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우리는 김훈의 소설이 문제적이라 했다. 김훈의 소설이 새삼 지금 이곳에서 문학적으로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중요한 아이콘으로 부각되는 까닭은 그의 소설에 나타나는 바로 저 불가피의 감각과 인간의 동물성에 대한 안쓰러운 긍정이 포스트-IMF 시대 한국사회의 예민한 정치적 무의식의 성감대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그 무의식이란 물론 IMF 이후 개전의 여지가 없는 듯 더욱 강화되어가는 강고한 시장과 경쟁 씨스템 속에서 나날의 삶을 불안과 생존의 절박을 떠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적 조건에서 나오는 것이다. 거기에 있는 것은 삶을 압박하는 거대한 씨스템의 위력에 짓눌려 느끼는 불가피한 무력함이고, 이른 바 먹고 사는 것을 당장에 해결해야 할 지난한 과제로 맞닥뜨리는 데서 오는 불안과 비애이며, 살아남아야 한다는 비루한 생존 (혹은 성공)의 요구 밑에 다른 모든 가치를 종속시키는 정신적 빈곤의 자발적인 내면화다. 김훈의 소설이 건드리는 대중독자의 성감대는 바로 이 지점이다. 거대한 불가피 앞의 무력한 우울과 신음을 통절하게 그리는 동시에 그것을 유려하게 미학화하는 김훈의 소설은 독자들이 떠안고 있는 저 비루한 삶의 감각을 적절히 환기시키면서도 거기에 정신적, 미학적 품격을 부여해주는 것이 아닌가.

김훈의 소설이 갖는 호소력은 그렇게 대중이 겪는 자발적, 비자발적 굴욕의 현실감각을 적절히 환기해주는 데서 오는 것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거기에 너무 가까이 가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적 소재는 그 삶의 감각을 적절히 거리화하는 효과를 발휘하고, 하드보일드와 미려함, '사실'에 대한 산문적 집요와 한시적 여운이 모순적으로 공존하는 문체의 흡인력 또한 그것을 거들고 있다. 그럼으로써 결과적으로 김훈의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어쩌면 거기에서 '먹고 살아야 한다'는 지난한 생물학적 당위에 압도된 스스로의 비루한 삶에 대한 긍정의 위안과 속화된 보편주의-나만이 그렇 것이 아니라 고래로 인간이 원래 그런 존재라는-의 알리바이를 제공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물론 작가의 의도와는 별개로 일어나는 사건이지만 김훈 소설의 논리와 메씨지가 그와 전혀 무관한 것도 아니다. 특히 그와 관련해서 인간사의 지난한 사실의 세목들을 진지하게 대면하게 하는 김훈 소설의 미덕이 거꾸로 프레임에 의해 선택된 것일 수 밖에 없는 그 사실을 부당하게 특권화해 오히려 한층 더 복잡하고 다층적인 현실의 문제를 은폐하는 위험 또한 안고 있는 것이라는 점은 이 대목에서 덧붙여둘 수 있겠다.




창작과비평 가을호 '김훈소설이 묻는 것과 묻지 않는 것' - 김영찬

 

 

 


끄덕 끄덕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휴일 출근길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사서 선물로 받은 '비매품'
그의 산문집 읽Go 듣Go 달린다를 읽으며 기분이 좋아졌다 흐흐

그 첫 파트인 읽Go 에는 김연수가 여러 권의 책들을 읽으며 쓴 느낌들이 적혀 있는데
나는 이 파트를 읽으며, 이런 파트를 만들어봐야지, 하고 생각했다

책이 책을 부르다
그러니까 책에서 책을 소개하고 있는 문구들을 옮겨적어보는 것.
물론 마음에 드는 것만

나는 책을 읽으며, 그 책을 통해 다른 책을 소개받는 일을 좋아한다
작가란 대부분 작가 이전에 왕성한 독서가들일테니 ^^


아, 김연수 좋아! ^^


1. 브루클린 풍자극

폴 오스터의 주인공은 소설에서 '인간의 어리석음에 관한 책'을 만드는데, 낸 골딘의 작품을 들여다 보노라면 그 어리석음이 무엇인지 이해할 만하다. 그건 바로 타인의 삶 속으로 깊이 개입하지 않으려는 태도다. (중략)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거리를 따라 걸으며 "그 때까지 살아왔던 어느 누구 못지 않게 행복했다"고 생각한다. 세계무역센터 북쪽 타워에 첫번째 비행기가 충돌하기 딱 46분 전인 2001년 9월 11일 오전 여덟시의 일이다. 아무리 쿨한 삶을 살아간다 해도 하얀 구름처럼 쏟아져내리는 그 죽음과 재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소설은, 사진은, 시는 세상 모든 것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른다. 본직적으로 예술은 그처럼 뜨겁기만 하다.

* 폴오스터의 책은 한 권 (공중곡예사) 이후로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었는데, 싫었다기보다는 너무 흔해보여서였다. 이런 얼토당토않은 이유라니 하하! (실은 최근 알랭드보통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것도 비슷한 이유이니, 이런 호기가 또 어딨나 싶다)

2,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카잔차키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귀를 쫑긋 세우게 되면 절대로 세상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듯 삶은 불가해하다느니 어쩌니 떠들어댈 수 없게 된다. 결국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 읽고 나면 당장 책을 집어 던지고 밖으로 뛰쳐나가 세상의 모든 것을 처음인 듯 바라보고 듣고 냄새맡게 만든다. 세상에 이런 책이 어디 있을까? 그런 점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는 한 번 읽고 나면 당분간 읽지 않아도 좋은 책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잔뜩 찌푸린 얼굴로 방에 틀어박혀 사는 게 지겹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 그 때가 바로 조르바를 다시 만나야 할 시간이다. 일단 첫 장만 넘기면 된다. 그 다음에는 낄낄거리며 읽고 나서는 책을 집어 던진 뒤 밖으로 뛰어나가게 된다.

* 조르바를 다시 만나야 할 시간인걸까? 하지만 난 절대 조르바같이 될 수 없다는 스스로의 한계를 너무 잘 알고 있음

3. 적과 흑 - 스탕달

속물적인 태도와 자존심이 그처럼 가깝다는 사실은 인간의 정신이 얼마나 오묘한지를 보여주는 일이다. 이 기나긴 소설에서 쥘리앵은 독자가 지루해할 틈도 주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지점까지 자신을 몰고 간다. 그건 속물적인 태도 때문이기도 하고 자존심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두 가지 상반된 마음이 공존하는 사람이기에 쥘리앵 소렐을 경멸할 사람은 이 세상에는 없다 (중략)
나는 쥘리앵 소렐, 드 레날 부인, 마틸드 등을 한없이 그리워한다. 그들은 권총을 가까운 곳에 놓고서는 호랑이와 친해지려고 했던 사람들이다. 왜 그래야만 하는가는 책장을 덮은 뒤에 두고 두고 생각해볼 문제다. '불안에 대한 갈구'라고 스탕달은 이 책의 어딘가에 써 놓았다. 그래. 이 시대가 시시하게 된 것은 이제 불안을 갈구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내면적 안전보장의 시대. 다들 더 높이 오르려고 하기보다는 다만 전락하지 않으려는 시대. 쥘리앵 소렐이 21세기에 더 매력적인 까닭은 여기에 있다.

4. 아Q정전 - 루쉰

이번에는 아Q정전을 읽으면서 한 번도 웃지 않았다. 너무나 쓸쓸하고 외롭기만 했다. 혼자여서 그런 게 아니었다. 삶이 자신의 의지에서 한 번 벗어나기 시작하면 자기 얼굴이 꼭 다른 사람의 얼굴처럼 보일 때가 있다.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삶을 어떻게 짐작할 수 있을까? 머저리 아Q. 가끔 나는 처형 직전에 노래 하나를 끝까지 부르지 못한 아Q를 완전히 이해하기도 하고, 전혀 납득하지 못하기도 한다.



5. 소년의 눈물 - 서경식

서경식씨는 여기에 '나는 될 수 있으면 이 대목에 시선을 주지 않으려 애썼다'라고 썼다. 참 이상한 일이기도 하다. 서경식씨는 왜 시선을 주지 않으려고 했던 대목을, 오랫동안 싫어했던 소설의 한 구절을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도 잊지 못하는 것일까? 소년들이 결국 인정해야만 하는 사실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리라.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만,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사람만, 내 처지와 너무나 꼭같아서 차라리 혐오스럽던 책들만 오랫동안 자기 안에 살아남는다는 것. 올 봄에 도쿄에 갔을 때 누군가 서경식씨를 만나겠느냐고 내게 물었다. 만나보고도 싶지만 만나고 싶지 않은 마음도 든다고 대답했다. 서경식씨라면 보자마자 나를 소년 취급할지도 모르겠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7-12-08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서는 나와 전혀 다른 남을 접할 수 있어 좋습니다.
특히 책 목록을 볼 때면 이런 책도 있구나 하지요.
대부분 처음 보는 책일지라도 여기 저기서 같은 제목을 보게 되면 어느 순간 익숙해지고
결국 나중에는 제가 직접 대하게 되는 경우도 생기거든요.
좋은 책들과 좋은 시간 가지세요.
아침에 만나서 더 반갑네요.

웽스북스 2007-12-08 10:54   좋아요 0 | URL
이 책들을 소개한 책(읽고듣고달린다)은 비매품이어서 읽어보시라고 할 수가 없는 게 참 아쉬운 책이랍니다. 참 좋아요 이책 ^^

Hani 2007-12-08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다른 좋은 책을 소개받는 일은 즐거운 일이에요. 또 다른 블로거를 통해서 좋은 책들을 소개받는 일도 기분좋은 일이죠. 김연수 작가 아직 만나보지 못한 작가인데.. 만나보고 싶네요^^

웽스북스 2007-12-08 13:16   좋아요 0 | URL
충분히 만나볼 만한 작가에요 ^^ 저도 아직 3-4권 정도 밖에 읽지 못했지만, 그냥 시간을 두고 종종 만나고 싶은 생각이에요- 지금까지는 소설만 봤는데 이번에 저 책 보면서 산문도 괜찮겠다 싶어서 다음엔 산문을 읽어볼까 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

깐따삐야 2007-12-08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점 나이 먹을수록 고전이 이래서 고전이구나, 하게 되더라구요. '적과 흑'. 제게는 '폭풍의 언덕'만큼이나 재밌었던 소설입니당.^^

웽스북스 2007-12-09 01:23   좋아요 0 | URL
가끔은 어린시절, 뭣도모르던 시절에 읽었던 고전들이 좀 아깝게 느껴지기도 해요- 다시 읽어보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들. 물론 다시 읽겠다고 결심하기가 쉽지는 않지만요 ㅠ

stella.K 2007-12-10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김연수의 책을 사면 그 책을 끼워준단 말입니까? 확인 들어 갑니다. 후다닥!

웽스북스 2007-12-09 20:35   좋아요 0 | URL
아....어쩌나 이벤트 기간이 끝난 걸로 알고 있어요ㅠㅠ
http://larvatus.egloos.com/ 대신 이곳을 소개해드릴게요 ^^
 



어제 퇴근길, 그날 도착했던 작가세계 여름호(김연수 특집)를 꺼내들었다. 장소는 택시 안, 차에서 책을 잘 못읽기에, 조금 멀미가 날 것 같았으나, 그래도 꿋꿋이 책을 편다. 물론 단편 하나 읽고 바로 접을 수 밖에 없었지만

김연수를 읽으려고 하며 책을 넘기는데, 편혜영의 단편이 함께 들어있는 거다. 이건 예상치 못한 횡재를 한 기분이랄까. 이효석 문학상 작품집에서 분실물을 꽤 공감하며 읽었던 기억이 있고, 이번에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하며 로쟈님이 쓴 글을 보면서 좀 더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작가.

편혜영은 소설을 촘촘하게, 1mm, 1mm씩 써내려가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편혜영의 촘촘함은 세밀함, 혹은 예민함과 좀 다른 느낌의 그것이다. 한순간도 크게 오버하지 않으면서도 계속 그 호흡을 따라갈 수 밖에 없게 만드는 힘이랄까.

금요일밤의 안부인사에 나오는 아저씨들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또 너무 전형적이다. 투자로 먹고 사는 기러기아빠, 위태위태한 중소기업 중간관리자급 직장인, 그리고 명퇴후 치킨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그들에게 가족은 타인보다 불편한 존재. 적당히 쿨할 수 있고, 적당히 즐거운 얘기만 할 수 있기에, 또 적당히 나와 당신을 속일 수 있기에, 가벼운 관계를 통해 위로를 얻으려고 하는 아저씨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게 편치만은 않다. 나 또한 가끔 가족보다 타인이 편하고, 나를 잘 아는 사람보다는 잘 모르는 사람과의 관계가 좋을 때가 있으며, 피상적인 만남들을 통해 종종 만족과 위로를 얻기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건 엄밀히 책을 읽다가 는 아니고
밑줄을 긋다가,정도 되겠다 ㅋ

2주 전쯤 읽었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이제서야 다시 보면서
접어놓은 곳에 밑줄을 긋고 있는데
아, 정말 다시 읽으니 더 좋구나-

사람들은 이 책에서 튀어나오는 감상적인 부분이 싫다고 하지만
나는 김연수가 이런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이라서 좋다

누가 뭐래도 흐흐

 

   
  이 우주에 내가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나 하나뿐이라면 생각만 해도 추워. 무주에서 보내던 그 해 겨울이 기억나 얼마나 추웠는지 몰라. 그 때 달달달 떨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내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건 누군가 내게 말을 거는 일이었어. 그게 누구든, 나는 연결되고 싶었어. 우주가 무한하든, 그렇지 않든 그런 건 뭐래도 상관 없어. 다만 내게 말을 걸고, 또 내가 누구인지 얘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이 우주에 한 명 정도는 더 있었으면 좋겠어

나의 결론은 그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모든 게 달라졌으리라는 것이었다. 사랑은 입술이고 라디오고 거대한 책이므로. 사랑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내게 말을 건네므로. 그리고 이 세상 모든 것들이 그 입술을 빌려 하는 말은, 바로 지금 여기가 내가 살아가야 할 세계라는 것이므로. 그리하여 우리는 이 세계의 모든 것들과 아름답게, 이토록 아름답게 연결되므로.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으니 사랑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다는 것을, 오직 존재하는 것은 서로 닿는 입술의, 그 손길의, 살갗의, 그 몸의 움직임뿐이라는 것을 그도 알았더라면.
 
   

댓글(6)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7-11-25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7-11-25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추워.
그래서 생각하지 않으려고.

웽스북스 2007-11-26 00:23   좋아요 0 | URL
생각하지 않으면 더 추워져요 엘신님

2007-11-25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duelist 2007-11-26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소 김연수 작가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이번 소설은 제목이 너무 끌리네요. 읽고 싶어요. 좋은가요? :)

웽스북스 2007-11-26 19:14   좋아요 0 | URL
평소 김연수 작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면, 잘 모르겠습니다 ㅋ
 


   
 

고병권은 책에 네 등급을 매깁니다. 우선 가장 좋은 책은 세계를 변혁하는 책이랍니다. 마르크스의 묘비에 쓰인 말 (철학자는 그동안 세게를 해석해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에서 따온 것인데 말 그대로 세계 속에서 작동하며 세계를 만드는 책입니다. 마르크스의 노작들이 생생한 증거일테지요. 두번째는 세계를 해석하는 책입니다. 해석을 통해 기존 세계를 비틀고 자기 세계를 만들지만 변혁으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하는 책입니다. 세번째는 세계를 반영하는 책입니다. 그 자체로 세계의 거울이자 증상인 책으로, 해석을 부인하고 그저 '사실'에 입각하는 책입니다. 마지막은 가장 나쁜 책으로, 세계를 낭비하는 책입니다. 세계에 산소를 공급하는 나무를 죽이고, 그 나무로 만든 종이에 독을 담아 유포하는 책입니다. 이런 책은 어떤 질병보다도, 어떤 살상무기보다도 이 세계에 치명적이라고 말합니다. (고병권의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중에서)

그렇다면 이 책, 21세기에 지켜야 할 자존심은 어느 등급에나 해당할까요?
스스로에게 묻고 고민 끝에 조심스럽게 답해봅니다. 가장 좋은 책이라고는 자신할 수 없어도 세계를 해석하는 책의 언저리 정도엔 분명 자리하고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 자리에서 세계를 변혁하는 꿈을 꿀 것이라고.

- <21세기에는 지켜야 할 자존심> 한겨레21 정재권 편집장

 
   



며칠전 주문한 책이 왔다.
지금은 다른 책을 읽고 있어서 아직 읽기를 시작하지 못했으나,
궁금한 마음에 회사에서 살짝 서문을 펼쳐보았다.

정재권 편집장은 저 말을 빌어 자신들이 낸 책을 돌아보지만, 나는 저 말을 읽으며 나의 독서를 돌아본다. 나는 저 첫번째,두번째,세번째의 책들을 번갈아가며 읽는다. 첫번째 책만 읽다보면 내 존재의 작음과 미약한 영향력, 게다가 초박약인 의지로 인한 마음의 부채에 허덕이고, 두번째 책만 읽다보면 나의 지적 능력에 대한 자괴감과, 끊임없는 '입력'으로 인해 그만 마음이 퍽퍽해지고, 세번째 책만 읽다 보면 다른 것들을 충족시켜줄 그 무엇을 갈구하게 된다.

하지만 첫번째 책은 나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와 방법을 만들어주고 있으며, 두번째 책은 나에게 현재 내가 서 있는 곳을 정확히 보는 눈을 길러주며, 세번째 책은 나, 그리고 나와 함께 서 있는 사람들을 보게 하고, 때로는 그를 통해 위로를 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저 말이 맞지만, 나는 독서가 꼭, 저 첫번째 지향점만을 향해 가야하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세 종류의 책 모두가 균형을 이루며, 함께 가야하는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나도 물론, 갈 길이 멀다!


그런데 이보쇼 네번째책! 언제까지 거기서 종이낭비만 하고 있을텐가. 종이 아깝게 폰트는 왜 그렇게 커야한단 말인가. 내용없는 책 12폰트로 키워놓고 2권까지 낼건가? 그럼 제발 표지라도 하드커버로 만들지 말아달라고!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7-11-16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 처음뵙네요. 제 리뷰에 덧글도 하나 달아주시고, 감사합니다. ^^*
백석의 시를 좋아하는군요. 저도 고등학교때부터 좋아했어요.
평화의 얼굴도 관심가는 책이에요. ^^

우리사회를 움직인 판결도 괜찮은 책이에요. 고교생이나 대학생, 일반인들도 부담없이 읽으실 수 있을거에요. 내용 자체는 절대 가볍지 않지만요.
행복한 책읽기 하세요. ^^

웽스북스 2007-11-17 12:30   좋아요 0 | URL
앗 그런데 알리샤님 어디가신거에요 ㅠ

순오기 2007-11-22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벤트 당첨자가 원한 책이라 추천하고 주문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