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도 저를 버리지 않는 풀들이 있고모든 것이 불타 버린 숲에서도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 나무가 있다화산재에 덮이고 용암에 녹은 산기슭에도살아서 재를 털며 돌아오는 벌레와 짐승이 있다내가 나를 버리면 거기 아무도 없지만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으면어느 곳에서나 함께 있는 것들이 있다돌무더기에 덮여 메말라 버린 골짜기에다시 물이 고이고 물줄기를 만들어 흘러간다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는다면 - 도종환 <폐허 이후>
어쨌든 출발뭔가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실천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사실 계획하고 준비하는 시간은 그렇게 열심히 달렸으면서 막상 출발선에 섰을 때 망설여지게 됩니다. 준비가 부실하면 시작 선에 서기도 힘들었을 텐데 이미 출발해야 했을 시간에도 여전히 갈등합니다.이 시작은 자신의 삶의 방향이 달라지는 결정적인 순간일지도 모르니까요.그럴 땐 등을 힘껏 떠밀어주는 존재가 필요합니다.물론 적절한 때에 말이죠.인생을 살다보면 준비만 왕창 해두고 막상 시작을 못 해서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그럴 때 바로 그런 존재가 필요하지요. `넌 할 수 있으니 어서 시작해 보라구!`라는 말뿐인 부추김도 힘이 되지만, 가끔 저렇게 `액션`을 하게끔 등 떠밀어 주는 친구가 있다면 더 좋겠죠?p.287
이렇게 객관적으로 너무나 괜찮은 사람이지만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객관적으로는 하나도 괜찮지 않은데도 도저히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이런 부조리함은 그것대로 낭만적인 일이 아닐까 싶다.p.108
괜찮아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왜 그래, 가 아니라
파란 돌
십 년 전 꿈에 본
아직 그 냇물 아래 있을까
난 죽어 있었는데
죽어서 봄날의 냇가를 걷고 있었는데
아, 죽어서 좋았는데
환했는데 솜털처럼
가벼웠는데
투명한 물결 아래
희고 둥근
조약돌들 보았지
해맑아라,
하나, 둘, 셋
거기 있었네
파르스름해 더 고요하던
그 돌
나도 모르게 팔 뻗어 줍고 싶었지
그때 알았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때 처음 아팠네
난 눈을 떴고,
깊은 밤이었고,
꿈에 흘린 눈물이 아직 따뜻했네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그동안 주은 적 있을까
놓친 적도 있을까
영영 잃은 적도 있을까
새벽이면 선잠 속에 스며들던 것
그 푸른 그림자였을까
그 빛나는 내〔川〕로
돌아가 들여다보면
아직 거기
눈동자처럼 고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