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 페코로스 시리즈 1
오카노 유이치 지음, 양윤옥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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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페코로스 씨에게서 만화의 재미뿐만이 아니라 부모님의 치매를 뒷바라지하는 힘겨운 터널을 뚫고 온 자로서 동지와도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인간에게는 인간만의 늙어가는 방식이 있구나, 살아가는 방식이 있구나, 죽어가는 방식이 있구나, 라고요. 그리고 인간에게는 인간만의 뒷바라지 방식이 있구나, 라고요.
(p.198 이토 히로미의 추천사 중에서) 

-(마주보고 앉아있는 엄니와 유이치)
-엄니, 내가 누군지 알겠어?
-기요노리(엄니의 남동생).
-아니야!
-그럼 히데요시(엄니의 아버지).
-아니야! '그럼'은 또 뭐냐고요. 자아, 누구?
-(zZ)
-잠들었네!
-(어느틈에...)
-(zZ)
-(zZ)
-(흠칫)눈부셔... (아들의 대머리에 반사된 빛을 보고는)
-(zZ)
-유이치, 언제 왔다냐? 머리는 싹 벗어져서는. 네가 와줘서 참말로 좋다야.
(쓰담쓰담) 


라는 내용이 담긴, 이어지는 4컷만화로 시작하는 이 책은 낙향한 무명 만화가 오카노 유이치가 쓰고 그린 책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다.

페코로스는 탁구공만 한 크기의 작은 양파 품종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 책의 저자 오카노 유이치 씨의 필명이자 별명이란다. 그런 페코로스가 어머니 만나러 가는 이야기.
아버지의 유족연금을 바탕으로 어머니를 양호시설에 맡겨둔 자신의 처지에 부모를 돌본다는 말은 너무도 염치없는 소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송구스러운 마음을 담아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라는 제목을 정했다고 한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의 만화를 보고 글을 읽고 있으면, 이토 히로미의 추천사에 공감하게 된다.

이건 엄니를 뒷바라지 하는 페코로스, 오카노 유이치만의 방식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엄니는 페코로스의 4컷만화 속에는 살아 숨쉰다. 아들의 대머리를 보고서야 유이치 하고 부르는 엄니. 보이지 않는 실과 바늘로 꼼지락 꼼지락 아들의 나들이옷을 기워주는 엄니. "내가 치매에 걸려서 네 아버지가 나타난 거라면 치매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하고 말하는 엄니. 간호사의 예쁜 장난으로 난생 처음 매니큐어를 바른 짤막한 손을 수줍게, 자랑스럽게 아버지(엄니 안에서 살아계시는 아부지)에게 내보이는 엄니.

가족의 시간 속에 살아 있다는 말이 참 따뜻했던 책. 엄니의 말을 빌려 마지막 문장을 쓴다. 이 책을 읽게 되어서 참말로 좋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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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들어도 좋은 말 - 이석원 이야기 산문집
이석원 지음 / 그책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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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친구에게 빌려준 책 중에 나는 정말 좋게 읽어서, 내 인생의 에세이 중 한 권이어서 선뜻 빌려줬었는데 공감하지 못했다, 는 말과 함께 돌아온 책이 있다. 바로, 산문집 보통의 존재. 나는 너무 잘 읽었어서 간과하고 있었던 거다. 비단 책의 문제만은 아니지만, 내가 공감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공감하지 않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이 공감했다고 해서 내가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그 중요한 사실을. 여하튼, 그렇게 책을 돌려받고 그런가?’하고 다시 읽었다. 내 책으로 소장하고 나서 여섯 번째 다시 읽는 것이었는데 나는 여전히 좋았다. 한 번 잘 읽었다고, 여러 번 좋기는 어려운데 여섯 번째 읽어도 좋다니. 이럴 수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번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을 접하기 전에, 작가님의 장편소설 실내 인간도 사서 읽었지만 분야가 소설이어서 그랬는지, 보통의 존재가 너무 좋았던 탓인지 감흥이 조금은 덜했던 것 같다. (물론 읽고 나서 지인들에게 많이 추천했을 정도로 좋게 읽었지만) 그런 작가님의 두 번째 산문집이니, 두말할 것 있나. 읽어야지. 보통의 존재만큼은 아니지만 이번 책의 제목도, 표지도 여전히 내 취향을 저격했다.

 

변함없이, 당황스러울 정도의 솔직함. 나는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솔직하지 못한데, 변함없이 솔직한 글이 부러웠다. 어떤 삶이든, 그런 삶을 내 보일 수 있다는 것이.

 

2009년에 첫 책을 내고, 나는 내가 사십년 만에 처음으로 내 일을 찾은 줄 알았다. 하고 싶은 일, 해야 될 일, 잘할 수 있는 일. 그런데 아니었다. 두 번째 책인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행복하지 않았고 나라는 사람은 원래 일에서 재미나 행복, 성취감 같은 것을 찾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걸 원하고 있는 내가 스스로 당황스러웠다. 지금껏, 거의 평생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건 소수의 혜택 받은 사람들에게나 주어지는 행운 같은 것이라 생각했기에, 어떤 일이건 밥벌이나 기타 등등 필요에 의해서 하는 경우가 많았고, 따라서 거기에 대해 특별히 결핍을 느끼지도 않았다. 어떻든 잘해내기만 하면 그뿐이었으니까. 그랬던 내가, 이제 더는 일이 즐겁지 않다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되었을 때, 나를 지탱하던 많은 것들이 헝클어지고 말았으니. (p.191)

 

이 책을 한 줄로 표현하자면 여전히 솔직한 보통의 존재, 이석원과 철수와 산나와 김정희가 나오는 산문집이다.

 

지독히 불행했던 남자 철수. 그런 그가 불운 올림픽에 출전하게 되고, 기적적으로 우승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그는 태어나서 가장 운이 좋았던 기억으로 이렇게 쓴다. 불운 올림픽에 와서 구남이란 사람을 만난 것이 내 평생의 행운입니다, 라고.

 

산나는 이석원에게, 사람이 사람을 그런 이유로 좋아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려준 사람이었다. 왜 나 같은 걸 니가 좋아해? 싶었던 질문에 대한 답은 그 애의 세 살 난 아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들을 수 있었다. 단지 자신의 옆에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정말이지, 누군가는 누군가를 그렇게 좋아할 수 있다.

 

그리고 포르쉐를 몰던 여의사 김정희. 그녀와의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나는 그녀를 만나면서 그가 했던 고민이 인상 깊었다.

 

내 고민의 포인트는 그녀를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멀쩡한 사람이 왜 사람을 이런 식으 로 만날까. 나는 또 왜 병신처럼 그걸 받아주고 있을까. 분명 뭔가 사연이 있을 것만 같은데 그 이유라도 알면 좀 나을 것 같은데, 그런데도 난 솔직히 털어놓고 대화를 청할 용기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애초 그 사람이 원천 봉쇄를 해둔 탓이긴 하지만 사실 이게 과연 이해의 문제인지 그게 해결되고 나면 정말 내 마음이 괜찮아질지조차 알 수 없었다. (p.219)

 

그 즈음 그는 우연히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말년을 그린 영화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을 보았고, 톨스토이와 그의 아내 소피아를 보며 그는 이렇게 썼다.

 

사랑은 이처럼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끊임없이 확인하게 되는 것. 나를 사랑하냐고 묻는 것이 또한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될 수 있는 이유이다.

(중략)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런 소피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랑이란 그럴 수 있는 거니까. 온 세상 사람들이 나를 알아준다 한들 당신이 몰라주면 소용없는 거니까. 그건 온 세상이 몰라주는 것과 다름 없으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이해해줄 때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가. 그러나 그건 어렵고도 힘든 일.

(중략)

사랑이란 결국 상대와는 상관없는 나 자신의 문제이기에, 이렇게 엇갈릴 수밖에 없으며 사랑의 그런 영원히 완결될 수 없는 불완전성이야마로 사랑을 영원하게 해주는 요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p.221)

 

위 구절이 담긴 사랑과 이해라는 글에서, 그는 영화 렛미인에 대한 생각도 덧붙인다.

 

가끔은 사랑보다 이해가 더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가끔이 아니라 자주. (p.225)

 

그리고 이야기의 중심은 계속해서 김정희다. 김정희를 만나고, 기다리고, 생각하다 크리스마스가 온다. 두 사람의 관계에 변화가 있기 무섭게, 두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을 마주하고 만다. 그 순간 남자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면, 여자가 좀 더 남자를 포용할 수 있을 때 만났으면 두 사람은 헤어지지 않았을까?

 

원래 여자친구의 휴대폰을 절대로 보지 않던 남자는, 이번만큼은 보게 되는데 그녀의 휴대폰에서 자신은 몰랐던 그녀를 발견한다. 동료 의사에게 보낸 그녀의 문자들. 일기 같기도 하고 혼잣말 같기도 한 그것들은 실은 모두 그에게 보내는 말들이었다. 그 말들을 보면서 그는 자책감이 든 동시에 그녀가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자신이 스스로 정리해 자신의 입으로 뱉어낸 그 말 그대로 종료가 되어 어떤 것으로도 되돌릴 수 없지만, 사람 마음이 어디 드라마 끝나듯 그럴 수 있나. 그녀에게 너무나 연락하고 싶지만, 그는 나리의 조언대로 연락하지 않기로 한다.

 

석원아. 너 그거 알지. 병법에 생즉사, 사즉생이라고 있는 거. 죽으려면 살고 살려면 죽는다. 연애도 전쟁이야. 작전도 있어야 하구 타이밍은 또 얼마나 중요하니? 넌 지금 무조건 그 여자를 잊고 지내야 해. 그래야 단 일 프로라도 남아 있는 가능성을 잡을 수 있어. 만약 니가 지금 한 발짝이라도 다가가면 그 여자는 우주 밖으로 달아나. 명심해. 널 안 좋아해서가 아냐. 사람 마음이 그래.” (p.304)

  

이 책의 제목,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그녀 김정희에게서 오던 문자 중 하나였다.

 

뭐해요?

 

꽃피는 5월의 계동.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고, 그는 늘 그렇듯 오후의 홍차로 향하던 어느 날이었다. 오후의 홍차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려던 그 순간,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갑작스런 벨소리에 놀라 들어가려다 말고 도로 가게 밖으로 나와서는 휴대폰 화면을 확인하는데, 세상에...... ‘전화를 걸어온 사람이 여자고 직업은 의사이며 성이 김씨였다면 믿겠는가?’ 하며 그는 두 번째 산문집을 갈무리한다. 그의 변함없이, 당황스러울 정도의 솔직함이 전작 보통의 존재에서는 그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만들었다면 이번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에서는 그의 이야기에 쉽게 빠져들게 만들어서, 쉽사리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들었다. 내 연애처럼 고민하고, 공감하며 읽게 만들다니. , 이러니 내가 그의 산문집을 사랑해 마지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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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까칠하게 말할 것 - 착한사람들을 위한 처방전
후쿠다 가즈야 지음, 박현미 옮김 / MY(흐름출판)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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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주변에서 당신을 의식하도록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해야 합니다. 방심하게 만들어서 경계심을 풀게해야 하는 상대도 있지만, 보통은 적당하게 경계하도록 만드는 편이 좋습니다. 이 사람에게 바보 같은 말이나 행동을 하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 같다, 창피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인상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p.41)

 

이 구절을 읽는데 영화 <부당거래> 속 류승범의 대사가 떠올랐다. ‘호이가 계속되면 둘리인 줄 알아요라며 농담 삼아 바꿔 이야기하곤 하는 그 대사. 여기서 호의는 비단 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데, 그 중에서도 을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건 왜일까. 그건 아마도, 말의 영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어떤 부탁을 받았을 때, 그 부탁을 수락하는 것도 거절하는 것도 결국에는 말로 이루어진다. 나로 예를 들자면 이러하다. 부탁을 승낙했을 때, 내가 감수해야 할 일이 얼마나 고될지 알면서도 거절하는 그 한 마디를 못해서 승낙할 때가 많았다. 또 이런 경우. 누군가 나에 대해 한 말에, 나를 무시하는 뉘앙스가 녹아있음을 알면서도 왜 말을 그렇게 하느냐고 한 마디를 못해서 우물쩍 넘길 때도 많았다. 집에 오면 왜 그때 그 말을 못했을까, 하고 후회하면서도 매번 그랬다. 나쁘게 말하자면 미련한 거고, 좋게 말하자면 가끔이라도 까칠하게 말하는 기술을 모르는 사람이다.

 

앞서 소개한 구절은 이 책 가끔은 까칠하게 말할 것속 한 구절이다. ‘착한 사람들을 위한 처방전이라는 게 이 책의 부제인데, 개인으로 착한 사람이라는 표현을 보며 많이 찔렸다. 착한 건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표현이니 둘째치더라도, 영악하지 못한 사람 혹은 답답한 사람을 에둘러 표현하는 것만 같아서. 절대적으로 후자에 속하는 나로서는 위 구절을 비롯해 여러 구절을 읽으면서 공감했지만, 이 책의 모든 부분이 공감이 갔던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8낯선 사람을 만난다는 스릴이라는 글이 특히 그랬다. 이 글에서는 인터넷상에서 닉네임을 두고 신랄하게 비판하는데, 닉네임 사용의 부정적인 예만을 떠올리고 글을 쓴 게 아닐까 싶었다. 닉네임, 다시 말해 익명성으로 인한 여러 문제는 여전히 벌어지고 있지만 아닌 경우도 많다. 10년 가까이 블로그를 해오면서, 나는 내 닉네임에 대한 막중한 책임과 자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 오프라인에서 만날 기회가 생겼을 때 닉네임은 그 사람의 이름을 대신하곤 한다. 자신을 타인에게 드러내는 일을 안이하고 어리석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많은데, 책의 방향성 때문인지 이 부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처럼 쓰인 것 같아 아쉬웠다.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할 아침에 까칠하게 말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건 아니지만, 수확 아닌 수확은 있었다. 바로, 반성이었다.

나를 돌아보면 늘 그랬다. 때때로 까칠하게 말하는 것은 결국 나에게 좋은 일인 것일텐데, 문제는 그 긴장감을 상대가 아닌 내가 더 부담스러워 했다. 겉으로 표현하진 않지만, 속으론 쩔쩔매고 그래서 더 문제였다. 혼자 마음 고생하고 나면 그래, 이게 내 성격이겠거니-’ 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호이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 결국 상대를 둘리로 만든 것은 나였구나. 그래놓고 둘리인 줄 안다며 혼자 열을 냈구나 하고.

 

착한사람 콤플렉스를 벗어나게 해주는 고수의 대화법을 읽고 나서도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한 건, 둘 중 하나다. 영악하지 못한 사람도 못 되는 답답한 사람이거나 아직 그럴만한 대화를 할 기회가 없었던 것. 아니, 대화에 있어서 고수가 되지 못해도 좋다.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고, 나 역시 귀 기울여 들어주고 싶은 상대가 한 명이라도 곁에 있다면 나는 그걸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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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cm art 일센티 아트 - 1cm 더 크리에이티브한 시선으로 일상을 예술처럼 1cm 시리즈
김은주 글, 양현정 그림 / 허밍버드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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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선물 받아 읽고 너무 마음에 들어서, 몇 번이나 구매해 선물했던 책이 있다. 아기자기한 그림과 감성을 자극하는 글로 긴 여운을 안겨주었던 책. 김은주 작가와 양현정 일러스트레이터의 1cm +가 바로 그 책이다.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 1cm 시리즈가 이 책 1cm art라는 책으로 다시 돌아온 걸 보고 반가워했었는데, 마침 이렇게 신간리뷰단을 통해 읽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

 

이 책은 1cm 시리즈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여전히 크리에이티브한 시선으로 일상을 예술처럼 보게 만들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든다. 빈센트 반 고흐의 <파이프를 물고 귀에 붕대를 한 자화상>을 패러디한 그림이 독자를 반겨주던 첫 장. 파이프를 문 곰군을 보며 미소 짓다가 옆에 담긴 글에 시선이 한참 머문다.

 

명작에 필요한 것

 

고흐와 드가와 마네, 르누아르와 세잔,

그리고 다른 동시대의 화가들을 신경 쓰고

질투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면

그는 무수한 명작들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리면서

그가 신경 쓴 것은 오직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과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그리고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일 것이다.

 

- 1cm artp.13 ‘명작에 필요한 것중에서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비롯해 모든 명작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 글이었다. 명작에 필요한 것은 비단 명작을 신경 쓰는 것만은 아니겠지만, 그 어떤 것보다 명작에 필요한 건 명작만을 신경 쓰는 것임을 생각하게 만들어주었다.

 

이렇게 소개하고 싶은 글이 차고 넘치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던 글을 한 편을 더 소개한다.

 

재능은

잘하는 것을 타고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좋아하는 것을 타고나는 것일 수도 있다.

 

꿈은

좋아하는 것을 통해 다른 어떤 것을 이루는 것일 수도 있지만

좋아하는 것을 계속해서 할 수 있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

 

- 1cm artp.224 ‘재능에 대한 오해중에서

 

내가 가진 편견들을 깨고 새로운 시각을 갖게 만드는 책 앞에서, 내가 듣고 싶어 했던 말만 쏙쏙 골라 읽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부끄럽지만 나는 이 구절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좋아하는 것을 타고나는 것 역시 재능이라고 말한 것도 좋았지만, ‘오해라는 단어를 이렇게 반갑게 마주할 수 있게 만들다니. 누가 1cm 시리즈 아니랄까봐 이렇게 멋있다.

 

2년 전 지인들에게 1cm 시리즈를 선물했던 그때를 다시 떠올려본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얻은 새로운 시각, 눈 호강, 훈훈한 감성 등 모든 게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건 역시 '여유'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리적인 여유보다는 사고에 있어 여유가 생겼다는 말이 맞겠다.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주위를 둘러보다보니 물리적인 시간은 조금 더 들었지만, 그리하여 조금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면서 여유로운 사고를 하게 되었던 것 같다. 부정적이었던 시각도 다소 긍정적인 시각으로 변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나라는 사람이 온전하게 새로운 사람으로 변한 것은 아니다. 사람이란 그리 쉽게 변하지 않고, 나 역시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 책처럼, 편견을 깨고 다른 시각으로 보고 생각하게 만드는 책을 곁에 두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의 나보다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을 만드는 건, 어쩌면 일상 속에 숨겨진 1cm의 어떤 것이라는 걸 알게 해준 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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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인대학교 낯가림학과 졸업하기 - 낯가림 심한 개그맨의 우왕좌왕 사회 적응기
와카바야시 마사야스 지음, 전경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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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인대학교 낯가림학과 졸업하기’.

 

한 낯가림하는 나로서는 눈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제목이었다. 제목만 봤을 때는 막연하게, ‘사회에서 낯가리는 사람을 위한 지침서인 줄 알았지만 막상 읽어보니 아니었다. 이 책의 부제대로 낯가림 심한 개그맨의 우왕좌왕 사회 적응기.

 

이 책을 쓴 개그맨 와카바야시 마사야스로 말할 것 같으면, 귀여운 외모와 달리 괴짜인 면모가 강하고, 낯가리고 소심하지만 또 할 말은 다하는 우직한 스타일의 개그맨이다. 읽다보니 외모가 궁금해져서 검색을 해봤는데, 표지에 조그맣게 그려진 캐릭터와 똑같이 생긴 외모에 빵 터졌다. 저 캐릭터가 쫑알쫑알 하고 말 할 것 같아서.

 

M-1 그랑프리에서 2위에 입상한 후 방송 일이 마구 들어오기 시작한 마사야스는, 그때 처음으로 사회에 참여하고 있다고 느꼈다. 무명의 젊은 개그맨이었던 그가 그런 감정을 맛보기 시작한 건 서른이 되고 나서였다. 길고 긴 밑바닥 생활을 보내면서 세상과 완전히 동떨어진 인간이 되고 말았고, 그래서인지 사회라는 곳에서 겪는 하루하루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러한 충격과 경험을 사회인 2학년이라는 제목 아래 풀어 쓴 글이 이 책에 담긴 것인데, 가령 이런 일이다.

대략 하루에 50명 정도의 방문자 수를 유지하며 몇 년간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써서 올렸던 블로그가 6만명이 방문하는 블로그가 된 것. 그리고 날아드는 2병 같다는 피드백. 사회에서 취미에 대해 말하는 것. 미식 프로그램에서 고급 요리를 먹고 소감을 말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 말을 골라 하지 않아 화를 당했던 기억들. 술 마시는 재미를 알게 되고, 청년이라는 범주에 자신이 완전히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한 것 등등 사회인으로서 겪게 된 일을 마사야스 식으로 풀어낸다.

 

내가 가장 와 닿았던 건, 한 번도 나오지 않다가 후반부에야 처음 나온 파트너 이야기였다. 마사야스는 자신을, 스스로 즐거움을 느끼는 능력이나 한정된 조건에서 즐겁게 지내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의 반대편에 있는 남자가 파트너인 가스가라고 말한다. 반응도 전혀 없고, 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어쩌면 저렇게 행복해 보이는 걸까하고 신기했다고.

 

솔직히 말해서 가스가가 말을 재미있게 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굉장히 재미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모습을, 어린아이가 다가오지 않는 내가 바로 곁에서 지켜보며 즐기고 있다. 자신감도 넘치고, 자기과시를 하기 위해 특별히 자신을 크게 보일 필요가 없는 멋진 남자라고 생각한다.

나도 정말로 멋진 남자가 되어 행복을 실감하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위로 올라가면서.

나는 가스가를 동경한다. (p.215)

 

내가 가스가인양 벅찬 마음으로 읽었던 구절이다. 주위를 둘러 보면 잘 맞는 사람과 파트너를 이루는 경우도 있지만, 정 반대인 사람과 파트너를 이루는 경우도 있다. 마사야스와 가스가는 후자의 경우다. 이 구절이 와 닿았던 건, 나 역시 가스가보다 마사야스와 같은 성향의 사람이기에 그랬던 것 같다. 나와 다른 멋진 모습을 동경할 수 있어도 그걸 표현하기는 쉽지 않은데, 마사야사는 진심을 다해 고백한다. 가스가를 동경한다고. 마사야스는 가스가를 동경하고, 나는 가스가를 동경하는 마사야스가 멋있는 순간이었다.

 

내 마음을 뒤져보니, 손에 잡히는 것은 늘 과정이었다. 그만큼 했고, 그만큼 귀찮기도 하고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완벽하게는 못했지만 내 나름대로 해냈구나. 그런 간단한 감상만은 늘 가치가 내려가지 않고 가슴에 남아 있는 것이다.

(중략)

특별히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다. 그런 내가 나만의 최선을 끊임없이 갱신해가다 보면 결과가 뒤따라오든 말든 상관없지 않을까. 이처럼 특별한 재능이 없으니 나의 최선을 끊임없이 갱신할 수밖에 없다는 해탈은 내게 자신감을 주었다.

의외였다.

좋은 결과의 연속이 자신감을 낳는다고 믿어왔으니까. 하지만 이 자신감은 결과가 가져다준 것보다 더 믿을 수 있다. (p.227)

 

위 구절은 맺음말인 사회인대학교 졸업논문속 구절이다. 사회에 참가하기 시작했다고 인식한 시기를 2008M-1 그랑프리 때부터라고 했고, 그로부터 4년이 지났는데 대학이라면 마침 졸업할 시기도 하니 이참에 졸업논문을 써보기로 한다고 맺음말을 시작하는데, 마사야스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졸업논문 속에 담긴 글 역시 졸업논문다운 글답게 완성도 있었는데, 글에 있어서의 완성도도 그렇지만 사회에 대해 마사야스의 생각이 완성된 글 같았다고나 할까. 끝까지 위트를 잃지 않으면서, 때때로 끄덕끄덕하게 만드는 마사야스의 글들.

 

훗날 나는 어떤 결과를 마주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 마음을 뒤져봤을 때 손에 잡히는 것 중 이 유쾌한 책이 있을 거라는 기분 좋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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