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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따라 유럽의 변경을 걸었다 - 푸시킨에서 카잔차키스, 레핀에서 샤갈까지
서정 지음 / 모요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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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따라 유럽의 변경을 걸었다는 이 책의 제목처럼, 나 역시 그들을 따라 국내 여행지를 걸었던 적이 있다.

 

무더웠던 4년 전 여름, 친구와 함께 떠날 여행지로 부산을 고른 건 영화 푸른 소금때문이었다. 이래저래 아쉬운 영화로 평가받는다 해도, 내게는 더할 나위 없는 영상미가 남은 영화였고, 부산에 가고 싶게 만든 영화였다. 비현실적으로 예쁜 하늘을 배경 삼아, 광안대교 근처에 앉아있던 송강호의 뒷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았던 장면. 그 풍경을 내 눈에 담고 싶어 향한 부산이었지만, 때는 성수기 중의 성수기였다. 태양은 내리 쬐고, 사람 많은 광안리 근처 어딘가에 서 있던 나는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몇 년 뒤의 여름에는, 전주에 있었다. 드라마 보통의 연애를 보고 전주 여행을 예습했던 나는 이 곳 저 곳을 지나칠 때마다 드라마를 생각했다. 드라마 속의 계절과는 달랐지만, 캐릭터의 감정선을 생각하며 걷는 전주 여행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다. 드라마, 영화를 좋아하는 내가 국내를 여행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었다.

 

그저 드라마가 좋아서, 영화가 좋아서 여행지로 삼고 여행했던 나와는 달리, 공부와 생업과 가족의 일로 상트페르트부르크와 모스크바, 민스크와 아테네를 두루 옮겨 다니며 살았던 작가에게 여행은 생활의 다른 일면이었다고 한다. 자연스레 유럽의 중심과는 또 다른 축에서 지식인과 예술가의 발자취를 더듬어갔다고. 기회가 될 때마다 밟고 다녔던 그곳은 공교롭게도 유럽의 변경(나라의 경계가 되는 변두리의 땅)에 위치한 도시들이 많았고, 당면한 문제를 나름의 방식으로 고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이 책은 그들을 따라 걸었던 책이다.

 

러시아어로 진짜 러시아를 기막히게 표현할 운명으로 태어난 러시아가 사랑한 천재 시인푸시킨으로, 시작해서 고대 신화의 세계를 빠져나온 현대 그리스를 과감하게 형상화한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까지 열 명이 넘는 예술가 중에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고흐가 머물었던 남프랑스를 가장 먼저 찾았다.

 

고흐에 대한 애착 때문인지, 자연스레 유럽의 변경으로 안내하는 작가의 안내 덕분인지 남프랑스는 생각보다 낯설지 않았다.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으로 이름만 알고 있던 아를에서 노란색 돌이 박혀 들어간 자리를 찾아다니며 외로운 영혼을 추억하는 고흐 루트를 밟다가, 고갱과의 다툼 끝에 귀 한쪽을 잘라낸 고흐가 입원해 치료를 받았던 병원 근처에도 서성거려본다. 그렇게 따라다니다가 마주한 한 문장 앞에서 멈춰선다.

 

큰 구름이 머리 위를 지나고 있을 때는 그저 진노랑의 바탕색 위에 서 있다고 생각했던 우리는 구름이 지나고 난 자리에 햇빛 광선이 노란 바탕색 위로 쐐기를 박자 그만 투명한 꽃잎을 저마다 바짝 세운 노란 형광빛 바다에 던져진 듯했다. (p.301)

 

이 문장이, 문장 위에 실린 카마르그 평원을 달리다가 만난 아찔한 노란색의 해바라기 밭사진을 실감하게 했다. 사진보다 생생한 글이라니. 이다지도 매력적인 문장들이 곳곳에 담겨있는 멋진 책이다.

 

낯설었던 러시아 예술가들을 비롯해, 생소한 몇몇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관심이 생긴 것도 이 책 덕분이다. 아니, 어디 예술가뿐인가. 유럽의 변경에서 만난 현지인들의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리투아니아에서 만난 마르티나스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가끔 외국 사람들을 만나면 자기 나라에 대한 나의 인상을 궁금해하던 게 생각나서 말인데요, 내가 한국에 대해 꼽을 수 있는 건 세 가지예요. 올림픽, 삼성이나 현대 같은 대기업, 그리고 김기덕과 박찬욱.”

 

리투아니아의 한 지방 숲 속에 사는 그의 서가에는 카프카와 나보코프 선집, 두세 권의 백과사전, 소비에트 클래식 영화 DVD 몇 개 사이로 박찬욱과 김기덕의 이름이 박힌 DVD가 꽂혀 있었다. 그는 이렇게라도 한국을 알고 있었는데, 나는 리투아니아에 대해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에 부끄러웠지만 이것을 깨닫게 된 것 또한 이 책이 내게 준 기회라고 생각한다. 세계는 넓고, 나는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기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깊은 사유와 성찰로 문학과 예술을 더듬어간 여행. 유럽의 변경에는 지식인과 예술가의 발자취가 있었고, 그 발자취 위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늘 그렇듯, 글로 읽었지만 정말이지 기분 좋은 산책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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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16기 마지막 신간 페이퍼를 쓰며, 4월의 문을 연다.

 

 

 

지난 글에, 누군가에게 선물할 책을 고르다보면, 책을 선물하는 그 시점의 내 심리상태가 파악되곤 한다고 쓴 적이 있다.

 

마스다 미리의 책에 빠져있을 땐, 어김없이 마스다 미리의 책을 골랐고

최근엔 아들러 심리학에 관련된 글이 담긴 라이팅북을 선물했다.

 

그럴 여유가 없다 하더라도, 책을 앞에 두고 조용히 손글씨를 쓰는 시간을 갖길 바랐다.

요즘의 내가 그러해서, 선물 역시 나의 심리를 피해갈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번 신간 페이퍼를 쓰려고 신간코너를 둘러보니

비단 책을 선물하는 일만이 아닌, 읽고 싶은 책을 고르는 것 역시 내 심리가 녹아든다는 생각이 든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나, 선호하는 출판사의 책이 아닌 지금의 내 심리가 손을 뻗는 책인 셈이다.

 

 

 

1. 사노 요코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격하게 솔직한 사노 요코의 근심 소멸 에세이'라는 부제가 참 마음에 들었다.

그녀의 또 다른 에세이 <사는게 뭐라고>와 함께 읽고 싶다.

이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근심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리가 반영되어 이 책을 고르지 않았나 싶다.

 

 

 

2. 알랭 <알랭의 행복론>

 

 

 

<좋은글 대사전>에서 알랭의 글을 읽었나, 인스타그램에서 알랭의 글을 접했나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글이 참 좋았다. 좋았다면서 기록해두지 않는 내 모순을 뒤로하고, 이 책에 눈길이 갔다.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세상의 모든 방법을 읽는다고 해서

당장 내 인생이 행복해지는 건 아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마음 먹기 나름이 아닐까.

 

 

 

3. 최원호 <혼자가 되는 책들>

 

 

예술서 MD의 서평 에세이답게, 예술 서적에 관한 리뷰다.

 

제목도 제목이지만, 책 표지에 "모두 언젠가는 혼자가 될 것이다"라는 글이 마음에 들었다.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라는 제목이 참 좋았던 때가 있는데,

'모두 언젠가는 혼자가 될 것이다'에 더 마음이 가는 걸 보면

요즘의 내 심리가 이해가 가는 것이다.

 

 

 

4. 다나베 세이코 <여자는 허벅지>

 

 

지난 3월에, 재개봉한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다시 보고 왔다.

집에서 몇 번이나 다시 돌려봤던 영화였는데, 꼭 한 번 영화관에서 다시 보고 싶었다.

 

그런 작품의 원작 소설을 쓴 작가의 에세이라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있나.

 

 

 

5. 최현정 <빨강머리N>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원작 <빨강머리 앤>을 오마주한 책으로, 인생의 모든 희로애락을 담고 있다. 강하고 성숙한 어른이 되고 싶지만 아직은 나약한 아이로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혹은 꿈 많고 순수한 아이로 남고 싶지만 이미 현실과 타협한 어른이 되어버린 모두의 이야기를 말이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모습의 어른으로 성장했을까? 그리고 이 시대는 우리 마음에 드는가? 빨강머리N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대신 속 시원한 청량감을 선사한다. 위로의 말 한마디 없는데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보고 있으면 재밌는데 보고 나선 눈물이 난다. 작가는 <빨강머리N>을 MSG 같은 책이라고 소개했고, 작가의 말대로 이 책 속에는 인생의 모든 맛이 담겨있다.

 

 

*

 

어차피 세상의 주인공이 되긴 글러먹은 인생,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무려 5개나 되는 오달수처럼. 주인공에게 꽂혀야 할 시선을 강탈하는 라미란처럼. 나, 주인공이 되기 위해 발버둥 치는 대신 특별한 조연이 될 것이다. 기대하시라. 새로운 신 스틸러의 탄생을. _<신 스틸러> 중에서

 

 

 

다시 말해, 이 책은 '사이다'같은 책이다.

 

 너도 나도 고구마를 먹고 또 먹는 답답한 삶 속에서,

주인공이 되기 위해 발버둥 치는 대신 특별한 조연이 될 것이라 말하는 작가.

 

세상살이에 지친 어른아이의 취향? 아니다, 심장저격 에세이다.

 

신간평가단 책 선정의 무게(?)를 생각하면 이 책은

선택되지 않을 확률이 높으니, 미리 사 읽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책이기도.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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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핸드 타임 -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최후 러시아 현대문학 시리즈 1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하은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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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때론 한 사람의 목소리가, 열 편의 글을 대신한다.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의 육성기록을 담은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이 그랬다.

 

학생들은 34일의 수학여행을 마치고 금요일에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배에 갇힌 일반인 승객들과 더불어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남겨진 가족들이 가닿을 수 없는 수백개의 금요일은 유가족의 생생한 인터뷰로 남아 하나의 기록이 되었다. 읽어내기 쉬운 책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완독해낸 건 목소리가 주는 힘 덕분이었고, 이 책을 기억하는 것 또한 목소리 덕분이라 생각한다.

 

2015,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며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세컨드핸드 타임또한 목소리로 이루어진 책이다. 아니, 목소리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목소리 소설이라는 독창적인 장르를 개척한 책이다.

책의 두께에 지레 겁먹은 나는, 이 책의 장르가 낯설다는 것을 핑계 삼아 책장에 꽂아두고 한참을 멀리했다. 뒤늦게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깨달았다. 장르가 아니라 이 책의 배경이 된 1990년대를 낯설어했음을. 동시에, 부끄러웠다. 얼마 전, 영화 <사울의 아들>을 봤을 때처럼. 나는 극히 일부를 알고 있었고, 어쩌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 책을 다시 설명하자면 이렇다. 우리가 응답할 추억을 쌓아가던 1990년대. 정확히는 1991, 공산주의 체제 붕괴 이후 20년 동안 소비에트 사회의 변화와 사람들의 상실감,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 등의 정신적인 변화를 담아내고 있는 책. 나는 이 주제가 다소 어려워서, 이 책을 이렇게 읽기로 했다. ‘무엇에 대한책이라고.

 

독재의 아름다움과 시멘트에 박힌 나비의 비밀에 대해, 살인을 하는 사람들이 신을 위해 일한다고 믿고 있는 시대에 대해, 행복과 매우 닮은 외로움에 대해, 모두를 죽이고 싶다는 마음과 그 마음을 품었다는 생각만으로도 몸서리치는 사람들에 대해, 용감한 행동과 그 결과에 대해.

 

그들이 말하는 무엇에 대한이야기는 곧 그들의 일상이었고, 삶이었다. 1990년대에 그곳을 살아낸 평범한 사람들.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작가는 무려 1,0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을 인터뷰했다고 한다. 인터뷰 끝에, 작가에게 남은 목소리 하나하나. 그것을 그저 활자로 녹여낸 책이었다면 이 책은, 일부에서 평하는 것처럼 르포일 뿐이며 소설이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결과론이지만,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답게 알렉시예비치는 목소리를 그냥 옮기지 않았다. 소설가라는 자신의 본분을 최대한 살려, ‘목소리 소설을 구현해낸 것이다.

 

앞서, 때로 한 명의 목소리가 열 편의 글을 대신한다고 썼다. 이때 한 명의 목소리는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다. 그렇지만 누군가의 말을 받아 적고 그것을 정리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정성어린 손길로 다듬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렉시예비치는 묵묵히 그 길을 걸어왔고, 그 길은 앞으로도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그 끝엔 옛 소련도, 사회주의도, 희생도 아닌 사람이 있으니까.

 

영화 <사울의 아들> 리뷰에 이런 글을 썼다. ‘기억은 한 사람을 기억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 세컨드핸드 타임에서는 크세니야-다니야 자매의 엄마를 기억하고 싶다. 200426, 모스크바 지하철 자모스크보레츠카야 선, 아프토자보드스카야 역과 파벨레츠카야 역 사이에서 테러가 자행되었던 그날, 그 악몽 같은 곳에 있었던 한 사람.

 

제 인생의 소원은 그 어떤 것 하나 이뤄진 것이 없어요.” (p.498)

 

전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제게 신앙이 있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다만 누군가와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한번은 신부님이 설교를 하셨는데, 인간은 큰 고통을 만나게 되면 신에게 가까워지든지 아니면 오히려 멀어지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고 하셨어요. 인간이 만약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걸 선택한다 할지라도 그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그건 슬픔과 아픔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요. 그건 저에 대한 얘기였어요.” (p.503)

 

예전에 저는 제 안에 있는 것과 좀처럼 대화를 나누지 않았었죠. 그런데 전 지금 광산에서 사는 것처럼 살아요. 걱정하고 고민하고 늘 새로운 잡생각으로 저 자신을 괴롭히죠. ”엄마, 마음을 좀 감춰요!“ 아니, 사랑하는 내 딸들아, 난 말이지, 내 감정들이 내 눈물들이 그냥 이렇게 사라지는 건 원하지 않는단다. 흔적도 없이, 표시도 없이……. 전 그게 제일 큰 걱정거리예요. 제가 겪은 모든 일을 내 아이들에게만 남기고 싶지 않아요. 다른 사람에게도 이것을 전해서 이 일들이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으면 좋겠고, 그래서 원하는 사람들이 가져갈 수 있게끔 하고 싶어요.” (p504)

 

 

이 책이 내 품에 들어온 순간 알았다. 신간평가단 활동이 아니면, 읽을 엄두도 못 냈을 책이라고. 읽어내기 쉽지 않고, 글 쓰는 건 더 어려워서 결국 마감일을 넘겨서야 온전히 책장을 덮는다. 이 글을 쓰는 내내, 몇 번이고 인상 깊었던 목소리를 다시 찾아 읽었다.

 

보통 사람은 역사를 위해 살지 않아요. 그보다는 훨씬 단순하게 살아요.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집을 지으며 살아요.”

 

슬픔을 겪다 보니 좋은 일들을 잊고 살았어요. 우리도 젊었을 때는 사랑이란 걸 했는데 말이에요.”

 

그들을 기억하는 동시에, 내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역사를 위해 살지 않는 보통 사람인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슬픔을 겪다 보니 좋은 일들을 잊고 사는 건 아닌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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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 - F. 스콧 피츠제럴드와 <위대한 개츠비>, 그리고 고전을 읽는 새로운 방법
모린 코리건 지음, 진영인 옮김 / 책세상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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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의 개츠비는, 스무 살에 처음 만났다. 친구와 고전 문학을 읽기로 계획하고, 처음 읽은 책이 <위대한 개츠비>였다. 에드워드 호퍼의 간이 식당을 표지로 한 민음사판. ‘이게 그 유명하다는 <위대한 개츠비>구나. 어디 한 번 읽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책은 줄거리를 쫓아가기 바빴고, 끝내 완독했지만 뿌듯하지 않았다. 이 책을 왜 그렇게 읽으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때는 그랬다.

 

F. 스콧 피츠제럴드와 위대한 개츠비, 그리고 고전을 읽는 새로운 방법을 알려주는 이 책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고등학생 때나 심지어 중학생 때(덜덜덜!) 우리가 이 책을 읽게 된다는 사실은 나쁜 소식이다. 그때 우리는 너무 어리고, 감정적으로 궁지에 몰려 있고, 회한이 인생을 어떻게 일그러뜨리는지 알 길이 없다. (p.13)

 

중학생은 아니었지만, 고등학생의 티를 아직 벗지 못한 스무 살이었으므로 감정적으로 궁지에 몰려 있고, 회한이 인생을 어떻게 일그러뜨리는지 알 길이 없었다.

어렴풋하게 개츠비를 이해한 건, KBS2 단막극 <위대한 계춘빈> 덕분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위대한 계춘빈>의 대본 속 기획의도덕분이었달까.

 

스무살 때, ‘고전문학의 이해라는 교양수업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1920년대 신생강대국인 미국의 현주소를 객관적으로 고발한 목가주의와 기계주의의 대립과 갈등을 잘 표현한 작품이라는 레포트를 썼다고 한다. A+을 받은 그 레포트가 여지껏 부끄러운 이유는, 그 책을 읽고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 때문이었다. 그 생각은 바로 개츠비... 미친놈...’이었다고 한다.

   

다소 격한 표현이지만, ‘미친놈이라는 단어를 보면서 나는 개츠비를 어렴풋이 이해했다. 그렇다. 개츠비는 미친놈이었다. 위대한 모든 사람이 사랑에 미친 것은 아니겠지만, 사랑에 미친 사람이 위대할 수 있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던 개츠비. 책장을 덮으면 위대한 개츠비라는 제목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개츠비. 위대한 놈이다.

 

나를 비롯한 독자들은 개츠비를 읽으며 주인공이 사랑에 홀딱 빠진다는 점을 좋아하지만, 정작 이 소설은 신학에 대해서건 낭만적 사랑에 대해서건 시큰둥하다. 개츠비에는 신학 대신 우상 숭배가 나오고, 사랑 대신 타인에게 마냥 무릎 꿇는 자아가 등장한다. (p.34)

 

개츠비는 공허를 정면으로 응시한 최초의 현대 소설 가운데 한 편이지만, 높이 뛰어오르기 전에 멈춰버린다. 피츠제럴드가 예전에 버린 가톨릭 신앙과 그의 낭만적인 기질이 여전히 영향을 미친 탓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개츠비를 쓴 피츠제럴드. 개츠비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이름이다. 이 책의 부제에서는 개츠비보다 피츠제럴드가 먼저 언급되는데, 나는 다음 구절을 읽으면서 피츠제럴드를 새롭게 이해했다.

 

결국 피츠제럴드는 항상 원하기를 원한다. 그 기대에 부합하는 것이 없다 할지라도 말이다. 최종적으로 개츠비를 위대한 미국 소설이 될 만큼 가치 있는 작품으로 만든 것은 뭔가를 단언하고 싶어 하는, 피츠제럴드의 희미하지만 결국 살아남은 충동이었다. (p.35)

 

이 책을 쓴 문학 비평가 모린 코리건이 글을 잘 써서 그렇겠지만, ‘그 기대에 부합하는 것이 없다 할지라도 항상 원하기를 원하는피츠제럴드가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츠비는 그저 그 시대에 쓰였기 때문에, 비단 위대한 사랑 이야기인 소설은 아니기 때문에 가치 있는 작품이 아니라 뭔가를 단언하고 싶어 하는, 피츠제럴드의 희미하지만 결국 살아남은 충동이 있었기에 가치 있는 작품이라는 것이 정말이지 멋있다.

 

개츠비에 의한, 개츠비를 위한, 개츠비의 이야기인 동시에 피츠제럴드에 의한, 피츠제럴드를 위한, 피츠제럴드의 이야기인 이 책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그가 창조한 최고의 인물들은 들뜬 채로 인생이라는 물에 대책 없이 뛰어들고, 그다음엔 떠 있기 위해 싸워야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1물 그리고 물, 어디에나’.

위대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열망하는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파괴하는 도시 뉴욕에 대해 이야기하는 2야망과 성공의 땅에서’.

이 소설을 사랑 이야기로 보고 강의하려는 게 아니다’. 적어도 오늘 밤은 아니라고, 자신은 이 소설을 아메리칸드림의 은밀한 썩은 부위를 들여다보는 누아르로 애기하고 싶다 말하는 3랩소디 인 누아르’.

할리우드가 그를 싸구려 글쟁이보다 약간 나은 존재로 취급했을 때조차도, 진지하게 자기 자신이 작가라고 생각했던 피츠제럴드에 대해 이야기하는 4중서부 싸구려 작가와 그의 걸작’.

그는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되었고, 전기와 소설과 연극의 주제가 되었으며 그가 쓴 이야기는 수백만 관객을 대상으로 각색됐다. 오늘날 대학생들은 그의 책을 읽는다. 필독 도서이기 때문이 아니라 좋아하는 책이기 때문이라며 이야기하는 5물 위에 제 이름을 쓴 사람, 여기 잠들다’.

나이 들어 인생을 후회하는 독자들을 위한 개츠비가 있지만, 젊고 무모한 이들을 위한 개츠비도 있다며 이해하는 마지막 6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목차를 조금 길게 풀어놓은 것 같아 보인다. 부끄럽게도 정말 그렇지만, 그렇게 한데는 이유가 있다. 개츠비는 알아도 피츠제럴드가 낯설다면 나는 과감하게, 이 책을 뜯어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개츠비를 뉴욕 속 누아르로 읽었던 스무 살의 내게는, 야망과 성공의 땅에서 들려오는 랩소디 인 누아르가 잘 읽힐테고, 개츠비의 심화 과정인 피츠제럴드 읽기를 원하는 사람은 중서부 싸구려 작가와 그의 걸작이 와 닿을 것이다.

 

덕 중의 덕은 양덕이라고 했던가. 개츠비-피츠제럴드 덕질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던 멋진 책. 그 어떤 문장보다, 이 책의 제목이 된 개츠비의 마지막 문장을 덧붙여본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나아간다. 흐름을 거스르는 보트들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리면서도.”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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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
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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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하지 못하는 책이 있다.

500쪽이 넘는 쪽수를 자랑하는 두꺼운 책? 얼마든지 추천할 수 있다. 시작이 어려워서 그렇지, 책에 몰입하게 되는 그 선을 넘으면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낼 수 있는 책이라고 추천하곤 한다. 7년의 밤과 미비포유가 그랬다. 감동도 감동이지만 그 흡입력을 잊지 못해서 추천했는데, 잘 읽었다는 답이 돌아와 기분이 좋았다.

지난 일이지만, 인생의 책 중 한 권으로 꼽는 <꿈꾸는 책들의 도시> 역시 추천한 적이 있다.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도 이 책 앞에선 양반이다. 적어도 사람이 나오지 않나.

'모두가 시인인 공룡족의 도시 린트부름에서 태어난 젊은 공룡 미텐메츠는 대부로부터 신비한 원고 한 뭉치를 유산으로 받는다. 그는 원고의 강렬함과 풍부한 감성에 매혹되어 실종된 저자를 찾아 부흐하임으로 떠난다.'가 핵심 줄거리인 이 책을,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추천했나 싶다. 열렬한 추천 끝에 두 친구가 읽어주었다. 미안하고 고맙다.

추천하지 못하는 책은 다시 말해 비(非) 추천, 추천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는 읽었으나, 결코 너도 읽어보라 하지 못하겠어서, 추천하지 않는 책이다. 지독하디 지독한 삶. 읽고 있으면 갑갑해서 숨이 턱 막히는 삶. 한 사람의 삶이 어쩜 이렇게 끔찍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는 삶. 그런 삶을 끝까지 써내려간 책. 그런데 나는 왜 이 작가의 책을 세 권이나 읽고 있는 것일까.

지난 해 영화 '마돈나'의 수상을 축하하며 쓴 글에서 이야기한 적 있지만, 오늘은 이 책 속 한 구절을 앞세워 이야기해본다. 


뜨거운 죽 한 그릇을 앞에 두니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로지 뜨거운 이걸 잘 먹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크게 한 술 떴다가 입천장을 데었다. 아이를 먹일 때는 호, 호, 호, 세 번씩 불어 식혀 먹었다. 아이 한 번, 나 한 번, 아이 한 번, 나 한 번. 아이는 죽 그릇이 다 빌 때까지 입을 쩍쩍 벌려, 주는 족족 다 받아먹었다. 손톱보다 작은 이가 박힌 아이의 붉은 입안을 볼 때마다 가슴이 저릿했다. 분명 내 가슴을 열어 젖을 먹여 키운 아이였는데, 내 손으로 먹을 걸 떠먹여주는 건 처음인 것 같았다. 아, 잘 먹었다. 빈 그릇을 보여주자 아이가 맑게 웃었다. 자알 머거따! 저도 나를 따라 혀 짧은 소리를 냈다. 먹을 걸 주니 이제야 엄마로 인정하는 모양이었다. 나에게 웃는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덥혀졌다. "걱정 마. 엄마가 평생 몸을 팔아서라도 네 다리 고쳐줄게." 배가 부른 아이는 하품을 하며 눈을 비볐다. 나는 당장 병원부터 다시 예약을 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이설 <환영> 중에서

 


기구한 삶을 살아가는 그녀들의 삶에도, 평범한 일상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 분명 있을 것이다. 소설 속 윤영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제 좀 제대로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사람처럼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녀의 희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날아드는 최악의 상황들.
그 상황 속에서 윤영과 아이가 어느 죽집에 들어가 앉았다.


젖먹이인 아이를 집에 있는 아빠의 품에 안겨놓고 일하러 가야했던 여자. 그런 엄마가 낯설어 매번 아빠만 찾던 아이.

'애착'이란 단어와 멀찍이 떨어져 살아온 지난 시간들. 바라보는 내가 속상해 죽겠던 나날들을 보내고, 비로소 맞이한 엄마와 아이의 시간. 그 시간 속에서 마음이 덥혀진 윤영의 이어지는 말이 아릿해서 혼났다. 평생 몸을 팔아서라도, 라고 각오하는 엄마라니.

그래서 추천하지 못하는 것이다. 읽어내기 쉬운 책이 아닐뿐더러, 책이 동반하는 우울함을 온전히 안고 읽어내야하는 책이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이런 순간 때문이다. 오히라 미쓰요의 에세이 제목처럼,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하고 말을 건네는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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