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방명록 - 니체, 헤세, 바그너, 그리고...
노시내 지음 / 마티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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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어떤 나라를 여행하고 싶냐고 물으면, 나는 스위스라고 답하곤 했다. 내 대답을 들은 상대방은 왜 스위스를 가고 싶냐고 다시 물었다. 나는 스위스라고 대답할 때보다 더 확신에 찬 말투로 이렇게 대답했다. 명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보고 싶어서 라고.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명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처음 접한 뒤로 지금까지 나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만큼 빠져든 작품이 없다. 어두운 배경에서 한 줄기 빛을 받고 있는 소녀. 고개를 살짝 돌려 어깨 너머로 화면 너머를 바라보고 있는 그 시선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 작품을 두고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로 부른다지만,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왜 그리도 모나리자를 좋아하는지 알았다. 이렇게도 마음에 드는 작품이 또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마우리츠하이스 왕립미술관에 가고 싶었고, 그 미술관은 스위스에 있었기 때문에 단순하게 스위스가 가고 싶었던 것이다. (베르메르의 국적은 네덜란드이고, 네덜란드의 황금시대인 17세기를 대표하는 세 명의 대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화가이지만 오로지 그 작품이 스위스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네덜란드가 아니고 스위스였던 것이다. 하하.)

 

그랬던 스위스는, 조조 모예스의 장편소설 미 비 포유를 읽으면서 새롭게 다가왔다. 바로, 소설의 화두였던 조력자살때문이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 윌 트레이너가 선택한 그 길. 나 역시 그를 간병하면서 사랑에 빠지게 된 루이자에게 감정이입해서, 그가 선택을 되돌렸으면 하고 바랐지만, 결국 그는 스위스로 떠난다.

소설을 읽던 당시에는 스위스를 그저 조력자살이 허용되는 나라로만 생각했고, 소설의 전개에 빠져서 잘 몰랐다. 이 책 스위스 방명록존엄한 탈출 : 조력자살부분을 읽으면서 조력자살에 관해 전반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흥미로웠던 사실은, 스위스의 리버럴한 조력자살 정책은 정부나 의료계가 주도권을 쥐고 정식으로 합법화하고 양성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자세한 법률이 부재하는 모호한 틈새에서 비영리단체들이 고통 없이 죽을 권리를 원하는 사람들의 지지를 얻어내고 지역정부와 의료계의 협조를 받아 약 30년에 걸쳐 일종의 관행으로 정착시킨 것이다. (p.351)

 

이를 비롯해서 스위스에서의 조력자살에 관한 이야기를 온전하게 읽게 됨으로써 나 역시 이 문제에 깊이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이 구절이다.

 

자기를 아끼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 그래야만 하는가. 이 세상으로부터의 탈출이 그리도 절박한가. 그러나 오로지 주변사람을 위해 고통을 감수하고 살아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애도가 두려운 자의 이기심일지도 모른다. (p.349)

 

조력자살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보자. 미국에서 8, 일본에서 4, 오스트리아 빈에서 4, 그리고 지금은 스위스 베른에 옮겨가 2년째 머물고 있는 저자의 독특한 이력이 눈에 들었다. 그런 그녀를 두고 영원한 여행자이면서 성실한 시민이라 수식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소속된 내부자이면서 바깥에 선 관찰자로, 누구도 몰랐던 스위스 사회의 감추어진 이면을 들여다보는 책.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 외국인이 정착하기 좋은 나라, 삶의 수준이 높은 나라라는 객관적인 스위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라, 스위스에 누가 살았으며 그들이 무엇을 일궜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어서 좋았다.

 

니체의 안식처였던 실스마리아 챕터를 시작으로, 반평생을 스위스에서 보낸 헤르만 헤세의 이야기를 반갑게 읽고 취리히에서 요절한 천재, 혁명가이자 의사였고 문인이었던 게오르크 뷔히너 이야기를 지나, 존엄한 자살 조력자살을 거쳐 바그너의 스위스를 끝으로 이 책을 덮으면서 공감했다. 이 책을 재밌게 읽었다는 사람들의 별 5개 만점 후기를.

잘 몰랐고, 몰라서 관심을 두지 않았던 스위스는 내게 그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보기 위해 가고 싶은 나라였지만 이 책을 통해 제대로 탈바꿈했다. 누구보다 뜨겁게 시대를 살았고, 누구보다 뜨겁게 싸웠고 사랑했던 사람들의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스위스로 말이다.

 

프롤로그에서 작가는, 비스위스인들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언급하며 이런 구절을 덧붙인다.

 

이들은 모두 스위스에 머물렀던 경험을 통해 세상에 중요한 유산을 남겼으며, 그들은 스위스에, 스위스는 그들에 빚지고 있다.’ (p.16)

 

. 에필로그를 읽고, 다시 앞장을 펼쳐 프롤로그를 다시 읽으면서 나는 깨달았다. 그들은 스위스에, 스위스는 그들에 빚지고 있는 가운데 나는 이 책을 쓴 노시내 작가님과, 이 책을 출간한 출판사 마티 그리고 이 책을 읽을 수 있게 기회를 준 인터파크 신간리뷰단에 빚졌다고. 다소 과한 표현일지라도, 이렇게 표현할 정도로 좋은 책이었다.

 

우리가 못 보고 지나치는, 혹은 스위스가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 보물을 한 가득 담은 책을 감사하게 챙겨 읽은 기분. 덕분에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낯설었지만 새로웠고, 행복했다. 이 책의 에필로그 속 구절처럼 그 보물들 뒤에는 늘 인간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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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아이 고 - 내 남편의 아내가 되어줄래요
콜린 오클리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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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드라마에서 만났던 두 캐릭터를 떠올린다. <펀치>의 박정환과 <슈퍼대디열>의 차미래. 두 사람의 공통점은 시한부였다. 세상을 뜨기 전, 아내 하경과 딸 예린을 위해 과거 자신의 잘못을 바로 잡고, 강력했던 세력과 맞서 싸우는 정환과 자신이 세상을 뜨고 나면 혼자가 될 사랑이를 위해 사랑이의 아빠를 만들어주려고 노력하는 미래. 이 소설 비포 아이 고를 읽고 있자니, 그런 두 사람이 떠올랐다. 이 책의 주인공인 데이지 역시 시한부를 선고받았기 때문일까.

 

몇 년 전 완치된 줄 알았던 암이 재발한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몸 곳곳에 퍼져 되돌릴 수 없게 된 데이지. 자신에게 주어진 길어야 6개월인 시간에 데이지는 떠날 자신보다 남편인 잭을 먼저 생각한다. 내가 떠나면 잭은 어떻게 살아갈까, 누가 잭을 챙겨주지? 어쩌면 이런 데이지였기에, 그녀의 엉뚱한 결심은 당연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잭에게 새 아내를 찾아주자.’라는 데이지의 결심.

유방암 말기를 선고 받은 스물일곱의 여자가 최우선순위로 둔 일이, 남편에게 새로운 여자를 찾아주는 일이라니. 대체 얼마나 사랑해야 이렇게 마음먹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책을 읽는 나 역시 그런 데이지가 어떻게 행동할지 궁금했지만, 본격적으로 잭의 새 여자 찾기에 돌입하는 데이지를 보면서는 말리고 싶었다. 그런 내 마음이 담긴 것 같은 대목이 있다. 바로, 데이지 자신이 잭의 새 여자를 찾는다는 사실을 유일하게 밝힌 친구 케일리와의 대화다.

 

그 여자는 좋은 사람이야. 잭한테 좋은 사람이 되어줄 거야. 잭은 행복할 자격이 있어.” 하고 데이지가 말하자 케일리는 생각에 잠겨 엄지손톱을 물더니, 조그만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너는? 너는 행복할 자격이 없니?”

 

나는 데이지가 아니고, 데이지에 아무리 감정을 이입해서 읽는다고 해도 나 역시 궁금한 부분이었다. 물론 데이지가 그만큼 잭을 위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데이지의 상황이 상황인 만큼 나 역시 데이지가 자신을 조금 더 생각했으면 하고 바랐기 때문에 케일리의 말에 격하게 공감했다. 이 대화로 데이지는 케일리와 다투고,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것. 그 말에 웃음이 나올 뻔한다. 암에 걸리는 걸 원하지 않는다. 케일리에게 한 말을 모두 취소하기를 원한다. 남편이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지지 않기를 원한다. (p.343)

 

자신이 떠난 뒤에도 잭이 행복했으면 하고 바라는 여자도 데이지고, 자신이 떠나더라도 잭이 자신만을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여자 역시 데이지였다. 후자의 감정이 고조되면서, 나는 점점 더 데이지에게 몰입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잭에 대한 데이지의 사랑을 보여주는 구절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이 구절이다.

 

엄마 가슴에 머리를 묻고, 엄마 배에 무릎을 꼭 붙인다. 엄마 배속으로 다시 들어가려는 듯.

새로 태어나기 위해.

두 번째 기회를 얻기 위해.

그러다 결과가 같다는 것을 알면 다시 태어나 살고 싶을지 궁금하다. 이 삶을, 이 몸을, 이 암을.

그러다 잭이 생각난다.

그리고 질문을 제대로 떠올리기도 전에 대답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그렇게 할 것이다. (p.362)

 

서른이 되기도 전에 암이 두 번이나 찾아온 데이지의 삶, .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지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미 대답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자신의 삶에 잭이 있었으므로 두 번째의 인생이 같을지라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나는 이 대목을 카페에서 읽고 있었고,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 혼났다. 먹먹한 데이지, 너를 어쩜 좋으니... 하며 이 구절을 필사 했고 이렇게 옮겨 쓴다.

 

소설의 마지막장에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잭의 시점에서 쓰인 글이 나온다. 소설을 통틀어 처음 나오는 잭의 시점이었던지라 반가웠고, 그래서 더 아련했다. 이 역시 노트에 필사해두었고, 이 글에 함께 담아내고 싶지만 그건 이 책을 읽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으로 남겨두고 싶다. 자신이 떠난 뒤에도 남편인 잭이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남편의 새 아내를 찾았던 데이지와 함께 울고 웃은 독자일 테니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글을 마무리 하려는데, 이 책을 읽기 전 읽었던 이 책의 한 줄 평이 떠오른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다. 이 책을 읽기 위해 포근한 쿠션과 한 잔의 와인, 그리고 티슈를 준비해라. 멋진 주말이 완성될 것이다. (shelby1055)’라던 한 줄 평. 내게는 한 잔의 와인 대신 한 잔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있었고, 만석이었던 일요일 낮의 카페에서 이 책을 읽느라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공감이 간다. 대책 없는 데이지의 사랑 덕분에 나는 위로받았고, 그리하여 나의 주말은 따뜻했으며, 끝내 멋진 주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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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읽은 즐거우리 우리네 인생 2권을 대출하러 갔다가 충동 대출.

 

영화 '스틸 앨리스' 원작 소설인 <스틸 앨리스>와 <지극히 주관적인 여행>.

전자는 영화로 먼저 봤던 앨리스 이야기가 글로 풀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서 대출했고,

자는 주말 여행 계획을 세울때 큰 도움이 될듯😁.

 

그리고 <적당적당 언니의 멋내기 일기>만 읽으려다가 모리시타 에미코 3종 세트를 대출해버림.

뭘 집어들고 읽어도 귀엽고 재밌다. 요거 다 읽으면 <어쿠스틱 라이프> 차례 차례 빌려 봐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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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는 업무 와중에, 주문했던 책 택배를 받는 일은 마른 땅에 단비가 내리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싶게 만든다.

이미 정독을 마친 책이고, 소장하기 위해 구매한 책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사유리의 <눈물을 닦고>와 <잠자기 전 읽기만 해도 나쁜 기분이 사라지는 마음의 법칙 26>은

이미 소개한 바 있으니 생략하고 남은 두 권을 소개한다.

존 패트릭 루이스의 동화책 <마지막 휴양지>는 5년전,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을 통해 처음 접했다.

정음과 함께 볼로냐 국제 그림책 원화전을 관람하게 된 세경은 한 작품 앞에 오랫동안 서서 그림을 바라본다.

그 그림에는 이런 제목이 붙어있었다. '마지막 휴양지'.

그리고, 정음을 찾으러 왔다가 세경과 마주친 지훈.

 

"이 그림이 마음에 드나봐?
아까부터 되게 오랫동안 보고 있던 거 같은데."
"아뇨, 그냥... 제목이 마지막 휴양지라서."
"그러네. 왜 마지막 휴양지지? 휴식을 주는 휴양지가 마지막이라니까 왠지 슬프네."

 

 


이상이 '마지막 휴양지에 대한 둘의 대화다.

마지막 휴양지 에피는 훗날 결말의 복선으로 얽혀 해석되지만,

역시 휴식을 주는 휴양지가 '마지막'이라는 제목이 주는 여운 때문에, 이 책에 관심이 갔다.

지금은 절판된 책이라 중고로 구매했다. 기쁜 마음에 받자마자 읽었는데, 재밌게 잘 읽었다😁

한 번 더 읽고 글을 써야지.

 

<2015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출간됐을 때가 아니면 사지 않을 것 같아서 함께 샀다.

대상으로 선정된 정지돈 작가의 <건축이냐 혁명이냐>부터 읽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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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3권을 골랐다.

4월 출간 에세이 중 읽고 싶은 3권의 에세이.

 

 

1. 더 파크

 

 

 

마이페이퍼로 두 번 정도 언급한 기억이 있는데,

아직 읽지 못했기 때문에 여기에도 다시 넣어본다.

 

*

 

알라딘에서 신간알리미 서비스를 통해

김중혁 작가님의 새로운 책이 나왔다고 해서 보니 중혁님을 포함해

서울에 사는 일곱 사람이 쓴 그들의 공원에 관한 이야기란다.

 


일곱 사람 중에는 역시 중혁 작가님이 제일 익숙하고,

책 그리고 칼럼으로 여러 번 읽은 적 있는 음악평론과 차우진과

내게는 로필3로 기억되는 배우 유하준 이렇게 세 명이 익숙하다.

 


중혁 작가님의 글 중에

 


세상에 막다른 길은 없다는 것을 배웠다. 길은 어디에나 있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길이 없다면 돌아나오면 되는 거였다. 돌아나오는 길도 엄연히 길이었다.

나는 계속 글을 썼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길이 없다고 느껴지면 다시 공원에 가서 물을 보았다.

그해 겨울, 나는 소설가가 되었다.

 


라는 글이 인상 깊다.

 

 

 

2. 당신의 첫 문장

 

 

소설가 하성란이 두 번의 봄을 지내며 읽은 국내외 작가 50여 명의 산문에 작가 본인의 감상을 덧붙였다. 감추어왔던 외로움을 들켜버린 어느 날, 마음의 봄이 되어줄 작은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책은 어둠을 비추는 손전등처럼 위로를 전하고 용기를 선사한다.

이 세상에는 각양각색의 삶이 존재하고 그것은 우리가 읽는 책, 그리고 문학작품 속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수많은 상황과 수많은 관계 속에서 우리의 삶은 복잡하기만 하고 때로는 현실에 낙담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을 넘어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위태로운 상황이 이어지기도 한다.

이 책에서도 그만큼 많은 사연을 만날 수 있다. 치매에 걸린 늙은 시어머니를 모시는 고단한 중년의 삶이 존재하는가 하면(이난호 <윤예선 그 사람>) 부모를 떠나 할머니와 산골에서의 첫여름을 보내게 되는 여자아이(노익상 <첫여름>), 아버지 어디 갔냐며 어린 아이를 사정없이 흔드는 낯선 남자(천운영 <생강>) 등 힘든 여정을 보내는 이들의 이야기가 이 책의 일부분을 차지한다.

이 외에도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다. 숙회 한 접시 서비스에 기뻐하는 노년의 삶(김숨 <간과 쓸개>)을 볼 수 있기도 하며 요강을 들고 다니는 조선 사람들의 모습을 두고 농담을 주고받는 이방인들(샤를 바라, 샤이에 롱 <조선기행>), 양꼬치의 레시피를 두고 알려달라 못 알려준다 실갱이를 벌이는 조선족 연인(박찬순 <가리봉 양꼬치>) 등 이 세상에 존재할법한 그리고 실제로 존재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책에 실려 있다.

 

 

*

 

산문 읽기 좋아라하는 내게, 국내외 작가 50여 명의 산문에 하성란 작가 본인의 감상을 덧붙인 책이라니!

고르지 않을 수 없었다. 목차를 읽다보면 이런 이야기가 담겨있구나, 하고 더 관심이 갈 것 같아서...

목차도 덧붙여본다 ^_^

 

 

책을 펴내며 : 나에게 이 글들이 손전등 같았듯

1부 : 태어나는 순간 우리는 늙어갑니다
김숨 <간과 쓸개>/ 태어나는 순간 우리는 늙어갑니다
방미진 <금이 간 거울> / 사람의 마음도 훔칠 수 있을까요?
이난호 <윤예선 그 사람> / 그녀는 마흔여덟입니다
르 클레지오 <허기의 간주곡> / 그 말에 저도 모르게 울고 말았습니다
이윤기 <날마다 지혜를 만나다> /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그릇
김도연 <바람자루 속에서> / 내비라고 이름 붙여진 다른 무엇
로버트 뉴턴 펙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 수줍어하듯 조용한 집
강영숙 <라이팅 클럽> / 늘 메모할 수첩과 연필을 준비해두세요
샤를 바라, 샤이에 롱 <조선기행> / 엉덩이에 닿던 그 감촉
이청해 <나는 네가 지난 여름 한 일을 알고 있다> / 모든 일은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일어납니다
최범석 <여행자의 옛집> / 작가나 시인이 따로 없습니다
김미월 <프라자 호텔> / 내 마음의 포인트 제로
니시카와 오사무 <행복한 세계 술맛 기행> / 아릿한 아픔, 한 잔의 위스키 맛

2부 : 인생은 고행의 길일까요?
알베르토 망구엘 <밤의 도서관> / 먼 곳에서 반짝이는 등불처럼
박찬순 <가리봉 양꼬치> / 며느리도 모른다는 맛집들의 비법
김도언 <불안의 황홀> / 타인의 일기를 읽는 재미
노익상 <첫여름> /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풍경일 테지만
이강숙 <젊은 음악가의 초상> / 고행의 길이라는 걸 조금은 알 듯합니다
무코다 구니코 <영장류 인간과(科) 동물도감> / 중년의 삶이란
천운영 <생강> / 아버지, 당신은 누구인가요?
유성용 <다방기행문> / 오래된 다방의 추억
심아진 <개구리 낯짝에 물 붓기> / 바람처럼 살라는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리처드 와이릭 <부족의 숫자> / 셈이 필요없기 때문일까요
갈산 치낙 <푸른 하늘> / 온기가 식어 미지근해진 돌멩이 하나
김혜진 <오늘의 할 일 작업실> / 거울 속에서 그가 본 건 누구였을까요

3부 :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서하진 <나나> / 우연, 그리고 인연
정길연 <남포동> / 허기, 때문일까요?
김인숙 <미칠 수 있겠니> /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황인숙 <도둑괭이 공주> / 시댁에는 고양이가 있습니다
김경욱 <연애의 여왕> / 10년 전 나의 글을 읽으며
백가흠 <힌트는 도련님> / 잠들지 못하는 밤
최창근 <13월의 길목> / 쟤네 영화 찍냐?
김성중 <그림자> / 정오? 그것이 아니라면
김탁환 <김탁환의 원고지> / 너무도 싸늘한 이성의 순간
강영숙 <프리퍄트 창고> / 프리퍄트 창고를 기다리며
구효서 <동주> / 아카시아 꽃이 떨어졌습니다
서효인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 아찔했던 그 순간

4부 : 조금 더 먼 곳을 바라봅니다
윤성희 <느린 공, 더 느린 공, 아주 느린 공> / 느리게, 더 느리게, 아주 느리게
코이케 마사요 <언덕 무리> / 좀 더 먼 곳까지
김미월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 / 내가 누군지 알아?
로저 스크루턴 <철학자, 와인에 빠져들다> / 나는 마신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홍양순 <미스터리 시간> / 허공에 떠 있다는 느낌
마르셀 에메 <생존 시간 카드> / 때로는 자조에 빠지고
루이스 세풀베다 <지구 끝의 사람들> / 바다로 나가지 못하는 늙은 어부
김별아 <가미가제 독고다이> / 그때가 마음의 봄이었습니다
최제훈 <그림자 박제> / 너, 괜찮니?
니시무라 겐타 <고역 열차> / 가까스로 달려가는 기차
황정은 <옹기전> / 수박은 누가 낳았어?
한유주 <도둑맞을 편지> / 여기 붉은 나무함이 있습니다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 / 우리 머리맡에 늘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는 것들

출전

 

 

 

3. 엄마, 우리 힘들 때 시 읽어요

 

 

 

매일 조금씩 기억을 상실해 가는 엄마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작가는 시간이 날 때마다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날아가 요양원에 계신 엄마를 방문한다. 기억하는 시간이 점점 짧아진 어머니와 대화를 이어가기가 힘들어지자 평소 문학과 시를 좋아했던 어머니를 위해 시를 한 편씩 읽어드렸다.

< 엄마, 우리 힘들 때 시 읽어요>는 방송 작가와 에세이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송정연, 송정림 자매가 공동 집필했다. 시 한 편을 고르고 골라 엄마에게 읽어드리고 엄마의 젊은 날을 이야기하고, 도란도란 모여 살던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고, 엄마에게 못다 한 마음을 표현하고 위안을 전한다.

엄마와 시가 있는 함께 있는 풍경이 얼른 그려지지 않는다. 시 한 편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듯이, 시 한 편에 담긴 수많은 뜻을 단정하여 말할 수 없듯이 그와 똑 닮은 엄마가 있다. 별처럼 빛나면서도 깊은 영감과 여운을 전해주는 엄마와 시가 함께 있다.

하루하루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에게 두 딸은 시 한 편씩을 읽어주기로 한다. 젊을 적 바쁜 일상에도 불구하고 시를 흠모했던 엄마를 떠올리며, 함께 시를 읽는 동안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이제껏 못한 애정공세를 마음껏 펼친다. 작가의 엄마는 곧 모두의 엄마다. 그 엄마가, 그 시가 하늘에서 내 마음으로 내려와 앉아 도리어 나를 위로하고 있다.

 

*

 

어머니는 그 옛날 우리가 어렸을 적에 우리에게 동화책을 읽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어머니에게 시를 읽어드립니다. 어린 시절의 저는 판타지가 있는 동화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인생을 관조하는 연세의 어머니는 시구 하나하나에 삶의 순간들을 대입시키며, 시를 읽어드리는 동안 미소를 짓고 눈물도 지으십니다. 시를 읽어드리면 ‘아, 좋다, 좋다. 참 좋다…….’ 하십니다. 시를 읽어드리는 도중에 가느다란 숨소리를 내며 잠이 들기도 하십니다. 나지막하게 동화 읽어주는 소리에 어린 시절의 제가 잠이 들었듯이 어머니도 딸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이 같은 얼굴로 잠이 듭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가끔 촌철살인의 유머로 우리 모두를 웃게 만들지만 평소 엄마는 말수가 참 없으시죠. 그런데 요즘 특히 더 말이 없어지셨어요. 저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엄마가 건망증이 심해져 혹시 이름을 말했다가 틀릴까 봐, 맞는 얘기가 아닐까 봐, 그래서 더 말씀을 안 하시는 거죠? 자존심 때문이 아니라 엄마가 틀리면 우리가 슬퍼할까 봐서요.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돼요. 엄마는 충분히 깨끗하고 단정하게 살아오셨잖아요. 마음 놓고 좀 틀리셔도 괜찮아요. -<옛날> 중에서

엄마와 함께한 즐거운 순간을 떠올려봅니다. 어린 네 자매가 엄마와 함께 목욕하던 그때, 엄마와 함께 노래 부르던 그때, 엄마가 끓여주신 맛있는 된장국을 먹던 그때, 우리 자매가 피곤한 엄마의 발마사지를 해드리던 그때……. 그 순간이 우리 가족에게는 계절로 치면 푸른 오월이에요. 지금 이 순간…… 엄마에게 시를 읽어드리는 이 시간도 지나고 나면, 반짝이는 아름다운 한때, 푸른 오월로 기억되겠지요. -<푸른 오월> 중에서

그 사람 때문에 아플 수도 없고, 그 사람 때문에 포기할 수도 없고, 그 사람 때문에 절망할 수도 없고, 그 사람으로 인해 희망을 갖고, 그 사람으로 인해 힘이 나고, 그 사람으로 인해 오늘도 열심히 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이 곧 나의 네 번째 클로버 잎입니다. 네 번째 잎을 달아야 비로소 완성되는 내 삶의 행운……. 그 네 번째 잎이 바로 엄마였어요. 네 잎 클로버를 그토록 찾아다녔는데 이제야 발견하다니……. 내 인생의 네 잎 클로버를 완성하고 그 행운을 가져다주는 우리 엄마……. -<네 잎 클로버> 중에서

 

 

본문 속 구절을 읽다가 울컥해서 한참 먹먹해했다.

 

매달 신간 주목 페이퍼를 작성하는 일이 가장 좋은 건,

이렇게 보석같은 책을 발견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것.

 

다음 달 도서로 선정되지 않을것 같으니, 이 책은 내가 구매해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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