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퍼가 그린 그림

사다리꼴 지붕에 사각 벽에 사각 창에 있다

머리카락이 없고 눈이 없고 입이 없다 윤곽선만 남아

창턱에 두 팔을 걸치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일곱 살 그림마다 사다리꼴 지붕 아래 사각 벽에 사각 창을 그려넣곤 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그때부터

세 번 만나고 헤어지자는 말에 스무 살 짝사랑이 말했다

사랑은 제 눈에 들앉은 들보라고

네가 바라봐줘야 너를 들어올릴 수 있다고

결혼식 전날 기혼의 막내 오빠가 말했다

사랑이란 나의 너를 위해 세상에 쌓는 담이라고

허물어지지 않으려면 스스로가 벽이 되어야 한다고

현관의 나 홀로 신은 홀로임을 반성중이다

어제 입술로 오늘 마시는 말술이 마술이다

왼손에 사각턱을 괴고 사각 창에 갇힌 내가 말했다

일흔 살에 잘한 일이 일곱 살 사다리꼴 지붕 아래 반성중인 신을 사들이고 마술을 살아낸 거였으면 좋겠다고

신이 있다면 내가 그린 그림에 있다고

마술이 있다면 그 그림에 찍어놓은 내 입술 자국에 있다고

사랑에 갇힌 호퍼가 말했다 사각의 유리창 안에서

- 정끝별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 <호퍼가 그린 그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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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몸무게란 뭘까? 사진이 찍혔을 때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을 정도의 모습이거나 여자 옷 가게에서 '프리 사이즈'를 훌렁훌렁 입을 수 있는 상태의 몸무게일 것이다. 좋아하는 몸무게가 되어 프리 사이즈를 입어도 스스로가 예쁘다고 느끼기엔 한참 모자라지만, 일단 몸이 옷 안에 들어간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옷 가게에 걸린 대부푼의 옷은 프리 사이즈다. 너도 나도 우리도 모두 입으라고 만든 조그마한 프리 사이즈. 운 좋게 프리 사이즈가 아닌 경우, S 사이즈와 M 사이즈의 하의를 선택할 수 있다. 이때, M 사이즈가 맞지 않으면 옷을 살 수 없다. You lose... 쇼핑에 실패했습니다. 길거리의 여자 옷 가게에서 L 사이즈라는 것은 사실상 없다. 나는 S 사이즈가 헐렁했던 적도 M 사이즈가 꼭 꼈던 적도 있다. 실연, 스트레스, 섭식장애, 욕구불만 등 많은 이유로 내 몸은 살이 쪘다 빠졌다를 반복한다.

이 빌어먹을 프리 사이즈 월드에 포함된 기분은 정말 역겹고 자랑스럽다. '프리'라고 말하는 이 작은 사이즈에 내 몸도 들어간다고! 나도 누군가에게 욕망받을 수 있는 몸을 가진 사람이 됐다고! 나는 그 썩은 카르텔에 들어가기 위해서 운동을 하고 종일 두부만 먹고 올리브영에서 다이어트 약을 사고, 그러다 욕구불만에 넋이 나가 폭식을 하며 프리 사이즈를 입기 위해 달려간다. 이젠 그걸 그만두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싶어.

(p.33-34)

나는 일주일에 거의 5일은 스타벅스에 출근하고 매일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가끔은 소이 라테를 마시니까 일주일에 2~3만원, 크게 잡으면 한 달에 15만 원 정도를 스타벅스에 쓴다(카드 혜택으로 조금 환급도 받는다). 그 금액이면 우리의 아지트(나의 작업실) 에 놓을 이케아 책상 두 개 정도를 겨우 살 수 있을까? 내 집 마련은커녕 전세 자금 대출도 어려워하는 내가 무슨 작업실이야. 게다가 작업실이 생기더라도 나는 스벅에서 커피를 사올 것 같다. 그런 정당한 이유를 대며 오늘도 스벅에 출근한다. 창문가의 바 좌석에 나와 같은 이들이 노트북을 켜놓고 나란히 앉아 있다. 적당하고도 굉장한 스타벅스. 이곳에서 대도시에 사는 이상한 낭만을 느낀다. 아무것도 내 것이 아닌데 내 삶의 질은 포기할 수 없다.

(p.99~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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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페르메이르Jan Vermeer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는 그윽하게 관람객을 바라봅니다. 잠깐이라도 소녀와 눈빛을 맞추고 나면 이 그림이 왜 ‘북유럽의 모나리자’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알게 됩니다.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이탈리아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제 취향입니다.) 페르메이르가 그린 소녀의 눈길은 모나리자의 미소만큼 눈길을 끕니다.

이 작품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데는 화가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는 사실도 한몫합니다. 마흔 초반까지 살았던 페르메이르에 대해 알려진 것이라고는 이름과 고향 정도뿐입니다. 일부러 안 썼는지 아니면 사라져 버린 건지 몰라도 별다른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작품도 50여 점에 불과합니다. 반면 빈센트 반 고흐는 서른일곱 살까지 사는 동안 줄곧 기록을 남겼습니다. 동생 테오와 친구들한테 보낸 편지만 해도 무려 820통이 넘습니다. 그래서인지 페르메이르는 알려고 할수록 자꾸 그림 뒤로 조용히 숨어 버립니다. 반면 고흐는 쉼 없이 수다를 떨지만 아무도 들어 주지 않는 것 같아 쓸쓸해집니다. (p.292)

특별해서 기록하는 게 아니라 기록하면 특별해집니다. 날씨처럼 사소한 일을 하루이틀 적고 그치면 낙서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적으면 어떻게 될까요? 실제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승정원일기>에는 날씨가 상세히 적혀 있는데 인조 1년부터 순종 4년까지 무려 288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해 놓았습니다. 덕분에 훌륭한 천체관측 자료로도 쓰인다고 합니다. 날씨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그저 꾸준히 끝까지 적으면 됩니다.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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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이 좋다. 이 말은 다의적이다. 나는 단어와 문장들이 쏟아내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동시에 책 그 자체에 대한 소유욕도 크다. 언젠가는 서재를 만들려는 욕망도 있다. 나아가 책은 자연스럽게 내 안의 창작 본능도 깨웠다. 책을 읽으면 직접 내 생각과 이야기를 쓰고 싶은 마음이 튀어 나오곤 했다. 영상이 더 지배적인 시대라지만 하얀 종이 위에 펼쳐진 먹색의 글자에 더 끌린다. 나는 이러저러한 의미로 책이 좋다. - P135

사회가 연대하듯 책들도 연대한다. 나는 여러 저자들의 독자가 되었고 나를 중심으로 저자들이 모이면, 그것이 나만을 위한 연대가 되었다. 그들은 나의 앞에 발자국을 내어 길을 만들어주는 사람들이다. 내 안에 있을 수는 있으나 바깥으로 끄집어내기엔 추동하는 힘이 약한 것들이 있다. 살아가는 데 있어 지혜나 용기라든지, 생전에 다 겪을 수 없는 경험들이 그러하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 그것들을 끌어내는, 어떤 감정의 형태나 지혜의 말들을 문장으로 만날 수 있다. 독서를 하면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 P141

우울은 항상 내재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떤 이유 때문에 우울해지는 게 아니라 우울이 찾아와서 어떤 이유들이 생겨나는 거다. 이런 감정 상태는 내 의견과는 상관없이 막무가내로 진행된다. 거기에 상응하는 이유들도 참 가지가지다.

서른이라는 나이에 대한 부담이 우울하다. 건조한 원룸에 혼자 있다는 사실이 우울하다. 월세에 시달리는 이 팍팍한 현실이 우울하다. 억지로 끄집어낼 수밖에 없는 부족한 지성이 우울하다. 타인과 신체 이미지를 비교하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우울하다. 친구나 가족, 지인과의 관계에 대한 회의감이나 두려움이 우울하다. 간혹 턱에 난 여드름이, 군것질에 대한 식탐이, 월경통이, 혼자 걷는 산책길이 우울하다. 하나하나 죄다 열거하자면 3박 4일은 거뜬히 샐 수 있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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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나는 굳이 수고를 들이는 일들을 좋아한다. 칼로 연필을 깎고, 매일 시계의 태엽을 감고, 일력을 뜯고, 전기포트를 놔두고 가스레인지에 물을 끓인다. 이런 비효율성을 감내하는 건 그만큼 마음에 여유가 있다는 걸 뜻한다(바쁠 땐 일력도 밀리고 시간도 멈춘다). 그래서 나는 내 일상 속에 항상 쓸데없는 일들이 조금씩 자리하고 있기를 바란다. 빠르게 움직이는 일상 속에 수고로운 것들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있다는 건 잘 살고있다는 반증이기도 하기에.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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