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취향의 확장과 감당의 깜냥에 관해 생각했다. 그동안 돈이 많이 나가는 취미를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던 데다가, 취향이라는 것은 경험, 사유, 지식, 능력, 근육량과 함께 확장하면 할수록 좋은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던 나에게는 새로운 종류의 고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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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물건들은 버리지도 못하고 쳐다보지도 못하는 것이어서, 그것들에 대한 모든 언어는 기만적인 것이 된다. 그 물건들, 은밀하고 온전하지 않으며 모서리와 가장자리가 다른 빛깔을 띠고 있는 그 물건들을, 너 자신과 혹은 다른 사람이 볼까 봐 집요하게 감춘다. 진부한 형용사들은 그 물건의 가늠할 수 없는 비밀들, 봉인된 기억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못한다. 죽음의 편도 아니고 삶에도 가깝지 않은 그런 물건들에 대해서는 어떤 포즈도 취할 수 없다. 응시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말할 수도 없다. 사물들의 끈질긴 고독 앞에서 최선의 예의는 침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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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에 마지막 카트의 세간들을 버리고 다시 잠자리로 돌아올 때의 느낌은 해방감과는 다른 것이다. 이제까지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후회와, 결국 더 지니지도 못하고 버릴 수밖에 없었다는기이한 자기혐오가 한꺼번에 들이닥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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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는 일은 시간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세간살이는 집의 한구석을 점유했던 시간의 이미지이다. 그 시간들은 따뜻하기보다 사소하게 수치스럽고 덧없으며 때로 히스테릭하다. 사물들은 그 시간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피할 수 없게 만들며, 그 시간 앞에서 어떤 허세도 망각도 기만적인 것임을 알게 한다. 물건들을 견딘다는 것은 한때 부풀어 올랐다가 꺼져버린 시간들이 있었다는 것을받아들이는 일이다. 사물들의 배후에 있는 것은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의 비밀이다. 버리기 쉬운 것들은 옅은 비밀을 간직한 것들이며, 깊고 무거운 비밀을 보유한 물건들은 그만큼 버리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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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살이가 뒤집어져 낯선 이들에게 노출되고 트럭에 옮겨지는 일련의 과정들은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누추한 세간들이 환한 햇빛 아래 무방비로 드러난 채 트럭에 실릴 때마다 희극적이거나 외설스러웠고, 때로는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더 넓은 곳으로 이사하는 일은 드물었고 대부분 비슷한 공간이나 더 작은 공간으로 옮겼기 때문에, 이사 전에 가장 큰 일은 필요 없는 세간을 미리 버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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