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사유의 시선 - 우리가 꿈꾸는 시대를 위한 철학의 힘
최진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해를 해로만 보거나 달을 달로만 보는 분열된 삶에서 벗어나 해와 달을 동시적 사건으로 장악하는 활동성[]을 통해 아직 이름 붙지 않은 곳[]으로 건너가는 도전을 감행하고자 세워진[] 인문-과학-예술 혁신 학교 건명원(建明苑)의 초대 원장이자,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최진석 교수님의 이번 책 탁월한 사유의 시선은 교수님이 건명원에서 진행한 다섯 차례의 철학 강의를 묶은 책이다.

 

버리고, 이끌고, 홀로 서고, 참된 나를 찾고 문답을 공유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이 철학 강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1강에 나온다. 문화, 사상, 철학의 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에 관한 부분이었다.

 

우리는 보통 일상생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한번 철학적으로 접근해보자” “넌 항상 문제를 철학적으로 이야기해” “이건 너무 철학적이야등등의 표현을 씁니다. 그런데 우리는 철학적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그 말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을까요?

- 최진석 탁월한 사유의 시선p.94

 

교수님은, 자신이 철학을 전공했지만 이 말뜻을 제대로 이해한 것은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치고도 몇 년이 지났을 때인 것 같다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자신이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철학적인 높이의 시선이 일반화되지 않은 문화권에서 이 말을 일상적으로 제대로 사용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덧붙인다.

 

여기서 익숙한 회사가 등장하는데, 그 이름은 레고(LEGO).

    

전통의 완구 회사 레고는 1990년대 들어 점차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어린이 고객들은 레고보다 비디오게임기에 더 몰두하는 것처럼 보였다. 레고는 아이들은 이제 전원만 켜면 바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장난감을 더 좋아한다고 분석하고, 비디오게임 시장에 뛰어들었다. 또 조립하지 않고도 바로 가지고 놀 수 있는 쉬운 장난감을 많이 만들었다. 그런데 결과는 참담했다. 2004년 레고는 사상 최대 규모 적자를 냈다.

 

 

레고는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 덴마크의 한 컨설팅 회사를 찾아가서 해결책을 구하게 된다. 그 회사는 고객이 가져온 문제를 우선 철학적인 문제로 바꾸어서 접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레고는 원래 아이들은 어떤 장난감을 좋아할까?’라는 질문을 붙들고 있었는데, 그 컨설팅 회사의 조언에 따라 기존 질문을 다음과 같은 철학적 질문으로 바꾼다. ‘아이들에게 놀이의 역할은 무엇인가?’ ‘아이들에게 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말이다.

 

레고는 이 철학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아이들을 직접 관찰하고 인터뷰하고 따라다니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아이들은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제공된 즐거움도 좋아하지만, 오랜 시간을 투자하여 어려운 기술을 익히고 이를 자랑하는 것에서도 큰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을.

 

그래서 레고는 이때부터 힘도 더 들고 시간도 더 오래 걸리지만, 스스로의 성취감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장난감인 블록 장난감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아이들이 세계에 대한 창의적 활동에 직접 참여하려 한다는 철학적 발견이 이룬 결과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집중이 잘 되는 곳에서 읽겠다며 찾아 들어간 북카페에서 레고 : 어떻게 무너진 블록을 다시 쌓았나를 발견하고 꺼내 읽게 된 것은 인연이었다. 전엔 그저 레고의 경영에 관한 서적으로만 생각하고 지나쳤는데,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읽고 나니 레고의 철학적인 높이의 시선이 어떠했기에 회사를 살렸고, 지금의 레고가 된 것인지 궁금해진 것이다.

 

당연하게도 레고는 이와 같은 철학적 접근만으로 무너진 블록을 다시 쌓은 것은 아니었다. 허나 분명한 건, 무너진 블록을 다시 쌓은 첫 블록은 철학적 발견에 있었다. 여기에, 장난감이라는 나무에서 놀이라는 큰 숲으로 시선을 돌려 아이들의 창의적 활동에 집중했던 레고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레고가 이룬 결과를 실감하게 된 건 지난 1월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브릭 라이브 인 코리아에서 레고를 맞추는 아이들을 보면서다. 전시 공간은 크게, 며칠에 걸쳐 만들었을 큰 레고 작품들을 전시해둔 공간과 빨간색이면 빨간색, 하얀색이면 하얀색 색깔별로 블록을 모아두고 원없이 맞출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전시를 잠깐 둘러보고, 이내 후자의 공간에 옹기종기 앉아있었다. 보라색 블록으로 가득한 곳에서는 보라색 집을 지었고, 초록색 블록으로 가득한 곳에선 성을 높이 쌓아올렸다.

크기가 맞는 블록을 찾기 위해 내내 고개를 숙이느라 힘도 들고, 오랜 시간이 드는 놀이이지만 블록으로 만든 자신의 작품을 완성했을 때의 그 뿌듯함, 그 성취감은 그 어떤 게임이 줄 수 없는 것임을 아이들을 보면서 다시금 깨달았다. 일상에서 철학적인 높이의 시선을 느낀 순간이었다.

 

이 경험이 내게는 너무 인상 깊었던 나머지 레고 이야기만 하고 말았는데, 정말 재미있는 책이었다. 일단 잘 읽혔다. 강의를 묶은 책이라 그런지 철학이 여전히 낯선 내게는 책장을 술술 넘기게 만드는 가독성이 좋은 책이었다.

1강에서 철학이 우리의 삶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산업혁명으로 시작해서 동아시아의 역사 발전에 관한 이야기가 언급되는데, 새삼 세계사가 이렇게 재밌었나 싶었다. 세계사에서 철학의 역할이라는 주제를 덧붙이니 이렇게 재밌을 수가 없는 거다. , 책 곳곳에 언급된 공자, 장자, 순자 등 동양 철학 역시 굉장히 흥미로웠다. 내게 동양 철학이라 하면 중-고등학생 시절 배웠던 윤리 교과서 속 화석 같은 철학이었는데, 철학 강의 중간 중간에 장자의 한 구절, 순자의 한 구절을 읽으면서 고여 있지 않고 계속해서 흐르는 물과 같은 철학임을 느꼈다.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내가 얻은 것은, 철학에 대한 전반적인 내 생각이 트였고 공부해보고 싶다는 욕심을 가지게 된 일이 아닐까.

 

가치의 결탁물로 되어 있는 자기를 장자는 로 표현하고, 이 가치의 결탁을 끊고, 즉 기존의 자기를 살해하고 새로 태어나는 자기를 로 새겼습니다. 가치관으로 결탁되어 있는 자기를 살해하지 않으면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드러날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자기살해를 거친 다음에야 참된 인간으로서의 자신이 등장합니다. 이 참된 인간을 장자는 진인眞人이라고 합니다. 흔히 말하는 무아無我라는 표현도 글자 그대로 자신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참된 자기로 등장하는 절차를 말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무아라는 말은 진아眞我라는 말과 같아집니다. 진인으로 새롭게 등장한달지 진아로 우뚝 서는 일을 다양하게 표현하는데, 그것을 반성이라고도 하고, 각성이라고도 하며, 깨달음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자기살해 이후 등장하는 새로운 ’, 이런 참된 자아를 우리는 비로소 독립적 주체라고 하는 것이지요.

- 최진석 탁월한 사유의 시선p.244

 

자기를 살해하고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드러나는 일은 어쩌면 멀리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 같은 강의를 듣고, 책을 읽는 것 역시 자기 살해이며,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드러나기 위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아주 쉬운 방법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분명한 건, 이 책을 읽기 전의 나는 가치의 결탁물로 되어 있는 였으나 이 책을 완독한 뒤에 새로 태어나는 자기인 는 아니라는 것.

 

진아珍我인 내가, 위에서 말하는 진아眞我가 되기 까지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 앞으로 걸어갈 길이 퍽 아득하지만 기분이 좋다. 나는 이제 한 걸음 뗐고, 모르긴 몰라도 시작이 반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를 사랑할 용기 - 인간관계를 둘러싼 88가지 고민에 대한 아들러의 가르침
기시미 이치로 지음, 홍성민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돌아보니 이 책의 표지에 실린 책을 전부 읽었다.

 

미움 받을 용기로 아들러 심리학에 입문했다면 행복해질 용기로 복습하는 시간을 가졌고, 이 책 나를 사랑할 용기에 이르렀다.

 

아들러 심리학에 관한 책들이 다 비슷비슷해 보이고, 비슷비슷한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뜯어보면 느낌은 제각각 다르다. 공통점이 있다면, 아들러 심리학에 관한 일본의 제1인자인 기시미 이치로가 저자라는 것.

 

미움 받을 용기는 그런 기시미 이치로의 명해석을 작가 고기 후미타케와 힘을 합쳐 쓴 책으로, 청년과 철학자의 대화 형식을 취해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을 보다 쉽게 풀어낸 책이다.

행복해질 용기는 원인 분석에 얽매인 통속적인 행복을 넘어 바로 지금부터 행복해지기 위한 지침을 제시하는 책이다. 한 권을 온전히 완독하기에 부담 없는 분량과 아기자기한 구성이 눈을 사로잡아서, 아들러 심리학을 복습하기에 안성맞춤인 책이다.

 

아들러 심리학에 관해 책을 읽다보면, 이걸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써먹어 볼 것인가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생기곤 한다. 자신에 대한 불안에는 아들러 심리학을 어떻게 적용해서 다스릴 것인지, 직장 스트레스와 노후에 대한 불안은 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하는 것들을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책을 쓴 기시미 이치로에게 물었고, 국내외 강연 및 상담을 통해 받은 질문들이 꽤 쌓였다. 그중 호응이 높고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것들을 엄선하여 수록한 책이 나를 사랑할 용기. 내 이야기 같다 싶은 것도 있고, 내 친구 혹은 내 가족의 이야기 같기도 한 88가지 고민. 자신에 대한 불안, 친구와의 갈등, 피하고 싶은 인간관계, 공부와 진로, 직장 스트레스, 연애 감정의 불확실함, 결혼이 주는 상처, 육아의 어려움, 가족 간 갈등, 노후에 대한 불안이라는 총 10장에 걸친 이야기를 읽다보면, 당장 고민 해결! 까지는 못하더라도, 고민을 해결하는데 조금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내게 가장 와 닿는 한 가지 고민을 덧붙이려다, 그보다 제일 와 닿았던 프롤로그의 마지막 문단을 담아본다.

 

아들러는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다면 심리학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제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지만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잘못된 인식을 버리자. 그 대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꿈으로써 지금의 나를 더 나은 사람, 더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가자. 그것이 바로 나를 사랑하기 위해 필요한 한 걸음이다. (p.11)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양이라디오 2017-01-09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를 사랑할 용기>와 더불어 <미움 받을 용기>, <행복해질 용기>까지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리뷰 읽고 갑니다. 마지막 문단도 인상깊네요. 친구신청하고 갑니다^^

해밀 2017-01-11 12:20   좋아요 0 | URL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꿈으로써 지금의 나를 더 나은 사람, 더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가자는
뜻이 참 좋더라고요 :) 부족한 리뷰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친구신청 해주신것도요! 바로 수락했어요 :)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따뜻한 하루 되세요♩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 격하게 솔직한 사노 요코의 근심 소멸 에세이
사노 요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를 들고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제목에 관한 이야기였다. ‘열심않다는 말이 한 문장에 들어가서 이게 뭔가 싶지만 이내 끄덕이게 된다. 격하게 솔직한 작가, 사노 요코의 또 다른 에세이 제목을 앞에 붙이면 더 근사한 말이 되는 것 같아서 어디 한 번 붙여 본다.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열심히 하나. 그래서 저는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p 라고나 할까.

 

1938년에 태어난 사노 요코가 40대 중반에 쓴 이야기들. 세대가 다르다보니 그녀의 이야기 중 일부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때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이런 글이다.

 

그것을 로버트 레드포드가 했다면, 너무 당연해 보여서 보는 이들이 하고 불만을 가졌을 것이다. 그것을 더스틴 호프만이 했기에 전 인류가 그야말로 기쁜 것이다. 나 역시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어 기쁘긴 하지만, 거기서도 나는 더스틴 호프만에게 버림받은 추녀 애인에게 마음을 투사하고 만다. 코가 빨개져 우는 그녀 곁으로 가서 , 어쩔 수 없잖아. 남자는 뭐니 뭐니 해도 미인한테 약하니까. 처음부터 승부가 안 됐던 거야. 분하지. 그래, 더 마셔. 이제 곧 좋은 일이 있을 거야.”라고 말해 주고 싶다. (p.134)

 

검색해보니 <졸업>이라는 영화는 더스틴 호프만의 데뷔작이었다. 1967년에 개봉한 영화 이야기를 하고 있던 거였다. <졸업>에 앞서 언급하는 영화도 낯설다. 그 즈음에 개봉한 영화가 아닐까 추측할 뿐. 그런데 마지막 문장에 다다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더스틴 호프만에게 버림받은 추녀 애인의 곁으로 가서 어쩔 수 없지 않냐고, 남자는 미인한테 약하니까 너는 처음부터 승부가 안 됐던 거라며 직구 중의 직구를 날린다. 그렇지만 분하니까 더 마시라고, 이제 곧 좋은 일이 있을 거라며 한 캔의 맥주를 쥐어주고는 남자가 뭐라고, 안 그래?”라는 한 마디를 끝으로 자리를 뜰 것만 같은 그녀의 글을 읽고 있으면 , 이래서 독자들이 사노 요코, 사노 요코 하는 구나싶었다.

 

이런 그녀의 매력은 비단 격하게 솔직’한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불운한 오리가 아름다운 백조로 성장한다고 하는 것에 순순히 감동한 어린 날의 자신과 오리한테 안하잖아하고 느끼는 아들. 둘 중 어느 쪽이 더 따뜻한 마음을 가진 건지 자신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다른 의견을 존중할 줄 아는 모습이 멋있었고, 자신은 요컨대 부자가 되고 싶은 에너지가 없다고, 아니 그게 아니라 부자가 아니기 때문에 에너지가 없는 거라고, 그러면서 부자의 에너지를 천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아주 성질이 못된 거라며 이야기하는 부분을 읽을 땐 인정할 것은 인정할 줄 아는 모습이 멋있었다. 어쩌면 그 사람이 사노 요코 때문에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지만.ㅎㅎ

 

독서는 그처럼 나에게 지성도 교양도 가져다주지 않지만 때때로 감동하거나 감탄하거나, 아름다운 마음씨가 되거나, 분노에 떨거나 하는 것을 몹시 싼 값으로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만큼은 좋다. 나는 아무렇게나 드러누운 채로, 눈만 두리번두리번거리면서 마음속에서 꺄아 꺄아 기뻐하고 싶은 거다.

꺄아 꺄아 기뻐할 수 있다면, 연애소설이든 책의 잡지든 헤밍웨이든 아무 차별도 구별도 두지 않는다. (p.320)

 

이 책을 읽다 잠이 들면, 그녀가 꿈속에 나타나 이렇게 말할 것만 같다.

이 책은 네게 지성도 교양도 가져다주지 않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이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근심이란 근심은 다 내려놓고 읽길 바라.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눈만 두리번두리번 거리면서 말이지.” 하고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면보고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내면 보고서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시대 미국의 가장 위대한 산문가 중 하나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폴 오스터를, 당신은 이 책 내면 보고서로 처음 접했다. 덕분에 꽤나 낯설었다. 조금 평범한 글로, 소설로 접했으면 좋았으련만. 2인칭 시점으로 서술된 회고록에, 거기다 강렬한 표지까지 가세하는 바람에 이 책과 친해지는데 다소 시간이 걸렸다.

 

당신은 그저 활자를 읽는 것인지, 정말 재밌어서 읽는 것인지 혼란이 올 즈음에 이런 구절을 만났다.

 

일기라도 써서 당신의 생각, 세상을 돌아다녔던 일들, 다른 이들과의 대화, , 영화, 그림을 본 감상, 만났던 사람들과 보았던 장소들에 대한 소감을 꾸준히 기록해 둘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들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 쓰는 습관을 개발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p.192)

 

이 구절을 읽으면서, 당신은 그제야 왜 이 책을 읽고 있는지 깨달았고 그가 왜 이런 글을 썼는지 알게 되었다. 당신이 이 문장을 만나기까지 지나온 모든 문장들이, 그가 말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 쓰는 습관이었던 셈이다. 열두 살 이후로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이전의 자신에 대해 쓰기로 오스터는 마음먹었다고 한다.

 

당신은 열여덟 살 때 일기를 써보려고 한 적도 있지만, 불편하고 쑥스럽고 왜 이런 짓을 해야 하는지 좀체 알 수가 없어서 불과 이틀 만에 접고 말았다. 그때까지 당신은 줄곧 글쓰기 행위를 내면에서 외면으로 향하는 몸짓, 다른 이에게 가 닿으려는 노력으로 생각해 왔다. 당신이 썼던 말들은 당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한 것이었다. (p.192)

 

당신은 오스터의 이 글을 반대로 생각해본다. 외면에서 내면으로 향하는 몸짓이며, 현재의 오스터가 과거의 오스터에게 가 닿으려는 노력이라고.

 

대학 시절, 오스터가 전 부인과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 속에서도 당신은 오스터를 발견한다. 어쩌면 그 당시의 오스터를 가장 잘 드러내는 건, 자신에 대해 쓰는 것보다 연애편지일지도 모른다고.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고 그리워하는지 모른다고 말하는 데 편지마다 많은 자리를 할애하면서, 그 밖에 다른 많은 것들을 쓰는 것이 바로 편지가 아닌가, 하고 당신은 생각한다. 자신이 그린 그 어떤 그림보다,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 속 고흐가 한층 먹먹할 때가 있듯이.

 

처음 접해보았다고 하기에는, 언제 어디선가 한 번 접해본 적이 있는 것 같아서 처음이란 말을 고이 넣어둔 당신은 서평을 2인칭 시점으로 쓰기로 다짐했다. 1인칭도 아니고 3인칭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지적 작가 시점도 아니어서 당신은 쓰는 내내 어색했지만 확실히 새로운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시점은 뒤죽박죽에, 그래서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은 글일지라도 말이다.

 

오늘 당신이 쓴 이 서평은 뒷날의 기억에 불과하겠지만, 오스터가 쓴 이 책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오스터에게, 오스터의 팬들에게 이 책은, 옮긴이의 말처럼 언어로 엮은 타임캡슐일 테니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심장을 향해 쏴라]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내 심장을 향해 쏴라
마이클 길모어 지음, 이빈 옮김 / 박하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에게는 해야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살인이 잉태된 집안에서 들려주는 살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집안은 내가 자라난 곳이며, 또 어떤 면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마이클 길모어. 록 음악이 최고의 절정기에 달하던 1967년 말에 창간된 이래로 대중문화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미국의 잡지 <롤링 스톤>의 수석편집장이었으며, 로큰롤의 태동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록 음악계의 빛나는 영웅들을 그린 Night Beat의 저자이자 뛰어난 음악평론가다.

 

나는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살인자의 동생이다. 그의 이름은 게리 길모어. 그는 현대 미국의 범죄자 중에 누구보다도 역사적인 인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악명을 드높인 것은 그가 저지른 범죄19767, 연이틀 젊은 모르몬 교도 두 명을 살해한 그 죄때문이 아니었다. 게리가 유명해진 건, 바로 그가 자신의 처벌에 영향을 끼쳤다는 점 때문이다. 그가 살인을 저질렀던 시기는, 미국 대법원이 사형제도의 부활을 위한 조치를 취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특히 당시 사건이 일어났던 유타 주는 앞장서서 사형제도의 부활법을 통과시킨 상태였다. 하지만 법의 집행은 또 다른 문제였다. 1977년 가을, 게리가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지난 10년 동안 미국에서는 한 번도 사형이 집행된 적이 없었다. 비록 법은 통과되었으나 사람들은 여전히 합법적인 살인행위에 찜찜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게리 길모어로 인해서 바뀌었다. (p.18)

 

사실 게리 길모어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이 아니다. 게리 길모어가 살인을 저지르고 사형에 처해지기까지의 과정을 치밀하게 묘사한 노먼 메일러의 사형집행인의 노래는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그해 퓰리처 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러나 게리가 저지른 난폭한 죄악의 뿌리가 무엇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기록되지 못한 이야기들 속에 감춰져 있다고 마이클 길모어는 이 책 내 심장을 향해 쏴라의 서문에서 덤덤히 고백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 가족사라고. 우리 집안의 어두운 비밀과 좌절된 희망의 덫이, 어떤 식으로 나의 형 게리에게 전해져서 그의 살해 충동을 만들어냈는지 보여줄 것이라고. 아무도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에 알려질 수 없었던 이야기를 말이다.

 

완전히 다른 집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형들과는 전혀 다른 집안 분위기에서 자란 막내였던 자신을 떠올리는 것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게리 길모어를 비롯한 형제들과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어머니의 집안과 아버지의 과거와 할머니 이야기까지, 말 그대로 가족사를 깊이 파고든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은 3장에 나온다. 게리는 사형집행인의 노래에 실린 인터뷰를 진행했던 실러와 자신의 변호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살면서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중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이었던 톰 라이든에게는 도움을 청하고 싶었다고. 그러나 그러기에는 자신이 선생님 말을 너무나 듣지 않았고 또 실망시켰다고 생각해서 그러지 못했다고.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톰 라이든의 인터뷰가 인상 깊었다.

 

1977년 당시, 그는 한 학교의 교장으로 있었고 그때 그 학교에는 심각한 문제아가 하나 있었다. 학교 측에서는 그 학생에게 좀 더 관심을 갖고 지도할 선생을 두 명 배정했고, 두 사람은 최선을 다했으나 더 이상은 어렵다고, 관계당국에 넘기는 게 좋겠다고 라이든에게 말했다.

게리가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었으나, 자신의 말을 너무나 듣지 않았고 또 실망시켰다는 생각에 그러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실러에게 전해 듣던 그 날은, 그 아이에 대한 임원회의가 열린 날이었다. 라이든은 그 자리에서 선생들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어제, 나는 게리 길모어와 관련된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게리는 어떤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어릴 적 8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이 있었는데, 자기는 그 선생님에게 도움의 손길을 청하고 싶었다고. 그런데 그 선생님이 자기 손을 잡아줄 만큼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다고. 그 선생님이 바로 저입니다. , 선생님들, 우리가 이 학생에게 해줄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후론, 그 선생들은 그 아이를 위해서라면 온몸을 던졌다고 한다.

 

나는 선생들에게도 항상 이렇게 말해왔지요. “선생님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세요. 그리고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세요. 이 아이가 만일 선생님의 아이라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그 아이에게 손을 내밀어주길 바라실 테지요.” (p.248)

 

라이든의 이 말을 읽는데, 최근 재밌게 챙겨보고 있는 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에서 누명을 쓰고 재판을 받게 된 캐릭터 변지식의 대사가 떠올랐다.

 

나 처음부터 내가 봤다고 말했잖아, 당신들한테! 내가 몇 번이나 말을 했는데! 당신들이 내 말을 다 무시하고 윽박지르고! 전과 기록만 보고 나를... 살인자로, 방화범으로 몰았잖아 당신들이! 그런데, 저 사람... 저 변호사만 나를 믿어줬다고. 내가 아니라고. 내 말을 다 들어줬다고. 오직 저 변호사만 나를 믿어줬다고!”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믿어준 변호사 조들호 덕분에 변지식의 미래가 달라졌던 것처럼 게리가 라이든에게 도움의 손길을 청하고, 라이든이 게리의 손을 잡아주었다면 게리의 미래는 조금 달라졌을까? 드라마는 드라마고, 현실은 현실이지만 나는 라이든의 이 말을 현직 교사와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전해 들었으면 한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 내 아이가 문제아가 되었다면, 나도 분명히 내 아이에게 그렇게 대해줄 것이라 바랄테니까.

 

 

게리의 죽음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은, 마이클 자신의 정신을 온전히 지키는 데 도움이 됐지만 치러야 할 대가가 있었다. 마이클 길모어 개인의 삶을 내려놓고, 그 순간부터 게리의 동생 마이클의 삶을 살아야 했다. 하루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날이 없는 나날의 삶. 그 삶 속에서 그는 여전히 악몽을 꾼다. 새벽 내내 잠을 설치고, 맞이하는 아침 햇살. 베개로 얼굴을 덮으며 몸을 웅크린 채 이렇게 중얼거린다. “괜찮지 않아, 절대로. 괜찮아질 수 없어.” 자신을 향해 이 말을 수없이 반복한다. 마침내 그 말 속에서 위안을 찾고,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든다.

 

688쪽에 이르러서야 에필로그의 마지막 문장을 마주한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접했던 하루키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아내와 출판사 편집자의 번역 권유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가, 번역 의뢰는 절대 받지 않는다는 자신의 원칙을 깨뜨리면서 이 책을 일본에 소개하였고, 이 책을 읽고 2년여에 걸쳐 번역하며 인간에 대한, 아니 어쩌면 세계에 대한 기본적인 철학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다.”라는 깊은 회한을 옮긴이 후기에 남겼다는 그 이야기를.

 

과장이지만, 하루키가 원칙을 열 번이라도 깨고 남을 책이었다. 이 책이 내 품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 이 글을 마무리하는 이 순간까지 길모어의 가족사에 빠져있는 동안 때때로 우울했다. 한없이 무겁고 어두운 가족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의 가족사를 마주하고, 글을 써내려갔을 마이클 길모어를 생각하면 먹먹했다.

 

책을 읽을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이 글을 쓰기 위해 꽤 오랜 시간 붙들고 있었다. 이 책에 대한 내 생각을 녹여냈다기 보다, 이 글 저 글을 인용하기 바빴고 그렇게 인용 투성이가 되어버린 것 같아 부끄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하나의 인용구를 덧붙이며 이 글을 마무리 해야겠다.

 

 

그곳을 빠져나가는 최선의 방법은 그곳을 거쳐 가는 것이다. -로버트 프로스트

 

 

끝끝내 그곳을 거쳐 가서, 이 책을 탈고했을 마이클 길모어의 의지에 끝없는 박수를 보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