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들어도 좋은 말 - 이석원 이야기 산문집
이석원 지음 / 그책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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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친구에게 빌려준 책 중에 나는 정말 좋게 읽어서, 내 인생의 에세이 중 한 권이어서 선뜻 빌려줬었는데 공감하지 못했다, 는 말과 함께 돌아온 책이 있다. 바로, 산문집 보통의 존재. 나는 너무 잘 읽었어서 간과하고 있었던 거다. 비단 책의 문제만은 아니지만, 내가 공감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공감하지 않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이 공감했다고 해서 내가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그 중요한 사실을. 여하튼, 그렇게 책을 돌려받고 그런가?’하고 다시 읽었다. 내 책으로 소장하고 나서 여섯 번째 다시 읽는 것이었는데 나는 여전히 좋았다. 한 번 잘 읽었다고, 여러 번 좋기는 어려운데 여섯 번째 읽어도 좋다니. 이럴 수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번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을 접하기 전에, 작가님의 장편소설 실내 인간도 사서 읽었지만 분야가 소설이어서 그랬는지, 보통의 존재가 너무 좋았던 탓인지 감흥이 조금은 덜했던 것 같다. (물론 읽고 나서 지인들에게 많이 추천했을 정도로 좋게 읽었지만) 그런 작가님의 두 번째 산문집이니, 두말할 것 있나. 읽어야지. 보통의 존재만큼은 아니지만 이번 책의 제목도, 표지도 여전히 내 취향을 저격했다.

 

변함없이, 당황스러울 정도의 솔직함. 나는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솔직하지 못한데, 변함없이 솔직한 글이 부러웠다. 어떤 삶이든, 그런 삶을 내 보일 수 있다는 것이.

 

2009년에 첫 책을 내고, 나는 내가 사십년 만에 처음으로 내 일을 찾은 줄 알았다. 하고 싶은 일, 해야 될 일, 잘할 수 있는 일. 그런데 아니었다. 두 번째 책인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행복하지 않았고 나라는 사람은 원래 일에서 재미나 행복, 성취감 같은 것을 찾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걸 원하고 있는 내가 스스로 당황스러웠다. 지금껏, 거의 평생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건 소수의 혜택 받은 사람들에게나 주어지는 행운 같은 것이라 생각했기에, 어떤 일이건 밥벌이나 기타 등등 필요에 의해서 하는 경우가 많았고, 따라서 거기에 대해 특별히 결핍을 느끼지도 않았다. 어떻든 잘해내기만 하면 그뿐이었으니까. 그랬던 내가, 이제 더는 일이 즐겁지 않다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되었을 때, 나를 지탱하던 많은 것들이 헝클어지고 말았으니. (p.191)

 

이 책을 한 줄로 표현하자면 여전히 솔직한 보통의 존재, 이석원과 철수와 산나와 김정희가 나오는 산문집이다.

 

지독히 불행했던 남자 철수. 그런 그가 불운 올림픽에 출전하게 되고, 기적적으로 우승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그는 태어나서 가장 운이 좋았던 기억으로 이렇게 쓴다. 불운 올림픽에 와서 구남이란 사람을 만난 것이 내 평생의 행운입니다, 라고.

 

산나는 이석원에게, 사람이 사람을 그런 이유로 좋아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려준 사람이었다. 왜 나 같은 걸 니가 좋아해? 싶었던 질문에 대한 답은 그 애의 세 살 난 아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들을 수 있었다. 단지 자신의 옆에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정말이지, 누군가는 누군가를 그렇게 좋아할 수 있다.

 

그리고 포르쉐를 몰던 여의사 김정희. 그녀와의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나는 그녀를 만나면서 그가 했던 고민이 인상 깊었다.

 

내 고민의 포인트는 그녀를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멀쩡한 사람이 왜 사람을 이런 식으 로 만날까. 나는 또 왜 병신처럼 그걸 받아주고 있을까. 분명 뭔가 사연이 있을 것만 같은데 그 이유라도 알면 좀 나을 것 같은데, 그런데도 난 솔직히 털어놓고 대화를 청할 용기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애초 그 사람이 원천 봉쇄를 해둔 탓이긴 하지만 사실 이게 과연 이해의 문제인지 그게 해결되고 나면 정말 내 마음이 괜찮아질지조차 알 수 없었다. (p.219)

 

그 즈음 그는 우연히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말년을 그린 영화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을 보았고, 톨스토이와 그의 아내 소피아를 보며 그는 이렇게 썼다.

 

사랑은 이처럼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끊임없이 확인하게 되는 것. 나를 사랑하냐고 묻는 것이 또한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될 수 있는 이유이다.

(중략)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런 소피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랑이란 그럴 수 있는 거니까. 온 세상 사람들이 나를 알아준다 한들 당신이 몰라주면 소용없는 거니까. 그건 온 세상이 몰라주는 것과 다름 없으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이해해줄 때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가. 그러나 그건 어렵고도 힘든 일.

(중략)

사랑이란 결국 상대와는 상관없는 나 자신의 문제이기에, 이렇게 엇갈릴 수밖에 없으며 사랑의 그런 영원히 완결될 수 없는 불완전성이야마로 사랑을 영원하게 해주는 요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p.221)

 

위 구절이 담긴 사랑과 이해라는 글에서, 그는 영화 렛미인에 대한 생각도 덧붙인다.

 

가끔은 사랑보다 이해가 더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가끔이 아니라 자주. (p.225)

 

그리고 이야기의 중심은 계속해서 김정희다. 김정희를 만나고, 기다리고, 생각하다 크리스마스가 온다. 두 사람의 관계에 변화가 있기 무섭게, 두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을 마주하고 만다. 그 순간 남자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면, 여자가 좀 더 남자를 포용할 수 있을 때 만났으면 두 사람은 헤어지지 않았을까?

 

원래 여자친구의 휴대폰을 절대로 보지 않던 남자는, 이번만큼은 보게 되는데 그녀의 휴대폰에서 자신은 몰랐던 그녀를 발견한다. 동료 의사에게 보낸 그녀의 문자들. 일기 같기도 하고 혼잣말 같기도 한 그것들은 실은 모두 그에게 보내는 말들이었다. 그 말들을 보면서 그는 자책감이 든 동시에 그녀가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자신이 스스로 정리해 자신의 입으로 뱉어낸 그 말 그대로 종료가 되어 어떤 것으로도 되돌릴 수 없지만, 사람 마음이 어디 드라마 끝나듯 그럴 수 있나. 그녀에게 너무나 연락하고 싶지만, 그는 나리의 조언대로 연락하지 않기로 한다.

 

석원아. 너 그거 알지. 병법에 생즉사, 사즉생이라고 있는 거. 죽으려면 살고 살려면 죽는다. 연애도 전쟁이야. 작전도 있어야 하구 타이밍은 또 얼마나 중요하니? 넌 지금 무조건 그 여자를 잊고 지내야 해. 그래야 단 일 프로라도 남아 있는 가능성을 잡을 수 있어. 만약 니가 지금 한 발짝이라도 다가가면 그 여자는 우주 밖으로 달아나. 명심해. 널 안 좋아해서가 아냐. 사람 마음이 그래.” (p.304)

  

이 책의 제목,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그녀 김정희에게서 오던 문자 중 하나였다.

 

뭐해요?

 

꽃피는 5월의 계동.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고, 그는 늘 그렇듯 오후의 홍차로 향하던 어느 날이었다. 오후의 홍차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려던 그 순간,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갑작스런 벨소리에 놀라 들어가려다 말고 도로 가게 밖으로 나와서는 휴대폰 화면을 확인하는데, 세상에...... ‘전화를 걸어온 사람이 여자고 직업은 의사이며 성이 김씨였다면 믿겠는가?’ 하며 그는 두 번째 산문집을 갈무리한다. 그의 변함없이, 당황스러울 정도의 솔직함이 전작 보통의 존재에서는 그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만들었다면 이번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에서는 그의 이야기에 쉽게 빠져들게 만들어서, 쉽사리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들었다. 내 연애처럼 고민하고, 공감하며 읽게 만들다니. , 이러니 내가 그의 산문집을 사랑해 마지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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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까칠하게 말할 것 - 착한사람들을 위한 처방전
후쿠다 가즈야 지음, 박현미 옮김 / MY(흐름출판)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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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주변에서 당신을 의식하도록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해야 합니다. 방심하게 만들어서 경계심을 풀게해야 하는 상대도 있지만, 보통은 적당하게 경계하도록 만드는 편이 좋습니다. 이 사람에게 바보 같은 말이나 행동을 하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 같다, 창피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인상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p.41)

 

이 구절을 읽는데 영화 <부당거래> 속 류승범의 대사가 떠올랐다. ‘호이가 계속되면 둘리인 줄 알아요라며 농담 삼아 바꿔 이야기하곤 하는 그 대사. 여기서 호의는 비단 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데, 그 중에서도 을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건 왜일까. 그건 아마도, 말의 영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어떤 부탁을 받았을 때, 그 부탁을 수락하는 것도 거절하는 것도 결국에는 말로 이루어진다. 나로 예를 들자면 이러하다. 부탁을 승낙했을 때, 내가 감수해야 할 일이 얼마나 고될지 알면서도 거절하는 그 한 마디를 못해서 승낙할 때가 많았다. 또 이런 경우. 누군가 나에 대해 한 말에, 나를 무시하는 뉘앙스가 녹아있음을 알면서도 왜 말을 그렇게 하느냐고 한 마디를 못해서 우물쩍 넘길 때도 많았다. 집에 오면 왜 그때 그 말을 못했을까, 하고 후회하면서도 매번 그랬다. 나쁘게 말하자면 미련한 거고, 좋게 말하자면 가끔이라도 까칠하게 말하는 기술을 모르는 사람이다.

 

앞서 소개한 구절은 이 책 가끔은 까칠하게 말할 것속 한 구절이다. ‘착한 사람들을 위한 처방전이라는 게 이 책의 부제인데, 개인으로 착한 사람이라는 표현을 보며 많이 찔렸다. 착한 건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표현이니 둘째치더라도, 영악하지 못한 사람 혹은 답답한 사람을 에둘러 표현하는 것만 같아서. 절대적으로 후자에 속하는 나로서는 위 구절을 비롯해 여러 구절을 읽으면서 공감했지만, 이 책의 모든 부분이 공감이 갔던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8낯선 사람을 만난다는 스릴이라는 글이 특히 그랬다. 이 글에서는 인터넷상에서 닉네임을 두고 신랄하게 비판하는데, 닉네임 사용의 부정적인 예만을 떠올리고 글을 쓴 게 아닐까 싶었다. 닉네임, 다시 말해 익명성으로 인한 여러 문제는 여전히 벌어지고 있지만 아닌 경우도 많다. 10년 가까이 블로그를 해오면서, 나는 내 닉네임에 대한 막중한 책임과 자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 오프라인에서 만날 기회가 생겼을 때 닉네임은 그 사람의 이름을 대신하곤 한다. 자신을 타인에게 드러내는 일을 안이하고 어리석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많은데, 책의 방향성 때문인지 이 부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처럼 쓰인 것 같아 아쉬웠다.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할 아침에 까칠하게 말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건 아니지만, 수확 아닌 수확은 있었다. 바로, 반성이었다.

나를 돌아보면 늘 그랬다. 때때로 까칠하게 말하는 것은 결국 나에게 좋은 일인 것일텐데, 문제는 그 긴장감을 상대가 아닌 내가 더 부담스러워 했다. 겉으로 표현하진 않지만, 속으론 쩔쩔매고 그래서 더 문제였다. 혼자 마음 고생하고 나면 그래, 이게 내 성격이겠거니-’ 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호이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 결국 상대를 둘리로 만든 것은 나였구나. 그래놓고 둘리인 줄 안다며 혼자 열을 냈구나 하고.

 

착한사람 콤플렉스를 벗어나게 해주는 고수의 대화법을 읽고 나서도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한 건, 둘 중 하나다. 영악하지 못한 사람도 못 되는 답답한 사람이거나 아직 그럴만한 대화를 할 기회가 없었던 것. 아니, 대화에 있어서 고수가 되지 못해도 좋다.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고, 나 역시 귀 기울여 들어주고 싶은 상대가 한 명이라도 곁에 있다면 나는 그걸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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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cm art 일센티 아트 - 1cm 더 크리에이티브한 시선으로 일상을 예술처럼 1cm 시리즈
김은주 글, 양현정 그림 / 허밍버드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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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선물 받아 읽고 너무 마음에 들어서, 몇 번이나 구매해 선물했던 책이 있다. 아기자기한 그림과 감성을 자극하는 글로 긴 여운을 안겨주었던 책. 김은주 작가와 양현정 일러스트레이터의 1cm +가 바로 그 책이다.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 1cm 시리즈가 이 책 1cm art라는 책으로 다시 돌아온 걸 보고 반가워했었는데, 마침 이렇게 신간리뷰단을 통해 읽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

 

이 책은 1cm 시리즈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여전히 크리에이티브한 시선으로 일상을 예술처럼 보게 만들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든다. 빈센트 반 고흐의 <파이프를 물고 귀에 붕대를 한 자화상>을 패러디한 그림이 독자를 반겨주던 첫 장. 파이프를 문 곰군을 보며 미소 짓다가 옆에 담긴 글에 시선이 한참 머문다.

 

명작에 필요한 것

 

고흐와 드가와 마네, 르누아르와 세잔,

그리고 다른 동시대의 화가들을 신경 쓰고

질투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면

그는 무수한 명작들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리면서

그가 신경 쓴 것은 오직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과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그리고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일 것이다.

 

- 1cm artp.13 ‘명작에 필요한 것중에서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비롯해 모든 명작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 글이었다. 명작에 필요한 것은 비단 명작을 신경 쓰는 것만은 아니겠지만, 그 어떤 것보다 명작에 필요한 건 명작만을 신경 쓰는 것임을 생각하게 만들어주었다.

 

이렇게 소개하고 싶은 글이 차고 넘치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던 글을 한 편을 더 소개한다.

 

재능은

잘하는 것을 타고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좋아하는 것을 타고나는 것일 수도 있다.

 

꿈은

좋아하는 것을 통해 다른 어떤 것을 이루는 것일 수도 있지만

좋아하는 것을 계속해서 할 수 있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

 

- 1cm artp.224 ‘재능에 대한 오해중에서

 

내가 가진 편견들을 깨고 새로운 시각을 갖게 만드는 책 앞에서, 내가 듣고 싶어 했던 말만 쏙쏙 골라 읽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부끄럽지만 나는 이 구절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좋아하는 것을 타고나는 것 역시 재능이라고 말한 것도 좋았지만, ‘오해라는 단어를 이렇게 반갑게 마주할 수 있게 만들다니. 누가 1cm 시리즈 아니랄까봐 이렇게 멋있다.

 

2년 전 지인들에게 1cm 시리즈를 선물했던 그때를 다시 떠올려본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얻은 새로운 시각, 눈 호강, 훈훈한 감성 등 모든 게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건 역시 '여유'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리적인 여유보다는 사고에 있어 여유가 생겼다는 말이 맞겠다.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주위를 둘러보다보니 물리적인 시간은 조금 더 들었지만, 그리하여 조금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면서 여유로운 사고를 하게 되었던 것 같다. 부정적이었던 시각도 다소 긍정적인 시각으로 변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나라는 사람이 온전하게 새로운 사람으로 변한 것은 아니다. 사람이란 그리 쉽게 변하지 않고, 나 역시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 책처럼, 편견을 깨고 다른 시각으로 보고 생각하게 만드는 책을 곁에 두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의 나보다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을 만드는 건, 어쩌면 일상 속에 숨겨진 1cm의 어떤 것이라는 걸 알게 해준 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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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인대학교 낯가림학과 졸업하기 - 낯가림 심한 개그맨의 우왕좌왕 사회 적응기
와카바야시 마사야스 지음, 전경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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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인대학교 낯가림학과 졸업하기’.

 

한 낯가림하는 나로서는 눈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제목이었다. 제목만 봤을 때는 막연하게, ‘사회에서 낯가리는 사람을 위한 지침서인 줄 알았지만 막상 읽어보니 아니었다. 이 책의 부제대로 낯가림 심한 개그맨의 우왕좌왕 사회 적응기.

 

이 책을 쓴 개그맨 와카바야시 마사야스로 말할 것 같으면, 귀여운 외모와 달리 괴짜인 면모가 강하고, 낯가리고 소심하지만 또 할 말은 다하는 우직한 스타일의 개그맨이다. 읽다보니 외모가 궁금해져서 검색을 해봤는데, 표지에 조그맣게 그려진 캐릭터와 똑같이 생긴 외모에 빵 터졌다. 저 캐릭터가 쫑알쫑알 하고 말 할 것 같아서.

 

M-1 그랑프리에서 2위에 입상한 후 방송 일이 마구 들어오기 시작한 마사야스는, 그때 처음으로 사회에 참여하고 있다고 느꼈다. 무명의 젊은 개그맨이었던 그가 그런 감정을 맛보기 시작한 건 서른이 되고 나서였다. 길고 긴 밑바닥 생활을 보내면서 세상과 완전히 동떨어진 인간이 되고 말았고, 그래서인지 사회라는 곳에서 겪는 하루하루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러한 충격과 경험을 사회인 2학년이라는 제목 아래 풀어 쓴 글이 이 책에 담긴 것인데, 가령 이런 일이다.

대략 하루에 50명 정도의 방문자 수를 유지하며 몇 년간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써서 올렸던 블로그가 6만명이 방문하는 블로그가 된 것. 그리고 날아드는 2병 같다는 피드백. 사회에서 취미에 대해 말하는 것. 미식 프로그램에서 고급 요리를 먹고 소감을 말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 말을 골라 하지 않아 화를 당했던 기억들. 술 마시는 재미를 알게 되고, 청년이라는 범주에 자신이 완전히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한 것 등등 사회인으로서 겪게 된 일을 마사야스 식으로 풀어낸다.

 

내가 가장 와 닿았던 건, 한 번도 나오지 않다가 후반부에야 처음 나온 파트너 이야기였다. 마사야스는 자신을, 스스로 즐거움을 느끼는 능력이나 한정된 조건에서 즐겁게 지내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의 반대편에 있는 남자가 파트너인 가스가라고 말한다. 반응도 전혀 없고, 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어쩌면 저렇게 행복해 보이는 걸까하고 신기했다고.

 

솔직히 말해서 가스가가 말을 재미있게 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굉장히 재미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모습을, 어린아이가 다가오지 않는 내가 바로 곁에서 지켜보며 즐기고 있다. 자신감도 넘치고, 자기과시를 하기 위해 특별히 자신을 크게 보일 필요가 없는 멋진 남자라고 생각한다.

나도 정말로 멋진 남자가 되어 행복을 실감하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위로 올라가면서.

나는 가스가를 동경한다. (p.215)

 

내가 가스가인양 벅찬 마음으로 읽었던 구절이다. 주위를 둘러 보면 잘 맞는 사람과 파트너를 이루는 경우도 있지만, 정 반대인 사람과 파트너를 이루는 경우도 있다. 마사야스와 가스가는 후자의 경우다. 이 구절이 와 닿았던 건, 나 역시 가스가보다 마사야스와 같은 성향의 사람이기에 그랬던 것 같다. 나와 다른 멋진 모습을 동경할 수 있어도 그걸 표현하기는 쉽지 않은데, 마사야사는 진심을 다해 고백한다. 가스가를 동경한다고. 마사야스는 가스가를 동경하고, 나는 가스가를 동경하는 마사야스가 멋있는 순간이었다.

 

내 마음을 뒤져보니, 손에 잡히는 것은 늘 과정이었다. 그만큼 했고, 그만큼 귀찮기도 하고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완벽하게는 못했지만 내 나름대로 해냈구나. 그런 간단한 감상만은 늘 가치가 내려가지 않고 가슴에 남아 있는 것이다.

(중략)

특별히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다. 그런 내가 나만의 최선을 끊임없이 갱신해가다 보면 결과가 뒤따라오든 말든 상관없지 않을까. 이처럼 특별한 재능이 없으니 나의 최선을 끊임없이 갱신할 수밖에 없다는 해탈은 내게 자신감을 주었다.

의외였다.

좋은 결과의 연속이 자신감을 낳는다고 믿어왔으니까. 하지만 이 자신감은 결과가 가져다준 것보다 더 믿을 수 있다. (p.227)

 

위 구절은 맺음말인 사회인대학교 졸업논문속 구절이다. 사회에 참가하기 시작했다고 인식한 시기를 2008M-1 그랑프리 때부터라고 했고, 그로부터 4년이 지났는데 대학이라면 마침 졸업할 시기도 하니 이참에 졸업논문을 써보기로 한다고 맺음말을 시작하는데, 마사야스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졸업논문 속에 담긴 글 역시 졸업논문다운 글답게 완성도 있었는데, 글에 있어서의 완성도도 그렇지만 사회에 대해 마사야스의 생각이 완성된 글 같았다고나 할까. 끝까지 위트를 잃지 않으면서, 때때로 끄덕끄덕하게 만드는 마사야스의 글들.

 

훗날 나는 어떤 결과를 마주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 마음을 뒤져봤을 때 손에 잡히는 것 중 이 유쾌한 책이 있을 거라는 기분 좋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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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16기에도 신간평가단 활동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

남은 4분기에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이 아닌, 내가 읽기로 했고 읽어야 할 책에 무게를 두고 읽기로 했으니-

다잡은 마음을 16기 첫 신간페이퍼에 쏟아본다.

 

 

 

1. 김훈 <라면을 끓이며>

 

소설가 김훈 산문집. 오래전에 절판되어 애서가들로 하여금 헌책방을 찾아다니게 한 김훈의 전설적인 산문 <밥벌이의 지겨움>,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바다의 기별>에서 시대를 초월해 기억될 만한 산문들을 가려 뽑고, 이후 새로 쓴 산문 원고 400매가량을 합쳐 엮었다.

가족 이야기부터 기자 시절 거리에서 써내려간 글들, 최근에 도시를 견디지 못하고 동해와 서해의 섬에 각각 들어가 새로운 언어를 기다리며 써내려간 글에 이르기까지, 김훈의 어제와 오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전히 원고지에 육필로 글을 쓰고, 자가용에 몸을 싣는 대신 자전거를 타고 두 발로 바퀴를 굴려 세상을 나아가는 그가 기록한 세상과 내면의 지난한 풍경들. '밥벌이의 지겨움',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등 길이 회자되는 김훈의 명문장들을 읽는 기쁨과 함께,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시대에 진영 논리에 휩싸여 악다구니를 벌이는 권력가들에게 그가 '슬프고 기막혀서' 써내려간 글, 여전히 '먹고살기의 지옥을 헤매고 있'는 보통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김훈 산문의 정수'가 이 책에 있다.

 

 


 

 

작년 11월에 김훈-김연수 작가님 북토크를 다녀오고, <자전거 여행>을 꼭 한 번 읽어봐야지 했는데 아직까지 읽지 못하고 이 책의 출간 소식을 접했다. 북토크에서 내가 김훈 작가님의 산문집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그분이 말하시는 걸 내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이 컸던 것 같다. 글을 보면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 김훈 작가님의 글은 김훈 작가님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정갈하고 담백한 느낌이 들었었는데, 딱 그런 느낌이 들었다. 소설이야 그렇다치지만 산문집이라면? 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읽어보고 싶었다. 지난 10개월간 게으른 탓에 결국 책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이 책을 통해 작가님의 산문집을 처음 만난다니 어딘지 모르게 설렌다. 예약판매때 구매를 하면 라면 한 봉지와 냄비를 주는 행사를 했었는데, 10월에 도서전에 방문해서 구매하려고 아껴뒀다. 그런 책이기에, 신간페이퍼에서 언급을 안할 수 없어서 넣었다. 넣고보니 1순위라는 게 함정.ㅎㅎ

 

 

 

2. 이석원 <언제 들어도 좋은 말>

 

<보통의 존재>로 큰 사랑을 받았던 이석원의 두 번째 산문집. 현실적인 소재로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탁월한 그답게 이번 산문집 또한 밑줄을 그어가며 읽고 싶은 이석원의 언어로 가득하다. 그의 대표작이자 첫 번째 산문집인 <보통의 존재>는 출간하자마자 연애와 결혼, 일과 미래 등 모든 것이 불투명한 젊은이들의 불안감을 따뜻하게 보듬으며 단숨에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작가 이전에 한 사람의 창작자로서 그는 무엇을 만들든 전작과는 다르게 만드는 것을 창작의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아 왔다고 한다. 그렇기에 <보통의 존재>와는 사뭇 다른, 그러나 이석원만의 개성은 살아 있는 전혀 새로운 산문집이 나올 수 있었다.

<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형식과 내용 두 가지 면에서 모두 독특한 책이다. 여느 에세이처럼 짧은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책 한 권을 관통하는 하나의 긴 이야기를 품되 작가 자신의 생각과 느낌에 집중하여 글을 전개함으로써 '산문집'의 형태로 만들어낸 것이다.

이석원의 글이 가진 특유의 흡인력과 속도감은 유지하면서 에세이 본연의 역할 또한 놓치지 않았다. 순간순간 작가의 생각을 드러내는 길고 짧은 글들은 단순히 페이지를 넘기도록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각하고 쉬어갈 거리'를 준다. 사람과 삶, 사랑이라는 주제에 한결같이 매달려온 작가는 이번에도 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표현의 도구로 특별히 '말'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 안에는 유난히 많은 '말'들이 담겨 있다.

 

 


 

올해 친구에게 빌려준 책 중에 나는 정말 좋게 읽어서, 내 인생의 에세이 중 한 권이어서 빌려줬었는데 공감하지 못했다,는 말과 함께 돌아온 책이 있다. 바로 <보통의 존재>다. 나는 너무 잘 읽었어서 간과하고 있었던 거다. 비단 책의 문제만이 아니지만, 내가 공감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공감하지 않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이 공감했다고 해서 내가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여하튼, 그렇게 책을 돌려받고 '그런가?'하고 다시 읽었다. 내 책으로 소장하고 나서 여섯번째 다시 읽는 것이었는데 그래도 좋았다. 아, 한 번 좋은 책이었다고 이렇게 여러 번 좋기도 어려운데 여섯번째도 좋다니. 그 사이에 작가님의 장편소설이었던 <실내 인간>도 사서 읽었지만 분야가 소설이어서였는지, <보통의 존재>가 너무 좋았던 탓인지 감흥이 조금은 덜했던 것 같다. (물론 읽고 나서 지인들에게 많이 추천했을 정도로 좋게 읽었지만) 그런 작가님의 두번째 산문집이니, 두말할 것 있나. 당연히 읽어야지. 보통의 존재만큼은 아니지만, 이번 책의 제목도 표지도 취향 저격 제대로다.

 

 

3. 고코로야 진노스케 <너무 노력하지 말아요>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다 이루어진다? 그 '언젠가는'이 행복을 향해 가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걸 실은 다들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모두들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오늘 하루의 '확실한 행복'을 양보하며 끝없이 노력하는 삶을 살아간다. 어떤 사람들은 별반 노력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이상하게 행복해 보인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20년 가까이 대기업에서 근무하다가 '성격 리폼 전문 심리 카운슬러'로 전직한 저자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현장에서 직접 겪으며 깨우친 진리를 <너무 노력하지 말아요>에서 쉽고 친근하게 전한다. 열심히 하는데 결과가 없고 인정받지도 못한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스스로 나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노력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는, 그 정도뿐인 존재'라는 강박관념은 결국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 진정한 자신감은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그래도 나는 고유하고 대단해'라고 생각할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노력과 그 결과 이전에, 고유한 가치를 지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저자는 생생한 경험을 토대로, '너무 노력하지 않고도 행복해질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한다. 그리고 내가 열심히 하든 안 하든 일어날 문제는 일어난다는 진실, 지금 있는 곳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은 언제, 그 어디를 가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성공과 돈은 경험해본 사람에게 더 쉽게 찾아온다는 것을 일깨운다.

 

 


 

학창시절 내 좌우명에 항상 들어가는 단어가 있었다. '노력'이라는 단어. 그땐 노력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노력'에 대한 내 생각이 바뀐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나는 한국지리와 세계지리를 선택하게 되었는데, 고민끝에 나는 세계지리를 택했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재미있어서 참 좋아했던 과목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성적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그런 나를 안타깝게 생각하셨는지, 하루는 세계지리 선생님이 나를 교무실로 부르셨다. 수업 시간에 가장 열심히 하는 것도 나고, 이 과목에 있어 가장 흥미를 보이는 것도 나인데 노력하는 것에 비해 턱없이 낮은 나의 시험 점수에 대해 진지하게, 함께 고민해주셨다. 노력만해서 되는 건 아니라고. 아무래도 공부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내 공부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나를 아껴주셨기에 그런 이야기를 해주신 것에 감사했고, 한편으론 당황했고 복잡한 감정 때문이었는지 울면서 교실로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나 역시 열심히 하는데 결과가 없었던 건, 한 번도 나를 돌아보려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후에는, 이 책에서 말하는 대로 '나는 노력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는, 그 정도뿐인 존재'라는 강박관념이 나를 지치게 만들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노력이었고, 그 정도뿐인 존재라는 걸 인정하고 있어서 힘들었다. 이 책을 읽은건 아니지만, 오늘만큼은 이 책의 제목에 위로를 받아본다. 우리, 너무 노력하지 말아요.

 

 

 

4. 정은우 <아무래도 좋을 그림>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파워블로그' 제도를 만든 2008년부터 2014년까지 3491명의 파워블로거가 탄생했다. 그중 7년 연속 파워블로거로 남아 있는 사람은 단 14명. 그만큼 꾸준히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반증일 것이다.

7년 연속 에세이와 예술 분야 파워블로거로 활약 중인 '솔샤르' 정은우 작가는 '특별한 걸 만들어내는 재주'보다는 '꾸준히 하는 능력'을 재능이라 여기며, 지난 7년 동안 약 370만 명의 네티즌과 소통해왔다. 그중 특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두터운 팬층까지 거느린 주제가 바로 여행지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한 만년필 스케치였다.

뉴욕 5번가의 거리 모습, 터키 아야소피아 성당의 내부, 대만 스린 야시장의 한 장면, 노르웨이 주택가에서 마주친 길고양이, 샌프란시스코의 노면전차, 서울의 종묘와 창경궁, 교토 은각사와 기요미즈테라 등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마음에 새긴 한 장면을 날카롭고 섬세한 터치로 그려낸 만년필 스케치는 흔히 보던 사진 속 여행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특유의 아날로그적 감수성과 날선 통찰력이 돋보이는 글도 매력적이다. 흔한 블로그 여행기가 어디서 뭘 보고 뭘 먹고 어떻게 이동하고 어디서 잤는지 등의 일상 글이라면, 정은우 작가의 글은 신변잡기적 수다를 일체 배제한 채 여행지의 건물 또는 사물의 역사가 가진 모순이라거나, 거기에서 읽어내야 할 의미 등을 뚜렷한 기승전결을 갖춘 한 편의 에세이로 완성시키고 있다.

 

 


 

한 번도 파워블로거가 되어본 적은 없지만, 꾸준히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건 뼈저리게 안다. 왜냐하면 한 가지씩 떼놓고 봐도 충분히 어려운 일이기 떄문이다. 시덥잖은 이야기여도 '꾸준히'하는 일은 쉽지 않고,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은 두말하면 입 아프다. 어려운 일이다. 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낸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나 역시 한 사람의 블로거로서 존경심이 생기고, 아낌 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네이버 블로그 메인에서 걸어주는 7년 연속 파워블로거에 대한 인터뷰 기사와 함께 콘텐츠를 소개해준 적이 있어서  블로그를 방문해 보았는데, 7년 간의 내공이 어마어마하게 쌓인 블로그였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만년필로 그렇게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 참 부러웠다. 단순히 그림이었다면 멋있다는 감정에서 끝났을텐데, 그림 솜씨만큼이나 글도 참 잘 쓰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두배로 부러웠다. 그림도 잘 그리면서 글도 잘 쓰면 어쩌자는 거야. 어쩌긴 뭘 어쩌나. 그런 기록이 담긴 이 책을 읽고 계속해서 부러워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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