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을 위한 글쓰기의 모든 것
사이토 다카시 지음, 임해성 옮김 / 21세기북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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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다카시의 새로운 책을 읽었다. 책을 워낙 많이 내다보니 이 책도 읽은 것 같고 저 책도 읽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여전히 읽은 책 보다 읽지 못한 책이 많다. 이번엔 그냥 넘기지 않고 읽어봐야지 싶었던 건 주제가 글쓰기였기 때문이다. 그간 글쓰기를 주제로 한 책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직장인을 위한글쓰기 책이었기에 호기심이 생겼다.

 

이 책 직장인을 위한 글쓰기의 모든 것

직장인에게 더욱 글쓰기 능력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1

글쓰기 능력 향상을 위한 기본연습을 다루는 2

메일, 기획서, 품의서, 보고서, 지원서 등등 비즈니스 문서작성법의 모든 것이 담긴 3

구체적인 예시를 통한 협상문서, 문체확립, 시간관리 원포인트 레슨이 담긴 4

읽기, 쓰기, 말하기에 관해 종합적으로 이야기하는 5

마지막으로 저자 자신의 글쓰기 능력에 도움을 준 책을 소개하는 6

이렇게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책이다.

 

기술적인 면, 그러니까 실무에 당장 적용해볼 수 있는 글쓰기 법을 원해서 이 책을 선택한 사람이라면 3-4장을 중심으로 읽으면 좋다. 메일작성을 예로 들자면, 처음 메일을 보낼 때의 기술 느낌표와 장문의 활용법 위험예지와 거절의 기술로 이어지는 원포인트 레슨이 실려 있어서, 나는 어떻게 메일 작성을 했나 돌아보게 하고 이 부분을 참고해서 다음엔 이렇게 보내야지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 과정을 여러 번 거치면서 나는, 좋아하는 것을 해줄 때보다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을 때 신뢰를 받는다는 모 기업의 CF가 떠올랐다. 이 책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내 글쓰기에 무엇을 더하는 것뿐만 아니라 무엇을 빼서 좋은 글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적인 면이 피가 되었다면, 외적인 글들은 살이 되었다. 이를 테면 이런 글이다.

 

자신의 신변잡기를 통해 새로운 발견을 하거나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는 것, 그것을 인식하고 많은 이들과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커뮤니케이션의 원점이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결국 당신만이 알고 있는 어떤 것을 전해 주고자 하는 마음이야말로 바로 글을 쓰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다. 딱히 특별한 문장력이 없다 하더라도 발견이나 새로운 관점이 있다면 독자를 감동시킬 수가 있다. (p.63)

 

2장의 글 중 <문장에서 필요한 것은 발견새로운 관점이다> 속 구절이다. 내가 누군가의 신변잡기(일상)에 관한 글을 챙겨 읽는 것을 흥미로워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단순한 신변잡기가 아니라 그 사람만의 발견이나 새로운 관점이 녹아있는 글이기 때문이었다. 직장인을 위한 글쓰기 책답게 이 책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는데, 덧붙이자면 이렇다.

 

그런 힘이 발휘될 때는 때만이 아니다. 일상적인 회의에서도 발휘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내 회의에서 의견이나 아이디어가 있으면 발언해 주십시오.”라고 할 때에 아무런 의견이 없습니다.”라고 한다면 모두가 당신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저 사람에게는 뭘 물어봐도 의미가 없어.”라고 낙인이 찍힐 수도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인식 능력이나 관점을 바꾸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이러저러합니다.”라고 명확하게 밝힘으로써 회의석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을 수 있다.

그렇게 드러나는 발견이나 새로운 관점으로 이어지는 아이디어는 당신의 가치를 더욱 높여 줄 것이다. (p.65)

 

문서작성법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2장의 제목과도 부합하는 글이다. 문장 자체는 심플해도 좋으니, 문장 안에 발견혹은 새로운 관점을 담아낼 수 있다면 그건 좋은 문장이 된다. 나아가 인식 능력이나 관점을 바꾸는 능력 있는 사람으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는 사람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마지막인 6나의 글쓰기 능력에 도움을 준 책은 일본 작가가 쓴 일본 서적이 실려 있어서, 한국 독자보다 일본 독자가 읽었을 때 좀 더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 어떤 책을 통해 이야기하건 본질은 글쓰기인 만큼, 6장까지 빠짐없이 읽어 보길 권한다.

 

사고력을 끊임없이 단련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써 보자. 씀으로써 사고력이 향상되고, 사고력이 향상됨으로써 쓰기 능력이 나아진다. 이를 계속함으로써 문장력이 키워지고 동시에 영향력도 생기는 것이다.

읽기’,‘쓰기’,‘말하기듣기를 연동함으로써 인간은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것은 비즈니스에 있어서 절대적인 효과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그것은 비즈니스의 장을 넘어 우리의 인생을 충실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p.286)

 

 

내가 이 책을 선택했던 이유다. 직장인으로서, 직장인을 위한 글쓰기 책을 선택하긴 했지만 궁극적으로 내 인생을 충실하게 만들 글쓰기를 배우기 위해서였다. 주문처럼 되뇌고, 그렇게 살기 위해서 블로그와 인스타의 대문에 걸어둔 한 문장을 다시금 곱씹는다.

 

꾸준히 읽고, 끝까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 2017.04.12. 글쓰는 해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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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반납하러 가기 싫다고 나가기 전까지 찡찡거렸는데, 7권을 빌려 왔던 금요일 밤.

가장 눈에 드는 책은 역시 우리 『촘스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인가.ㅎㅎ

영화 '캡틴 판타스틱'에서 캡틴 가족이 이야기했던 노엄 촘스키가 생각나서 덥석 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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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언어학과 인지과학의 창시자이자 열렬한 사회 비평가로서 지난 50년간의 과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인간과 사회에 관한 자신의 핵심 철학을 정리하고 논쟁점을 광범위하게 비평한 ‘촘스키 인간론’의 정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처음 변형생성문법 이론을 정립했던 1950년대 이후 거둔 인지 과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언어 연구가 어떻게 과학적으로 발전했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언어의 사회적 측면과 의사소통, 지시와 관련된 측면을 강조하는 여러 가지 다른 이론을 설명하고 비평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론 언어학, 인지과학, 과학철학, 과학사, 진화생물학, 형이상학, 지식 이론, 언어철학, 도덕 · 정치철학, 이상적인 교육 시스템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우리 인간이 어떠한 존재이며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사회, 정치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사고를 어떻게 형성하는지 설명하면서 언어 과학자로 자신의 저작물에 대한 함축적 의미를 전한다.
한 언어 과학자가 과학적 연구의 폭넓은 함의에 대해 평생에 걸쳐 고민한 내용이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는 정치적 논평과 달리 일반 독자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촘스키 자신이 직접 정리한 인간에 대한 네 가지 질문과 그 답을 따라 가다 보면 그가 인간을 어떤 존재로 바라보고 있으며, 어째서 무정부주의자가 되었는지 그의 거대한 사유의 자취와 정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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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엄 촘스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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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부터 어려워 보이지만... 그래도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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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에 괜찮은 남자가 많다고?"
그 말만 믿고 800km를 걸은 여자의 이야기


『남자 찾아 산티아고』는 제목도 제목인데, 영화 '나의 산티아고' 생각에 빌려왔다.

영화를 통해 봤던 산티아고 풍경이 아직 마음에 남아 있을 때 읽고 싶었다.

어젠 종일 여행, 오늘은 종일 독서. 씻어둔 방울토마토 곁에 두고 책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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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씨가 국민학교 때였는데 담임 선생님이 일기장에 적어 주신 한 줄짜리 메모를 물끄러미 보던 어머니가 문득 말했다.
"나도 선생님 되고 싶었는데."
엄마는 그냥 엄마만 되는 줄 알았던 김지영 씨는 왠지 말도 안되는 소리 같아 웃어 버렸다.
"진짜야. 국민학교 때는 오 남매 중에서 엄마가 제일 공부 잘했다. 큰외삼촌보다 더 잘했어."
"근데 왜 선생님 안 했어?"
"돈 벌어서 오빠들 학교 보내야 했으니까. 다 그랬어. 그때 여자들은 다 그러고 살았어."
"그럼 선생님 지금 하면 되잖아."
"지금은, 돈 벌어서 너희들 학교 보내야 하니까. 다 그래. 요즘 애 엄마들은 다 이러고 살아."
어머니는 자신의 인생을, 김지영 씨의 어머니가 된 일을, 후회하고 있었다. 길게 늘어진 치맛자락 끝을 꾹 밟고 선 작지만 묵직하고 굳건한 돌덩이. 김지영 씨는 그런 돌덩이가 된 기분이었고 왠지 슬펐다. 어머니는 김지영 씨의 마음을 알아채고는 너저분하게 흐트러진 딸의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다정하게 넘겨 주었다.
­


-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중에서

 


 

어떤 구절은 진하게 효과를 넣은 것처럼 조금 달리 읽힌다.

이 구절이 그랬다. 책을 읽기 전에 한 피드를 통해 인상 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내 눈 앞에 활자로 마주하게 되니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일기장을 앞에 둔 지영 씨와 어머니 미숙 씨가 눈 앞에 어른거렸다. 지영 씨의 머리칼을 다정하게 넘겨주는 미숙 씨.

그 손길에 담긴 온기가 전해져서, 나는 다음 장을 쉬이 넘기지 못하고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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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읽어내는 과학 - 1.4킬로그램 뇌에 새겨진 당신의 이야기
김대식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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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서평 도서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읽을 때, 건명원 강의가 궁금해져서 찾아본 적이 있다. 창의 인재 프로젝트 생각의 집카테고리에 들어가서 최진석 교수님의 강의를 차례대로 듣고, 이어서 김대식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는데 너무 재밌었던 나머지 앉은 자리에서 6강을 몰아 들었더랬다. 이어지는 7회는 최진석-김대식 교수님이 나란히 앉아서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는 모습이 담겨있었는데, 철학과 뇌과학을 넘나드는 시간이라니! 하고 무릎을 쳤던 기억이 난다. (내가 강의만큼이나 인상 깊게 봤던 이 질의응답 시간은 이 책의 5뇌과학자가 철학의 물음에 답하다, 뇌과학으로 본 생각의 프레임을 바꾸는 방법과 뇌과학으로 본 우리타인과 소통하는 방법 두 가지로 나뉘어 실렸다.)

 

뇌과학자가 철학의 물음에 답하다라는 5강의 제목과 이 책의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이 책은 뇌과학에 대한 이론서가 아니다. 물론 뇌와 인간(1), 뇌와 정신(2), 뇌와 의미(3), 뇌와 영생(4)이라는 목차를 보면 이론서 같은 느낌이 있지만, 뇌과학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인간 존재에 관한 독보적인 해석이 담긴 책이다.

 

뇌와 정신는 합리적인 존재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2강을 예로 들어보자면 이렇다.

 

러시아 생리학자 파블로프의 유명한 개 실험을 기억해보지요. (중략) 이 실험에서 개는 종을 치면 아무 반응이 없다가도 음식만 보면 침을 흘립니다. 몸이 만들어내는 본능적인 반응이지요. 그런데 음식과 종을 같이 자주 연결시키면 어떻게 될까요? 개는 처음에는 음식을 보고 침을 흘리지만 나중에는 종만 쳐도 침을 흘립니다. 반복된 경험을 통해 음식사이에 상호 관계 또는 인과 관계가 형성된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까요? 아직 완벽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신경세포들을 연결하는 시냅스들이 반복된 경험을 통해 강화된다는 것이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이론입니다. ‘음식이라는 정보를 코딩하는 스파이크들이 반복적으로 특정 신경세포에 동시에 도착하면 시냅스에 있는 NMDA라는 분자를 통해 이온 통로(이온이 세포 안팎을 출입하는 통로)의 정보 전달 확률이 달라집니다. 다시 말해 특정 경험이 우리 뇌의 하드웨어 자체를 바꾸어놓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는 오늘날 광고에서 흔히 활용되는 수법입니다. 멋진 자동차를 소개할 때 늘씬한 여성이 서 있는 광고가 적지 않습니다. 이런 광고에 계속 노출되다 보면 자동차만 봐도 사고 싶어집니다. 자동차만 봐도 늘씬한 여성이 연상되어 갖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많은 광고는 팔고 싶은 것과 본능적으로 선호하는 것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정치인이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장면을 노출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정치인이 어린아이를 안고 있을 때, 우리는 정치인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지만 어린아이는 귀엽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장면을 반복해서 접하게 되면 정치인을 봐도 어린아이가 떠오르게 됩니다. 당연히 그 정치인에게도 호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p.126)

 

먼저 유명한 실험에 대해 이야기하고, 유력한 이론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를 돕는 예를 들어 설명해주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명원에서 진행한 다섯 차레의 과학 강의를 묶은 책이라 그런지 몰라도 눈에 쏙쏙 들어오는 이 구성이 참 좋았다.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다에 대해 설명할 때도, 철학과 경제학의 관점에서 먼저 이야기한 뒤에 뇌과학에서는 이렇게 본다고 설명을 이어간다. 처음부터 뇌과학의 관점이 나왔으면 이게 뭔 이야기인가 싶었을 텐데, 상대적으로 익숙한 철학과 경제학의 관점을 짚고 넘어간 뒤에 뇌과학의 관점을 읽으니 좀 더 이해하기 쉬웠다.

 

이 책의 또 다른 매력 중 하나는 바로 찰떡같은 예시에 있다.

 

나라는 존재는 지금 내가 알고 있는 나일까? 아니면 내가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나일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는 존재에 불과할까? 라는 물음의 예시에 시인 마야콥스키가 등장한다.

 

그의 시들 중에 라는 단어로만 이루어진 시가 있습니다. 모든 시, 모든 생각과 예술은 궁극적으로는 나에서 시작되고 나로 끝납니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바로 나입니다.

예를 들어 해가 아름답다는 것은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철수와 영희가 사랑을 나눈다고 할 때, 철수가 사랑하는 것은 영희 자체가 아니라 철수 자신이 생각하는 영희입니다. 마찬가지로 영희가 사랑하는 것은 철수 자체가 아니라 영희 자신이 생각하는 철수입니다. 존재 자체보다는 존재에 대한 생각과 느낌이 중요하다는 말이지요. (p.72)

 

이전의 장에서 신경세포 이론도 나오고, 뇌 그래프도 나오고 해서 아 정말 뇌과학 책이구나 싶었는데 다음 장에서는 언제 그랬냐는듯 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이게 바로 뇌과학의 매력이구나 싶었는데, 돌아보니 서문에서 뇌과학에 대한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났다.

 

뇌의 구조와 기능을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뇌과학입니다. 뇌과학은 생물학적 자연과학이면서 동시에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인문학적 성격도 지니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아인슈타인의 천재적인 행동도, 히틀러의 악마 같은 행동도 모두 뇌에서 나옵니다. 인간의 창의성과 도덕 그리고 윤리, 결국 모두 뇌라는 생물학적 원인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p.27)

 

미추와 선악이 동시에 존재하는 모순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 인공지능의 시대를 맞아 인간은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지, 과연 인류에게 불멸의 삶은 가능할 것인지 등등에 대한 문제를 생물학적 자연과학인 동시에 인문학적 성격을 지닌 뇌과학으로 풀어보는 유쾌한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덧붙이며 이 글을 마친다.

 

 

더글라스 애덤스라는 소설가가 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엄청나게 진화한 외계인 종이 살고 있는 혹성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우주의 모든 문제를 해결했지만 단 하나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이론을 만들고 궁리를 해도 답을 찾지 못한 것이지요. 그래서 온갖 기술을 동원하여 혹성에서 가장 큰 컴퓨터를 만들었습니다. 이른바 알파고를 만든 것입니다. 이것은 딥 쏘트라는 이름의 컴퓨터로, IBM이 이를 본떠 딥 블루라는 컴퓨터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딥 쏘트에게 우주에 대해 생각하도록 시켰습니다. 어찌나 똑똑한지 이 컴퓨터는 부팅이 되자마자 곧바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답을 냈습니다. 이어 우주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지 물으니, 찾아낼 수는 있으나 시간이 걸린다고 답했습니다. 얼마를 기다리면 되는지 다시 묻자, 100만 년 정도 기다리면 된다고 답했습니다.

100만 년 뒤 후손의 후손의 후손이 와서 답을 찾았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딥 쏘트는 답은 찾았는데 마음에 안 들 거라고 답했습니다. 외계인의 후손은 그 답을 구하려 너무도 오래 기다렸다, 마음에 안 들어도 되니 이제 삶의 의미를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마침내 딥 쏘트가 입을 열었습니다.

삶의 의미는 바로 42.”

현재 구글에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하고 물으면 “42”라고 나옵니다. 애플의 음성 인식 프로그램 시리Siri42라고 말한다더군요.

42가 무슨 뜻이냐는 물음에 딥 쏘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답은 42가 맞지만 질문 자체가 맞지 않다. 삶의 의미를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질문을 찾으면 이 답이 이해될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질문을 찾아달라고 하자, 자신은 너무 어려워 찾을 수 없으니 컴퓨터를 하나 만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무슨 컴퓨터냐는 물음에 딥 쏘트는 답했습니다.

이 컴퓨터는 이 혹성만큼이나 크고 이름은 지구다.”

딥 쏘트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지구라는 혹성이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컴퓨터라는 것입니다. (p.268)

 

우리는 이 컴퓨터 안에서, 5000년 전부터 전해오는 바빌로니아의 길가메시 서사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불사신에게서 영생의 약초를 얻었다가, 이내 잃어버리고 낙담한 길가메시.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고,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냐고 묻는 길가메시에게 불사신 우트나피쉬팀은 이렇게 말한다.

 

운다고 해서, 슬퍼한다고 해서 죽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고, 맛있는 것 먹고,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살아라.”

 

우트나피쉬팀의 이 말을 딥 쏘트에게 들려주면, 딥 쏘트는 뭐라고 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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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는 국화를 참아냈고 그렇게 선배가 참는다고 느껴질 때마다 나는 마음이 서늘했다. 그 모든 것을 참아내는 것이란 안 그러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절박함에서야 가능한데 그렇다면 그 감정은 사랑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p.22)

 

 

나는 사랑에서 대상에 대한 정확한 독해란, 정보의 축적 따위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완수였다. (p.26)

 

 

그만 갈까 싶을 때쯤 국화의 휴대전화가 울렸고 나는 농담 삼아 “이제 문자 삐삐 안써?”하고 물었다. 국화는 그때 그 일을 다 잊어버렸는지 갸웃하다가 아아―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참 좋았는데 우리 부모가 문맹이라서 부모 말이 그렇게 한글로 찍히는 게 신기하고. 지금은 없어졌지. 아무도 그런 거 안 쓰지. 그러고 보면 세상이 딱히 더 좋아지는 건 아니야.”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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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금희 단편소설 <체스의 모든 것>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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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편소설의 단점 중 하나는 읽을만하면 끝난다는 것이고,

장점 중 하나는 읽을만하니 끝난 소설을 몇번이고 다시 읽기에 부담이 없다는 것이다.

완독한 그 자리에서 다시 읽고, 그 중 한 구절을 골라 한 자 한 자 눌러쓰며 한 번 더 읽었다.


2. 믿고 읽는 작가가 한 명 더 늘었다.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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