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지링 오에 겐자부로 장편 3부작 1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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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좋은 책은 마음에 남는다

이 책을 읽을 때, 사실 나는 10문장에 5문장은 괴로워했고, 사실은 내가 난독증이었나? 나 자신을 의심하기도 했고, 책갈피 꽂아놓는 것을 잊고 대충 기억을 찾아 읽어들어가다가 한페이지 가량 읽은 후에, 아 여기 읽었던 데잖아, 하며 좌절도 했고 얼른 읽고 다른 책을 읽고 싶어, 라는 생각도 스무번쯤 한 것 같다. 스스로가 본인은 나름 어려운 책도 잘 소화한다는 어이없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는지, 사실은 이런 내 모습에 조금 적응이 안되기도 했으나 이 책은 정말 꼼꼼하게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으므로, 꾹 꾹 참고 한 자 한 자 읽어 내려갔다

책을 덮으면서도 어안이 벙벙한 머릿속,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이 책속 구절들, 인물들은 계속 마음에 남아 있다. 작가가 읽는사람 마음에 남기기 원한 것들이 남아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것과는 상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형태로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것들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1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누가 감히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사람이 가장 잔인하다고 생각되는 순간 중 하나가 그 사람이 무방비상태로 놓여 있는 순간, 아무 생각 없이 말을 내뱉는 순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책을 읽고 나는 이 책에서 '고로'라는 인물로 묘사되는 이타미주조 감독의 삶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아... 역시 생각했던대로 대단한 감독이었구나, 이 책에 나오는 아버지의 이야기도 언급이 되는구나... 하고, 읽어내려가는 순간 마지막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10편의 연출작 중 9편을 흥행에 성공시키면서 일본의 대표적 흥행감독으로 명성을 날린 이타미 주조는 1997년 한 잡지사가 자신의 여성스캔들을 폭로하려 하자 빌딩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말 단호하고 확정적인 저 한마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도록 단정형으로 딱 잘라버린 저 한마디를 보며 사람들을 보고, 나를 보고, 나는 참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저 일축해버리는 한마디에 고로 사후 고기토는 얼마나 힘들고 혼란스러웠을까 절대 그랬을 리 없는, 150%라도 확신할 수 없는 친구의 어이 없는 자살 원인, 수많은 사람의 추측과 단정들, 그리고 규정지어버림- 이런 것들이 정말 고로를 괴롭게 했을 것이다

나 역시,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접했고, 그 사람들에 대한 수많은 풍문, 생각없는 지껄임 등을 들으며 더 알아보려 하지 않고, 고민하려 하지 않고, 그 사람들을 '규정지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창살 속에 가두어둔 적은 얼마나 많았는지, 누군가의 삶에 그저 단순히 호기심이라는 이유로 접근하고, 호기심 충족을 목적으로 주어진 사실 몇 가지를 받아들이고 마치 다 알아버린 양 행동했던 나 자신이 알고 있고, 또 믿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 어느 정도는 재정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짐하고 결심해 본다, 다른 사람의 삶과 죽음에 대해 함부로 규정하는 '잔인한 폭력'은 행사하지 말자고

#2 죽은 자의, 이해를 구하는 변명, 예의 - 물장군

사실 '물장군'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산 자와 죽은 자가 대화를 한다는 시스템 자체가 참 독특하다

고로는 왜 자살을 결심했으면서도, 고기토에게 그렇게 많은 물장군들을 남겼을까, 이건 그렇게 황망하게 가버림으로써 친구에 대한 예의를 다하지 못한 고로의 고기토에 대한 마지막 예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해할 수 없는 친구의 죽음 앞에서, 믿어지지 않는 사람들의 단정과 규정 속에서 자신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믿을 수 없는 이 사실을 어떻게 믿어야 할지 점점 혼란스러워져만 가는 고기토는 물장군이 있었기에, 그를 조금씩 이해해 간다

사실 물장군은 고로의 죽음에 대한 끝없는 암시가 들어 있었지만, 어쩌면 살려줘- 라는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르는 생각이 들었지만 물장군을 통해, 또 그 외에 다른 것들을 통해 고기토는 고로의 죽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게 된다. 적어도,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통속적인 이유는 아니었음을- 이해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어쩌면 그 물장군은, 그저 죽은 자의 하나의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할지라도 참 고마웠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말없이 죽어버린 친구가, 사실은 본인에게 참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는 사실 ^^

#3 '그것'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던 사건

이 책을 읽다 보면, 고로와 고기토의 청소년 시절,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던 '그 사건', 혹은 '그 일'로 표현되는 일이 나온다. 책을 읽으며 내심 도대체 '그 일', '그 사건'이 뭔지 궁금했다. 저자는 그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하지는 않는다. 다만 앞뒤 전후 문맥을 통해 짐작할 수 있도록 할 뿐이다. 그 일을 문맥을 통해 짐작하도록 했던 것은 문학적 장치라기보다는 아마 본인이 그 일을 스스로 써내려간다는 데 대한 괴로움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김형경의 세월을 읽다 보면 그녀 역시 본인을 평생 괴롭혀 온 일에 대해 쓰는 것을 너무나 괴로워하고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그런 일이 있었다'라는 문장으로 대체해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는 장면이 나온다. 작가 역시 이 부분을 구체적으로 적는 일이 참 괴로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괴로움만큼이나 우리가 추측하는 그 일은 그리 대단케 느껴지지는 않는 일이다. 오히려 문학 작품을 통해서 더한 사건(?)도 겪었기에, 사실은 조금 김이 빠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참,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서는 쉽게 생각한다고, 본인은 죽을만큼 힘이 드는 일일지라도, 그것을 객관화시켜버린 경우에는, 참 별것 아닌 일이 되어버린다고, 그것 또한 참 잔인한 일이 될 수 있겠다고

#4 죽음을 받아들이는 그들만의 방법

'아름다웠다'라고 표현되던 사람, 고로의 죽음 이후 그를 소중히 여기던 주변 사람들이 참 많이 힘들어하고,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 죽음이 가져다 주는 상처를 극복하고 치유해 나간다

고로의 조카이자 고기토와 치카시의 아들인 아카리는 '고로'라는 제목의 음악을 만들어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치유한다. 고로의 'girl for everything'이라 표현되던 그녀, 특별한 연인이던 그녀는 결국 다른 사람의 아이를 다시 태어날 고로라 여김으로 그 아이를 낳아 정성을 다해 보살피겠다는 결심으로 고로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극복한다. 고로의 여동생인 치카시는 누구보다 오빠를 사랑하고 아끼던 사람, 17세 '그 일' 이후 다른 사람처럼 변해버린 오빠를 되돌리고 싶어, 자신의 아들을 낳으며 다시 고로를 낳겠다고 결심을 할 정도로 오빠를 소중히 여겼다. 그림을 좋아하던 그녀는 결국 자신의 마음을 꼭 닮은 그림을 통해 마음의 치유를 얻는다- 그리고, 새로 태어날 아이에게 정성을 쏟아 기르겠다는 그녀, 우라를 지원함으로써 산 자를 향한 마음으로 죽은자를 향한 슬픔을 승화시킴으로써 극복하게 된다

그리고 고기토는 그러한 마음들을 담아, 또 자신의 고로에 대한 마음을 담아 책을 쓴다. 고로는 죽기 전, 고기토가 자신을 글로 기억해줬으면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러니 이 '체인지링'이라는 책은 이타미 주조의 죽음에 대한 가장 오에 겐자부로다운 극복법인 것이다

이렇게 각자 죽은 사람은 마음에 묻고, 각자의 방법으로 극복하고 살아 있는 사람들은 또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죽은 자보다는 산 자, 산 자보다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들에 대해 마음을 쏟는 것, 그것이 이 책이, 이타미 주조의 죽음이 우리에게 끝내 남겨준 희망의 메시지일 것이다

#5 내 삶은 얼마나 진실한가

어떤 책이든 결국 내 이야기로 귀결시키는 데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웬디씨는 (ㅎㅎ) 결국 이 역시 나의 문제로 귀결시킨다. 고로의 죽음 앞에서...

열 여섯 살짜리 고기토를 만났을 때부터 나는 자네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일러왔네. 남을 즐겁게 하기 위해, 혹은 타인을 위로하기 위해서도 거짓말은 하지 말라고 계속 말해왔지. 바로 얼마 전에도 그렇게 말하지 않던가? 하지만 그대 자신이 '거짓을 양식 삼아 내 몸을 먹여온 것'은 사실이었어. 우리 두 사람 모두 말야.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하기로 해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출발'이다. 말할 것도 없겠지만 이번 경우 '출발'은 나 혼자서 할게. 그리고 우리들 나이가 되면 오직 혼자만의 출발을 각오하고 나면 더 이상 말릴 수가 없어. 타인에겐 물론 방법이 없어. 본인 자신에게조차! (중략)

그러니 고기토여, 나에게 고별이라는 시가 이해되는 것은 실은 여기까지라네. 삶의 연속선상에서 그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그도 그럴 것이 그 시의 후반부는 출발한 후에야 비로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내게는 그런 기분이 들기 때문이지.

고로의 죽음은 결국 거짓을 양식삼아 본인을 먹여온 데 대한 죄책감에 있는 것이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보면, 졸업하는 학생들을 향해 선생님께서 그들의 지식을 그들이 입을 이익을 위해 쓰지 말 것, 간사한 곳에 지식을 쓰지 말 것이라는 당부를 한다. 그 부분을 읽으며 나 역시 이를 얼마나 다짐하고 곱씹었던지... 마치 고로가 랭보의 시를 곱씹었던 것처럼 말이다. 결국 나 역시 조금은 간사해지고, 나의 이익을 위해 나의 지식을 사용하면서 이를 끊임없이 합리화시키고 있는 모습이 많고, 이런 모습은 고로가 그토록 괴로워했던, '거짓을 양식 삼아 제 몸을 먹여온 것'에 크게 다르지 않다

65세의 고로씨는 죽음을 택했다, 그것이 그가 랭보의 시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하지만 스물 일곱 웬디씨는 좀더 진실한 삶에의 의지를 택한다. 비록 평생 결심과 의지로 끝나버릴 일이라 해도, 이 결심과 의지는 멈추지 않기로 ^^

참 많은 생각들이 마음에 남았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느라 괴로워하고, 끊임없이 자책했던 독서의 시간들일지언정, 전혀 아깝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감사할 뿐 ^^

Epilogue... 그나마 위로

사실 책을 읽으면서 참 위로 받았던 부분이 하나 있다. 그건 고기토가 쓰는 글이 쉽지 않음을 고로가 지적하는 부분

그런데 고기토는 말야, 생각해보면 노랄 일이지만 최근 30년 정도 독자를 생각해서 주제나 글쓰기 방식을 택한 흔적이 없어! 자네는 소설의 초고를 쓰고 나서 계속해서 날마다 하루 열 시간씩 일을 하면서 그걸 완전히 고쳐 쓰지? 당연히 문장은 읽기 힘들어져서 분명히 연마되어가긴 하지만 자연스런 호흡이 아닌 인공의 음악이 되거든. '이화'라고 하는 자네가 자신있어하는 수법도 말야, 페이지마다 낯선 이미지와 맞닥뜨려야하는 어떤 독자가 같은 작가의 책을 한권 더 살 마음이 들겠냐고. 이것도 자네의 용어법이지만 노작이란 작가가 해야 할 일이지 독자에게 시킬 건 아니지.

음하하하 역시 나만 어려운 게 아니었어, 전 세계 독자가 어려운 거였어! 뭐 어려우면 어려운 만큼의 매력이 있는 거니까, 역시 난독증은 오버였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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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7-08-04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꼼의 웬디양님이신가요? 추천하고 갑니다^^

웽스북스 2007-08-05 00:55   좋아요 0 | URL
앗, 반가워요 쥬베이님! 북꼼의 웬디양 알라딘에 둥지틀어보려고 기웃기웃하는 중이에요 ^^

karma 2008-04-25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솔직하고도 진솔한 글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저녁엔 2008-08-21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상문 잘 읽었습니다. 어젯밤 마지막 장을 덮은 책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나의 고전 읽기 - 이 시대 대표 지성인 10인이 말하는 나의 인생과 고전
공지영 외 지음 / 북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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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보면 사람들이 와서 묻는다. 왜 책을 읽느냐고. 그럴 때마다 나는 그저 웃으며 답할 뿐이다. 하하하 재밌어서요. 사실 맞다, 나는 재미로 책을 읽는다. 요즘에는 아무리 다양한 문화를 접해도 결국 책만큼 재미있는 컨텐츠를 찾아 보기는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나는 책이 왜 재밌을까? 사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책을 읽는다. 누군가가 말했듯, 어떤 사람은 책에서 공부하는 법을 찾고 어떤 사람은 책에서 돈 버는 법을 찾고 또 어떤 사람들은 책에서 사랑에 성공하는 법을 찾는다. 하지만 나는 책 속에 인생이 있기 때문에 책이 재미있다. 누군가의 삶이 있고, 그 삶이 내 삶과 다르지 않으면 다르지 않아서, 또 다르면 달라서 그냥 그대로 재미가 있고, 내겐 의미가 있다

이 책은 책을 편집 혹은 홍보한 자의 표현에 따르자면 '이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인'들의 고전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실 그들이 단순히 고전을 소개하는 정도라면 내가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이책에 관심을 가진 건 이들의 소개하는 그 고전이 그들의 삶을 어떻게 형성했는지 책을 통해 내가 좋아하게 된 사람들이 어떤 책을 통해 어떻게 영향을 받아 왔는지, 순전히 그런 것들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최근들어 인간냄새 나는 글을 쓰기 시작한 공지영의 뒷편에는 톨스토이의 인간에 대한 고찰이 돋보이는 '부활'이 있었고 보이는/보이지 않는 폭력에 항거하는 자세가 돋보이던 김두식 교수의 뒷편에는 사랑과 평화의 실천을 이야기하는 톨스토이의 민화집이 있었으며 독특한 색깔의 영화로 주목받는 변영주 감독의 뒤에는 트뤼포 감독의 400번의 구타, 박완서 선생님의 나목, 그리고 발레교습소에서 그린 청소년기의 모습의 뒤에는 가네시로가즈키의 영향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홍세화 선생님의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 뒤에는 라 보에티의 '자발적 복종'이 있었다

톨스토이에 대한 부분, 사실 김두식 교수가 그의 저술 부분을 통해 고전은 모두가 알고 있으나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라 표현했듯 나 역시 톨스토이의 저작 중 딱히 읽은 게 동화스러운 민화 몇개과 인생론 정도? 그럼에도 이 책에서 소개된 고전들 중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가는 톨스토이였다. 톨스토이는 공지영 작가와 김두식 교수님이 차례로 소개하는데 이 작가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서 더욱 흥미로웠다

예를 들면 공지영은 톨스토이의 성장과 인간성에 대한 믿음에 주목한다. 작가로서, 가장 마지막 작품인 부활이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칭송받는, 글쓰기를 통한 그의 성장이 그녀에게 도전이 됐으며, 인간의 추악한 면을 집요하게 파고 든 도스토예프스키와는 달리 인간에 대한 믿음, 구원, 희망을 얘기한 톨스토이가 그녀에게는 작가로서 더 닮고 싶은 모습이었다는 것

하지만 김두식 교수는 톨스토이의 삶에 있어서의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에 주목한다. 끊임없이 이상을 노래하고, 희망을 얘기했지만 그의 이상이 아닌 일상은 그와 같지 못했다는 것, 그 역시 이상을 이야기하지만 현실속에서 살고 있는, 어쩌면 톨스토이와 같이 괴리감이 있는 질척질척한 삶을 살고 있는 한 사람의 범인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고, 나 역시 이 부분에 굉장히 공감했다. 이상이라는 것, 사실 이상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이루지 못하는데, 그럴 바에 차라리 버리면 그만인 걸 버리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이루지도 못하는 정말 질척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또 내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날마다 결심하고, 날마다 패배하면서도 또 다시 결심을 일삼는 내 모습이 그 안에 있었다

또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맹자를 이야기한 배병삼과 장자를 이야기한 표정훈의 저술 부분이었다. 사실 맹자, 장자는 윤리시간 이후 딱히 접한 적이 없다. 맹자 호연지기 장자 자연주의 노장사상 뭐 이런 것만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을 뿐

맹자와 장자의 공통점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다. 알다시피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했고, 인간의 본성에서 희망을 본 사상가였다. 사실 희망보다는 절망이 더 많던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그 안에서 희망을 볼 수 있었던 맹자, 사람들 안의 선한 씨앗을 찾아주고, 그로 인해 다시 함께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던 맹자, 도덕 책에서 봤던 그의 인상은 흉악 울그락 불그락이었는데 그 안에 이렇게 착한 생각이 품어져 있었다는 것- 사실 도덕시간에 배울 땐 와닿지 않았었다 ㅎㅎ

그리고 장자는 인간 본성에 대한 존중을 이야기하는데 공자가 말하는 인의(仁義)에 대해, 그것은 인간의 본성을 억누르려는 비현실적인 사상이라 일침을 놓으며 각 사람이 자신의 본성에 충실하며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말한.. 사실 나도 조금은 이상주의자적인 측면이 있어서 이러한 장자의 사상에 100%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상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사람에게 삶의 방식을 강요하는 것 역시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장자의 사상을 운동권에 합류하지 못하던 자신의 젊은 시절을 합리화하는 논리로 써먹었다고 하고, 세상의 다양한 일에 대해 충고를 해주다 보니 다소 일관성이 없는 측면도 있었다고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에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생각이 아닌가, 라고 이야기하고 그 부분에 나 역시 공감한다. 사실 나 역시 이상주의적 측면을 가지고 내 삶을 종종 옭아매더라도 또 이렇게 인간 본연의 모습에 충실하라는 장자의 이야기를 들으면 괜히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고 공감이 되는 것 역시 하나의 모순이 아니겠는가 흐흐흐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고전에 대해 이야기했고 사실 어느 정도 국한된 면이 있지 않을까 싶었던 고전의 정의는 너무나 다양하고 다채로웠다. 서양의 고전, 동양의 고전, 소설, 시, 사상, 영화까지 정말 고전이라는 말이 참 많은 것을 아우른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됐다

사실 제목에 비해 책 내용은 조금 가볍긴 했으나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무겁고 심각한 얘기를 줄줄 늘어놓지 않아 오히려 내게는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하지만 정말 맘에 들지 않았던 부분은 책의 편집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의 폰트와 색깔을 달리하고 거기에 친절하게 밑줄까지 그어주었다는 것

읽는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게 다르고 해석이 다른 '고전'을 이야기하면서, 여기가 중요한 부분이고,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라고 손수 밑줄까지 그어주셨던 편집자의 과도한 친절은 그야말 '사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그 부분을 읽을 때 편견을 갖게됨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얕으나마 여러 고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으니 나로서는 꽤 의미 있는 활동이었다

특히나... 천성이 비굴한 나에게 고전을 숭배하지 마십시오- 고전을 읽는 것은 나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위함이지 작가의 시각을 숭배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숭배하려는 자에게 고전은 속살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라는 배병삼 교수의 말이 나에게 다시 한 번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하마터면 비굴하게 숭배하면서 고전 읽을 뻔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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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천국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2
이청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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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은 소록도 나환자촌을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우리에게 진정한 낙원의 건설은 가능한 것인지, 그렇다면 그 모습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던집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책 속 소록도의 모습이 사실 1970년대 군사정권 시절의 우리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모든 국민들은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든다는 대의 앞에 개인을 모두 희생했어야만 했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위정자들의 폭력은 국가를 위한다는 명분 앞에 정당화됐죠. 그 곳에는 이미 개인은 없고, '살기 좋은 나라'라는 이상향만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살기 좋은 나라'라는 명분은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닌, 한 사람의 이기적 성과주의로 변모하고 말았습니다.

당신들의 천국에서는 이러한 이기주의를 '동상'으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업적을 기리는 상징물인 동상. 모두를 위한 마음으로 시작된 일이라 해도, 결국 자신의 성과를 인정 받고 싶은 마음, 누가 이런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결국 소록도를 '우리들의 천국'으로 만들겠다던 4대 원장 주정수는 그것을 자신의 이상향으로 만들었고, 공익이라는 명분 아래 합리화를 했습니다. 손발이 성치 않은 소록도 원생들은 그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만 했고요. 천국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삶을 혹사한 그들의 삶이 어떻게 천국일 수 있었을까요?

사실 태생적으로 그들 개개인의 삶은 천국이 될 수 없었습니다. 옛날에는 천형이라고도 불린 한센병을 앓고 있던 사람들, 그렇기에 사연도 아픔도 상처도 많은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바로 소록도입니다. 그렇기에 그 곳에 낙원의 건설은 어려울 수밖에 없던 것이지요. 개개인의 삶이 천국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어떻게 낙원이 될 수 있을까요? 사회적인 틀로서의 천국과 개인으로서의 가치가 완벽하게 조화될 수 있는 것일까요? 작가는 우리에게 이런 의문을 던집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조백헌 원장은 상대적으로 대안적인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가 완벽한 인물이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가 완벽했다면 오히려 <당신들의 천국>의 문학적 가치는 이 정도로 높게 평가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조백헌 원장은 주정수 원장이 겪은 시행 착오를 똑같이 겪습니다. 하지만 그는 성찰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조언에 귀를 기울이고, 그를 통해 자신을 직시하며 반성할 줄 아는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한계는 그들의 삶을 살 수 없는 데 있습니다. 운명을 같이 할 수 없는 사람이 운명 공동체로서 천국을 만든다는 이상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결국 자신의 한계를 직시합니다. 그리고 섬을 떠납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다시 돌아옵니다. 운명을 함께 하는 그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해.

그리고 진심으로 그 곳의 변화를 위해, 이 책이 말하는 대안인 사랑에 근거한 자유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조력자가 됩니다. 그 곳은 태생적으로 완벽한 천국이 될 수 없는 곳이었지만, 그는 완벽을 기할 수 없다고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금씩 조금씩 변화를 꾀하며, 섬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한걸음씩 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런 모습이 이 시대의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견해 봅니다.
 
이제 대선을 앞두고, 우리는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들겠다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될 것입니다. 그들 역시 이타심을 앞세워 이기심을 드러내며, 공익을 위시한 본인의 성과주의에 집착하지는 않을지 사실 걱정스런 마음이 앞섭니다. 개인적인 마음으로는 그들이 국민들의 앞에 서기 전,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저의 지나친 욕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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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의 우울
안드레이 쿠르코프 지음, 이나미.이영준 옮김 / 솔출판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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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의 우울, 사실 책 제목을 듣는 순간, 동물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우화집일 거라고 생각했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동물 중, 사람과 비슷하지만 또 그만큼 사람과 연결시키기가 어려운 동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펭귄을 키우는 사람이라니, 단 한 번도 내 생각의 범주에 들어왔던 적이 없는 발상이다
 
사실 그래서 시작부터가 독특하게 느껴졌다. 기껏해야 펭귄 세계들간의 이야기, 펭귄들의 대화, 뭐 이런 게 아닐까 싶었던 생각의 범주가 펭귄을 키우는 사람의 이야기- 까지로 넓어졌으니까
  
그러나, 사실 펭귄은 하나의 상징적 존재일 뿐, 이 책의 주인공은 아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펭귄 미샤를 키우며 살아가는 주인, 빅토르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또 아- 그럼 만화 cat이나 당근있어요? 처럼 애완동물을 기르는 에피소드? 이렇게 생각하기 쉽겠지만, 또 그건 아니다. 주인공이 펭귄을 키우는 건, 그저 사건의 모티프를 제공해 주고 있을 뿐이다
 
아, 그럼 도대체 이 책의 핵심 내용이 뭔데? 라는 궁금증이 생겼을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부분은 바로 주인공 빅토르의 독특한 직업이다. 빅토르는 단편소설가이지만, 주류 소설가는 아니다. 그저 근근히 소설을 쓰며 연명해가는, 가난한 작가일 뿐이다. 

그런 그에게 다가온 새로운 기회는, 바로 신문에 사람들의 조문을 쓰는 것이다. 죽은 사람의 조문을 쓰는 것이 아니라, 죽을 사람들의 조문을 쓰는 것.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겼으나 점점 상황은 심각해지고, 본인이 굉장한 일에 휘말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만 그는 빠져나올 방도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 역시 결국 그 조문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된다.
 
그럼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할 것이다. 아니, 제목이 왜 펭귄의 우울인데? 그 수많은 동물 중 펭귄이 선택된 첫번째 이유는 펭귄의 외모에서 풍기는 상징성이다. 흰색과 검은색으로 이루어져있어, 남극의 신사 라고도 불리는 펭귄의 정장스러운 모습은 이 소설의 핵심 키워드인 '죽음'과 맞닿은 '장례식'과 어울리는 모습이다. 실제로 펭귄미샤는 후에 장례식에도 이리저리 끌려다니게 된다
 
그리고 두번째 이유는 펭귄의 타자성이다. 남극에 살고 있다가 이 책의 지리적 배경인 키예프로 오게 됐기에 펭귄은 이 곳에서는 늘 영원한 타자일 수 밖에 없다. 기후도, 먹거리도, 환경도, 그에게 맞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결국 우울증에, 선천적 심장병까지 악화되게 되는데, 이러한 타자성 역시 주인공인 빅토르 역시, 주류에 이용당할 뿐, 이 소설에서 한 번도 주류인 적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일 것이다
 
이러한 펭귄의 두 가지 특성은, 이 소설에서 상징적 의미를 갖기도 하지만, 후에는 빅토르를 위기로 몰아넣는 소설적 장치로 이용되기도 한다. 미샤가 장례식장에 불려다녀, 결국 병을 얻게 되고, 그 펭귄의 병을 치료해 주는 것을 '호의'로 받아들였으나 그것은 나중에 그의 '십자가'에서 그를 정죄하게 되는 중요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보여지는 가족의 모습 또한 흥미롭다. 처음에는 애완동물 미샤와 둘이 살아가던 빅토르는 우연찮은 계기를 통해 자꾸만 새로운 가족을 만나게 되는데 그 구성도 참 재밌다
 
빅토르 (본인)
소냐 (두번쯤? 만난 '펭귄아닌' 미샤의 딸)
니나 (소냐의 보모)
미샤 (애완동물)
 
정말 피라고는 한 방울도 섞이지 않는 이 네 개체가 (미샤는 사람이 아니므로) 제법 그럴듯한 가족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김태용의 '가족의 탄생'이 생각났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이러한 대안가족의 모습은, 정작 마음 깊은 곳은 달래주는 역할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미샤를 지극히 아끼던 소냐는 새로운 관심의 대상(니나)이 나타나자 관심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도 하고, 빅토르를 위하고 사랑하는 것 같던 니나는 정작 그의 어려운 상황을 깊이 공감하지는 못한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일을 대하던 빅토르의 태도이다. 처음에는 굉장히 열성적으로 자신의 일을 하려고 하지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자신의 뜻대로 될 수 없는 어떠한 큰 구조 속에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는 고민하지만 이내 체념하게 된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좋지 못한 결과를 불러오고 있음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이 상황의 문제성을 어느 정도 알게 되지만 그는 그 상황 속에 좀더 머무르기로 한다. 그냥 생각하지 말자, 평온한 길을 택하자. 하지만 이런 생각이 결국 그를 절망의 길로 인도하게 되는 것. 이게 우리 대부분의 직장인들의 모습은 아닐까, 하는 생각 역시 해본다.

큰 구조 속에서, 내가 나도 모르게 저지르게 되는 옳지 못한 일들, 어쩔 수 없어- 먹고 살기 위한 거잖아, 라고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며,  애써 생각하려 하지 않는 것들- 그저 편안하게 생각하려는 것들이 결국 우리의 삶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나 역시 크게 양심을 거스르는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좀 더 민감해지고, 좀 더 예민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건 뭐 굳이 작가가 의도한 게 아닐 수도 있겠다만 ㅎ)
 
암튼, 러시아의 현대 문학 작품은 처음 접했던 것 같은데 생각보다 괜찮은 시작이었던 것 같다.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들과 함께 소설적 재미도 충분했다. 펭귄의 느릿느릿한 걸음처럼 이 소설의 진행도 빠르지는 않지만 느린 진행에도 불구하고 묘한 긴장감이 있는 듯하다
 
이야기의 결말 부분 역시 내게는 매우 흥미로웠다-
 
안드레이쿠르코프의 다른 책 '펭귄의 실종'도 곧 출간될 것 같던데 ^^
그 책도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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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는 바꿔야 할 거짓말 인터뷰 특강 시리즈 3
김동광, 정희진, 박노자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거짓말로 둘러싸여져 있다. 알고 하는 거짓말, 모르고 하는 거짓말,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짓말. 사실 어떤 거짓말도 합리화될 수 없고, 또 이 단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 역시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는 김동광, 김형덕, 프라풀 비드와이 님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평소에 좋아하고, 그 분들은 나라는 존재를 전혀 모르지만, 혼자 괜히 맘속으로 친하게 느껴지는 것 같은 그런 저자들이어서, 이 책의 출간이 더욱 반가웠었다. 이제 김동광, 김형덕, 프라풀 비드와이 님도 이 책을 읽고 나서 맘적으로 좀더 친해진 느낌이 든다. 하하하. 뭐 혼자만의 착각이긴 하지만 이게 또 독서의 매력이니까 ^^
 
한겨레에서 매년 봄마다 준비하는 강의는 늘 알차고, 부럽다. 시간에 맞춰 참여하기 힘든 직장인 입장에서는 더 그렇다. 작년에는 김갑수 씨가 사회를 봤었는데, 올 해는 영화배우 오지혜 씨다. 개인적으로는 부드럽게 강의를 진행해 나가는 오지혜씨 스타일이 더 좋았다.
 
강의의 포문은 정혜신 씨가 열었다. '젊은 날의 깨달음'이라는 책을 통해 정혜신씨를 처음 알게 됐는데, 정신과 의사가 되기 전, 내적치유를 거치는 과정이 인상적이어서 이후 저서인 삼색 공감 등도 읽고 칼럼 등도 관심 있게 읽어 왔던 저자이다. 

정혜신씨는 사람에 대한 거짓말, 그 중에서도 특히 자기 자신에 대한 내사와 투사에 대해 이야기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내사'형 인간인지라 또 스스로를 어느 정도는 비춰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됐던 것 같다. 주위의 투사형 인간에게 권해주고 싶다. 하하. 사회자 오지혜씨의 지적대로 부부간의 문제를 인문학의 위기로까지 연결지어 해석한 부분은 나도 굉장히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동광씨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저자인데, 과학적 상식이 워낙 없는지라 이 챕터는 처음에 읽으며 적응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하지만 일정량 이상을 읽으니 어느 정도 몰입해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올 초 진행된 강좌라 황우석씨 관련 얘기가 여러 사람의 강의 곳곳에 드러났는데, 그 문제에 대한 진행 관점은 역시 과학 사회학자, 라는 다소 특이한(하지만 앞으로는 점차 많아져야 할) 직함 때문인지, 가장 탁월했던 것 같다. 과학을 과학 그 자체가 아닌, 거대한 산업 구조 속에서 이해했으며, 이는 결코 맹신의 대상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한홍구, 박노자 선생님- 두 분은 워낙 유명하시고, 한겨레 21 칼럼을 통해 이 분들의 칼럼을 즐겨 읽어 왔기에... 함께 하신다는 강의가 기대됐다. ^^ 한국사의 거짓말에 대한 논쟁. 그 중에서도 특히 전쟁이라는 커다란 사회악이 우리 역사에, 또 우리 인식 속에 어떤 거짓말을 해왔는가를 알 수 있었던 부분이다. 나 역시 많이 생각이 열렸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국가 중심적인 폭력적인 생각에 아직도 어느 정도 젖어 있음을 느끼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김두식 교수님은 경북대로 가기 전, 내가 다녔던 모교의 선생님이었다. 법학과에 계셨던 관계로 전공이 다른 나는 그분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가끔 열리는 특강 및 학교 신문에 쓰는 칼럼, 한겨레 신문에 쓰는 칼럼, 저서 등을 통해, 또 주위 사람으로부터 듣는 이야기 들을 통해 어떤 분인지, 충분히 알고, 또 평소에 존경해왔던 분이다. 거짓말 권하는 사회, 라는 제목의 이 강의는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우리 사회의 구조에 대한 이야기이다. 구조적 억압으로 인해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하게 되는 거짓말을 합리화시켜서도 안되며, 끊임없는 자기 성찰 및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 역시 크리스천인데, 여러 가지 민감한 기독교 사안들에 대한 열린 시각을 제시해, 속이 시원한 부분들도 많이 있었다. 

김형덕씨 역시 처음 알게 된 분인데, 북한에서 남한으로 내려온 소위 '탈북자' 출신의 운동가이다. 새로운 부분이 참 많았지만, 특히 통일론에 대한 부분에서,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관점들- 통일을 하면 국력이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들에 대한 일침을 놓았다. 통일은 국력을 위한 것이 아니라, 평화를 위한 것이며, 국력을 위한 통일은 또 하나의 전쟁을 향한 폭력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정희진씨는 한겨레에서 칼럼을 읽은 후 시원시원한 문체에 반해 곧바로 그의 저서인 페미니즘의 도전을 사서 읽게 만들었던 사람. 역시 거침 없는 말하기가 돋보인다. 페미니즘의 도전 책과 많이 다르지 않은 내용이면서도 그 내용이 함축적으로 들어있다고 보면 된다. 기존 가치에 정면으로 대치하는 것을 얘기하면서도 거부감 없이 이해하기 쉽게 강의를 이끌어나가는 것 역시 그녀의 탁월한 능력이라 할 수 있겠다. 성별 문제에서는 타자인 나는 또 내가 주류로 있는 다른 어떤 문제에서 '몰랐다'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람일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프라풀 버드와이씨의 강의. 사실 공감하는 부분이 그렇게 많지 못했던 건 '인도에 대해 잘못 알려진 것'에 대해 얘기하는데, 내가 기존에 인도에 대해 어떻게 알려졌었는지에 대한 기본적 관심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 역시 정희진씨의 말대로 하면 하나의 폭력이겠지. 하지만 인권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통한 세계 평화에 대한 그의 논지를 읽을 수 있었다. 

이들 강사들이 하나같이 결론으로 내건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과 이해이다. 이러한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 또한 거짓말로부터 속지 않기 위해, 자기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알 수 있는 능력이 가장 기본이 된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듣는 것 같은 생생한 느낌, 특히 내가 재밌다고 생각한 부분에 여지 없이 들어 있는 (청중 웃음)은 나로 하여금 독자가 아닌, 청중으로서 책을 읽을 수 있게 만들어줬고, 강의를 듣지 못해 늘 한쪽에 아쉬움을 가지고 사는 직장인에게는 이 책이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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