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보트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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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의 문체가 부쩍 그리운 겨울이다. 왜 그리운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올 겨울은 유독 그렇다. 그래서 모처럼, 그녀의 소설을 찾아 읽었다. 8년 전 『냉정과 열정사이 Rosso』로 에쿠니 가오리에 입문한 이래 그녀의 많은 소설을 챙겨 읽었지만, 이번 『하느님의 보트』만큼 재밌게 읽었던 적은 없었노라- 단언할 정도로 『하느님의 보트』를 인상깊고 재미있게 읽었다. 에쿠니 가오리의 문체야 문체만으로도 만족하며 읽는 작품도 있었으니 두말하면 입 아프고, 그녀의 문체로 풀어내는 이야기들도 좋아하지만 이번 『하느님의 보트』를 유독 재밌게 읽었던 이유는 따로 있다.

 

 

 

  두 주인공 요코와 소우코가 엄마와 딸의 입장에서 번갈아 이야기하는 소설『하느님의 보트』는 어른과 아이의 감성을 고루 갖춘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작품이다. 에쿠니는 그 넘기 어려운 벽을 가볍게 넘나든다.

(p.285, 아동문학가 야마시타 하루오 '작품 해설'  中)

 

 

 

  딸 소우코의 시점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계속해서 소우코의 시점으로 쓰이는 줄 알았던 소설은 얼마 안가 엄마 요코의 시점으로 쓰이고, 다시 소우코의 시점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적당한 분량으로 둘의 시점이 번갈아가며 진행되는 점이 참 재미있었다. 딸과 엄마의 시점으로 읽히기도 하며 어른과 아이의 시점으로 읽히기도 하고, 여자와 여자의 시점으로 읽히기도 하는 대단한 소설. 위에 인용한 작품 해설 속 구절처럼 『하느님의 보트』는 이런 에쿠니의 능력을 느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하느님의 보트』이야기를 하다말고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면, 누군가 나에게 작년에 가장 재밌게 읽은 책을 꼽으라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정유정의 『7년의 밤』을 꼽는다. 『7년의 밤』을 좋아하는 이유는 소설 속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한 사실적인 묘사와 흡입력있는 스토리 전개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 최고의 이유는 『하느님의 보트』를 재밌게 읽은 이유와 동일하다. 최소 두 사람 이상의 시점으로 소설이 쓰였다는 것.

  『7년의 밤』만 읽었을 때는 단지 『7년의 밤』이 워낙 잘 쓰였기 때문에 재밌었나보다 싶었는데, 이번 『하느님의 보트』를 읽고 깨달았다. 내가 두 사람 이상의 시점으로 쓰인 작품들을 재밌게 읽은 이유는 두 가지 성격의 소설을 동시에 읽는 느낌이 들어서 그랬던 것 같다. 마침 작품 해설에 내 생각을 딱 맞게 풀어놓은 구절이 있어서 다시 인용해본다.

 

 

 

  『하느님의 보트』는 어른의 눈높이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춘 두 대의 카메라로 촬영된 두 시각의 문학이다. 즉 어린 독자는 소우코에게 동감하면서 성장소설로 읽을 수 있고, 성인인 독자는 요코의 입장에서 연애소설로 읽을 수 있다.

(p.285-6, 아동문학가 야마시타 하루오 '작품 해설'  中)

 

 

 

  나는 소설 초반에는 요코의 입장에서 연애소설로, 후반부로 갈수록 소우코의 입장에서 성장소설로 읽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며 내가 밑줄 친 구절들을 살펴보니 초반에는 요코의 말에, 후반에는 소우코의 말에 유독 밑줄이 많았다. 그리고 나는 끝내, 요코의 입장은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독서를 끝냈는데 그건 아마도 내가 ‘뼈마디까지 녹아버릴 듯한 사랑’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 사람을 향한 사랑은 그 누구도 공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사람과 뼈마디까지 녹아버릴 듯한 사랑을 한 사람은 요코였으니까. 요코만의 사랑이었기에 누구도 공감할 수 없었던 요코의 광기. 요코는 그 사랑을 끌어안은 채, 하느님의 보트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끝내 ‘헐 다운’으로 가버렸을까. 요코의 시점으로 끝난 소설의 마지막장을 넘기고서 ‘인생은 불현 듯 암전이 된다’던 요코의 말이 떠올라 나는 많이 먹먹했다.

 

 

 

  그리고, 소우코. 소우코에게 ‘이사’란 어떤 것이었을까. 요코에게 이사란 ‘그곳이 어떤 장소이든 익숙해지면 그 사람을 만날 수 없을 것 같았고, 그 사람이 없는 장소에 익숙해질 수는 없었으며 그곳이 어디든 내가 있어야 할 장소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이곳에서 저곳으로 장소를 옮기는 의미였겠지만, 소우코에게 이사란 이사인 동시에 ‘전학’이었을 것 같다. 2명도, 3명도 아니다. 소우코에겐 그저 한명의 친구가 필요했을 뿐인데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이사를 간다는 건, 곧 전학을 가야한다는 말이었으니까. 그래도 소우코는 묵묵히 요코와 이사를 다녔다.

 

 

 

  나는 내가 모르는 소우코의 생활을 생각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몇 번이나 모든 것을 뒤로해야 했던 소우코의 생활을. (p.90)

 

 

 

  이 구절을 통해 요코가 그런 소우코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결국 헤아리지 않았던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머무는 기간이 조금 늘었을 뿐, 소우코는 다시 전학을 가야했으니까.

  소우코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소설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요코가 하느님의 보트에서 내리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가 소우코였는데, 그런 소우코가 먼저 하느님의 보트에서 내렸기 때문에. 소우코는 홀로 지낼 요코가 불안하고, 미안하지만 끝내 요코의 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어쩌면 소우코는 자신이 먼저 하느님의 보트에서 내려야 요코도 따라 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았을지도. 후에 요코의 선택이 어떠할지라도. 또, 그러는게 요코의 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코도 요코 자신만의 삶을 충실하게 살았듯이 소우코도 이제는 소우코만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갈 때가 왔으니까.

 

 

 

  작품 해설을 읽어보니 『하느님의 보트』를 두고 ‘에쿠니 작품 중에서도 최고의 걸작’이라고 평하는 목소리가 많단다. 나만 좋게 읽은게 아니구나 싶어서 괜히 뿌듯했다. 또, 에쿠니 가오리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쓴 소설 중에서 가장 위험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p.284, 에쿠니 가오리 '작가의 말' 中)

 

 

 

  에쿠니 가오리가 표현하는 ‘위험하다’의 어감이 어떠한 ‘위험하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종종 사용하는 ‘긍정의 위험’이라고 표현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렇다. 격하게 재미있고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났을 때나 ‘어어, 이거 위험하다.’라고 표현하듯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서 ‘이거, 죽인다’라고 표현하듯이.

  내게도 『하느님의 보트』는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중에 가장 위험한 작품이었다.

 

 

 

* 인상깊었던 구절 모음

 

― 한 번 지나간 일은 절대로 변하지 않잖아. 언제나 거기에 있어. 지나간 일만이 확실하게 우리 거야. (p.19)

 

그리고 입학 선물로 보조 가방을 만들어 주었던 소카의 할머니. 딸 부부와 같이 살았는데, 정작 딸과는 마음이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마음이 맞지 않는다는 말은 그 동네에서 배운 것이다. 우리가 이사를 하고 인사하러 갔을 때, 할머니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p.54)

 

운동회 날이면 나는 뭐니 뭐니 해도 점심시간이 가장 좋다. 바깥 공기에서 모두가 싸 온 김밥의 김 냄새가 풍겨서 특히 좋다. (p.68)

 

‘헐(hull)’은 선체를 뜻하는 말이란다.

― 바다에서는 아주 먼 곳을 ‘헐 다운’이라고 합니다. (p.167)

 

프로는 대가 없는 장소에서 연주해서는 안 된다. 옛날에 모모이 선생님에게 그런 언질을 들었기 때문이다. (p.181)

 

― 미인은 만들어지는 거야. 여자는 미인으로 자라는 게 아니라, 미인으로 키워지는 거라고. (p.182)

 

불편함. 나는 때로 그것에 대해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자유를 추구했다. 추구했다기보다, 내게 자유는 음식이나 수면처럼 필요한 것이었다. 자유롭기 위해 싸웠다. 자유를 찾아 가출도 했다. 하지만 자유와 불편함이란 무척 닮은 것이었다. 그래서 구별을 못할 때도 있었다. (p.183)

 

인생은 불현듯 암전이 된다. (p.247)

 

고등학교에 들어온 지 두 달이다. 약속한 대로 엄마에게 매주 편지를 쓰고 있다. 고심해서 최대한 길게 쓰고 있는데 엄마에게서 오는 답장은 언제나 썰렁하다. 그래도 엄마의 글씨를 보면 안도한다. 파란 볼펜으로 쓴 엄마의 글자는 커다랗고 정성스럽다. 나는 그 편지를 통해 해변에 또다시 집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엄마가 피아노에 소음장치를 달았다는 것을 알았다.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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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 2 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 2
초(정솔) 글.그림 / 북폴리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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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 2』를 읽으면서, 나는 최양일 감독의 영화 <퀼>을 떠올렸다. <퀼>은 맹인안내견과 주변 사람들의 교류를 그린 베스트셀러 <맹인안내견 퀼의 일생(盲導犬クイ-ルの一生)>을 영화화한 작품인데, 처음 <퀼>을 보던 당시에 펑펑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반려 동물을 키운 경험이 없기 때문에, 아무래도 영화로 접한 반려 동물이 먼저 떠올랐던 것 같다. <퀼>의 퀼, 『하치 이야기』의 하치, 영화 <블라인드>에서 맹인견으로 등장한 슬기가 그러한 예다. 매체를 통한 내 간접 경험은 직접 반려 동물을 키운 경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매체들을 통해 나는, 반려 동물인 그들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걸 두고 영화로 배웠다고 하는 걸까.ㅎㅎ

 

 

  책 속 구절처럼, 신기하게도 동물은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것, 나의 시간과 분위기를 공유하는 존재라는 것, 내가 그들을 충분히 깊게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알 거라는 것을 나는, 매체 속 반려 동물들을 통해 느끼고, 알았다. 물론 매체는 매체여서, 실화를 다뤘다고 해도 살이 덧붙여진 부분도 있을 것이고, 실화가 아닌 작품도 있는 법이지만 말이다.

 

 

  『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 2』를 컴퓨터를 통해 보지 않고, 단행본으로 접해서 좋았던 점은 책에 수록된 작가의 미공개 에세이를 읽을 수 있다는 매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특히 위 4컷 중 상단 왼쪽 컷의 에세이가 참 와닿았다.

 

  배움의 즐거움 / 반려 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배움의 연속이다.

  나는 정말 오랫동안 개와 함께 지냈고, 개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해왔지만, 지금의 낭낙이는 나에게 또 다른 지식을 요구한다. 그래서 때때로 개가 늙으면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해 검색해 공부를 한다. (생략) 공부를 하는 것은 관심의 적극적인 반영이라는 생각이 든다. 낭낙이를 만나 개에 대해 알고 싶어졌고, 순대를 만나 고양이의 병에 대해 알고 싶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공부와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내가 개와 고양이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즐거울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그들에게 느끼는 애정의 증거가 아닐까.

(p.206-7)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나는 '배움의 연속'을 깨달았다.공부를 하는 것은 관심의 적극적인 반영이고, 그들에게 느끼는 애정의 증거를 넘어서 내가 이렇게  『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 2』를 읽는 것 또한 배움의 연속이라는 것을.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우울한 날, 반려 동물로 인해 기분이 좋아지는 건 그들이 작은 몸으로 최선을 다해 위로해주니까 다시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작다고 가볍게 여길 수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으며, 겁 많은 개가 많이 짖고, 환기를 위해 잠시 열어놓은 문으로 많은 강아지들이 밖으로 뛰쳐나가서 유기견이 된다는 것을, 그래서 문을 열어놓을 땐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알며, 고양이는 환경 변화에 적응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등의 '배움'. 반려 동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나로서는 정말 배울 것이 많았다. 나를 바꾼 책이니만큼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이 책은 정말이지 좋은 책이다.^^

 

 

  영화로 배우고, 글로 배우는 나로서는 정드는 것 또한 다르지 않았다. 나는 어린고양이와 늙은개, 순대와 낭낙이에게 제법 많은 정이 들었다. 웹툰이어서 가능했으며, 접한 경로가 비록 책일지라도 말이다.ㅎㅎ <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가 연재되면서 순대와 낭낙이, 탁묘 뾰롱이까지 작가님의 사랑을 넘어서 <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를 읽는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그 사랑이 순대와 낭낙이에게 직접적으로 전해지지 않을지라도.

 

 

  나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으므로, 옆에 있는 반려 동물을 한 번 더 쓰다듬어 주는 대신, 친한 친구가 키우는 '푸치'와 '땅콩'의 안부를 물어야겠다. ^^

 

p.s. 겉표지를 벗기면 볼 수 있는 온전한 표지. 창문을 통해 순대와 낭낙이를 지켜보다가, 문을 열고 순대와 낭낙이 그리고 작가님이 살고있는 집안을 바라보게 된 것 같아서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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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
릴리 블레이크 지음, 정윤희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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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개봉한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을 책으로 먼저 만났다. 공교롭게도 지난 5월에 ‘백설공주’를 소재로 한 영화는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만이 아니었다. <백설공주>라는 제목의 영화도 개봉했었는데, 두 편 다 보지 않았지만 선택해야 했다면 나는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을 선택했을 것이다. 누가 감독하고, 누가 출연하고를 떠나 ‘백설공주’를 다루는 두 작품을 비교했을 때 ‘앤 더 헌츠맨’이 붙은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이 더 끌렸기 때문이다. 사냥꾼의 재해석이라. 호기심이 생겼다.

  그러고보니 어릴 적 읽은 『백설공주』 속 사냥꾼을 떠올렸을 때, 그의 ‘결정’은 인상 깊었지만, 그의 퇴장은 굉장히 흐릿하지 않았던가.

 

  “그건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공주를 없애 버려야겠다.”

  왕비는 은밀히 사냥꾼을 불렀습니다.

  “숲에 가서 백설 공주를 죽이고 오너라.”

  “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사냥꾼은 공주를 데리고 숲으로 갔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공주는 마냥 즐거워했습니다.

  그런 공주의 모습을 보자, 사냥꾼은 차마 공주를 죽일 수 없었습니다.

  사냥꾼이 공주에게 말했습니다.

  “공주님, 성으로 돌아가시면 죽습니다. 빨리 먼 곳으로 도망치세요.” 이 말을 마치고 사냥꾼은 성으로 돌아갔습니다.

 

  위에 인용한 구절은 실제로 내가 어릴 적 읽었던 삼성출판사의 『생각하는 어린이를 위한 애니메이션 세계명작 : 백설공주』 속 구절이다.한 쪽에는 글이, 한 쪽에는 그림이 있는 책인데 그림에 담긴 사냥꾼의 모습은 백설공주를 등지고 말과 함께 성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이 전부다. 세계명작인만큼, 많은 버전의 『백설공주』가 있겠지만, 내가 읽은 『백설공주』 속 사냥꾼은 이러했다.

  그랬던 사냥꾼이 2012년, 새롭게 태어났다. 검을 쥐고 스스로의 길을 만든 백설공주와 함께. 백설공주와 이름을 나란히 한 만큼 ‘에릭’이라는 이름도 생겼고, 죽은 아내에 대한 트라우마도 가졌다. 그렇게 사냥꾼 에릭은 백설공주의 조력자 역할을 하는 동시에, 백설공주만큼이나 독립적인 캐릭터로 전개의 중심에 있는 캐릭터였다. 난 여기서 이 책의 매력을 느꼈다. 사냥꾼의 재해석은 곧, 사냥꾼의 재발견이 되었다는 것. 명작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인만큼 기존의 틀을 가지고 가되 이야기는 달라야 하는데, 이야기를 새롭게 만드는 힘을 사냥꾼에 두고, 사냥꾼이라는 캐릭터를 힘있게 끌고 가는데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사냥꾼의 퇴장이 허전하지 않았냐고? 맞다. 허전했다. 허전함을 넘어서 허무할 정도였다. 알고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더라. 속편이 나온단다. 아직 이른감이 있지만, 커밍순이다.

 

  사냥꾼 이야기를 접고,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먼저, 저자에 대한 이야기. 책을 받아들고, 영화 포스터로 만들어진 표지에 심취해있다가 뒤늦게 저자를 봤는데, 적잖이 당황했다. 블레이크 도허티 핸콕 애미니 지음이라니? 사람 이름이 이렇게 길리는 없고, 어떻게 된거지 싶어서 살펴보니 책을 집필한 사람은 릴리 블레이크고, 각색한 건 존 리 핸콕, 호세인 아마니, 애번 도히티며 영화 원작은 애번 도히티가 썼단다. 그래서 그들의 이름이 모두 들어가 블레이크 도허티 핸콕 애미니가 된 것.ㅋㅋ

  영화 원작의 이야기를 소설의 형식을 빌려 쓰인 글이라 그런지, 전형적인 소설이라기보다는 영화를 소설로 읽는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인지 가독성은 좋았지만, 조금은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다른 캐릭터들에 대한 이야기도 해보자. 먼저, 가장 짠했던 여왕, 라벤나. 사악함에 있어서는 원작의 왕비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절대 뒤지지 않는 라벤나지만 그녀에겐 충분히 납득이 가는 사연이 있었다. 왕의 군대가 자신이 속한 집시 부족의 마차를 이 잡듯이 뒤져서 집시들을 모조리 끌어내 처참하게 죽여 버렸던, 암울한 과거의 기억. 그 기억의 끝에는 복수만이 남았다. 또한 마법을 쓰게 되면 급속하게 노화하는 마법의 대가를 톡톡히 치른다는 것. 원작의 왕비가 단순히 미모에 집착했던 것에 비하면, 라벤나의 집착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짠했다. 그녀를 지탱하는 힘이 복수심에서 백설공주의 심장을 차지해 영원불멸한 아름다움을 얻는 것에 대한 집착으로 바뀌었을지라도.

  입체적인 두 캐릭터에 비해 주인공인 백설공주는 다소 평면적이다. 여전사 공주와 민폐 공주 사이 가운데에서 갈팡질팡하는 느낌. 해먼드 공작과 아들 윌리엄 때문인가 싶기도 했다. 힘이 들 때면, 기댈 구석이 있는 캐릭터라 그런지 왠지 모르게 심심한 느낌도 들었고. 뭐,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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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레드 로드
모이라 영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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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블러드 레드 로드』의 저자 모이라 영은 배우이자 댄서, 오페라 가수 등으로 활동하다 작가로 데뷔한 드문 케이스의 작가다. 첫 소설인 『블러드 레드 로드』가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작품에 수여하는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 ‘코스타 북 어워드’를 수상했고, <블레이드 러너>, <글래디에이터>등을 만든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흥행 감독 리들리 스콧이 정식 출간 전부터 판권을 사들여 영화화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도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모이라 영의 인생 2막은 그야말로 화려하게 시작되었다.

  작가에게 있어 인생 2막을 화려하게 시작할 수 있게 해준 작품인 만큼, 소설 속 주인공의 삶도 굉장히 궁금해진 소설이었다.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블러드 레드 로드』의 주인공 사바 역시 쌍둥이 오빠 루의 납치로 본의 아니게 인생 2막을 맞이하게 된다. 화려하게 시작한 작가의 인생과는 대비되는, 암울한 시작이었지만 말이다.

 

  "루가 앞장선다. 언제나 앞장서고, 나는 그 뒤를 따른다. 그래도 괜찮다. 그게 옳은 거니까. 원래 그렇게 되어야 하는 거니까. 루는 아름답고, 나는 못생겼다. 루는 강인하고, 나는 비쩍 말랐다. 그는 나의 빛이다. 나는 그의 그림자고, 루는 태양처럼 빛난다. 그래서 그들이 그를 찾아오는 게 그렇게 쉬웠을 것이다. 그냥 그의 빛만 ."라고 말하던 열여덟 소녀 사바는 더 이상 없었다, 자신과 가족들이 살고 있는 은빛호수에 낯선 네 남자가 찾아와 아빠를 살해하고, 쌍둥이 오빠 루를 납치해 간 그 날부터.

 

  겉으로 보기에는 또 하루의 평범한 날 같았다. 어제, 지난주, 한 달 전과 같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니다. 오늘은 다른 날과 다르다.

  전에는 몰랐다. 모든 게 멀쩡하다가 한순간에 엉망진창이 되어서 그 순간 전에 있었던 모든 일이 마치 꿈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걸 조금도 몰랐었다.

  아니면 이게 꿈인지도 모른다. 폭풍과 아빠를 죽이고 루를 납치해간 검은 옷의 남자들에 관한 길고 끔찍한 꿈. 어쩌면 금방 깨어날지도 모른다. 모두에게 이 이야기를 하고. 정말로 이상한 꿈이라고 다 함께 고개를 흔들며 말하게 될지도.

  오른손이 뻐근하게 아프다. 나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더럽고 찢어진 천이 손에 감겨 있다. 그 부분을 찔러 보자 팔을 타고 날카로운 고통이 흘렀다. 아무래도 진짜인 것 같다. (p.52)

 

  나는 이 구절이 참 좋았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부정해보지만 끝내 인정하게 되는 사바의 내면이 담긴 구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가장 현실적인 구절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사바였어도 저랬겠다 싶어서, 공감할 수 있었다. 또, 이 구절이 있었기 때문에 루를 되찾는 여정을 통한 사바의 성장이 더욱 더 견고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블러드 레드 로드』와  『헝거 게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소설이 펼쳐지는 공간이다. 『헝거 게임』은 게임이 펼쳐지는 '경기장'답게 전개되는 공간이 축약적이고 다소 제한적이라면, 『블러드 레드 로드』는 은빛 호수에서부터 자유의 평원까지 전개되는 공간이 광대하고, 무궁하다. 그래서인지 등장하는 인물들도 상당히 많다. 동생 에미와 함께 제일 먼저 도착했던 두물머리에는 머시 아줌마가 있었고, 희망시를 향해 가던 길에 루스터 & 미즈 핀치 부부를 만나고, 핀치 부부에 의해 들어가게 된 콜로세움에서는 루에 대한 정보를 준 헬렌과 자유의 매의 일원인 매브와 에포나, 애시를 만난다, 루 다음으로 사바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잭을 만나는 곳도 콜로세움이다. 자유의 평원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이케와 토모까지. 루를 되찾는 여정이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기에, 사바와 에미에게 동행자가 많았던 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은빛호수부터 함께했던 영리한 까마귀 네로야 말할 것도 없고.^^

 

  사람들은 나를 죽음의 천사라고 부른다.

  한 번도 싸움에 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매번 철창 안으로 들어가면 그저 불타오르는 시뻘건 열기에 몸을 맡겨 버린다. 그리고 그 감정이 이길 때까지 나를 싸우게 한다.

  만약 내 상대가 세 번째로 패배한 상황이라면, 그 애가 공개처형을 당하러 끌려가는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 나는 그저 등을 돌린다. 하지만 소리는 들린다. 찰로 흥분한 군중들이 패배자를 죽이기 위해 달려오며 내지르는 함성 소리.

  나는 마음을 닫아 버린다. 거기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나는 살아남아야 한다. 여기서 나가서 루를 찾아야 한다. 그는 여전히 바깥 어디선가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안다. 그들은 그를 여기, 희망 시 어딘가에 붙잡아 두고 있을 것이다. 희망 시. 여기는 머시 아줌마가 말한 대로 지옥구덩이다. 쓰레기더미에서 기어 나온 온갖 더러운 범죄자들이 이곳으로 오는 방법을 찾아 내는 것 같다. (p.164)

 

  루를 되찾는 여정을 계속하기 위해, 사바는 '죽음의 천사'라는 별명을 얻으면서 콜로세움의 1인자로 등극한다. 죽지 않기 위해 싸움에서 이겼고, 매번 이기다보니 얻게 된 별명과 자리다. 죽음과 천사가 공존하는 별명이라니. 아이러니하다. 죽음의 천사보다 더 아이러니한 건 희망시다. 희망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시가 바로 희망시가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바는 끝내 살아남았고, 콜로세움에서 만난 자유의 매 일원인 매브-에포나와 손을 잡고 전투사를 구출, 희망시를 불태운 뒤 떠난다. 그렇게, 희망시에서 그들의 희망은 그들 스스로가 만든 희망이었다. 이케와 토모가 합세하면서 그 수가 더 많아진 사바 무리에겐 더 큰 고난과 희생이 따른다. 힘겨운 여정이지만, 서로에게 서로가 존재하기 버틸 수 있었다.

 

  당연히 뭔가가 느껴져야 하는데, 기쁨이나 안도감이나 승리감이나……, 어쨌든 뭔가가.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p.484)

 

  루가 잡혀있는 자유의 평원에서 그들은 루를 되찾음과 동시에 자유를 되찾는다. 끝내 되찾은 자유인데, 어쩐지 끝은 좀 허무하다고 사바는 생각했다.

 

  루가 고개를 돌리고서 미소를 지었다.

  "어이, 그 뒤에서 뭐하고 있는 거야? 어디로 가야 하는지 난 전혀 모른다고. 이리 와서 앞장서."

  루가 말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갔다. (p.497)

 

  그렇게, 길고 길었던 여정은 마침표를 찍는다.

 

  『블러드 레드 로드』에서 무엇보다 아쉬웠던 점은, 에미에 대한 사바의 태도였다. 어린 에미가 자신과 있는 것보다 어느 장소에 머무르는 것이 더 안전할 거라는 생각에서 기인한 생각이긴 했지만, 그 태도가 장소를 옮길 때마다 계속해서 나오고, 그게 반복되다보니 꽤 답답하게 느껴졌다. 물론 사바가 에미에 대한 태도를 반복함으로써, 사바의 뜻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여정을 함께하는 에미의 성격을 나타내려고 했을지라도 말이다.

  영화가 소설을 완벽하게 구현하진 못하겠지만, 은빛호수에서 희망시, 콜로세움, 자유의평원으로 이어지는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스크린에서 어떻게 묘사될지 궁금하다. 『블러드 레드 로드』에 이은 2권 『Rebel Heart』가 2012년 후반 미국에서 출간된다는데, 2권에서는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자못 궁금하다.

 

p.s.번역서 띠지나 홍보문구에서 종종 만나게 되는 매체인 퍼블리셔스 위클리는 <블러드 레드 로드>에 대해 “그야말로 파워풀한 데뷔작! 건조하면서도 매력 넘치는 문장이 『로드』의 코맥 매카시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헝거 게임』의 팬이라면 반드시 빠져들 책.”이라고 언급했다. 두 작품 중 『헝거 게임』을 굉장히 재밌게 읽은 나로서는, 이 책에 대해 기대감을 갖게 만든 동시에 비교하게 만들기도 했다. (여기서 비교는 두 작품 간의 우열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차이점을 통해 두 작품 각각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비교를 말한다.^^) 『헝거 게임』을 읽은 사람이라면, 나처럼 두 작품을 비교해서 읽는 재미도 쏠쏠할 거라 생각한다.

 

p.s.2 서평의 제목을 '아무래도 진짜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갔다.'라고 붙였는데, 전자는 가장 좋아하는 구절의 마지막 문장이고, 후자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다. 장난삼아 두 문장을 붙여봤는데, 붙여놓고 보니 본래 한 구절인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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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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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새 안경을 맞추기 위해 안경점을 찾았다. 시력 검사를 마치고, 안경테를 고르고 안경이 완성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다른 안경사와 고객의 대화가 들려왔다. 그들의 대화가 들리기 시작한 건 둘 다 여성이었던 안경사와 고객이 대화를 통해 두 사람이 동갑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한 사람은 결혼했고, 다른 한 사람은 곧 결혼 예정이라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떠들썩해진 순간부터였다. 이야기는 점점 두 사람의 사적인 부분으로 들어갔으므로 나는 이야기를 더 이상 듣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둘 말고는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계속해서 듣게 됐다. 결혼을 앞둔 고객은 ‘하객’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친구가 얼마 없어서 이러다가 정말 돈을 들여 알바를 고용해야할 것 같다며 쓰게 웃었다.

  그 둘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이렇게 풀어쓰게 된 건 비단 그 고객만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내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 고객이 정말 결혼식 당일, 자신의 친구 역할을 대행해 줄 사람을 고용할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실제로 결혼식 하객 아르바이트가 존재하고, 심지어는 대행업체까지 있는 우울하지만 엄연히 사실인 이야기다. 

 

  하객 아르바이트를 고용한다고 하자. 그 사람이 결혼식 당일, 하객으로 참석해서 결혼식을 지켜봐주고 단체사진을 찍는 친구 한 명이 되어 줄 순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지금부터 시작 될 내 결혼 생활에 관한 이야기는 들어주고, 맞장구 쳐주며 내 편이 되어주는 친구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전자는 당장 돈으로 살 수 있을지 몰라도 후자는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이야기는 이 책,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읽으며 떠오른 내 실제 경험담이다. 내 경험담으로 글을 시작한 건, 이 책 역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예로 시작하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책 전반에 있어 예를 들면서 주제에 관해 논하기 때문에, 책을 읽기에 앞서 막막한 느낌이 앞섰던 내게는 이 책을 시작하고, 마지막까지 집중 있게 읽게 한 큰 힘이 되었다.

 

  내게 큰 힘이 되었던 예시들은 크게 새치기, 인센티브, 시장은 어떻게 도덕을 밀어내는가, 삶과 죽음의 시장, 명명권이라는 5가지의 대주제로 나뉘어 책 곳곳에 녹아들었다. 그 덕분에 각각의 대주제가 가지는 중심 주제가 내 머릿속에서 온전하게 정립되고, 나아가 그 주제에 관한 고민을 계속 해 나가는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대주제가 생각이 안 날지라도, 예시를 떠올리면 대주제가 생각나지 않을까.

  예시에 관한 예찬이 길었는데, 아무래도 미국인이 쓴 책이다 보니 예시 또한 미국이나 외국에서 행해지는 일에 대한 예시이다 보니 내 일상과는 조금 거리가 먼 예시도 있기 마련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국과 내 일상에 맞춰 예시를 대입해서 책을 읽었다. 대표적으로 대주제 ‘명명권’에 나오는 예시 중에 이런 예시가 있다.

 

  3년이 지나 배리 본즈(Barry Bonds)가 한 시즌에 홈런 73개를 치면서 맥과이어의 기록을 깼다. 관람석에서는 73번째 홈런공을 잡기 위한 추한 싸움이 벌어졌고 결국 기나긴 법적 논쟁으로 이어졌다. 홈런공을 잡은 팬이 그 공을 잡으려고 몰려든 사람들 무리에 떠밀려 바닥에 넘어졌던 것이다. (p.231)

 

  이 예시를 읽으면서 나는 2009년에 한국 프로야구 통산 2만 번째 홈런이 기록된 날을 떠올렸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배리 본즈의 73번째 홈런이 있었다면, 한국 프로야구에서는한화이글스 연경흠의 통산 2만 번째 홈런이 있었고, 홈런공을 잡기 위한 추한 싸움 역시 미국뿐만 아니라 부산 사직구장에서도 볼 수 있었다’라는 식으로 예시를 대입해 더 친숙하게 받아들임으로써 ‘명명권’의 주제를 더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처럼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실제 일어난 일에, 한국에서 실제 일어난 일을 대입 할 수 있는 것은 명명권을 넘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해당하며 우리 인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시장은 훌륭한 선택과 저급한 선택을 구별하지 않는다. 거래하는 쌍방은 교환 대상에 어떤 가치를 둘지 스스로 판단할 뿐이다. (p. 33)’

 

  하지만 내가 말하려는 요점은 시장과 상업이 재화의 성질을 바꾸는 상황을 목격했다면 시장에 속한 영역은 무엇이고 시장에 속하지 않은 영역은 무엇인지 의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재화의 의미와 목적, 재화를 지배해야 하는 가치를 놓고 깊이 사고하지 않고서는 이러한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p. 274)

 

  시장에서 태연하게 거래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생각만 했지, 사고하려 하지 않았던 내게 있어 정곡을 찌른 구절이다. 내가 사고하지 않고, 생각만 하고 있는 동안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여러 문제들은 마이클 샌델의 말마따나 미해결 상태로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시장이 우리 대신 결정을 내리도록 허용하게 되는 셈이다.(p. 274)’라는 구절을 마주했을 때, 나는 순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사고하고 토의한다면 우리는 ‘상충하는 모든 의문에 관해 합의점에 도달(p. 34)’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관해 마이클 샌델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더욱 건강한 공공생활을 형성할 것이며, 또한 무엇이나 거래의 대상이 되는 사회에서 살아갈 때 치러야 하는 대가를 좀 더 의식하게 될 것이다.(p. 34)’라며 덧붙인다.

 

  옳고 그름에 대해 정확한 답이 없는 문제인 만큼 저자 또한 해결책이나 답을 제시하지 않으며 어느 쪽이 선(善)이고 선(善)이 아닌지에 대한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끝까지 물음을 던질 뿐이다.

 

  따라서 결국 시장의 문제는 사실상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싶은가에 관한 문제다. 모든 것을 사고팔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도덕적⋅시민적 재화는 존재하는가? (p. 276)

 

  저자가 쉬이 해결책을 제시하고,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 이유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특정한 사람들에게 한정되는 문제가 아닌, 전 세계적이며 인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물음처럼 정말이지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싶은지, 그 아무리 ‘돈’이라 할지라도 살 수 없는 도덕적⋅시민적 재화는 과연 존재하는지에 관한 끝없는 물음을 던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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