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에게>를 포함해서,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현실적이면서도 뻔한 관행에 수긍하지 않는 인물들이 많아요.

-저는 개인이 힘을 가지고 있는 순간들을 그리길 좋아하는데요. 그러자면 그 개인이 자기만의 윤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즉, 가치관 같은 거죠. 그래야 복잡한 세상 속에서 자기 힘으로 서 있을 수 있거든요. 휩쓸리지 않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러한 면을 소설적으로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이런 성향 때문에 몇몇 작품들에 그런 인간상들이 나타나는 것 같아요. 말씀하신 <복자에게>도 그렇고, 첫 장편이었던 <경애의 마음>에서도 그랬고.

(p.64 소설가 김금희)



“어떻게 성장했는지”가요?

-공연은 살아 있는 생물이에요. 아기 때와 끝날 때, 그러니까 성인이 되었을 때 즈음의 공연은 또 다른 작품이 되어 있을 수 있다는 뜻이에요. 제가 아무리 계획적인 성격이라 똑같이 하려고 해도, 관객들도 처음과 마지막 공연에 느끼는 바가 다르고, 배우들도 연기할 때 농도 자체가 달라져요. 호흡을 맞추면서 은연중에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부분들의 대사,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기도 하죠. 그런 게 공연의 묘미고.


(p.83 배우 고상호)



지금 생각하면 이상할 정도란 말이죠. 이런 재능과 열정을 가지신 분이 왜 여섯 번이나 시험을 봐야 했을까.

-제가 못했던 시절이 있었던 거고, 교수님들 마음이기도 하고. (웃음) 그런데 저는 당락은 정말 신경이 안 쓰여요. 이거는 인생에서 제가 가장 크게 마음속에 새기고 사는 거기도 한데, 당락은 내가 정하는 게 아니라는 거. 그러니까 의미가 없는 거예요. 저, 학교는 여섯 번밖에 안 떨어졌어요. 오디션도 떨어진 다음 날 항상 연습만 했어요. 떨어진 다음에 내가 뭘 하는지가 중요한 거죠. 떨어진 거는요, 그냥 그날 하루 있었던 일에 불과해요. 그 하루 동안 누군가의 걱정과 위로를 받는 입장이 되는 것뿐이고요. 빨리 붙으면 좋죠. 하지만 제가 여섯 번째에 붙었다고 해서 다섯 번이 의미가 없는 시간이 되나요? 아니거든요.

(p.94 배우 박영수)



예술도 그 고민 안에서 탄생하는 거라고 봐요.

-거창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맞는 것 같아요. 제가 이 일을 하는 것의 의미가 뭔지 찾아가는 과정, 인생 전체를 고민하는 과정이 모두 예술인 것 같죠. 하지만 단 하나의 단어로 예술을 얘기하라고 하면 저는 망설임 없이 ‘희망’이라고 할 거예요. 비극적인 작품에서도 우리는 희망을 찾을 수 있거든요. 그리고 희망을 찾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또 계속 질문을 던지겠죠. 그 질문의 끝에서 정말로 희망을 발견하길 원해요. 연기하고 있는 저 자신을 포함해서요.

(p.254 배우 이예은)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이해가 돼요. 왜 의외의 역할에 도전하기를 택하셨는지.

-평범한 사람의 삶이니까요. 아내가 저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자신은 끝까지 행복한 미래를 그리는 평범한 사람의 삶에 관한 얘기. 그래서 저는 그 작품에서 악마의 존재를 먼저 떠올리기보다 사랑이라는 이야기를 먼저 떠올렸어요. 작품 선택이나 인물 선택에 있어서 사랑이 없으면 그 드라마가 와닿지 않거든요. 정말 사랑이라는 감정이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도, 저는 그 안에서 어떻게 해서든 찾아내요. 실오라기 같은 감정이라도.

(p.281 배우 정동화)



자람 씨는 예술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음, 예술은 순간적인 창조. 크리에이트되는 순간에 모든 건 예술이에요. 예를 들면 엄마가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데, 평소와 다른 소스를 한번 시도해봤을 때 저는 그것도 작은 의미의 예술 같아요. 또 어떤 아이가 처음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자기가 마음으로 보고 있는 것을 그렸다? 저는 그게 예술이라고 보고요. 여기서 이제 팔리는 예술이냐 안 팔리는 예술이냐로 갈리면서 예술의 정의가 달라지기는 하지만. 즉, 돈을 매기느냐 마느냐가 타인이 이걸 예술이라고 하느냐 마느냐로 갈리는 것 같죠.

(p.289-290 음악가 겸 배우 이자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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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농작물을 자식에 빗대곤 하죠. 아닌 게 아니라 땅속 깊이 박힌 왕고구마를 캐낼 땐 정말 갓난애를 받아내는 기분이 듭니다. 자식 같은 내 고구마. 아무한테나 못 줍니다.

내 새끼 천덕꾸러기 만들지 않고 존중하며 찌고 삶고 굽고 튀겨줄 사람을 엄선했습니다. 골라놓고 보니 기분 묘했습니다. 내가 평소에 누구를 진정 아끼고 신뢰하는지가 고구마로 인해 명확히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이따금 그들로부터 이렇게 맛있는 고구마는 처음 먹어본다는 극찬을 받기도 했습니다. 군고구마처럼 따끈한 기쁨에 목이 메었습니다. 자식이 칭찬받으면 이런 기분인가요. 내 고구마의 가치를 알아주는 자에게는 목숨도 바칠 수 있겠다고까지 생각한 저 자신에게 흠칫 놀라고 말았네요.

들개이빨, 나의 먹이 p.126-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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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당신이 유리로 된 아주 높은 건물의 긴 외벽을 미끄러져 내려오는데 당신을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과 같다.

(p.9)

윌리엄의 생일 파티가 있던 날 밤, 나는 거기 가져가려고 모퉁이 가게에 들러 하얀 튤립 세 다발을 샀는데, 지금 그 일을 떠올리면 우리가 타인에게 선물하려고 고르는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라는 말이 참 맞는 것 같다.

(p.33)

나는 스스로에게, 어머니가 나를 사랑했다고 말해준다. 어머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나를 사랑했을 것이다. 언젠가 그 사랑스러운 여자 정신과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소망은 결코 죽지 않아요.”

(p.108)

사람들은 외롭다. 그게 내가 하려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아는 사람들에겐 할 수 없다.

(p.152)

한번은 한 친구가 내게 말했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마다, 나는 늘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게 뭔지를 바라봐.” 그리고 그해에 내가 하고 있던 일은, 아직 실제로 떠나지는 않았음에도, 떠나는 것이었다.

(p.196)

그것이 삶이 흘러가는 방식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너무 늦을 때까지 모른다는 것.

(p.257)

하지만 우리는 모두 신화이며, 신비롭다. 우리는 모두 미스터리다. 그게 내가 하려는 말이다.

(p.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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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가 말했다. “알고 있어요. 나도 봤어요. 자기가 받은 교육을 그런 식으로 다른 누군가를 내리누르는 수단으로 쓰는 사람이라면…… 음, 그런 사람은 그냥 형편없는 쓰레기예요.” 그녀가 고단한 얼굴로 눈을 찡긋한 뒤 돌아섰다.

(p.125)

세라 페인이 우리에게 평가 없이 빈 종이와 마주하라고 말했던 그날, 그녀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다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 그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절대 알지 못하며, 앞으로도 절대 알 수 없을 것임을.

(p.138)

세라 페인이 말했다. 자신의 글에 약점이 보이면 독자가 알아내기 전에 정면으로 맞서서 결연히 고쳐야 해요. 자신의 권위가 서는 게 그 지점이에요.

(p.157)

그날 몰라는 그 모든 이야기를 내게 했는데, 지금 그때 일을 기록하다보니 애리조나에서 있었던 그 작문 강의에서 세라 페인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자기가 하게 되는 이야기는 오직 하나일 거예요.” 그녀가 말했었다. “하나의 이야기를 여러 방식으로 쓰게 될 거예요. 이야기는 걱정할 게 없어요. 그건 오로지 하나니까요.”

(p.168-169)

나는 병원에서 엄마가 엘비스나 미시시피 메리에게 돈이 득이 되지 않았다고 했던 말을 떠올린다. 하지만 나는 결혼생활에서, 인생에서 돈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돈이 곧 힘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건, 다른 누군가가 무슨 말을 하건, 돈은 곧 힘이다.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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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바름 씨는 1년 동안 동남아시아 일주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다. 적은 나이도 아닌데 아직 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상태에서 떠나는 긴 여행이라 주변 사람들이 걱정하는 눈으로 지켜봤다. 다른 일에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무엇을 결정하고 행동할 때마다 자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볼지 걱정할 때가 많다. 김바름 씨는 단호한 성격이라 다른 사람 눈치 보는 걸 싫어한다. 그래도 마음이 흔들릴 때는 《자본》 1판 서문 마지막에 마르크스가 옮겨 적은 《신곡》의 한 구절을 떠올리며 중심을 잡는다. “너의 길을 걸어라, 누가 뭐라 하든지! Segui il tuo corso, e lascia dir le gent!”

(p.59-60)

지금껏 내가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갖고 있는 책 양과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책을 아주 많이 갖고 있더라도 마음 깊이 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서재라고 할 것도 없이 사는 사람인데 책을 향한 애정이 누구 못지않게 큰 사람을 많이 봐왔다. 책이 많다고 해서 모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우리는 때로 무엇을 소유하는 것과 그 대상을 좋아하는 것이 같다고 말한다. 전혀 다른 얘기다. 어려운 철학책을 파고들 필요도 없이 사람을 만나고 그이들이 어떻게 사는지 조곤조곤 들여다보면 금세 안다. 무엇을 마음 깊이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을 가지려 하기보다, 자기 곁에 쌓아두려 하기보다 자유롭게 놓아주는 일을 즐긴다.

(p.67-68)

우리는 때로 아무 이유 없이 책을 읽는다. 목적이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책을 대하기도 한다. 책은 말없이 사람들 앞에 놓여있다. 책을 어떻게 읽을지는 모두 사람들이 생각할 일이다.

(p.112)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으니 어릴 때 본 책 얘기를 꺼낸다. 50권짜리 ‘계몽사 소년소녀 위인 전집’은 아직도 내용을 잊지 않았다. 심지어 한 권 한 권 내용이 눈에 선하다고 한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책을 많이 보게 하는 문화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자기 신체 리듬에 책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들여놓으면 나중에 무슨 일을 하든지, 인문학 연구자가 아니라 몸을 쓰는 운동 선수가 되더라도 거기서 직관의 능력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집 가까운 곳에 도서관이 많은 게 참 중요합니다. 연구자들이 고민해야 할 게 자기 집에 얼마나 많은 책을 쌓아두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좋은 도서관을 지을 수 있게 하느냐라고 생각해요.”

(p.124-125)

책을 한 번 읽고 그냥 덮어두면 안 되는 이유가 이것이다. 책은 바뀌지 않지만 사람이 바뀌기 때문이다. 사람이 만드는 책이지만, 그 책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만들어간다는 말이 맞다.

(p.152)


정리한다고 7년 만에 다시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저렇게 접는 일이 드문데 정리할 책이라 생각하니 접는 데 거리낌이 없어졌다. 사두고 아직 읽지 않은 책들도 정리할 책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덜 귀하게 여기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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