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회식을 좋아하지 않는데, 특히 단체회식같은 건 정말 쥐약이다. 너무 싫어. 할 말도 없는데 할 말을 짜내어 생각하면서 분위기를 맞춰야 하는 상황 자체가 싫다. 누가 회식을 좋아해? 라고 누군가 물을 때, 하긴....이라고 답하긴 하지만, 아니다. 우리 회사에는 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만 같다. 다들 어찌나 신나보이는지. 나 혼자 그 안에서 홀로 타인처럼 존재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하는 전체 회식은 1년에 한번. 오늘과 같은 전체 송년회 날이다. 100명도 넘는 사람들이 함께 있을 장소를 찾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사장님도 모든 직원들에게 술 한잔씩을 주는 게 목표였는데, 술을 워낙 못드시기에, 몇번 받아 드시다가 이내 얼굴이 붉어지셨다. 결국 나중에는 한잔씩 그냥 주고 사장님은 거의 받아 드시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결국에는 전사하셨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그 외에 누군가 나갈 때마다 송별회 자리가 있는데, 나는 친하던 사람이 아니면 거의 가지 않는다. 신입 때는 그나마 좀 살아보겠다고 쫓아다니곤 했는데, 이젠 살아보겠다는 의지도 없고, 워낙 사람 많이 모인 회식 때는 내가 즐기지 못함을 알기에, 그냥 편한 쪽을 택하고 만다. 그러고보니 올 해는 송별회를 한번도 안갔나?
우리 테이블은 사람들이 와서 쉬어가는 테이블이 됐다. 결국엔. 워낙 팀원들이 다 술을 못마셔서 강요하고 이런 거 없이 조용히 먹는 분위기. 여기저기서 부어라 마셔라 하는 분위기에 지친 사람들이 오면, 우리는 그저 물 한 잔 조용히 따라주고 ㅋㅋ 물론 여기서도 뭐야, 이테이블, 하면서 술 먹이려는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내 재미없어서 가곤 한다. 다들 여기저기 다니며 움직여 가면서 먹는데, 우리 테이블은 다 자리를 보전하고 앉아있다. 이럴 때 팀성격 드러나는 거지- 그런데 저 사람들은 뭐가 그렇게 재밌는 걸까. 여전히 난 잘 이해가 안가긴 한다.
다른 사람의 주사를 확인하는 일 역시 유쾌하지 못한 일이다. 지저분한 주사가 있다면 알아서 컨트롤해주면 좋으련만. 술 마시고 옆자리 앉은 여직원을 쓰다듬는 최악의 주사를 보여준 S군 때문에 죽는 줄 알았다. 느끼하고 끈적끈적한 눈빛으로, 청바지와 상의 사이로 살짝 드러난 A씨의 맨 살을 쓰다듬어대는 S군을 보며 난 그만 몸서리치고 만다. 옆자리 K군에게 쟤좀 가서 말려. 하지만 말린다고 말려지면 주사가 아니지. 모두가 그만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S군 오늘 마이너스 3천 7백만점.
그래도 올 한 해 생각해보니, 조곤조곤한 회식은 다 좋았다. 조촐히 팀원들 모여서, 술이 중심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인 회식. 친한 사람 서넛, 정도가 모여서 맛있는 거 먹으면서 사는 얘기, 살 얘기, 나누며 함께하는 회식은 다 좋았다. 지난 달까지 내가 속해있던 팀은 2년간 함께한 언니같은 과장님, 그리고 친구같은 동기와 함께였으니 같이 모여서 뭘 해도 그냥 좋았던 거다. 시간 가는 게 아까울 정도. 나는 그 시간들을 통해, 아! 나도 회식을 좋아할 수 있구나, 뭐 이런 어처구니 없는 깨달음을 얻었다. ㅋㅋ
새 팀은 슬슬 적응이 되고 있다. 일단은 같이 수다떠는 것이 즐겁거든. 하지만 멤버가 9명이나 되다 보니, 뭘 하나 하려고 해도 역시나 쉽지 않다. 그래도 9명 모여 조곤조곤 시간을 가졌더라면 100명 규모의, 100명과 모두 함께하지도 못하면서 100명의 압박을 동시에 받는 이 회식보다는 훨씬 즐거웠겠지. 라고 생각을 하며 얼굴에는 썩소를, 손에는 술잔을, 입에는 우물우물 고기를,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같은 마음이었나보다. 역시 조곤조곤 좋아하는 우리 팀. 결국 1차 마치고 다들 비틀비틀 2차 장소로 갈 때 몰래 나와 파스쿠찌로 가서 팀장님을 비롯한 너댓명이 모여 조곤조곤 수다를 떨다가 12시에 딱 마치고 들어왔다. 500배는 즐겁던 시간. 역시 술보다는 커피, (10시 넘어서 케잌도 먹었다매? ㅋㅋ) 단체 회식보다는 소규모 회식이 좋구나.
비슷한 시간에 2차를 마치고 3차를 간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100명 이상이던 인원은 30명 남짓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남자 직원 몇 명이 화장실, 출입구 앞에서 문지기를 하며 돌아가려는 사람들을 다시 안으로 들어 넣었다고 한다. 자신들은 문지기를 하느라 같이 놀지도 못하면서, 도무지 그건 무슨 오기인가 싶다. 아마 3차지나, 4차, 5차, 아침이 올 때까지 열댓명의 사람들이 남겠지. 회식이 안즐거우면 그럴 수 없을 거 아냐. 이봐. 회식이 즐거운 사람도 있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