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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 여름 가장 덥다는 그 일요일이었다. 수원에 사는 후배와 저녁 약속이 있어 수원행 지하철을 갈아타기 위해 금정역에서 막 내렸을 즈음이었다. 뭔가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고, 뭔가 큰소리가 나는 것도 같아 그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멀리서 보니 덩치 큰 아저씨가 위압적인 느낌으로 토스트 가게 앞에 서 있는 것 같았고, 토스트 가게 아주머니는 뭔가 쩔쩔매는 듯, 급하게 토스트를 만들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라고 생각하며 나는 그 쪽으로 걷고 있었고, 슬그머니 화도 나기 시작했다. 왜 사람들은 고급스러운 매장에서는 오히려 고분고분 큰소리도 일으키지 않으면서, 이렇게 작고 힘없는 매장에서는 의기양양인거지? 라며, 소심해서 발현도 못할 의협심으로 가득차 가까이 다가갔는데.

아뿔싸.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웅성웅성도 나의 착각이었고, 위압적인 느낌도 나의 착각이었다. 그러니 슬그머니 화를 내며 의협심에 불타올랐던 건, 한마디로 생오버의 극치였던 셈이다. 순간 멍해졌다. 아. 나는. 정말. 왜 이 모양인 걸까.

2

누구나 그랬듯, 스무 살 때는 뭐든 혼란스러웠고, 정말 도무지 아무것도 알 수 없어서 나는 제발, 제발, 뭔가 좀 확고해졌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을 했다. 그렇게 길을 찾아 마구 헤맸었고, 그 노력은 다행히 아주 헛되기만 한 것은 아니었는지, 어떤 사안 앞에서 그래도 꽤 그럴듯한 판단 정도를 내릴 수 있는 삶의 내공 정도는 쌓이게 됐다고 '스스로' 교만한 자가진단을 시작했을 즈음에는, 난, 세상을 이분화해서 보는 굉장한 오류에 빠져 있었다. 어쩐지, 이 사안을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이기적이거나, 보수적이거나 한 사람인 것만 같았다. 계급이나 이데올로기라는 틀을 통해 사람을 바라보는 건, 어찌 보면 매우 편리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도 모르게 사람을 개체가 아닌 덩어리로 보게 되고, 스스로 '옳다'라는 자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그 의식이 지나친 나머지 자신을 제외한 상대방들을 옳지 않음의 부류로 집어넣게 되는 일이 종종 있으며, 따라서 상대를 공존의 대상이 아닌, 계몽, 혹은 선동의 대상으로 보는 우를 범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혹은 자신과 같은 방향성을 지니지 않은 사람이 이유 없는 악인으로 그려지는 상황에 대해 어색함을 느끼지 못한다. 그것은 자신의 인식의 틀 안에서는 어색한 일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고백컨대, 그 흔적은 마음 어딘가에 여전히 남아 있어 불쑥 불쑥 튀어 나와 삶의 현장에서, 종종 그러한 우를 범하게 한다. 토스트 가게 앞에 있는 아저씨가 토스트 가게 아줌마에게 화를 내는, 못된 사람일 거라고 '아무 이유 없이' 지레짐작했던 것처럼 말이다. 아, 이 사고 구조는, 정말이지, 얼마나 단순한가. 그리하여 인간을 얼마나 단순한 존재로 환원하는가.


3

영화 <킹콩을 들다>가 최근 극장가에서 훈훈한 영화로 조용한 찬사를 받았다. 10억 남짓의 적은 예산으로 만든 영화가 이 정도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영화업계에서도 매우 고무적인 일일 것이다. 친구 한 녀석이 이 영화를 자신의 인생의 영화로 꼽으며 함께 하는 독서토론 모임에서 책 대신 이 영화를 발제하겠다고 나서 몇몇 사람들과 함께 늦은 밤 극장을 향했다. 그냥 재미로 본 영화라면 웃으며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영화를 보는 도중에는 꽤 많이 웃기도 하고, 어떤 친구들은 많이 울기도 했다. 하지만 소중한 친구의 인생의 영화라는데, 헐렁헐렁한 눈으로 볼 수는 없었다. 하여, 나와 친구들은 이 영화를 곱게 볼 수만은 없었다. 우리는 결국 1년도 더된 모임 역사상 최장 시간 토론 기록을 세우고야 말았다. 바로 이 킹콩을 이야기하다가.. (아래 쓰는 이유들은 나와 함께 토론했던 친구들의 의견을 종합한 것이다, 영화 내용은 씨네 21기사 참조)

 

일단 이 영화가 곱게 보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영화의 캐릭터가 너무나 단선적이라는 것이었다. (이 점은 소설가 김중혁 역시 씨네 21을 통해 지적한 바 있다) 뚱뚱하고 못생긴 친구들은 그 캐릭터 그대로 희화화되기 일쑤이며, (웃겨서 웃긴 웃는데, 웃다 보면 미안해진다. 뚱뚱하고 못생긴 친구는 왜 역기를 들다가 똥까지 싸야하는가, 라며 나는 분노했다.) 삶 속에서 이렇다 할 미덕을 보이지 않았던 한 선생님이 선한 인간으로 변모하기까지의 중요한 계기나 과정들은 생략된 채 한없이 착하게만 그려진다.

이 선생님의 선량함과 대조되는 인물로 등장하는 고등학교의 코치 역할은 반대로 이유 없이 한없이 악하고 나쁜 캐릭터로 그려진다. 그리하여 아이들을 고등학교에 보내고 나서도 고등학교 역도부로 보내지 않고 계속 자신이 가르치는 선생님의 행위는 응당 옳은 것으로 비쳐진다. 이것이 두 번째로 마음에 걸렸던 점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리더란, '내가 아니면 안 돼' 라는 자세로 끝까지 책임져주는 리더가 아닌, 자신의 위치와 책임의 범위를 알고, 다음 세대의 리더에게 적절한 시기에 넘겨주고, 다음 세대를 키우고 준비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내가 졸업한 포항 모 대학의 총장님처럼 대안이 없다고 해서 학교라는 크고 중요한 공동체를 10년 이상 자신 이외의 다른 대안을 생각할 수 없는 상황으로 방치해두는 것은,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십자가로 끌어안는 것은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좋은 리더의 자세가 아니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하고 싶은 건, 사춘기 소녀들의 마음 역시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의식주에 대한 인간의 기본권은 중요한 것이지만, 누군가는 자신의 둘러싼 환경이 그것을 해결해줄 수 없을 때 그것을 향한 누군가의 선의에 오히려 수치심을 느낄 수도 있는 문제이다. 얼마 전 서울시에서 도입한 무료 급식 전자 카드가 오히려 아이들에게 수치심을 준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기사 참조) 하지만 영화속 캐릭터는 그 부분을 배제하고 있다. 또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은 어떠한가. 문제 해결을 위해, 학교와 장학사를 속이고 거짓말을 해야만 했으며, 그 과정에서 역도를 할 줄도 모르는 학생들이 부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대회에 출전해야만 했다. (그 위험성에 대해서는 주인공이 자신의 입으로 설파한 바 있다)

물론 이 영화는 모든 캐릭터에 전형성을 부여했고, 그리하여 아이들은 밥을 먹고, 잘 곳이 생겨 매우 감사하고 기뻐했으며, 전형적인 나쁜 캐릭터로 그려진 다음 세대의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굉장한 악영향을 끼쳤고, 주인공의 행위는 결론적으로 선한 결과를 낳았기에 그의 '옳음'을 입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삶은 영화가 아니고, 인간은 전형성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하여 이 영화에서 그린 모습들이 스크린을 빠져나와 삶의 문제로 치환되었을 때, 그것은 어느 정도 위험한 지점을 담보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그 친구에게 이토록이나 존재의 단순화를 통해 그려냈기에 가능했던 이야기들이 삶이 된다면 그 삶 속에서 직접 부딪치게 될 문제들은 영화보다 훨씬 녹록치 않을 거라고, 어쩌면 그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타인의 사고의 영역을 자신의 틀 안에 가두는 우를 범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그것은 타인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지점의 발생을 필연적으로 불러오게 될는지도 모르겠다고, 그래서 영화 속 주인공보다 더 치열하게 노력하고,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더 폭넓게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그렇게 이야기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나도 아직 그런 것들로부터 온전하게 자유롭지 못하니까 말이다. 아마, 그 날 새벽 2시까지, 목에 핏대 세워가며 결국 택시를 타고 돌아갔던 다섯 명의 친구들 모두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듣고 있나 킹콩? 트라우마는 이제 버리시게. 

  

(이 글 때문에 킹콩의 트라우마는 증폭되었다는 후문을 전한다 
물론 개인적으로 만나 다 풀었다지만, 그 이후엔 나의 트라우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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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08-28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보면서 제가 생각했던 것과 비슷하네요. 저는 웬디양님처럼 이렇듯 조리있게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아, 이건 대체 뭐지, 했었더랬어요. 분명 웃긴부분도 있었고 분명 왈칵하게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너무 그렇게 '만들어'버리지 않았는가 하는거죠.

저는 또 그럴까봐 [국가대표]를 여태 보지 않고 있었는데, 추천하는 사람이 제 주변에 너무 많아요. 특히 너는 보면 좋을거다, 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볼까..하고 살짝 마음이 바뀌었어요.

이 글 좋아요, 웬디양님. 긴 글인데 잘 읽혀요. 그리고 생각도 하게 하고 말이죠. 웬디양님은 거의 오이지만큼 좋아요.
:)

W 2009-08-29 02:53   좋아요 0 | URL
아아 감동이에요 다락방님. 저 드디어 오이지랑 동급 된거에요? 흐흐흐

근데 국가대표를 여지껏 안보시면 어떡해요. 국가대표의 하정우는요, 존재자체만으로도 영화의 모든 결함에 눈을 감게 만들어준다니까요. 정말이에요.

순오기 2009-08-29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 글 참 잘써요~~ 나름에 올리는 글은 특히나!!^^

W 2009-08-31 00:48   좋아요 0 | URL
흐흐 순오기님 때문에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사과나무 2009-08-30 0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글루미베어 라는 캐릭터가 떠오름.

테디+푸우+하티베어 vs. 글루미베어

W 2009-08-31 00:48   좋아요 0 | URL
기왕이면 피철철흘리는 녀석으로 상상해주세요

toon_er 2009-09-20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 ㅡ,.ㅡ;;

W 2009-09-20 19:28   좋아요 0 | URL
어머. 이 글 추천수가 언제 이렇게 올랐지?
;p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름 6호에는 알라딘 이야기를 넣었다. 지난 번 천천히와도돼요 버튼 관련. ㅎㅎ
써둔지 한달도 더된 글. ㅎㅎ 미루다가 이제야 올려본다.



사실 내가 어디 가서 VIP 대접 받을 정도로 놀라운 소비생활을 하는 쇼퍼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런 나를 VIP 대접 해주는 곳이 두 군데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인터넷 서점 알라딘이다. (나머지 한 군데는 부끄럽지만 언젠가 일기를 통해 밝히게 될 날이 있을 것이다) 대학때까지는 책을 빌려서 보는 일에 익숙해졌으나, 워낙 게으른지라, 도서관에 오가는 일도 쉽지 않을 뿐더러, 책을 '사고 모으는 일'에 적잖은 재미까지 들어버렸다. 게다가 가끔은 절판된 책을 구하고는 기뻐하는 득템놀이를 즐기기도 하고, 남들이 추천해 주는 책, 꼭 읽어줘야 하는 작가가 낸 반가운 신간들, 간간히 올라오는 특가판매 책들을 대책없이 일단 사들이다가, 어느덧 읽지 않은 책 수십권이 책장에 쌓여가는 지경에 이르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다 보면, 사실 나는 책의 독자가 아닌 소비자로서의 삶을 더 즐거워하는 게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암튼, 이 두서없는 자책을 통해 내가 하고픈 이야기는 책을 사고, 또 읽는 일은 나에게 꽤 즐거운 삶의 일부라는 거다.

머리가 나쁜 나는 읽은 책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알라딘에서 제공하는 <서재>라는 이름의 블로그를 개인 블로그로 활용하고 있는데, 얼마 전 다 읽은 책의 구매자 평을 남기기 위해 구매 도서 리스트를 클릭해보고는 내가 며칠 전 두권의 책을 주문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두권의 책의 도착 예정일은 이미 지나 있었다. "뭐야. 아직 안왔네?" 하며 무의식중에 배송신고를 누르고 배송일 지났는데 책이 안왔어요 어쩌고저쩌고 글을 쓰려던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 그렇게 택배 기사님들 착취에 대해 안타깝다고 말하고 다니는 내가

1. 어차피 지금 이 시간까지 저 책들을 읽을 틈도 없었고,
2. 심지어 저 책을 주문했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있었으면서

조금 늦었다고 불현듯 뿔난 마음이 되어서 얄짤없이 배송이 늦었다며 배송지연 불만 신고를 누르고 있는 거다.

훗.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까탈한 소비자였지?

결국 신고하려던 마음을 접고 다시 하던 일을 하고 있으니 잠시 후 택배 기사님이 오신다. 땀을 뻘뻘 흘리며 오셔서는, 늦어서 죄송하다고 이야기하며 책을 건네주신다.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는 마음 한켠이 미안하면서도.....

휴, 다행이다.

그 버튼을 눌렀다면, 나는 아저씨의 얼굴을 보고 또 얼마나 미안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더운 날씨를 싫어해서인지, 날이 심히 더워지니 책하나 주문하는 일에도 참 마음이 쓰인다. 그래서 그냥 알라딘 서재에 주절주절 글을 남겼다. 가끔은 급하지도 않은 책이 너무 빨리 와서 황송하다. 책 천천히 와도 괜찮아요 버튼 같은 거 있으면 좋겠다, 급한 책들의 배송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그럼 나는 자주 애용할텐데. 뭐 이런 요지의 글이었다. 써놓고 마음이 괜히 소심해졌다. 어머나 재수없어, 당연한 권리 앞에 왠 착한 척? 이런 댓글이라도 달리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내가 원래 좀 많이 소심하다 ㅜㅜ)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호응해주는 것이다.

저도 다른 곳에 선물로 보내는 경우가 아니면 배송에 그렇게 연연하는 편이 아니라서 천천히 와도 되요 버튼 같은 것 있으면 자주 애용할 것 같아요. (알라딘 H님)

천천히 와도 되요 버튼 한 표! 알라딘에 정식으로 요청해보는 건 어떨까요? ^_^ (알라딘 ㅊ님)

제발 당일배송 마케팅같은 것 때문에 택배 아저씨들 8시가까이까지 일하시게 안했으면 좋겠어요.
천천히 와도 돼요 버튼 저도 대찬성입니다!  (알라딘 ㄱ님)

초면에 실례라고 생각함에도, 정말 좋은 의견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남깁니다. 천천히 와도 좋아요~ 버튼! 알라딘에서 진지하게 고려해줬으면 좋겠어요. 택배기사분들의 고생이 그걸로 조금이라도 덜어진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익명 댓글)

야간이나 휴일밤에도 쉬지못하고 노동해야 한다는 건 그분들이 휴식할 권리를 빼앗는거죠, (휴일저녁에도 상품준비완료 상태가 되어 있더군요.) 물건을 되도록 빨리 건네주고 빨리 대금을 정산하고, 거래관계를 신속하게 매듭지고 싶은 판매자의 입장을 이해못하는 것 아닙니다만. 판매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그 외의 누군가가 과도한 희생을 해야 하는 상황은 저도 원하지 않습니다. (알라딘 ㅇ님)

얼마전 결혼해 미국으로 간 언니와 메신저로 이야기를 하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미국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한국의 서비스가 여러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택배 당일 배송 서비스라고 한다. 심지어 당일에, 무료로 배송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기절할 정도로 놀란다는 것이다. 뭐, 미국이 워낙 넓어서 차이가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확실히 빨리빨리, 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하는 다이나믹 코리아의 국민들을 상대하다 보니 유통 업체들의 배송 경쟁은 제살 깎아먹기식 출혈 경쟁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물론 그 경쟁의 수혜자가 되는 것은 소비자이다. 하지만 그 과정중에 자신도 모르게 시스템 속에서의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서비스정신, 이라는 건 물론 매우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우리 모두가 상전취급 받는 일에 너무 익숙해진 탓에 서로를 돌아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소비자로서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고객은 왕이다, 라는 말은 서비스업 종사자가 가져야 할 낮춤의 정신을 일컫는 말이지, 우리가 그들에게 왕으로 군림해야 함을 말하는 건 아닌듯하다. 작은 서비스의 불편 앞에 파르르르 떠는 모습들 앞에 묘한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나 역시 비슷한 상황 앞에서는 습관적으로 같은 행동 패턴을 보이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일이 적지 않음을 보며, 내가 얼마나 좋은 서비스를 받는 일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가를 다시 한 번 느낀다. 참 감사한 일이지만, 그게 과연 온당한가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결국 나는 이 서비스를 알라딘에 정식으로 건의했다. 이 서비스가 받아들여질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이 과정을 통해, 이 속도가 곧 정도인 시대에 그것을 거슬러 일부러라도 '빠르게 받지 않겠다'를 선택할 의향이 있는, 그것이 갖는 사회적 함의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고 참 새삼스럽게 기뻐하고 든든해 했다.


* 이 글을 작성하고 며칠 후, 알라딘으로부터 이런 답변을 받았다. 

 

 


내가 꼭 알라딘 유저라서 얘기하는 게 아니라, ㅋㅋ 인터넷 서점은 알라딘이 좀 많이 짱이다. 작은 고객의 소리 하나 그냥 넘기는 법이 없다. 이래서 2년째 외도없이 알라딘만 이용하는 나는 이런 마음이 고맙고, 또 고맙다. 한가지 더 바라는 게 있다면, 이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다른 알라딘 분들에게도 이런 건의를 한 알라디너들의 마음이 잘 공유되길, 단순히 고객의 '배송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날짜를 지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서로 잘 이해할 수 있길. 그리고 더 욕심을 내어 막 거창하게 바라자면, 알라딘은, 시작에 불과한 것이길.

나는 이 서비스를 함께 건의한 알라디너들에게 오른손 왼손 양손 모두 내밀어 새끼손가락 고리 걸고 도장찍고 복사하고 함께 꼭꼭 잘 이용해 보자고 약속을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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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08-10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고 나면 알라딘에 회원 가입하는 분들이 많이 생길 것 같은데요.
:)

W 2009-08-11 22:17   좋아요 0 | URL
힛. 다락방님. 안그래도, 저 아는 분이 이제 알라딘으로 오시겠다며 ㅋㅋ

순오기 2009-08-10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뻐요~ 그 마음이!^^

W 2009-08-11 22:17   좋아요 0 | URL
어이쿠나. ㅋㅋㅋ 순오기님만할까요

2009-08-10 1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11 2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머큐리 2009-08-10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저히 추천 한 방 날리지 않고 지나칠 수 없는 글이네요... 웬디양님 처음 댓글같은데..(맞나?) 꾸벅..(사실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W 2009-08-11 22:18   좋아요 0 | URL
머큐리님. 저도 라대리님 서재에서 이름만 엄청 많이 봤지요.
정식으로, 반갑습니다!!

,,, 2009-08-11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웬디양님이 본문에 인용하신, 익명 댓글의 주인입니다^^; 또 익명으로 남겨서 죄송합니다만 이 얘기를 남기고 싶어서 실례하겠습니다. 알라딘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웬디양님 당신도 많이 짱이십니다!

W 2009-08-11 22:19   좋아요 0 | URL
어이쿠나. 감사합니다.
죄송할거 뭐 있나요. ㅎㅎ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익명댓글님도 따뜻한 분이신 거 같은걸요

turnleft 2009-08-11 0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W 2009-08-11 22:20   좋아요 0 | URL
턴레프트님, 덕분에 영화 잘 봤어요!!!!! (완전 사랑스럽게 재밌었어요~~)

레와 2009-08-11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항, 웬디양님 이쁘다..!


알라딘 서비스도 좋아요! ^^

W 2009-08-11 22:20   좋아요 0 | URL
레와님 레와님. 오랜만이에요. 반가워요. 너무. ^-^
 


대학 시절 선생님께서 작업하신 책이 출간되어 제자들이 함께 이를 기념하는 모임을 가졌다. 책에 대한 질의와 응답을 하던 도중 나는 선생님께 이런 질문을 드렸다.

"지금 이 세계를 살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대안이라는 것을 이룩해나가기 위해서는 중간에 타협이라는 지점을 한 번 거쳐야 하는 현실이 참 안타까워요. 선생님. 그저 순수한 치열함만으로는 무언가를 이루어나가는 것조차도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언제부턴가 '지혜'라는 말에 담긴 그 묘한 어감이 몸서리치도록 싫어졌다. 특히나 어른들이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정의하고 강요하는 지혜라는 말은 세월에 의해 마모된 자기 자신의 곡학아세를 지혜라는 이름으로 교묘히 치장하는 도구로 쓰여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내가 살아봤더니, 세상은 꼭 그런 게 아니더라, 내가 살아봤더니, 순수함만으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더라, 내가 살아봤더니, 내가 살아봤더니, 내가 살아봤더니. 그 말은 어른들이 스스로의 마모를 위로하는 고도의 자기위로이자, 그들보다 어린 열정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놀라운 힘을 지닌 말이다. 물론 그들이 삶으로 쌓은 경험을 깡그리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해버리고 싶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경험이 쌓인다는 것이 꼭 더 나은 방향으로 흐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리하여 내가 그들보다 조금 더 가지고 있었던 마땅히 분노하는 마음들이 그저 한 순간의 치기어림으로 제단되는 순간에, 나는 좀 더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살면서, 이명박 옆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황석영을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라고는 정말이지, 꿈에도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이런 미미한 일기를 쓰는 나도, 이 사소한 일기 속 다짐조차 삶으로 살아내지 못하면서, 작가로서 좋아하는 이들의 글과 삶을 분리하는 일은 내게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던 것 같다. 그는 내게, 삼포 가는 길을 쓴 작가였고, 오래된 정원을 쓴 작가였고, 손님을 쓴 작가였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였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좋아하던 작가였다. 나는 순수하게도, 그 책들을 통해 그가 하는 말들이 고스란히 그의 삶이고, 그의 신념일 것이라 생각해왔던 것이다. 얼마 후, 그가 손학규 지지를 선언했을 때, 네이버에 소설 연재를 시작했을 때,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을 때, 나는 설마설마 하며 그의 세계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사실은 저 분의 삶의 노선은 미시적으로, 당시의 세계 안에서, 가장 주목받을 수 있는 경로를 좇아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 결국 조심스레 가졌던 의혹이 눈앞에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설마설마하던 것이라 하여 결코 착잡함이 덜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이명박의 중앙아시아길 순방에 동행한 그는 자신은 남북관계를 풀려는 순수한 의도에서 그런 일을 했다며 자신을 변호한다. 그의 지혜에 의거하면, 그것은 자신이 생각하는 대안을 이루어나가기 위한 어떤 안착 지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생각하는 것이 맞는 것이라면, (나는 남북관계에 대한 지식은 미미하기에 그가 주장하는 것이 남북 관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얼마나 바람직한 대안이고 비전인지 판단하기 어려우므로 이에 대해서는 유보해 둔다.) 이렇게 타협하는 것만이 그가 생각해낼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손잡지 않고 싸우기를 택하는 것이 얼마나 멀고, 지난하고, 위험한 길인지, 너무나 지혜로운 그는 아마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어른의 지혜가 곡학아세로 이어지는 일은 매우 자연스러웠다. 묵묵히 그 멀고, 지난하고, 위험한 길을 걷고 있던 이들이 한 순간 '바보'가 되어버리는 것 역시 당연한 귀결이었다. '몰랐어? 여기, 지름길이 있잖아. 응?' 그렇게 말하는 것이 지혜라면 나는 그런 지혜 같은 것, 죽을 때까지 거부하겠다.

함께 성경을 공부하는 이들끼리 '잠언'에 대해 나누면서 '지혜'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나는 지혜란 그 시대를 가장 현명하게 사는 법을 지칭하는 것이기에, 시대의 논리에 부합하는 경우가 많고, 하여 현 시대의 지혜란 처세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이야기하며, (비슷한 이유로 나는 잠언서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시대를 초월하는 진정한 지혜란 그 시대를,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바보같이 사는 삶에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 어쩌면 그가 사는 동안 끝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길, 영영 없어질 지도 모르는 길,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하게 그 길을 걷는 그 마음이 곧 지혜인 것 같다고. 그래서 살아서 바보소리를 들었던 노무현의 죽음이 우리에게 이토록 큰 울림을 주는 것 같다고. 어떤 소설가의 말처럼, 그는 멈춰버린 수레바퀴를 말없이 힘겹게 끌고 가던 바보였으니까. 지난 5월은 실은 바보였던 한 지혜자 때문에, 또 지헤자였던 한 바보 때문에 참 많이 속상하고, 참 많이 먹먹했던 것 같다.

여전히 내 책장 한구석에는 아직 읽지 못한, 그러나 문학적으로 훌륭할 것이 분명한, 그래서 더욱 속상한 황석영의 중단편들이 꽂혀 있다. 아. 진작 읽었어야 했다. 이제는 아무리 객관적으로 보려 해도 그 작품들을 대하는 마음이 전과 같을 수는 없기에. 그저 안타깝고, 또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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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웹진을 만들고 있는 나름은,
내가 웹진을 맡고 있을 뿐, 사실 웹진을 만들기 위한 곳은 아니다.  

각자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시도하고, 지원하며, 함께하는 곳,
실은 웹진은 그것을 알리기 위한 도구다

사라져가는 피맛골에서 이제 곧 묻혀버릴,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은 물건들을 찾아오자는
'넝마 프로젝트' (http://naarm.net/102) 를 누군가 제안했고,
나는 근무중이라 울면서 못갔지만
나름 친구 몇몇이 비오는 날 땀 낑낑 흘려대며 그 곳에서 그야말로 '보물들을 찾았다'
(그 중 몇몇은 정말 쓰레기로 오인받아 버려지는 슬픔도)
그 보물들이 위쪽 포스터에 아이콘 이미지로 나와 있는 것들.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 그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마음,
결국 그 때의 일이 시작이 되어, 이런 전시회를 갖게 되었다.

이제 그 곳은 묻혀버렸지만
이 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디자인, 피맛골을 추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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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09-06-01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넝마주이'라는 단어를 처음 배웠을 때가 기억납니다.
등에 커다란 자루를 메고 긴 집게로 거리의 쓰레기나 잡동사니 등을 줍는 사람의 모습이
조금 인상 깊었거든요.

얼마 전, 서울 도심, '도대체 저것들을 누가 사가?' 싶을 정도로 고물이 된 옛 물건들을
내다 놓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 물건들은 '나는 아직 건재해' 하고 새 주인을 기다릴까요.
어릴 때, '물건들에게도 각자의 정령이 있어' 라는 글귀를 어디선가 보고 꽤나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지라..지금도 저는 물건들을 잘 못버립니다.(웃음)

W 2009-06-10 02:05   좋아요 0 | URL
엘신님이 물건을 잘 못버린다니 굉장히 잘 어울려요
게다가 저 귀엽고 자못 진지한 이유도요...

뭐 저는 정령까지는 아니지만...
추억이 깃들어있다고 생각하는지라 물건들을 잘 못버리긴 해요-
그나마 요즘에는 좀 더 버리게 되긴 했지만요-
(방이 좁아서 ㄷㄷㄷ)

네꼬 2009-06-10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이런 거 왜 이렇게 봐야 돼요? ㅠㅠ 가서 놀고 싶어요, 이렇게 추억 안 하고. ㅠㅠ

W 2009-06-10 02:05   좋아요 0 | URL
저 네꼬님이랑 피맛골 갔다가 슬퍼하면서 나왔던 생각 났던거있죠
저글 올리면서...

민정 2009-06-10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웬디와 막걸리를 함께 즐기지도 못해보고 피맛골이 사라지고 말았구나...
아쉽고나...
저기서 먹는 막걸리는 정말 술술 들어가는 것 같았는데 ㅎㅎㅎ
(어디서라고 술이 술술 안들어가겠느냐마는 ㅎ)

W 2009-06-11 01:06   좋아요 0 | URL
헤헤헤헷 언니이이이이 오늘 완전 반가웠어요오오 흐흐흐흐

향편 2009-06-11 12:30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나는 웬디양님과 피맛골에 가서 동동주를 (조만간)마시겠다!ㅋㅋㅋ

W 2009-06-11 01:57   좋아요 0 | URL
근데 저...막걸리는...잘...ㅋㅋ

민정 2009-06-13 01:47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ㅋㅋㅋ 웬디, 향편 이렇게 여기서라도 만나니 또 반갑네.
크으...
나도 그 동동주 한잔만 보내주~~ ㅎㅎㅎ

W 2009-06-13 14:30   좋아요 0 | URL
슬쩍 댓글 바꾼 향편님. 저는 다 봤어요.
피맛 ㅋㅋㅋㅋ

언니, 미국에는 동동주 없어요?

차좋아 2009-06-15 12:08   좋아요 0 | URL
미x토끼야 우리는 어제 피맛~봤다.ㅋㅋ (x로 가리니 더 이상해~)
x친토끼..이게 낫다^^
겨울에 보는거지? 그 때 진정한 피맛을 보여줄게~
 



그러고보면 참 재밌는 일이다. 봄방학은 왜 봄방학일까. 아이들의 봄방학이 끝나는 순간 봄이 시작된다. 아니다. 꼭 그렇게 볼 수도 없다. 3월이 온다고 바로 꽃이 피는 것도 아니고 따뜻해지는 것도 아니니까. 왜 방학을 왜 계절과 꼭 연관시키는 건지. 뭐 나의 작은 불만이 그렇거나 말거나 어쨌거나, 아이들은 봄을 맞이하기 전 짧고 아쉬운 방학을 맞고, 이 기간에 많은 교회들은 청소년부(혹은 중고등부라고 부르나?) 수련회를 가곤 한다. 우리 교회도 예외는 아니어서, 2월 마지막 주에 9명의 아이들과 함께 태안으로 청소년부 수련회를 갔고, 청소년부 교사인 나는 금요일 퇴근 후 여행하는 기분으로 혼자 버스를 타고 태안으로 향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가는 시간에 기도회가 끝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가지기도 했다. '성령기도회'라는 이름으로 준비된 청소년부 기도 시간이 나에게 매우 힘들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시간표상으로는 기도회가 끝날 시간 즈음 내가 들어가게 돼 있었는데, 이게 왠일. 일정에 착오가 생겨 내가 가고도 1시간 이상의 시간이 흐른 후에 기도회가 시작됐다.

꿈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꿈이 이루어지기 원한다면 더 큰 목소리로 기도하십시오. 계속 이렇게 살 건가요? 변화되고 싶다면 지금 이 순간 성령님을 더 큰 목소리로 부르세요. 성령님, 지금 나에게 와 주세요.

결국 그 강압적이고도 간절한 분위기에 뜨겁지 못한 웬디 선생님은 10분도 안돼 지쳐버렸다. 콘택트렌즈가 빡빡하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핑계삼아 잠시 자리를 빠져나와 생각했다.

꿈이 이루어지려면 더 큰 소리로 기도해야 한다고? 휴. 그러니까, 하나님은, 그러니까, 꿈을 이루어주기 위해 존재하는 분인건가? 그런건가? 우리가 하나님께 최고로 구해야 할 것은 바로 그것인건가. 혹시 청소년들은 꿈을 볼모로 잡혀있는 존재는 아닐까. 모 목사님 말처럼, 성령님은 어디 계시다가 우리가 기도회 시간에 뜨겁게 불러야만 오시는 분이신건가.

하지만 나는 선생님이니, 오래 자리를 비울 수는 없는터. 혼란스러운 마음을 안고 다시 그곳으로 들어간다. 이번에는 각 선생님이 아이들 그룹 안으로 들어가 손을 붙잡고 서로를 위해 간절하게 기도하라고 하신다. 나는 저 뒤쪽에 뻘쭘하고도 뻘쭘하여 도무지 이 분위기에 어찌 적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들의 곁으로 웃으며 다가간다.

얘들아, 힘들지.
아,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죽겠다는 얼굴을 해놓고는.
아, 사실, 전 저렇게는 못하겠어요.

괜찮아. 사실 선생님도 저렇게 하는 기도보다는 조용히 하는 기도가 더 좋은걸. 너희가 같이 뜨겁게, 소리내어 기도하는 게 어려워도 괜찮아. 기도 소리의 크기가 신앙의 척도는 아니니까, 그런 것들로 너희들의 신앙에 회의를 품을 필요는 없어.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그런 것들로 인해서 실족하여 하나님과의 관계의 중심보다 다른 것들에 더 집착하게 되고, 그런 것들로 네 신앙을 스스로 재고, 제한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거야. 지금 너는 하나님을 잘 모르겠지만 하나님을 알고 싶은 만큼, 아직은 하나님이 네 마음 속 작은 방에 있는 것으로 느껴지지만 존재하신다고 여기는 것만큼, 그만큼의 너의 신앙을 존중하고, 앞으로 그 품을 더 넓혀가는 것, 그런 것들이 지금 이순간 여기에서 너의 신앙의 크기라 여겨지는 것을 한 순간에 확장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거야.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10년쯤 전, 어떤 수련회 현장에서의 내가 떠올랐다. 사람들마다 모습과 성격이 다르듯, 하나님을 대하는 모습과 성격도 다를 수 있다는 걸 알지 못하던 그 때, 다른 아이들처럼 뜨겁지 못함이 한탄스러웠고, 나의 믿음은 왜 저 아이만큼 좋지, 아니 좋아보이지 않는 걸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그러면서 나도 괜히 같이 목이 쉬어라, 터져라, 기도도 해봤던 것 같다. 그 때 내게 필요했던 건, 조금만 더 해봐. 그럼 너도 쟤들처럼 될 수 있을 거야, 라는 격려 섞인 강요를 하는 선생님이 아니라, 지금 네 모습 그대로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선생님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무도 나에게 그렇게 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뜨겁던 수련회의 한 구석에서, 매우, 괴롭고 또 외로웠다. 되지 않는 것들을 갈망하며, 되지 않음에 절망하며.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는 걸까. 나의 믿음은 그저 허상인 걸까.

그런 나였기에, 아니 아마 그렇지 않았다 해도, 아무튼 나는 아이들의 기도소리의 크기로 수련회의 은혜정도를 측정하려 하고, 몇몇 아이들이 눈물을 흘리면 오늘 은혜 좀 받았구나, 라고 생각하는 그 때의 분위기에, 그리고 교회 안에서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 순간 아이의 진정성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의 척도가 되는 외식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어른들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정답들이 몇 가지 있다. 수련회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은 어른들 마음에 매우 흡족한 정답일테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이 진심은 저 너머에 둔 채 정답을 말할 때 좀 속상하다. 아동부 교사를 5년 이상 하면서 느꼈던 건, 아이들에게 정답만을 가르쳐야 한다는 (그만큼 또 아이들이 어리기도 하다는) 답답함이었고, 나는 그렇게 머리로 배웠으나 마음으로 실감하지 못한 정답들을 계속 가지고 자라날 아이들이 안타까웠다. 내가 그러했듯. 그리하여 나는 아이들이 진심을 말하는 법을 좀 배우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청소년부에 지원했다. 나는 진심으로 아이들이 정답을 말하는 일보다 진심을 말하는 일에 익숙해졌으면 좋겠다. 그게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때로는 좀 되바라지고 거세다는 평가를 들을지는 몰라도. 그 진심을 어른들의 정답이 아닌 나의 정답에 가까운 것으로 만들어나가는 일. 그렇게 끊임 없이 자기 자신을 성숙하게 만들어나가는 일. 이건 아마 내가 올 한 해 내가 맡은 우리반 아이(1명이다)와 함께 해나가고 싶은 작업이다. (하지만 내공이 부족하다. 휴)

기도회 시간이지만, 기도 대신 저 뒷편에서아이들과 두런두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며 올해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해가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자라는 한 해를 보내겠다고, 다시 한 번 작정했다. 쑥쑥 멋있게.

거기 뒤쪽. 아이들과 기도를 하세요. 대화를 하지 말고.

앗. 눈초리가 따갑다. 그렇지만 죄송. 지금은 저도 다른 어른 선생님들의, 목사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고, 아이들과 좀 더 대화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되바라진 선생님이라는 평가를 듣게 된다면, 되바라진 선생님 하죠 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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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09-03-28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혀~ 되바라지지 않았어요. 내공 부족보다는 좀 다른게 원체 삐걱거리는거란 생각이 들어요.
나도 비슷한 고민을 했었는데... 그때의 나도 웬디양님처럼 목이 쉬어라, 탈진할 정도로 나를 압박했었어요. 그래서 얻어진건 내가 이만큼 노력했다는거지, 진심으로 닿았구나라던가, 내 안이나 어느 곳에서든 현현하는 그분의 모습은 아니었어요.
그때 만약에 웬디양님같은 선생님이 있어서 '아치, 어깨에 힘 빼고 네가 원하고 간절하게 바라는 모습대로 기도해보자'란 말을 했다면, 제 신앙이 크고 막강하진 않았겠지만 쭉 이어가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웬디양님!
가끔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요새는 자주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말야. 히... (음흉한 웃음)

Arch 2009-03-28 14:26   좋아요 0 | URL
아아, 마지막 그림이요. 옥찌들 영향인지 모르겠는데(옥찌들이 제가 사진찍을 때 이마를 반 정도 자르면 항의하고 이마 살려내라고 하거든요. 얼굴 예쁘게 나오게 하려는 컨셉인데. 칫) 얼굴이 잘리니까 다른 내용보다, 얼굴이, 얼굴이, 이런 생각이 자꾸 들어요.

W 2009-03-30 01:22   좋아요 0 | URL
아. 아치님도 그랬던 적이 있군요. 그 때의 그 답답함.

사진은 저거요, 사실요, 파워포인트 클립아트에서 '선물' 검색하면 나와요. 소심해서 저작권 때문에 아무거나 못쓰고 가끔 애용하는 프리웨어 무더기 클립아트. 흐흐.

2009-03-28 2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30 0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라나타 2009-03-29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가름과 다름 사이'를 통해서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가름과 다름 사이에 이 글에 대한 댓글을 달았는데, 이 곳에서 웬디양님을 보니 더 친근하게 다가오네요. 가끔 놀러와서 글도 읽어봐야겠네요^^

W 2009-03-30 01:23   좋아요 0 | URL
하하. 마라나타님. 반갑습니다. 주신 덧글은 이미 확인해 답글 달아놓았고요. ㅎㅎ 여기는 어쩐지 좀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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