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시알못도 즐거운 시 읽는 시간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영상 : https://youtu.be/qdxjPHNwE0Ann

말씀드린대로 2개월에 한 번 정도 시 읽는 시간을 가져보려 하는데
벌써 두 달이 훌쩍 지나갔네요.

또 3권의 시집 들고 왔습니다. 여름밤이고, 시원한 맥주가 그리워서 ㅎㅎ
맥주 한 잔과 함께 시를 읽어봤습니다.
즐겁게 감상하시길 바라며!

제 다른 영상 목록이 궁금하신 분은 여기서 확인하세요 : )
웽스북스 재생목록 https://www.youtube.com/watch?v=AceZvdCeDb8&list=PLfUyGYYqEWMrhwmNUUmgUm38gPE67tbzenn

영상에 소개된 책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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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웽스북스입니다.
오늘은 10번째 영상입니다. (감격)

감격의 블라블라를 영상에 대고 말하다가
없어보여서 편집 (스스로에게 냉정한 편)

이번에 소개할 책은 ‘마켓컬리 인사이트‘입니다.
고객으로서 기업 마켓컬리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나름 재미있게 읽었어요.

제 다른 영상 궁금하신 분은 아래 링크로 와주시면 됩니다 : )

* 웽스북스 알라디너TV 재생목록
https://www.youtube.com/watch?v=SBXGU2FF4O4&list=PLfUyGYYqEWMrhwmNUUmgUm38gPE67tbze

영상이 좀 긴데, 막판에 마켓컬리 추천 물건도 넣었어요
(북튜버가 대체 왜? ㅎㅎ)
혹시 그것만 궁금하신 분은 19:30 이후를 봐주시면 됩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
다음 영상으로 또 만나요~

* 아래 클릭하시면 알라딘 구매 링크로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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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는 어떤 행위든 간에 배경이 장려하고 대의가 숭고하기만 하다면 지지자가 있을 것이다. 사실 시간이 지날수록 결투 장소가 더 아름다워지고 권총이 더 멋있게 만들어지면서 잘난 남자들은 점점 더 사소하고 하찮은 모욕에도 자신의 명예를 지키겠다고 흔쾌히 나서는 형국이 되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결투가 큰 죄?배반, 반역, 간통 따위?에 대한 반응으로 시작되었다면, 1900년 무렵에는 아주 사소한 것까지 결투의 이유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모자를 삐딱하게 썼다거나 계속 째려보았다거나 쉼표의 위치가 틀렸다거나 하는 이유로도 결투가 벌어졌다.

잘 정립된 옛 결투 규약에는 모욕한 사람과 모욕받은 사람이 총을 쏘기 전에 걸어가는 걸음의 수는 모욕의 강도에 반비례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즉, 가장 심한 모욕의 경우에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절대 살아서 결투장을 떠나는 일이 없도록 가장 적게 걸어가서 쏘는 결투로 끝장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흠, 그렇다고 한다면…… 백작은 생각했다. 새로운 시대에는 적어도 만 걸음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결투를 벌여야 하리라. 다음과 같은 방법은 어떨까. 누가 장갑을 내던져서 입회인을 지정하고 무기를 선택한다. 모욕한 사람은 미국행 배를 타야 하고, 모욕받은 사람은 일본행 배를 탄다. 각 나라에 도착한 두 사람은 각자 가장 좋은 외투를 입고 각자의 건널 판자를 내려가서 부두에서 몸을 돌려 총을 쏠 수도 있으리라.

"공주가 대장장이의 아들하고 결혼했나요?"

"대장장이의 아들하고 결혼했느냐고! 어이구. 물론 안 했지. 차를 마시고 나서 마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단다."

니나는 이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아이는 공주가 대장장이 아들과 결혼하는 것이 한결 어울리는 결론이라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 역사의 단점에도 아이는 고개를 끄덕여서 백작이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주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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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장 소중히 여기는 물건에 작별을 고하는 법은 경험으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물건과 작별해야만 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배우려 들지 않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친구에 집착하는 것보다 더 극성스럽게 소중히 여기는 물건에 집착하게 된다. 우리는 흔히 꽤 많은 비용과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그 물건들을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옮긴다. 표면의 먼지를 떨고 광을 내며, 가까이에서 너무 거칠게 노는 아이들을 나무라기도 한다. 그런 물건들에 계속해서 추억이 쌓여 점점 더 중요성을 띠게 되는 것을 허용한다. 우리는, 이 장식장은 우리가 어렸을 때 안으로 들어가 숨던 장식장이야,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우린 이 은색 촛대들을 탁자 위에 나란히 놓아두었지, 이게 바로 그녀가 한때 눈물을 닦던 그 손수건이야, 같은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마침내 정성껏 간수해온 이런 물건들이 친구나 동반자를 잃어버리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진정한 위로를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첫 모금을 마신 그는 어린 유리가 전보다 세 층이나 늘어난 계단을 부리나케 뛰어 올라온 게 틀림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흡족해했다. 커피의 온도가 평소보다 1도도 내려가지 않고 거의 똑같았던 것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동일한 결과에 도달한다



우리에게 원한을 품어 언제든 복수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굴복함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동정과 연민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그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방법으로―대담하고 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것도 때로는 같은 효과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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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이 누군가의 고통을 간편하게 밟고 쓰인 건 아닌지 성찰하는 태도 역시 필요했다. ‘고아처럼 쓸쓸했다, 처녀의 입술처럼 빨간 앵두, 과부처럼 농염한 단풍’과 같은 표현은 좋은 표현이라고 보기 어렵다. 간혹 페미니즘 이슈에서도 ‘나는 창녀처럼 강간당했다, 여성이 애 낳는 젖소입니까, 우리는 창녀가 아니다’라는 식의 구호를 쓸 때가 있다. 성노동 여성과 비인간 동물로부터 확실하게 거리를 두고 외치는 구호는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또 다른 폭력을 수긍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궁금하다. 배제하지 않는 구호, 여러 개의 팔로 모든 존재를 끌어안는 언어는 어떻게 가능할지.

사망자나 이재민을 이용하지 말고, 안이하게 동일시하거나 감상에 젖어 설교하지 말라는 사사키 아타루의 말은 타인의 고통에 접근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절실한 윤리였다.

지금도 외숙모는 ‘외숙모’로만 존재하지 않았을 텐데. 그저 질문 하나 다르게 던졌을 뿐인데, 한 존재가 풍경에서 쑥 튀어나왔다. 나와 대화하고, 손잡고, 안을 수 있는 존재로.

중년 남성은 자본을 가진 ‘소비자’이지만, 아동과 엄마는 상대적으로 자본이 없고 ‘맘충’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민폐 캐릭터라는 사회적 편견까지 더해져 ‘노키즈존’이 탄생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니, 내가 자주 다니던 분위기 좋은 찜질방과 청포도 주스가 맛있는 카페도 노키즈존이라는 팻말을 당당하게 걸어놓은 곳이었다.

생각 없이 쓰는 언어가 실재하는 존재를 어떻게 지우는지 알아차린 사람은 쉽게 말을 뱉지 않는다. 나는 이런 태도가 글을 쓸 때도 배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크게 보면 문자 언어도 일부만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이지만, 적어도 글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말을 걸 때는 시대의 감수성에 섬세하게 다가가는 서사와 표현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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