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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윤대녕 지음 / 현대문학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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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들과 정말 취향이 다르구나, 하고 새삼 느낄 때가 있다. 바로, 내가 자주 찾던 공간이 사라졌을 때다. 자주 찾던 밥집이 없어졌을 때 특히 그렇다. 내 딴에는 오랜만에 가는 구나생각하면서 밥집을 다시 찾으면, 폐업을 한 적이 많았다. 한 번, 두 번 그럴 땐 그러려니 했다. ‘, 가게 목이 안 좋았나? 손님이 없긴 없었지.’ 그러던 게, 대여섯 번이 되고 열 손가락을 손에 꼽을 정도로 문을 닫자 점점 두려워졌다. 오늘 가는 밥집도 문을 닫았으면 어쩌지, 하면서 말이다. 신기한 건, 그렇게 문을 닫은 가게들 앞에서 내가 찾던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 보다는 다른 생각이 먼저 든다는 거였다. ‘이 가게, 분위기 참 좋았는데.’라던가 누구랑 온 게 마지막이었더라?’라던가 하는 생각. 공간은 사라졌지만, 그 공간에서의 기억은 이렇게 남는 구나 싶었다.

 

이 책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을 읽으며 나 역시 이런 저런 공간들을 여럿 떠올렸다. 생애 첫 방문이었으나 내가 좋아라하는 구단의 경기가 아니었던지라 낯설었던 목동 야구장, 멋있는 풍경 덕분에 먹고 있던 비빔밥이 더 맛있었던 고속도로의 한 휴게소, 과학 수업보다는 도서 바자회가 열려서 더 좋아했던 초등학교 과학실, 처음으로 해 본 즉흥 여행이었고 그래서 더 인상 깊었던 강원도 묵호, 인연이 아니었다면 힘들었을 동네 투어로 기억되는 동인천, 한 여름 친구와 머리를 맞대고 시나리오를 구상하던, 지금은 없어진 삼청동의 카페 등등. 내게는 어떤 공간이 있나 떠올리기 시작한 글에 점점 살을 붙여서 이 책만큼은 못하더라도 좀 더 글다운 글로 남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세이를 본격적으로 찾아 읽기 시작하면서 특정 장소와 그 장소에 대한 기억에 관한 책이 참 많구나 싶었는데, 막상 내가 글을 써보니 왜 많은지 알 것 같다. 작가가 씨실과 날실처럼 엮인 공간과 시간을 통해 지나온 생을 되돌아 보았듯 나 역시 잠깐이지만 내 생을 되돌아본 기분이었다. 작가가 작가만의 공간이 있듯, 나는 나만의 공간을 손에 꼽아 가면서.

 

이 책에 수록된 에세이들은 월간 현대문학2년 동안 연재했던 글을 모은 것이라고 하는데, 한 공간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는 이 글의 성격이 연재라는 기획과 잘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몰아서 읽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커피포트에 물을 올려놓고 끓기를 기다리면서 작가가 영원의 순간과 마주하던 바다를 읽고, 외출 길에 버스를 기다리면서 유령들이 득실거리는 납골당 같다는 작가의 도서관을 읽는 것이다. 나만의 각기 다른 공간에서, 작가만의 각기 다른 공간을 읽는 것. 그래서인지 나는, 부엌이었으나 바다에 있는 것 같았고 버스 정류장이었으나 도서관에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에 나오는 여러 공간들 그리고 기억 속에서 나는 작가가 밀라노 중앙역에서 만난 한 사람의 지나가는 독자와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 그럼 이제 가봐야겠어요. 곧 기차가 출발할 시간이거든요. 헤어지기 전에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만난 기념으로다가 악수 한 번 하면 안 될까요?”

안 될 게 뭐 있습니까?”

근데, 1분만 손을 잡고 있고 싶은데, 너무 긴가요?”……그럼, 59초로 하죠.”

그건 왜죠?”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소설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그것은 1분이 되기 전의 영원한 59.’”

 

한 사람의 소설가와 한 사람의 독자가 밀라노 중앙역에서 만난 인연도 소설 같았지만, 대화는 짧았으나 강렬했던 둘의 작별이 너무도 소설 같아서 책을 읽는 내가 다 설렜다. 누군가의 공간과 그 기억이 내게도 이렇게 인상 깊을 수 있다는 것에 설레며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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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10 -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두 번째 이야기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2
정여울 지음 / 홍익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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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책은 두 가지로 나뉜다. 내가 사랑한 책들이 있는가 하면, 나만 알고 싶은 책들도 있다. 전자는 사랑한책이었다며 기분 좋게 공개하는데 반해, 후자는 대부분 나만 알고 싶다는 생각이 다른 책들보다 강해서 그런지 선뜻 공개하지 못한다. 아니, 안 하는 것이려나? 나만 알고 싶을 정도로 괜찮게 읽은 그 책을 공개한다고 해서 그 책이 닳는 것도 아니고, 내가 괜찮게 읽었다고 다른 사람도 그 책을 괜찮게 읽으리라는 보장도 없는데 말이다. 그렇지만 일생에 한 번쯤 나만 알고 싶은 책을 만난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나만 알고 싶을 만큼 그 책에 대한 소중한그 감정을.

 

유럽도 누군가에게는 두 가지로 나뉜다. 문학평론가 정여울의 두 가지 유럽은 대한항공과 33만 여행자가 선정한 유럽과 만나 두 권의 책으로 나왔는데,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 10이 바로 그 책이다. 두 권 모두 챙겨 읽은 나의 솔직한 감상평은 확실히 유럽 여행에 실질적인 도움은 되지 못하는 책이다. 실린 사진들에 대한 불만은 없었지만 각 도시에 대한 글이 대부분 짧은 점에서 이 책의 구성은 다소 아쉽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본래 그렇게 기획된 책이고 무엇보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이 책을 쓴 저자가 문학평론가 정여울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책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에 이어 이 책 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 10에서도 책 곳곳에 문학 이야기가 녹아있다. 그녀가 읽고 메모해뒀을 책 구절들을 만나는 것도 좋았지만 뒤마 피스의 <춘희>에 나타난 파리의 이미지라던가 런던의 뒷골목에서 버지니아 울프를 떠올리는 글을 읽고 있으면, 파리와 런던에 있는 그녀의 곁에서 문학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특히 이 책의 여덟 번째 챕터 작가처럼 영화 주인공처럼에서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하면 괴테, 덴마크의 오덴세 하면 안데르센, 스위스의 몬타뇰라 하면 헤르만 헤세 등 유럽 곳곳으로 기억되는 그녀만의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는 점은 이 여행에세이만의 매력을 더해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이 구절이다.

 

며칠 전 이 책에 대한 독자의 기대평을 읽다가 울컥한 적이 있다. “여행을 글로만 배우는 저에게 힐링을 줄 것 같은 책이에요.” (중략) 여행을 글로만 배우는 당신의 외로움을 향해, 내 글이 유럽의 밤열차에 선뜻 올라탈 수 있는 마음의 기차표가 되어주기를. (p.16)

 

이 구절이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나 역시 여행을 글로만 배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여권은커녕 인천공항 한 번 가보지 못한 내게 여행에세이는 글로만 배울지라도늘 가슴 벅찬 책이다. 여기에 문학을 좋아하는 취향까지 만족하게 만드는 책이니 적어도 나에게는, 반짝반짝 빛나는 여행에세이다.

 

이 책의 표지에 꿈만 꾸어도 좋다, 당장 떠나도 좋다는 글이 담겨있다. 꿈만 꾸는 것보다는 당장 떠나는 쪽이 더 좋은 게 인지상정이겠지만, 꿈만 꾸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이 무엇을 수확했는가에 따라 하루하루를 판가름하지 말라.

당신이 어떤 씨앗을 심었는가에 따라 하루하루를 평가하라.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그녀가 10년 전에 뿌린 여행의 씨앗이 10년 후에야 한 권의 책으로 나온 것처럼, 오늘의 내가 읽은 이 책의 씨앗이 10년 후에 유럽의 밤열차에 선뜻 올라탈 수 있는 기차표가 되어 나올지 그 누구도 모를 일이니까.

 

 

* 인상 깊은 구절

 

선배는 오랜만에 만난 나에게 대뜸 이런 말을 했다. 나를 향한 말이 아니라 인생을 향한 항변 같았다. "인생은 항상 자로 뚫려 있어. 자꾸 억지로 자로 메우려 하면 꼭 에러가 나."디귿과 미음이라니. 얼마나 간단명료하고 매혹적인가. 선배의 속 깊은 은유와 상징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궁금증을 못 이기고 선배를 다그쳤다. "좀 더 쉽게 설명해주시면 안 되겠어요?" 선배는 눈치 없는 나를 위해 쉽게 풀어 설명을 해주었다. "...를 들면, 아이가 있는 사람은 아이가 없는 사람의 자유를 부러워하고, 아이가 없는 사람은 아이가 있는 사람의 충만함을 부러워하잖아. 모든 걸 완전한 자로 채우려 하면, 삶이 너무 피곤해지거든. 뭔가 살짝 모자란 자가 좋은 거야. 자는 이루지 못할 이상이지." 욕심 많은 나는 갑자기 내 인생이 부끄러워졌다. 언제나 자로 꽉 채우려 하다가 은커녕 도 제대로 만들지 못한 내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p.10)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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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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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아니었으나 문단의 별이었고 영국의 전설적인 문학 에이전트이자 줄리언 반스의 아내였던 팻 캐바나. 20081020, 거리에서 쓰러진 후 병원으로 옮겨진 그녀는 뇌종양 판정을 받았고, 그 후 37일 만에 사망했다. 반스는 모든 인터뷰를 거절하며 침묵했다. 다만, 작가로서의 본분에 충실하여 맨부커상을 수상한 장편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와 에세이와 단편소설을 함께 묶은 <그림자를 통해>를 펴냈다. 그리고 5년 만에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 책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는 그가 자신의 아내에 관해 쓴 유일무이한 회고록이자 개인적인 내면을 열어 보인 에세이다. 또한 동시에 이 작품은 가슴 아픈 러브스토리를 담은 소설이자 19세기 기구 개척자들의 모험담을 담은 짧은 역사서이기도 하다.

 

라는게, 이 에세이의 대략적인 소개인데 나는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오기 전에 이 책에 대한 느낌을 한 단어 사별(死別)로 요약했다. 그러고 나니 떠오르는 작품이 있었다. 일본 만화 중에 좋아라 해서 전권을 소장 중인 <후르츠 바스켓>. 4년 전에 처음 접한 내용인데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16권에서 주인공의 어머니 쿄코의 과거가 펼쳐지는데, 나는 이 쿄코라는 인물을 통해서 간접적이었지만 사별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쿄코의 남편이자 주인공 토오루의 아버지인 혼다 카츠야는 감기가 악화되어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두고 먼저 세상을 뜬다. 카츠야의 장례식을 치르고, 유품을 정리한 쿄코는 생각한다. ‘어째서 날이 밝는 거지? 어째서 저 사람들은 즐겁게 웃는 거지? 어째서 TV는 내일 일기예보를 하는 거지? 어째서? 카츠야가 죽은 날 세계도 함께 멸망한 거 아니었어?’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낸 쿄코의 생각이 계속 떠올라서 그랬는지, 나는 줄리언 반스가 1인칭으로 자신의 가장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3깊이의 상실을 가장 몰입해서 읽었다. 19세기 기구 개척자들의 모험담을 담은 짧은 역사서를 지나, 비로소 자신과 아내 이야기를 시작하는 반스.

 

흥미로웠던 부분은 오르페우스에 대한 반스의 생각 변화였다. 그가 본 오페라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는 내가 알고 있던 내용과는 다르게, 오르페우스가 방심해서 뒤돌아 본 것이 아니라 에우리디케가 오르페우스를 설득해 뒤를 돌아 자신을 보게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내용 속에서 반스는 오르페우스를 비판한다. 제정신 가진 남자라면 그 누구도, 어떤 결과가 올지 알면서도 뒤돌아 에우리디케를 보지 않았을 거라며. 반스는 이때까지 만해도 오르페우스를 과소평가 했던 것이다. 이 오페라에 대해 사별의 고뇌에 시달리는 사람을 목표로 삼는 참으로 순진하기 짝이 없는 오페라라고 생각하며. 그러면서 덧붙인다. 물론 오르페우스는 간청하는 에우리디케의 얼굴을 돌아볼 것이라고. 어찌 돌아보지 않을 수 있겠냐고. 왜냐하면 제정신 가진 어떤 인간도그럴 리가 없겠지만, 정작 오르페우스 자신은 사랑과 비탄과 희망 때문에 정신이 나간 상태라며 오르페우스를 이해한다.

 

한번 흘긋 보기만 해도 세상을 잃는다고? 물론이다. 세상이란 그렇게, 바로 그와 같은 환경하에 잃어버리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등 뒤에서 에우리디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어느 누가 서약을 지킬 수 있단 말인가. (p.153)

 

반스 역시 등 뒤에서 에우리디케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서약을 어기고 뒤를 돌아봤을 테지만, 그럴 수 없음을 잘 알기에 반스는 거래에 혹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김없이 날은 밝고 누군가는 즐겁게 웃으며 TV는 내일 일기예보를 하니까. 우리는 상상의 지하세계로 내려갈 수 없는 현대인이니까 말이다. 반스는 이렇게 말한다. “이건 그저 우주가 제 할 일을 하는 것뿐이야.”라고. 헛된 희망과 무의미한 방향전환으로 길을 잃는 일이 없도록 그렇게 말했다는 반스는, 오르페우스를 이해하지만 오르페우스가 될 수 없는 강한 남편이었던 반스. 그런 그의 글 중에서 나는 이 문장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고통은 당신이 아직 잊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고통은 기억에 풍미를 더해준다. 고통은 사랑의 증거이다. (p.187)

 

반스 역시 쿄쿄처럼쿄쿄가 비록 만화 속 인물이라 할지라도배우자가 부재하는 세상에 의미를 찾지 못하고 일절 관심을 끄다시피 했던 적이 있었고, 3년이 넘도록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대본에 따라 아내의 꿈을 꾼 반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 것처럼 아직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며, 그래서 고통은 사랑의 증거라는 것을 지난 5년간 그 어떤 이 못지않게 경험한 반스였으니까 말이다.

 

사랑의 증거인 고통을 묻어두고, 쿄코는 쿄코대로 반스는 반스대로 내일을 맞았다. 반스의 말마따나 우리 쪽에서 먼저 구름을 불러들인 것이 아니며, 우리에겐 구름을 흩어지게 할 힘도 없으니까. 그 모든 건 어디선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예기치 못한 산들바람이 갑자기 불면서 일어난 일일 뿐이고, 그렇게 우리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p.195)

 

슬픔은 영원하겠지만, 그를 혹은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 역시 영원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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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라디오 - 오래 걸을 때 나누고 싶은 이야기
정혜윤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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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동안 시사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라디오 PD로 일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온 정혜윤이,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오기 전에 나는 이런 글을 썼다. '중요하지 않아서 잘려 나갔으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으므로 만들어진 그녀의 릴테이프. 릴테이프에 담겼을 이야기들이 이상하게도, 더 잊히지 않고 오랫동안 가슴 속에 남아 영원히 살아 남을 때가 있다.'고 말이다. 표지도 노랗고, 속지도 노란 이 책을 받아들고 읽어 나가면서 나는 내 말이 실현됨을 느꼈다.

 

나는 자유인입니다가 아니라 나는 자유다라고 말하는 통영의 한 어부 이야기, 중요한 건 수준을 높이는 게 아니라 낮추는 거라던 빠삐용의 아버지 이야기, 어두운 밤거리를 걸을 때 나를 걷게 하는 것은 천사의 날갯짓 소리가 아니라 바로 옆 사람의 발소리였다는 말로 끝난 주먹맨 이야기, 내가 가야 한다는 것은 분명했지만 두 갈래 길이 나타났을 때 내가 택한 길이 맞기를 진심으로 바랐는가에 대해서는 말하기 어려웠다는 선배 이야기, 사랑의 변신은 없었지만 요리의 세계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삶의 변신은 있었다는 선배 이야기, 사라진 라디오와 노트를 발견하기를 여전히 기다리며 수수께끼를 안고 사는 남자 이야기, 죽음을 앞두고 듣고 또 듣고 수십 번 들은 브람스 교향곡 4번을 통해 삶이란 내가 언뜻이상한 아름다움이라 생각한 선배 이야기, 장승에 글귀를 새길 때 내 삶에 대못을 박았다며 니만 그렇게 살아라가 아니고 나도 그렇게 살 끼라고 만천하에 공개했다는 소원을 70퍼센트 이룬 노인 이야기, 처음 듣는 말을 마지막 듣는 말처럼 잘 듣는 할머니 이야기, 한상균 전 지부장의 눈으로 다시 읽은 마지막 잎새 이야기, 살다 보니 알게 된 건 인생에 쓸데없는 것은 없더라는 낚시꾼 이야기, 내가 내 몸을 놀려서 일한 만큼 딱 그만큼 벌었으니 달이 기가 막히게 이뻐 보인다는 간월도 아낙 이야기, 심리가 아니라 윤리를 말하고 젊은데도 지혜로운 제일 부러운 사람현주씨 이야기, 낮에는 앞치마를 두르고 피로에 지친 모습으로 흥정하고 잔돈을 계산하고 손님을 기다리지만 밤에는 자기 자신의 위대한 치유사로 변신하는 야채장수의 이중생활 이야기까지.

 

14편의 이야기를 읽어 나가면서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가 내 안에 이렇게 차곡 차곡 쌓이고, 이 책의 부제처럼 오래 걸을 때 나누고 싶은 이야기로 다가오는구나 싶어서 신기하기도 했다. 사연이 흐르는 라디오 프로보다는 노래가 계속해서 흐르는 라디오 프로를 선호하던 내가, 이렇게 진정한사람 이야기를 집중해서 읽은 게 얼마만인가 싶기도 했고.

 

책 속에서 또 다른 책 이야기를 자주 하던 그녀답게, 이 사람 이야기를 하다 말고 자연스럽게 저 사람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이 부분 또한 마음에 들었다. 이런 책이 있으면 또 이런 책도 있듯이 이런 사람이 있으면 또 그런 사람이 있는 법이니까.

 

그러고 보니 책에 그은 밑줄이 죄다 이 사람 말이고, 저 사람 말이다. 때때로 이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낸 그녀의 말이기도 하고.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던 교보문고 설립자, 대산 신용호 선생의 말이 떠오른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드는 건, 책 앞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한 사람 그 자체가 살아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 밑줄 친 구절들

 

- 인간은 어떤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사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야. '인간은 대답을 추구하는 질문'이란 말이 있어.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 살게 하고 움직이게 하고 이것이 삶의 형태를 만들어.

 

- 사람들은 천국과 지옥 이야기를 하지. 이담에 천국 가서 만나자고 하지. 하지만 나는 천국과 지옥은 이미 우리 삶 속에 다 있다고 생각해. 짝사랑 한번 해봐. 바로 지옥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여기랑 다른 천국과 지옥이 따로 있다고는 생각 안 해. 만약 천국과 지옥이 있어도 아마 지금이랑 같겠지. 아주 닮았겠지. 여기서 하던 일을 하고 살지도 모르지. 여기서 그리워 하던 사람을 그대로 그리워 할지도 모르지.

 

- '슬픈데도 행복하니까 강한 인간이다.' 나는 다시 한 번 노점상 할머니들이 자기 삶을 사랑하는 방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 왜냐하면 '우린 고생스러워도 버티니까, 살아내니까 강한 인간이다'라고 말하지 않았거든. '슬픈데도 행복하니까, 행복할 줄 아니까 강한 인간이다'라고 말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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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걸었고 세상은 말했다 - 길 위에서 배운 말
변종모 지음 / 시공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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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나는 걸었고 세상은 말했다』는 섬세한 시선과 나지막한 글소리로 삶을 이야기하는 작가 변종모의 다섯 번째 에세이다. 이전의 에세이는 읽어보지 못해서, 어떤 에세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에세이는 작가가 1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며 맞닥뜨렸던 순간의 편린들을 모아 엮은 ‘인생 사전’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작년에 읽었던 정철의 『인생의 목적어』가 자주 생각났는데, 그건 아마도 낱말이 나오고 그 낱말에 대한 작가만의 생각이 이어지는 구성 때문일 것이다.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져서 총 2,820명이 인생의 목적어로 지목한 3,063개의 단어 중에 50개의 단어를 골라 그 단어에 말한 『인생의 목적어』와는 달리, 『나는 걸었고 세상은 말했다』는 작가 변종모가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그 길 위에서 생각한 단어들과 그 단어에 대한 내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겹치는 단어는 겹치는 대로, 비교해가며 읽었고 다른 단어는 다른 대로 새롭게 읽었다. 여러 단어들과 함께 책에 실린 사진들을 보며, 이런 풍경이 보이는 길 위에서 작가는 이런 생각을 했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쓰인 글과 책 곳곳에 담긴 여행지를 연결시키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많았다.

 

비 ; 혼자 있을 때 더 자주 내리는 것.

 

비가 온다. 비는 형태보다 소리가 우선이다. 보이지 않는 검은 밤이지만 눈을 감고서도 느낄 수 있음이 좋다. 너의 모습보다 이상하게 너의 목소리가 먼저였던 날처럼. 너의 모습이 달라져도 달라지지 않을 너의 울림을 기대하는 것처럼.

비오는 날 사람들은 잘 움직이지 않는다. 이미 먼 곳의 누군가를 각자의 마음에서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p.136)

 

위와 같은, 단어와 그 단어에 대한 작가만의 풀이는 참 좋았지만 바로 뒤에 이어지는 긴 글은 개인적으로 집중이 안 되는 글도 많았다. 글을 읽다보면, 알 것 같으면서도 아무리 읽어도 모르겠는 작가만의 ‘너’가 자주 등장했기 때문인데, 책을 집중해서 읽어보려고 나만의 ‘너’를 떠올리고 읽어봐도 쉽게 읽히지 않았다. 전에는 이런 식의 글을 찾아 읽고, 좋아했던 것 같은데. 물론, 책의 문제라기보다는 책을 읽는 내가 변한 것이겠지만.

 

그 어떤 여행지에서 쓰인 글보다, 길 위에서 쓰인 글을 제쳐두고 여행지를 가장 잘 연결시켜 읽을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서울’이었다.

 

주어진 환경에서 가장 잘 사는 법, 현재에서 가장 행복하게 사는 법, 삶이란 누구의 시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사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자주 잊고 살았다. (p.317)

 

어쩌면 이 말은, 작가가 걸었고 세상이 말했다는 그 ‘말’이 아니었을까. ‘앉은 곳이 꽃자리’라는 말처럼 지금의 내가 어디에 있든, 지금 이 자리가 나의 동산이고 꽃밭이어야 할 일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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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4 12: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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