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할 용기 - 인간관계를 둘러싼 88가지 고민에 대한 아들러의 가르침
기시미 이치로 지음, 홍성민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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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이 책의 표지에 실린 책을 전부 읽었다.

 

미움 받을 용기로 아들러 심리학에 입문했다면 행복해질 용기로 복습하는 시간을 가졌고, 이 책 나를 사랑할 용기에 이르렀다.

 

아들러 심리학에 관한 책들이 다 비슷비슷해 보이고, 비슷비슷한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뜯어보면 느낌은 제각각 다르다. 공통점이 있다면, 아들러 심리학에 관한 일본의 제1인자인 기시미 이치로가 저자라는 것.

 

미움 받을 용기는 그런 기시미 이치로의 명해석을 작가 고기 후미타케와 힘을 합쳐 쓴 책으로, 청년과 철학자의 대화 형식을 취해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을 보다 쉽게 풀어낸 책이다.

행복해질 용기는 원인 분석에 얽매인 통속적인 행복을 넘어 바로 지금부터 행복해지기 위한 지침을 제시하는 책이다. 한 권을 온전히 완독하기에 부담 없는 분량과 아기자기한 구성이 눈을 사로잡아서, 아들러 심리학을 복습하기에 안성맞춤인 책이다.

 

아들러 심리학에 관해 책을 읽다보면, 이걸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써먹어 볼 것인가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생기곤 한다. 자신에 대한 불안에는 아들러 심리학을 어떻게 적용해서 다스릴 것인지, 직장 스트레스와 노후에 대한 불안은 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하는 것들을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책을 쓴 기시미 이치로에게 물었고, 국내외 강연 및 상담을 통해 받은 질문들이 꽤 쌓였다. 그중 호응이 높고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것들을 엄선하여 수록한 책이 나를 사랑할 용기. 내 이야기 같다 싶은 것도 있고, 내 친구 혹은 내 가족의 이야기 같기도 한 88가지 고민. 자신에 대한 불안, 친구와의 갈등, 피하고 싶은 인간관계, 공부와 진로, 직장 스트레스, 연애 감정의 불확실함, 결혼이 주는 상처, 육아의 어려움, 가족 간 갈등, 노후에 대한 불안이라는 총 10장에 걸친 이야기를 읽다보면, 당장 고민 해결! 까지는 못하더라도, 고민을 해결하는데 조금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내게 가장 와 닿는 한 가지 고민을 덧붙이려다, 그보다 제일 와 닿았던 프롤로그의 마지막 문단을 담아본다.

 

아들러는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다면 심리학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제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지만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잘못된 인식을 버리자. 그 대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꿈으로써 지금의 나를 더 나은 사람, 더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가자. 그것이 바로 나를 사랑하기 위해 필요한 한 걸음이다.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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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7-01-09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를 사랑할 용기>와 더불어 <미움 받을 용기>, <행복해질 용기>까지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리뷰 읽고 갑니다. 마지막 문단도 인상깊네요. 친구신청하고 갑니다^^

해밀 2017-01-11 12:20   좋아요 0 | URL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꿈으로써 지금의 나를 더 나은 사람, 더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가자는
뜻이 참 좋더라고요 :) 부족한 리뷰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친구신청 해주신것도요! 바로 수락했어요 :)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따뜻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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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 격하게 솔직한 사노 요코의 근심 소멸 에세이
사노 요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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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를 들고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제목에 관한 이야기였다. ‘열심않다는 말이 한 문장에 들어가서 이게 뭔가 싶지만 이내 끄덕이게 된다. 격하게 솔직한 작가, 사노 요코의 또 다른 에세이 제목을 앞에 붙이면 더 근사한 말이 되는 것 같아서 어디 한 번 붙여 본다.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열심히 하나. 그래서 저는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p 라고나 할까.

 

1938년에 태어난 사노 요코가 40대 중반에 쓴 이야기들. 세대가 다르다보니 그녀의 이야기 중 일부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때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이런 글이다.

 

그것을 로버트 레드포드가 했다면, 너무 당연해 보여서 보는 이들이 하고 불만을 가졌을 것이다. 그것을 더스틴 호프만이 했기에 전 인류가 그야말로 기쁜 것이다. 나 역시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어 기쁘긴 하지만, 거기서도 나는 더스틴 호프만에게 버림받은 추녀 애인에게 마음을 투사하고 만다. 코가 빨개져 우는 그녀 곁으로 가서 , 어쩔 수 없잖아. 남자는 뭐니 뭐니 해도 미인한테 약하니까. 처음부터 승부가 안 됐던 거야. 분하지. 그래, 더 마셔. 이제 곧 좋은 일이 있을 거야.”라고 말해 주고 싶다. (p.134)

 

검색해보니 <졸업>이라는 영화는 더스틴 호프만의 데뷔작이었다. 1967년에 개봉한 영화 이야기를 하고 있던 거였다. <졸업>에 앞서 언급하는 영화도 낯설다. 그 즈음에 개봉한 영화가 아닐까 추측할 뿐. 그런데 마지막 문장에 다다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더스틴 호프만에게 버림받은 추녀 애인의 곁으로 가서 어쩔 수 없지 않냐고, 남자는 미인한테 약하니까 너는 처음부터 승부가 안 됐던 거라며 직구 중의 직구를 날린다. 그렇지만 분하니까 더 마시라고, 이제 곧 좋은 일이 있을 거라며 한 캔의 맥주를 쥐어주고는 남자가 뭐라고, 안 그래?”라는 한 마디를 끝으로 자리를 뜰 것만 같은 그녀의 글을 읽고 있으면 , 이래서 독자들이 사노 요코, 사노 요코 하는 구나싶었다.

 

이런 그녀의 매력은 비단 격하게 솔직’한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불운한 오리가 아름다운 백조로 성장한다고 하는 것에 순순히 감동한 어린 날의 자신과 오리한테 안하잖아하고 느끼는 아들. 둘 중 어느 쪽이 더 따뜻한 마음을 가진 건지 자신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다른 의견을 존중할 줄 아는 모습이 멋있었고, 자신은 요컨대 부자가 되고 싶은 에너지가 없다고, 아니 그게 아니라 부자가 아니기 때문에 에너지가 없는 거라고, 그러면서 부자의 에너지를 천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아주 성질이 못된 거라며 이야기하는 부분을 읽을 땐 인정할 것은 인정할 줄 아는 모습이 멋있었다. 어쩌면 그 사람이 사노 요코 때문에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지만.ㅎㅎ

 

독서는 그처럼 나에게 지성도 교양도 가져다주지 않지만 때때로 감동하거나 감탄하거나, 아름다운 마음씨가 되거나, 분노에 떨거나 하는 것을 몹시 싼 값으로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만큼은 좋다. 나는 아무렇게나 드러누운 채로, 눈만 두리번두리번거리면서 마음속에서 꺄아 꺄아 기뻐하고 싶은 거다.

꺄아 꺄아 기뻐할 수 있다면, 연애소설이든 책의 잡지든 헤밍웨이든 아무 차별도 구별도 두지 않는다. (p.320)

 

이 책을 읽다 잠이 들면, 그녀가 꿈속에 나타나 이렇게 말할 것만 같다.

이 책은 네게 지성도 교양도 가져다주지 않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이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근심이란 근심은 다 내려놓고 읽길 바라.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눈만 두리번두리번 거리면서 말이지.” 하고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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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 보고서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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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미국의 가장 위대한 산문가 중 하나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폴 오스터를, 당신은 이 책 내면 보고서로 처음 접했다. 덕분에 꽤나 낯설었다. 조금 평범한 글로, 소설로 접했으면 좋았으련만. 2인칭 시점으로 서술된 회고록에, 거기다 강렬한 표지까지 가세하는 바람에 이 책과 친해지는데 다소 시간이 걸렸다.

 

당신은 그저 활자를 읽는 것인지, 정말 재밌어서 읽는 것인지 혼란이 올 즈음에 이런 구절을 만났다.

 

일기라도 써서 당신의 생각, 세상을 돌아다녔던 일들, 다른 이들과의 대화, , 영화, 그림을 본 감상, 만났던 사람들과 보았던 장소들에 대한 소감을 꾸준히 기록해 둘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들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 쓰는 습관을 개발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p.192)

 

이 구절을 읽으면서, 당신은 그제야 왜 이 책을 읽고 있는지 깨달았고 그가 왜 이런 글을 썼는지 알게 되었다. 당신이 이 문장을 만나기까지 지나온 모든 문장들이, 그가 말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 쓰는 습관이었던 셈이다. 열두 살 이후로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이전의 자신에 대해 쓰기로 오스터는 마음먹었다고 한다.

 

당신은 열여덟 살 때 일기를 써보려고 한 적도 있지만, 불편하고 쑥스럽고 왜 이런 짓을 해야 하는지 좀체 알 수가 없어서 불과 이틀 만에 접고 말았다. 그때까지 당신은 줄곧 글쓰기 행위를 내면에서 외면으로 향하는 몸짓, 다른 이에게 가 닿으려는 노력으로 생각해 왔다. 당신이 썼던 말들은 당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한 것이었다. (p.192)

 

당신은 오스터의 이 글을 반대로 생각해본다. 외면에서 내면으로 향하는 몸짓이며, 현재의 오스터가 과거의 오스터에게 가 닿으려는 노력이라고.

 

대학 시절, 오스터가 전 부인과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 속에서도 당신은 오스터를 발견한다. 어쩌면 그 당시의 오스터를 가장 잘 드러내는 건, 자신에 대해 쓰는 것보다 연애편지일지도 모른다고.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고 그리워하는지 모른다고 말하는 데 편지마다 많은 자리를 할애하면서, 그 밖에 다른 많은 것들을 쓰는 것이 바로 편지가 아닌가, 하고 당신은 생각한다. 자신이 그린 그 어떤 그림보다,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 속 고흐가 한층 먹먹할 때가 있듯이.

 

처음 접해보았다고 하기에는, 언제 어디선가 한 번 접해본 적이 있는 것 같아서 처음이란 말을 고이 넣어둔 당신은 서평을 2인칭 시점으로 쓰기로 다짐했다. 1인칭도 아니고 3인칭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지적 작가 시점도 아니어서 당신은 쓰는 내내 어색했지만 확실히 새로운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시점은 뒤죽박죽에, 그래서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은 글일지라도 말이다.

 

오늘 당신이 쓴 이 서평은 뒷날의 기억에 불과하겠지만, 오스터가 쓴 이 책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오스터에게, 오스터의 팬들에게 이 책은, 옮긴이의 말처럼 언어로 엮은 타임캡슐일 테니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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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향해 쏴라
마이클 길모어 지음, 이빈 옮김 / 박하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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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해야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살인이 잉태된 집안에서 들려주는 살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집안은 내가 자라난 곳이며, 또 어떤 면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마이클 길모어. 록 음악이 최고의 절정기에 달하던 1967년 말에 창간된 이래로 대중문화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미국의 잡지 <롤링 스톤>의 수석편집장이었으며, 로큰롤의 태동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록 음악계의 빛나는 영웅들을 그린 Night Beat의 저자이자 뛰어난 음악평론가다.

 

나는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살인자의 동생이다. 그의 이름은 게리 길모어. 그는 현대 미국의 범죄자 중에 누구보다도 역사적인 인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악명을 드높인 것은 그가 저지른 범죄19767, 연이틀 젊은 모르몬 교도 두 명을 살해한 그 죄때문이 아니었다. 게리가 유명해진 건, 바로 그가 자신의 처벌에 영향을 끼쳤다는 점 때문이다. 그가 살인을 저질렀던 시기는, 미국 대법원이 사형제도의 부활을 위한 조치를 취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특히 당시 사건이 일어났던 유타 주는 앞장서서 사형제도의 부활법을 통과시킨 상태였다. 하지만 법의 집행은 또 다른 문제였다. 1977년 가을, 게리가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지난 10년 동안 미국에서는 한 번도 사형이 집행된 적이 없었다. 비록 법은 통과되었으나 사람들은 여전히 합법적인 살인행위에 찜찜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게리 길모어로 인해서 바뀌었다. (p.18)

 

사실 게리 길모어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이 아니다. 게리 길모어가 살인을 저지르고 사형에 처해지기까지의 과정을 치밀하게 묘사한 노먼 메일러의 사형집행인의 노래는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그해 퓰리처 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러나 게리가 저지른 난폭한 죄악의 뿌리가 무엇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기록되지 못한 이야기들 속에 감춰져 있다고 마이클 길모어는 이 책 내 심장을 향해 쏴라의 서문에서 덤덤히 고백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 가족사라고. 우리 집안의 어두운 비밀과 좌절된 희망의 덫이, 어떤 식으로 나의 형 게리에게 전해져서 그의 살해 충동을 만들어냈는지 보여줄 것이라고. 아무도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에 알려질 수 없었던 이야기를 말이다.

 

완전히 다른 집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형들과는 전혀 다른 집안 분위기에서 자란 막내였던 자신을 떠올리는 것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게리 길모어를 비롯한 형제들과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어머니의 집안과 아버지의 과거와 할머니 이야기까지, 말 그대로 가족사를 깊이 파고든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은 3장에 나온다. 게리는 사형집행인의 노래에 실린 인터뷰를 진행했던 실러와 자신의 변호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살면서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중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이었던 톰 라이든에게는 도움을 청하고 싶었다고. 그러나 그러기에는 자신이 선생님 말을 너무나 듣지 않았고 또 실망시켰다고 생각해서 그러지 못했다고.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톰 라이든의 인터뷰가 인상 깊었다.

 

1977년 당시, 그는 한 학교의 교장으로 있었고 그때 그 학교에는 심각한 문제아가 하나 있었다. 학교 측에서는 그 학생에게 좀 더 관심을 갖고 지도할 선생을 두 명 배정했고, 두 사람은 최선을 다했으나 더 이상은 어렵다고, 관계당국에 넘기는 게 좋겠다고 라이든에게 말했다.

게리가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었으나, 자신의 말을 너무나 듣지 않았고 또 실망시켰다는 생각에 그러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실러에게 전해 듣던 그 날은, 그 아이에 대한 임원회의가 열린 날이었다. 라이든은 그 자리에서 선생들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어제, 나는 게리 길모어와 관련된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게리는 어떤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어릴 적 8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이 있었는데, 자기는 그 선생님에게 도움의 손길을 청하고 싶었다고. 그런데 그 선생님이 자기 손을 잡아줄 만큼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다고. 그 선생님이 바로 저입니다. , 선생님들, 우리가 이 학생에게 해줄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후론, 그 선생들은 그 아이를 위해서라면 온몸을 던졌다고 한다.

 

나는 선생들에게도 항상 이렇게 말해왔지요. “선생님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세요. 그리고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세요. 이 아이가 만일 선생님의 아이라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그 아이에게 손을 내밀어주길 바라실 테지요.” (p.248)

 

라이든의 이 말을 읽는데, 최근 재밌게 챙겨보고 있는 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에서 누명을 쓰고 재판을 받게 된 캐릭터 변지식의 대사가 떠올랐다.

 

나 처음부터 내가 봤다고 말했잖아, 당신들한테! 내가 몇 번이나 말을 했는데! 당신들이 내 말을 다 무시하고 윽박지르고! 전과 기록만 보고 나를... 살인자로, 방화범으로 몰았잖아 당신들이! 그런데, 저 사람... 저 변호사만 나를 믿어줬다고. 내가 아니라고. 내 말을 다 들어줬다고. 오직 저 변호사만 나를 믿어줬다고!”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믿어준 변호사 조들호 덕분에 변지식의 미래가 달라졌던 것처럼 게리가 라이든에게 도움의 손길을 청하고, 라이든이 게리의 손을 잡아주었다면 게리의 미래는 조금 달라졌을까? 드라마는 드라마고, 현실은 현실이지만 나는 라이든의 이 말을 현직 교사와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전해 들었으면 한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 내 아이가 문제아가 되었다면, 나도 분명히 내 아이에게 그렇게 대해줄 것이라 바랄테니까.

 

 

게리의 죽음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은, 마이클 자신의 정신을 온전히 지키는 데 도움이 됐지만 치러야 할 대가가 있었다. 마이클 길모어 개인의 삶을 내려놓고, 그 순간부터 게리의 동생 마이클의 삶을 살아야 했다. 하루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날이 없는 나날의 삶. 그 삶 속에서 그는 여전히 악몽을 꾼다. 새벽 내내 잠을 설치고, 맞이하는 아침 햇살. 베개로 얼굴을 덮으며 몸을 웅크린 채 이렇게 중얼거린다. “괜찮지 않아, 절대로. 괜찮아질 수 없어.” 자신을 향해 이 말을 수없이 반복한다. 마침내 그 말 속에서 위안을 찾고,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든다.

 

688쪽에 이르러서야 에필로그의 마지막 문장을 마주한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접했던 하루키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아내와 출판사 편집자의 번역 권유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가, 번역 의뢰는 절대 받지 않는다는 자신의 원칙을 깨뜨리면서 이 책을 일본에 소개하였고, 이 책을 읽고 2년여에 걸쳐 번역하며 인간에 대한, 아니 어쩌면 세계에 대한 기본적인 철학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다.”라는 깊은 회한을 옮긴이 후기에 남겼다는 그 이야기를.

 

과장이지만, 하루키가 원칙을 열 번이라도 깨고 남을 책이었다. 이 책이 내 품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 이 글을 마무리하는 이 순간까지 길모어의 가족사에 빠져있는 동안 때때로 우울했다. 한없이 무겁고 어두운 가족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의 가족사를 마주하고, 글을 써내려갔을 마이클 길모어를 생각하면 먹먹했다.

 

책을 읽을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이 글을 쓰기 위해 꽤 오랜 시간 붙들고 있었다. 이 책에 대한 내 생각을 녹여냈다기 보다, 이 글 저 글을 인용하기 바빴고 그렇게 인용 투성이가 되어버린 것 같아 부끄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하나의 인용구를 덧붙이며 이 글을 마무리 해야겠다.

 

 

그곳을 빠져나가는 최선의 방법은 그곳을 거쳐 가는 것이다. -로버트 프로스트

 

 

끝끝내 그곳을 거쳐 가서, 이 책을 탈고했을 마이클 길모어의 의지에 끝없는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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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따라 유럽의 변경을 걸었다 - 푸시킨에서 카잔차키스, 레핀에서 샤갈까지
서정 지음 / 모요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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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따라 유럽의 변경을 걸었다는 이 책의 제목처럼, 나 역시 그들을 따라 국내 여행지를 걸었던 적이 있다.

 

무더웠던 4년 전 여름, 친구와 함께 떠날 여행지로 부산을 고른 건 영화 푸른 소금때문이었다. 이래저래 아쉬운 영화로 평가받는다 해도, 내게는 더할 나위 없는 영상미가 남은 영화였고, 부산에 가고 싶게 만든 영화였다. 비현실적으로 예쁜 하늘을 배경 삼아, 광안대교 근처에 앉아있던 송강호의 뒷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았던 장면. 그 풍경을 내 눈에 담고 싶어 향한 부산이었지만, 때는 성수기 중의 성수기였다. 태양은 내리 쬐고, 사람 많은 광안리 근처 어딘가에 서 있던 나는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몇 년 뒤의 여름에는, 전주에 있었다. 드라마 보통의 연애를 보고 전주 여행을 예습했던 나는 이 곳 저 곳을 지나칠 때마다 드라마를 생각했다. 드라마 속의 계절과는 달랐지만, 캐릭터의 감정선을 생각하며 걷는 전주 여행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다. 드라마, 영화를 좋아하는 내가 국내를 여행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었다.

 

그저 드라마가 좋아서, 영화가 좋아서 여행지로 삼고 여행했던 나와는 달리, 공부와 생업과 가족의 일로 상트페르트부르크와 모스크바, 민스크와 아테네를 두루 옮겨 다니며 살았던 작가에게 여행은 생활의 다른 일면이었다고 한다. 자연스레 유럽의 중심과는 또 다른 축에서 지식인과 예술가의 발자취를 더듬어갔다고. 기회가 될 때마다 밟고 다녔던 그곳은 공교롭게도 유럽의 변경(나라의 경계가 되는 변두리의 땅)에 위치한 도시들이 많았고, 당면한 문제를 나름의 방식으로 고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이 책은 그들을 따라 걸었던 책이다.

 

러시아어로 진짜 러시아를 기막히게 표현할 운명으로 태어난 러시아가 사랑한 천재 시인푸시킨으로, 시작해서 고대 신화의 세계를 빠져나온 현대 그리스를 과감하게 형상화한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까지 열 명이 넘는 예술가 중에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고흐가 머물었던 남프랑스를 가장 먼저 찾았다.

 

고흐에 대한 애착 때문인지, 자연스레 유럽의 변경으로 안내하는 작가의 안내 덕분인지 남프랑스는 생각보다 낯설지 않았다.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으로 이름만 알고 있던 아를에서 노란색 돌이 박혀 들어간 자리를 찾아다니며 외로운 영혼을 추억하는 고흐 루트를 밟다가, 고갱과의 다툼 끝에 귀 한쪽을 잘라낸 고흐가 입원해 치료를 받았던 병원 근처에도 서성거려본다. 그렇게 따라다니다가 마주한 한 문장 앞에서 멈춰선다.

 

큰 구름이 머리 위를 지나고 있을 때는 그저 진노랑의 바탕색 위에 서 있다고 생각했던 우리는 구름이 지나고 난 자리에 햇빛 광선이 노란 바탕색 위로 쐐기를 박자 그만 투명한 꽃잎을 저마다 바짝 세운 노란 형광빛 바다에 던져진 듯했다. (p.301)

 

이 문장이, 문장 위에 실린 카마르그 평원을 달리다가 만난 아찔한 노란색의 해바라기 밭사진을 실감하게 했다. 사진보다 생생한 글이라니. 이다지도 매력적인 문장들이 곳곳에 담겨있는 멋진 책이다.

 

낯설었던 러시아 예술가들을 비롯해, 생소한 몇몇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관심이 생긴 것도 이 책 덕분이다. 아니, 어디 예술가뿐인가. 유럽의 변경에서 만난 현지인들의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리투아니아에서 만난 마르티나스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가끔 외국 사람들을 만나면 자기 나라에 대한 나의 인상을 궁금해하던 게 생각나서 말인데요, 내가 한국에 대해 꼽을 수 있는 건 세 가지예요. 올림픽, 삼성이나 현대 같은 대기업, 그리고 김기덕과 박찬욱.”

 

리투아니아의 한 지방 숲 속에 사는 그의 서가에는 카프카와 나보코프 선집, 두세 권의 백과사전, 소비에트 클래식 영화 DVD 몇 개 사이로 박찬욱과 김기덕의 이름이 박힌 DVD가 꽂혀 있었다. 그는 이렇게라도 한국을 알고 있었는데, 나는 리투아니아에 대해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에 부끄러웠지만 이것을 깨닫게 된 것 또한 이 책이 내게 준 기회라고 생각한다. 세계는 넓고, 나는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기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깊은 사유와 성찰로 문학과 예술을 더듬어간 여행. 유럽의 변경에는 지식인과 예술가의 발자취가 있었고, 그 발자취 위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늘 그렇듯, 글로 읽었지만 정말이지 기분 좋은 산책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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