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초능력자'에서 강동원은 초능력을 쓰면 쓸수록 머리가 하얘진다.

그리고 어쩐지, 7년째 함께 살고있는 내 고양이도 까맣던 털이 듬성듬성 하얘지고 있다.
녀석... 그동안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던 초능력을 이제 다 써가는 걸까...


­
­
-Soon, 탐묘인간 p.2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럼에도 잘 쉬는 것

평일이라고 해서 많은 시간을 글쓰기에 열중하거나
다른 거창한 작업을 하는 건 아니지만
웬만하면 작업을 하는 시간과
그렇지 않은 때의 구분을 명확히 하려고 한다.
하는 것 없다고 평일 늦은 밤이나 주말까지 붙들고 있으면
하는 것도 없는데 피곤함만 더해질 뿐이라는 걸
몇 번의 계절을 지나며 깨달았다.
지치지 않고 오래 걸어가기 위해서는
때 되면 길에서 잠시 벗어나
온전히 쉬는 게 필요하다는 것을.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던 걸
말끔히 비워내는 게 필요하다는 것을.
오늘 얼마나 많이 걸었든, 한 발짝밖에 나아가지 못했든
무언가를 생각하느라 제자리에 있었든 간에
마음을 쓴 게 맞다면 쉬어야 할 이유로는 충분하다.


­
- 오지혜, 지혜로운 생활 p.219


­
­
한 걸그룹을 보고, 예쁜 애 다음에 예쁜 애 다음에 예쁜 애가 있다고 표현한게 인상 깊어서

나도 꼭 한 번 표현해보고 싶었다.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좋은 글 다음에 좋은 글 다음에 좋은 글이 담긴 책이다.

지난날 두 번의 퇴사와 현재 직장생활을 돌아보게하는 공감백배의 글들.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진한 열망의 정원
앙리 루소, 「꿈」, 1910


­
“정말 못 그렸다.”
앙리 루소(1844~1910)의 그림 앞에서 이런 감상이 든다고 해도 잘못은 아니다. 마흔까지 말단 세관원으로 살다가 독학으로 붓을 잡은 루소는 ‘서툰’ 그림을 그렸다. 해부학과 투시법은 엉망이고, 오직 눈에 보이는 풍경과 모델, 자료 사진을 그대로 캔버스에 옮겨놓겠다는 열의만 두드러졌다. 머리부터 그린 다음 몸을 이어붙이는 방식으로 완성했던 인물 초상화가 특히 어색했는데, 분개한 모델 겸 의뢰인이 그의 그림을 사격 연습용 과녁으로 쓰다 버린 일마저 있었다.
본인에게 인상적인 부분을 집요하게 묘사하고 적당한 생략을 모르는 습성, 인물부터 나무 이파리까지 순진하게 똑바로 화가를 응시하는 고지식한 포즈 등 루소 그림의 몇몇 속성은 어린이들의 그림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교육을 통해 만들어지지 않은 ‘보는 법’은 그의 그림에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원시적 힘과 광채를 부여했다. 공교롭게도 그것은 모더니스트 화가들이 구하던 바였다. 짐작건대 동세대 아티스트들은 악보를 읽지 못해도 노래하는 새를 보는 심정으로 루소를 바라보았으리라. 전통을 부러 파괴했다기보다, 전통을 아예 인식하지 않은 경우에 해당하는 이 이상한 화가는 결과적으로 야수파, 입체파, 초현실주의에 영감을 선사하게 된다.
궁핍한 가정환경 탓에 일찍이 재능을 꽃피우지 못했다는 억울함을 품고 살았던 루소는 아카데미 화가들의 사실적인 묘사력을 몹시 동경했다(줄자로 모델을 재서 비율을 계산하고 물감을 피부에 대보고 색을 정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러나 세상이 ‘소박파’라는 브랜드를 붙여주고 명망 있는 화가들이 “당신의 투박함을 소중히 간직하라”고 조언하자, 루소는 자신의 천진하고 순박한 페르소나를 예술적 인정을 위해 순순히 받아들이고 이용했다. 뭐니 뭐니 해도 그는 손아귀에 들어온 모든 것을 이용해 남은 시간이 다하기 전에 자신의 예술과 삶의 의미를 증명해야 했던 가난하고 나이 든 화가였던 것이다.
우리는 한 인간의 장점이 그를 망치고 결핍이 그를 구원하는 예를 많이 알고 있다. 만년의 정글 연작은 루소에게 마침내, 고대했던 명성을 안겨주었다. 평생 프랑스를 떠날 기회도, 금전적 여유도 없었던 루소는 파리 식물원과 박물관, 박람회에서 스케치한 동식물과 책과 잡지의 삽화에 기대 정글 풍경을 그려나갔다. 세련된 원근 투시법 대신 수십 가지 명도와 채도의 녹색을 쌓아올려 마치 부조와 같은 공간감을 자아냈다.

실제 열대 식생과 어긋나는 루소의 밀림 풍경화는 화가가 꿈꾸는 동물과 식물을 하나씩 집어넣고 심어서 가꾼, 환상의 정원이다. 기술적 역량의 한계를 일축하고 가진 모든 파편을 그러모아 무엇인가 표현하려는 자의 긴급함, 아는 것들을 조합해 미지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자의 순진한 열망이 그 정원을 교교히 밝힌다. 루소의 마지막 작품 「꿈」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망을 이룬 자의 포만감이 서려 있다. -김혜리 『그림과 그림자』 p.13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백이를 완독한 내게는 더도말고 덜도말고 세 구절이 남았는데, 그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태도에 대해 말을 곱씹는 것이 나는 분명히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행복하다, 라고 되뇌면 조금 더 행복해지고 불행하다, 라고 되뇌면 그만큼 더 불행해지곤 했다. 괜찮다, 할 수 있다, 사랑한다, 같은 말에는 분명 큰 힘이 있다. 단순한 말 한마디라도, 그 말을 되뇌며 살면 그만큼 무언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p.15)



아침 일찍부터 너를 놓아두고 외출해야 하는 날. 늦은 와중에도 너에게서 눈을 못 떼다가 아슬아슬한 시간이 되어서야 집을 나선다. 그래서 사랑을 하고 그래서들 가족을 만드는가. 여백이에게서 매일 배운다. 가르침 없이 가르칠 줄 아는 여백이. (p.61)



하루는 작업실의 오빠가 문득 그런 말을 했다.
"사실 세상의 모든 것은 우연인데, 그 우연에 질문을 던지게 되면, 그게 필연이 되는 거래."
오래전에 함성호 시인의 시집에서 읽었다는 짧은 글귀인데, 인상 깊어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 말을 믿는다고 했다. 나 역시도 그렇다. 사실 모든 일은 우연이다. 솔직히 운명이라는 것은 믿지 않지만, 어느 정도의 정해진 인연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편이 훨씬 행복하기 때문이다. 연인을 만나는 것도, 가족으로 태어난 것도, 오래된 친구와 길에서 마주치는 것도 우연한 사건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필연적이게도 우리가 함께구나'라고 믿는 것이다. 새로운 연인과의 시작을 좀더 설레게 하고, 가족의 일부가 되는 고양이와의 만남에 좀더 애정을 담을 수 있는 핑곗거리. 그래서 우리는 재미없고 불분명한 삶의 조각조각을 꿰어 인연의 실을 엮고 있는지도 모른다. 매끄럽고 반짝이는 금줄이 아니더라도, 바닷가의 조개껍데기를 모아 실로 묶은 목걸이를 선물 받는다면, 한순간만큼은 그 목걸이가 보석인 것처럼 아주 아름답게 보일 거라고 상상한다.
나의 고양이 여백이도 사실은 그냥 졸리고 추운데 털이 있기에 내 모자 속으로 들어왔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신기하다고 호들갑을 떨며 나와 여백이의 인연을 예쁘게 묶었다. 그리고 이렇게 여백이와의 특별한 첫 만남을 자랑하곤 한다.
우연의 무게는 다 똑같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에 '바람'을 담아 이유를 덧붙인다면 그것이 필연이 되고, 소중해지며, 강하고 찬란한 '인연'이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p.83)

 

 

 

특히 마지막 글은 너무 좋아서, 한 번 필사하고 세 번 소리내어 읽었다.

이 책 '여백이'를 접한 것이 '우연'이었다면, 책을 읽어보자 대출해 온 것은 '질문'을 던진 셈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기록함으로써 '필연'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3년 전에 신간 도서 목록에서 보고 그냥 지나쳤던, 작가님의 에세이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를

독서 목록에 넣으며 다시 질문을 던진다.

악어 인형과 함께 큰, 가르침 없이 가르칠 줄 아는 고양이 여백이와 작가님을 떠올리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에 관한 한, 저는 쇼핑 중독자입니다. 책을 향한 기이한 허기와 갈증으로 허겁지겁 이제껏 1만 권이 넘는 책을 닥치는 대로 사들였지만 여전히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합니다. 다른 물건들을 살 때는 우유부단해서 답답하기 이를 데 없어도, 유독 책만큼은 덥석덥석 챙긴 뒤 과감하게 카드를 긁지요 (어제만 해도 하루에 열아홉 권의 책을 샀습니다). 물론 결제일인 매달 27일이 되면 긴 한숨을 쉬며 후회합니다. 하지만 그건 그날 하루뿐. 저는 도무지 교훈을 얻지 못합니다.

 

책에 관한 한, 저는 허영투성이입니다. 이미 구입한 책들을 미처 다 읽지 못했는데도 계속 사고 있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어나가는 속도보다 사들이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고 할까요(심지어 어떤 책은 결국 읽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삽니다). 서재를 둘러본 어떤 사람들은 놀라면서 묻습니다. “이 책들을 다 읽으신 거예요?” 그럴 때마다 저는 (이젠 제법 뻔뻔하게) 대답합니다. “그럴 리가 있겠어요. 반도 못 읽었죠.” 저는 도저히 만족할 줄 모릅니다.

 

책에 관한 한, 저는 고집불통입니다. 좀더 체계적이고 능률적인 독서법이 있을 텐데도, 나만의 책읽기 방식을 고수합니다. 산만한 독자인 저는 한꺼번에 10여 권의 책을 동시에 읽어나갑니다.(게다가 그 책들은 대부분 분야가 다릅니다). 완독에 대한 의지도 없어서 흥미를 잃으면 서슴없이 중간에 그만두지요. 책을 구입할 때도 남들의 추천 리스트나 베스트셀러 순위 같은 것에는 거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1만 권이 넘는 책을 사면서 오랜 시행착오를 겪는 동안, ‘물건을 고르는 나만의 감식안이 생겼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책을 서재에 꽂아둘 때도 나만의 방법을 고수합니다(그러다 내 서재에서 특정 책을 못 찾아 쩔쩔매면서 좌절하기도 합니다). 저는 도대체 요령부득입니다.

 

하지만 저는 변명합니다. 이게 제가 책을 사랑하는 방식입니다. 스피노자는 모든 한정은 부정이다라고 했지요. 사랑하기 위한 조건을 줄줄이 내걸고 나서야 사랑할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생활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책을 정말 사랑한다면 문자의 형태로 책에 박혀 있는 지식이나 서사뿐만이 아니라, 책에 관련된 모든 것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저는 믿습니다. 책에 담긴 이야기, 책에 서린 정신, 책에서 나는 냄새, 책을 어루만질 때의 감촉, 책을 파는 공간, 책을 읽는 시간 등이 모두 모이고 모여 책에 대한 사랑을 온전히 이루어낸다는 것이지요.

 

저는 목적지향적인 독서를 하지 않습니다. 바꿔 말하자면, 특정한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 어떤 책을 선택해서 파고들지는 않습니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제게 책읽기는 그저 습관입니다. 과거에 그래왔고 현재에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아마 미래에도 저는 관성적으로 책을 읽겠지요. 그렇게 사랑에 습관이 더해질 때, 마침내 책은 제게 말을 걸어옵니다. 책읽기는 제게 오락이고 영감이면서 시간을 배우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제게 좋은 책이란 너무나 흥미로워 한번 손에 들면 단숨에 끝까지 독파해버릴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글자들을 읽어 내려가는 일보다 문단과 문단, 문장과 문장, 단어와 단어 사이에서 여백을 발견하는 일이 어쩌면 더 중요한 일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독서라는 행위는 읽고 있는 순간들의 총합인 셈입니다. 독서는 바깥세상의 흐름에서 벗어나 책 속에 구현된 세계 속으로 뛰어들 때 시작되지만, 책 속의 세계에서 언뜻 일렁이는 어떤 그림자의 의미를 다시금 이 세상에 되비쳐 볼 때 비로소 완성되기도 합니다. 책읽기란 결국 철조망이 촘촘하게 쳐진 뻘밭 같은 세월 속을 헤쳐 나가는 우리의 서툰 포복술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 이동진, 밤은 책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


종종 꺼내 읽는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글은 사실 프롤로그다. 글이 어쩜 이리 아기자기한지,

내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것도 있지만 책에 대한 동진님의 욕심과 허영과 고집이 그대로 묻어나서 참 좋다. 

 

 

책에 관련된 모든 것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 그는, 오락이고 영감이면서 시간을 배우는 방법 앞에서 내일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럴 리가 있겠어요. 반도 못 읽었죠."


p.s. 새벽에, 이 글을 필사하다가 비가 내리는 소리에 잠이 들었다. 속상할 땐 필사가 제격이며, 필사하는 여름밤에는 밤비가 제격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