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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지음 / 양철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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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손편지를 쓰는 일에 소원해졌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손편지를 자주 쓰곤 했다. 그런 나와 손편지를 자주 주고받았던 친구 모모와 언제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중에 이 편지들을 묶어서 책으로 만들면 재밌겠다. 그치?”

정말 책으로 출간해야지라기 보다는, 그땐 친구와 그렇게 편지를 주고받는 일이 영원할 줄 알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의 편지는 지극히 감상적이었고, 결정적으로 편지를 주고받는 일에 소원해지면서 한때의 추억으로 남았을 뿐이다. 그렇지만 참 소중했던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한 건 이 책 선생님, 요즘음 어떠하십니까덕분이다.

 

1973118, 아동문학가 이오덕은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무명 저고리와 엄마를 쓴 동화작가 권정생을 찾아갔다. 이오덕은 마흔여덟이었고 권정생은 서른여섯이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만났다. 그때부터 이오덕과 권정생은 2003년 이오덕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30년을 함께하며 편지를 주고받았다. 어른, 아이 모두 권정생의 작품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권정생을 세상에 알린 이오덕,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동화를 쓴 권정생. 이 책은 그런 둘의 만남과 삶을 엿볼 수 있는 편지를 가려 뽑아 오롯이 실어낸 책이다. ‘오롯이라는 부사의 정의 그대로 두 사람의 삶은 이 책을 통해 모자람이 없이 온전하게 내게 전해졌다.

 

소설이나 시를 쓰는 사람들이 여가 선용이나 취미로 하지 않듯이, 우리 아동문학도 온 생애를 바쳐 쓸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같이 병들고 무능한 인간이 아닌, 건강하고 역량 있는 작가가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한 편의 동화를 빚어내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뜨거운 작가가 나와야만이, 아동문학이 구원을 받고 또 인간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p.224)

 

권정생 작가님의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왜 그리도 이오덕 선생님이 권정생 작가님의 작품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야 한다고 말했는지 알았다. 자신같이 병들고 무능한 인간이 아닌, 건강하고 역량 있는 작가가 있어야 한다고 쓰셨지만, 그 누구보다 아동문학에 온 생애를 바쳐 쓰신 분이라는 걸 안다. 이오덕 선생님은 그런 권정생 선생님을 빨리 알아보셨던 게 아닐까.

 

선생님 동화집 아직 가지고 있는데, 이웃 학교에 동화 공부하는 사람이 더러 있어 나눠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서울에도 보낼 곳이 있습니다. 이런 훌륭한 작가가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필요하면 다음 서울 가서 세종문화사에 원가로 몇 권 사서 적당한 곳에 보내겠습니다. (중략) 선생님 가지고 계시는 책은 될 수 있는 대로 모두 파십시오. 절대로 함부로 책을 공짜로 주지 마십시오. 그냥 준다고 좋은 것 아닙니다. 피땀 흘려 쓰고 만든 책인 것을 아는 사람이 드뭅니다. (p.84)

 

권정생 작가님의 작품을 참으로 귀하고 값있는 것으로 아꼈고, 이런 훌륭한 작가가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라면 제 돈으로 책을 사서 흔쾌히 나눠주었던 이오덕 선생님. 교사로, 아동문학가로, 우리 말 운동가로 평생을 아이들과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으로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썼고, 온 삶을 아이들과 함께 산 선생님이 곁에 계셨기에 권정생 작가님이 온 힘을 다해 동화를 쓰실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편지를 쓰는 그 시간은 물론이고, 편지가 오고 가는 시간에도 서로를 위하고 아끼는 마음이 편지 곳곳에서 묻어났기에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참 행복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정한 교감이 얼마나 아름답고 그걸 전해 받은 이에게는 얼마나 따뜻한 위로가 되는지, 진정으로 알 수 있었다.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행복할 것이라던 권정생 작가님의 말처럼, 아동문학이라는 한 가지 일로 만나서 서로에게 편지 쓰는 일에 전념했을 두 분을 생각하면 내가 괜히 흐뭇해졌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내보이고, 또 귀 기울여 들어 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온전히 만날 수 있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

 

197328, 권정생 작가님이 이오덕 선생님에게 쓴 편지의 첫 구절을, 죄송하지만 멋대로 조금 바꾸어 이렇게 쓴다.

 

두 분이 주고받으신 편지, 잘 읽었습니다. 왠지 눈시울이 화끈 더워지고,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사랑이 무엇이고, 어떤 것이라는 것을, 두 분의 글월에서 느꼈습니다. 그리고 뒤늦게 깨닫습니다. 어린 시절 읽었던 작가님의 작품이 이다지도 피땀 흘려 쓰고 만든 값진 작품이었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마지막으로, 희망합니다. 두 분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저 역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내보이고, 또 귀 기울여 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말입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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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아이 고 - 내 남편의 아내가 되어줄래요
콜린 오클리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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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올해 드라마에서 만났던 두 캐릭터를 떠올린다. <펀치>의 박정환과 <슈퍼대디열>의 차미래. 두 사람의 공통점은 시한부였다. 세상을 뜨기 전, 아내 하경과 딸 예린을 위해 과거 자신의 잘못을 바로 잡고, 강력했던 세력과 맞서 싸우는 정환과 자신이 세상을 뜨고 나면 혼자가 될 사랑이를 위해 사랑이의 아빠를 만들어주려고 노력하는 미래. 이 소설 비포 아이 고를 읽고 있자니, 그런 두 사람이 떠올랐다. 이 책의 주인공인 데이지 역시 시한부를 선고받았기 때문일까.

 

몇 년 전 완치된 줄 알았던 암이 재발한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몸 곳곳에 퍼져 되돌릴 수 없게 된 데이지. 자신에게 주어진 길어야 6개월인 시간에 데이지는 떠날 자신보다 남편인 잭을 먼저 생각한다. 내가 떠나면 잭은 어떻게 살아갈까, 누가 잭을 챙겨주지? 어쩌면 이런 데이지였기에, 그녀의 엉뚱한 결심은 당연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잭에게 새 아내를 찾아주자.’라는 데이지의 결심.

유방암 말기를 선고 받은 스물일곱의 여자가 최우선순위로 둔 일이, 남편에게 새로운 여자를 찾아주는 일이라니. 대체 얼마나 사랑해야 이렇게 마음먹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책을 읽는 나 역시 그런 데이지가 어떻게 행동할지 궁금했지만, 본격적으로 잭의 새 여자 찾기에 돌입하는 데이지를 보면서는 말리고 싶었다. 그런 내 마음이 담긴 것 같은 대목이 있다. 바로, 데이지 자신이 잭의 새 여자를 찾는다는 사실을 유일하게 밝힌 친구 케일리와의 대화다.

 

그 여자는 좋은 사람이야. 잭한테 좋은 사람이 되어줄 거야. 잭은 행복할 자격이 있어.” 하고 데이지가 말하자 케일리는 생각에 잠겨 엄지손톱을 물더니, 조그만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너는? 너는 행복할 자격이 없니?”

 

나는 데이지가 아니고, 데이지에 아무리 감정을 이입해서 읽는다고 해도 나 역시 궁금한 부분이었다. 물론 데이지가 그만큼 잭을 위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데이지의 상황이 상황인 만큼 나 역시 데이지가 자신을 조금 더 생각했으면 하고 바랐기 때문에 케일리의 말에 격하게 공감했다. 이 대화로 데이지는 케일리와 다투고,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것. 그 말에 웃음이 나올 뻔한다. 암에 걸리는 걸 원하지 않는다. 케일리에게 한 말을 모두 취소하기를 원한다. 남편이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지지 않기를 원한다. (p.343)

 

자신이 떠난 뒤에도 잭이 행복했으면 하고 바라는 여자도 데이지고, 자신이 떠나더라도 잭이 자신만을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여자 역시 데이지였다. 후자의 감정이 고조되면서, 나는 점점 더 데이지에게 몰입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잭에 대한 데이지의 사랑을 보여주는 구절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이 구절이다.

 

엄마 가슴에 머리를 묻고, 엄마 배에 무릎을 꼭 붙인다. 엄마 배속으로 다시 들어가려는 듯.

새로 태어나기 위해.

두 번째 기회를 얻기 위해.

그러다 결과가 같다는 것을 알면 다시 태어나 살고 싶을지 궁금하다. 이 삶을, 이 몸을, 이 암을.

그러다 잭이 생각난다.

그리고 질문을 제대로 떠올리기도 전에 대답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그렇게 할 것이다. (p.362)

 

서른이 되기도 전에 암이 두 번이나 찾아온 데이지의 삶, .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지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미 대답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자신의 삶에 잭이 있었으므로 두 번째의 인생이 같을지라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나는 이 대목을 카페에서 읽고 있었고,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 혼났다. 먹먹한 데이지, 너를 어쩜 좋으니... 하며 이 구절을 필사 했고 이렇게 옮겨 쓴다.

 

소설의 마지막장에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잭의 시점에서 쓰인 글이 나온다. 소설을 통틀어 처음 나오는 잭의 시점이었던지라 반가웠고, 그래서 더 아련했다. 이 역시 노트에 필사해두었고, 이 글에 함께 담아내고 싶지만 그건 이 책을 읽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으로 남겨두고 싶다. 자신이 떠난 뒤에도 남편인 잭이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남편의 새 아내를 찾았던 데이지와 함께 울고 웃은 독자일 테니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글을 마무리 하려는데, 이 책을 읽기 전 읽었던 이 책의 한 줄 평이 떠오른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다. 이 책을 읽기 위해 포근한 쿠션과 한 잔의 와인, 그리고 티슈를 준비해라. 멋진 주말이 완성될 것이다. (shelby1055)’라던 한 줄 평. 내게는 한 잔의 와인 대신 한 잔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있었고, 만석이었던 일요일 낮의 카페에서 이 책을 읽느라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공감이 간다. 대책 없는 데이지의 사랑 덕분에 나는 위로받았고, 그리하여 나의 주말은 따뜻했으며, 끝내 멋진 주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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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한창훈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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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쓰는가, 이런 거 물어보는 거 아니다. 옳기는 하겠지만 좋지는 않다. 짧은 질문은 긴 대답을 요구한다. 차라리 쓰고 있는 사람을 지켜본 이가 답하는 게 좋다. '쟤는 아마 그것 때문에 맨날 뭔가를 끄적거리고 있을 거야', 이런 답이 나올 테니까. 왜 안 좋은가? 왜 사는가와 같은 질문이니까. 왜 사는가를 물어오면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아야 하니까. 그렇게 하면 대부분 부끄럽고 쪽팔리니까. (p.6)

 

이 책은 중앙북스에서 2009년에 출간된 책 한창훈의 향연의 개정판인데, 작가의 말이 책의 제목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재밌는 책이다. 이런 거 물어보는 거 아니라는 작가님의 단호한 말에 미소 지었지만, 이내 부러워졌다. ‘왜 쓰는가라는 질문이 왜 사는가와 같은 질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건, 그런 삶을 살고 있다는 걸 테니까. 그래서 왜 사는가를 물어보는 일이 그에게는 반가운 일이 아닌 것이다.

 

나만 혼자 읽고 넘어가기 아쉬웠던 마음에, 블로그에 이 구절과 함께 내가 이 책을 읽고 있다고 하니 한 이웃분께서 댓글을 달아주셨다. 한창훈 작가님의 소설에는 바다와 관련된 것들이 많이 나와서 좋다고. 과연 그랬다.

 

내륙에서의 내 이력에는 늘 섬과 항구가 자리하고 있었다. 내륙 사람들은 산과 벌판을 말하고 나는 바다를 이야기했다. (p.50)

 

변화가 더딘 것이 미덕이며 떠나는 일이 일상이 되는 곳. 전라도의 종착역 여수에서 그는 소설을 썼다. 그리고 그의 소설보다 먼저 접하게 된 이 산문집을 통해 나는 섬이라는 곳이 바다와 바람 외에는 모든 결핍의 장소이자 이별과 쓸쓸함만큼은 풍족한 곳이며 고독을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견디기 힘든 곳임을 알았다. 나 역시 섬의 아름다운 모습만을 보고 돌아 온 여행객이었기에 생각하지 않았던 풍경이었다.

 

내가 선생께 배운 것은 글 쓰는 기교가 아니라 삶을 궁리하는 방법이었다.

예전의 큰 작가들 글을 한번 찾아 읽어보고 하늘의 뜻과 맞닿아 있는 작가의 뜻이 무엇인지 한 일 년 고민 좀 해봐.”

 

당장 쓰는 기술을 원했던 영민하지도 않고 재주도 없었던 탓에 한 사십 먹어서 괜찮은 소설집 하나 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던 그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숙제가 마음에 들었다. ‘소설이든 삶이든 궁리하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할 대상 아니던가.’ (p.165) 하고 궁리한 끝에, 가난과 외곽을 그리는 소설이 의미를 잃는 시대에도 여전히 소설가로 살고 있는 것이다.

 

문학을 키우는 것은 비문학적인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는 그의 말 역시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맞는 말임을 실감하게 된다. 운동장에서 어디를 둘러보아도 푸른 바다였기에, 파란색과 더불어 흰색 크레용이 바닥났던 유년 시절. 그리고 바다 냄새 물씬 풍기는 바다 이야기를 그려내는 소설가가 되기까지 그의 삶을 채운 모든 비문학적인 것은, 그의 문학을 키우는 데 분명 힘이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왜 쓰는가라는 질문을 두고 왜 사는가와 같은 질문이라 답하는 소설가이지 않나.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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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8 23: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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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적인 도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의 사적인 도시 - 뉴욕 걸어본다 3
박상미 지음 / 난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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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게 뉴욕의 이미지는 ‘CSI’였다. 많고 많은 이미지 중에 하필 CSI라니 싶지만 정말 그랬다. CSI 시리즈 중 뉴욕 시리즈를 가장 열심히 챙겨봤는데, 한 편 한 편 챙겨보면서 자연스레 뉴욕의 이미지를 차곡차곡 쌓아왔던 것이다. 그 어떤 도시보다 화려하고 멋진 곳이지만, 그 어떤 도시보다 어둡고 쓸쓸한 곳. CSI를 통해 느낀 뉴욕은 그런 도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몇 년 간 가져왔던 뉴욕의 이미지는 이 책 나의 사적인 도시를 읽게 되면서 삽시간에 바뀌었다. 책 한 권을 읽은 것뿐인데 그리 쉽게 바뀌나 싶겠지만 정말 그렇다. 그럴 수 있었던 건 내가 드라마로 접한 이미지의 뉴욕이 아니라, 오랜 시간 뉴욕에서 살아온 사람의 일상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이 원고의 본질은 블로그이고, 내가 쓰던 블로그는 절반쯤의 일기로, 대체로 사적인 글이었다. 이들은 시간순으로 나열되었고, 오랜 기간 정해진 주제 없이 그날 느낀 것을 지속적으로 써온 글이라는 특징이 있었다. 이 글들이 의미를 가진다면 그것밖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p.9)

 

라고 했지만, 내게 있어 이 책은 결코 위 의미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 책 속의 구절처럼 달이 있다는 것을 나만 모르고 살다가 어느 날 달을 발견하고 흠칫 놀란 기분이었다. (p.15)’는 구절을 인용하면 표현이 될까?

 

미술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이 책에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예술 이야기가 어쩜 그리 재밌던지. 이 책을 통해, 내가 미술이라는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았다. 좀 더 넓게 보자면 예술이라는 세계에 말이다. 이 세계에 푹 빠져 있는 동안, 절반쯤의 일기이며 대체로 사적인 이 글이 도리어 사적이어서 마음에 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 그려진 뉴욕은 나만의 특별한 뉴욕이다. 그 안에서 내가 본 것, 내가 느낀 것, 내가 생각한 것은 모두 뉴욕이란 도시의 일부이고, 나만의 사적인 뉴욕이다. 사적이라 해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모든 일은 지독히 사적인 것에서 비롯하니까. (p.10)

 

이 구절은 이 책의 서문에 담겨있었고 그래서 나는 책의 시작부터 사적으로, 이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에드워드 호퍼와 에디 세즈윅, R.B. 키타이 등 예술가들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에 공감했고, 시는 명사고 산문은 동사라고 했던 거트루드 스타인의 말에는 무릎을 쳤다.

 

인간에게만 시가 있고 예술이 있듯, 인간에게만 사랑이 있고 역설이 있다. 사랑이 위대한 건 그렇게도 잘난 자아가 지워지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지울 수 있는 상태.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삭제할 수 있는 불가능에 이르는 위력. 사랑하는 건 인간만이 가능하다. (p.102)

 

라는 구절을 읽고는, 영화 <인터스텔라>가 떠올라서 한참을 여운에 잠겨있기도 했다.

 

이다지도 사적인 동사 앞에서, 나는 뉴욕의 이미지를 새로 그릴 수 있었다. 안정과 위생과 효율보다 도전과 거침과 우회가 인정되는 곳. 불가능하게 치솟은 빌딩들처럼 위대함이 꿈꾸어지고 시도되는 장소로서의 은유. 아니, 이 모든 것보다 이 한 문장으로 정리하고 싶다. 어차피 모든 일은 지독히 사적인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찐하게 알려준 작가님이 살아온 멋진 도시라고.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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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읽은 즐거우리 우리네 인생 2권을 대출하러 갔다가 충동 대출.

 

영화 '스틸 앨리스' 원작 소설인 <스틸 앨리스>와 <지극히 주관적인 여행>.

전자는 영화로 먼저 봤던 앨리스 이야기가 글로 풀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서 대출했고,

자는 주말 여행 계획을 세울때 큰 도움이 될듯😁.

 

그리고 <적당적당 언니의 멋내기 일기>만 읽으려다가 모리시타 에미코 3종 세트를 대출해버림.

뭘 집어들고 읽어도 귀엽고 재밌다. 요거 다 읽으면 <어쿠스틱 라이프> 차례 차례 빌려 봐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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