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아는 자살하지 않았다
킴벌리 맥크레이트 지음, 황규영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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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다. 일이 이미 잘못된 뒤에는 손을 써도 소용이 없음을 비꼬는 말이지만,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쳐야 하는 입장에서는 이만큼 뼈아픈 일이 또 있을까. 적절한 예는 아니지만, 이 책 『아멜리아는 자살하지 않았다』의 케이트에게 가장 적절한 속담이 바로 이 속담이라고 생각한다. 케이트에게는 외양간을 고치는 것보다 ‘소를 잃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뼈아픈 일이니 말이다.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아멜리아를 잃고 난 후에야, 케이트는 아멜리아를 위해 모든 걸 내려놓는다. 아멜리아는 잃었지만, ‘아멜리아는 자살하지 않았다’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케이트가 살면서 강요받아 온 커리어, 품위, 사회 제도에 대한 순응, 그 모든 것을 내던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 무엇도, 아멜리아의 죽음보다 중요한 건 없었으니까.

 

책 뒷표지의 책 소개 문구처럼, 아멜리아가 케이트에게 말하지 못한 아멜리아의 비밀과 케이트가 아멜리아에게 말하지 못했던 케이트의 비밀이 어지럽게 엮이는 전개와 정글보다 잔인한, 뉴욕 명문 사립학교 10대들의 은밀한 사회를 리얼하게 포착했다는 점 역시 이 작품을 평가하는 중요한 점이 될 수 있겠지만, 내가 주목했던 이 책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아멜리아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쫓는 과정에서 알게 된 아멜리아의 인생 이면은, 이게 아멜리아의 삶이었다고 믿고 싶지 않을 정도로 참담했다. 참담할수록 케이트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이트는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 바로 이 부분이었다. 배우 니콜 키드먼이 주연으로 캐스팅 되었다는 이 작품의 영화화 소식도 바로 이 부분을 염두에 둔 영화화-캐스팅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름답고 우아한 외양 아래 숨겨진 학교의 두 얼굴이 영상화 된다는 것도 기대되지만 무엇보다, 딸의 죽음과 그 진실을 쫓는 엄마의 애끓는 분투가 어떻게 그려질지 더 기대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안타깝고 슬펐지만 아멜리아의 죽음에 관한 진실이 궁금해서 읽기를 멈추지 않고 책을 계속해서 읽었던 것처럼, 케이트는 오직 아멜리아를 위해서 참담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포기하지 않았다. 예측할 수 없는 결말을 향해 내달리는 드라마와 나란히 달렸다. 아멜리아의 삶을 마주했을 땐 무너졌고, 아멜리아에게 오랫동안 구하지 못했던 용서를 빌고, 너는 절대 실수가 아니었다고, 너는 내게 일어난 일 중 가장 좋은 일이었다고, 늘 그렇게 남아 있을 거라 말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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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적게
도미니크 로로 지음, 이주영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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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프랑스 수필가의 수필이지만 오랫동안 일본에 거주하며 선불교와 동양철학에 영향을 받은 작가의 삶 덕분인지 이 책 『지극히 적게』는 책 곳곳에서 담백함의 묻어난다.

 

저자의 뜻대로 적게 소유하면서도 충만하게 삶을 즐기는 법이 쓰인 이 책은 덜어 낼수록 충만해지는 것들, 정돈된 삶이 가져다주는 깊이와 기쁨, 깃털처럼 가벼운 마음이라는 세 파트와 총 15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정돈된 삶이 가져다주는 깊이 파트가 좋았고, 챕터 중에는 시간과 에너지를 완벽히 절약하는 법이 가장 좋았다. 알게 된 사실이 새로웠던 건 아니지만 알고 있음에도 가장 지키지 못하고 살고 있는 부분에 대한 글이어서 좋았던 것 같다. 책의 정연한 구성과 저자의 간결한 문체가 ‘생각만 하지 말고 실천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자극을 받았달까.

 

 

각각의 글마다 예술가, 학자 등 다양한 인물의 격언이 함께 제시되어 생각의 여운을 남기는 구성은 이 책의 구성에 있어 가장 마음에 들었던 구성이다. 예를 들자면 ‘약속, 원칙을 분명히 한다’는 주제에 ‘시간은 우리가 유일하게 부끄러워하지 않고 쫀쫀하게 아껴도 되는 재산이다.’라는 19세기 프랑스 의사 쇼보 드 보셴의 격언이 따라 붙는다. 이 격언들은 주제에 대한 저자의 글에 힘을 실어주고, 조금은 생소해서 이 책이 아니면 접하기 어려울 것 같은 사람들의 격언이 많아서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앞서 언급한 대로 프랑스 수필가지만 오랫동안 일본에서 생활한 덕에 서구적 라이프 스타일과 동양의 미⋅철학이 접목된 저자의 삶 덕분에 가능한 구성이었다고 생각한다.

 

 

책의 서문 바로 뒤에 ‘이 작은 책에 관하여’라는 짧은 글이 이어지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두껍거나 크거나 묵직하거나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부담 없이 들고 다니며 가볍게 읽을 만한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왔다.’는 작가의 바람과는 달리, 책은 여느 책들과 같이 가벼운 편은 아니고 부피도 작지 않아서 아쉬웠다. 물론 이 책을 출판한 출판사의 출판 여건을 무시할 수 없고, 책을 구매하는 독자들이 중요시하는 ‘소장’에 관련된 기호적인 부분도 고려해야하니 이렇게 나올 수밖에 없었겠지만 저자가 지향하는 만큼 ‘페이퍼백’ 형태의 책으로 출판됐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제목이자 저자의 궁극적인 주장인 ‘지극히 적게’ 사는 것이 최선의 삶이라 단언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맺는 글에 담긴 일본 미디어 아티스트 다쓰오미야지마의 “아주 작은 것은 아주 큰 것으로 가게 해주는 열쇠다.”라는 격언처럼, 지극히 적은 것에 만족하는 삶을 실천하다보면, 일도, 생각도, 소유하는 것도 너무 많아 인생 내내 짓눌려 사는 우리네 인생이 조금은 담백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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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혜영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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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고백>, <속죄>, <N을 위해서>, <야행관람차> 등의 작품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불편한 진실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작가, 미나토 가나에. 이번엔 ‘엄마와 딸’이다. 작가는 과연, 엄마와 딸에 대해 어떻게 썼기에 “이 작품 이후 작가를 그만 두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쓴 소설이다”라고 말한 걸까 궁금해 하며 이 작품을 읽었다. 읽고 나서는, 읽는 것도 불편했던 이 소설을 작가는 어떻게 썼을지 궁금해졌다.

 

한 여고생이 다세대 주택 정원에 쓰려져 있는 것을 어머니가 발견해서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사고와 자살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고 조사에 착수했다는 신문 기사로 소설은 시작된다. 신문 기사의 마지막 문장은 ‘어머니는 “금지옥엽으로 소중하게 기른 딸이 이렇게 되다니 믿을 수 없다”는 말을 끝으로 입을 닫았다.’는 문장인데, 이어지는 ‘엄마의 고백’에서 엄마가 앞서 기사의 마지막 문장을 되풀이한다. ‘저는 딸아이를 금지옥엽으로 소중하게 키웠습니다.’라고. 흔히들 강한 부정의 표현을 강한 긍정의 표현이라며 받아들이곤 하는데, 강한 부정의 표현이 강한 긍정의 표현이 된다는 사실은 반대로 강한 긍정 또한 강한 부정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그런 뜻에서 신문 기사 속 엄마의 말과 ‘엄마의 고백’ 속 엄마의 말은 내게 강한 부정으로 들렸다. 그렇게 ‘강한 부정’이라 생각하며 ‘엄마의 고백’을 읽어나가는데, 이어서 ‘딸의 회상’이 이어진다. 엄마는 ‘고백’을 하고, 딸은 ‘회상’을 하는 두 사람의 시점이 교차되며 전개되는 것이 흥미로웠다. 엄마가 생각하는 자신의 모성과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에게 보여주었던 모성, 그리고 딸이 생각하는 모성이 전부 그려진 덕분에 모성에 관해 넓게 생각할 수 있었다.

읽는 내내 엄마의 고백에 드러난 모성이 불편했지만, 엄마가 된 딸이 ‘나와 이 아이가 같은 입장이 되지 않으리란 법이 있을까…….’하고 생각하는 문장에서, 나 역시 내가 가진 모성이 무조건적인 모성일 것이라 확신할 수 없었다.

 

“그렇게 거창한 얘기는 못하고요. 그저 여자에게는 두 종류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오호라, 두 종류라니, 천사와 악마?”“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건 믿지 않는다고요. 더 간단한 존재, 엄마와 딸이에요.”“누구나 아는 사실이잖아.”아니다. 누구나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p.228-229)

 

맞다. 우리는 ‘모성’에 관해서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니다. 누구나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모성에 관해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뉴스에서 접하는 부도덕한 모성에 관한 사건을 접하면서, 모성이 다 같은 모성이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내가 소설 속 엄마였다면, 나는 소설 속 엄마와는 다른 엄마였을까. 나의 엄마와 나의 딸 중 한 명을 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닥치면, 나는 주저 않고 딸을 구할까. 이 소설이 불편했던 이유는 바로 이거다. 모성에 대한 엄마의 고백과 딸의 회상 속에서 작가가 던지는 질문을 계속해서 곱씹게 된다는 것.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모성에 대해 이렇게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을까.

 

“아이를 낳은 여자가 전부 어머니가 되는 건 아니에요. 모성이란 게, 여자라면 누구나 갖고 태어나는 성질도 아니고, 모성이 없어도 아이는 낳을 수 있으니까요. 아이가 태어나고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 모성애가 싹트는 사람도 있을 게 분명하고요. 거꾸로 모성이 있으면서도 누군가의 딸이고 싶고, 보호를 받는 입장이고 싶은 마음이 강하면 무의식중에 자기 안의 모성을 배제하는 여성도 있어요.”“아하, 네가 말하는 엄마와 딸이란, 모성을 지닌 여자와 그렇지 않은 여자란 말이네. 그래서 미묘한 코멘트를 남긴 어머니 밑에서 자살을 시도한 딸에게 <만에 하나 운 나쁘게 모성이 없는 여자의 딸로 태어났어도 비관하지 말고 힘내라>, 뭐 그런 말이라도 해주려는 거야?”

“……그렇게 간단한 해답이 있었네요.” (p.229)

 

시간은 흐른다. 흐르기 때문에 엄마를 향한 마음도 변한다. 그럼에도 사랑을 애타게 원하는 존재가 딸이고, 자기가 애타게 원하던 사랑을 자기 자식에게 주려는 마음이 모성이란 것 아닐까. (p.282)

 

이렇게 모성에 대한 작가만의 정의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은, 모성에 관한 치열한 생각과 고민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의 모성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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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배진수 글.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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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이전에 웹툰으로 금요일을 처음 접했을 때, 떠오른 영화 대사가 있다.

 

“니, 감당이나 할 수 있겠나?”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이끼> 속 이장 천용덕의 대사다. ‘감당이나’라는 말에서부터 감춰진 진실의 어마어마한 무게가 느껴지지만, 왠지 그 진실, 파헤치고 싶어진다. <禁曜日>을 처음 접했을 때, 내 느낌이 딱 이랬다. 감춰졌던 진실이 주는 그 불편함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진실을 알고 싶은 마음.

 

꽤나 그로테스크한 그림체에 담긴 불편한 공포. 스토리는 궁금한데, 그림체 때문에 선뜻 손이 가질 않았던 작품이었는데 그림체 때문에 스토리를 포기할 순 없다고 판단하고는 1회 ‘원룸’을 감상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그림체는 더욱 그로테스크했고, 스토리 역시 기대 이상으로 탄탄했다.

 

감히, 누군가의 정서나 철학에 작디작은 파문이라도 일으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강했습니다.

 

- 배진수 『禁曜日』작가의 말 中

 

작가의 말에 드러난 작가의 바람처럼, <禁曜日>은 불편한 공포와 기괴한 그림체로 다가와서 내 정서를 마구 헤집었다.

 

“꼭 나가야 하나? (중략) 어쩌면 난 동물이었을지도…….” (원룸 中)

“잘 선택해봐. 선택은 사소할지 몰라도 결과는 사소하지 않으니까.” (역행 中)

“그러다 문득, 문득 깨달았다. 내 삶에 몇 번의 기회가 주어지든, 나라는 놈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과거로 돌아왔다고 해서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다고 해서 나라는 인간 자체가 변할 리는 없다는 너무나 슬프고 또 무서운 사실을.” (역행 中)

“불현듯 내가 빠져 있는 딜레마의 정체를 깨달았다. ‘행복’이나 ‘만족’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닌 ‘불행’과 ‘불만’이 해소될 때 주어지는 반대급부일 뿐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말이다. 즉, 모든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은 결국엔 모든 소원이 사라진다는 말과 같은 의미인 것.” (퍼펙트 월드 中)

“학생은, 언제나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네요.” (카르마 中)

 

지극히 극단적이고,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불편함. 바로 이 불편함이 ‘진실’이 아닐까. 마주하기 두려워서, 혹은 영원히 외면하고 싶은 진실.

 

무엇보다 이 만화가 무서운 이유는 이거다. 만화가 진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이 만화를 읽음으로써 우리 속에 숨겨진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 나라고, 『禁曜日』 속 캐릭터들과 다른 생각을 하고, 선택을 했을까. 이 책의 홍보 문구처럼, 생의 이면을 들출 용기가 없다면 이 책을 금(禁)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정말이지, 니, 감당이나 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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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리고 가끔 고양이 - 이용한 시인의 센티멘털 고양이 여행
이용한 지음 / 북폴리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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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큼이나 보드랍고 따뜻하고 나른했던 종이우산님의 『보드랍고 따뜻하고 나른한』에 이어 이용한님의 『흐리고 가끔 고양이』를 읽으면서 나는 내 여행의 기억 속에 남은 고양이들을 떠올렸다.

 

도시락을 싸들고 친구와 함께 올랐던 남산에서 만난 고양이와 맛집을 찾아 헤매다 들어가게 된 골목에서 만난 고양이까지. 여러 고양이들을 만났지만, 역시 남산에서 만난 고양이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정상 조금 못 올라서 벤치에 앉아 도시락을 까먹고 있던 친구와 내 곁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곁에 온전히 다가올 정도로 경계심을 풀고 다가온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가오려는 모습을 보니 배가 고픈가보다 싶어서 함께 챙겨간 과자를 던져 주었다. (꽤 오래전의 기억인데도 그 때 던져줬던 과자가 튀기지 않고 구웠다는 그 과자 ‘예감’이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는 걸 보니 그 고양이와의 만남이 정말 인상 깊긴 했나보다. 어떤 과자였는지 기억난 김에 고양이의 이름을 뒤늦게 지어본다. 예감하신대로, ‘예감이’다.) 예감이는 던져진 과자를 입에 물고 우리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돌아갔다. 친구와 나는 우리의 눈앞에서 먹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아쉬워했지만, 저렇게 먹어야 마음이 편하다면 저렇게 먹어야지 하며 멈췄던 수다를 이어나갔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예감이는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먹긴 먹었는데, 입맛만 다신 표정이었다. 부족했구나! 하며, 이번엔 더 많은 양을 던져주었다. (과자가 칩 형태이다 보니 던져주면 과자가 부서질 확률이 높았지만, 던져주지 않으면 예감이가 도망가 버릴 것 같았으므로, 어쩔 수 없이 던져주었다.) 이번에도 과자를 제 입에 물고 자리를 뜨려 했지만, 전보다 양이 많았던 걸 알았는지 그 자리에서 조금 먹고 남은 양을 가져갔다. 그렇게 두어 번, 예감이는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우리는 예감이를 위해 먹지 않고 남겨 둔 과자를 내주었다. 예감이가 차마 가져가지 못한 과자 부스러기를 먹기 위해 달려드는 비둘기를 쫓아내면서, 내준 과자를 다 먹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친구와 나는 자리를 떴다. 과자를 내어 주면서, 이 과자를 먹고 배가 부를까? 과자만 먹으면 목이 마를 텐데, 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아쉽네, 하면서 챙겨줬던 예감이에 대한 추억 덕분에 친구와의 남산 여행은 잊지 못할 여행으로 남았다. 조금의 과자를 내어 주었을 뿐인데, 예감이 덕에 잊지 못할 추억을 얻은 나로서는 책 속 곳곳에서 묻어나는 저자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번 맺은 고양이와의 인연은 쉽게 떨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했다. 이왕이면 고양이 여행을 하기로. (p.301)

 

‘이용한 시인의 센티멘털 고양이 여행’이라는 부제를 단 책이지만, 책 소개에 소개된 구절처럼 ‘전국 각지에서 만난 그들의 생태를 놀랍도록 생생하게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라는 설명이 더 들어맞는 책이었다. 전국 60여 곳을 2년 반 동안 발품을 판 저자의 고생이 없었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책이다. 그래서 더 소중한 책.

 

지구상에서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는 동물이 있다면, 아마도 고양이일 것이다. 그리고 이 비난의 목소리가 가장 높은 곳이 바로 한국이다. 한국의 고양이만 유별난 것도 아닌데, 거참 이상하다. (p.344)

 

그런 한국이어서, 이 책이 더 애틋하다. 그런 한국에 살아가는 고양이들이 짠함을 넘어 너무도 먹먹해서. 그런 고양이들을 사랑하는 캣맘-캣대디들의 속상한 마음에 충분히 공감이 가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소 지을 수 있는 건 다음 구절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열렬한 사랑의 대상이 되는 동물이 있다면, 그것도 고양이일 것이다. (p.344)

 

어떤 묘연이 작가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고, 나에게도 어떤 묘연이 이렇게 고양이 책을 찾아 읽게 만들고 가방에 고양이 간식을 챙겨 넣어 다니게 된 캣맘이 되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작가의 말마따나 그저 저 길과 바람과 묘연에 나를 맡기기로 한다. 지구상에서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열렬한 사랑의 대상이 되는 동물이 있다면, 그건 분명 고양이일 테니까.

 

 

* 인상 깊었던 구절

 

고양이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나는 좀 더 오래 이 여행을 즐기고 싶다. 설령 그 길에서 아프고 슬픈 고양이를 만날지라도 그 낱낱의 사연과 희로애락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이 세상에 이런 고양이가 살다 갔다고. 그것은 때로 눈물겹지만 아름다웠다고. (p.5)

고양이 여행을 하다보면 고양이에 대한 그 동네 인심과 분위기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고양이의 경계심이 심할수록 고양이에 대한 인심이 사납다고 보면 틀림없다. (p.307)

 

고양이에게 야박한 집은 팔아주지 말아야지. 아마도 고양이를 좋아하는 애묘인이라면 대부분 같은 심정일 것이다. (p.314)

 

나도 모르게 울분이 솟구쳤다. 막상 그렇게 말하고 나니, 걱정이 되었다. 혹시라도 내가 한 말에 기분이 상해 고양이에게 해코지를 하지는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아, 속상해도 그냥 참을걸.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고양이를 위해서. 이래저래 용궁사를 떠나는 마음이 착잡했다. (p.341)

 

잠자코 고양이를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그 슬픔이라는 미래.

연민이 나를 등 떠밀었다. 사실 고양이와 아무 상관없던 내가 고양이와 함께 여기까지 오게 된 건 어떤 연민 때문이었다. 저 불쌍한 것들이 길 위에 던져졌다는 사실, 추위와 배고픔과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사실이 안락한 마음을 자꾸 건드렸다. 결국 나는 고양이 발자국을 따라 나섰고, 사료 배달을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고양이 책 세 권을 냈고, <고양이 춤>이라는 독립영화 제작에 참여했으며, 여전히 그 길에서 고양이 여행을 떠나고 있다. (p.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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