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을 건너는 아이들
코번 애디슨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허구인 소설보다 더 허구 같은 현실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인도 뭄바이 매음굴을 잠입 취재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소설, 『태양을 건너는 아이들』보다 더 허구 같은 현실. 전 세계적으로 뻗어있는 인신매매조직은 한 해 320억 달러의 수익을 내고 있으며, 2,700만 명의 사람들이 강제 매춘과 노예 생활에 사로잡혀 있고 그 중에서도 성노예로 착취당하는 아동의 숫자만 2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인신매매를 통해 수익을 얻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모순인데, 아동 성노예라니. 이 얼마나 모순의 끝인지.

 

국제인신매매의 희생자가 된 자매이자 두 소녀, 아할리아와 시타의 생지옥 같은 현실의 시작은 쓰나미였다. 인간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저항해 볼 수도 없는, 불가항력 그 자체. 가족 중에서 자매 둘만 불가항력을 피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을까, 불운이었을까? 책의 전반부를 읽을 당시에는 절대적으로 불운이라 생각했고, 아이들에게는 평생 불운이었다고 기억될지 모르겠지만 완독하고 난 후의 나의 생각은 이러했다. 행운으로 살아남았지만 행운은 불운이 되어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삶이 되었고, 결국 자매의 삶은 운으로 좌지우지될 삶이 아니라 자매의 강인한 정신력으로 살아낸 삶이었다고 말이다.

 

“나도 예전엔 너 같았지. 난 집에 있다가 모르는 남자들한테 여기로 잡혀 왔어. 이런 소굴에서 사는 건 힘들지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어. 자기 업보랑 싸워 봐야 무슨 소용이야. 신의 뜻을 받아들이면 더 좋은 곳에서 환생할 수 있을 거야.”

꽃 장식을 물그릇 가장자리에 걸쳐 놓고 그녀는 느릿느릿 몸을 일으켜 계단을 내려갔다.

다시 단둘이 있게 되자, 시타는 헝겊을 물에 적셔 아할리아에게 건네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

“그 여자 말이 맞아? 이게 우리 업보야?”

아할리아는 헝겊을 쥐고 눈물 고인 눈으로 바닥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나도 모르겠어.”

정말 그랬다. (p.68-69)

 

신의 뜻을 받아들이면 더 좋은 곳에서 환생할 수 있을 거라는 수미라의 말을 아할리아와 시타는 이해할 수 없었고, 책을 읽는 나 역시도 이해할 수 없긴 마찬가지였다. 신의 뜻을 받아들이라니? 신은 이미 아할리아와 시타 자매와 신의 뜻을 받아들이라는 수미라 역시 예전에 저버리지 않았던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자기 업보와 싸워 봐야 무슨 소용이며, 신의 뜻을 받아들이면 더 좋은 곳에서 환생할 수 있을 거라는 수미라의 말은 어쩌면 수미라가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어찌 됐건 그 믿음이 매음굴의 빅마마인 수미라를 살게 했을 것이므로.

 

매음굴로 팔려온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난 후, 언니인 아할리아는 중년의 남자와 초야를 치르고 동생 시타는 다시 마약상 조직에게 넘겨져 헤로인을 넣은 콘돔 서른 알을 삼킨 채 파리로 가게 된다.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꼭 살아남아 서로를 찾고 말겠다는 의지로 꿋꿋이 견뎌내는 두 자매를 보면서 나는 안쓰러워 혼났다. 말로는 설명 할 수 없을 정도로 끝없는 안쓰러움이 계속해서 밀려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둘의 삶을 읽어갈 수 있었던 건 둘의 재회를 위해 애쓰는 변호사 토머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작한 일이었을지라도 그는 끝내 포기하지 않았고, 해냈으니까.

이 책을 읽은 독자 중 ‘젠 밀러’라는 독자가 한 말처럼, 아동 성매매라는 사안을 희생자인 아할리아와 시타 두 자매의 시선으로도 담아내고, 이 끔찍한 범죄를 막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중 한명인 토머스의 시선으로도 담아내서 더 집중해서 읽게 됐던 것 같다. 또, 이 두 가지 시선은 내게 있어서 도무지 믿고 싶지 않은 이 말도 안 되는 끔찍한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에 씁쓸하다가도, 어디선가 아이들을 돕기 위해 애쓰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인신매매는 개발도상국에서나 일어나는 이야기인 줄 알았으나, 공원에서 유아가 납치되는 광경을 목격한 후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고백한 작가 코번 애디슨. 그의 착실한 취재를 바탕으로 그려진 덕분에 나는 뭄바이의 매음굴에, 파리 뒷골목에, 뉴저지의 휴게소 사창가에 가있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소설을 읽었다. 생생한 묘사로 인해 소설을 읽어내는데 더 힘겨웠지만 책을 위해 인신매매에 관한 자료를 닥치는 대로 찾아 읽고 관련 전문가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강제 성매매를 막기 위해 싸우는 인도 인권 단체 조사관들과 동고동락하며 인신매매조직과 희생자들의 공판도 참관하며 직접 뭄바이의 매음굴에 찾아가고 희생자들과 가해자들을 만나면서 고생했을 작가만큼 힘겨웠을까 생각하니 내 감정은 아주 사소해졌다. 그의 노력이 있었고, 그 노력을 바탕으로 소설이 쓰인 덕분에 나는 이 책을 읽을 수 있지 않았던가. 그리고 누구보다 힘겨운 사람은, 지금 이 순간에도 소설 속 아할리아와 시타의 삶을 실제로 살아내고 있을 아이들(피해자)임을 안다. 내가 어떻게 하면 그런 아이들에게 힘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아이들의 이야기가 그려진 이 책을 읽고 아이들의 삶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는 최선이라는 것 또한 안다.

 

하지만 제가 개인적인 경험으로 한 가지 장담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불가능해 보이겠지만, 내일은 꼭 올 겁니다. 이 어둠의 반대편에서 새로운 날이 천천히 시작될 겁니다. 저도 얼마 전에 딸을 잃었기 때문에 알아요. 오늘 저는 딸의 묘지를 찾아갔습니다. 묘석에 새겨진 딸의 이름을 볼 때마다 가슴이 무너져 내려요. 부인이 애비를 지키지 못했던 것처럼 저도 제 딸을 지키지 못했죠. 하지만 모히니와 애비는 우리가 가지지 못한 걸 가졌어요. 이제 죽음은 그 아이들에게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습니다. 어디에 있든 아이들은 평화를 찾았을 겁니다. (p.457)

 

지금 당장은 불가능했지만, 서로를 만날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살아남았을 아할리아와 시타. 둘의 내일을 위해 끝까지 노력한 토머스. 암울한 현실 속에서 그들이 보여준 벅찬 희망. 이들의 엔딩은 소설 속 이야기였지만, 나는 이 이야기가 소설 밖의 이야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허구인 소설보다 더 허구같은 현실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야하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에 관한 쓸 만한 이론
스콧 허친스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여기, 조금은 특별한 상대와 매일 대화하는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닐 바셋 주니어, 삼십 대의 이혼남이다. 그가 매일 대화하는, 조금은 특별한 상대는 ‘닥터바셋’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공지능 컴퓨터다. 단순한 인공지능 컴퓨터였다면, 특별하다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닥터바셋이’ 조금은 특별한 이유는 돌아가신 닐의 아버지의 일기를 토대로 한 인공지능 컴퓨터이기 때문이다.

 

각국의 이미 발간된 책과, 곧 출간될 책들의 소식이 한데 모이는 세계 최대 도서전 ‘프랑크푸르트 북 페어’에서 단연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로 꼽혔다는 이 책. 납득이 갔다. 책의 작품성은 둘째치더라도, 설정만큼은 정말이지 인상 깊었으니까. 스스로 권총을 쏘아 자살한 ‘아버지’가 생전에 기록했던 모든 사소한 생활, 감정, 대화가 담긴 일기는 인공지능 컴퓨터의 지능을 결정하고 발전시키는 데이터가 되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닥터바셋’과 닐의 대화는 상상이상으로 재밌었다. 처음엔 일로 시작했던 컴퓨터 속 아버지와의 대화는, 작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프로그램이 점점 실제 아버지에 가까워지면서 더욱 깊어진다. 닐의 아버지가 살아있었다 하더라도 부자간에 이렇게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자, 이 소설의 설정이 더욱 흥미로워졌다. 실존하는 아버지였다면, 대답하지 않고 침묵했을법한 말들도 ‘닥터바셋’은 빼는 법 없이 대답한다. (닥터바셋이 실제 아버지에 가까워지면서 오류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도 그럴게, ‘닥터바셋’은 인공지능 컴퓨터가 아닌가. 아무리 아버지의 사소한 생활, 감정, 대화가 담긴 일기로 만들어졌다 할지라도, 그냥 컴퓨터가 아니라 인공지능 컴퓨터라 할지라도 ‘닥터바셋’은 엄연한 컴퓨터다. 질문을 입력하면 답을 출력해야하는 컴퓨터 말이다. 대하기 가장 어려웠던 아버지와 대하기 가장 쉽다고 말할 수 있는 컴퓨터, 상상하지 못했던 이 기막힌 조합. 목소리가 오가는 대화 대신 모니터에 기록되는 대화가 오고가며, 자살로 세상을 떠난 후의 아버지의 생각이 담겨있지는 않지만 이 세상 그 어떤 대화가 부럽지 않은 대화임은 틀림없다. ‘닥터바셋’을 통해 아버지 생전에 듣지 못했던 아버지의 생각과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닐은 숱한 세월 동안 가슴 속에 응어리진 오해와 이면의 진실을 깨닫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닐은 ‘사랑에 관한 쓸 만한 이론’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다.

 

하지만 쓸 만한 사랑 이론은, 결국에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적자생존의 세상에 갇혀 있거나 아니면 위대한 신이 강림할 그릇일 뿐이다. 아니면 시장에 조종당하고 있는 수벌들일 뿐이거나, 사랑은 자기실현이다. 사랑은 자력이다(석면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이 도움은 되지만 불완전한 설명이고(각각이 약간은 냉정한 면을 갖고 있다), 서로 상충되고 결국에 어떤 결론도 내놓지 못한다. (p.493)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에 빠진다며, 자신을 예로 드는 닐. 또, 자신이 갖고 있는 사랑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알고 있음을 안다. 닐이 이럴 수 있었던 건, 차갑고 완고해서 살아있을 때도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아버지의 일기를 토대로 만들어진 인공지능 컴퓨터 ‘닥터바셋’과의 대화가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가 배운 건 사랑에 관한 쓸 만한 이론이 아니라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에 관한 쓸 만한 이론이 아니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잡동사니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장 최근에 읽은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이 『하느님의 보트』였던 탓일까? 나는 이번 책 『잡동사니』를 읽으면서 『하느님의 보트』를 자주 떠올렸다. 그건 아마도, 『하느님의 보트』를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시점’에 대해 계속 생각하며 읽었기 때문인 듯 싶다. 엄마이자 어른인 요코의 시점과 아이이자 딸인 소우코의 시점이 번갈아가며 진행되던 『하느님의 보트』는 때론 연애소설로, 때론 성장소설로 읽을 수 있었다. 이 점이 내게 있어서 소설의 매력을 극대화했던 부분이었다.

 

이번 작품 『잡동사니』역시 마흔다섯 살 슈코와 열다섯 살 미우미의 시점이 번갈아가며 전개되는 점이 흥미로웠다. 10대 소녀와 40대 여성의 상반된 감성. 이 부분은 『하느님의 보트』와는 다르게 흥미로운 점이었다. 나는 슈코의 사랑도, 미우미의 사랑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들의 시점으로 읽고 있노라면 슈코는 이래서 이런 사랑을 하고, 미우미는 이래서 이런 사랑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읽었다.

 

이 책의 흥미로웠던 점 중 또 하나는 소설에 쓰인 시점과 비중 때문인지는 몰라도 하라 슈코-하라 다케오-네기시 미우미, 세 명의 삼각관계에 초점이 맞춰있는게 아니라 슈코와 슈코만의 하라 다케오, 미우미와 미우미만의 하라 다케오로 초점이 맞춰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슈코와 미우미의 만남이 이들의 첫 만남이기도 하고, 이야기의 중심은 이 둘이 이야기하는 하라 다케오가 아니라 이야기를 하는 슈코와 미우미에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이 에쿠니 가오리, 그녀의 소설을 찾아 읽게 만드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마냥 위험하고 비도덕적이며 비정상적인 관계를 이야기하는 소설이었다면, 나는 분명히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을 독차지하기 위해 남편의 여자친구까지 인정하는 슈코의 이야기, 아버지뻘의 남자인 슈코의 남편 하라 다케오와 첫 경험을 하는 미우미의 이야기가 소설의 전부였다면 말이다.

 

세 살 때 미국으로 떠나 갓 일본에 돌아온, 사랑에 저돌적인 맹랑한 소녀 미우미. 결혼따위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의 남편을 만나 그의 사랑만을 간절히 원하는 슈코. 이 두 여자가 몇 번의 만남을 반복하고 서로를 관찰하는 과정에서 흐르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 서로를 향한 질투, 그리고 동경마저 솔직하게 고백하는 부분들이 재밌었다. 예를 들면 이런 부분이다.

 

  “질투잖아, 그거.”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질투? 하지만 아직 어린애인걸, 말도 안 돼.”

  “바로 그거야. 아이와 어른의 중간, 네가 잃은 것과 얻은 것을 둘 다 가지고 있으니까. 지금밖에 가질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생명력이 저 아이에게는 있으니까.” (p.37)

 

소설의 제목인 ‘잡동사니’에 담긴 의미는 슈코의 사랑이나 미우미의 사랑을 뜻하는게 아니었다.

 

  여기저기 사진이 장식되어 있다. 창가에는 관엽식물을 심은 화분이 세 개 놓여 있다. 남편이 손수 만들었다는 가구는 하나같이 낡고 퇴색되었다. 둥그렇고 큼지막한 털실 뭉치가 들어 있는 바구니, 의자에 앉은 앤티크 인형.

  내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사야카 씨가 말했다.

  “너무 어질러져 있지? 당최 뭘 버리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고 말았다. 딱히 어질러져 있다는 생각으로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이 방은 전혀 어질러져 있지 않다. 오히려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추억의 물건들이네요.”

  엄마가 한마디 거들자 사아캬 씨는 손에 든 잔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잔을 천천히 흔들어 백포도주를 회전시킨다. 그리고 말했다.

  “잡동사니들뿐이에요.” 쓸쓸하게 미소 지으며, 하지만 어쩐지 자랑스러운 듯이. (p.293-294)

 

바로, 죽은 남편을 잊지 못해 그의 물건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고이 모셔두는 사야카 씨의 사랑이었다. 그런 그녀의 행동을 광기라 부를 수도 있겠지만, 그녀가 말하는 ‘잡동사니들뿐’이라는 말이, 내겐 어쩐지 ‘사랑뿐’이라고 들렸다. 어질러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깔끔하게 정돈되어 집안 곳곳에 놓여있는 잡동사니에, 죽은 남편에 대한 사야카씨의 사랑이 담긴 것이라고. 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길이 그를 추억할 수 있는 잡동사니들이 전부라는 것이 쓸쓸하지만, 모든 잡동사니가 그에 대한 그녀의 사랑, 전부이기에 그녀는 어쩐지 자랑스럽게 미소 지었을 것이다.

 

  “분명 좋은 어머니이실 것 같아.”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말을 했다 싶었는데 미미는 나를 똑바로 응시하며 그건, 하고 무표정하게 말했다.

  “그건, 슈코 씨가 생각하는 ‘좋은 어머니’가 어떤 것이냐에 달려 있죠.” (p.192)

 

슈코와 미우미의 사랑을 이해할 순 없었지만, 이 구절을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우리의 사랑이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고.

 

 

* 그 외 인상깊었던 구절들 *

 

아주 짧은 순간이긴 하지만 강하게, 내 자신이 미미를 눈부시다고 여겼던 것을 깨닫는다. 미미가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갖고 있지 않은 것이 주는, 그건 눈부심이다.

(p.231)

 

내 생각이긴 하지만 그 집 사람들은 모두 눈앞에 있는 인간을 그저 눈앞에 있는 인간으로밖에 보지 않는다. 어린아이가 아닌, 그렇다고 슈코 씨 같은 성인 여자도 아닌, 네기시 미우미로만 나를 본다. 따라서 나는 존재할 수 있다. 분명하고 확실하게. 그 증거(아마도)로 하라 씨는 종종 내게 소홀히 대하진 않을 테니까, 하고 말한다. 그건 하라 씨의 의도적인 말실수랄까, 일부러 그런 말을 골라 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가족 모두가 솔직한 것이다. (p.269)

 

핸들을 잡고 전방의 차량 흐름을 주시한 채 어이없는 내 자신을 속으로 비웃었다. 나는 남편에게 지배당하고 싶어 못 견디면서 동시에 그 이전의 나를 고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남편이 그토록 사랑했던 여자는 바로 그때의 나이기 때문이다. (p.18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뉴욕의사의 건강백신 - 전 국민 건강 블로그 <뉴욕에서 의사하기>의 레알 건강 토크
고수민 지음 / 북폴리오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나는 저자 고수민님의 이력이 참 재미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일단 그냥 의사가 아닌 뉴욕의사 라는 점이 눈에 들었다. 여기서 뉴욕의사라는 말은 현재 뉴욕에서 의원을 경영하고 있는 의사라는 말이지만, 책을 읽어보면 뉴욕의사라는 그의 수식어가 와 닿는다. 예를 들어, 자동차 헤드레스트 높이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한국과 미국의 자동차 헤드레스트 높이를 비교해가며 설명하거나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에서의 비만 문제에 대한 이야기, 광우병에 대한 이야기 역시 한국에서의 관점과 미국에서의 관점을 같이 언급해줘서 함께 접할 수 있다보니 건강에 대한 지식이 더욱 폭 넓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프롤로그 속 저자의 말처럼 4년으로 끝났을지도 모르는 수련 생활을 통해 저자는 질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생겼다고 한다. 예를 들어, 어떤 환자가 요통과 당뇨를 가지고 있다면 예전에는 개개의 질환을 치료하는데 너무 집중한 나머지 이 두 가지를 연결해서 볼 줄 몰랐지만, 이 환자 전체를 놓고 곰곰 생각해보니 두 가지 질병의 연결고리로 복부 비만이 있었고 이 문제가 당뇨병과 요통을 다 악화시키는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생각이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아가 그 복부 비만의 기저에는 반복되는 다이어트 실패와 비만에 대한 잘못된 이해, 심리적 우울이라는 원인이 겹쳐 있을 수 있다는 것까지 생각하게 된 것이라고.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저자의 종합적인 시각이 담기도록 최대한 노력했다고 하는 저자의 말이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왜냐하면, 질병은 한 가지 요인에서 기인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최근에 몸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부터 느껴진 발바닥 통증이 날이 갈수록 심해져서 안 되겠다 싶어 한의원을 찾았는데, 한의사 선생님이 진단하시길 내 병명은 ‘족저근막염’이었다. 말 그대로 족저근막에 염증으로 통증이 유발되는 병인데, 발바닥에 통증이 있으니 나는 당연히 발바닥의 문제겠거니 했다. 그런데 한의사 선생님은 발바닥 통증이 단순한 발바닥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허리나 종아리 근육에 문제가 있어서 발바닥에 통증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며 허리랑 종아리에는 별다른 통증이 없는지 확인하셨다. 확인 결과 허리와 종아리에는 아무런 통증이 없는데도 발바닥 통증이 이어졌던지라 나는 순수한 족저근막염이었다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나는 그 후로 어딘가 아프면, 일차적으로 왜 아픈지에 대해 생각하고 이차적으로 다른 곳에 문제가 있어서 아픈 건 아닐까하고 생각하게 됐다. 그 일로 질병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이 생긴 덕분에 이 책을 더 재밌게 읽었던 것 같다.

 

질병에 대한 종합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건강에 대한 이야기가 생활, 직장인, 질병, 여성 등 분야별로 언급되어 있는데 건강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분의 글이라 그런지 술술 잘 읽혔던 것 같다. 특히 나와 연관이 많은 생활과 직장인 부분은 부담 없이 읽었고, 나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질병에 대한 정보와 당연히 알아야하지만 모르고 살았던 여성 건강에 대한 부분까지도 끝까지 막힘없이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건강에 대한 정보만 제시되는 딱딱한 책이 아니라, 언제든 담백하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로 채워진 건강에세이여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지인 여럿에게 추천했는데, 특히 책과 거리가 먼 엄마가 가장 좋아하셨다. 이런 책이라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겠다며 말이다. 나 역시도 완독하긴 했지만, 잘 알고 있는 분야가 아니다보니 살아가면서 두고 두고 찾게 될 책일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 3 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 3
초(정솔) 글.그림 / 북폴리오 / 201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낭낙이와 순대를 만난 건 작년 7월이었다. 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 2권을 종이책으로 접한 후로 나는 2권 이전의 이야기들을 찾아보고, 2권 이후의 이야기들을 기다리며 챙겨보게 되었다. 친구가 여전히 애완견 푸치를 키우고, 동생이 유기견 보호센터에 봉사활동을 나가 유기견을 돌보는 가운데에서 나는 주말마다 동물농장을 챙겨보고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는 이웃 블로거의 블로그에 자주 놀러가 두부라는 이름의 강아지를, 망고라는 이름의 고양이 사진을 엄마미소 짓고 챙겨보곤 했다. 나의 이러한 소소한 행동들은 강아지와 고양이를 좋아하는 나만의 방식이었다. 책을 읽는 행위만이 독서가 아니라 서점에 방문해 책을 구경하고, 책을 선물하기 위해 책을 고르고, 때로는 서평을 읽고 지인에게 책 추천을 받는 것 모두 독서라고 말할 수 있듯이 말이다. 물론 책을 구경하는데 그친 사람과 시간을 투자해 책을 읽은 사람과의 차이가 있듯이 강아지나 고양이를 직접 키우는 것과 나만의 방식으로 좋아하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면, 그 사정에 맞추어 최선을 다해 사랑하면 된다.

(『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 2』中)

 

이 책은 그런 책이다. 만화를 읽어준 독자에게 감상을 바라지 않고, 그냥 옆에 있는 반려동물을 한 번 더 쓰다듬어 주시면 좋겠거니 하는 생각은 하고 있다는 책. 그래서 나는 이 책이 더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책을 읽는 나에게 바라는 것이 없어서 나는 나만의 사정에 맞추어 최선을 다해 사랑할 수 있었고, 그래서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뾰롱이와 헤어질 텐데 그렇게 정이 들었으니 헤어질 일을 생각하면 무섭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헤어짐이 무서워 사랑하지 않는 건 아까운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한다면 평생 아무도 사랑할 수 없고, 따라서 기쁨과 보람도 느낄 수 없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한다면 언젠가 헤어지더라도 아쉬움보다는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었다는 기쁨이 더욱 크리라고 생각한다. (p.255)

 

모든 사랑이 그러하지만, 반려동물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헤어짐이 무서워 사랑하지 않는 건 아까운 일이라는 것을 나는 낭낙이와 순대를 만나고 알게 되었다. 여기에 탁묘 뾰롱이와 『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 속 모든 반려동물들 덕분에 말이다. 사람은 사람이니까 서로 닮아가고, 반려동물은 반려동물이니까 주인을 닮아가고, 나도 모르는 사이 섞이고 스며들어 비슷해져 가고, 어느 날이라도 나의 반려동물이 아주 상냥하고 다정하게 느껴질 적엔 나도 상냥하고 다정한 사람이라고 여겨도 된다는 작가님의 말처럼 반려동물을 키우지는 않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그들에게 진심을 쏟는 만큼 나도 반려동물들처럼 사랑스럽고 힘이 되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