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팅 1
조엘 샤보노 지음, 임지은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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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목숨을 건 입시 전쟁이다.

 

폐허가 되어 버린 아메리카 대륙에 세워진 통일연방에서 최고의 리더 자질을 가진 소년 소녀들을 뽑는 시험, 테스팅. 통과하는 사람은 대학에 진학하게 되지만 이 ‘테스팅’의 진짜 의도는 따로 있다. 리더의 자격을 시험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시행되는 다양하고 잔인한 시험이 계속된다. 독성이 있는 식물과 없는 식물을 골라내게 한 후 독성이 없다고 분류한 식물을 먹어 증명해야 하고, 주어진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감전을 당하는 라디오 수리 시험까지, 아이들이 보는 시험은 목숨을 대가로 한 무시무시한 시험이다. 그래서 시험을 볼수록, 시험을 볼 아이들의 수는 줄어든다. 그렇게, 모든 시험 후에는 전쟁으로 오염된 지역을 횡단하는 마지막 시험이 진행되는데, 이 시험이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시험이다. 오염된 물과 독성이 있는 풀은 물론이고 숨겨진 폭탄과 무시무시한 변종 동물들이 기다리고 있으며, 응시자를 죽이는 것 또한 용인된다.

 

이 시험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은 두뇌를 풀가동하여 지략을 짜야하는 것은 물론,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견뎌낼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해져야 하며, 아무도 믿어서는 안 된다. 언제 배신을 당할지 알 수 없으니, 한 시도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에, 이 책 『테스팅』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시험 수행’이라 쓰고, ‘생존 경쟁’이라 읽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울 수밖에 없는 주인공과 아이들. 그들을 지켜보는 관찰자인 독자는, 살아남으라 응원하면서도, 어떻게 살아남는지 유심히 지켜보는 양면적인 시각을 가진다. 이 책 『테스팅』이 폐허가 된 도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자를 죽여야 하는 생존 게임, 그 상황의 중심에 놓인 강인한 10대 소녀라는 설정으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수잔 콜린스의 『헝거게임』과 같이 10대 청소년에게서 많이 읽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일 것이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당사자 중의 당사자이니까. 생존 경쟁에서 피 말리는 심정을 아니까 응원하고, 그 심정을 어떻게 견뎌내고 강인해지는지를 지켜보는 것이다.

 

이 안의 우리들은 선택되었다는 자부심과 낙오되어서는 안 된다는 불안감을 끌어안고 3년을 견뎌야 한다. (중략)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는 괴물과 싸우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어야만 했던 8일 동안의 기록이다. (드라마 <화이트 크리스마스> 中)

 

공교롭게도, 『테스팅』을 읽는 중에 드라마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보게 되었다. 전개 되는 과정은 다르지만, 어딘가 모르게 비슷한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대학 진학을 위해 낙오 되어선 안 된다는 불안감을 갖고, ‘생존 게임’이라는 괴물과 싸우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어가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에게, 어른은 시험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한다. 시험은 시작일 뿐, 시험이 전부가 아니다.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는, 오늘 보고 내일도 보는 시험이 끝없이 이어지니까.

 

이 책 『테스팅』과 『헝거게임』같은 이야기가 계속해서 나오는 건, 어쩌면 ‘생존 경쟁’의 당사자인 10대 청소년들을 위해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존 경쟁이 있고, 그 안에서 살아남는 인물들이 있고, 끝내 살아남은 주인공을 통해 “너 역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일지도. 그도 아니면, 그냥 즐기면 된다. 내 경쟁은 어렵고, 외롭지만 남의 경쟁을 보는 건 재밌고, 외롭지 않으니까. ‘현실 도피’여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 이 책은 그냥, 충분히 재밌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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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동창생 - 열아홉, 소년의 약속
윤이경 지음, 김수영 각본, 오동진 인터뷰.글 / 북폴리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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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그 영화가 소설화 된 소설을 읽은 건 이 책, 소설 『동창생』이 처음이었다. 한 편의 작품이 영화로 나오고 책으로도 출간 되었다면, 나는 열에 아홉은 책을 먼저 읽는 편이다. 그도 그럴게, 대부분 소설을 원작으로 해서 영화화 되는 편이고, 영화화 이전에 그냥 책으로 접하는 편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책을 먼저 읽는 편인데, 그건 아무래도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읽을 경우 영상이 가지는 이미지의 잔상이 남아서 나만의 상상을 펼치는 데 방해를 받기 싫어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본 뒤 원작 소설을 찾아 읽은 작품이 있는데 바로, <은교>다. 사건에 대한 묘사는 세세히 그려진 반면, 인물 간의 감정선 묘사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컸던지라 원작 소설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읽은 원작 소설은, 영화 이상으로 좋았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책을 읽어서 그런지 각각의 인물을 연기한 배우들을 떠올리면서, 영화에서 부족하다고 느꼈던 감정선을 더 깊이 읽어낼 수 있었다. 영화에 대한 아쉬움이 날아가는 기분이었달까.

 

이 책, 소설 『동창생』을 읽을 때도 그런 느낌이었다. 이번에는 인물의 감정선은 아니었고,영화에서 생략 되었을 거라 짐작되는 내용들에 대한 보충을 받는 느낌이 강했다. 이혜인의 부재한 부모님들에 대한 이야기라던가(p.128), 명훈과 혈투를 벌였던 또 다른 기술자 북두성 시점의 이야기(p.149), 북에서의 명훈과 동생 혜인의 생활 등 영화에서는 필요에 의해 삭제되었겠지만 궁금했던 내용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특히, 주연을 맡은 배우 최승현의 인터뷰와 연출을 맡은 박홍수 감독의 인터뷰, 마지막으로 배우 최승현에 대한 영화평론가 오동진의 글까지 ‘메이킹 스토리’로 묶인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한마디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월요일부터 화요일가지는 밤샘 촬영을 하고 주말에는 몇 만 명이 바라보는 무대 위에 올라 가수로서 화려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고, 내가 맡은 캐릭터의 성향은 어둡고 비밀을 감춘 소년이다. 그땐 <동창생>의 리명훈과 빅뱅의 탑을 오가는 시간이 참 힘들었다. (p.288 가수 생활과 촬영을 병행하는 게 힘들지 않았나요?에 대한 답변)

 

역할에 대한 욕심은 없다. 내게 제일 중요한 건 역할이 아니라 서사다. 이야기가 재미있고 그걸 어떻게 풀어 나갈지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져야 한다. 배우로서 어떻게 만들어낼지에 대한 확신이 선다면 난 어떤 역할이든 할 수 있다. (p.289 배우로서 어떤 역할을 해보고 싶나요?에 대한 답변)

 

감정 연기가 정말 힘들었다. 촬영 당시 틈틈이 메모를 했는데, 거기에 “침묵이 괴로웠다”는 내용이 있었다. 대사가 오가는 와중에 씬이 형성되는 건데, 대사 없이 나의 내면의 표정으로만 꽉 채워야 한다는 초조함이 있었다. 그래서 너무 우울했다. 그리고 매 장면을 촬영하는 데 매우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촬영 중에 굉장히 예민했다. 캐릭터가 느끼는 절망감이나 커다란 슬픔에 짓눌려 있었던 것 같다. (p.290 리명훈은 대사조차 거의 없는 캐릭터입니다. 연기가 까다롭지 않았나요?에 대한 답변)

 

밑줄을 친 문장들을 보니, 최승현 인터뷰의 글이 많았다. 여러모로 힘들었던 배우 최승현의 감정 연기 덕분에, 냉정하지만 누구보다 여린 소년 공작원 리명훈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힘들었다’고 말하지만, 그만큼 리명훈을 연기하기 위해 노력한 모습이 역력히 느껴져서 인터뷰를 읽는 내가 다 뿌듯했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면서 아쉬워했던 것 중 하나가 제목이 ‘동창생’이라는 점이었는데, 이 또한 책을 읽고 나서 그 아쉬움이 날아갔다. 영화를 봤을 땐 ‘동창생’이라는 제목이 그리 와닿지 않았는데, 소설로 읽을 때는 리명훈을 살게 하는 힘이 ‘동창생’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창생이라 쓰고,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라 읽는다고나 할까. 두 명의 혜인이, 명훈에게는 세상이었고 전부였을 거라 생각하니 다시금 먹먹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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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현 : 소년의 약속 - 영화 동창생 스페셜 포토북
더 램프 지음, 오동진 인터뷰어 / 북폴리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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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창생>을 보고, 소설 『동창생』을 읽고, 마지막으로 포토북 『최승현 : 소년의 약속 - 영화 동창생 스페셜 포토북』을 보았다.

(글이 첨부되어 있어 읽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여하튼 사진이 절반인 책이니까)

이 책은, 포토북(혹은 드라마 리뷰북)에 대한 로망이 있는 나에게 이 책은 로망을 충족시켜 주기에 충분한 책이었다. 일단, 포토북답게 사진에 굉장히 충실하다.

 

 

많은 사진이 면을 가득 채우는 것도 좋았지만, 더 좋았던 건 스틸컷 느낌의 사진이 아니라 카메라를 응시하는 사진이었다.

"포토북, 잘 보고 있나?'하는 듯한 눈빛이랄까. 포토북에서만 볼 수 있는 사진 같아서 좋았던 사진이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포토북이라고해서 사진만 있는 건 아니다. 이렇게 글도 담겨있다.

최승현과 최승현이 연기한 열아홉 소년 리명훈에 관한 이야기 등이 담겨있는데,

소설 『동창생』에 실린 메이킹 스토리와 겹치는 부분이 많은 건,

(아마도 메이킹 스토리의 인터뷰를 담당했을영화평론가 오동진이 글을 썼기 때문이다. 

 

사진이 아무리 좋아도 사진만 보면 심심한 부분이 없지 않은데, 중간 중간에 글을 배치함으로써 잘 읽히기까지 하는 포토북이 된 것 같다.

 

 

포토북에 대한 나의 로망 중의 로망은 바로 이것, 포토북에 딸려오는 엽서(혹은 다른 사은품)다.

포토북 자체는 워낙 무게가 있으니 휴대하고 다니면서 볼 수 없지만

이렇게 엽서로 된 사진이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휴대하고 다니면서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너무 좋아서 쓰기 아까워 엽서가 담겨있던 봉투에 다시 넣어 봉인해뒀다는게 함정이지만 말이다.

『최승현 : 소년의 약속 - 영화 동창생 스페셜 포토북』, '최승현'의 이름이 떡하니 들어갈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최승현의 힘이 컸다고 생각한다.

빅뱅의 리더 TOP 모습을 버리고 가수 활동과 촬영을 병행하며서 애썼을 배우 최승현.  그런 최승현을 원없이 볼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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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에서 온 손뜨개 소품 - 머플러, 장갑, 모자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북유럽 스타일 겨울 소품 23종
스기야마 토모 지음, 맹보용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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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에 유독 약한 내가 여름을 나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저녁에 야구 보면서 마시는 시원한 생맥주. 둘째, 읽는 순간만큼은 시원해지는 미스터리 혹은 스릴러 소설. 셋째, 가장 더운 시간에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무더운 여름을 버티는 나만의 방법이다. 더위에만 약했으면 좋겠지만, 더위만큼이나 추위에도 약해서 겨울을 나는 나만의 방법 역시 존재한다. 첫째, 온기로 손을 녹이고 천천히 마시는 커피. 둘째, 챙겨보기 시작한 이래로 매년 겨울 챙겨보는 영국 드라마 닥터후 크리스마스 스폐셜. 셋째, 목.도.리. 사실, 겨울을 나는 방법 세 가지 방법이 모두 목도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목도리를 좋아한다. 각기 다른 색상과 재질의 목도리. 유행에 민감하지 않은 편이라 지난 해 구매한 목도리를 올해에 두르고 다녀도 전혀 거부감이 없지만, 매 년 사 모으게 되는 것 같다. 가장 마음에 드는 목도리를 하고 나와서도 목도리가 진열된 곳을 지나칠 때면 어김없이 목도리를 구경하고 있을 정도로 하고 있어도 (저걸 사서) 하고 싶은 게 목도리다. 그래서 이 책 『북유럽에서 온 손뜨개 소품』이 반가웠다. 좋아라하는 겨울 소품인 목도리는 없지만, 목도리를 좋아하는 데에는 ‘겨울 소품’을 좋아하는 마음이 크고, 그런 겨울 소품들이 23종이나 실려있다. 한 번쯤 떠서 하고 다니고 싶었으나 손재주가 없어서 하고 다니지 못했던 북유럽 느낌의 겨울 소품들.

 

 

노르웨이나 스웨덴, 핀란드 등 눈이 많이 내리는 북유럽 국가의 상징적인 패턴인 노르딕 패턴이라 보는 것만으로도 따뜻한 기분이 든다. 보온을 위한 소품이다보니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소품이 바로 겨울 소품인데, 이 책에서 선보이는 겨울 소품들은 겨울 소품이지만 그리 무거워보이지 않고, 담백한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아기자기하고 포근한 느낌까지. 아이용 겨울 소품이 아니라 성인용 겨울 소품이 담백하면서도 아기자기하고 포근한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새로웠다.

 

 

뜨개질에 재주가 없는 나로서는 이 책을 보고, 당장 뜨개질을 시작해봐야지, 라는 생각보다는 전진배치 되어있는 뜨개질 소품 착용컷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책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뜨개질 방법도 세세히 실려 있고 도안도 있겠다 한 번 만들어봐야지 보다는, 나도 이렇게 예쁜 겨울 소품을 만들 수 있을까? 이렇게 예쁜 소품이면 만들기가 쉽지 않아도 충분히 보람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달까.

 

 

겨울 소품을 착용하는 데에는 보온을 위한 착용도 있지만, 각각의 겨울 소품이 주는 포근한 이미지, 착용한 사람은 몸이 따뜻해지고 착용한 사람을 보는 사람은 눈이 따뜻해지는 효과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고스란히, 시간이라 쓰고 정성이라 읽는 그 과정을 거쳐서 아끼는 사람을 위한 겨울 소품을 기꺼이 만드는 것이다. 겨울엔 그 어떤 선물보다 추운 겨울을 버티는 데 힘이 되는 ‘온기’가 최고의 선물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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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열한 시 - 120 True Stories & Innocent Lies
황경신 지음, 김원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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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여느 날처럼 서점에서 책을 둘러보다가 책 표지에 눈이 가서 집어 들고, 책을 펼쳐서 마주한 ‘대답 없음도 대답이다’라는 구절 덕분에 사 읽게 된 에세이가 있다. 바로, 이 책 『밤 열한 시』의 작가 황경신의 이전 에세이집 『생각이 나서』다. 글과 사진, 그리고 황경신만의 감성이 담긴 책 『생각이 나서』를 읽고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내가 가장 좋아라하는 시간인 ‘밤 열한 시’를 보내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 참 좋았더랬다.

 

그랬던 에세이집 『생각이 나서』 그 후 3년 동안의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집이 바로 『밤 열한 시』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출간되어 그런지, 가을을 시작으로 겨울, 봄, 여름으로 이어지며 120편의 글이 네 계절로 나뉘어 담겨있다.

 

가을에는 “언젠가라는 말처럼 슬픈 말도 흔치 않다. 이미 가버린 과거의 언젠가이든, 아직 오지 않은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 미래의 언젠가이든. (p.31)” 이라 이야기하고, 겨울에는 “비록 덜 사랑하는 자가 권력을 가질지는 몰라도 / 사랑이 행하는 일을 온전히 겪는 사람은 / 더 사람은 더 사랑하는 자이다 / 정말 아름다운 일은 그다음에 일어난다. (p.117)” 이야기하고, 봄에는 “그리운 사람을 /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 그것 말고는 다를 도리가 없는 / 봄의 한가운데 (p.169)”라고 이야기하고, 여름에는 “밤 열한 시 / 일어난 모든 일들에 대해 / 어떤 기대를 품어도 괜찮은 시간 / 일어나지 않은 모든 일들에 대해 / 그저 포기하기에도 괜찮은 시간 / 의미를 저울에 달아보거나 / 마음을 밀치고 지우는 일도 무의미해지는 시간 (p.254)"이라 이야기하는 글들과 무심하면서도 감성적인 김원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생각이 나서』를 읽던 그때처럼 언제, 어디서 읽어도 그 찰나가 꼭 밤 열한 시 같은 기분이 든다.

 

때론 시 같이 읽히고, 때론 노래 가사처럼 읽히고, 때론 일기 같이 읽히는 그녀의 글을 읽고 있으면 문득 나의 밤 열한 시가 떠오른다. 어떤 날은 드라마를 보고 있고, 어떤 날은 책을 읽고 있으며, 어떤 날은 라디오를 듣고, 어떤 날은 글을 쓰고, 어떤 날은 글씨를 쓰고, 어떤 날은 차를 마셨던 밤 열한 시. 열흘이면 열흘 깨어있는 시간. 생각하기 보다는 활동하기 바쁜 시간. 모든 글을 밤 열한 시에 쓴 건 아니겠지만, 내가 밤 열한 시를 그렇게 보내온 동안 이 사람은 많은 생각을 했고, 그 생각들은 글이 되었으며, 한 권의 책이 되었구나 싶은 생각이 드니 새로웠다. 누군가의 밤 열한 시는 이런 시간일까, 하고 말이다.

 

황경신이 말하는 밤 열한 시 같기도 하면서 나만의 밤 열한 시 같기도 한 시간들. 우리는 그 시간들 속에서 사랑을 생각하고, 이별을 생각하고, 기억을 생각하고, 마음을 생각하고, 말을 생각하고, 시간을 생각하며 매일 밤 열한 시를 보냈고, 보낼 것이다. 밤 열한 시는 그런 시간이니까.

 

p.s. 매 글의 본문도 좋았지만, 더 좋았던 건 원고지 칸 안에 담긴 글들이었다. ‘대답 없음도 대답이다’라는 구절에 빠졌던 그때처럼 간결해서 훅, 하고 내 마음으로 들어오는 그런 글. 원고지 칸 안에 글을 담은 구성이 크게 한 몫 했다. 원고지에 손으로 쓰인 글을 읽는 것 같은 느낌과 글 안의 글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동시에 들었는데, 글의 감성과 구성이 주는 아날로그함이 잘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p.s 2 이 책과 함께 읽으면 좋을 책 : 황경신 『생각이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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