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읽어내는 과학 - 1.4킬로그램 뇌에 새겨진 당신의 이야기
김대식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 서평 도서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읽을 때, 건명원 강의가 궁금해져서 찾아본 적이 있다. 창의 인재 프로젝트 생각의 집카테고리에 들어가서 최진석 교수님의 강의를 차례대로 듣고, 이어서 김대식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는데 너무 재밌었던 나머지 앉은 자리에서 6강을 몰아 들었더랬다. 이어지는 7회는 최진석-김대식 교수님이 나란히 앉아서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는 모습이 담겨있었는데, 철학과 뇌과학을 넘나드는 시간이라니! 하고 무릎을 쳤던 기억이 난다. (내가 강의만큼이나 인상 깊게 봤던 이 질의응답 시간은 이 책의 5뇌과학자가 철학의 물음에 답하다, 뇌과학으로 본 생각의 프레임을 바꾸는 방법과 뇌과학으로 본 우리타인과 소통하는 방법 두 가지로 나뉘어 실렸다.)

 

뇌과학자가 철학의 물음에 답하다라는 5강의 제목과 이 책의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이 책은 뇌과학에 대한 이론서가 아니다. 물론 뇌와 인간(1), 뇌와 정신(2), 뇌와 의미(3), 뇌와 영생(4)이라는 목차를 보면 이론서 같은 느낌이 있지만, 뇌과학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인간 존재에 관한 독보적인 해석이 담긴 책이다.

 

뇌와 정신는 합리적인 존재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2강을 예로 들어보자면 이렇다.

 

러시아 생리학자 파블로프의 유명한 개 실험을 기억해보지요. (중략) 이 실험에서 개는 종을 치면 아무 반응이 없다가도 음식만 보면 침을 흘립니다. 몸이 만들어내는 본능적인 반응이지요. 그런데 음식과 종을 같이 자주 연결시키면 어떻게 될까요? 개는 처음에는 음식을 보고 침을 흘리지만 나중에는 종만 쳐도 침을 흘립니다. 반복된 경험을 통해 음식사이에 상호 관계 또는 인과 관계가 형성된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까요? 아직 완벽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신경세포들을 연결하는 시냅스들이 반복된 경험을 통해 강화된다는 것이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이론입니다. ‘음식이라는 정보를 코딩하는 스파이크들이 반복적으로 특정 신경세포에 동시에 도착하면 시냅스에 있는 NMDA라는 분자를 통해 이온 통로(이온이 세포 안팎을 출입하는 통로)의 정보 전달 확률이 달라집니다. 다시 말해 특정 경험이 우리 뇌의 하드웨어 자체를 바꾸어놓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는 오늘날 광고에서 흔히 활용되는 수법입니다. 멋진 자동차를 소개할 때 늘씬한 여성이 서 있는 광고가 적지 않습니다. 이런 광고에 계속 노출되다 보면 자동차만 봐도 사고 싶어집니다. 자동차만 봐도 늘씬한 여성이 연상되어 갖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많은 광고는 팔고 싶은 것과 본능적으로 선호하는 것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정치인이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장면을 노출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정치인이 어린아이를 안고 있을 때, 우리는 정치인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지만 어린아이는 귀엽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장면을 반복해서 접하게 되면 정치인을 봐도 어린아이가 떠오르게 됩니다. 당연히 그 정치인에게도 호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p.126)

 

먼저 유명한 실험에 대해 이야기하고, 유력한 이론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를 돕는 예를 들어 설명해주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명원에서 진행한 다섯 차레의 과학 강의를 묶은 책이라 그런지 몰라도 눈에 쏙쏙 들어오는 이 구성이 참 좋았다.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다에 대해 설명할 때도, 철학과 경제학의 관점에서 먼저 이야기한 뒤에 뇌과학에서는 이렇게 본다고 설명을 이어간다. 처음부터 뇌과학의 관점이 나왔으면 이게 뭔 이야기인가 싶었을 텐데, 상대적으로 익숙한 철학과 경제학의 관점을 짚고 넘어간 뒤에 뇌과학의 관점을 읽으니 좀 더 이해하기 쉬웠다.

 

이 책의 또 다른 매력 중 하나는 바로 찰떡같은 예시에 있다.

 

나라는 존재는 지금 내가 알고 있는 나일까? 아니면 내가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나일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는 존재에 불과할까? 라는 물음의 예시에 시인 마야콥스키가 등장한다.

 

그의 시들 중에 라는 단어로만 이루어진 시가 있습니다. 모든 시, 모든 생각과 예술은 궁극적으로는 나에서 시작되고 나로 끝납니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바로 나입니다.

예를 들어 해가 아름답다는 것은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철수와 영희가 사랑을 나눈다고 할 때, 철수가 사랑하는 것은 영희 자체가 아니라 철수 자신이 생각하는 영희입니다. 마찬가지로 영희가 사랑하는 것은 철수 자체가 아니라 영희 자신이 생각하는 철수입니다. 존재 자체보다는 존재에 대한 생각과 느낌이 중요하다는 말이지요. (p.72)

 

이전의 장에서 신경세포 이론도 나오고, 뇌 그래프도 나오고 해서 아 정말 뇌과학 책이구나 싶었는데 다음 장에서는 언제 그랬냐는듯 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이게 바로 뇌과학의 매력이구나 싶었는데, 돌아보니 서문에서 뇌과학에 대한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났다.

 

뇌의 구조와 기능을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뇌과학입니다. 뇌과학은 생물학적 자연과학이면서 동시에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인문학적 성격도 지니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아인슈타인의 천재적인 행동도, 히틀러의 악마 같은 행동도 모두 뇌에서 나옵니다. 인간의 창의성과 도덕 그리고 윤리, 결국 모두 뇌라는 생물학적 원인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p.27)

 

미추와 선악이 동시에 존재하는 모순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 인공지능의 시대를 맞아 인간은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지, 과연 인류에게 불멸의 삶은 가능할 것인지 등등에 대한 문제를 생물학적 자연과학인 동시에 인문학적 성격을 지닌 뇌과학으로 풀어보는 유쾌한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덧붙이며 이 글을 마친다.

 

 

더글라스 애덤스라는 소설가가 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엄청나게 진화한 외계인 종이 살고 있는 혹성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우주의 모든 문제를 해결했지만 단 하나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이론을 만들고 궁리를 해도 답을 찾지 못한 것이지요. 그래서 온갖 기술을 동원하여 혹성에서 가장 큰 컴퓨터를 만들었습니다. 이른바 알파고를 만든 것입니다. 이것은 딥 쏘트라는 이름의 컴퓨터로, IBM이 이를 본떠 딥 블루라는 컴퓨터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딥 쏘트에게 우주에 대해 생각하도록 시켰습니다. 어찌나 똑똑한지 이 컴퓨터는 부팅이 되자마자 곧바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답을 냈습니다. 이어 우주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지 물으니, 찾아낼 수는 있으나 시간이 걸린다고 답했습니다. 얼마를 기다리면 되는지 다시 묻자, 100만 년 정도 기다리면 된다고 답했습니다.

100만 년 뒤 후손의 후손의 후손이 와서 답을 찾았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딥 쏘트는 답은 찾았는데 마음에 안 들 거라고 답했습니다. 외계인의 후손은 그 답을 구하려 너무도 오래 기다렸다, 마음에 안 들어도 되니 이제 삶의 의미를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마침내 딥 쏘트가 입을 열었습니다.

삶의 의미는 바로 42.”

현재 구글에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하고 물으면 “42”라고 나옵니다. 애플의 음성 인식 프로그램 시리Siri42라고 말한다더군요.

42가 무슨 뜻이냐는 물음에 딥 쏘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답은 42가 맞지만 질문 자체가 맞지 않다. 삶의 의미를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질문을 찾으면 이 답이 이해될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질문을 찾아달라고 하자, 자신은 너무 어려워 찾을 수 없으니 컴퓨터를 하나 만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무슨 컴퓨터냐는 물음에 딥 쏘트는 답했습니다.

이 컴퓨터는 이 혹성만큼이나 크고 이름은 지구다.”

딥 쏘트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지구라는 혹성이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컴퓨터라는 것입니다. (p.268)

 

우리는 이 컴퓨터 안에서, 5000년 전부터 전해오는 바빌로니아의 길가메시 서사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불사신에게서 영생의 약초를 얻었다가, 이내 잃어버리고 낙담한 길가메시.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고,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냐고 묻는 길가메시에게 불사신 우트나피쉬팀은 이렇게 말한다.

 

운다고 해서, 슬퍼한다고 해서 죽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고, 맛있는 것 먹고,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살아라.”

 

우트나피쉬팀의 이 말을 딥 쏘트에게 들려주면, 딥 쏘트는 뭐라고 답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선배는 국화를 참아냈고 그렇게 선배가 참는다고 느껴질 때마다 나는 마음이 서늘했다. 그 모든 것을 참아내는 것이란 안 그러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절박함에서야 가능한데 그렇다면 그 감정은 사랑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p.22)

 

 

나는 사랑에서 대상에 대한 정확한 독해란, 정보의 축적 따위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완수였다. (p.26)

 

 

그만 갈까 싶을 때쯤 국화의 휴대전화가 울렸고 나는 농담 삼아 “이제 문자 삐삐 안써?”하고 물었다. 국화는 그때 그 일을 다 잊어버렸는지 갸웃하다가 아아―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참 좋았는데 우리 부모가 문맹이라서 부모 말이 그렇게 한글로 찍히는 게 신기하고. 지금은 없어졌지. 아무도 그런 거 안 쓰지. 그러고 보면 세상이 딱히 더 좋아지는 건 아니야.” (p.29)


­
­
- 김금희 단편소설 <체스의 모든 것> 중에서


 


 

 

­
­
­
­
1. 단편소설의 단점 중 하나는 읽을만하면 끝난다는 것이고,

장점 중 하나는 읽을만하니 끝난 소설을 몇번이고 다시 읽기에 부담이 없다는 것이다.

완독한 그 자리에서 다시 읽고, 그 중 한 구절을 골라 한 자 한 자 눌러쓰며 한 번 더 읽었다.


2. 믿고 읽는 작가가 한 명 더 늘었다. (행복)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화 '초능력자'에서 강동원은 초능력을 쓰면 쓸수록 머리가 하얘진다.

그리고 어쩐지, 7년째 함께 살고있는 내 고양이도 까맣던 털이 듬성듬성 하얘지고 있다.
녀석... 그동안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던 초능력을 이제 다 써가는 걸까...


­
­
-Soon, 탐묘인간 p.2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럼에도 잘 쉬는 것

평일이라고 해서 많은 시간을 글쓰기에 열중하거나
다른 거창한 작업을 하는 건 아니지만
웬만하면 작업을 하는 시간과
그렇지 않은 때의 구분을 명확히 하려고 한다.
하는 것 없다고 평일 늦은 밤이나 주말까지 붙들고 있으면
하는 것도 없는데 피곤함만 더해질 뿐이라는 걸
몇 번의 계절을 지나며 깨달았다.
지치지 않고 오래 걸어가기 위해서는
때 되면 길에서 잠시 벗어나
온전히 쉬는 게 필요하다는 것을.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던 걸
말끔히 비워내는 게 필요하다는 것을.
오늘 얼마나 많이 걸었든, 한 발짝밖에 나아가지 못했든
무언가를 생각하느라 제자리에 있었든 간에
마음을 쓴 게 맞다면 쉬어야 할 이유로는 충분하다.


­
- 오지혜, 지혜로운 생활 p.219


­
­
한 걸그룹을 보고, 예쁜 애 다음에 예쁜 애 다음에 예쁜 애가 있다고 표현한게 인상 깊어서

나도 꼭 한 번 표현해보고 싶었다.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좋은 글 다음에 좋은 글 다음에 좋은 글이 담긴 책이다.

지난날 두 번의 퇴사와 현재 직장생활을 돌아보게하는 공감백배의 글들.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진한 열망의 정원
앙리 루소, 「꿈」, 1910


­
“정말 못 그렸다.”
앙리 루소(1844~1910)의 그림 앞에서 이런 감상이 든다고 해도 잘못은 아니다. 마흔까지 말단 세관원으로 살다가 독학으로 붓을 잡은 루소는 ‘서툰’ 그림을 그렸다. 해부학과 투시법은 엉망이고, 오직 눈에 보이는 풍경과 모델, 자료 사진을 그대로 캔버스에 옮겨놓겠다는 열의만 두드러졌다. 머리부터 그린 다음 몸을 이어붙이는 방식으로 완성했던 인물 초상화가 특히 어색했는데, 분개한 모델 겸 의뢰인이 그의 그림을 사격 연습용 과녁으로 쓰다 버린 일마저 있었다.
본인에게 인상적인 부분을 집요하게 묘사하고 적당한 생략을 모르는 습성, 인물부터 나무 이파리까지 순진하게 똑바로 화가를 응시하는 고지식한 포즈 등 루소 그림의 몇몇 속성은 어린이들의 그림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교육을 통해 만들어지지 않은 ‘보는 법’은 그의 그림에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원시적 힘과 광채를 부여했다. 공교롭게도 그것은 모더니스트 화가들이 구하던 바였다. 짐작건대 동세대 아티스트들은 악보를 읽지 못해도 노래하는 새를 보는 심정으로 루소를 바라보았으리라. 전통을 부러 파괴했다기보다, 전통을 아예 인식하지 않은 경우에 해당하는 이 이상한 화가는 결과적으로 야수파, 입체파, 초현실주의에 영감을 선사하게 된다.
궁핍한 가정환경 탓에 일찍이 재능을 꽃피우지 못했다는 억울함을 품고 살았던 루소는 아카데미 화가들의 사실적인 묘사력을 몹시 동경했다(줄자로 모델을 재서 비율을 계산하고 물감을 피부에 대보고 색을 정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러나 세상이 ‘소박파’라는 브랜드를 붙여주고 명망 있는 화가들이 “당신의 투박함을 소중히 간직하라”고 조언하자, 루소는 자신의 천진하고 순박한 페르소나를 예술적 인정을 위해 순순히 받아들이고 이용했다. 뭐니 뭐니 해도 그는 손아귀에 들어온 모든 것을 이용해 남은 시간이 다하기 전에 자신의 예술과 삶의 의미를 증명해야 했던 가난하고 나이 든 화가였던 것이다.
우리는 한 인간의 장점이 그를 망치고 결핍이 그를 구원하는 예를 많이 알고 있다. 만년의 정글 연작은 루소에게 마침내, 고대했던 명성을 안겨주었다. 평생 프랑스를 떠날 기회도, 금전적 여유도 없었던 루소는 파리 식물원과 박물관, 박람회에서 스케치한 동식물과 책과 잡지의 삽화에 기대 정글 풍경을 그려나갔다. 세련된 원근 투시법 대신 수십 가지 명도와 채도의 녹색을 쌓아올려 마치 부조와 같은 공간감을 자아냈다.

실제 열대 식생과 어긋나는 루소의 밀림 풍경화는 화가가 꿈꾸는 동물과 식물을 하나씩 집어넣고 심어서 가꾼, 환상의 정원이다. 기술적 역량의 한계를 일축하고 가진 모든 파편을 그러모아 무엇인가 표현하려는 자의 긴급함, 아는 것들을 조합해 미지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자의 순진한 열망이 그 정원을 교교히 밝힌다. 루소의 마지막 작품 「꿈」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망을 이룬 자의 포만감이 서려 있다. -김혜리 『그림과 그림자』 p.13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