와 멀찍이 떨어져 살아온 지난 시간들. 바라보는 내가 속상해 죽겠던 나날들을 보내고, 비로소 맞이한 엄마와 아이의 시간. 그 시간 속에서 마음이 덥혀진 윤영의 이어지는 말이 아릿해서 혼났다. 평생 몸을 팔아서라도, 라고 각오하는 엄마라니.

그래서 추천하지 못하는 것이다. 읽어내기 쉬운 책이 아닐뿐더러, 책이 동반하는 우울함을 온전히 안고 읽어내야하는 책이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이런 순간 때문이다. 오히라 미쓰요의 에세이 제목처럼,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하고 말을 건네는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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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는 길에, 떠나기 전에 쓰지 못한 신간 페이퍼를 올린다. 

그래봤자 1박 2일의 여행이지만.

설레는 3월, 읽고 싶은 두 권의 에세이.

 

 



첫번째 책으로는 파울로 코엘료의 '마크툽'. 아랍어로, 모든 것은 기록되어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에세이 '마법의 순간'은 그 제목처럼 읽는 내내 행복해서 정말이지 마법의 순간 같았다. '파울로 코엘료 글 + 황중한 그림'의 두번째 책이라는 것만으로도 내게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두번째 책으로는 박준의 '떠나고 싶을 때, 나는 읽는다'를 골랐다. 익숙하다 싶었더니, '책여행책'의 작가님이셨다. 

여행에세이 같지만, 독서에세이인 책. 10,517페이지의 책 속으로 떠난 여행의 기록.
그렇다. 이 책은 '책여행책'의 개정판이다. 몇년전 도서관에서 빌렸으나,

 여차저차해서 집중있게 읽지 못하고 반납했던 그 책. 어쩐지 낯이 익더라니.


이번 기회에 다시 읽으라는 인연인지, 책 소개를 다시 읽는데 이 구절이 마음에 들어 담아본다.

 


P.136 : 누군가는 “여행을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으며 일상에서 벗어나는 충동 외에 여행의 목적은 없다”고 한다.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여행의 패러독스가 아니다. 내가 여행을 하는 것은 달라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물론 달라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여행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변하는 건 아니다. 

일상과 마찬가지로 여행도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필요한 변화는 자연스레 오지만, 

그건 어떤 여행을 했는가에 달려 있다. 진짜 변화는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온다.
― 「몽상가의 여행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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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 - 한껏 게으르게, 온전히 쉬고 싶은 이들을 위한 체류 여행
김남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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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 작가님의 글을 접한 건, 몇 년 전 헌책방에서 발견한 인생기출문제집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돌아보면 스무 살부터 서른 살까지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끊임없이 주변을 기웃거리던 시기였다. 겨우 하고 싶은 일을 찾은 후에도 실행할 용기를 내기까지는 몇 년이 더 필요했다. 하고 싶은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의 경계는 내게도 모호했기에. 길 밖으로 나가보기 전에는 모르는 거야, 시도도 안 해봤는데 잘할 수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아, 실패하면 어때, 난 아직 젊은데, 이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들의 시선과 판단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간절한 것을 찾는 것.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고,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일을 찾아가는 것. 나의 이십대는 그 일을 찾느라 보낸 시간이었다. “이 세상엔 오직 두 부류의 인간이 있다. 한 부류의 인간은 자기 길을 가는 인간이고, 다른 한 부류의 인간은 그 길을 가는 사람에 대해 말하며 사는 인간이다.”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 인생기출문제집김남희 당신 삶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p.269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헤매던 그때 큰 힘이 되었고, 여전히 헤매고 있으므로 이 글은 내게 큰 힘이 되고 있다.

 

인생 선배로서 내게 멋진 글을 전해주셨던 작가님은 서른넷이 되어서야 자기 길을 가는 인간이기로 했고, 그 길 위에서 ‘12년간 80개국을 다닌 여행가가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삼십 대에 사표를 쓰고 세계일주를 떠난 건 자신이 세상에 태어나 내린 결정 중에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는 말로 시작하는 이 책은 유난히 추위에 작한 작가님이 선택한 겨울 쉼터, 발리-치앙마이-라오스-스리랑카에서 보낸 200일에 대한 기록이다.

 

짙고 농염한 초록의 논과 숲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한 기분이 들었던 발리의 우붓, 지구에서 가장 큰 생명체인 흰수염고래를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비행기값이 아깝지 않았던 스리랑카, 소박하고 느린 삶이 주는 여유를 잃지 않은 시간 부자들이 사는 태국의 치앙마이, 여행은 단순한 소비 행위가 아니라 타인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회적 행위임을, 그러니 우리는 발끝을 들고 조심조심 다녀가야 하는 손님일 뿐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던 라오스까지. 83편의 글 중, 인상 깊었던 두 편을 소개해본다.

 

사원을 나오자 마데 아저씨가 묻는다. 새 공원에 가겠느냐고. 이름은 새 공원이지만 결국 동물원이라 마찬가지라 나는 들어갈 생각이 없다. 게다가 우붓까지 관광을 하며 가는 여덟 시간짜리 차량 렌트비가 4만 원인데 새공원 입장료는 한 사람에 3만 원. 돈을 새들에게 모이처럼 뿌려줄 수는 없다. 근데 엄마가 뜻밖의 반응을 보인다. "나 새 좋아하는데... 들어가 보고 싶어." 엄마가 새를 좋아하다니 금시초문이다. "엄마 혼자 들어갔다 와요." "혼자서는 안 갈래. 무슨 재미로 혼자가?" 어쩔 수 없이 나도 따라 들어갈 수밖에. 열대의 새들을 모아놓았는데 규모도 작고 새의 종류도 많지 않다. 그래도 엄마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새들을 찾아다닌다. 그런 엄마가 새들보다 더 신기하다. 나는 어째서 엄마가 새를 좋아한다는 것도 몰랐을까.

세상의 모든 딸은 자신을 낳아준 엄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세상의 모든 엄마는 또 자신이 키운 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엄마'라는 이름을 벗어놓은, 욕망을 지닌 한 여성으로서의 엄마를 나는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은 익숙했던 상대를 재발견하게 만든다. 내 안에 단단하게 굳어있던 상대에 대한 이미지를 녹여준다. 엄마와 함께 여행을 떠나오다니, 참 잘했다. (p.28)

 

엄마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함께 떠난 여행지에서의 엄마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엄마에 대해 알고 있는 것만큼 엄마에 대해 모르는 게 아닐까. 엄마는 편히 여행하라고 혼자 계획을 짜며 여행을 준비했는데, 어떤 음식이 먹고 싶은지 어떤 것을 보고 싶은지 물었으면 좀 더 좋은 여행이 되었을까 싶었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준비했던지라 후회하진 않는다. 아쉬움을 교훈삼아 다음 여행에 적용하면 될 일이니까. 딸인 나의 생각은 이러한데, 엄마의 생각은 어떨까 궁금해진다. 나 역시 엄마와 함께 여행한 일을 참 잘했다고 생각했기에 이 구절이 마음에 들었다.

 

TV가 여행자를 수동적인 존재로 만들고 있다. 이제 귀찮은 선택을 할 필요가 없어졌는지 모른다.

생각해보면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우리의 삶도 다 비슷하다. 공부하고, 일하고, 생존하느라 자신의 취향조차 모르고 살아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혼자서 무언가를 해보는 훈련이나 습관도 안 되어 있다. 그러니 여행지를 고를 때도 지금 인기있는 곳을 고르기 쉽다. 라오스를 여행하면서 자기만의 라오스를 찾기보다는 <꽃보다 청춘>의 라오스를 소비할 뿐이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그 집단적인 소비 행위에 타인을 위한 배려가 끼어들 틈은 없다. (p.378)

 

라며 자신 역시 TV 프로와 본질적으로 같은 일을 하고 있기에 마음이 불편해진다고 고백한다. ‘여행으로 밥을 버는 처지라면 더 나은 여행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좋은 여행이란 무엇일까.’ ‘나는 좋은 여행자인가.’ 이런 질문에 천착해왔지만 자신이 좋은 여행자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다고.

나 역시 이 구절을 읽으면서 나의 여행을 돌아봤다. 여행에 있어 나는 수동적인 존재는 아니었는지, 나만의 방식으로 여행했는지를. 이 글을 쓰기 몇 시간 전에 나는 친구와 조만간 있을 부산 여행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돌아왔는데 친구는 도서관에서 부산 여행에 관한 책을 빌려왔고, 나는 몇 년 전 떠났던 부산 여행에서 아쉬웠던 것들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다른 정보를 찾아 갔다. 시간이 여유롭지 못해서 남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여행을 계획했는데, 친구와 나만의 여행으로 남을지는 아직은 모를 일이다. 그래도 다짐해본다. 앞으로 어떤 여행을 하게 되건 나만의 여행지를 찾을 것. 그리고 타인을 위한 배려를 잊지 않는 여행을 할 것이라고.

 

유난히 추위를 타는 작가님과는 다르게, 나는 추위도 타고 더위도 잘 타서 따뜻한 남쪽 나라를 여행지로 삼을 확률이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따뜻한 남쪽 나라를 선택하는 날이 온다면 그건 분명 이 책 덕분일 확률은 높다. 작가님이 들려주었던 겨울 쉼터 속 사람들의 이야기가 녹아든 그 풍경 안에서 한껏 게으르게, 온전히 쉬어 보고 싶다. 200일은커녕 20일도 어렵겠지만, 2일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한껏 게으르게, 온전히 쉬는 2일이라니. 너무 극단적이어서 극적으로 느껴지긴 하지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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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 시드니 걸어본다 7
박연준.장석주 지음 / 난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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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네 번째다. 임프린트 난다의 걸어본다시리즈가 내 품에 들어온 것이 말이다. 걸어본다 세 번째 시리즈였던 나의 사적인 도시가 내겐 첫 번째였는데, 운이 좋았다. 박상미 작가님의 글은 내 취향을 저격했고, 나는 걸어본다 시리즈를 모으기 시작했다. 비단 나 뿐만 아니라, 에세이를 좋아하는 사람의 취향을 저격했는지 많은 분들과 걸어본다 시리즈를 함께 읽었다. 여섯 번째 시리즈인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으로 배수아 작가님의 알타이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했는데, 박연준-장석주 작가님의 시드니가 내 품에 도착한 것이다.

 

이 책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가 시인인 두 사람의 결혼 사실을 알리는 청첩장 역할을 하는 책이라는 건 어느 날 기사를 보고 알았다. 10년 열애 끝에 올 1월 혼인신고를 했지만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던 이들이 9월 초부터 한 달 동안 호주 시드니에서 살았던 기록이라는 것도. 후에 이 책이 내 품으로 들어왔고, 책을 손에 쥔 나는 뒷표지에 실린 김민정 작가님의 축사같은 추천사를 한참 읽었다. 뒷표지를 활자로 가득 채울 만큼 빼곡한 글을 보면서, 두 사람에 대한 애정이 뚝뚝 묻어나서 글을 읽는 내가 다 훈훈했다.

 

호주에 사는 지인이 긴 여행으로 집을 비우게 되었으니 와서 지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두 사람은 여행 가방을 꾸려 시드니로 향했다. 다른 사람이 살던 집에 들어가서, 그 집 살림을 하며 먹고 자고 생활하게 된 것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커피를 마시고, 버스를 타고, 사람을 만나고. 제일 많이 한 것은 누가 뭐래도 산책이었다. ‘시드니에서의 생활을 주제 삼아 소소한 일상을 포착해서 풀어낸 박연준 시인의 글이 먼저 담겼고, 큰 맥락을 잡아 풀어낸 장석주 시인의 글이 뒤에 담겼다.

 

느낌은 다르지만, 일본 소설 냉정과 열정사이가 떠올랐다. 헤어진 연인을 가슴에 담아둔 채 각자의 삶을 사는 두 남녀의 이야기가 그려졌던 소설. 하나의 이야기인 동시에 두 사람의 이야기라는 점이 독특해서 흥미롭게 읽었다. 하나의 이야기인 동시에 두 사람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건, 아오이와 쥰세이가 연인이었기 때문이고 이 책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를 쓴 두 시인이 부부이기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두 사람이 만나 연인이라는, ‘부부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었으므로.

 

시드니에 도착해서 시드니를 떠날 때까지 두 사람의 글은 달랐지만, 그래서 재미있었고 마음에 들었다. 누구든 이 책을 읽으면 알게 될 것이다. 그게 이 책의 둘도 없는 매력이라는 것을.

 

대개 사랑은 콩깍지가 씐 상태라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은 콩깍지가 벗겨졌는데, 그것도 한참 전에 벗겨졌는데도 그 사람이 좋은 것이다. 모든 단점들을 상쇄시키는 것, 이해 불가능한 상태가 사랑이다. (p.52 박연준)

 

어디까지가 콩깍지이고, 어디부터가 안 콩깍지일까. 말 장난 같은 이 말을, 속으로 되뇌어본다. 내 품에 들어온 이 책을 지금은 콩깍지 씐 상태로 읽었으나, 시간이 흘러 다시 읽게 되는 그 때를 안 콩깍지라고 말할 수 있을까. 박연준 시인의 따뜻한 글을 지나, 장석주 시인의 정교한 글의 끝에서, 나 역시 안녕, 시드니,’하고 무심히 발음해본다. 그리고 이런 문장을 써도 되나 싶어서 고민하다, 못 쓸건 또 뭐란 말인가 싶은 마음으로 마지막 문장을 쓴다. 두 사람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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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분야]

 

 

미국 현대문학을 이끄는 작가 조이스 캐롤 오츠의 대표작. 오츠는 1960년대부터 50편이 넘는 장편과 1000편이 넘는 단편을 썼으며, 시, 산문, 비평, 희곡 등 거의 모든 문학 분야에 걸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통해 부조리와 폭력으로 가득한 20세기 후반 미국의 삶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1970년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그들>은 미국의 다양한 사회경제 집단을 다룬 연작 '원더랜드 4부작'에 속한다. 오츠의 방대한 작품 세계에서 "독창성과 작품성이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되면서,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대표작이 되었다. 오츠는 '작가의 말'에서 이 작품을 두고 "소설처럼 구성한 역사 기록"이라 설명하는데, 환상적 진실과 시대적 사실이 결합된 양식임을 알려주고 있다.

1969년 출간된 이래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강력한 현실성과 핍진성을 발휘하는 <그들>은 1937년 여름부터 1967년 디트로이트 흑인 폭동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여 디트로이트 빈민가에서 격동의 삶을 살아낸 한 가족의 연대기를 서술한다.

지리멸렬한 삶의 한가운데 던져진 젊은 엄마 로레타 웬들, 폭력으로 얼룩진 세계에서 살아남고자 발버둥 치는 그녀의 아이들 모린과 줄스의 삶에 대한 열망과 분투를 생생히 그려내며 사랑, 계급, 인종, 도시 문제 등을 탁월하게 형상화함으로써 현대 영미소설 가운데 최고의 성취를 이뤄냈다.

 

 

하나님이 자신보다 동생 아벨을 더 사랑한다고 믿은 나머지, 동생을 죽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친 카인은 놋 땅으로 간 뒤 어떤 삶을 살았을까? 정말 하나님은 카인은 저버리고 아벨만 좋아하신 걸까?

주제 사라마구의 장편소설 <카인>은 구약성경 창세기 4장에서 동생 아벨을 죽인 죄로 하나님에 의해 이마에 낙인찍힌 이후 성경에는 더 이상 비중 있게 등장하지는 않지만, 21세기를 사는 지금까지 인간의 죄와 회개를 촉구하는 데 거론되는 '죄 지은 자' 카인의 눈을 통해 신의 존재와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고 인간 세상을 되돌아본 작품으로, 2009년 작가가 포르투갈어로 처음 발표한 이후 27개국에 소개되며 전 세계 독자들을 감동시키고 의식을 환기해 왔다.

사라마구는 카인이 10여 년 동안 떠돌면서 창세기 속 사건을 곁에서 보고 느끼며 직접 경험하는 이야기 형식을 빌려 소설을 전개한다. 이 작품의 영어판 출간 시 「퍼블리셔스 위클리」는 "숨막힐 듯 놀라운 상상력을 가진, 199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포르투갈의 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마지막 소설을 위해 성서적인 주제를 한껏 즐겼다"라 평하였고, 「뉴요커」에서는 "불경스럽게도 구약성경을 개작하면서도 장난스럽고 수다스러운 작가 특유의 서술로 구약성경 속 하나님의 논리에 허를 찌른다"라고 극찬했다.

 

 

[에세이 분야]

 

 

걸어본다 일곱번째 이야기는 시드니를 향해 있다. 누군가는 걸어본 곳이고 또 누군가는 처음 걷는 곳이라는 시드니.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는 시드니를 경험한 한 남자와 시드니를 경험하지 못한 한 여자가 한국을 떠나 처음으로 외지에서 함께 걸어본 기록을 한데 모은 책이다.

여자와 남자라는 차이점, 둘 다 시인이라는 공통점을 껴안은 채 그들은 시드니에 사는 한 지인이 빌려준 집에서 한 달을 살아보게 된다. 연애와 결혼의 차이는 아마도 그 '살이'에 있을 텐데, 한 집에서 한 '살이'를 함께하면서 그들은 남자와 여자가 얼마나 다른가, 그럼에도 그 차이를 '사랑'이라는 것이 어떻게 극복하게 해주는가, 낱낱이 기록을 해나갔다. 그리고 이렇듯 한 권의 책으로 그 결과물이자 증거물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말하자면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는 글이 만들어낸 결혼, 책이 거행시켜준 결혼식의 다른 이름이다. 이 소박한 잔치의 두 주인공. 남자이자 신랑은 장석주 시인이고 여자이자 신부는 박연준 시인이다.

 

 

 

여행과 일상의 중간지대에서 여행의 설렘을 느끼면서 일상의 익숙함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평소보다 덜 쓰고, 덜 바쁘면서 더 충전된 시간을 보낼 수 없을까.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는 12년 동안 전 세계 80개국을 다녀본 여행가 김남희가 추천하는 여행지의 이야기를 담아낸 에세이이다.

그녀는 추운 겨울만 되면 몸과 마음이 얼어붙는 탓에 겨울이 오기 시작하면 남쪽 나라로 가는 생활을 해왔다. 기본적으로 한국과 많이 멀지 않고, 한국의 겨울과는 반대의 계절을 가진 나라. 물가가 비싸서 몇 달을 머물러도 생활비가 부담스럽지 않고, 여자 혼자 머물러도 안전하며, 동시에 문화적인 인프라는 풍부해서 윤택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나라. 그렇게 찾아낸 나라가 바로 발리, 치앙마이, 라오스, 스리랑카이다.

푸른 생명의 의지가 넘실대는 초록의 나라 발리, 야생동물과 옛 도시의 흔적을 간직한 스리랑카, 덜 벌어도 삶에 더 충실한 예술가들의 터전 치앙마이, 스님들의 탁발로 새벽을 여는 고요한 나라 라오스. 책은 그녀가 겨울마다 찾아가서 이곳에서 머무른 '체류기'로 네 나라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가 실려 있다.

 

[유아/어린이/가정/실용 분야]

 

 

 

작은 곰자리 시리즈 29권. 어린이의 감정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작가 몰리 뱅의 작품으로,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에 이어 16년 만에 출간된 후속작이다.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마음에 비추어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도 헤아려 보게 한다. 소피와 앤드루처럼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면 서로 존중하게 된다. 그러면 상대방이 ‘틀린’ 게 아니라 서로 ‘다를’ 뿐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미술 시간에 소피는 가장 좋아하는 너도밤나무를 그렸다. 소피가 느낀 그대로 파랗게 칠했다. 나무가 돋보이게 하늘은 주황색으로 칠했다. 그러자 앤드루가 소피에게 말했다. “소피, 그림이 틀렸어. 진짜 나무는 파랗지 않아. 하늘도 괴상한 주황색이잖아!” 다른 친구들도 소피 그림을 보고 킥킥대며 소곤댔다. 소피는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르고 눈물이 핑 돌았다. 너무너무 속상해서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만 싶었다. 소피는 정말 틀리게 그린 걸까?

 

 

평생 지저분한 환경에 살면서 왠지 떳떳하지 못하고 기가 죽어있던 저자가 어느 날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후 주변을 하나둘 정리하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달라진 인생을 맞게 된 정리 수납 코믹 에세이다.

전편의 에피소드는 저자의 생생한 경험담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아무 생각 없이 ‘큭큭큭’ 웃어가면서, 그리고 ‘맞다, 맞아!’ 무릎을 치면서 읽어가는 가운데 정리의 개념이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다시 말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왠지 거리감이 느껴지는 수납 정리 전문가의 교과서식 어드바이스가 아니라 딱 우리들 눈높이에서 좌충우돌하는 가운데 얻은 생생한 성공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보다 더 지저분할 수 없는 정리정돈 포기자 와타나베 폰의 인생을 완전히 바꾼 기적의 노하우는 그래서 한층 생생하고 값어치 있다. 진짜 문제는 ‘작은 집’이 아니라 ‘정리정돈’ 이라는 사실, 그리고 버려야 할 것은 물건만이 아니라 물건을 통해 안심을 얻으려는 잘못된 사고방식에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인문/사회/과학/예술 분야]

 

 

사이언스 클래식 25권. 이론 물리학자 리사 랜들은 하버드 대학교와 MIT 물리학과에서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종신 교수직을 획득한 것으로 유명하다. 입자 물리학과 우주론이 중첩되는 현대 물리학의 최전선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물리학자들이 꿈꾸는 미래의 물리학이 어떤 것인지, 바로 그 분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세계 최정상급 여성 물리학자의 육성을 통해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저자는 전작 <숨겨진 우주>에서 비틀린 시공간 기하를 이용해 숨겨져 있는 차원과 우리 우주의 3차원 세계를 연결했듯이, 이번에는 입자 물리학과 우주론을 연결 짓는다. 저자는 이번 책을 <숨겨진 우주>의 후속작이지만 동시에 프리퀄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만나는 물체들을 이루고 있는 원자나 쿼크 같은 가장 근본적인 구성 요소들이 우리가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일상적인 물리 법칙과는 안전히 다른 법칙의 지배를 받고 있음을 강조한다.

입자 물리학에서 우주론까지의 현란한 도약과 융합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물음에 답하면서 저자는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종교와 갈등을 빚어 가면서까지 연구를 계속했던 갈릴레오를 불러 내며 물리학과 과학의 가치, 역사, 기초를 탐구하고 있다.

 

 

일본 최초의 청년 무업자 실태 보고서. 10여 년 동안 현장에서 NPO 활동을 하며 만난 수만 명의 무업자에 대한 정성조사와 2,300건의 정량조사를 통해 분석한 자료를 토대로 청년 무업자의 실체에 접근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또한 단순 통계 분석을 넘어 일본 사회의 역사와 구조적 문제를 동시에 소개함으로써 청년 무업자 문제를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누구나 무업 상태가 될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무업 상태에 처하게 되면 그로부터 빠져나오기가 힘든 사회를 '무업 사회'라고 한다. 2010년대의 일본 사회는 이미 무업 사회로 접어들었다는 것이 저자들의 진단이다. 저자들은 고도 성장기에 구축된 일본형 시스템과 사회 안전망의 부실이 변화된 노동조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여 대책 없이 청년 무업자를 양산하고 있으며, 이대로 방치할 경우 일본 사회의 지속가능성까지도 위협받게 된다는 암울한 미래를 전망하고 있다.

저자들은 무업 사회와 청년 무업자에 대한 실질적인 정책 지원과 대책 마련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촉구한다. 청년 무업자에 대해 부정적 뉘앙스가 강한 기존의 NEET, 히키코모리 같은 개념이나 청년 실업 문제 해결을 위한 일자리 창출 식의 단선적인 접근을 넘어서 당자자인 무업자에 대한 섬세한 이해를 통해 보다 정교한 분석과 대안을 제시한다. '무업 사회란 무엇인가?', '청년 무업자는 어떤 존재인가?', '무업자에 대한 사회의 잘못된 오해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등을 구조적 측면과 역사적 변화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경제/경영/자기계발 분야]

 

 

국내에서만 70만 부가 넘게 팔린 '스티브 잡스'의 저자 월터 아이작슨의 책. 이 책은 배비지의 차분기관에서 트랜지스터, 최초의 컴퓨터 ENIAC, 실리콘 밸리에서 월드와이드웹(WWW)으로 이어져 마침내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혁명을 선도한 창의적인 천재들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타임'의 전 편집장이자 밀리언셀러 전기 작가답게 각 인물들을 흥미롭게 소개한다. 마치 대하드라마 같은 그의 역작은 무려 1840년대에 컴퓨터 프로그래밍 분야를 개척한 디지털 선지자 에이다 러브레이스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앨런 튜링, 인텔의 로버트 노이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애플의 스티브 워즈니악과 스티브 잡스, 구글의 래리 페이지 등 현대 디지털 혁명 주역들의 대단히 흥미로운 성격을 탐구한다.

이 책은 디지털 혁명을 이끈 주역들의 사고방식이 어떻게 작용했는지,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창의적인 인재로 만들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며, 또한 환상적인 팀워크가 그들을 얼마나 더 창조적인 사람으로 이끌었는지에 대해 들려준다. 혁신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협업이 어떻게 창조성으로 이어지는지 관심 있는 독자라면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책이다.

 

 

예일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이자 세계적인 경제학자 스티븐 로치의 책. 이 책은 세계화 2.0의 거시 경제 흐름과 ‘보이지 않는 손’과 ‘계획과 전략’으로 상징되는 G2의 치열한 경제 전략을 담고 있다. G2의 과잉 소비와 수출이 가능했던 이유를 시작으로, 차이나 그라이프 논란의 실체는? 과연 G2의 통화전쟁과 무역전쟁은 일어날 것인가? 등 G2의 의존관계가 초래한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나아가 중국의 내수 전략과 미국의 생산자 중심의 전략을 소개하면서 G2가 향후 불균형을 재균형화하기 위한 과제와 전략을 담고 있다. G2의 재균형화 전략은 향후 글로벌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며, 무엇보다 글로벌 패권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이기 때문에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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