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주커먼 시리즈
필립 로스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진정한 재앙은 결국 개인의 근저에 자리한 나약한 감상이 아닐까 싶네. 실패가 인간을 초라하게 만들었다고 인생을 비난할 순 없다네. 한 인간에게서 제멋대로 사회적 지위를 빼앗고 자존심을 깔아뭉개는 기술들을 보면 오히려 인생에 경의를 표해야 하지. (p.12)

권력을 탐하는 데 훌륭한 인생관이 필요한 건 아니라네. 권력에 오르는 데에도 훌륭한 인생관이 필요하진 않아. 사실 고상한 인생관은 껄끄러운 장애가 될 수 있을 거야. 반면 고상한 인생관을 갖지 않는 건 더할 나위 없는 장점이 될 수 있다네. (p.24)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에 본인이 전혀 모르던 중요한 사건이 포함되어 있다는 걸 뒤늦게 아는 것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살아온 인생이라는 것이 정작 본인은 거의 알지 못하는 이야기니까. (p.32)

머리 선생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그리고 이제는 앙상해진 그의 몸을 바라보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체격이 그가 걸어온 모든 일관된 삶의 구현체, 다시 말해 가장 엄밀한 의미에서 자유 외에는 모든 것에 평생 무관심한 채 살아온 삶의 결과물이구나... 선생님은 본질주의자이고, 그의 성격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며,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심지어 진공청소기를 팔 때도 어떻게든 자신의 존엄을 지쳤겠구나... 머리 선생님(내가 사랑하지 않았고 사랑할 필요가 없었으며, 단지 교사와 학생 간의 계약만 존재했던 사람)은 보다 관념적이고 분별 있고 현실적인 형상의 아이라(내가 사랑했던 사람), 실제적이고 분명하고 명확한 사회적 목표를 가진 아이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웅적으로 과장된 야망이 없고 세상의 모든 것과 열정적이고 과열된 관계를 맺지 않은 아이라, 모든 것에 충동과 논쟁 때문에 시야가 흐려지지 않은 아이라. (p.34~35)

임차인, 세입자라면 누구나 출근 전과 퇴근 후에 이 모든 허드렛일을 조심스럽고 성실하게, 제대로 할 줄 알아야 했다. (중략)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돈을 벌고, 음식을 준비하고, 규칙을 세우는 일 외에 이처럼 험하고 힘든 뱃일같은 활동(중략)도 해야 했다. 이 모든 일이 내가 자전거를 타고 집에서 도서관까찌 2마일을 왔다갔다하는 동안 내 옆에서 시계장치처럼 맞물려 똑딱똑딱 돌아갔다. 똑딱 똑딱 똑딱, 그것은 그 동네가 살아가는 일상의 메트로놈이었고, 미국 도시의 오래된 존재의 사슬이었다. (p.35~36)

나는 그에게선 시간이 녹아버렸다는 느낌, 시간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흘러간다는 느낌, 선생님이 더는 시간 속에 살지 않고 그 자신의 외피 안에서 독립적으로 살고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양심적인 교사, 시민, 가장으로 살아온 선생님의 의욕적이고 성실하고 외향적이었던 삶은 열정이 잦아든 고요함에 도달하기 위한 오랜 투쟁인 듯했다. 나이가 들어 노쇠하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경멸해 마땅한 자들을 가차 없이 경멸하는 것 역시 충분히 견딜 수 있는 것이었다. (중략)
선생님에겐 모든 것이 지나간 후에야 남는 것, 스토아철학의 단련된 슬픔이 있었다. 서늘함이 있었다. 삶에서 모든 것은 오랫동안 뜨겁고 강렬하다.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열기가 새어나가 서늘해진 뒤 재로 변한다. 책과 겨루는 법을 내게 처음으로 가르쳐주었던 사람이 돌아와 지금은 내 앞에서 노년과 겨루는 법을 보여주고 있다.
그건 놀랍고 숭고한 기술이었다. 그 어떤 것도 강인한 인생을 살아낸 것보다 노년에 대해 더 잘 가르쳐줄 수 없기에. (p.137-138)

공산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아이라는 완벽하지 않았는데, 그게 오히려 다행이었다고. 그는 자신의 인간성을 내팽개치지 못했으며, 투쟁과 하나의 목적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지만 그에게선 인간적인 면모가 끊임없이 솟아 나왔다고. 당에 충성했다면 좋았겠지만, 자신의 본모습을 지키고 자기 자신을 억제할 수 없었던 것은 그것과 별개의 문제며, 그는 자신을 억누를 수 없었고, 자신의 모순까지 끌어안은 채 철저히 자신의 삶을 살았다고.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애타게 원하는 순간부터 좌절은 피할 수 없게 된다네. 반드시 무릎을 꿇게 되지. (p.148)

아버지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닫는 순간이 유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나에게 상처를 받을 수 있고, 이제 내가 아버지를 필요로 하는 것보다 아버지가 나를 더 필요로 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 또 내가 실제로 아버지를 두렵게 할 수도 있고, 심지어 마음만 먹으면 짓뭉갤 수도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뭐랄까, 이런 깨달음은 평상시 효의 관념과 너무 어긋나 애당초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다가온다. 아버지는 발 치료사로, 가족의 부양자이자 보호자로 모든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이제 나는 다른 사람과 함께 아버지의 그늘에서 도망치고 있었다. (p.185~186)

이브는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법을 전혀 몰랐어. 말다툼이나 논쟁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지. 하지만 사람은 저마다 매일같이 반대하고 저항해야 해. 아이라 같을 필요는 없지만, 하루하루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지켜야 하네. 그런데 이브는 모든 갈등을 공격으로 인지했기 때문에 공습경보가 울리면 이성이 끼어들 틈이 없었어. 일 초 동안 악의와 분노를 분출했다가 금방 백기를 들고 항복했다네. 겉으로는 우아하고 상냥했지만, 모든 것에 혼란스러워했어. 인생에 치이고, 딸에게 치이고, 자기 자신에게 치이고, 자신의 불안정함과 시시각각 찾아오는 모든 불안에 치여 망가진 여자였어. 한데 그 여자한테 아이라가 반한 거야. (p.272)

하지만 내 복잡한 면이 그를 조롱했다면, 그는 단순한 면으로 나를 조롱했다. 나는 모든 것을 모험으로 받아들이면서 항상 변화하기를 바랐던 반면, 브라우니는 그저 삶의 무게를 의식하며 살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만 할 수 있게 하는 속박에 길들여져 있었다. 그의 갈망은 징크타운에서 싹트고 무르익은 게 전부였다. 그는 징크타운의 다른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 생각하고 싶어했다. 그는 삶이 똑같이 반복되길 원했고, 나는 그 사슬을 깨뜨리고 싶었다. (p.348)

성년기의 새 부모는 어떻게 선택될까? 일련의 사건과 마음의 결정을 통해서다. 그들은 어떻게 당신과 연결되고 당신은 어떻게 그들과 연결될까? 그들은 어떤 사람일까? 유전자와 무관한 이 혈통은 대체 무엇일까? 내 경우에 그들은 나 스스로가 도제가 되어 배우기를 자청한 사람, 페인과 패스트와 코윈부터 머리 선생님과 아이라와 그 밖의 사람들까지, 나를 교육시키고 키워준 사람들이었다. 나에게 그들은 모두 나름대로 뛰어나고 맞붙어 겨뤄보고 싶은 사람들이었고, 유력한 사상을 몸소 실천하거나 지지하고, 내게 처음으로 이 세상과 세상의 주장을 두루 가르쳐준 스승이었다. 그들은 저마다 자기 차례가 되었을 때 유산을 남기고 사라져야만 하는, 그렇게 해서 내가 완전한 고아 신세, 즉 완전한 성년으로 진입하도록 길을 터준 존재였다. 그렇게 성년이 되고 나면 나는 이 세상에 완전히 온자 남게 되는 것이다. (p.364)

특수한 것의 본질은 특수하다는 거고, 특수성의 본질은 규범에 순응하지 않는다는 거다. 고통을 일반화하는 것, 그게 공산주의고, 고통을 특수화하는 것, 그게 문학이야. 그 대립에서 적대성이 나와. 모든 것을 단순화하고 일반화하는 세계에서 특수한 것을 살려내는 행위, 바로 여기서 교전이 벌어지는 거야. (p.375)

대중이라는 기계는 일단 스위치를 켜면 모두를 파국으로 몰아넣기 전에는 멈추지 않거든. (p.510)

포기하고 싶은 유혹에 지는 건 현명하지 않아. 어느 나이에 이르면 그것도 질병처럼 사람을 못쓰게 만든다네. 자네 정말 병든 화초처럼 시들다 최후를 맞이할 심산인가? 고독이란 유토피아를 조심하게. 숲속 오두막, 분노와 슬픔을 차단하는 오아시스에 유토피아가 있다는 생각을 조심하기 바라네. 난공불락의 고독. 아이라의 인생은 그렇게 끝났지. 녀석이 숨을 거두기 오래 전에. (p.526)

"이보게, 이건 끝이 없다네. 내가 살아오면서 노력했듯 종교, 이데올로기, 공산주의 같은 명백한 망상에서 자신을 해방시켜도, 여전히 자신의 선량함이라는 신화는 족쇄처럼 남는다네. 그게 최후의 망상이지. 또 내가 도리스를 희생시키게 만든 망상이고.
그만하세. 모든 행동에는 손실이 따르는 법. 이게 그 체계의 엔트로피야"
선생님이 말했다.
"어떤 체계인가요? 내가 물었다.
"도덕체계 말일세" (p.529~530)

그랜트 부부가 성공하기 위해 휘둘렀던 독선의 쇠몽둥이가 없고, 왜 이렇게 행동해야 하는지 일러주는 독선의 거짓이 없으면, 매 순간마다 "왜 이렇게 해야 하지?"라고 스스로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몰라도 별 수 없이 참고 견뎌야 한다." (p.531)

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든 잠시 후면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걸 하고 후회하며 운전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마치 아직도 좋은 일을 하고 싶어 안달하는 순진한 제자인 것처럼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선생님은 당하지 않으셨어요. 그건 선생님의 인생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아셔야 해요" 하지만 나 자신이 한 인간의 역사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달갑지 않은 온갖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걸 아는 노인네라,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p.531~532)

"녀석은 중요한 사람이 되기를 열렬히 바랐지만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알지 못했네. 녀석은 자신의 인생을 끝내 발견하지 못했어, 네이선. 아이라는 평생 그걸 찾아 헤맸는데. 아연광산에서, 레코드 공장에서, 퍼지공장에서, 노동조합에서, 급진적인 정치에서..(중략) 하지만 어디에서도 자신의 삶을 찾지 못했어. 이브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한 게 아닐세.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갈망한 남자와 결혼한 거야. 그게 녀석을 분노에 빠뜨리고 혼란에 빠뜨리고 파멸로 이끌었지. 아이라는 자신에게 맞는 삶을 쌓아올릴 줄 몰랐어. 터무니없이 잘못된 노력만 기울였지. 하지만 사람의 오루는 항상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안 그런가?"
"이 모든 게 오류다. 지금까지 말씀하신 게 이거 아닌가요? 삶 자체가 오류다. 여기에 세계의 본질이 있다. 아무도 자신의 인생을 찾지 못한다. 그게 인생이다" 내가 말했다. (p.532~533)

우리의 청각은 얼마나 깊은 곳까지 도달하는가! 단지 귀에 들리는 것만으로도 이해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라. 귀가 있다는 것은 신과 같다는 뜻 아닌가! 어둠 속에 앉아 누군가의 말을 찬찬히 듣기만 해도 인간 존재의 가장 깊숙한 오류로 돌진해 들어갈 수 있다는 건, 최소한 반쯤은 신과 같다는 뜻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에게 시가 사치라면 우리가 누린 물질의 사치는 시가 아니었을까. 그 암울하고 극빈하던 흉흉한 전시를 견디게 한 것은 내핍도 원한도 이념도 아니고 사치였다. 시였다. (그남자네 집 / p.72)

나는 마지못해 자리를 떴다. 쌍쌍이 붙어 앉아 서로를 진하게 애무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늙은이 하나가 들어가든 나가든 아랑곳없으련만 나는 마치 그들이 그 옛날의 내 외설스러운 순결주의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뒤꼭지가 머쓱했다. 온 세상이 저 애들 놀아나라고 깔아놓은 멍석인데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그래, 실컷 젊음을 낭비하려무나. 넘칠 때 낭비하는 건 죄가 아니라 미덕이다. 낭비하지 못하고 아껴둔다고 그게 영원이 네 소유가 되는 건 아니란다. 나는 젊은이들한테 삐지려는 마음을 겨우 이렇게 다독거렸다. (그남자네 집 / p.77~78)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왜 늘 그모양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살아온 길은 구불구불하다. 그건 극적인 것하고는 다르다. 극적인 삶은 아마도 푸른 하늘을 선명하게 긋는 비행운처럼 아름다운 직선일 것이다. 먼 곳에서 먼 곳까지의 거침없는 최단거리, 나는 아무리 아름다운 구름을 보고도 감동한 적이 없지만 비행운은 볼 때마다 내 존재의 무게가 사라지는 듯한 일종의 무아지경에 빠지곤 한다. 나의 구불구불은 아마도 어른들이 말하는 나이를 헛먹는다는 것하고 같은 뜻이 될 것이다. (거저나 마찬가지 / p.156)

영감님은 먼산이나 마당가에 핀 일년초를 바라보거나 아이들이 재잘대고 노는 양을 바라보다가도 느닷없이 아, 소리를 삼키며 가슴을 움켜쥘 적이 있었지. 뭐가 생각나서 그러는지 나는 알지. 나도 그럴 적이 있으니까. 무슨 생각이 가슴을 저미기에 그렇게 비명을 질러야 하는지. 그 통증이 영감님이나 나나 유일한 존재감이었어. 그밖의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더라. (대범한 밥상 / p.22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에스프레소 노벨라 Espresso Novella 6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경험은 최상의 교사일 뿐만 아니라 유일한 교사이기도 하다. 잭스를 키우면서 애나가 얻은 교훈이 하나 있다면 지름길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이 세상에서 이십 년 동안 존재하면서 습득하는 상식을 얻고 싶다면 그 일에 이십 년을 들여야 한다. 이에 상응하는 자기 발견적 방법론을 그보다 더 짧은 시간에 조립할 방도는 없다. 경험은 알고리즘적으로 압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설령 그런 경험 전체를 스냅샷으로 찍어서 무한대로 복제할 수 있다고 해도, 또 그 복제들을 싸게 팔거나 공짜로 배포할 수 있다고 해도, 그 과정을 통해 태어난 디지언트들은 모두 각자의 인생을 살아왔다는 얘기가 된다. 각자가 과거에 세계를 새로운 눈을 바라보았고, 소망을 이루거나 이루지 못했고, 거짓말을 하거나 거짓말을 듣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터득했다는 뜻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 용산 걸어본다 1
이광호 지음 / 난다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왜 하필 용산이어야 했나? 나날의 삶을 통해 잘 알고 있는 지역이기도 때문이겠지만, 용산이라는 모더니티의 참혹함과 혼종성에 이끌렸을 것이다. 용산의 순결할 수 없는 시간과 장소들은 사회적인 시간과 신체의 감각이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먼 과거의 것들을 보존하려는 당위와 노력에 비해 가까운 과거인 근대의 기억들은 잊으려 한다는 것이다. (p.7)

용산은 애써 지우고 싶은 식민과 이식의 역사와 모욕과 단절의 시간이 폭력적인 개발을 호출하는 기이한 장소이다. 불균등한 시간들이 어지럽게 교차하면서 일상적 우울과 권태로 뒤섞일 때, 용산의 '과도한 산문성'이 만들어진다. (p.7)

어떤 장소는 기억 너머에 있고, 어떤 장소는 기억 이전에 있다. 영감을 주는 특별한 장소 같은 것이 있다고 믿기 힘들다. 가보지 못한 장소와 지나친 장소, 차마 지나치지 못한 장소가 있을 뿐이다. 멀리서 보면 장소는 무심하고 자명하며, 가까이서 보면 장소는 비밀스럽고 남루하다. 생의 매 순간과 우울과 설렘 속에 자리잡은 특별한 장소가 있을 것이다. 평범한 장소가 문득 지울 수 없는 뉘앙스로 마음에 새겨질 수 있다. 익숙한 풍경이 낯선 시선 속에서 특별한 장소로 전환되는 그런 순간. 하지만 그 순간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으며, 그 순간에 대한 기억은 어떻게 보존될 수 있을까? 무감한 시간들을 견딜 수 있는 고유한 장소가 남아 있을까? (p.10-11)

단절과 망각의 형식. 이곳은 또한 망각의 도시다. 이 도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거리와 거리를 오가는 무감한 발걸음들은 알지 못한다. 효창공원과 이태원과 남일당에 이르기까지 장소의 기억을 소환하는 일은 무언가를 걸어야 하는 일이다. 이곳에서는 그 기억들을 지우기 위한 모든 가능한 일들이 벌어진다. 거리의 무기력한 풍경과 빌딩들의 부주의한 스카이라인과 작고 초라한 가게들과 골목 안의 오래된 그림자는 눈을 감았다 뜨면 마법처럼 달라진다. 거대한 담이 사라지거나 누추한 집들이 매끈한 콘크리트로 뒤덮이거나, 지우고 싶은 장소들은 텅 빈 공간이 되어버릴 것이다. 기억으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치려는 이 현기증나는 속도들. 시간은 절대 머뭇거리지 않으며 장소는 침묵하고 망각은 사람의 일이다. 그들의 기억이거나, 너의 기억이거나, 나의 기억이거나, 혹은 우리의 기억이거나. 살아 있다는 것은 기억이 남아 있거나 혹은 기억이 사라져간다는 것. 기억은 완전할 수 없기 때문에 언제나 미지의 가능성이다. (p.14-15)

참혹한 기억이 생생해서 아침햇살이 지옥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황홀했던 시간의 세부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늙어가는 것이 문득 두려워질 것이다. 기억은 나의 시간에서 빠져나와 너의 미래로 흘러간다. (p.15)

나는 기다림 이전에 있고, 너는 기다림 너머에 있다. 기다림을 넘지 않으면 너에게 갈 수 없다. (p.16)

깊이가 사라진 풍경, 매력을 뿜어내지 않는 건물들은 사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거리의 오래된 혼란과 망각을 견디기 위해 거기에 서 있다. (p.21)

삼각지 쪽에서 철길을 가로질러 집 쪽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삼각지 고가로 올라가는 위태로운 육교를 올라야 한다. 육교는 고가를 따라 건너야 하기 때문에 지루할 만큼 길었고, 계단은 공사로 인해 위태로울 때도 있었다. 허공을 향해 올라가는 것 같은 가파른 계단. 그런 위태로운 육교를 걸어간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시간이 얼마나 위태로웠는지 오랜 후에 알게 된다. 매 순간의 위태로움에 대해 알지 못하다가, 어느 날 내게 들이닥쳤던 위험한 시간들을 한꺼번에 마주하게 될 때.

어떤 예감에도 불구하고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는 측면에서 삶은 매 순간 재앙이다. 삶에 대한 전지적 관점이란 오만이거나 기만이다. 너에게 할 수 없는 말들이 마음속에서 저 혼자 죽어갔다. (p.22-23)

익숙한 무기력을 견디는 방식. 고요하고 작은 걸음걸이, 바람도 우울도 비껴가는 걸음걸이, 기계적이고 무심한 작업, 되도록 시간을 지키려는 일 인분의 식사 같은 것들. (p.27)

아이들은 순수하다기보다는 무심하며 다만 최선을 다해 놀고 있을 뿐이다. 이를테면 자기들이 방금 타고 놀았던 그네에서 몸이 빠져나왔을 때 아직 흔들리고 있는 그네의 움직임, 자기 몸 뒤에 남아 있는 시간들에 대해 무감할 수 있음에 대해. 저들이 결국 겪게 될 어긋난 시간, 그 몸 뒤의 시간들을 결국 깨닫게 될 거라는 뼈아픈 상상. (p.28)

그 시절의 허영과 부주의에 대해서는 어떤 자기 연민도 허락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p.28)

장소의 의미를 둘러싼 싸움은 기억에 대한 투쟁이다. 역사의 승자들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기억을 다시 세우는 일이지만 억압된 기억은 긴 우회를 거쳐 언젠가 유령의 얼굴로 귀환한다. (p.32)

청파동 골목길은 회화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깨끗하고 우아한 풍경과는 거리가 멀지만, 어떤 계획도 없이 시간과 우연과 왜곡이 만들어낸 휘어진 골목길들은 돌발적인 아름다움을 만든다. 이곳에서 풍경의 원근법은 무의미하며, 예기치 않은 굴곡과 방치의 시간이 흐른다. (p.35)

절대로 닿을 수 없을 만큼 누군가와 떨어져 있다면, 죽음처럼 건너갈 수 없는 곳에 누군가가 있다면, 너는 다른 시간 속에 있는 것이다. 아득한 거리는 아득한 시간이다. (p.37)

봄의 시제는 가정법이다. 봄은 언제나 '봄이 오면'이라는 시간대로부터 다가온다. 봄은 만질 수 없는 꿈처럼 오는 것이다. 눈부신 것은 봄이 아니라 봄의 불가능함이다. 상냥하고 뼈아픈 계절, 날카로운 소망이 만들어낸 부재의 장소, 세상에 없을 익명의 시간.

완전한 아름다움이란 곧 파괴될 어떤 것이다. 어느 날의 너처럼. (p.72)

어떤 장소가 제의적인 공간이 되는 것은 우연에 기댄 것이다. 스쳐지나가던 골목길과 육교와 작은 공원과 카페가 어느 순간 가벼운 마음으로 지나치지 못하는 장소가 되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이 만들어지는 것은 오로지 사람의 의지는 아니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만드는 것은 우연이라는 이름의 사소한 운명들이다. 그 우연들에 운명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겠지만, 어떤 우연들은 삶을 일거에 다른 시간으로 돌려놓고 되돌아오지 못하게 만든다. 그 우연들의 의미를 찾아낸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삶은 피할 수 없이 잔혹해 보인다. (중략) 그 봄날이 몇 번이나 지난 뒤에도 눈 오는 날 그 곳을 찾아가 한참 동안 혼잣말을 하거나 무언가를 눈 속에 묻거나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짧은 대화를 나누는 사람. 혼자만의 비밀스런 의례를 치르는 사람은 그 장소의 주인이 아니라, 그 장소에 찔린 자이다. 장소는 긴 애도의 자리가 된다. (p.72-73)

어떤 장소에서 벗어난다 하더라도 그곳의 시간으로부터는 벗어날 수 없다. 너의 장소를 벗어난다 해도 너의 부재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p.89)

모델하우스의 내부에는 깨끗한 가구와 생활용품들이 배치되어 있고, 가구 안에는 세련되고 깨끗한 의복까지 걸려 있다. (중략) 이 가상공간에서 유일하게 실제적이어서 남루한 것은 구경하러 온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삶 자체이다. 일상적 삶의 공간이 이렇게 완벽할 수 있다는 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p.89)

대규모 가게나 주차시설조차 없는 경리단길을 걷는 것은 의식적인 외출이라기보다는 우연한 산책에 가깝다. 이 거리는 이태원의 피로감이 만들어낸 무심함의 형식이다. 어두워지면 이태원은 맹목적인 열기로 가득하지만, 이 거리에서는 부드러운 일몰의 사소한 충고를 들을 수 있다. (p.92)

습관적으로 무심하게 여기를 이태원이라고 부를 때, 그 이름 안의 참혹한 시간들을 다 불러낼 수 있을까? 차마 불러내지 못하는 시간의 이름들.

너의 이름은 뼈아픈 비밀과 같고, 나는 결코 '너'라는 단 하나의 이름에 닿을 수 없다. 너의 영혼과 삶을 정확하게 요악하는 이름은 없다. 이름은 불가능하지만, 또한 불가피하다. 너에게 꼭 어울리는 이름은 없다. (p.93)

이곳의 식당들이 주는 매혹의 핵심은 '오리지널'의 맛과 스타일에 유사하다는 것, 한국화되지 않은 본토의 맛을 보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태원은 결코 '오리지널'이 될 수 없는 곳이다. 이곳은 오리지널 이전에 있거나 오리지널 이후에 있는 곳. 그 기이한 활기, 다양성의 과잉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뉴욕이나 홍콩이 될 수 없다. (p.98)

여행객이란 그런 것이다. 누군가가 장소의 스토리를 말해주기 전에는 그 장소의 의미를 알 수 없으며, 그 장소의 의미는 여행객의 시선 앞에 한없이 가벼워지거나 무화된다. 이태원에서는 모든 사람이 여행객이 된다.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이 거리는 여행객의 거리다. 여행의 시작은 알 수 있지만 아무도 그 여행의 끝을 알지 못한다. 어떤 시간도 완전히 수습되지않은 채 어느 순간 닫힐 수도 있는 길, 끝없이 도착이 연기되는 길의 시간을 여행이라고 할수 있을까?

어쩔 수 없는 오인과 참혹한 우연으로서의 생은 결국 전모를 다 알기도 전에 불현듯 마감될 것이다. 이번 생의 여행이 어떤 장면에서 멈추게 될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은 비밀로 남게 된다. (p.98-99)

이 거리는 낙원인가? 어쩌면 모든 것이 허락되는 인공낙원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스타일의 접합과 스타일의 과잉은 탐닉의 너머에서 이 매력적인 물질과 육체와 공간의 무가치함을 역설적으로 전시한다. 이 낙원은 지상의 낙원이기 때문에 여전히 허구적이고 피상적이며, 사람들은 그 낙원의 공기를 하룻밤 호흡하고 상투적인 귀가를 해야만 한다.

다른 삶의 기미를 만날 수 있지만, 다른 삶은 결코 시작되지 않는다. (p.102)

작은 맛집이 대형 체인점이 되면 장소와 얽혀 있는 하나의 미각은 개별성을 상실한다. 어떤 음식은 아직 한 시절의 감각을 보존하고 있지만 또 어떤 음식은 너무 쉽게 한 시절의 질감을 무화시킨다.

멀리서 보면 삶의 궤도는 결국 어긋나 있고 실재적인 것은 삶의 세부뿐이지만 세부는 보존되지도 기억되지도 않는다. 이 세계의 속도와 허위를 견뎌야 할 것이다. 나 자신을 견디고 있는 것처럼. (p.135)

하늘에서 죽는 새는 없다는 것, 결국 땅으로 내려와 죽어야 한다는 것을 일찍 알았다. 어린 날 조류의 어떤 깊이도 없는 눈을 두려워한 것이 그것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p.137)

불안을 감추기 위해 어두운 공원에 숨어 중얼거리는 사람은 얼핏 스치는 뒷모습에 말을 건넨다. 모든 뒷모습이 너의 것처럼 보일 때, 결국 그게 자신의 뒷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p.142)

거대한 개발의 풍문으로 들떠 있는 이곳이 애도의 장소가 되기는 힘들 것이다. 살아남은 자들에게 애도의 지속을 허락하지 않는 곳은 살 만한 세계가 아니다. (p.144)

잘 지내느냐고 차마 묻지도 못할 것이다. '그날'로부터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것처럼. 저 캄캄한 시간에 대해 한순간도 등을 돌리지 못하는 것처럼. (p.144)

망루에 오르는 것은 무언가를 걸어야 하는 일이다. 망루 위에서 맞이하는 시간이란 언제 아래로 다시 내려갈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시간, 바람이 몰려오는 칼날 위에 서 있는 것, 결국은 혼자만의 망루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 더 갈 데가 없는 시간이다.

망루에 올랐던 사람들은 그 방법 외에 말할 수 있는 길이 없었으며, 경찰관들은 그 작전의 부당성을 말할 입을 갖지 못했다. 이 끔찍한 침묵에 대해 이 공터가 말하는 것은 없다. 시간이 지나 결국 이곳에 높고 아름다운 건물이 세워진다고 해도 이 두려운 침묵은 그 건물을 지탱하는 철근 마디마디에 새겨질 것이다. 그 침묵들은 자라나서 더 큰 침묵에게 다가가 그것을 뒤흔들 것이다. 남일당은 용산 재개발의 종착지이면서, 이곳에서 벌어진 참혹한 근대화와 150년 전부터 시작된 '식민'의 마지막 장면이다. 진출과 개발이라는 이름 뒤의 무서운 비밀들. 모든 참혹한 길들이 여기로 모여들어 오래고 두려운 비밀에 대해 숙덕거릴 것이다.
모든 죽음은 제각각의 이유로 자연스럽지 않다. 죽음을 설명하지 못하면 삶은 추악해진다. 너의 부재를 설명하지 못하면 나는 무의미하다. (p.145)

끊임없이 무언가를 세우지 않으면 안되는 자본의 주술은 여전히 용산을 지배한다. 개발이라는 이름 자체가 거대한 거짓말이라면, 이 땅이야말로 가장 오래면서 가장 새롭고 거대한 거짓말의 장소였으니까. 남일당에 대한 애도, 이 오래고 끈질긴 거짓말에 대한 애도.

애도는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기다림이다. 나는 너라는 부재 속에 대기한다. (p.148-149)

어떤 지독한 기억은 이 생애가 끝날 때까지 지워지지 않을 것 같지만 반드시 망각의 순간이 도래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가장 아름답고 참혹한 얼굴도 마침내 지워지는 시간이 올 것이다. 하지만 그 최후의 순간에도 망각은 그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거한다. '너를 잊게 된다는 것'은 '네가 있었다는 것'에 대한 증명이다. (p.152)


댓글(1)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젤리곰 2014-11-05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밑줄을 참 많이도 그어 놓으셨어요 ㅎㅎ (사실 저도)
 
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장바구니담기


"현실을 다시 만들 수는 없어요" 낸시는 아버지에게 그 말을 돌려주었다. "그냥 오는 대로 받아들이세요.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이세요" -13쪽

그것으로 끝이었다. 특별한 일은 없었다. 그들이 모두 하고 싶은 말을 했을까? 아니 그렇지 않았다. 또 물론 그렇기도 했다. 그날 이 주의 북부와 남부에서 이런 장레식, 일상적이고 평범한 장례식이 오백 건은 있었을 것이다. (중략) 그러나 가장 가슴 아린 것, 모든 것을 압도하는 죽음이라는 현실을 한 번 더 각인시킨 것은 바로 그것이 그렇게 흔해빠졌다는 점이었다. -22쪽

그도 난공불락의 남자로 남아 있으려는 전투에서 계속 패배했다. 시간은 그의 몸을 붕괴를 막기 위해 고안된 인공 장치들의 창고로 바꾸어 놓았다. -24쪽

오랜만에 비로소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하게 내 인생의 주인이 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에 왜 내가 내 삶을 불신해야 할까? 차분하게, 똑바로 생각해보면 앞으로 훨씬 더 견실한 삶이 남아 있는 것 같은데, 왜 내가 소멸의 가장자리에 있다는 상상을 할까?-37쪽

창문 너머로 나무의 잎들이 변하는 것이 보였다. 10월이 흘러가고 있었다. 의사가 찾아왔을 때 그는 말했다. "언제 퇴원하죠? 1967년 가을을 놓치고 있잖아요" 의사는 침착한 표정을 귀를 기울이더니, 이윽고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직도 모르겠어요? 모든 걸 다 놓칠 뻔했는데." -47쪽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 -86쪽

크레이머는 뇌암으로 쓰러졌고, 부인이 휠체어를 밀며 마을 거리를 돌아다니는 광경이 눈에 띄곤 했다. 그는 은퇴를 한 상태에서도 계속 중요한 사명에 자신의 모든 인생을 바치는 사람처럼 전능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러나 죽기 전 열한 달 동안은 당혹감에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작아진 것에 어리둥절했고, 자신이 무력한 것에 어리둥절했고, 제럴드 크레이머라는 이름을 부르면 대답을 하는 사람이 약한 모습으로 휠체어에 앉아 죽어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어리둥절했다. -91쪽

한때 독단적으로 모든 일의 한가운데 있다 이제는 아무 일에도 끼지 못하게 된 사람의 쓰라린 의기소침함이었으니. 사실 이제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화가 나서 절대적인 소거라는 축복을 기다리고 있는 꼼짝도 못하는 영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92쪽

"통증이 사람을 정말 외롭게 만드네요" 그러면서 다시 허물어지며 그녀는 두 손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정말 창피해요"
"창피할 일 전혀 없습니다."
"있어요. 있어요" 그녀는 울었다. "자신을 돌볼 수 없다는 거, 궁상맞게 위로를 받아야 한다는 거..."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런 건 전혀 창피한 게 아니죠"
"그렇지 않아요. 선생님은 몰라요. 의존, 무력감, 고립, 두려움... 그게 다 아주 무섭고 창피해요. 통증이 있으면 자신을 겁내게 되요. 그 완전한 이질감이 정말 끔찍해요"
자신이 이렇게 된것이 부끄러운 거로구나. 그는 생각했다. 자신도 인정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초라한 거겠지. 하지만 누군들 안 그럴까? 그들 모두 자신이 지금 이런 꼴이 된 것이 부끄러웠다. 나는 안 그런가? 신체의 변화가 부끄러웠다. 남자의 힘이 줄어든 것이 부끄러웠다. 그를 비틀어버린 오류들과 그를 기형으로 만든 충격들 - 스스로 가한 것과 외부에서 온 것 모두 - 이 부끄러웠다. -96쪽

밀리선트 크레이머가 겪는 축소의 과정에 무시무시한 웅장함을 부여하는 것, 그리고 그것과 비교되어 자신의 황량함이 아주 작아 보이게 만드는 것은 물론 그녀가 겪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심지어 손자들의 사진,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통 집 사방에 걸어놓고 있는 그런 사진들, 어쩌면 이 여자는 이제 그런 것도 안 볼지 몰라.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통증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97쪽

열흘 뒤 밀리선트는 수면제를 잔뜩 먹고 자살했다. -97쪽

가족사에 저항하려면 상당한 전투성이 필요했는데, 그것은 이제 그의 무기고에서는 사라지고 없는 것이었다. 전투성은 거대한 슬픔으로 바뀌었다. 긴 저녁의 외로움 때문에 아들에게 전화하고 싶은 유혹에 굴복하고 나면, 그 뒤에는 늘 슬픔이 찾아왔다. 슬프고 기진맥진했다. -98쪽

순진하게도 그녀는 자신에게 귀중한 모든 사람의 결함을 지워버림으로써, 지나친 사랑으로 사랑함으로써 불행으로부터 숨으려 했다. 마치 건초를 꾸리듯이 용서를 꾸렸다. -110쪽

그러나 위로를 얻고자 하는 소망은 하찮은 것이 아님을 그는 깨달았다. 더군다나 기적적으로 아직도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에게서. -112쪽

거짓말은 아주 흔하지만, 당하는 쪽이 되어보면, 그건 정말 경악스러운 거야. 당신같은 거짓말쟁이들에게 배신을 당하는 사람들은 점점 많은 수모를 겪게 돼. 그러다보면 마침내 당신도 그 사람들을 전보다 하찮게 여길 수밖에 없어. 안 그래? 당신처럼 능숙하고 집요하고 사악한 거짓말쟁이들은 언젠가는 틀림없이 자신에게 심각한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거짓말을 하는 상대한테 그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게 될 거야. 아마도 스스로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조차 못할거야. 거짓말이 섹스도 안 하는 가여운 짝의 감정을 고려해 주는 친절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겠지. 자기 거짓말이 미덕이고, 자기를 사랑하는 얼간이를 향한 관용의 행동이라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이건 그냥 그거야. 빌어먹을 거짓말이라고. -127쪽

그는 늘 안정에 의해 힘을 얻었다. 그것은 정지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것은 정체였다. 이제 모든 형태의 위로는 사라졌고, 위안이라는 항목 밑에는 황폐만이 있었으며,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이질감이 그를 사로잡았다. (중략) 맙소사, 그는 생각했다. 한때 나였던 남자! 나를 둘러쌌던 생활! 나의 것이었던 힘! 그때는 어디에서도 '이질감'은 느낄 수 없었다. 한때는 나도 완전한 인간이었는데.
-135쪽

노년은 전투에요. 이런 게 아니라도, 또 다른 걸로 말이에요. 가차 없는 전투죠. 하필이면 가장 약하고, 예전처럼 투지를 불태우는 게 가장 어려울 때 말이에요. -149쪽

그가 알게된 것은 삶의 종말이라는 피할 수 없는 맹공격이 가져온 결과 전체와 비교하자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가 긴 직장생활 동안 사귄 모든 사람의 괴로운 사투를 알았다면, 각각의 사람들의 후회와 상실과 인내가 담긴, 공포와 공황과 고립고 두려움이 담긴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알았다면, 이제 그들이 떠나야 할 것, 한 때 그들에게 생명과도 같았던 그 모든 것을 알았다면, 그들이 체계적으로 파괴되어가는 과정을 알았다면, 그는 하루 종일, 또 밤늦도록 계속 전화기를 붙들고, 전화를 적어도 수백 통은 해야 했을 것이다.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학살이다. -162쪽

그래도 전에는 혼자 있을 때면 잠시, 사라진 구성요소들이 기적처럼 돌아와 그를 다시 거역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주고 그의 지배를 재확인해줄 것이라고, 실수로 그에게서 잘려나간 권리가 회복되어 불과 몇 년 전에 중단되었던 곳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수많은 노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점점 줄어드는 과정에 있었으며, 종말이 올 때까지 남아 있는 목적 없는 나날이 자신에게 무엇인지 그냥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할 것 같았다. 목적 없는 낮과 불혹실한 밤과 신체적 쇠약을 무력하게 견디는 일과 말기에 이른 슬픔과 아무것도 아닌 것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일. 결국 이렇게 되는 거야. 그는 생각했다. 이거야 미리 알 도리가 없는 거지. -167쪽

그는 이제 없었다. 있음에서 풀려나,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처음부터 두려워하던 바로 그대로. -18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