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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16기에도 신간평가단 활동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

남은 4분기에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이 아닌, 내가 읽기로 했고 읽어야 할 책에 무게를 두고 읽기로 했으니-

다잡은 마음을 16기 첫 신간페이퍼에 쏟아본다.

 

 

 

1. 김훈 <라면을 끓이며>

 

소설가 김훈 산문집. 오래전에 절판되어 애서가들로 하여금 헌책방을 찾아다니게 한 김훈의 전설적인 산문 <밥벌이의 지겨움>,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바다의 기별>에서 시대를 초월해 기억될 만한 산문들을 가려 뽑고, 이후 새로 쓴 산문 원고 400매가량을 합쳐 엮었다.

가족 이야기부터 기자 시절 거리에서 써내려간 글들, 최근에 도시를 견디지 못하고 동해와 서해의 섬에 각각 들어가 새로운 언어를 기다리며 써내려간 글에 이르기까지, 김훈의 어제와 오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전히 원고지에 육필로 글을 쓰고, 자가용에 몸을 싣는 대신 자전거를 타고 두 발로 바퀴를 굴려 세상을 나아가는 그가 기록한 세상과 내면의 지난한 풍경들. '밥벌이의 지겨움',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등 길이 회자되는 김훈의 명문장들을 읽는 기쁨과 함께,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시대에 진영 논리에 휩싸여 악다구니를 벌이는 권력가들에게 그가 '슬프고 기막혀서' 써내려간 글, 여전히 '먹고살기의 지옥을 헤매고 있'는 보통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김훈 산문의 정수'가 이 책에 있다.

 

 


 

 

작년 11월에 김훈-김연수 작가님 북토크를 다녀오고, <자전거 여행>을 꼭 한 번 읽어봐야지 했는데 아직까지 읽지 못하고 이 책의 출간 소식을 접했다. 북토크에서 내가 김훈 작가님의 산문집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그분이 말하시는 걸 내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이 컸던 것 같다. 글을 보면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 김훈 작가님의 글은 김훈 작가님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정갈하고 담백한 느낌이 들었었는데, 딱 그런 느낌이 들었다. 소설이야 그렇다치지만 산문집이라면? 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읽어보고 싶었다. 지난 10개월간 게으른 탓에 결국 책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이 책을 통해 작가님의 산문집을 처음 만난다니 어딘지 모르게 설렌다. 예약판매때 구매를 하면 라면 한 봉지와 냄비를 주는 행사를 했었는데, 10월에 도서전에 방문해서 구매하려고 아껴뒀다. 그런 책이기에, 신간페이퍼에서 언급을 안할 수 없어서 넣었다. 넣고보니 1순위라는 게 함정.ㅎㅎ

 

 

 

2. 이석원 <언제 들어도 좋은 말>

 

<보통의 존재>로 큰 사랑을 받았던 이석원의 두 번째 산문집. 현실적인 소재로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탁월한 그답게 이번 산문집 또한 밑줄을 그어가며 읽고 싶은 이석원의 언어로 가득하다. 그의 대표작이자 첫 번째 산문집인 <보통의 존재>는 출간하자마자 연애와 결혼, 일과 미래 등 모든 것이 불투명한 젊은이들의 불안감을 따뜻하게 보듬으며 단숨에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작가 이전에 한 사람의 창작자로서 그는 무엇을 만들든 전작과는 다르게 만드는 것을 창작의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아 왔다고 한다. 그렇기에 <보통의 존재>와는 사뭇 다른, 그러나 이석원만의 개성은 살아 있는 전혀 새로운 산문집이 나올 수 있었다.

<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형식과 내용 두 가지 면에서 모두 독특한 책이다. 여느 에세이처럼 짧은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책 한 권을 관통하는 하나의 긴 이야기를 품되 작가 자신의 생각과 느낌에 집중하여 글을 전개함으로써 '산문집'의 형태로 만들어낸 것이다.

이석원의 글이 가진 특유의 흡인력과 속도감은 유지하면서 에세이 본연의 역할 또한 놓치지 않았다. 순간순간 작가의 생각을 드러내는 길고 짧은 글들은 단순히 페이지를 넘기도록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각하고 쉬어갈 거리'를 준다. 사람과 삶, 사랑이라는 주제에 한결같이 매달려온 작가는 이번에도 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표현의 도구로 특별히 '말'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 안에는 유난히 많은 '말'들이 담겨 있다.

 

 


 

올해 친구에게 빌려준 책 중에 나는 정말 좋게 읽어서, 내 인생의 에세이 중 한 권이어서 빌려줬었는데 공감하지 못했다,는 말과 함께 돌아온 책이 있다. 바로 <보통의 존재>다. 나는 너무 잘 읽었어서 간과하고 있었던 거다. 비단 책의 문제만이 아니지만, 내가 공감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공감하지 않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이 공감했다고 해서 내가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여하튼, 그렇게 책을 돌려받고 '그런가?'하고 다시 읽었다. 내 책으로 소장하고 나서 여섯번째 다시 읽는 것이었는데 그래도 좋았다. 아, 한 번 좋은 책이었다고 이렇게 여러 번 좋기도 어려운데 여섯번째도 좋다니. 그 사이에 작가님의 장편소설이었던 <실내 인간>도 사서 읽었지만 분야가 소설이어서였는지, <보통의 존재>가 너무 좋았던 탓인지 감흥이 조금은 덜했던 것 같다. (물론 읽고 나서 지인들에게 많이 추천했을 정도로 좋게 읽었지만) 그런 작가님의 두번째 산문집이니, 두말할 것 있나. 당연히 읽어야지. 보통의 존재만큼은 아니지만, 이번 책의 제목도 표지도 취향 저격 제대로다.

 

 

3. 고코로야 진노스케 <너무 노력하지 말아요>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다 이루어진다? 그 '언젠가는'이 행복을 향해 가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걸 실은 다들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모두들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오늘 하루의 '확실한 행복'을 양보하며 끝없이 노력하는 삶을 살아간다. 어떤 사람들은 별반 노력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이상하게 행복해 보인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20년 가까이 대기업에서 근무하다가 '성격 리폼 전문 심리 카운슬러'로 전직한 저자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현장에서 직접 겪으며 깨우친 진리를 <너무 노력하지 말아요>에서 쉽고 친근하게 전한다. 열심히 하는데 결과가 없고 인정받지도 못한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스스로 나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노력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는, 그 정도뿐인 존재'라는 강박관념은 결국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 진정한 자신감은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그래도 나는 고유하고 대단해'라고 생각할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노력과 그 결과 이전에, 고유한 가치를 지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저자는 생생한 경험을 토대로, '너무 노력하지 않고도 행복해질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한다. 그리고 내가 열심히 하든 안 하든 일어날 문제는 일어난다는 진실, 지금 있는 곳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은 언제, 그 어디를 가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성공과 돈은 경험해본 사람에게 더 쉽게 찾아온다는 것을 일깨운다.

 

 


 

학창시절 내 좌우명에 항상 들어가는 단어가 있었다. '노력'이라는 단어. 그땐 노력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노력'에 대한 내 생각이 바뀐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나는 한국지리와 세계지리를 선택하게 되었는데, 고민끝에 나는 세계지리를 택했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재미있어서 참 좋아했던 과목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성적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그런 나를 안타깝게 생각하셨는지, 하루는 세계지리 선생님이 나를 교무실로 부르셨다. 수업 시간에 가장 열심히 하는 것도 나고, 이 과목에 있어 가장 흥미를 보이는 것도 나인데 노력하는 것에 비해 턱없이 낮은 나의 시험 점수에 대해 진지하게, 함께 고민해주셨다. 노력만해서 되는 건 아니라고. 아무래도 공부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내 공부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나를 아껴주셨기에 그런 이야기를 해주신 것에 감사했고, 한편으론 당황했고 복잡한 감정 때문이었는지 울면서 교실로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나 역시 열심히 하는데 결과가 없었던 건, 한 번도 나를 돌아보려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후에는, 이 책에서 말하는 대로 '나는 노력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는, 그 정도뿐인 존재'라는 강박관념이 나를 지치게 만들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노력이었고, 그 정도뿐인 존재라는 걸 인정하고 있어서 힘들었다. 이 책을 읽은건 아니지만, 오늘만큼은 이 책의 제목에 위로를 받아본다. 우리, 너무 노력하지 말아요.

 

 

 

4. 정은우 <아무래도 좋을 그림>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파워블로그' 제도를 만든 2008년부터 2014년까지 3491명의 파워블로거가 탄생했다. 그중 7년 연속 파워블로거로 남아 있는 사람은 단 14명. 그만큼 꾸준히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반증일 것이다.

7년 연속 에세이와 예술 분야 파워블로거로 활약 중인 '솔샤르' 정은우 작가는 '특별한 걸 만들어내는 재주'보다는 '꾸준히 하는 능력'을 재능이라 여기며, 지난 7년 동안 약 370만 명의 네티즌과 소통해왔다. 그중 특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두터운 팬층까지 거느린 주제가 바로 여행지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한 만년필 스케치였다.

뉴욕 5번가의 거리 모습, 터키 아야소피아 성당의 내부, 대만 스린 야시장의 한 장면, 노르웨이 주택가에서 마주친 길고양이, 샌프란시스코의 노면전차, 서울의 종묘와 창경궁, 교토 은각사와 기요미즈테라 등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마음에 새긴 한 장면을 날카롭고 섬세한 터치로 그려낸 만년필 스케치는 흔히 보던 사진 속 여행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특유의 아날로그적 감수성과 날선 통찰력이 돋보이는 글도 매력적이다. 흔한 블로그 여행기가 어디서 뭘 보고 뭘 먹고 어떻게 이동하고 어디서 잤는지 등의 일상 글이라면, 정은우 작가의 글은 신변잡기적 수다를 일체 배제한 채 여행지의 건물 또는 사물의 역사가 가진 모순이라거나, 거기에서 읽어내야 할 의미 등을 뚜렷한 기승전결을 갖춘 한 편의 에세이로 완성시키고 있다.

 

 


 

한 번도 파워블로거가 되어본 적은 없지만, 꾸준히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건 뼈저리게 안다. 왜냐하면 한 가지씩 떼놓고 봐도 충분히 어려운 일이기 떄문이다. 시덥잖은 이야기여도 '꾸준히'하는 일은 쉽지 않고,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은 두말하면 입 아프다. 어려운 일이다. 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낸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나 역시 한 사람의 블로거로서 존경심이 생기고, 아낌 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네이버 블로그 메인에서 걸어주는 7년 연속 파워블로거에 대한 인터뷰 기사와 함께 콘텐츠를 소개해준 적이 있어서  블로그를 방문해 보았는데, 7년 간의 내공이 어마어마하게 쌓인 블로그였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만년필로 그렇게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 참 부러웠다. 단순히 그림이었다면 멋있다는 감정에서 끝났을텐데, 그림 솜씨만큼이나 글도 참 잘 쓰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두배로 부러웠다. 그림도 잘 그리면서 글도 잘 쓰면 어쩌자는 거야. 어쩌긴 뭘 어쩌나. 그런 기록이 담긴 이 책을 읽고 계속해서 부러워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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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문장수업 - 미움받을 용기 고가 후미타케
고가 후미타케 지음, 정연주 옮김, 안상헌 감수 / 경향BP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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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의 화제였던 베스트셀러 미움 받을 용기의 공저자 고가 후미타케. 그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거라고는 그게 전부였다. 미움 받을 용기는 청년과 철학자의 대화로 풀어낸 책으로, 나의 경우 청년의 입장에 몰입해서 책을 읽어 나갔는데 그래서인지 한층 더 철학자와의 대화에 몰입해 읽을 수 있었다. 이후에 또 한명의 공저자 기시미 이치로의 책을 두어 권 접하면서 깨달았다. 미움 받을 용기를 흥미롭고 집중 있게 읽어낼 수 있었던 건, 단순히 기시미 이치로의 아들러 심리학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그건 고가 후미타케의 문장력이 더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할 즈음에 다시 만난 고가 후미타케. 그는 이 책 작가의 문장수업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나는 15년 전 작은 출판사에 취직한 후, 그 다음해에 작가로 독립했다. 이렇다 할 연줄도 없고 출판계 경험도 1년 미만인 상태로 결정한 독립이었다. 제대로 된 일이 있을 리가 없었다. 독립하고 처음 받은 일은 여행사의 홍보지에 게재한 당일치기 버스 투어 안내문이었다. 이후 조금씩 일반지나 경제지에서 일이 들어오게 되었고 최근 10년 동안 작가로서 매년 평균 10권 이상, 합계 80권 이상의 서적을 집필했다. (p.6)

 

매년 10권이라고 하면 적게 잡아도 매해 원고용지 3,000장이 넘는 문장을 써 왔다는 그의 글에서, 나는 미움 받을 용기의 청년이 생각났다. 옳고 그름을 떠나 자신의 생각을 우직하게 주장할 줄 알았던 청년. 그런 청년의 자신감은 고가 후미타케에서 나온 게 아닐까 싶었다.

 

나는 입말을 글말로 바꾸는 데 프로라고 자신하고 경험도 노하우도 가지고 있다. 작가인 나밖에 말할 수 없는 조언이 많다. (p.6)

 

이 책에서도 그의 단정하는 문장은 계속되는데, 그래서 그의 문장에는 힘이 있다. 미움 받을 용기에서 청년의 단정하는 주장은 종종 내 생각과 달라 반감이 들 때도 있었지만, 이번엔 다르다. 이건 어디까지나 그가 자신있어하는 글말이며 문장이 아닌가.

 

프롤로그와 문장 수업 안내에 관한 글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문장 수업이 시작된다. 4강으로 이루어진 구성인만큼 이번엔 나도 각 강에 맞춰 글을 나눠 써보려고 한다.

 

먼저, ‘쓰려고 하지 말고 번역하라는 문장수업 안내의 한 구절을 담아본다.

 

문장 세계에서는 종종 생각하고 나서 써라.”라는 조언을 한다. 생각해 보지 않고 쓰기 시작해 봤자 좋은 문장은 나오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확실히 맞는 말이지만, 혹시 눈앞에 스무 살의 내가 있다면 나는 좀 더 근본적인 조언을 할 것이다. “생각하기 위해 써라.”라고 말이다. (p.26)

 

약간의 과장을 보태 말하자면, 이 구절을 읽으면서 소름이 돋았다. 나 역시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 글을 쓰는 타입이고, 그래서 시간이 글 한 편을 쓰는데 시간을 굉장히 많이 잡아먹곤 한다. 그런데 생각하기 위해 쓰라니. 가만히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제 아무리 생각하고 나서 쓰더라도, 쓰면서 다시 생각하게 되고 글은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글과 많이 달라진다. 생각이 먼저가 아니라 쓰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알게 된 구절이었다.

 

문장은 리듬으로 정해진다1강에서는 문체는 리듬이다, 로 강의를 시작한다. 이 강에서는 글에 대해 내가 가진 편견을 버리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아무리 글을 써도 여전히 미숙해서 그런지 나는 접속사를 많이 쓰는 편인데, 접속사를 쓸 때마다 마음 한 편으로 불편했다. 접속사를 남용하면 문장을 이해하기 어렵게 되고, 접속사에 기대는 것은 문장에 미숙하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작가는 접속사를 무작정 생략하는 것은 해결 방법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물론 접속사를 남용하면 거슬리고, 적당히 삭제해야 읽기 쉬워진다는 점은 인정하고, 그리하여 필요 없는 접속사는 없애라는 조언은 원칙적으로 옳다고 덧붙인다.

 

다만 한 가지, ‘접속사를 남용하지 말라.’는 말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p.54)

 

, 그리고 하나 더 있다. 내가 접속사보다 더 많이 쓰는 것. 쉼표. 쉼표와 마침표를 너무 아끼지 말라고 조언하지만, 나는 줄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제 발 저려서 유심히 읽었다. 쉼표를 떠나서 내게 부족한 행갈이단정하는 문장도 큰 도움이 되었다.

 

자신이 있기 때문에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가지기 위해 단정하는 것이다. (p.77)

 

독자는 설득력이 있는 말을 바란다. 말의 설득력은 단정이라는 위험을 무릅썼을 때 비로소 나타난다. (p.77)

 

그가 단정이라는 위험을 무릅쓰고 이뤄낸 설득력이, 끝내 내게 설득력 있는 문장으로 다가왔다는 것을 실감하며 이 구절을 읽었다.

 

문장의 재미는 구성이 좌우한다2강에서 중요한 건 역시 구성이다. 또 다른 글을 예로 들어 구성에 대해 설명하지 않고, 영상의 구성을 빌려와 설명하는 데 이 부분이 참 흥미로웠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문장의 재미를 구성하는 데 있어 영상의 카메라워크를 참고하라며 도입-본편-결말(서론-본론-결론)으로 나눠 설명해준다. 또 글의 도입부에 대해 설명할 때, 관객을 관객석에 앉히는 데는 영화의 예고편이 큰 몫을 한다며 예고편의 기본 3패턴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내가 봤던 영상의 카메라워크와 예고편의 3패턴을 떠올리며 글을 읽으니 훨씬 이해가 쉬웠다.

 

자신의 문장을 독자로서 읽어 보라3강에서는 공감하고, 많이 반성했다. 나 역시 싫은 문장에서 글 쓰는 자세를 배운 적이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원고는 의외로 쓰기 힘들다는 것을 사무치게 잘 안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라면 그 누구보다, 얼마든지 잘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많이 좋아할수록 쓰기 어려웠고, 여전히 어렵다. 공감은 여기까지다.

 

반성한 부분은 크게 세 부분이다.

첫째, 잘못된 세부 사항은 문장에 치명적이다.

둘째, 작은 거짓말은 이해 부족이 원인이다.

셋째, 반전은 열 번 중 세 번이면 충분하다.

 

글을 쓸 때, 내가 부족한 부분들이다. 앞으로 글을 쓸 때 이 부분들을 한 번 더 생각하고, 놓치지 않기 위해 내 생각을 책에 메모해가며 읽은 부분이기도 하다.

 

마지막 4글쓰기의 완성은 편집에 달려 있다에 들어서서는, 이 강의만큼은 토씨 하나 놓치지 않고 흡수한다는 마음으로 읽었다.

 

자신이 쓴 문장에 주저 없이 가위질할 용기가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퇴고를 할 수 있다. (p.188)

 

아무리 문장에 자신이 있더라도 자신의 힘을 과신하면 안 된다. 밤중에 쓴 러브레터를 예로 들 것까지도 없다. 문장이란 자칫하면 자아도취나 시야 협착에 빠지기 쉬운 도구이다. 자신에게 취하지 않고, 자신의 힘을 과신하지 않으며, 언제나 의심하면서 글쓰기에 임하도록 하자. (p.200)

 

퇴고는 어떤 의미로는 매몰 비용과의 싸움이다. (p.207)

 

좋은 문장이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 행동까지도 움직이게 하는 문장을 말한다. (p.222)

 

이 모든 구절들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알고는 있지만, 결코 자신할 수 없는 일들이기에. 내 딴엔 공들여 썼다는 생각에 주저 없이 가위질하지 못했고, 언제나 의심하며 글쓰기에 임하지 않았으며, 매몰 비용과의 싸움에서는 늘 졌던 나였다. 그렇지만 마지막에 담은 구절만큼은 잘 안다고 말 할 수 있다.

 

작가 고가 후미타케가 문장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아낌없이 이야기했음을, 이 책을 읽는 내내 알 수 있었다. 문장에 대한 그의 애정과, 글쓰기를 두려워하고 막막해하는 청춘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그리고 이 책에 대한 나의 애정도 이 서평을 통해 묻어났으면 하고 바란다. 문장수업에 관한 책을 완독하고 글을 쓰면서도 전보다 더 산만하고 부족한 것 같아 아쉽지만, 꼭 전하고 싶다. 이 긴 글을 쓰면서 나는 행복했다고. 좋아하는 것에 대해 잘 쓸 수는 없어도 좋아하는 마음을 다해 많이 쓸 수는 있는, 이 쓸모없는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바람을 덧붙이면서 글을 갈무리한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얻은 글 쓰는 힘글 쓰는 의욕을 당신도 얻었으면 좋겠다쓰는 건 다소 어려울지 몰라도, 글은 어떤 식으로든 당신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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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보스 Girlboss - 훔친 책을 팔던 소녀, 5년 만에 1000억대 CEO가 되다
소피아 아모루소 지음, 노지양 옮김 / 이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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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여자가 있다. 이름은 소피아 아모루소.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 Nasty Gal의 창립자. 그런 그녀에게 붙는 수식어에 눈길이 갔다. ‘훔친 책을 팔던 소녀, 5년 만에 1000억대 CEO가 되다’.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그녀의 연대기가 나오는데 정말 그랬다.

 

2002 히치하이킹으로 서부 해안을 떠돌다 태평양 연안 북서부에 정착했다. 쓰레기통을 뒤져서 먹고살았고 (먹어보지도 않고 공짜 베이글을 무시하지 마시오), 상점에서 소소한 물건을 훔쳐 월세를 냈다.

 

2002 처음으로 인터넷으로 물건을 팔아보았다. 서점에서 훔친 책이었다.

 

2003 절도 행위가 발각되었다. 도둑질은 그날로 그만두었다.

 

2014 나는 현재 연매출 1억 달러 이상의 사업체를 경영하는 CEO. 로스앤젤레스에 1400평 규모의 본사가 있고 켄터키에 물류창고가 있으며 350명의 직원이 내 밑에서 일한다.

(p.12-13)

 

그녀의 이런 연대기에 눈길이 갔던 건, 이 책이 빨리 부자 되는 법, 패션 업계에서 성공하는 법, 맨땅에 헤딩하듯 사업 시작하는 법에 대해서 알려주는 책은 아닐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내 예감대로 이 책은 정말로 그런 책이 아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책은 맞지만 그런데 내 말을 꼭 고분고분 들어야 할까?’하고 거침없이 글을 써내려간 저자. 청개구리 심보는 아니지만, 자신의 이야기가 꼭 정답은 아니라는 말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라면 더욱 귀 기울여 듣는 나로서는 점점 이 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제발 날 대단한 존재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대단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우고 부러워하는 그 순간 자기 자신은 초라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인생에 관심 가지는 데 쓸 에너지를 자기 인생을 만들어나가는 데 쓰면 좋겠다. 당신의 우상은 당신으로 충분하다. (p.22)

 

이 부분도 내가 참 마음에 들어 한 부분 중 하나다. 이 글을 읽는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자존감이 높아지는 건 물론 아니지만, 나라는 사람의 존재에 대해 되돌아보게 하고 소중하게 만드는 글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런 생각들을 바탕으로 한 글들이 책 전반에 녹아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어떻게 내스티 갤을 시작하게 되었고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CEO 1위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지만, 그녀가 결국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자신을 믿는데서 나오지 않았을까 하고.

 

걸보스인 그녀의 이야기만큼이나 흥미로웠던 건, 그녀 못지않은 주위의 걸보스에 대한 이야기다. 몇몇 챕터 뒤에 그녀들의 이야기가 하나 하나 소개되는데, 걸보스인 그녀가 소개하는 여자들의 이야기인만큼 믿고 읽는 이야기라고나 할까. 그 중 가장 내 마음에 들었던 건, 현재 내스티 갤 바잉 디렉터로 일하고 있는 크리스티나 페루치의 이야기다. 내스티 갤의 첫 직원이었던 그녀는 내스티 갤의 성공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지켜봤다고 한다.

 

당시 나는 그야말로 빈털터리였고 확실히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잘 몰랐다. 막연한 생각에, 어시스턴트란 건 임시로 하는 일이고 언제든 그만둘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로부터 5년 후, 여전히 나는 여기에서 일하고 있다. 나는 전략적으로 계획을 세워 진로를 찾지 않았다. 그저 내가 잘하는 것, 나를 흥미롭게 하는 것을 따르기로 마음먹었을 뿐이다. (p.64)

 

그녀의 이 말은 막연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소피아 아모루소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녀의 이야기가 그저 막연하지만은 않았다. 그녀는 시급 14달러를 16달러로 올려달라고 요구했는데, 둘 다 그때까지 소피아 아모루소가 받아본 시급보다 큰돈이었지만 그녀는 밥값을 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만약 사업을 전쟁이라고 한다면, 참호에서 내 곁에 두고 싶은 병사는 그녀 같은 걸보스라 손꼽을 정도였으니까. 막연하게 시작했을지라도 그녀는 일을 시작하고 결코 막연하게 일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이 참 멋있었다.

 

나와 내 책이 무엇보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이 당신 자신을 믿을 때, 다른 사람들도 당신을 믿는다는 것이다. (p.27)

 

걸보스가 꿈만 꾸지 않고, 달려들어 일하는 건 자신을 믿기 때문이고, 그건 비단 걸보스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당신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책 속 구절처럼, 억만장자의 아들이나 딸로 태어나지 않은 이상 일이란 우리 모두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니 제발, 이왕이면 즐길 수 있는 일을 하는데 있어 이 책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도움이 될만한 그 무엇을 그녀의 행동력에서, 부지런함에서, 시행착오 그 어디에서 발견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좁은 일직선 도로만이 성공으로 가는 유일한 길은 아니며, 헤매다보니 제일 빠른 길을 찾기도 하듯 말이다. 소피아 아모루소는 자신의 길에서 내스티 갤을 만들었고, 나는 나의 길에서 이 책 #걸보스 Girlboss를 만났는데, 나는 이 만남이 참으로 반갑고 유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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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일인자 1 - 1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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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여덟 살, 열 살 차이나는 친척 언니, 오빠가 있는 큰이모 집에 갈 때마다 내 시선을 끄는 책이 있었다. ‘로마인 이야기라는 책 제목보다는 빨갛고 파랗던 원색의 책등이 내 눈길을 끌었던 그 책.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시리즈였다. 그 당시 역사라고는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 전부였던 내게는 오빠만큼 커서 아니면 오빠보다 크면 저런 책을 읽어야할 것만 같았다. 나이를 먹으면서 나는 국사를, 세계사를, 근현대사를 좋아하는 학생으로 자랐지만 그 당시 오빠 나이를 훌쩍 지나서도 로마사는 먼 이야기였다.

모르고 읽었으면 모르겠지만, 시오노 나나미의 위안부 관련 망언을 그의 책보다 먼저 접했고, 제 아무리 필력이 대단한 사람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 책이라 할지라도 나는 평생 이 책을 읽을 수 없겠다 싶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접한 건 아니지만 이 책을 통해 로마사를 접한 건 행운이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3천만 부가 팔리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던 장편소설 <가시나무새>의 작가 콜린 매컬로가 여생을 걸고 쓴 대작 마스터스 오브 로마시리즈 제 1부다. 이 시리즈는 총 7부로 이루어졌는데, 작가가 자료를 모으고 고증하는 데만 13년이 걸렸고, 이후 집필을 시작해 시력을 잃어가며 완결하기까지 근 20년이 걸렸다고 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작가가 직접 손으로 그린 각종 지도와 책 한 권 분량의 방대한 용어설명 (마스터스 오브 로마 가이드북이 그 책이다)을 보면 저 문장이 실감이 난다. 무언가에 여생을 바친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완독하고 싶었고, 끝내 그럴 수 있었다. 픽션과 역사적 사실의 사이, 즉 팩션의 창작이지만, 이런 책이라면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는 책이지 않나.

 

로쟈님의 추천사 속 구절처럼, 이 책은 그 시대의 한복판으로 나를 데려갔다.

 

광대극은 거의 비극으로 바뀌었다. 클리툼나가 귀한 알렉산드리아산 유리잔을 집어들어 깨뜨리더니 술라의 얼굴을 겨냥하고 돌진했다. 이를 본 니코폴리스는 포도주병을 쥐고 클리툼나에게 덤벼들었다. 스킬락스는 신고 있던 코르크굽 샌들 한쪽을 벗어들고 메트로비오스를 향해 달려갔다. 사람들은 재미난 구경거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일순 동작을 멈췄다. 다행히 술라는 몸도 못 가눌 정도로 취한 것은 아니어서, 자신에게 달려드는 세 남녀를 장사 같은 힘을 발휘해 바로 제압해버렸다. (p.49)

 

그리고 다음 장을 넘겨 정확히 서른 살을 맞이하는 (소설 속 구절에 따르면 소포클레스가 신과 인간의 괴벽에 대한 깊은 체념 속에서 상상해봤음직한 가장 기이하고 흉측하고 복합적인 비극을 맞는) 술라를 구경하는 재미. 내 눈앞에 카이사르와 마리우스와 술라, 유구르타 등 많은 인물들이 번갈아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로마를 이 책 한 권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낯설었던 로마사, 특히 등장인물의 이름은 막히며 막힌대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가이드북을 벗 삼아 읽어 나갔고, 가끔은 가이드북에 더 심취해서 용어만을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2권은 1권보다 재밌다는 서평을 잠깐 읽었는데, 벌써부터 기대된다. 모르긴 몰라도, 콜린 매컬로의 책이라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간만에 위험하다(어디까지나 긍정적으로)’싶은 책을 만났는데, 이렇게밖에 서평을 쓰지 못하는 내 필력이 아쉬울 따름이다. 그런 마음을 뒤로하고, 올해가 가기 전에 남은 2권과 3권도 올해 독서 계획에 써넣으면서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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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위한 상처받을 용기 - 아들러 심리학의 행복 에너지
기시미 이치로 지음, 김현정 옮김 / 스타북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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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내 품에 들어오던 날, 나는 친구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고 돌아온 길이었다. 미움받을 용기를 읽고 싶다기에, 집에 있는 책을 빌려준 친구였다. 빌려준 책을 돌려받으면서 겸사겸사 저녁을 먹으며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빌려준 책에 관해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눈 건 처음이었다. 내게서 책을 빌려 읽던 그 때,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이 많았던 친구에게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았다. 미움 받을 용기가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을 일러주었다면 이 책 아버지를 위한 상처받을 용기는 이런 책이다.

 

 

 

이 책에서는 오로지 간호인의 시점에서 어떻게 하면 간호 부담을 덜 수 있을지, 간호를 필요로 하는 부모와 어떻게 하면 트러블 없이 최대한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를, 제가 오랫동안 공부하는 아들러 심리학을 바탕으로 생각해 보려 합니다. 아들러가 간호에 대해서 어떤 말을 한 건 아니어서 아들러라면 뭐라고 했을까를 아버지와 함께할 때 생각했습니다. (p.9)

 

 

 

다시 말해 이 책은 기시미 이치로에 의한, 자식을 위한 아들러 심리학이다.

 

 

 

아버지에 대해서 쓰는 건 생각보다 더 힘들었고 잘 써지지 않았습니다. 몇 번이나 글을 멈추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회가 생긴 덕분에, 단적으로 말하자면 아버지 덕분에 저는 늙음이나 병, 죽음에 대해서 한층 더 깊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분명 이제까지의 삶에서 지금처럼 아버지와 진지하게 마주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리라 생각합니다. (p.230)

 

 

 

경험보다 더 중요한 교훈은 없다고, 기시미 이치로 자신이 직접 아버지를 간호하면서 고민하고 깨달은 늙음, , 죽음등 피할 수 없는 문제 속에서 찾은 행복의 의미를 고스란히 녹여낸 책이기도 하다.

 

나 역시 잠깐이지만 간호를 경험해 본 일이 있다. 작년에 교통사고를 크게 당하신 큰이모의 간병이었는데, 그때의 경험을 떠올리며 이 책을 읽어나갔다.

 

 

 

병원은 비일상적 경험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아버지뿐만 아니라 누구나 어느 정도 혼란을 겪습니다. (p.18)

 

물론 제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아버지가 진정하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영향도 의미가 있어 저도 열심히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강한 불안에 휩싸이는 것도 안개 밖의 세상을 봤을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간호인은 그런 불안을 없앨 수 있습니다. (p.76)

 

 

 

위와 같은 구절에 공감했는데, 내가 아파서 찾은 병원이 아닌 간호인으로서의 병원을 느끼면서 나 역시 혼란을 겪었다. 이 병원 저 병원의 환경이 달랐고, 대형 병원은 일하는 사람이 많다는 생각에 방심했는데 대형 병원에서도 혼란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이모가 전보다 진정하시는 걸 보면서 뿌듯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입원한 환자는 육체적으로 불편을 겪는 것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불안이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이럴진대, 지금 이 순간 간호를 하고 있는 사람이나 간호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한 책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좋은 책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간호가 아니라, 부모를 이해하고 나아가 늙음, , 죽음이라는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런 구절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생에는 또 다른 움직임이 있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춤입니다. 춤을 추면 결과적으로 어디에 도달하게 될까요? 어딘가로 가기 위해, 게다가 효율적으로 도달하기 위해 춤을 추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목표에 도달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여기서 그대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삶도 그런 움직임과 같습니다. 그때그때 완성되기 때문에 몇 살이 되어도 무언가를 시작하고, 미완성으로 끝난다 해도 그때그때 즐길 수 있으면 됩니다. 그런 삶을 우리는 나이 든 부모에게서 배울 수 있습니다. (p.226)

 

 

 

아무 일 없이 살아갈 때는 자기도 모르게 잊어버리기 쉬운 일이지만 일단 가족 중 누군가 배우자, 자녀, 부모 가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하면 그 사람과 함께 살아 왔던 일이 결코 당연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꼭 그런 때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자기에게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를 되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이 사람이 나에게 둘도 없는 존재라는 것, 지금은 이렇게 함께 있지만 언젠가는 헤어질 날이 온다는 것, 그때까지는 매일매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제가 있어도, 병에 걸려도, 자기의 이상과 다르더라도 그런 이상 속의 사람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둘도 없는 이 삶과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매일 되새기며 결의를 다잡는 것에서부터 존경이 태어납니다. (p.228)

 

 

 

가족 중 누군가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하면 책이 무슨 소용이며, 아들러 심리학은 더 무슨 소용이냐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책 속 구절처럼 부모의 간호를 맡는 지금이 진짜 현실이고, 간호가 끝난다고 해서 진짜 나의 인생이 시작하지 않으니까. 그렇지만 나는 간호인 역시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설의 도움을 받거나, 주위 사람의 도움을 받거나. 아니 이보다 더 중요한 건 간호인의 심리다. 간호인의 심리가 안정되어야, 간호를 받는 사람 역시 안정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건 간호만이 아니다. 내가 행복해야 내 가족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 세계까지는 아니어도 내 주위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 그의 저서 미움받을 용기가 많은 사람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 책 역시 당신의 마음을 알아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네 인생의 또 다른 움직임에 든든한 힘이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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